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33화
콜로세움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원형 건물.
큰 건물이 많은 바벨에서도 독보적인 규모를 지닌 건물의 모습에 이세훈이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회귀 전에도 느꼈지만…… 정말 규모 자체가 다르구만.’
아칼쿠프의 상징이자 명물로 불리는 원형 건물. 모든 무기학부가 모여 있는 ‘플라비움’의 모습에 이세훈이 걸음을 옮기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건물을 구획별로 나눠서 무기학부를 배치해둔 건가. 말이 나눈 거지 그냥 한 몸이네.’
행정상으로는 수십 개의 학부가 머무르고 있지만 사실상 플라비움 전체가 ‘무기학부’라는 거대한 집합체나 다름없다.
아칼쿠프는 이런 식으로 여러 학부가 집단을 이루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곳이 플라비움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더럽게 크단 말이야…….’
주변을 신기하게 살펴보다 중심부로 향한 이세훈은 눈앞에 나타난 곳을 바라보았다.
‘저기가 그 공원인가.’
건물로 둘러싸인 중심부에 조성된 자연공원.
거대한 호수와 나무들이 빽빽하게 심어져 있어 상당히 신비로운 분위기가 감돌았는데 외곽에 위치한 트랙에는 여러 생도가 가볍게 뛰고 있었다.
“저기 한 바퀴에 몇 km냐?”
“……4km다.”
“이야 더럽게 넓네…… 넌 몇 바퀴쯤 뛰는데?”
“……아침에 간단히 10바퀴 정도 뛴다. 저녁에도 마찬가지고.”
도합 80km의 거리를 몸풀기 정도로 여기는 염성하.
여러모로 정상이 아니다 싶지만 바벨의 최상위권에 속한 강자임을 생각한다면 그리 이상한 발언은 아니었다.
“공원에 뭐 또 없어? 호수도 뭔가 있어 보이는데.”
회귀 전에도 이야기로만 들었던 곳인지라 이세훈이 궁금한 것들을 하나하나 물어보았고, 그 연이은 질문에 염성하가 눈매를 찌푸리며 흘겨보았다.
“집중해야 하는데 좀 닥치면 안 되겠나?”
“어. 안 돼.”
“…….”
“밤새도록 집중한 놈이 뭘 더 집중해. 어차피 대련장에 가면 알아서 집중될 테니까 지금은 조금이라도 쉬어.”
한 번 긴장의 끈을 놓으면 그대로 풀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언제 어디서든 다시금 집중할 수 있는 사람도 있기 마련.
염성하는 그중 후자에 속했기에 풀어둘 수 있을 때는 최대한 풀어서 집중력을 회복시키는 것이 오히려 좋았다.
이세훈의 이야기에 염성하가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여기선 안 보이지만 꽃으로 꾸며진 화원이 있다. 호수는 나도 잘 모른다.”
“화원은 누가 관리하는데?”
“관리인들이 하겠지. 생도들이 개인적으로 심어둔 것들은 당사자들이 관리한다더군.”
쉴 새 없이 질문공세를 퍼붓는 이세훈과 내키지 않아 하면서도 대답해 주는 염성하.
복도를 지나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보게 된 다른 생도들은 하나같이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두 눈을 휘둥그레 뜬 채 경악했다.
“……바, 방금 염성하 선배 맞지?”
“옆에는 보르시파 1학년 학과 수석이었던 것 같은데…….”
“아니, 저게 무슨…….”
실력이 없으면 눈길조차 주지 않고 실력이 있더라도 대련 이외에는 어떠한 교류도 가지지 않았던 염성하.
그런 염성하가 올해 막 들어온, 그것도 보르시파의 생도와 저렇게 일상적인 대화를 주고받다니?
주변에서 쏟아지는 경악스러운 시선에 이세훈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넌 무슨 짓을 하고 다녔길래 저렇게 쳐다보냐?”
“필요한 일들만 했을 뿐이다.”
“그럼 개판이었겠네…….”
싸울 가치가 있다면 싸우고, 그렇지 않다면 무시한다.
강해지는 것 이외에는 관심조차 없는 그 모습에 이세훈이 고개를 가로젓고 있을 때.
“오늘 열린다던 경매는 안 가 봐도 되는 건가?”
“음? 아아. 그 2학년 경매?”
지난주에 만든 백광장검이 출품되는 제련학부의 정기경매. 1학기의 예산이 결정되는 중요한 순간이었지만.
“뭐, 굳이?”
이세훈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내가 보고 있다고 낙찰가가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어련히 알아서 잘 팔리겠지.”
제련학부 2학년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 궁금하긴 했지만 그거야 보려고 하면 언제든지 확인할 수 있다.
지금은 그런 자잘한 일보다는 염성하의 일부터 해결하는 게 좋으리라.
“그렇군…….”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는 염성하. 그 모습에 이세훈이 씩 웃었다.
“내 걱정은 말고 너나 잘해. 밤새도록 고생한 거 날려 먹지 말고.”
“……어제부터 태도가 너무 건방진 것 아닌가?”
“그럼 존댓말 해줄까? 염성하 선배님~ 이렇게?”
“됐다. 비아냥거리는 것 같으니 하지 마라.”
쓸데없는 잡담을 나누는 사이 플라비움의 1층에 있는 공용대련장에 도착했고, 이세훈은 먼저 도착해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소매와 바지 밑단에 불꽃무늬가 새겨진 도복. 오른쪽 어깨에는 염륜을 형상화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 중심에 한자로 숫자가 새겨져 있었다.
‘저게 염륜의 개수인가 보네.’
가지런히 서 있는 염화문의 문하생을 살피던 이세훈은 제일 앞에 나와 있는 사내의 어깨를 슬쩍 바라보았다.
‘칠七이면 저쪽이 책임자인가.’
호리호리하면서도 날카로운 눈매를 지닌 사내.
겉보기에는 조금 말라 보였지만 소매와 바지 밑단으로 사이로 보이는 근육만 봐도 육체와 마력 모두 잘 단련된 것이 느껴졌다.
이세훈이 그 몸을 살피고 있을 때. 사내가 앞으로 한 걸음 나와 고개를 꾸벅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도련님.”
“…….”
도련님이라는 호칭에 염성하의 눈매가 살짝 모여들었지만 금방 풀어내고 담담히 대답했다.
“오랜만이군. 강 사범.”
“반년 만에 뵙는 것 같은데 이전보다 많이 발전하셨군요. 문주님께서 보시면 기뻐하시겠습니다.”
미소를 짓는 사내의 모습에 염성하가 뒤편에 나열해 있는 문하생들을 바라보았다.
“저들은 누구지?”
“아. 문주님께서 선별하신 문하생들입니다. 저와 도련님과의 대련으로 견식을 넓혀주라고 하시더군요. 아무래도 도련님께선 차기 문주님 다음으로 뛰어난…….”
“강현운 사범.”
사내, 강현운의 말을 잘라낸 염성하가 담담히 이야기를 이었다.
“차기 문주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발언에 주의해라.”
“……아. 죄송합니다. 제가 잠시 착각을 한 모양입니다.”
입으로는 웃고 있지만 눈빛은 웃지 않는다.
강현운의 반응에 이세훈은 염화문의 내부사정을 대략적으로 파악했다.
‘완전히 낙동강 오리알 신세였구만.’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사부인 염진현과 염성하는 염화문 내에서 입지가 좁을 뿐만 아니라 눈엣가시처럼 여겨지는 모양이다.
취급이 좋지 않은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였을 줄이야. 이세훈이 골치 아파하며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그나저나.”
강현운이 염성하의 옆에 서 있던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일행분이 누구신가 했더니 신입생 학과 수석 중 한 분이시군요. 친분이 생기신 모양입니다.”
“……그냥 안면만 터 둔 정도다.”
“그것만 해도 대단하십니다. 저런 전도유망한 분과 인연을 다 맺으시다니…… 반년 전과는 많이 달라지셨군요.”
감탄하는 척하면서 염성하를 바라보던 강현운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수련밖에 모르던 멍청이가 머리를 쓰기 시작했군.’
염성하의 실력을 확인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만약을 위한 것이었지만 그래도 허투루 넘겨서는 안 된다.
끝난 것이나 다름없는 후계 문제에 잡음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강현운이 재빠르게 생각을 정리하며 입을 열었다.
“그럼 이제 실력점검을…….”
“칠륜승단을 신청하겠다.”
“……예?”
강현운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되묻자 염성하가 담담히 이야기했다.
“말 그대로다. 준비해라.”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다는 듯 대련장의 위에 올라서는 염성하. 그 모습에 강현운의 두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염화문은 육륜부터 후계자로 대우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대외적인 이야기.
실제로는 칠륜에 올라 사범 자격을 취득하고 다른 사범들의 지지를 받아야 했다.
한 마디로 염성하는 염화문 내부에서 차기 문주의 후계자로 취급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기어코 선을 넘는 건가.’
육륜의 경지에 머물러 있었다면 초대 문주의 제자이자 양아들로서 적당히 대우해줬을 텐데 어째서 자기 복을 스스로 걷어차는 것일까.
강현운의 두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고, 그 모습을 살펴보던 이세훈이 슬쩍 웃었다.
‘칠륜부터는 신경 쓰인다 이거구만.’
현재 염성하는 바벨에 입학해 엄청난 재능을 선보이며 외부에서도 뛰어난 유망주로서 주목받고 있는 상황.
그런데 여기서 칠륜에 올라서고 문주 자리를 향한 뜻을 선언한다? 그때부터는 염화문도 외부의 시선 탓에 제멋대로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기존의 승단과 달리 칠륜부터는 사범과의 대련도 포함됩니다. 아직 도련님께는 이르다고 생각합니다만……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
“본문에 계시는 염진현 어르신을 생각해서라도 다시 한번 생각을…….”
“말이 많군.”
강현운의 이야기를 끊어낸 염성하가 담담히 바라보았다.
“사범직을 박탈당할까 봐 두려운 건가?”
“……당신이 자초한 일입니다.”
차갑게 중얼거린 강현운이 대련장의 위로 걸어 올라오며 허리춤에 메인 육각형의 상자, 아공간 포켓을 가볍게 두드렸다.
후웅!
부드럽게 뽑혀 마력을 머금은 채 진동하는 붉은 창.
창날은 수정을 깎아낸 것처럼 투명한 모습이었는데 겉으로 붉은 마력이 열기를 내뿜으며 가닥가닥 흘러나왔다.
‘흐음. 저 정도면 영웅 등급은 되겠는데…….’
보아하니 주재료는 영웅 등급인 ‘용화석’. 화속성마력을 품고 있으면서도 강도가 높아 상당히 쓸 만한 재료였다.
구하기 힘든 재료였기에 이세훈이 흥미롭게 살피던 그때.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두 눈이 점차 일그러졌다.
‘……어떤 놈이 만든 거야?’
저만한 재료를 써서 저딴 물건을 만들다니?
이세훈의 표정이 점점 흉악하게 변해가는 사이 염성하도 아공간 포켓을 눌러 장비를 꺼내 들었다.
후웅─
검은 공간에서 뽑혀 나온 두 자루의 단창.
길이가 긴 쪽은 붉은빛이 감도는 일자 형태의 창날, 짧은 쪽은 검은빛이 감도는 십자 형태의 창날을 지녔는데 두 자루 모두 별도의 장식은 없었지만 깔끔하게 손질되어 있었다.
평범하면서도 만든 이의 실력이 엿보이는 물건.
염성하에 손에 들린 새로운 무기에 강현운이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설마…… 무기를 바꾸신 겁니까?”
“그래.”
“……갑자기 왜 그러시나 했더니 이유가 있었군요. 이걸 참 뭐라고 해야 할지.”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은 강현운은 대련장의 아래에 있는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소문보다 대단하신 분이군요. 저런 ‘조잡한’ 단창 두 자루로 도련님을 이렇게까지 바꾸시다니. 감탄했습니다.”
“……뭐?”
“돌아가면 문주님께 좋게 말씀드리지요. 어쨌든 이번 일로 골치 아픈 일이 해결될 것 같으니 말입니다.”
염성하가 변한 이유를 알았으니 이제는 굳이 신경 쓸 필요도 없다. 그렇게 강현운이 고개를 돌리려던 순간.
“그 창.”
이세훈이 무서울 정도로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간수 잘하는 게 좋을 거야.”
“그게 무슨…….”
“내 창보다 더 조잡하니까. 이 개새끼야.”
“…….”
예상을 뛰어넘은 대답에 강현운이 멍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눈매를 일그러뜨렸다.
‘생도 따위가 건방지게…….’
아무리 신입생 학과 수석이라 해도 결국은 생도. 무력으로 따지면 A급 영웅인 자신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위치다.
그런데 저런 무례한 태도라니. 뒤쪽에 서 있는 염화문의 문하생들을 의식한 강현운이 진심으로 살기를 쏘아내려던 그때.
“강현운.”
염성하의 마력이 한 발 먼저 강현운을 짓눌렀다.
“내가 세 번이나 재촉을 해야겠나?”
한눈을 판 상태에서는 감당할 수 없는 마력. 이세훈을 신경 쓸 때가 아님을 깨달은 강현운은 살기를 거둬들였다.
“……죄송합니다. 시작하지요.”
마지막으로 이세훈을 한번 노려본 강현운은 설명을 이었다.
“이번 칠륜승단은 ‘영역대련’으로 하겠습니다. 승단조건은 승리 혹은 무승부. 이의는 있으십니까?”
“없다.”
“그럼 시작하시지요.”
육륜도 아니고 칠륜을 만들어내야만 한다.
이전에 도달한 적이 있다고는 해도 하룻밤 사이에 두 단계를 넘어서야 하는 상황.
다른 염화문의 문하생들이 듣는다면 미친 소리라고 했을 테지만 염성하는 동요하지 않았다.
‘확인은 이미 끝냈다.’
오늘 새벽에 느꼈던 감각을 떠올리며 염성하는 천천히 양손에 들린 두 단창, ‘적일창’과 ‘흑십창’을 향해 자신의 마력을 불어넣었다.
우우웅─
팔을 타고 창대에 차올라 창날 끝에 맺혀간다.
신체의 일부처럼 매끄럽게 마력을 받아들이는 두 단창을 바라보던 염성하는 허공을 향해 창을 휘둘렀다.
화르륵!
검붉은 불꽃이 허공에 원을 그려내고 이어서 가속을 통해 두 색으로 완전히 분리된다. 검은 아지랑이를 휘감은 붉은 염륜의 모습에 염화문의 문하생들이 두 눈을 휘둥그레졌다.
‘저런 염륜이 있었던가……?’
‘일반 염륜보다 뭔가 더 무거운 느낌이야.’
‘단창으로도 염륜잔화창을 저렇게 펼쳐낼 수 있다니…….’
염화문에서는 볼 수 없었던 무구와 염륜의 형태. 그 신비로운 광경에 모두가 당황한 사이 염성하는 다섯 개의 흑염륜을 만들어내고 여섯 번째로 돌입했다.
화륵!
염성하가 육륜에서 오륜으로 퇴보한 이유는 두 가지. 집중력의 부족과 적염혼과 흑암혼의 비율을 제대로 조정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순수한 능력 부족에 오랜 기간 흑암혼을 억눌러온 부작용인 만큼 하루 만에 극복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기에 이세훈은 가장 간단한 방법을 선택했다.
우우웅!
자신이 직접 염성하에게 정답지를 만들어주기로.
필요 이상의 마력이 들어오자 적일창과 흑십창이 희미하게 떨렸고, 염성하는 그 즉시 마력의 비율을 조정하여 흑염륜을 만들어냈다.
화르륵!
여섯 번째의 륜이 형성되고 이어서 일곱 번째의 륜 역시 두 창의 인도를 받으며 허공에 그려진다.
막힘없이 완성된 일곱 개의 흑염륜. 그 광경을 맞은편에 바라본 강현운이 굳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흑암혼을 억누르라던 문주님의 말씀을 잊으셨습니까?”
“억누르는 쪽이 방해가 된다고 생각해서 바꿨다.”
“그런 잡스러운 불꽃은 염륜으로 인정받지 못할 겁니다.”
화속성마력만을 이용해 만들어내는 염륜. 그것이야말로 염화문이 추구하는 염륜잔화창의 근원이었으나, 염성하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은 채 담담히 이야기했다.
“그건 부딪쳐보면 알겠지. 와라.”
“……후회하게 될 겁니다.”
차갑게 중얼거린 강현운이 자신의 창을 휘둘러 단숨에 일곱 개의 염륜을 그려냈다.
화르룩!
칠륜승단에 치러지는 영역대련. 양측이 같은 개수의 염륜을 만들어낸 뒤 충돌시켜 마지막까지 유지한 사람이 승리하는 방식으로 염화문의 오랜 전통 중 하나였다.
겉보기엔 단순한 힘겨루기로 보이지만 일곱 개의 염륜을 동시에 다루며 힘의 배분을 어떻게 조절하느냐에 따라 판가름 나는 섬세한 승부.
그렇기에 강영훈은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벌써 칠륜을 만들어낸 건 대단하지만 완성도는 형편없다.’
신체능력과 기술, 그리고 무구까지 이쪽이 우위에 서 있는 상황. 질 수가 없는 상황에서 강현운은 이전에 다른 사범들과 함께 문주에게 들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염성하가 칠륜에 도전한다면 과감하게 손을 써라. 무슨 일이 일어나든 내가 무마해 주마.’
지금부터 펼쳐질 대련은 어디까지나 염화문 내부의 일. 죽이지만 않는다면 외부자는 깊이 관여할 수 없다.
각오를 다진 강현운이 장창을 더욱 강하게 움켜쥐었고, 그 뜻을 따라 마력이 요동쳤다.
‘화열가속.’
우우웅!
장창에 내장된 무구 스킬이 발동되며 주변에 떠오른 염륜의 회전속도가 더욱더 가속된다.
마력이 공명하며 울려 퍼지는 파동과 열기. 염성하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전력을 이끌어 낸 강현운이 바닥을 박차며 창과 함께 일곱 개의 염륜을 내질렀고.
콰아아앙!
맞부딪친 일곱 개의 흑염륜이 거대한 불꽃을 터뜨렸다.
염화문에서만 20년을 넘게 수련했으며 칠륜에 도달한 지도 5년이 넘은 강현운.
그리고 칠륜에 도달한 지 며칠도 채 안 되는 듯한 염성하.
그 사실을 아는 이들이라면 누구든 압도적인 결과를 예상했고, 실제로도 상황은 그렇게 돌아갔다.
화륵!
검은 아지랑이가 염륜을 집어 삼켜가는 것으로.
“뭐…… 무슨……!?”
자신의 염륜을 물들어가며 안쪽까지 파고들어 오는 검은 아지랑이. 끈적하게 달라붙어 오는 검은 불꽃에 강현운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무구 스킬까지 사용해서 전력을 다한 염륜이다. 그런데 어째서 저런 아지랑이조차 불태우지 못하고 역으로 잡아먹히고 있는 것인가.
‘말도…… 말도 안 돼. 그런 일은…….’
일곱 개의 염륜이 여섯 개로, 이어서 다섯 개로 사그라든다. 그에 반해 맞닿아 있던 흑염륜은 줄어들기는커녕 방금보다 안정되어 더욱 격렬히 타올랐다.
마치 방금의 충돌로 더 많은 것을 깨달은 듯 무시무시한 성장을 보이는 흑염륜. 그 너머에서 아무런 감흥 없이 자신을 응시하는 염성하의 모습에 강현운은 뒤늦게 깨달았다.
쩌적─
문주가 경계하고 있던 것은 쇠약해진 초대 문주가 아닌.
파캉!!
터무니없는 재능을 지닌 눈앞의 유망주였음을.
“아…….”
앞에 펼쳐졌던 일곱 개의 염륜이 모두 사라졌고 같이 내질렀던 창끝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몇 년 동안 모은 돈으로 구매한 영웅 등급의 창. 그것이 수리가 불가능할 정도로 처참하게 박살 난 것을 본 강현운이 멍한 표정으로 내려다보았고.
“조잡하군.”
염성하가 담담히 누군가의 말을 대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