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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가 다 만들어줌-36화 (36/309)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36화

[잔고 : 600,110,250원]

“이야…….”

막 갱신된 계좌의 잔고를 본 이세훈은 자신도 모르게 감탄했다.

회귀 후 처음으로 계좌를 확인했을 때 적혀 있던 금액이 110,250원.

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히던 잔고가 드디어 숨통이 트인 것이다.

‘이걸 어디에 먼저 써야 하나…….’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영연신마법을 강화하기 위한 재료 수집. 몽상아의 제련준비도 있었고 망치나 숫돌 같은 제련용 장비도 필요했다.

한 번 떠올리기 시작하니 끝도 없이 떠오르는 사용처. 그 목록을 확인해 보던 이세훈은 금방 결론을 내렸다.

‘역시 투자다.’

6억이 적은 돈은 아니지만 필요한 것을 모두 마련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니 지금은 급한 일들만 처리하고 돈을 불리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 것이 좋다.

물론 투자가 무조건 돈을 불려주는 것은 아니겠지만 회귀를 통해 미리 알고 있는 지식들도 있으니 비교적 안전하리라.

‘그래도 성급하게 굴었다간 마광수 그 영감탱이처럼 다 날려 먹겠지.’

관련된 기억이 흐릿하기도 하고 자신의 개입으로 미래가 변해 버릴 수도 있음을 생각하면 너무 무작정 넣어선 안 된다.

그리고 수익성도 고려해야 하니 기억을 하나하나 잘 따져보고 넣어야 할 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이세훈이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확인하셨습니까?”

맞은편에 앉아 있던 류은하가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아, 예. 전부 입금됐습니다.”

“혹시 금액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말씀하십시오. 백광장검이라면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니 얼마든지 지불하겠습니다.”

탁자 위의 백광장검을 슬쩍 쳐다보며 이야기하는 류은하. 어지간히도 마음에 들었는지 틈만 나면 힐끗거렸는데 그 모습에 이세훈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지금도 과분한 금액인데 이 이상 요구할 수는 없죠.”

“그렇습니까? 저는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봤습니다만…….”

공적을 깎아내리는 것은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지만, 이번에 한해서 이세훈은 백광장검의 가치를 냉정하게 이야기했다.

“지금이야 한 자루뿐이지만 나중에는 얼마든지 양산될 수 있는 물건이니까요.”

백광장검은 만들기가 어려울 뿐이지 다른 대장장이들이 따라 할 수 없는 ‘조건’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기본적인 틀만 알려져도 누구나 만들 수 있으며 실력 있는 대장장이들은 아마 특징을 전해 듣는 것만으로도 비슷한 물건을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

‘그 둘은 몰라도 류은하한테는 양심적으로 굴어야지.’

에리카와 제이크가 무구의 구매보다는 영입 쪽에 의미를 둔 기업이라면 류연하는 순수하게 무구를 평가하고 맛보기 위해 구매한 평론가다.

괜히 후려쳤다가 기대치가 떨어져 인연레벨을 올리기 힘들어질 수도 있으니 알아서 조절해야 했다.

“흠. 확실히 따라 만들지 못할 수준은 아니겠군요. 연마 과정이 그리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실력 있는 장인분들이라면 간단하게 만들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6억이 좀 과분한 것처럼 느껴지고요. 제가 이걸 정말 받아도 될지…….”

말끝을 흐리는 이세훈의 모습에 류은하가 단호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받아도 됩니다.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지금은 한 자루뿐이니까요”

그리고 미래에 더 생겨난다고 한들 그것이 지금 이세훈이 만들어낸 백광장검과 같으리란 보장이 없다.

그렇기에 류은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야기했다.

“백광장검은 6억의 값어치를 충분히 하는 물건입니다.”

생도를 응원하려는 의도가 아닌, 고객으로서 진심을 담아 이야기하는 류은하. 그 모습에 이세훈은 가만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꾸벅였다.

“감사합니다. 학과장님께 판매하길 잘한 것 같네요.”

“…….”

이세훈의 이야기에 류은하의 두 눈이 살짝 커졌고, 이내 담담하게 중얼거렸다.

“그렇군요.”

겉보기에는 무표정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보기 힘들지만, 이세훈은 류은하가 어느 정도 기분이 좋아졌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호의에 약한 건 여전하구만.’

류은하는 대장장이들에게 있어 최대 고객임과 동시에 기피 받는 고객이었다.

무구라는 것이 본래 쓰일수록 그 존재를 알려가며 제작자의 이름을 알리는 것인데 류은하의 고유스킬인 용혼광로는 무엇이든 그걸 일회용으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거기에 평가까지 가혹하니 누가 좋아하겠어.’

경매장에서 몇 년을 떠돌던 무구를 류은하가 사가려 하자 그걸 만든 대장장이가 황급히 사러 온 일화만 봐도 업계에서 그녀가 받는 취급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 사실을 모두 알고 있는 유망주가 무기를 사갔는데도 오히려 고마워한다? 류은하도 사람이었기에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아직 인연레벨은 Lv.1이지만…… 이런 분위기면 괜찮겠는데.’

무표정한 류은하의 얼굴을 살피던 이세훈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학과장님.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만…….”

“말씀하시죠.”

“백광장검은 어떻게 드실 예정이십니까? 조금 궁금해서요.”

이세훈의 물음에 류은하가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다음에 시간이 나면 위험지역에 나가서 사용할 생각입니다. 이만한 물건을 훈련용으로 먹기에는 아까우니까요.”

희귀 등급 하품이라 간식 취급을 받으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 소모품의 범주에 아슬아슬하게 걸친 모양이다.

“어디로 가실지는 이미 정하셨습니까?”

“따로 정하지는 않았습니다만…….”

말끝을 흐린 류은하는 이세훈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고 먼저 물었다.

“혹시 동행하시려는 겁니까?”

“……예. 학과장님만 괜찮으시면 은월산에 같이 가고 싶어서요.”

“은월산이라면…… 분명 D급 위험지역이군요.”

만마의 늪에 오염되어 환경이 변한 곳들을 통틀어 일컫는 ‘위험지역’.

은월산은 그중 D급 이상의 영웅들에게 활동이 권장되는 곳으로 이번 1학년의 첫 토벌 실습의 후보지로 뽑힌 곳 중 한 곳이었다.

“무슨 목적으로 가시려는 겁니까?”

“백광장검이 어떻게 먹히는지도 보고 싶고…… 나중에 있을 토벌 실습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바벨은 영웅을 양성하는 기관답게 정기적으로 위험지역으로 나가 몬스터를 직접 토벌하는 실습이 존재한다.

아칼쿠프와 우르는 성적에 반영되기에 모든 생도가 참가하고 보르시파는 신청자에 한해서 받아주는데 이세훈도 그것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은 핑계지만 말이야.’

실습에 참가하려는 것은 맞지만 진짜 목적은 류은하의 무력을 이용해 추후 유용하게 쓰일 물건을 확보하는 것.

그리고 은월산에 이세훈이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물건 하나가 숨겨져 있었다.

‘완등자 위르겐 크루거의 아티팩트.’

죽음을 초월하여 눈을 감지 못한다 하여 ‘불명자不暝者’라 불리는 최강의 사령술사. 그리고 재계 1위를 수십 년째 차지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 UD그룹의 회장.

그가 만마전의 마인에게 습격당해 잃어버린 아티팩트 중 하나가 바로 은월산의 한 장소에 숨겨져 있는 것이다.

‘회귀 전에 발견한 녀석들은 UD그룹에 가져다주고 수백억의 보상을 받았다고 했었지.’

자신 역시 그렇게 돈으로 받아도 되고 아니면 그만한 값어치를 지닌 다른 물건을 요구해도 된다.

완등자인 데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자인 만큼 확보만 해두면 어떤 상황에서든 쓸 만하리라.

“음…….”

이세훈의 제안에 류은하가 한참을 고민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무리 그래도 제 위치를 생각하면 그건 조금…….”

“답례로 원하는 무구도 만들어드릴게요.”

“일정부터 잡지요. 다음 주는 어떻습니까?”

두 눈을 빛내며 태도를 바꾸는 류은하. 예나 지금이나 비슷해 보이는 그 모습에 이세훈이 씩 웃었다.

“그렇게 하시죠.”

* * *

“흐음…….”

“…….”

맞은편에서 흘러나오는 언짢은 숨소리. 그 반응에 금발의 청년, 제이크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그래서 결국 구해오지 못했다는 거구나.”

“……죄,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까지야. 누가 들으면 내가 나무라는 줄 알겠네. 누나가 그렇게까지 속 좁은 사람처럼 보이니?”

그런 말을 하는 시점에서 속이 좁다 못해 꼬인 인간이라는 뜻이었지만, 제이크는 굳이 그것을 말로 꺼내지 않고 재빨리 머릿속에서 지웠다.

저 괴물 같은 누이라면 자신의 생각을 꿰뚫어 보고도 남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조금 그러네. 나는 분명히 얼마가 들더라도 이세훈이 만들어낸 무구를 사오라고 했었던 것 같은데…… 류은하 학과장님이 끼어들었다고 냉큼 포기해 버리다니.”

“…….”

“말하는 방법이 잘못됐던 걸까? 아니면…….”

내가 너무 만만하게 보였던 걸까.

혼잣말에 가까운 그 나지막한 중얼거림에 제이크의 몸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루트비히 학원장과 독대할 때도 이렇게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한 집에서 같이 나고 자랐음에도 가깝기보다는 두렵게만 느껴지는 상대. 전신을 짓눌러오는 긴장감에 제이크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던 그때.

“아, 미안해 제이크. 요즘 신경 쓰이는 일이 있어서 나도 모르게 예민하게 굴어버렸네…….”

방금까지 느껴지던 중압감이 씻은 듯이 사라지며 다시금 활발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것도 그나마 고개를 숙이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면 정말 졸도했을지도 모르리라.

“기분 상한 건 아니지?”

“……아닙니다. 멋대로 행동한 제가 잘못한걸요.”

“이해해 주니 다행이네. 그런데…….”

탁자에 올려져 있던 두 손이 깍지를 끼고 그 위로 조각 같은 턱이 걸쳐지며 무미건조한 입가가 시야의 끝에 들어온다.

“언제까지 고개를 숙이고 있을 생각이야?”

질문을 가장한 경고에 제이크가 재빠르게 고개를 들자 언제나와 같이 환하게 미소를 짓고 있는 누이, 아리아 마이어스의 모습이 보였다.

“대화를 할 때는 이렇게 얼굴을 마주 봐야지. 안 그래?”

“……맞습니다.”

“음음. 뭐,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으니 앞으로 어떻게 할지를 생각해봐야겠네.”

한 손에 턱을 괴며 고민하기 시작하는 아리아. 그 모습을 바라보던 제이크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 누님. 한 가지 여쭈어도 괜찮습니까?”

“응. 말해봐.”

“이세훈한테 왜 그렇게까지 관심을 가지시는 겁니까?”

제이크는 본가에서도 아리아의 잔심부름을 도맡았었기에 그녀의 관심사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명검들과 그러한 명검을 만들어낼 수 있는 대장장이들. 검술 명가인 마이어스의 핏줄이 다 그렇지만 아리아는 그중에서 특히나 ‘명검’에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이세훈은 아무리 봐도 그런 수준은 아니야.’

전도유망하니 미래를 기대할 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누이는 그런 불확실한 가능성까지 봐주던 성격이 아니었다.

그런데 왜 이세훈에게는 이렇게 흥미를 가지는 것일까.

“흐음. 그러게. 왜 이리 관심이 갈까…….”

제이크의 물음에 아리아가 의아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마치 오늘 처음으로 그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는 모습.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 반응에 제이크가 의아한 표정으로 보고 있을 때.

“얼굴이 취향이려나?”

“쿨럭! 컥! 케흑!”

사레가 들린 제이크가 마른기침을 토해내자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아리아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농담이야. 농담.”

“그, 그렇죠?”

“들개 같은 느낌이 좋기야 한데 그거 하나 때문에 이 정도로 하진 않지. 나도 공과 사는 구분할 줄 아는걸.”

“…….”

이세훈에게 이 사실에 대해서 경고해 주는 게 좋지 않을까. 제이크가 진지하게 고민을 하고 있을 때.

“그냥 조금 궁금할 뿐이야.”

아리아가 담담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었다.

“어떤 검을 만들 수 있는지.”

수많은 사람의 시선과 함성을 받으며 서 있었던 천무관의 무대 위. 그리도 소란스럽던 장소에서 아리아는 어째서인지 그 목소리만이 선명히 들려왔었다.

‘재수 없거든.’

듣기에는 그저 질투심에 내뱉는 듯한 악담.

하지만 아리아의 비정상적인 감각은 그 짧은 이야기 속에서 한 가지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알고 있는 듯한, 더 나아가 그 마음을 마치 이해하고 있는 듯한…….

‘아니. 여기까지는 이른가.’

기대가 크면 그 배신감도 커지기 마련.

이러다가 배신당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아리아는 부풀어 오르던 기대감을 접고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그러니까 앞으로 잘 좀 부탁할게. 알겠지?”

“……알겠습니다.”

“음음. 그럼 이제 방법을…… 아. 그러고 보니 같은 수업 듣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마광수 교수의 신체제어학 말이야.”

아리아의 물음에 제이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예. 같이 듣습니다.”

“그럼 그때 틈 봐서 한 번 부탁해줘. 값은 제대로 지불하겠다고 이야기하고.”

“…….”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으나 제이크는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부탁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세훈이 받아줄 것 같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누님 욕이나 안 하면 다행이지…….’

그렇다고 직접 가서 부탁하는 게 어떻겠냐고 할 수는 없었다. 오늘이야 잠시 시간이 났지만 평상시에는 졸업을 위해 바벨 측에서 공수해 온 토벌 의뢰를 해결하고 다니느라 매우 바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직접 권유할 생각이면 애초에 나한테 시키지도 않았을 테고.’

도대체 자신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중간에서 이렇게 고생을 해야 하는가. 제이크가 속으로 푸념을 하고 있을 때.

“이번에 잘 해결해 준다면, 아버님께 ‘계승식’에 대해서도 다시 말씀드릴게.”

미소를 지은 아리아의 이야기에 흠칫 떨었다.

“졸업 전까지 금지라고 하셨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기니까. 그리고 지금 이대로라면 학과 수석 자리에서도 금방 밀려날 수도 있어.”

“…….”

“너도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지?”

아리아의 이야기에 제이크의 표정이 흔들렸다.

그 말 그대로 이세훈과의 대련에서 허무하게 패배하며 그런 생각이 들었었기 때문이다.

‘검…….’

계승식을 통해 자신만의 검을 보유한 가족들과 달리 아무것도 쥐어져 있지 않은 자신의 손. 그것을 떠올린 제이크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최근에 내가 골치 아픈 일도 해결해드렸으니 잘 말씀드리면 아버님도 허락해 주실 거야. 그러니까…….”

“알겠습니다.”

아리아의 말을 자른 제이크가 진지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어떤 방법을 쓰든, 반드시 이세훈에게서 검을 받아오겠습니다.”

방금까지는 어쩔 수 없이 한다는 태도였다면, 지금은 하고자 하는 본인의 의지가 보인다. 결연히 이야기하는 제이크의 모습에 아리아가 미소를 지었고.

“누나가 말하는 중에 그렇게 끼어드는 게 맞을까?”

“……죄송합니다.”

남매의 불편한 대화가 조금 더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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