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40화
「루이제 발렌트
전 아칼쿠프 원소학부 2학년 차석.
부모는 두 사람 모두 C급 영웅으로 8년 전 토벌 중에 사망. 친척이 있으나 교류하지 않음.
입학부터 뛰어난 재능을 선보였으며 커리큘럼을 따라 가파르게 성장.
2학년 1학기에는 차석에 올라 아칼쿠프의 학과 수석 후보 중 한 명으로 주목받았으며 ‘상아탑’에서도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었음. 노블레스 교류회에도 초청받았던 것으로 확인. (참가는 거부.)
하지만 반년 전 여름방학 중. 당시 아칼쿠프 사령학부 2학년 수석인 ‘게르윈 크루거’와의 대련 중 무구인 완드가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
목과 오른손에서 ‘마력결상’을 입어 마력운용력이 5할 이상 떨어졌으며 상아탑의 모든 지원이 보류된 상황.
현재는 휴학 상태이며 복귀는 힘들 것으로…….」
“…….”
염성하에게서 건네받은 자료를 살피던 이세훈은 어두컴컴한 창밖을 내다보았다.
“인생 X같네 진짜…….”
뉴스나 인터넷을 아무리 찾아봐도 안보이길래 당연히 사건이 일어나기 전인 줄 알았더니 이미 반년도 전에 끝났었다니.
루이제의 부상을 막아냈다고 생각했었던 이세훈으로서는 그야말로 뒤통수가 얼얼한 상황이었다.
‘결국 마력결상을 입은 건가…… 귀찮게 됐구만.’
신체의 마력회로가 영구적으로 훼손되는 부상인 마력결상.
이 마력결상은 영웅들에게 가장 무서운 부상 중 하나로 꼽혔는데 마력효율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며 해당 부위에 마력이 지나갈 때마다 엄청난 통증을 유발했기 때문이다.
‘마법사가 목과 손에 마력결상을 입었다. 이건 뭐…… 말 다한 셈이지.’
캐스팅과 수인을 맺기 위해 마력을 끌어올릴 때마다 상처 부위가 찢어지는 듯한 통증을 느끼고 그로 인해 집중력이 흐트러진다.
염성하가 건네준 자료에는 마력운용력이 5할 이상 떨어졌다고만 적혀있지만 실질적으로는 9할 이상이 무력화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마법사로서는 사실상 사형선고를 받은 상태. 폐인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라 다행인가…….’
이세훈에게는 아직 만회할 기회가 남아 있었다.
「……우르의 종합병동에서 생동성 시험을 지원하여 재활치료를 받고 있지만 아직까지 큰 차도는 없으며 내부적으로도 회의적인 상황.」
‘아직 바벨에 남아 있다면 상관없어.’
만약 1년만 더 늦었어도 폭견은 ‘계약’을 맺고 바벨에서 나가 버렸을 것이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정신 나간 마법사들과 싸웠어야 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세훈은 그야말로 정신이 아찔해졌다.
‘이놈의 기억을 빨리 어떻게든 해결해야겠어.’
하지만 지금 당장은 폭견, 루이제 발렌트를 둘러싼 사건부터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다.
염성하에게 받은 자료의 페이지를 넘긴 이세훈은 아까 읽었던 내용을 다시 살폈다.
「루이제 발렌트는 본인이 사용한 완드의 제작자인 ‘비에르 바르무트’, 당시 제련학부 2학년 수석이 의도적으로 무구에 결함을 만들어냈다며 고소.
하지만 조사 결과 제작자의 과실이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고 비에르 바르무트 측은 모욕죄로 고소하였으나 돌연 고소를 취하하며 사태가 마무리됨.」
루이제 발렌트를 ‘폭견’으로 만들어낸 시발점.
모든 원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비에르 바르무트, 현 제련학부 3학년 수석의 이름을 읽은 이세훈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래. 한스가 아니라 너란 말이지…….”
사건을 끝나 버린 뒤였지만, 복수는 상대만 멀쩡히 살아 있다면 언제 시작하더라도 늦지 않다.
아직도 얼얼한 뒤통수를 쓰다듬은 이세훈은 차가운 눈으로 선배의 이름을 곱씹었다.
* * *
다음 날 아침.
기숙사 본관으로 내려온 이세훈은 북적거리며 모여 있는 생도들의 모습에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아침부터 참 부지런하구만…….’
한두 번 찾아오는 것도 아닌데 매번 이렇게 모이다니. 질리지도 않는지 신기해하며 이세훈이 사이를 지나 현관 밖으로 나왔고.
“좋은 아침!”
쾌활하게 인사를 건네는 금발의 청년, 제이크와 마주 섰다.
“……니들 혹시 짜고 치는 거냐?”
“음? 갑자기 무슨 소리야?”
“아니. 아니다. 그보다 무슨 일이야?”
“아, 어제 교수님이 갑자기 오셔서 정산도 못 했잖아. 그리고 그…….”
슬쩍 눈치를 살피던 제이크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때 이야기한 제안에 대해서도 할 말도 있고.”
“……그렇구만.”
확답은 안 하지만 이렇게 찾아온 시점에서 넘어간 것이나 다름없다. 주변에 몰린 생도들을 슬쩍 바라본 이세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가면서 이야기하자. 계속 있다간 입구 막고 있다고 욕먹겠다.”
“크흠. 내가 너무 무신경했네.”
늘 오던 에리카가 아니라 제이크란 소문이 퍼졌는지 현관에 모이던 생도들의 수가 더욱더 늘어났다.
전투직인 아칼쿠프의 학과 수석이라 그런지 몰라도 이번에는 말을 걸려는 생도들도 몇몇 보였기에 이세훈은 재빠르게 제이크와 함께 정류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일단 정산부터.”
“아, 여기 있어.”
제이크에게 아공간 포켓을 건네받은 이세훈은 안에 들어 있는 흑염의 망치를 꺼내 들었다.
‘흠. 역시 괜찮구만.’
손목을 까딱거리며 이세훈이 적절한 파지법을 찾아보고 있을 때. 눈치를 살피던 제이크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어제 내가 쓸 수 있는 검을 만들어주겠다고 했잖아.”
“했었지.”
“그게 정말로 가능해?”
의심과 기대감이 동시에 느껴지는 물음. 약간 흥분한 것처럼 보이는 제이크의 모습에 이세훈이 피식 웃었다.
“안 될 건 없지. 네 악력이 완등자들도 뛰어넘는 괴물 같은 수준이 아니라면야.”
“그, 그 정도까지는 아니긴 한데…….”
자신의 손을 슬쩍 내려다보던 제이크가 곤란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영웅 등급의 검도 부숴 먹은 적이 있어서…….”
“영웅 등급?”
제이크의 이야기에 이세훈이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았다.
“내구도 편중치는?”
“어? 아…… 공격 2할에 내구 8할이었어. 내 악력을 견딜 수 있도록 특수 주문했던 건데…… 바로 망가지더라고.”
내구를 8할로 잡았다는 것은 사실상 제이크의 악력을 견뎌내는데 모든 잠재력을 쏟아부었다는 것인데 그게 한순간도 버티지를 못하다니.
미묘한 표정으로 제이크의 손을 바라보던 이세훈이 옆을 가리켰다.
“잠깐 따라와 봐.”
제이크를 데리고 옆쪽의 공원으로 장소를 옮긴 이세훈은 주변의 눈이 없음을 확인하고 제이크에게 손을 까닥였다.
“오른손바닥 이리 줘.”
“손바닥은 갑자기 왜…….”
“검 안 필요해?”
“여기 있습니다.”
제이크가 곧장 오른손바닥을 내밀자 이세훈은 자신의 오른손으로 손등을 받친 다음 왼손에 들린 흑염의 망치를 어깨너머로 치켜들었다.
당장에라도 망치를 휘두를 것 같은 그 자세에 제이크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잠깐. 지금 뭘…….”
“손에 힘 빼고. 마력도 가만히 놔둬.”
“아니. 일단 설명을……!”
콰앙─!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제이크의 손바닥을 냅다 내려찍은 망치. 공원에 퍼진 소리만 해도 그 위력이 상당했는데 제이크의 얼굴과 손이 살짝 새빨갛게 물들었다.
“윽…… 극…….”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한 비명과 쌍욕을 제이크가 꾹 눌러 담고 있을 때. 이세훈은 새빨갛게 변한 손바닥, 정확히는 그 위에 반사적으로 방출된 마력을 살펴보았다.
‘……과연. 악력을 강화시킨 게 아니라 물질을 ‘변화’시켰던 건가.’
이런 구조면 확실히 일반적인 재료와 실력으로는 쓸 만한 검을 만들기가 어려울 법도 하다. 제이크의 ‘재능’이 무엇인지 확인한 이세훈은 이어서 인연도 추출했다.
[대상 ‘제이크 마이어스’에게서 인연을 추출합니다.]
[제작자 ‘이세훈’과의 인연은 Lv.1입니다.]
몸 안쪽으로 스며든 인연. 어느 정도 견적도 잡혔기에 만드는 것도 어렵진 않았지만 이세훈은 잠시 작업을 미루고 살짝 화가 난듯한 제이크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이게 무슨…….”
“만들 수 있을 것 같네.”
“……진짜로?”
언제 화가 났냐는 듯 물어보는 제이크. 그 모습에 이세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필요한 재료들이 좀 까다롭긴 한데 너라면 쉽게 구할 수 있을 거야. 만드는 것도 그리 오래는 안 걸리고. 준비 기간 포함해서 한 일주일 정도?”
“일, 일주일…….”
가문에서 후원하는 유명한 장인들조차 두 손 두 발 다 들었던 자신의 검을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만들 수 있다고 선언하다니.
그냥 되는대로 내뱉는 게 아닌가도 싶었지만 저 흔들림 없는 태도를 보니 또 거짓말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게다가 뻔히 들킬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고…….’
이세훈이 그동안 보여준 천재성이라면 자신에게 맞는 검도 정말로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그 생각에 제이크는 마른침을 삼키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러면 혹시 바로…….”
“지금은 안 돼.”
“왜, 왜?”
당황한 제이크의 물음에 이세훈이 망치를 아공간 포켓에 집어넣으며 대답했다.
“지금은 먼저 해결할 일이 생겨서.”
제이크의 인연레벨이야 언제든지 올릴 수 있지만 폭견은 이미 도화선에 불이 붙은 폭탄.
회귀 전처럼 흘러간다면 1년은 안전하겠지만, 자신이 만들어낸 나비효과가 도화선을 단숨에 불태워 버릴 수도 있다.
‘하루라도 빨리 해결해두는 게 마음 편해.’
그러니 지금은 다른 건 다 제쳐두고 폭견의 상태를 확인한 다음 하루빨리 인연을 성립시켜야 한다.
이세훈의 단호한 대답에 제이크가 초조한 표정으로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일주일도 못 기다릴 일이야?”
“안 돼.”
“……보수를 세 배로 준다고 해도?”
“세 배가 아니라 열 배여도 안 돼.”
“…….”
만약 이세훈이 만들기가 어렵다거나 제작이 오래 걸린다고 했다면 제이크도 그러려니 하며 넘겼을 것이다.
검 없이 지낸 것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본가에 있을 때도 대부분 몇 개월 이상의 시간이 소요됐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주일. 재료만 준비되면 일주일 만에 자신의 검이 만들어진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몰라도 가능성을 느껴버린 이상 제이크로서는 하루를 더 기다리는 것도 고역이었다.
“……언제 끝날지는 정해져 있어?”
“일단 해봐야 알겠는데 이것저것 알아보고 해야 해서 오래 걸릴 수도 있겠네.”
“내가 도와준다면?”
제이크의 물음에 이세훈이 의외인 표정을 지었다.
“네가 도와준다고?”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는 뭐든 도와줄게. 대신 이번 일이 끝나는 대로 내 검부터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해줘.”
무슨 일이 있어도 검을 받아내고 말겠다는 제이크. 그 열의가 가득 담긴 모습에 이세훈이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야 나쁠 거 없지.”
염화문에서 개털인 염성하보다야 마이어스 가문의 차남인 제이크 쪽이 정보력은 더 좋지 않겠는가.
‘뭣보다 이쪽은 공짜고.’
안 그래도 보수로 정보를 요구하는 것이 아까웠는데 마침 잘 됐다. 제이크를 바라본 이세훈은 요주의 인물 두 사람을 이야기했다.
“사령학부 3학년 수석 게르윈 크루거. 제련학부 3학년 수석 비에르 바르무트. 이 두 사람 알아?”
이세훈의 물음에 제이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게르윈 선배는 위르겐 회장의 25번째 아들. 비에르 선배는 바르무트 가문의 삼남이녀 중에 차남이지.”
“그 둘이 연관된 건 있어?”
“연관된 거라면…….”
무언가 곰곰이 생각해 보던 제이크는 이내 한 가지를 떠올리며 대답했다.
“아. 두 사람 다 노블레스 교류회 회원이네. 뭔지 알지?”
“……알지.”
바벨의 생도들 중에서 상류층에 속한 이들이 실력 있는 생도들을 초청하여 영입하는 모임의 장인 노블레스 교류회.
그리고 그 교류회의 초대를 거절했었던 폭견. 우연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이세훈은 확신했다.
‘두 놈이서 담궜구만.’
폭견의 완드가 폭발한 것이 절대로 우연이 아니었다고.
“반년 전 원소학부 2학년 차석이 게르윈 크루거와 대련 중에 중상을 입은 사건이 있어. 비에르 바르무트가 거기에 연결되어 있었는지 좀 알아봐 줘.”
“……생각보다 골치 아픈 일이었네. 일단은 한번 알아볼게. 그 이외에는?”
“그리고…….”
잠시 고민하던 이세훈은 좋은 생각을 떠올린 듯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했다.
“내 팔 좀 부러뜨려줘라.”
“……?”
“깔끔하게.”
“…….”
* * *
우르의 동쪽 끝에 위치한 종합병동 ‘아스쿠스’.
어지간한 학부 건물의 세 배는 족히 되는 규모를 지닌 이곳은 바벨 내부에서뿐만 아니라 외부에서도 엄청난 인지도를 가지고 있었다.
루트비히 학원장의 전폭적인 지지와 그에게 교수로 고용된 치료계열의 영웅들, 그리고 그들이 이끌고 온 의료진들의 수준이 그야말로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하아…… 하아…….”
세계 3대 병원으로 손꼽히며 특히 영웅들에게 가장 민감하다는 ‘재활’분야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아스쿠스.
“후우…… 후우…….”
하지만 그들도 치료할 수 없는 환자는 존재했다.
새하얀 방안 한가운데에서 환자복을 입은 채 오른손을 앞으로 뻗은 소녀. 숨을 고를 때마다 턱 아래까지 내려온 탁한 은발이 흔들렸고 새하얀 피부 위로 식은땀이 흐른다.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였지만, 소녀는 주저앉는 대신 푸른색 눈을 부릅뜨며 씹어 내뱉듯 중얼거렸다.
“159번째…… 시작하겠습니다…….”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으며 시선을 오른손 끝으로 향하자 심장에서부터 마력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지맥을 타고 흐르는 용암을 손끝으로 끌어올려 쏘아내는 이미지. 마법을 구성하는 형태를 그려낸 소녀는 자연스레 술식을 떠올리며 손끝에 담아냈다.
콰득─!
그 순간 느껴지는 격통.
거대한 칼날에 손바닥을 꿰뚫리는 듯한 감각에 숨이 멎으며 마력이 역류할 뻔했지만, 소녀는 입술을 짓씹으며 마법의 형상을 계속해서 갖춰갔다.
우우웅!
손끝에 맺혀가는 마력과 그 안에 싹튼 불씨.
저것을 터뜨린 순간 자신이 머릿속으로 그려낸 마법이 완성된다. 그 광경을 되새기며 소녀의 입이 벌어졌고.
“라바 불ㄹ─”
콰직
목이 찢어져 입 밖으로 피를 토해냈다.
“우읍……!”
구역질과 함께 바닥을 적시는 피.
짓씹었던 입술에서 터진 피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소녀, 루이제 발렌트는 온몸이 떨리며 마력이 역류하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그때와 다를 바 없는 통증이, 바닥을 붉게 물들여가는 핏물의 모습이 어쩌면 정말로 상처가 다시 찢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마력역류 현상을 확인. 마력동결을 진행합니다.]
방안에 펼쳐져 있던 마법진이 순식간에 루이제의 마력을 진정시켰고 바깥에서 살펴보고 있던 의료진들이 달려들어 왔다.
“실험 중단. 즉시 마력중화제와 신경안정제를 투여해라.”
“예!”
“혹시 새로운 마력결상이 생길지도 모르니 마력회로도 살펴보도록.”
교수의 지시에 따라 재빠르게 처치를 시작하는 조교수들.
목 뒤로 따끔거리는 느낌과 함께 마력중화제와 신경안정제가 몸 안에 스며들자 방금까지 느껴졌던 통증이 점차 사라져간다.
모든 것이 자신의 착각이었음을 확실히 깨닫게 된 루이제는 흐트러졌던 호흡을 가다듬으며 굳은 표정을 하고 있는 교수를 바라보았다.
“저, 저는 괜찮아요…… 조금만 쉬었다가…… 다시 실험을…….”
“아니. 오늘은 여기까지네. 그만 쉬게나.”
“하지만…….”
“그리고 당분간 재활 실험은 하루 50번으로 제한하지. 사용 마법도 초급으로 단계를 조정하겠네.”
“……예?”
횟수를 3분의 1로 줄이는 것도 모자라 재활에 도움도 안 될 것 같은 초급마법이나 쓰라니?
사실상 재활실험을 당분간 중단하는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루이제가 깜짝 놀라며 다급히 이야기했다.
“잠깐만요 교수님. 전…… 쿨럭……!”
“그만 가서 쉬게나. 다들 정리하지.”
반론은 듣지 않겠다는 듯 몸을 돌려서 떠나는 교수.
그 모습에 루이제는 뭐라고 더 말을 하려 했지만, 안정제의 효과가 돌면서 순식간에 의식이 가라앉았다.
그리고 다시금 눈을 떴을 때.
“……아.”
익숙한 병실 천장의 모습에 루이제가 뻑뻑한 목을 쥐어 짜내며 중얼거렸다.
“씨…… 이발…….”
구역질 좀 했다고 사람을 바로 내쫓다니.
온갖 불평불만이 머릿속으로 다 떠올랐지만 루이제는 그것을 내뱉지 않고 속으로 삭였다.
본래 100번이었던 시험횟수를 사정사정해서 늘린 게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150번만 할걸…….’
괜히 뭔가 될 것 같다고 무리하다가 기회만 날려 먹었다.
침대에 누운 채 연거푸 한숨을 내쉬던 루이제는 축 늘어진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재활 실험이 안 되면 다른 거라도 해야지.’
운동이나 독서, 하다못해 명상이라도 해서 자신의 목과 손에 생긴 마력결상을 치료하고 본래의 기량을 되찾아야 한다.
남들이라면 마음이 꺾여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 속에서 의욕을 불태우며 루이제가 병실의 밖으로 나섰고.
퍼억!
문 앞을 지나가던 한 청년의 가슴팍에 그대로 얼굴을 들이박았다.
“윽! 아…… 씹…….”
부딪치기 전에 멈추려고 했는데 아직 안정제의 기운이 미처 몸을 다잡지 못했다.
본의 아니게 생판 남의 가슴에다가 얼굴을 파묻어 버린 루이제는 쪽팔림을 느끼며 자신과 부딪친 청년을 올려다보았다.
“…….”
먹칠이라도 했는지 새까만 흑발에 방금까지 사람 여럿 잡아 죽이고 온 듯한 날카로운 눈동자.
어째 사람보다는 맹견을 보고 있는 듯한 사납기 그지없는 인상에 루이제가 여러 의미로 신기하게 보고 있을 때.
“뭘 봐?”
오른팔에 깁스를 하고 있는 맹견 같은 청년, 이세훈이 성질 더러운 말투로 인사를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