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35화
“자리는 저쪽.”
에리카에게 이끌려 빈 좌석으로 온 이세훈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너 아까는 분명히 우연히 마주쳤다며.”
“응.”
“근데 왜 내 좌석까지 있는 거냐?”
떡하니 비어 있는 두 개의 좌석. 아무리 봐도 노린 듯한 상황에 이세훈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에리카가 태연히 대답했다.
“이런 일도 있을까 해서.”
“……그래. 어련하시겠어.”
어쨌든 서서 듣는 것보다야 편하다. 자리에 앉은 이세훈은 그 앞에 놓인 카탈로그를 뽑아서 펼쳐보았다.
‘총 36자루인가.’
오늘 출품되는 물건들은 이미 무대 위에 세팅이 끝난 상태였는데 거치대 하나당 여섯 자루씩 탁자에 놓여 있었다.
‘흐음…… 2학년에는 영 인물이 없구만…….’
회귀 전에 본 적 있는 이름도 없었고, 2학년 수석이 만들었다는 철검도 솔직히 말해 한스보다도 수준이 떨어졌다.
생각보다도 낮은 수준에 이세훈이 팍 식은 표정으로 보고 있을 때. 무대 뒤편에서 진행자가 걸어 나와 단상 앞에 섰다.
“지금부터 제련학부 2학년의 정기경매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주제는 철검. 출품된 물건은 총 36자루로 자세한 정보는 카탈로그에 기입되어 있으니 참고 부탁드리겠습니다.”
내부의 조명이 살짝 어두워지고 무대 쪽의 조명이 더욱 밝아지며 자연스레 사람들의 시선이 모여든다. 그 모습을 확인한 진행자는 매끄럽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본격적으로 경매를 시작하기에 앞서 이번 경매에 특별히 추가된 품질검증 절차에 대해서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진행자의 이야기와 동시에 무대의 중심부 쪽으로 조명이 집중되었고, 수레 위에 놓인 새하얀 천이 사방으로 빛을 반사시켰다.
“이 하얀 천은 마수 ‘백호’의 털을 녹여 가느다란 실로 만든 다음 짜낸 천인 서금포西金布입니다. 부드러우면서도 금속처럼 단단하며 참격에 뛰어난 내성을 가지고 있지요.”
진행자의 설명에 맞춰 검을 들고나와 있던 직원이 서금포를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었다.
카가가각!
사방으로 튀어 오르는 불꽃. 검과 천이 부딪친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모두가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자 직원이 더욱더 힘을 주었다.
카가각──── 파캉!
힘을 견디지 못하고 두 동강 난 검. 직원이 그 조각을 들어 올려서 보여주자 이가 모조리 나간 검날이 드러났다.
“그 덕분에 이처럼 절삭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내구도를 낮춘 물건들은 쉽게 구분할 수 있는데, 이번 경매는 서금포를 통해 그런 불량품을 구분하고자 합니다.”
“오. 재밌겠는데.”
“제대로 준비한 모양이야.”
자칫 잘못하면 출품작이 부서질지도 모르는 검증법.
일반적인 경매에서는 보기 힘든 상황에 참가자들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누가 봐도 올해 학과 수석인 이세훈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장치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극적으로 하려면 2학년의 검은 전부 부러뜨리려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는 안 하겠지. 내구도가 닳은 서금포를 베어내는 식으로 할 것 같은데?”
어느 학부든 밀어줄 만한 유망주가 생기면 약간의 연출을 하기 마련. 참가자들은 서금포를 통한 검증을 그런 일환으로 여겼고, 무대의 뒤편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던 미하엘이 미소를 지었다.
‘순조롭게 흘러가는군.’
품질검증을 하는 이유도 명확하며 명분 역시 갖춰졌다. 차후 이 일이 의심받아 조사를 받더라도 새로운 유망주의 등장에 부학과장이 의욕을 낸 사건 정도가 될 터.
‘그것도 검증이 성공할 때의 이야기겠지만.’
이세훈이 만들어낸 백광장검은 확실히 뛰어났지만 절삭력에 특화된 검이 지닌 ‘한계’를 극복하지는 못했다.
물론 철만을 사용해 그것을 뛰어넘으라는 것은 생도에겐 가혹한 과제였지만 그거야 부학과장인 자신이 신경 쓸 바는 아니리라.
‘부디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군.’
객석에 앉은 이세훈을 바라보며 미하엘은 피식 웃었고, 모든 설명을 끝낸 진행자가 경매를 시작했다.
“그럼 지금부터 경매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1번 검은 조셉 생도의…….”
진행자의 호명과 함께 직원이 거치대에 얹어진 검을 들고나와 서금포를 향해 가볍게 내리긋는다.
카가가강!
“오…….”
“색이 다르잖아?”
앞의 시범에선 거무튀튀한 불꽃이 튀었는데 이번에는 푸른 불꽃이 튀어 오른다. 예상치 못한 광경에 객석 곳곳에서 감탄이 흘러나왔고, 에리카가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왜 저러는지 알아?”
“서금포, 정확히는 백호의 털인 ‘서금모西金毛’가 가진 특징이야.”
S급 마수 백호.
워낙 오래전에 잡힌 녀석이라 단순히 몸이 단단하다고만 아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실제 능력은 조금 복잡했다.
털과 가죽, 그리고 살과 뼈가 가진 각기 다른 성질이 한데 어우러져 극강의 방어력을 만들어냈던 것인데 그중 털인 서금모는 ‘모방’의 성질을 지니고 있었다.
“털에 닿은 금속 무기의 예기를 모방해서 아무리 좋은 무기를 사용해도 내구도를 깎아 먹어. 거지 같은 능력이지.”
“엄청나네.”
“괜히 영웅 등급 수백 개에 전설 등급 무구까지 부숴 먹었겠어. 저기에 가죽이랑 살, 뼈까지 더해지면 장난 아닐걸.”
에리카에게 백호에 대해 설명하던 이세훈은 문득 회귀 전의 기억을 하나 떠올리며 턱을 쓰다듬었다.
‘그러고 보니 서금호왕西金虎王이 지금쯤 만들어지고 있었던가?’
백호의 부산물을 활용해 만들어낸 전설 등급의 갑옷.
유일하게 백호의 ‘심장’을 사용한 장비였는데 원본의 방어력을 거의 완벽히 재현했다고 평가받을 정도였다.
‘심장은 나도 좀 탐나는데 어떻게 방법이 없으려나…….’
제작자도 미상인 데다 무구가 처음 나타난 게 암시장 쪽이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어떻게 방법이 없을지 이세훈이 고민하던 그때.
“그럼 예리한 검일수록 불리한 거 아냐?”
무언가 깨달은 에리카가 눈매를 찌푸리며 물었다.
“그렇지. 절삭력을 높인 검은 보통 내구도가 낮으니까.”
균형 있게 만들어낸 검이라면 서금포에 내리긋는다고 해도 크게 상하는 일은 없다. 보통은 검날을 필요 이상으로 살리기보단 내구도를 안정시키는 쪽을 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세훈의 백광장검의 경우 검날을 극한까지 연마하여 예리함을 살린 무구. 그렇기에 내구도는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서금포에 부러질 가능이 높은 거지.’
재료에 대해서 아는 이들이 보기엔 노골적인 배치. 하지만 이에 대해서 비난을 하기에도 애매했다.
생도들이 만든 물건 중 절삭력에 치중하다 내구도가 부실해 불만을 사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번에 백광장검이 부러져도 그런 불량품을 만들었다 정도로 받아들여지겠지.’
특히 다른 2학년의 검이 속속들이 통과하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자신만 부러진다면 어떤 시선을 받게 될지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그 이후로는 뭘 만들어도 제련학부, 김인철이 수작을 부렸단 식으로 작업할 테고 명성에 큰 타격을 입게 되리라.
‘한번 인식이 그리 잡혀 버리면 고치기가 쉽지 않으니까.’
그 뒤에는 아마 회유를 하거나 앞에 내보낸 제련학부의 교수들처럼 아예 쳐내지 않을까.
‘생각보다 능력이 좋은데.’
서금포를 구해온 것도 그렇고 바벨, 루트비히의 아래에서도 과감히 움직이는 것이 부학과장까지 그냥 올라온 게 아닌 모양이다.
이세훈이 속으로 미하엘을 재평가하고 있을 때. 옆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에리카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괜찮아?”
“뭐가?”
“예리한 검일수록 불리하다면 네가 만든 검이 가장 불리하잖아.”
“뭐. 그건 그렇지.”
무대 위에서 독보적으로 빛나고 있는 백광장검을 바라본 이세훈이 슬쩍 웃었다.
“내가 제대로 못 만들었다면 말이야.”
카가강!
서금포에 검을 내리그을 때마다 각기 다른 색의 불꽃이 튀어 올랐고, 대부분 이가 살짝 나가는 정도로 마무리되었다.
“25번 검 검증 완료되었습니다. 입찰 시작가는 200만 원으로…….”
검증이 끝나면 즉각 경매가 시작되었고, 대부분의 검은 몇 번 호명된 이후 별다른 소동 없이 바로 낙찰되었다.
대부분 무구 스킬이 없는 고급 등급인 데다 오늘 경매장을 찾은 1,000여 명의 참가자들이 노리는 물건은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 마지막으로 36번 검. 보르시파 1학년 학과 수석인 이세훈 생도의 백광장검의 품질 검증을 실시하겠습니다.”
직원이 조심스레 마지막 남은 백광장검은 들어 올려 객석을 향해 내보였다.
조명 아래서 스산하게 빛나는 새하얀 예기. 보기만 해도 베일 것 같은 날카로운 기세에 경매장에 모인 모든 이들이 두 눈을 빛내며 바라보았다.
“후우…….”
앞의 물건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관심에 직원이 숨을 고르며 천천히 백광장검의 검날을 서금포를 향해 가져다 댔고.
키이이잉!
기존과 전혀 다른 광경이 무대 위에서 펼쳐졌다.
검날이 깎여져 나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맞물리는 듯한 기묘한 소리. 그와 동시에 백광장검을 감싸고 있던 새하얀 예기가 피어오르며 주변으로 새어나갔고.
카강!
손잡이를 붙잡고 있던 직원의 보호장갑에서 불꽃이 튀어 올랐다.
“흐억……!”
흘러나오는 예기에 손이 베일 뻔했음을 깨달은 직원이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고, 손에서 떨어뜨린 백광장검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푸욱!
경매장의 바닥을 꿰뚫고 들어간 백광장검.
갑작스러운 상황에 참가자들이 두 눈을 휘둥그레 뜬 채 바라보았고 경매장 내부로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방금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눈으로 보고도 이해할 수 없는 광경에 진행자조차 말문을 잇지 못하고 있을 때.
“잠깐 설명해 드려도 되겠습니까?”
자리에서 일어선 이세훈이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아…… 그게…….”
“올려 보내주게.”
돌발상황에 진행자가 선뜻 결정을 못 내리자 맨 앞에 앉아 있던 김인철이 이야기했다.
“무구를 만든 사람이 가장 잘 설명할 수 있지 않겠나.”
“아, 예. 알겠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지도교수인데 뭐 어떻겠는가. 진행자의 허락에 이세훈이 계단을 타고 무대 위로 올라섰다.
좌석에 있을 때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시선들. 그 모습을 여유롭게 바라본 이세훈은 바닥에 꽂혀있던 백광장검을 가볍게 뽑아 들었다.
“저…… 보호장갑을…….”
“아. 괜찮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자기가 만든 검에 손을 베이지는 않는다.
직원을 돌려보낸 이세훈은 백광장검의 날을 가볍게 훑어보며 객석을 바라보았다.
“우선 이 검증에 사용된 서금포, 정확히는 백호의 털인 서금모의 특징에 대해서 정확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이세훈은 에리카에게 해주었던 설명을 고스란히 반복했고 그 이야기를 들은 객석이 술렁였다.
조금 눈치가 있는 사람이라면 품질 검증이 이세훈의 백광장검에는 상당히 불리한 구조임을 알아챈 것이다.
“그렇기에 본래라면 예기에 치중된 검은 서금포에 부러지기 쉽습니다만…… 제가 만든 백광장검은 조금 경우가 다릅니다.”
백광장검의 검날을 잘 보이게 내세운 이세훈이 겉면에 빛나는 새하얀 예기를 쓰다듬었다.
“백광장검에 맺힌 이 ‘예기’는 단순히 빛이 반사된 게 아닙니다. 검신을 순환한 마력이 맺혀있는 현상이죠.”
“마력이라고?”
“아무리 봐도 그런 건 안 느껴지는데…….”
마력으로 만들어진 예기라면 자신들이 느끼지 못 할 리가 없지 않은가.
의아해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이세훈이 미소를 지었다.
“마력이 거의 느껴지지 않아도 정상입니다. 대기 중에 흩어져 있는 소량의 마력만으로 만들어진 거니까요. 따지자면 반딧불 같은 겁니다.”
이세훈이 허공에 가볍게 백광장검을 휘둘렀고 그때마다 겉면에 맺힌 새하얀 예기가 더욱 선명히 빛났다. 검을 휘두르면서 더 많은 마력이 검신에 스며들어 예기가 강해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진짜 반딧불처럼 빛만 나는 건 아닙니다. 마력배열을 조정해서 방출되는 마력을 압축되게 만든 건데…… 간단하게 말씀드리자면 아주 얇은 검이 검날에 맺혀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검기라고 할 만큼 마력의 밀도가 높진 않지만, 단순히 빛이라고 하기에는 날카롭다. 그렇기에 이를 ‘예기銳氣’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그럼 방금 일어난 현상은 예기가 맞물리면서 나타나서 그런 거야?”
적절한 에리카의 질문에 이세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똑같은 예기가 맞물리면 상쇄가 아니라 공명을 일으키거든.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 재밌는 걸 할 수 있지.”
설명을 끝낸 이세훈은 가볍게 숨을 내쉬며 서금포를 바라보았다.
‘잘못하면 진짜로 부러지거나, 베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그런 모습을 보인다면 자신의 명성에 흠이 갈 터. 그렇기에 완벽하게 해내야 하지만 그러기에는 몸 상태가 썩 좋지 않았다.
염성하를 돕느라 밤샘작업을 한 여파가 몸 곳곳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자신은 있지만…… 신중한 게 좋겠지.’
지금 쓸 수 있는 방법이 어떤 게 있을까. 자신이 가진 것을 확인해 보던 이세훈은 문득 이쪽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 에리카를 발견했다.
‘그러고 보니 입학식 때 평범한 까마귀를 강화해서 다뤘었던가.’
주술의 구성 자체가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정확하게 맞물렸기에 가능한 기교. 이전에 초대장에 펼쳐서 보여줬던 결계도 그렇고 에리카는 완벽하다 싶을 만큼 정밀함을 보여줬다.
‘목표를 정한 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실행하는 완벽주의.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저돌적으로 움직인다.’
일체의 낭비 없이 극한의 효율을 추구하는 방식. 에리카라는 인물에 대한 형태가 머릿속으로 그려졌고, 그것이 고스란히 이세훈의 손안으로 발현되었다.
우웅!
수천 개의 가느다란 철사를 이어 붙여서 만들어낸 듯한 광석. 새로이 만들어낸 인연석의 모습에 이세훈이 곧장 성능을 확인해 보았다.
[인연 - 사접석]
[등급 : 고급] [품질 : 중하]
조율된 마력이 압축되어 있는 인공광석.
다른 광물과 함께 섞을 경우 흐트러진 내부의 마력배열을 조정시킵니다.
*함께 사용한 재료의 배열을 조정합니다.
‘좋아.’
완벽하게 부합되는 성능에 이세훈은 곧장 사접석을 움켜쥐었다.
[인연각인 ‘사접석’이 발동됩니다.]
촤라락!
손아귀에서 새어 나와 백광장검에 이어지는 은색 실. 그 순간 은은하게 흔들리던 예기가 점차 가라앉아 새하얀 검날로 변했다.
마력이 방출되며 나타나는 일렁임까지 완벽히 조정되어 마치 검기와도 같은 형상이 만들어진 것이다.
“저런 소량의 마력으로 저만큼 선명한 형태를…….”
“설마 검기는 아니겠지……?”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기예. 경악하는 사람들의 시선에 이세훈이 슬쩍 웃으며 검날을 바라보았다.
‘됐네.’
이 정도면 충분히 가다듬을 수 있다.
백광장검을 앞으로 뻗은 이세훈은 천천히 서금포의 위로 내리그었다.
키이이잉─
서금포가 발하는 예기와 백광장검이 발하는 예기가 서로 완벽하게 맞물려 V자의 형태로 검날을 뒤덮는다.
그 모습을 확인한 이세훈은 백광장검을 조금 더 지그시 눌렀다.
카가가강!
예기와 충돌하며 튀어 오르는 불꽃. 그 순간 이세훈이 단숨에 검날을 자신을 향해 당겼고.
스카앙───!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백광장검의 검날이 더욱 선명히 벼려졌다.
[무구 ‘백광장검’의 등급이 ‘희귀’로 상승됩니다.]
[백광장검]
[등급 : 희귀] [품질 : 하]
새하얀 예기가 벼려진 장검.
한계까지 연마된 검날이 마력배열과 맞물려 강인하면서도 날카로운 예기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부여된 마력이 압축되어 검날에 방출됩니다.
*마력을 부여할 경우 절삭력이 강화됩니다.
*스킬 ‘백예’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흠. 이 정도면 뭐…….’
공용숫돌로는 제대로 세울 수 없었던 날을 좀 더 살려냈다. 물론 특제숫돌을 사용한 것에 비한다면 부족하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첫 경매에 올릴 물건으로는 나쁘지는 않으리라.
백광장검을 살피던 이세훈은 문득 자신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아. 고급에서 희귀로 등급이 올랐네요. 시작가에 이 부분도 반영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예? 아, 그 혹시 무구 스킬은…….”
“백예라고 생겼네요. 보시죠.”
우웅!
이세훈이 가볍게 무구 스킬인 ‘백예’를 사용했고 보다 선명한 예기가 검날의 위로 솟구쳤다.
“예기가 강화되는 간단한 스킬입니다.”
“그, 그러면…… 메뉴얼에 따라 시작가는 100만 원에서 500만 원으로 상향조정하겠습니다.”
무구 스킬 하나만으로 5배 이상 뛰어오른 가격.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시작가였기에 진짜 낙찰가는 얼마나 나올지 알 수 없다.
“그러면…… 이제 시작할까요?”
이세훈이 슬쩍 내보이는 백광장검의 모습에 경매장에 모인 모든 이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화제를 모으고 있는 학과 수석이 만든 무구. 거기에 고급에서 희귀 등급으로 오른 ‘승급품’. 안 그래도 높았던 백광장검의 희소가치가 더욱더 높아졌고.
“700만!”
“1,000만!!”
“1,500만!!!”
그 가격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오르기 시작했다.
극소량의 마력을 검기 수준으로 압축해낼 수 있는 정밀한 구조. 검기를 수련하는 도구로 쓸 수 있는 유용함.
이미 평범한 무구라기보다는 새로운 연구재료나 다름없었기에 사람들이 끝없이 매달렸고 계속해서 가격이 갱신되어갔다.
그렇게 앞자리가 하나씩 올라 마침내 그 단위가 억을 넘겼을 때. 포기하지 않은 것은 두 사람이었다.
“2억.”
두 눈을 빛내며 담담히 손을 드는 에리카
“윽…… 2억 1천!”
그 모습에 다급히 손을 들며 외치는 제이크.
같은 1학년 학과 수석이자 세간에서도 손꼽히는 명문가의 자제들. 그 모습을 무대에서 내려다본 이세훈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이게 상류층의 돈지랄이구나.’
겨우 희귀 등급 무구에다 억 단위를 태우다니. 미친 건가 싶었지만 아무렴 어떤가. 저기서 외치고 있는 돈이 다 내 돈이며 예산의 바탕이 될 텐데.
“아 2억 9천. 여기서 끝나는 겁니까? 맨손으로 돌아가도 정말 괜찮은 건가요?!”
백광장검을 흔들며 외치는 이세훈의 모습에 제이크의 눈매가 파르르 덜렸다가 다시금 손이 올려졌다.
“……3억!!”
“3억 1천.”
“3억…… 2천……!”
“3억 4천.”
담담하게 가격을 올리는 에리카와 앓는 소리를 내면서도 계속해서 따라붙는 제이크.
아무리 희소가치가 있다고 해도 희귀 등급, 그것도 하품의 물건에 사용하기는 너무 과한 금액이었다.
이제는 이세훈을 영입하기 위한 이노우에와 마이어스의 물밑작업으로 보이는 입찰 경쟁에 모두가 경악하던 그때.
“6억.”
한 사람의 선언과 함께 경매장이 얼어붙었다.
언제 도착했는지 입구 앞에서 무덤덤한 표정으로 손을 들고 있는 붉은 머리의 여성, 류은하 학과장의 등장에 제이크와 에리카의 얼굴이 굳어졌다.
한 번 점찍은 무구라면 반드시 사서 먹어버린다는 유명인. 그것이 바로 웨폰이터이자 미식가라 불리는 류은하였기 때문이다.
‘6억이라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그만한 값어치는 확신할 수 없어…….’
예상을 아득히 넘어선 가격에 두 사람이 손을 들지 못하고 고민하던 그때.
“너무 낮게 불렀나…….”
“…….”
“…….”
조용한 경매장에 울려 퍼진 류은하의 중얼거림. 그에 두 사람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고.
“배, 백광장검. 6억 원에 낙찰되었습니다.”
이세훈의 첫 경매가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