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30화
“…….”
예상치 못한 등장에 이세훈의 입이 작게 벌어졌고, 다른 생도들은 더 나아가 경악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어, 어?”
“아니, 저 선배가 왜…….”
“뭐야 도대체.”
이세훈에게 염성하는 그저 미친개일 뿐이지만 다른 생도들에게는 달랐다. 대한민국의 무형문화재인 염륜잔화창을 전수받았으며 미래의 S급 영웅으로서 주목받는 유망주.
무엇보다도 무학관의 랭킹으로 따진다면 현 바벨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무력을 지녔으니 일반 생도들에게는 그야말로 다른 세상의 사람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이번 수업 동안 임시조교를 맡게 된 아칼쿠프의 창술학부 3학년 염성하다. 얼마나 유명한지는 너희들도 알 테니 잘 받들어 모시도록.”
“…….”
리스의 거침없는 소개에 고개만 까딱이며 인사한 염성하.
그 이야기에 놀란 눈으로만 바라보던 생도들의 눈이 번쩍 뜨였다. 실력과 재능, 배경까지 무엇하나 빠질 구석이 없는 유망주.
친분까진 바라지 않더라도 호의적으로 기억되기만 해도 미래를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엄청난 이득일 것이다.
모든 생도가 염성하의 눈에 들기 위해 의욕을 불태우던 그때.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던 이세훈이 피식 웃었다.
‘어지간히도 급했나 보구만.’
설마 자신이 다시 찾아가기도 전에 이렇게 제 발로 올 줄이야. 생각지도 못한 반응이었지만 따지고 보면 그리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본인의 배경인 염화문, 그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염륜잔화창이 끊어질 거라고 말하고는 진짜로 그걸 정면에서 파훼했다.
기술의 파훼법이 외부로 유출되었을 때 생겨날 일들을 생각하면 밤중에 복면을 뒤집어쓰고 찾아와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만나러 온 거면 적대적인 건 아닌가.’
어떻게 움직일지 이세훈이 흥미롭게 내려다보았고, 그 시선을 느낀 염성하도 고개를 돌려 눈을 마주 보았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로 감도는 기묘한 긴장감을 다른 생도들도 눈치채려던 찰나.
“수업 중이다 이놈들아.”
탕탕!
교탁을 때린 리스가 생도들의 이목을 끌어모았다.
“공부할 때도 이렇게 열의를 낼 것이지…… 쯧.”
그런 생도들의 태도에 불만스럽게 투덜거린 리스가 수레의 높이를 살짝 내린 다음 교탁의 패널을 조작했다.
“소개는 이 정도면 됐고, 본격적으로 실습에 들어가기에 앞서 간단하게 개념부터 잡고 가도록 하지.”
허공에 몇 가지 글귀와 마력배열의 형태가 떠올랐고, 리스가 수레 위에 털썩 앉은 채로 설명을 시작했다.
“무구의 제작에서 잔류마력의 쓰임새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자체적으로 마력을 흡수, 생산해내는 독립형. 그리고 외부에서의 공급을 필요로 하는 충전형.”
독립형은 출력이 낮고 유지력에 특화되어 있으며 충전형은 반대로 출력이 높고 유지력이 떨어진다.
각자 장단점을 지니고 있었지만, 난이도로 따지자면 독립형이 훨씬 어려웠다.
‘마력을 흡수하거나 생성할 수 있는 핵을 만들기도 쉽지 않고, 무엇보다도 그 범위를 확장하는 게 쉽지 않으니까.’
예를 들어 이세훈의 묵주환은 마력을 흡수해서 저장할 수 있지만 독립형으로 분류할 수는 없었다.
대기에서 마력을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착용자에게서만 마력을 흡수했기 때문이다.
“독립형은 만들기가 상당히 까다롭다. 재료와 기술, 그리고 제작자의 마력에 따라서 마력핵을 구성하는 방법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지.”
교본에서 제시되는 영역이 아니라 스스로 고찰해서 알아가야 하는 방식. 그렇기에 관련된 스킬이 있거나, 이미 아는 게 아니라면 쉽사리 만들 수 없는 종류였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우선 충전형부터 시작한다. 이미 만들 줄 아는 녀석들도 있겠지만 좀 더 가다듬는다고 생각하고 듣도록. 조교.”
리스의 부름에 염성하가 앞으로 걸어 나와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스스스─
허공을 스쳐 지나가는 무심한 손길과 그 궤적을 뒤따라 그려지는 검붉은 마력.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박제되어가는 마력에 생도들이 모두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바라보았다.
“화속성마력은 확산성을 지니고 있어 휘발성이 강하다. 그래서 마력을 고정시켜야 하는 잔류마력으로 쓰기가 어렵지”
화륵!
어렵다는 리스의 설명이 무안해질 정도로 허공에 빼곡히 잔류해 있던 마력에 불길이 치솟으며 형태가 가다듬어진다.
불꽃으로 이뤄진 세 개의 고리. 눈 깜짝할 사이에 완성된 ‘염륜炎輪’이 제자리에서 천천히 회전하며 움직였다.
“하지만 그 확산성을 억누를 수만 있다면 잔류마력으로서 매우 뛰어난 유지력을 보여준다. 그 예시가 바로 지금 조교가 펼치고 있는 기술, 염륜잔화창이다.”
마력을 공급하지 않는데도 계속해서 타오르는 염륜.
염륜잔화창의 섬세한 마력운용법이 타오른 불꽃을 완벽히 보존하는 것이었는데 염성하는 그것을 무려 세 개나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와…….”
“화속성마력을 저렇게까지 다루다니…….”
“난 화로 조절하기도 힘들던데.”
무학관에서 보여줬던 염성하의 창술이 단순히 ‘강함’이라는 느낌만 주었다면 눈앞에서 염륜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은 불을 다루는 대장장이로서 ‘경외감’을 느끼게 만든다.
화속성마력이 얼마나 제멋대로며 난폭한지 이곳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뭐, 조교가 너무 가볍게 펼치니 좀 와 닿지 않을 수도 있겠군. 또 다른 예시로는…….”
생도들을 슬쩍 둘러보던 리스는 이내 맨 윗자리에 앉아 있는 이세훈과 눈을 마주쳤다.
“학과 수석이 적절하겠군. 화속성마력은 보유하고 있나?”
“예.”
“그럼 조교처럼 화속성마력을 고리의 형태를 만들어봐라.”
2학년 중에도 만들어낼 수 있는 녀석이 극소수인 기교. 그 유명한 학과 수석도 쉽사리 해낼 수 없다는 인식을 주기 위한 인선이었는데.
“이렇게 말입니까?”
이세훈의 손 위로 불꽃의 고리가 가볍게 형성되었다.
양 손바닥에서부터 솟구쳐 만들어진 염륜. 염성하와 달리 손바닥과 연결되어 있긴 했지만 추가로 마력을 공급받는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염성하와 방법은 다르지만 잔류마력으로 완벽하게 염륜을 만들어내고 유지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
“…….”
그 모습에 리스의 입이 살짝 벌어졌고, 염성하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순식간에 어색해지는 강의실의 분위기. 그 속에서 이세훈만이 자신이 만들어낸 염륜을 바라보았다.
‘흠. 역시 지금 몸으로는 따라 하기가 버겁구만.’
염륜을 만들어내는 것은 회귀 전 광견에게 들은 것이 있어 어렵지 않았지만 유지하는 것은 상당히 버거웠다.
이것도 영연신마법과 홍련이 가진 ‘흐름’이라는 성질 덕분에 된 거지 아니었으면 만들어내자마자 무너졌으리라.
‘……괜히 학과 수석이 아니었군.’
예시를 드는 데 실패했지만, 아연실색한 생도들의 반응을 보아하니 굳이 어렵다는 것을 이해시켜줄 필요는 없어 보인다.
헛기침을 한 리스는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이었다.
“잘했다. 이제 그만해도 된다.”
“예.”
“크흠. 뭐, 이래저래 설명이 길었다만 결국 이번 수업 테마를 정리하자면 이거다.”
헛기침으로 생도들의 이목을 다시 모은 리스가 패널을 조작해 공중에 한 단어를 띄웠다.
[염륜]
“모처럼 좋은 조교가 와줬으니 기회를 살려야지. 무엇을 만들어도 좋다. 하지만 화속성마력과 충전식 잔류마력. 그리고 염륜이라는 테마는 유지하도록.”
수레에서 일어선 리스가 입꼬리를 올리며 생도들을 바라보았다.
“제출 기간은 다음 주 목요일. 그 전에 제출하고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도 좋다. 물론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뜻일 테니 나도 조금 깐깐하게 볼 거다.”
관심이 없다고 해서 대충 만든 물건을 제출하고 딴짓을 하려고 한다면 가만두지 않겠다. 리스의 경고에 생도들이 바짝 긴장하면서도 두 눈을 빛냈다.
지난주에는 기본기를 본다는 명목으로 제련방식에도 제약이 있었지만 이번은 다르다. 무엇보다도 염성하라는 중요한 관중이 있었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설명은 끝났으니 슬슬 제련실로 이동하지. 몇 가지 예시도 보여줄 테니 빨리빨리 움직여라”
수레를 탄 리스가 먼저 강의실 밖으로 나섰고, 염성하는 말없이 강단의 위에 계속해서 서 있었다.
“…….”
“…….”
자리에서 일어나 강의실 밖으로 나가려던 생도들이 그 모습에 서로 힐끔힐끔 눈치를 살폈다.
마음과 같아서는 옆으로 다가가서 말을 붙이고 싶은데 염성하의 무심한 표정과 묵직한 중압감이 차마 다가설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묘한 눈치 싸움이 계속될 때. 한 사람이 호기롭게 앞으로 나섰다.
“안녕하십니까. 염성하 선배님.”
깍듯하게 예의를 갖추면서 부드럽게 미소를 짓는 한스.
방금까지 이세훈의 눈길을 받고 흠칫거리던 인물과 동일인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깔끔한 태도였지만.
“저는…….”
“꺼져라.”
“……예.”
염성하의 차가운 한 마디에 초라하게 물러섰다.
지금은 어떻게 말을 붙여볼 만한 상황이 아니다. 그것을 알아차린 생도들이 염성하에게 찍힐까 봐 하나둘씩 강의실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강의실에 두 사람만 남게 되었을 때. 염성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세훈.”
강단에 선 채로 묵묵히 올려다보는 염성하.
폭발하기 직전의 불꽃과도 같은 그 모습에 이세훈이 의자에 앉은 채로 내려다보았다.
“왜?”
“넌 누구지?”
조금 뜬금없는 질문이었지만, 염성하로서는 이런 질문밖에 할 수 없었다. 주말 동안 따로 조사해서 알아낸 것이라고는 재해에 휩쓸린 불우한 가정사뿐.
뛰어난 스승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입학 전에 엄청난 재능을 뽐낸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어떻게 염륜잔화창을 파훼할 수 있었을까.
‘알 수 없다.’
추측조차도 할 수 없을 만큼 부족한 정보. 그렇기에 염성하는 그냥 본인에게 물어보는 방향으로 선택한 것이다.
‘다짜고짜 물어보는 것도 여전하네.’
주변을 파고들거나 지켜보는 게 아니라 당사자에게 찾아가 묻는다.
거침이 없는 게 아니라 그냥 무식하다 싶을 정도였는데 이 순간이 염성하를 상대할 때는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다.
‘이놈은 고민이라는 걸 안 하니까.’
여기서 간을 보겠다고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는 순간. 염성하는 고민을 하는 게 아니라 그것만으로 판단을 내린 뒤 바로 움직인다.
즉 괜히 쓸데없는 말을 했다가 ‘적’이라고 인식당하면 무슨 말을 하든 무시당하고 무차별적으로 공격당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도 광견 시절보다야 덜하긴 하겠지만…… 괜히 일을 귀찮게 만들 필요는 없겠지.’
어차피 염성하가 관심을 두고 있는 부분은 자신의 신상이 아닐 터. 그렇기에 이세훈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듣자 하니 염륜잔화창의 성취도는 동시에 유지할 수 있는 염륜의 숫자로 판가름한다던데…… 아까 그게 그 염륜이지?”
“…….”
“세 개를 부리는데도 여유로웠으니 아마 제대로 한다면 다섯 개…… 아니, 너라면 여섯 개는 유지하겠네.”
현재 염화문의 문주이자 S급에 근접했다는 A급 영웅 임대문이 여덟 개의 염륜을 동시에 유지해내는 팔륜의 경지.
자신보다 수십 년을 앞선 문주의 기술을 벌써 따라잡고 있는 것이 바로 염성하인 것이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거냐. 대답이나 해라.”
하지만 여기까지는 외부에도 흔하게 알려진 사실. 그렇기에 염성하는 말없이 대답을 재촉했고, 이세훈이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이었다.
“너. 예전에 칠륜까지 유지한 적 있었지?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유지할 수 없게 되었고.”
“……!”
이세훈의 이야기에 염성하의 무뚝뚝한 얼굴에 금이 새겨진다.
문주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은, 단 한 사람에게 밖에 말하지 않은 것을 어떻게 눈앞의 신입생이 알고 있단 말인가?
너무 상정하지 못한 사태에 염성하의 사고가 멈추려던 그때. 그 낌새를 알아차린 이세훈이 곧장 이야기를 이었다.
“입학식 때 봤으면 알겠지만, 내가 불꽃을 다루는데 좀 재능이 있거든. 흔히 말하는 천재라고 해야 하나?”
스스로 천재라고 말하는 것이 조금 그렇긴 했지만 틈만 나면 머리가 고장 나서 주먹부터 휘두르는 녀석을 설득하려면 노골적으로 말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무학관에서 네가 휘두르던 불꽃을 살펴보고 있자니 좀 이상하더라고. 여력이 남아 있는데 그걸 제대로 터뜨리지 못하고 어영부영 날린다고 해야 하나…….”
“…….”
“그래서 원인이 뭘까 혼자서 생각해 보다 결론을 내린 게 그거였지.”
부정하지 못하는 염성하를 내려다본 이세훈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염성하의 기량은 본래 더 높았고, 지금은 오히려 떨어진 상태라고.”
다른 이들이 들으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할 수도 있지만, 놀랍게도 이세훈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왜냐하면 앞의 이야기 모두가 회귀 전 당사자인 광견 염성하에게 들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실력이 퇴보했을 때는 본래 펼치던 육륜도 제대로 펼쳐지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차이를 모르겠다고 했었지만 그래서 더 두려웠지. 내가 변해 버린 건가 하고.’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그렇게 느끼는 것은 자신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염성하는 몇 년 동안이나 육륜의 경지에서 헤매게 되었는데 이 정체기가 바로 광견 염성하가 이야기한 모든 것이 비틀린 시발점이었다.
‘그땐 무슨 개소리인가 싶었지만…… 직접 보니 조금은 알 것 같네.’
이미 알고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세훈이 보기에도 염성하의 불꽃에는 심각한 뒤틀림이 존재했다.
아마 저걸 제대로 인지하고 바로잡지 못하는 이상 기술의 성장은 절대로 기대할 수 없으리라.
“……너는 원인을 알고 있나?”
“확신은 못 하겠지만…… 짐작 가는 건 있지.”
“증명할 수 있나?”
“할 수는 있지.”
이글거리는 염성하의 두 눈에 이세훈이 눈을 마주 본 채 슬쩍 웃었다.
“보여줄 필요성은 못 느끼지만.”
이렇게 위아래가 확실해졌을 때는 간을 봐줘야 한다.
염성하에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대가도 없이 도와줘 봐야 돌아오는 건 ‘어쩌란 거지?’ 같은 싸가지 없는 대답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원하는 걸 말해라.”
처음 보는 신입생의 제안도 넙죽 받아들일 만큼 간절한 것일까. 상당히 협조적인 염성하의 태도에 이세훈이 손가락 두 개를 펼쳤다.
“첫 번째. 앞으로 받게 될 내 조언과 도움에 대해서는 모두 합당한 대가를 치를 것.”
단순한 호의가 아니라 거래라는 것을 인식시킨다.
“두 번째. 무슨 일이든 생각을 놓을 것 같다 싶으면 내게 상담할 것.”
그리고 자신이 세세하게 파악하지 못한 변수에도 대응할 수 있게끔 연결고리를 만들어둔다.
이세훈의 제안에 염성하가 살짝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제안 자체는 나쁘지 않다.’
자신을 부려먹으려는 것이 아니라 협력 체재를 만들려는 형태. 지금 처한 상황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큰 이득이었지만, 염성하는 무언가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정육점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돼지가 된 기분. 무슨 헛소리냐고 할 수도 있지만 그것 말고는 설명되지 않았다.
“할 거야 말 거야? 수업 들으러 가야 하니까 빨리 말해.”
“…….”
“나갈 때까지 대답 안 하면 없던 일로 한다?”
여전히 묵묵부답인 염성하의 모습에 이세훈이 자리에서 일어나 아래로 걸어 내려갔다. 그리고 옆을 지나 강의실 밖으로 나서려던 순간.
“……하겠다.”
목소리를 쥐어 짜낸 염성하가 입을 열었다.
“네가 증거를 보여준다면.”
정말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바로 보는 염성하. 그 모습에 이세훈이 씩 웃으며 문밖을 가리켰다.
“바로 보여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