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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가 다 만들어줌-21화 (21/309)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21화

“…….”

자신만만한 이세훈의 모습에 세이츠는 분노보다도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도대체 뭘 믿고 저러는 거지?’

세간의 주목을 받는 학과 수석인 만큼 이세훈에 대한 정보는 이미 수면 아래에서 어느 정도 돌아다니고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그 정보에 의하면 이세훈의 신체 능력은 올해 신입생들 중에서도 최하위.

별도로 전투 기술을 배운 적도 없고, 마땅한 무장조차 없었다.

‘그나마 변수라면 입학식 때 선보인 무기들인데, 그것도 안 보이고…….’

자신이 혹시 놓친 게 있나 싶어 다시 살펴보았지만 이세훈에게 딱히 위협이 될 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역시 그건가.’

이세훈이 보이는 자신감이 무엇인지 알아차린 세이츠는 한숨을 푹 내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 너도 바벨에 입학할 정도니 숨겨둔 한 수 정도는 있겠지. 아마 전력을 다하면 다른 녀석들과는 비교조차 안 될 거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거야.”

바벨에서 자신이 가장 특별할 것이라는 그런 근거 없는 생각. 이는 집안이 보잘것없는 생도들 사이에서 종종 나타났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하지만 여긴 바벨이다. 모든 생도가 그런 재능과 힘을 가지고 있고, 너도 결국 그중 한 명에 지나지 않아. 무슨 뜻인지 알겠나?”

자신보다 뛰어난 이를 만나볼 환경이 없다 보니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된다고, 그런 어처구니없는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그리고 대게 그런 신입생들은 1학기가 끝나기도 전에 쓴맛을 보게 되기 마련.

“너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다.”

오늘이 이세훈에게 바로 그런 날이 되리라.

키이잉!

세이츠의 마력에 결계가 반응하자 주변의 환경이 바뀌었다.

몸을 휘감듯이 짓눌러오는 음산한 공기와 그림자가 짙어지며 어두워지는 숲.

그리고 그 안쪽에서 검은 그림자들이 수풀 사이를 빠르게 질주하기 시작했다.

파스슥!

낮게 울리는 기묘한 울음소리가 마치 들짐승을 연상케 했지만, 그늘에 가려져 그 형상은 명확히 보이지 않았다.

어둠과 짐승에 대한 공포를 자극해 오는 광경. 여기까지만 본다면 결계가 만들어낸 허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스각!

머리 옆을 스치고 지나간 그림자가 단순한 허상이 아니라고 경고해 주었다.

“흐음.”

날카로운 것에 베인 것처럼 팔랑거리며 떨어지는 몇 가닥의 머리카락.

이세훈이 담담하게 그것을 바라보자 세이츠가 차가운 눈으로 이야기를 이었다.

“이번이 정말로 마지막 기회다. 아가씨께 사과드려라.”

이렇게까지 말해도 알아듣지 못한다면 깨닫게 만들면 될 뿐이다. 세이츠의 경고에 이세훈은 잠시 고민하다가 물었다.

“방금 그거. 네 이야기냐?”

“……뭐?”

“감정이 뚝뚝 묻어나는 게 그냥 하는 말은 아닌 거 같아서. 1학년 때 까불다가 제대로 얻어터진 모양이지?”

예상을 뛰어넘은 대답에 세이츠의 입은 떡 벌어졌고, 그 모습에 이세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이해는 한다. 내가 최고인 줄 알았다가 그런 일을 당하면 씁쓸할 만도 하지.”

“너…… 너……!”

“그래도 자존심은 지켜야지. 본인이 성장할 생각은 안 하고 남한테 빌붙어서 뒤치다꺼리나 하고 다니고…… 쯧쯧.”

혀를 차며 고개를 가로저은 이세훈이 한심하다는 눈으로 세이츠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개새끼라는 소리나 듣고 다니잖아.”

담담하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까지 파고드는 한 마디. 이에 세이츠의 인내심이 단번에 끊어졌고.

“닥쳐!!!!”

전신의 마력이 폭발하며 숲속의 그림자들이 이세훈을 향해 일제히 쇄도했다.

────!!

괴성을 내지르며 이빨을 드러낸 수십 마리의 검은 이리.

세이츠의 주력기술인 ‘귀랑아사晷狼牙射’로 대상의 움직임을 억제하며 그림자 이리를 만들어내는 C급 결계였다.

타닥!

이 그림자 이리들은 기본적으로 결계가 만들어낸 허상에 지나지 않지만, 마력을 추가로 주입하면 실체를 가져 상처를 입힐 수 있다.

그렇기에 실체와 허상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순식간에 전신이 넝마가 되는 까다로운 스킬이었지만.

‘흑령사.’

어디까지나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푸화악!

검은 거미줄로 뒤덮인 이세훈의 손이 그림자 이리를 꿰뚫은 순간.

그 형태가 안개처럼 흩어지며 사라졌다.

“뭐…….”

“역시 마력으로만 이뤄진 건 아니었군.”

경악한 세이츠의 시선을 받으며 이세훈은 자신의 손에 잡힌 물건을 바라보았다.

약 20cm 정도로 보이는 검은 비수. 겉면에는 주술식이 빼곡히 새겨져 있었는데 방금까지 마력이 주입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비수를 매개체로 마력효율을 높이고 허상일 때도 공격이 가능하게끔 만든 건가. 발상은 나쁘지 않네.”

“그걸 어떻게……?”

단 한 번 만에 자신의 주술과 응용법을 꿰뚫어 보다니. 세이츠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바라보자 이세훈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뭘 어떻게야. 소리가 대놓고 들리는데.”

“소리? 잠깐, 설마…….”

매개체로 사용한 비수의 파공음. 처음 스쳐 지나갔을 때 그 소리를 듣고 모든 것을 알아차렸단 말인가.

듣고도 믿을 수 없는 사실에 세이츠가 당황하는 사이 이세훈이 주변을 슬쩍 둘러보았다.

‘비수의 수는 대략 25개 정도. 한 번에 쓸 수 있는 건 10개 정도인 듯하지만…… 그래도 썩 좋지는 않아.’

장기전으로 가면 체력과 마력이 부족한 이쪽이 불리하다. 그렇기에 이세훈은 간단하게, 그리고 과감하게 움직이기로 했다.

‘인연각인.’

[인연각인 ‘탐철’이 발동됩니다.]

콰드득!

이세훈의 오른손이 불그스름하게 물들자 손에 쥐어져 있던 비수가 녹아내리듯 안쪽으로 스며든다.

S급 영웅 웨폰이터 류은하의 인연석. 철을 먹어 힘을 얻는 ‘탐철’이 이세훈의 오른손에서 한정적으로 발동된 것이다.

“잠…… 멈춰!!!”

한 자루에 100만 원이 넘는 특제비수가 이세훈의 손아귀에서 흔적도 없이 녹아 사라졌다.

그 모습에 뒤늦게 정신을 차린 세이츠는 모든 마력을 끌어올려 그림자 이리를 모조리 돌진시켰다.

이세훈의 무력이 자신의 상상 이상임을 깨닫고 뒤늦게 전력을 발휘한 것이지만.

‘아.’

그 판단은 한참 늦은 상태였다.

‘이런 맛이었나…….’

평범한 음식으로는 느낄 수 없는, 입에서부터 전신을 찌르듯 올라오는 무구의 맛.

그와 동시에 오른손에서부터 끓어오른 피가 순식간에 전신을 질주한다.

머리카락 끝이 아주 희미하게 불꽃처럼 변한 이세훈이 주변을 덮쳐오는 그림자 이리를 천천히 훑어보았고.

‘폭환.’

그 몸이 바닥을 박차며 순식간에 거리를 압축시켰다.

채채챙!

무시무시한 기세로 덤벼들던 그림자 이리들이 허공을 덮쳤고 안쪽의 비수들이 서로 부딪치며 바닥에 흩뿌려졌다.

그리고 그사이를 단숨에 돌파한 이세훈이 세이츠의 눈앞까지 도달했고.

빠아악!

꽉 움켜쥔 주먹이 아랫배를 꿰뚫을 기세로 올려쳤다.

“커헉!?”

죽기 직전까지도 펼쳐진 결계는 유지해야만 한다.

그것이 결계술사들에게 흔히 내려오는 격언이었지만, 세이츠의 귀랑아사는 단 일격에 풀려 버리고 말았다.

그만큼 이세훈의 주먹이 끔찍하게 아팠기 때문이다.

“잠…….”

무슨 방법을 쓴 건지 몰라도 저 주먹에 이 이상 맞았다가는 머리가 어떻게 되어버릴 것이다.

그것을 직감한 세이츠가 어떻게든 말을 걸어 이세훈을 멈춰 세우려 했지만.

콰악!

그보다 먼저 이세훈의 손이 우악스럽게 목을 움켜잡았다.

“켁!”

발언권을 박탈당한 세이츠가 떨리는 눈으로 이세훈을 바라보았고, 그제야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아까 말했지?”

이세훈은 자신을 얕봤다거나, 무시하던 게 아니었다.

“멍청한 새끼 사람으로 만드는 게 특기라고.”

그저 아무런 감정 없이, 마치 작업대 위에 놓인 재료를 품평했을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없었던 것이다.

한 마디로 이세훈에게 있어 이번 싸움은 일종의 ‘제련’.

“자, 잠깐…….”

그리고 제련이란 무구가 완성될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사람이 돼라.”

어깨를 가볍게 푼 이세훈이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러면 멈출 테니까.”

* * *

“말해봐.”

이세훈의 물음에 얼굴이 퉁퉁 부은 세이츠가 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전후 사정과 관계없이…… 막무가내로 저희의 입장만 강요한 것에…… 사과드립니다.”

“그리고.”

“다시는 제 모자란 부분을 남에게 투영하며…… 명령받은 것 이상의 월권행위를…… 저지르지 않겠습니다…….”

“흐음…….”

뭔가 아쉬움이 느껴지는 이세훈의 목소리에 세이츠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저럴 때마다 사람이 덜됐다고 다시 두들겨 팼기 때문이다.

‘제발…… 제발…….’

차라리 맞다가 기절이라도 했으면 편했을 텐데 무슨 수를 썼는지 더럽게 아프기만 하고 정신은 또렷하다.

신기하면서도 끔찍한 이세훈의 구타에 세이츠가 온몸을 부르르 떨고 있을 때.

“뭐, 좋아.”

이세훈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선배인데 내가 너무 심하게 할 수는 없지.”

“…….”

이게 심한 게 아니라면 도대체 심한 것은 어느 정도인가.

상상만으로도 치가 떨리는 광경에 세이츠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고, 이세훈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이야기를 이었다.

“대신 돌아가서 그 도련님한테 확실히 전해. 이런 쓰잘머리 없는 싸움에 끼어들게 하지 말라고.”

“…….”

“대답.”

“예, 예…….”

마지못해 대답하는 세이츠의 모습에 이세훈은 혀를 차면서 뒤통수를 힘껏 후려쳤다.

빠악!

“끄악!”

“에휴. 한심한 놈…….”

집단이라고 다 나쁘게 보는 것은 아니지만, 고작 이런 일로 사람을 보내는 곳이 잘나 봐야 얼마나 잘나겠는가.

본인은 이노우에라는 가문의 일원이 됐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세훈이 보기에는 언제든지 대체 가능한 부품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번 일로 깨닫는 게 있겠지.’

만약 아무것도 깨닫지 못했다면 부품으로 쓰이다가 언젠가 망가져서 버려지리라.

세이츠에 대한 생각을 털어낸 이세훈은 바닥에 던져놓은 자켓을 집어 들었다.

“간다. 뒷정리는 알아서 해둬.”

“예…….”

“그리고 다음에 또 마주치면 알아서 해.”

그 말을 끝으로 이세훈이 돌아온 길 그대로 걸어나갔고, 발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있던 세이츠는 그대로 힘이 풀려 바닥에 드러누웠다.

“……빌어먹을.”

신입생에게 경고하러 왔다가 도리어 두들겨 맞은 것도 모자라 이제는 상황을 수습하라는 명령까지 듣다니.

처량해도 이렇게 처량할 수가 없었지만, 세이츠로서는 방법이 없었다.

자신이 분을 못 이겨 필요 이상으로 수를 쓴 시점에서 이미 책이 잡혔기 때문이다.

‘아니, 그렇게까지 하고도 졌다는 게 가장 문제인가.’

3학년에서 중상위권이긴 하지만 제대로 싸운다면 상위권 이상은 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무래도 착각에 빠져 있던 것은 이세훈이 아니라 자신이었던 모양이다.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는 자신의 모습에 세이츠가 허탈한 표정으로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을 때.

“끝났네.”

숲에서 한 소녀가 걸어 나왔다.

“아, 아가씨……?”

자신의 앞에 나타난 소녀, 에리카의 모습에 세이츠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도대체 언제부터 지켜본 것인가. 자신의 월권행위가 모조리 보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세이츠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그…… 그게…….”

“당신 변명은 관심 없어. 지금부터는 질문에만 대답해.”

두 눈을 자신을 향해 있지만, 거기에 자신은 보이지 않는다.

무기물로 보는, 이세훈보다도 더욱 공허한 시선에 세이츠가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겠습니다…….”

“이세훈이 네 비수를 흡수해서 뭔가를 펼쳤었지?”

“예…….”

“그 비수. 가지고 와.”

“예!”

에리카의 명령에 세이츠가 곧장 바닥에 떨어져 있던 비수를 살펴보다가 이내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뭐야. 왜 14개뿐이야.’

이세훈이 하나를 부쉈으니 24개가 남아 있어야 할 텐데 이게 어떻게 된 것이란 말인가.

사라진 10개의 비수. 그 행방을 어렴풋이 깨달은 세이츠의 입이 떡 벌어지던 그때.

“뭐해?”

“가, 갑니다.”

뒤에서 들려온 재촉에 세이츠가 다급히 남은 비수를 모조리 가져다주었고, 에리카가 곧장 그 겉면을 훑어보았다.

‘역시 강탈방지 인챈트가 새겨져 있어.’

매개체로 쓰이는 무구는 적에게 강탈당하면 곧장 무력하기에 그것을 방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그렇기에 세이츠의 비수 역시 그런 인챈트가 걸려 있었는데 이세훈은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파훼해 버린 것이다.

‘그걸 가능하게 한 건 그 검은 거미줄 같은 주술…….’

형태와 효과를 보건대 로버트 교수의 ‘혈진사’와 자신이 보여준 ‘무령진’을 토대로 새롭게 만들어낸 것이 분명하다.

두 결계가 지닌 범용성만을 고스란히 떼어내 한층 더 최적화시킨 주술.

아직 미숙한 부분이 보였지만, 하나의 ‘스킬’로 인정받기에는 충분해 보였다.

그동안 이세훈이 보여준 잠재력을 떠올린 에리카는 천천히 자신의 머릿속에서 평가를 수정했다.

‘제련기술의 적성은 S이상. 주술의 적성 B에서 A이상으로 상향조정.’

이만한 잠재력이라면 아무리 부진하게 되더라도 최저치까지는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에리카가 세이츠를 바라보았다.

“돌아가면 오라버니에게 보고할 거지?”

“……예.”

“보고하지 않아도 돼.”

에리카의 담담한 이야기에 세이츠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그러면 도련님께서…….”

“괜찮아. 내가 당주님께 따로 보고 드릴 테니까. 알겠어?”

“아, 예!”

“그리고 당신은 내일부터 내 밑에서 일하도록 해.”

갑작스럽게 돌아가는 상황에 세이츠가 당혹스러움을 금치 못했지만, 금방 정신을 다잡았다.

이미 자신은 쫄딱 말아먹은 상황. 그렇다면 이 알 수 없는 흐름에라도 편승해서 어떻게든 버텨야만 한다.

“알겠습니다. 명령하실 일은 있으십니까?”

“이세훈의 곁을 봐주면서 필요한 게 있으면 도와줘. 그게 네 주 업무야.”

에리카의 명령에 비장하던 세이츠의 표정이 일순간 굳어졌다. 다시 마주치면 알아서 해라고, 이세훈이 분명 그렇게 경고를 남기고 가지 않았던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비수 10개를 아무렇지 않게 가져가는 것을 보면 마주칠 때마다 무슨 일이 벌어지지 불 보듯 뻔했다.

“저…… 다시 마주치면 구타를 당할 수도…….”

“그래?”

세이츠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에리카가 차갑게 대답했다.

“스트레스 해소도 될 테니 잘됐네.”

“…….”

“온 힘을 다해 맞아줘.”

“…….”

우르의 주술부서 3학년 세이츠.

그의 남은 아카데미 생활이 결정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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