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37화
“완성했습니다.”
“…….”
자신의 앞에 놓인 두 단창을 본 리스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적일창赤一槍]
[등급 : 고급] [품질 : 중상]
절묘하게 만들어진 합금을 제련하여 만들어낸 창.
화속성 마력을 저장할 수 있으며 염륜을 형성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화속성 마력을 저장할 수 있습니다.
*염륜을 사용하는데 효율이 증가합니다.
[흑십창黑十槍]
[등급 : 고급] [품질 : 중상]
절묘하게 만들어진 합금을 제련하여 만들어낸 창.
암속성 마력을 저장할 수 있으며 염륜을 안정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암속성 마력을 저장할 수 있습니다.
*염륜을 사용하는데 안정성이 증가합니다.
창날의 균형도 훌륭했고 창대와 마력회로의 결합 역시 군더더기 없다. 단순히 ‘창’으로서의 완성도만 봐도 훌륭한 물건. 하지만 진짜 놀라운 것은 그 효과였다.
‘설마 염륜을 만들 수 있게 하는 무구를 가져오다니.’
정보창만 보면 염륜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는구나, 정도로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겨우 그 정도가 아니었다.
염륜을 만드는데 필요한 술식과 보조식. 그 두 가지가 각각 단창 안에 들어가 있어 조금이라도 틀릴 경우 속성마력을 반발시켜 알려주는 것이다.
‘이 정도면 훈련 도구 겸 교본이나 다름없군.’
적당히 염륜이나 만들어내는 물건을 만들어 올 줄 알았더니 설마 이런 걸 가져올 줄이야.
황당함을 넘어서 어이가 없을 정도의 결과물에 리스가 담담하게 서 있는 이세훈을 슬쩍 바라보았다.
‘이걸 참 뭐라고 해야 할지…….’
어젯밤 회의에서 형님이 왜 그렇게까지 이세훈에게 배정되는 예산을 올리려 했었는지 이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두 단창을 바라보던 리스는 머릿속으로 떠오른 생각들을 하나하나 정리한 다음 천천히 이야기를 꺼냈다.
“우선…… 훌륭하다. 교수생활을 시작한 지도 오래됐지만 이렇게 빠르고 완벽하게 과제를 만들어 오는 경우는 난생 처음 보는군. 진심으로 감탄했다.”
“감사합니다.”
“원래는 과제를 모두 거둔 다음에 채점을 할 생각이었다만…… 솔직히 이 정도면 굳이 미룰 필요도 없겠지. 만점으로 알고 있도록.”
“……만점?”
“아니, 진짜로?”
리스의 이야기에 제련실의 다른 생도들이 웅성거렸다.
일반적으로 바벨에서 교수들에게 만점을 받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목표치가 낮아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그 기준점이 말도 안 될 만큼 높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만점을 받으려면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완벽한 결과물을 만들어야 했는데 이세훈은 첫 과제부터 그런 물건을 만들어 온 것이다!
“과제도 제출했으니 발표날까지는 출석 면제다. 수업을 오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해라.”
하루 만에 만들어 온 무구로 만점을 받아낸 것도 모자라 그 깐깐한 리스 교수에게서 출석 면제까지 받아냈다.
그 모습에 설계도를 만드느라 머리를 싸매고 있던 생도들이 이세훈을 힐끔힐끔 보았다.
‘그냥 3학년으로 올려보내면 안 되나?’
‘내가 보기엔 졸업시켜도 될 것 같은데.’
‘왜 저런 놈이랑 동기야. 진짜 재수도 더럽게 없지…….’
이제는 질투를 넘어서 질색을 하게 만드는 수준. 주변에서 쏟아지는 시선들에 이세훈은 리스 옆에 서 있는 염성하를 힐끗 보았다.
‘봤냐?’
네가 무시한 창이 이만큼이나 대단한 물건이다.
이세훈의 시선을 알아차린 염성하가 고개를 돌려 마주 보더니 무언가 잠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적당한 대답을 떠올렸는지 한쪽 입꼬리를 아주 살짝 들어 올렸고.
“잘했다.”
이세훈의 속을 단 한 번에 뒤집어놓았다.
“…….”
혹시 자신이 피식 웃을 때도 남들에게 저런 기분을 주는 걸까. 잠시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된 이세훈은 속을 진정시킨 다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가보겠습니다.”
“그래. 창은 챙겨가라. 팔고 싶으면 이야기하고.”
리스는 곧장 수업 준비에 들어갔고 이세훈은 두 단창을 챙긴 다음 제련실에서 나왔다.
‘배울 것도 없는데 굳이 수업을 듣고 있을 필요는 없지.’
사실 제련학부의 전공수업들은 전부 무언가를 배운다기보다는 학과 수석으로서 명성을 높이거나 굳은 몸을 풀어주는 ‘재활’에 가깝다.
그렇기에 이세훈으로서도 넘길 수 있다면 넘기는 쪽이 좋았고 정말로 배워보고 싶은 것들은 대부분 부전공수업이었다.
‘오늘은…… 마광수 그 영감탱이 수업이구만.’
금속제련 수업에 빠지면서 3시간이 붕 뜬 상황. 이대로 트레이닝실에 갈까 싶었던 이세훈은 문득 두 단창을 집어넣은 아공간 포켓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한번 써볼까?’
회귀 전에도 제대로 펼쳐낸 적은 없었지만 이전에 마광수에게 배웠던 호신술도 그렇고 젊고 쌩쌩한 몸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남들 앞에서 연습하기에는 그랬기에 이세훈은 신체제어학의 강의실로 걸음을 옮겼다.
‘수업은…… 없나 보네.’
마광수도 자리를 비웠는지 텅 비어 있는 강의실. 때마침 잘됐다 싶은 이세훈이 잽싸게 탈의실로 들어가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나왔고.
“음?”
“아.”
똑같이 운동복을 입고 있는 제이크와 마주쳤다.
“뭐야. 지금부터 수업이야?”
“아니. 1시간 뒤인데 먼저 도착해서 몸 좀 풀고 있으라고 하셔서.”
“그래?”
어련히 제이크와 같이 수업을 듣지 않겠나 싶었는데 아무래도 개별적으로 수업을 진행하기로 한 모양이다.
‘하긴 그 영감 성격상 개인적으로 가르치는 게 낫겠지.’
하지만 이렇게 되면 연무장에서 수련하기는 조금 껄끄러워졌다. 대신 갈만한 곳이라면 프라이빗 트레이닝룸이 있지만 그쪽도 아직 정식 등록이 완료되지 않은 상황.
다 포기하고 일반 트레이닝실로 가서 평범하게 훈련을 할지 이세훈이 고민하고 있을 때.
“그…….”
잠시 머뭇거리던 제이크가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한 가지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 괜찮을까?”
“아니. 안 괜찮은데.”
“…….”
칼 같은 대답에 제이크의 얼굴이 경직됐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이세훈이 담담하게 바라보았다.
“보나 마나 네 누나가 무기 받아오라고 뭐라 한 것 같은데 생각 없으니까 포기해.”
“……조건도 안 들어보고?”
“그래. 썩 내키지가 않거든.”
마이어스 가문이 거는 조건이라면 넘치면 넘쳤지 절대 부족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세훈이 이렇게 거절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는 훗날 멸광의 마신으로 각성할 수도 있는 아리아 마이어스라는 존재 자체가 껄끄럽다는 것.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지금은 뭘 만들어주더라도 실망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눈 하나는 더럽게 높은 녀석이니까.’
아리아를 어떻게 대할지 아직 확실하게 정하지는 않았지만 어느 쪽이든 자신에게 흥미를 잃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완등자였던 아리아 마이어스가 멸광의 마신으로 돌아선 것은 더 이상 그 누구에게도 기대를 할 수 없게 된 것이 가장 컸기 때문이다.
‘눈에 밟혀서 신경 쓰이지만 그 이상 다가가지는 않는…… 그런 애매모호한 거리감이 지금은 최선이야.’
아리아가 원하는 ‘검’의 조건이 무엇인지 알아낼 때까지는 이 방법이 옳다.
절대로 응하지 않겠다는 이세훈의 단호한 표정에 제이크가 입술을 살짝 깨물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이건 어때?”
허리춤의 아공간 포켓에 손을 가져다 댄 제이크는 작은 망치 하나를 꺼내서 내밀었다.
한 손으로 잡기 적당한 검은색 손잡이에 은색 몸통. 양옆으로 튀어나온 머리 부분은 각각 붉은색과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는데 매우 짙은 속성마력이 느껴진다.
딱 봐도 어느 정도 값이 나가 보이는 물건에 이세훈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한 번 살펴봐.”
제이크가 내민 망치를 건네받은 이세훈은 곧장 정보창을 살폈다.
[흑염의 망치]
[등급 : 영웅] [품질 : 중상]
드래고니트를 제련하여 만들어낸 망치.
각 면에 화속성마력과 암속성마력을 코팅하여 두 속성마력을 증폭시키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두 속성마력을 증폭시킵니다.
*스킬 ‘속성수렴’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오…….”
영웅 등급 중상품의 망치.
처음부터 제련용으로 만들어낸 것인지 속성마력을 극대화시키는 데 성능이 특화되어 있었으며 성능도 그리 나쁘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세훈의 마음에 드는 것은 얼마든지 ‘개량’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물건이란 점이었다.
‘나쁘지 않은데……?’
이 정도면 시중에서도 상당히 비싼 값에 팔릴 만한 물건. 정보를 모두 확인한 이세훈은 제이크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이건 뭔데?”
“나랑 다시 한번 대련하자. 거기서 내가 진다면 그 흑염의 망치를 줄게.”
“내가 지면 네 누나를 위해 무기를 만들어주고?”
“맞아. 물론 대금은 정상적으로 지불할 거야.”
남이 보기에는 이기든 지든 이득인 내기지만 아리아에게 절대로 밑천을 내보여서는 안 되는 이세훈에게는 받아들일 이유가 없는 내기였다.
‘망치야 쓸 만하지만…… 그렇다고 위험을 감수할 정도까지는 아니지.’
그냥 다시 거절하기로 이세훈이 마음을 먹은 그때.
‘……음?’
대답을 기다리며 뚫어져라 바라보는 제이크. 이전 경매에서는 마지못해 나선 느낌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반드시 자신에게 이기고 말겠다는 감정. 처음 본 제이크의 솔직한 감정에 이세훈은 이번이 기회라는 것을 깨닫고 입을 열었다.
“한 가지만 추가하자.”
“뭔데?”
“이번에 내가 이기면…… 한 달은 네 누나 이야기 꺼내지 마. 그쪽에도 전달하고.”
“…….”
한 달.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지만, 그동안 받을 갈굼을 생각한다면 제이크로서는 죽을 맛이었다.
“좋아.”
하지만 제이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기를 받아들였다. 반드시 이겨야 하는 내기였으며, 이번에는 절대로 전처럼 지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그럼 바로 시작하자고.”
두 사람이 곧장 연무장 위로 올라섰고, 이전에는 급소만 보호했던 보호장치가 전신을 꼼꼼히 둘렀다.
‘지난번에는 예상치 못한 반격이라 허용했지만…… 이번에는 처음부터 전력으로 간다.’
마력을 끌어올린 제이크가 두 주먹에 쏟아붓자 푸른색 아지랑이가 맺혔다.
그것만 해도 철검은 가볍게 부숴버릴 수 있었지만 제이크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꽈아아악─
주먹을 움켜쥐자 그 안에 모인 마력이 더욱더 압축되었고, 이어서 손가락 틈새로 푸른색 증기가 피어오른다.
불순물이 새어나가며 점점 짙어지는 마력의 농도. 진한 푸른색으로 물들어가는 제이크의 두 주먹에 이세훈이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냥 움켜쥐는 것만으로 마력을 저만큼 압축한다고……?’
신체 능력보다 비정상적으로 높은 악력. 그 모습에 이세훈은 불현듯 염성하의 주먹을 막아냈던 제이크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끼어든 건…… 진짜 전력이어도 막아낼 자신이 있었단 거구만.’
어느 정도 잠재력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예상치 못한 제이크의 능력에 이세훈도 마음을 다잡았다.
‘방심하면 그대로 골로 가겠어.’
순수한 신체 능력으로만 따진다면 죽었다 깨어나도 이길 수 없겠지만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활용한다면 또 달라진다.
양손을 들어 올린 이세훈이 자신의 가슴 앞에서 깍지를 끼며 맞잡았고 왼손에 장착되어 있던 인연각인을 해제했다.
[인연각인 ‘사접석’이 해제됩니다.]
왼손바닥에서 나오기 시작하는 사접석. 그 감촉을 확인한 이세훈은 곧이어 오른손에 장착해둔 인연각인 발동했다.
[인연각인 ‘탐철’이 발동됩니다.]
사접석이 탐철에 의해 체내로 녹아든 순간. 이세훈은 전신의 모든 근육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마치 수천 개의 실이 꽂혀 누군가에 의해 조종당하는 감각. 그 기괴한 상황 속에서 이세훈의 몸이 점차 올바른 자세를 찾아 조정되기 시작했다.
“후우…….”
크게 움직이지 않았음에도 이전보다 더욱 정밀하게 가다듬어진 자세. 전신이 완벽히 하나로 이어진 것을 확인한 이세훈은 곧장 무기를 뽑아 들었다.
후웅!
아공간 포켓에서 나온 두 자루의 단창. 그 모습에 제이크가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단창도 쓰는구나.’
상당히 익숙한지 이전보다도 빈틈이 보이지 않았다.
이세훈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는 것을 다시 확인한 제이크는 꽉 움켜쥔 두 주먹을 바라보았다.
‘첫수에 무기를 부순다.’
조금 거칠겠지만 그것이 확실한 방법이다.
한계까지 압축해낸 마력 ‘청축靑縮’. 전력을 이끌어낸 제이크는 망설임을 버리고 천천히 자세를 갖췄다.
시작이라고 외쳐줄 심판조차 없는 상황. 서로 마주 본 채 미동도 않던 두 사람의 사이로 기묘한 적막이 감돌던 그때.
투웅──
오랜만의 기동에 작은 소음을 낸 보호장치. 그 순간 두 사람의 눈이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번뜩였고.
콰앙!!
바닥을 박차며 서로를 향해 단숨에 쇄도했다.
‘이겼다……!’
지난번처럼 도주가 아닌 회피를 선택한 순간. 이쪽의 힘에 고스란히 짓눌릴 뿐이다.
두 눈을 번뜩인 제이크가 청축을 두른 주먹을 있는 힘껏 내질렀고.
화르륵!
“……어?”
이세훈의 두 창 끝으로 염륜이 솟구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