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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가 다 만들어줌-25화 (25/309)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25화

[백광장검白光長劍]

[등급 : 고급] [품질 : 상]

새하얀 예기가 벼려진 장검.

섬세하게 연마된 검날이 마력배열과 맞물려 강인하면서도 날카로운 예기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뛰어난 실력을 지닌 대장장이의 작품.

*마력을 부여할 경우 절삭력이 강화됩니다.

“으음…….”

“이건…….”

“쓰읍…….”

눈앞에 놓인 새하얀 검날의 철검, 백광장검을 본 세 명의 제련학부 교수들은 뭐라 말을 잇지 못한 채 검만을 빤히 바라보았다.

단순히 성능으로만 따지자면 이보다 뛰어난 철검은 바벨 내에서도 널리고 널렸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인성 씨. 이게 정말 순수하게 철괴만 사용한 겁니까? 다른 재료나 스킬을 사용한 게 하나도 없고요?”

“예, 예…… 맞습니다.”

“확실합니까?”

“진짜 맞아?”

잘못 본 게 아니냐는 듯 재차 물어보는 교수들. 그 의심의 눈초리에 한인성은 억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정말입니다! 교수님들도 보시면 아시지 않습니까……!”

“뭐. 그건 그렇지.”

“아니, 근데 아무리 그래도 이만한 완성도는 이상하지 않나?”

납득을 하면서도 여전히 미심쩍다는 듯이 중얼거리는 교수들. 그 반응에 한인성은 억울함을 넘어 황당함을 느꼈다.

아무리 생도가 잘 만들었다고는 해도 조교인 자신의 눈을 의심하다니. 이렇게 서러울 수가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반응이 나오는 것이 이해 가기도 했다.

“현역도 아니고 어떻게 신입생이 이런 걸 만들 수가 있지?”

“현역? 그놈들 중에 10분의 1이라도 이만한 걸 만들 수 있을지 의문이구만”

“이렇게 기본기에 정통한 검은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것 같습니다. 이야 정말…….”

그동안 수많은 생도의 검을 평가해 온 교수들조차 믿기지 않을 만큼 완성도 높은 물건.

그것이 바로 눈앞의 철검, 이세훈의 제출품인 것이다.

“형님. 이 정도면 뭐, 고민할 것도 없지 않겠습니까? 그냥 최고가로 크게 한 번 때려 버리죠.”

키가 작고 몸통이 굵은 중년의 사내, 리스 교수의 제안에 김인철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도 값은 확실하게 측정해야 하네. 잘못하면 우리가 만들어낸 천재란 이미지가 생길 수도 있으니.”

“형님도 참 별 걱정을 다 하십니다. 일반 철괴에 기본기만으로 고급 등급을 만들어냈는데 그런 취급을 받겠습니까?”

“아는 사람들은 그렇지. 하지만 소문은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도는 법이다. 신중해야 해.”

만약에라도 자신들 때문에 이세훈의 미래에 영향이 간다면 그만큼 미안한 일이 없다.

오해가 생기지 않는 선에서 김인철이 적절한 금액을 고민하던 그때.

“이게 학과 수석이 만든 검입니까?”

미하엘을 필두로 열 명의 교수들이 공방에 들어섰다.

그 등장에 공방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무겁게 가라앉았고 숨 막히는 긴장감이 조성되었다.

김인철을 필두로 한 순수제련학파. 그리고 미하엘 바르무트를 필두로 한 최신제련학파.

두 파벌이 만들어내는 무거운 분위기에 한인성이 바짝 긴장하며 눈치를 살폈다.

“확실히 훌륭하군요. 역시 학과 수석이라고 해야 할지…… 참 기대가 큽니다.”

담담하게 웃으며 이세훈의 검을 칭찬하는 미하엘. 그 모습이 조금 의외였지만, 김인철 파벌의 교수들은 여전히 경계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저렇게 사람 좋은 모습을 보이다가 뒤통수를 치는 것이 미하엘의 특기였기 때문이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이번 검수는 저희가 맡기로 했을 텐데요.”

“말씀을 뭐 그리 섭섭하게 하십니까. 저는 그저 학과 수석이 만들어낸 검을 보고 싶어서 왔을 뿐입니다.”

“그럼 이제 돌아가시면 되겠군요.”

그걸로 끝이라는 듯 눈길도 주지 않는 김인철. 그 모습에 미하엘의 눈매가 살짝 일그러졌다.

‘벼랑 끝까지 몰렸던 주제에 기회 한 번 잡았다고 아주 기고만장하군.’

마음과 같아서는 앞뒤 가리지 않고 쳐내고 싶었지만, 이러나저러나 아직까지는 지도교수이며 루트비히 학원장의 관심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거기에 이세훈이라는 괴물 같은 녀석이 밑에 붙어버렸으니 여태처럼 쉽게 내보낼 순 없으리라.

‘이런 상황일수록 신중해야 한다.’

결국 시간의 문제일 뿐. 결과가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 생각하며 미하엘은 표정을 가다듬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이만한 검을 만들어내지 않았습니까. 조금 더 기회를 활용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심사로 바쁘니 짧게 말씀해 주시지요.”

“동급생들과 겨루는 건 무의미한 듯하니 다음 주에 있을 2학년들의 정기경매에 같이 편성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마침 ‘철검’이라는 주제도 딱 겹치고 말입니다.”

“뭐? 그걸 말이라고…….”

미하엘의 제안에 리스가 기가 찬 표정을 지었다.

이세훈이 만들어낸 백광장검이 분명 뛰어나긴 하지만, 곧 열릴 2학년의 정기경매에 참여할 수준은 절대 아니었다.

실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2학년들이 출품하는 물건들은 각종 스킬과 가공품을 사용해 능력을 끌어올렸기에 조건 자체가 불공평했기 때문이다.

“학과 수석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해 보입니다만.”

“2학년은 겨울방학부터 준비한 제출품 아닙니까! 거기에 끼워 넣으라는 게 말이…….”

“그거 괜찮군요.”

김인철의 담담한 수락에 두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돌아갔다.

“그럼 이세훈 생도는 2학년들처럼 경매의 입찰가를 기준으로 예산을 측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형님 그게…….”

“시끄럽네.”

리스의 말을 가로막은 김인철은 여전히 태연한 얼굴로 미하엘을 바라보았다.

“또 다른 의견은 있으십니까?”

“……없습니다.”

“그럼 이제 그만 가시지요.”

다시 눈길을 돌리고는 시선조차 주지 않는 김인철.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모습에 물끄러미 바라보던 미하엘은 이내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리스는 이해가 안 가는 표정으로 김인철을 바라보았다.

“형님! 저놈이 경매에 무슨 수작을 부릴 줄 알고 거기에 대뜸 물건을 보내주시는 겁니까!”

“학과의 얼굴인 학과 수석인데 설마 그러겠느냐.”

“아니. 지금 농담을 할 때가 아니지 않습니까……!”

김인철의 태연한 대답에 리스가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을 쳤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미하엘은 자신의 실권을 위해 학부의 명성에 먹칠을 하는 것 정도는 예삿일로 여겼다.

실제로 그 수작질에 경질된 교수들이 한 둘이 아니었고, 제련학부가 지금처럼 위상이 떨어진 것도 100%는 아니어도 미하엘, 정확히는 바르무트 일파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

“이대로면 진짜 학부가 녀석들 손에 넘어갈지도 모릅니다!”

다른 두 명의 교수들도 리스의 의견에 동조하는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 세 사람의 반응에 김인철이 물끄러미 바라보았고.

“쯧쯧…….”

이내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며 백광장검을 가리켰다.

“봐라.”

“예?”

“보고도 느끼는 게 없느냐?”

김인철의 이야기에 리스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뭐가 말입니까?”

잘 만들기는 했지만 지금 상황과는 관계없지 않은가. 다른 교수들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기에 김인철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두고 보거라.”

그리고 새하얗게 빛나는 검날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 * *

토요일 아침.

바벨에 들어오고 처음으로 찾아온 주말에 신입생들은 저마다 한껏 꾸미며 거리로 나섰고, 그런 신입생들을 향후 자신들의 서클로 끌어들이기 위해 재학생들이 덩달아 나섰다.

행사가 열릴 때를 제외하고는 바벨 내부가 가장 북적거리는 시기. 어떻게 보면 신입생들이 입학하기 전 꿈꾸던 풍경을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지만.

“여긴가…….”

이세훈은 홀로 인챈트학부 본관에 있는 강의실 앞에 서 있었다.

[고대 인챈트학]

레아에게 소개받은 인챈트학부의 부전공 수업. 그 강의실에 도착한 이세훈이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아. 들어와!”

안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그에 이세훈이 문을 열자 온갖 잡동사니들로 꽉 들어차 있는 강의실의 풍경이 드러났다.

“……개판이네.”

장식장과 책상. 그리고 바닥을 비롯해 빈 공간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내부.

강의실이라기보다는 창고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지저분한 광경에 이세훈이 떨떠름하게 보고 있을 때.

푸화악!

“고대 인챈트학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입구 옆 잡동사니 속에 숨어 있던 레아가 요란스럽게 튀어나오며 맞이해 주었다.

“…….”

온몸에 정체 모를 천과 부적. 종이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레아. 그 엉망인 모습에 이세훈은 아무런 말 없이 바라보았다.

아무리 얼굴이 두꺼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조금 무안해질 만큼 냉담한 반응이었지만.

“이야. 좋은데?”

레아는 오히려 흥미롭다는 듯 두 눈을 반짝였다.

“그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차가워진 눈. 아주 좋아.”

“……뭐가 좋다는 거야?”

“이런 상황에 흥분하는 타입은 인챈트랑 안 어울리거든. 나처럼 냉철하고 이성적인 쪽이 더 좋다고나 할까?”

몸에 붙은 종이들을 떼어내며 레아가 씩 웃었다.

“그런 의미에서 넌 훌륭해. 정신적인 잠재력은 나와 대등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칭찬인지 욕인지 잘 구분이 안 가는 이야기였지만, 어련히 좋은 말이겠거니 하고 받아들인 이세훈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 강의실은 원래 이래?”

“아니, 원래 이 정도까진 아닌데…….”

강의실을 슬쩍 둘러보던 레아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너한테 보여줄 만한 게 있을까 싶어서 이것저것 꺼내다 보니 이렇게 됐네.”

“참…… 대단하구만.”

“그렇지? 후배를 위해서 이 정도까지 하는 선배는 흔치 않다고.”

알면서 저러는 건지 몰라서 저러는 건지 뻔뻔하게 대답하는 레아의 모습에 이세훈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보다 물었다.

“교수님은?”

“아. 오늘 일이 있으셔서 자리 비우셨어. 신청 건은 나한테 맡기고 가셨으니 걱정 안 해도 돼.”

“뭐 시험 같은 거라도 보나?”

“그 정돈 아니고 간단한 면접 정도? 잠시만 기다려봐.”

잡동사니 사이를 요령 좋게 지나간 레아가 화려한 장식이 달린 커다란 상자의 뒤로 가더니 뚜껑에 박힌 붉은 보석을 눌렀다.

슈와아악!

그러자 강의실 내부에 널브러져 있던 물건들이 순식간에 상자의 안쪽으로 빨려 들어갔고 잠시 후 장식장에 있는 물건들을 제외한 모든 잡동사니가 사라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그 광경에 이세훈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상자를 바라보았다.

“인챈트 된 물건을 자유자재로 수납하는 건가?”

“오. 알아봤어? 처음 봤는데 그걸 알아볼 정도면 역시 재능이…….”

“근데 그것만으로는 저만한 성능이 안 나올 것 같은데…… 아, 분열이구만.”

“……어?”

당황한 레아의 표정을 보지 못한 채 이세훈은 여전히 상자를 바라보며 감탄했다.

“물건이 보관되어 있을 때를 완전한 상태로 가정해서 복구하는 개념으로 흡수하는 거네. 그리고 물건끼리 합쳐지지 않도록 인챈트 안에 고립시키는 술식도 추가한 거고. 맞지?”

“아, 응. 그럴 거야…….”

“생각보다 수준이 높은데. 설마 오자마자 이만한 물건을 볼 줄이야.”

흥미롭게 상자를 살펴보는 이세훈의 모습에 레아가 살짝 멍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라도 며칠 사이에 흥미가 떨어졌을까 봐 재능이 있든 없든 잔뜩 추켜세워서 부전공을 듣게 만들 생각이었는데 이건 또 뭐란 말인가?

‘정보창을 본 것도 아니고, 수납되는 과정만 보고도 저걸 다 알아낼 수가 있나?’

인챈트야 마력에 민감하면 바로 알아볼 수 있지만 적용된 술식까지 파악하는 것은 단순히 감이 좋다고 가능한 게 아니다.

인챈트라는 분야에 박식하거나 그만한 수준으로 센스가 있다는 것. 신입생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아마 후자일 가능성이 높으리라.

‘진짜 좋은데…….’

움찔거리는 입꼬리를 억누른 레아는 깔끔하게 정리된 자리를 가리켰다.

“구경은 좀 있다 느긋하게 하고 우선 면접부터 끝내자.”

“아. 그래.”

이세훈이 자리에 앉자 레아가 맞은편에 앉아 허리를 쭉 펴며 반듯하게 앉았다. 그리고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한껏 분위기를 잡은 채 물었다.

“이세훈 생도.”

“……예.”

“인챈트에 가장 중요한 것은 뭐라고 생각하죠?”

성향에 따라 갈리는 질문. 정답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었기에 이세훈은 자신의 생각대로 즉각 답했다.

“조화로움이겠죠.”

아무리 인챈트를 잘한다고 해도 바탕이 되는 물건이 별로라면 힘이 떨어지기 마련. 그 반대 역시 마찬가지였기에 조화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 이세훈의 생각이었다.

“음. 그렇군요.”

이세훈의 대답에 레아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피식 웃으며 박수쳤다.

“좋아. 면접 합격! 앞으로 잘 부탁해 후배님!”

“참 성의없구만…….”

“그만큼 군더더기 없는 대답이었다는 거지. 그보다.”

의자에 바짝 붙어 앉은 레아가 반짝거리는 눈으로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면접도 끝났으니 이제 좀 더 건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건 어떨까?”

속이 빤히 보이는 그 물음에 이세훈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묵주환의 인챈트 말이지?”

“그것도 좋고, 네가 만든 다른 게 있다면 그것도 좋아. 내 생각에 네가 만든 물건이라면 뭐든지 좋을 느낌이야.”

“인챈트라…… 뭐, 그것도 나쁘지는 않지.”

이세훈의 긍정적인 대답에 레아가 두 눈을 반짝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러면 지금 당장 내 공방으로……!”

“단.”

레아의 말을 잘라낸 이세훈이 무심히 바라보았다.

“지금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시켜준다면 말이야.”

미래의 레아 클로델을 생각한다면 실력이야 확실하겠지만, 지금은 자신도 몰랐던 슬럼프에 빠진 시기.

당분간 계속 사용해야 하는 묵주환을 맡기려면 좀 더 까다롭게 볼 필요성이 있었다.

‘정확히 어떤 슬럼프에 빠졌는지 확인도 해봐야 하고.’

여러 이유가 담긴 이세훈의 제안에 레아가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 어떤 부분을 보고 싶은데?”

“일단 기본기가 좋겠지.”

“흠…… 좋아.”

레아가 문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고, 그 뒷모습을 바라본 이세훈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어디가?”

“기본기 보여달라며.”

뒤돌아본 레아가 씩 웃었다.

“내 일터로 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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