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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가 다 만들어줌-19화 (19/309)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19화

코에서 느껴지는 축축한 감각에 제이크가 천천히 검지를 훑은 다음 묻은 것을 살펴보았다.

“……피.”

자신과 비슷한 나잇대의 사람과 싸우면서 피를 본 것이 마지막으로 언제였던가.

그만큼 격렬하게 싸울 만한 상황이 잘 없기도 했지만, 이런 상처를 허용할 만큼 빈틈을 내준 적도 없었다.

‘정확하게 파고들었어.’

자신이 방심하지 않았더라면, 이라는 말은 무의미하다. 이세훈도 분명 그것을 염두에 두고 공격을 펼쳤을 테니까.

구차한 변명을 하는 대신, 제이크는 자신의 피를 흘리게 만든 마지막 일격을 떠올렸다.

‘그 공격. 설마…….’

너무 갑작스러워서 제대로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어떤 ‘느낌’으로 펼쳐진 것인지는 알 것 같다.

어떻게 제련학부 생도가 그런 기술을 사용한 것일까. 두 눈을 반짝인 제이크가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저…….”

“너.”

말을 가로막은 마광수가 담담한 표정으로 가리켰다.

“탈락.”

“……예?”

“먼저 맞았잖아. 이기면 가르쳐준다고 했을 텐데.”

“아, 아니. 그건…….”

자신의 상황을 떠올린 제이크가 당황하던 찰나. 상황을 지켜보던 이세훈이 입을 열었다.

“저한테 맞았으니까 오히려 가르쳐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뭐라고?”

어딜 감히 끼어드냐는 듯 날카로운 눈으로 노려보는 마광수. 하지만 이세훈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대답했다.

“보르시파의 생도한테 얻어맞은 아칼쿠프의 학과 수석이라니. 듣기만 해도 심각하지 않습니까?”

“아.”

“흐음.”

이세훈의 이야기에 제이크의 표정이 멍해졌고, 마광수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아칼쿠프의 학과 수석이란 해당 기수의 최강자.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해당 기수의 얼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그 학과 수석이 보르시파의 생도와 대련에서 얼굴을 맞고 코피를 흘렸다?

아칼쿠프에 아주 큰 자부심을 가진 생도나 교수, 졸업생들이 듣는다면 그야말로 입에 거품을 물 사안이었다.

“마, 말 안 할 거지? 그치?”

간절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제이크. 이런 이야기는 떠돌아봐야 귀찮아지기만 하기에 이세훈도 별생각이 없었지만.

“글쎄?”

안절부절못하는 제이크의 표정에 재밌어져 의미심장하게 웃어 보였다.

“아…… 아앗…….”

그 모습에 제이크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당황하던 그때.

“……네 말이 맞긴 하군.”

두 사람을 바라보던 마광수가 입을 열었다.

“저런 덜떨어진 놈을 뒀다가는 분명 또 사고를 칠 테니…… 밥값은 할 정도로 만들어둬야겠지.”

“그럼…….”

“시간 정해서 보내줄 테니 맞춰서 나와라.”

“가, 감사합니다!!”

고개를 꾸벅이는 제이크를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바라보던 마광수가 다시 이세훈을 힐끗 보았다.

“……그만 가봐라. 여기 있는 녀석이랑 따로 할 말이 있으니.”

“아, 예. 알겠습니다!”

이세훈에게 살짝 고개를 꾸벅인 제이크가 재빠르게 강의실 밖으로 나갔고, 두 사람만 덩그러니 남았다.

삐뚜름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는 마광수와 앉은 채로 담담하게 올려다보는 이세훈. 그 미묘한 대치가 계속되는가 싶더니 인내심이 먼저 바닥난 사람이 입을 열었다.

“방금 그 기술. 배운 거냐 만든 거냐?”

“만들었습니다.”

이것 역시 회귀 전의 마광수가 알려준 호신술 중 하나였지만, 연체료의 이자 대신 받은 것이니까 저작권은 이쪽이 가지고 있다.

이세훈의 당당한 대답에 마광수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이런 놈이 그런 기술을 만든 거지?’

방금 이세훈이 제이크에게 펼쳤던 기술을 사실 그렇게 독창적인 것은 아니었다.

처음 제이크가 검을 후려치면서 발생했던 충격. 그것을 탈력을 통해 반대편인 왼팔로 흘려보내고, 거기에 자신의 마력을 충돌시킨다.

그 과정에서 일어난 반탄력으로 공격을 가속시키는 기술이었는데 어느 정도 연륜 있는 영웅들이라면 하나씩 비슷한 걸 가지고 있을 만큼 흔한 종류였다.

‘연륜이 있는 녀석들한테는 말이지…….’

말로만 들었을 때는 간단해 보이지만 힘의 배분을 아주 조금만 실수해도 충돌시킨 부위가 충격에 박살 나버린다.

그렇기에 어지간히 경험이 쌓인 영웅이 아니라면 엄두도 못 내는 기술인데 그걸 올해 입학한, 그것도 보르시파의 생도가 능숙하게 해낸다?

아는 놈들에게 이야기했다가는 노망났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터무니없는 이야기였다.

‘어린놈이 그만한 경험을 쌓았을 리는 없을 테고…… 그렇다면 그만한 경험을 대신할 만큼 정확히 ‘계산’을 해낼 능력이 있단 건데…….’

리카로스의 추천서에 적혀 있던 갈무리하는 능력이라는 것이 무슨 뜻인지 이제야 이해가 갔다.

어느 정도 견적을 잡은 마광수는 마땅찮은 표정으로 이세훈을 바라보더니 옆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훈련용 검 두 개를 가져왔다.

“리카로스한테 펼쳤다던 검도 한번 보여 봐라.”

“알겠습니다.”

이세훈이 자세를 잡음과 동시에 마광수가 가볍게 달려들었고, 두 사람의 검이 기묘한 각도를 그리며 얽힌다.

카앙!

한 번의 충돌로 저 멀리 튕겨 나가는 이세훈의 검.

대련이라고 하기에도 부끄러울 만큼 압도적인 결과에 이세훈이 저릿한 오른손을 주무르며 마광수를 흘겨보았다.

‘힘 조절은 해주지 망할 노인네 같으니…….’

이세훈이 속으로 욕지거리를 퍼붓고 있을 때. 골똘히 생각에 잠기던 마광수가 입을 열었다.

“조잡하군.”

“……그렇습니까?”

“발상은 좋지만 완성도가 너무 떨어진다. 아무리 초견살에 특화됐다지만 두 번째부터 약점이 되는 검술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

“너 혼자 썼기에 망정이지, 이걸 좋다고 누구한테 가르쳐주거나 그랬으면 팔다리를 부러뜨렸을 거다.”

혹평하는 마광수의 모습에 이세훈이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저한테 맞춰서 만든 거라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그거 다 실력 없는 놈들이 하는 변명이야. 제대로 만들 줄 모르니까 특화니 뭐니 그런 소리를 하는 거지.”

“……그렇군요.”

자기 얼굴에 침을 연달아 뱉기가 이렇게 쉬울 수가 있을까.

씰룩거리는 입꼬리를 참고 있을 때. 마광수가 팔짱을 끼며 거들먹거렸다.

“두고 봐라. 내가 그 뼈대밖에 없는 기술에 제대로 된 몸을 만들어줄 테니.”

한껏 폼을 잡으며 이야기하는 마광수의 모습에 이세훈이 담담하게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수업은 신청된 거죠?”

“어? 뭐, 그렇지…….”

“그럼 오늘은 이만 가보겠습니다”

고개를 꾸벅이며 곧장 대련장 밖으로 걸어 나가는 이세훈.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마광수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신이 직접 지도를 해주겠다는데 좀 더 감격하거나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

“어린놈이 무뚝뚝하기는…….”

뭔가 속이 뒤틀리는 기분인데 그냥 무시해버릴까. 그렇게 고민하던 마광수는 문득 이세훈의 왼팔에 끼워져 있던 팔찌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아까 그 기술. 팔찌에 담긴 마력과 충돌시켜 사용한 건가?’

기술을 사용하기 전에 팔찌에서 마력이 나왔던 것을 생각하면 확실하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마광수의 표정이 더욱 미묘해졌다.

본인의 마력을 사용해도 펼치기 까다로운 기술인데 장비의 마력을 사용해서 펼쳤다? 장비를 정말 제 몸처럼 다룰 수 있는 게 아니라면 몇 배는 더 까다로운 일이었다.

“……쯧. 내가 참아야지.”

어차피 할 일도 없으니 잠깐의 여흥으로 한다고 생각하면 되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마광수가 손에 들린 검을 바라보며 아주 잠시, 이세훈이 펼쳤던 기술들을 곱씹으며 생각에 잠겼다.

* * *

“AS면서 거들먹거리기는…….”

기고만장하던 마광수의 얼굴을 떠올린 이세훈이 불만스럽게 투덜거렸다.

몇십 분 만에 뚝딱 만들어낸 기술이니 기대도 안 하고 있긴 했지만, 설마 본인이 저렇게 욕을 할 정도로 대충 만들었을 줄이야.

‘어디 두고 보자고.’

만약에 또 제대로 만들어주지 않으면 이번에야말로 회귀 전에 부수지 못했던 마광수의 검을 두 동강 내버릴 것이다.

이세훈이 속으로 이를 갈고 있을 때. 강의실 밖에서 한 사람이 손을 흔들었다.

“아. 여기여기!”

혹시라도 지나칠까 봐 손을 흔들며 아는 체하는 제이크. 그 활기찬 모습에 이세훈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다가갔다.

“무슨 일이야?”

“아. 별건 아니고 주고 싶은 게 있어서.”

품에서 어디서 본 적 있는 사각봉투를 꺼내서 건네주는 제이크. 그 익숙한 디자인에 이세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거…….”

“나중에 열리는 ‘노블레스’의 초대권. 아, 혹시 뭔지 몰라?”

“처음 듣는데.”

예전에 지나가다가 들은 것 같긴 한데 영 기억이 안 난다. 이세훈의 이야기에 제이크가 잠시 고민하며 대답했다.

“음. 뭐, 대충 생도 중에서 집안이 잘났다 싶은 녀석들이 모이는 곳이라 생각하면 돼.”

“아아. 뭔지 알겠네.”

몇 번이나 찢어 먹은 봉투의 정체를 알게 된 이세훈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에리카 그 녀석…… 나한테 주려고 했던 건가?’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찢어보라는 등 아주 대놓고 권유하지 않았던가. 인연도 성립 안 됐던 걸 보면 그냥 초대장이 남아돌아서 줬을 가능성도 있으리라.

“재수 없는 녀석들이 많아서 좀 별로지만…… 너한테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아직 언제 열리는지는 안 정해졌으니까 생각해 봐.”

“이런 걸 그냥 받아도 될지 모르겠네.”

이세훈의 대답에 제이크가 씩 웃었다.

“덕분에 수업도 듣게 됐고, 이 정도 성의는 표해야지. 부담 가질 필요는 없어.”

“……호쾌하구만.”

생각한 것보다 성격이 좋은 녀석이었지만, 역시 살가운 태도와 다르게 인연이 성립됐다는 알림창은 뜨지 않는다.

‘이 녀석도 기준이 엄격한가 보구만.’

어째 학과 수석 두 사람 모두 기준이 쓸데없이 까다롭다. 그런 생각을 하며 이세훈이 초대장을 챙겼다.

“그래. 그럼 다음에 보자.”

“시간 나면 또 대련하자고.”

제이크의 배웅을 받으며 걸음을 옮기던 이세훈은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피식 웃었다.

‘생각보다 승부욕이 강한 모양이네.’

일단은 웃으면서 보내줬지만, 이 간질간질한 느낌을 보아하니 자신에게 한 방 먹은 것에 분하다는 느낌이 든다.

아마 인연을 성립시키려면 저 감정이 정확히 어떤 종류인지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리라.

‘학과 수석들이 하나같이 참 쉽지 않아…….’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이세훈이 가장 쉽지 않은 사람이었지만, 본래 당사자는 그런 사실을 모르는 법이다.

제이크에 대한 정보를 머릿속에 차곡차곡 집어넣으며 이세훈은 차근차근 자신의 상황을 다시금 확인했다.

‘신청한 부전공은 결계구성학과 신체 제어학. 인연이 성립된 건 김인철과 류연하. 유력한 건 에리카와 제이크 정도인가.’

그리고 최우선으로 노릴 대상은 삼견 중 한 사람인 광견 염성하. 3학년인지라 만나기가 쉽지는 않지만, 타워에 알아보니 주말에 한 번 기회가 있을 것 같다.

간단하게 확인을 끝낸 이세훈은 그중에서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을 떠올렸다.

‘부전공은 두 개로 충분한가?’

어차피 매 학기마다 신청할 수 있으니 급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두 개만으로 끝내기엔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할지 고민하던 이세훈은 금방 결정을 내렸다.

‘보르시파 쪽에서도 한 번 찾아보자.’

회귀 전에 도움이 될 것 같으면 닥치는 대로 배워서 아는 것이 많기는 하지만 너무 막무가내로 익힌 탓에 하나같이 난잡하기 그지없다.

과거에 익힌 것들을 다시 되짚어보든, 아니면 새로운 것을 익히든 부전공은 몇 가지 더 배우는 편이 좋으리라.

‘당장 떠오르는 건 저주…… 연금술…… 인챈트…… 아, 정령 쪽도 나쁘진 않겠군…….’

다음 부전공을 고르기 위해 이세훈이 골똘히 생각에 잠긴 채 걸음을 옮기던 그때.

툭.

앞의 상대와 부딪친 어깨.

자신이 한눈팔고 있었음을 깨달은 이세훈이 반사적으로 상대 쪽을 향해 고개를 까딱였다.

“미안합…….”

탁!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붙잡힌 왼손.

그 예상치 못한 손길에 자연스럽게 지나치려 했던 이세훈은 자신을 붙든 상대를 바라보았다.

“…….”

두껍게 땋아 어깨 너머로 내린 갈색 머리카락 곳곳에 끼워진 헤어핀들. 두 눈동자는 초록빛이 감돌았는데 살짝 탁한 것이 어딘가 정상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거기에 와이셔츠 위에 자켓 대신 새하얀 가운을 입고 있는 옷차림 때문에 미인보다는 괴짜라는 느낌이 먼저 들었다.

“흐음…….”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녀가 자신의 왼팔, 정확히는 거기에 채워져 있는 묵주환을 뚫어져라 보고 있자 이세훈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또 뭐야?’

부딪쳐서 항의한다고 하기에는 묵주환을 바라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이세훈이 유심히 보고 있을 때.

“이거.”

소녀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네가 만들었어?”

통성명이고 뭐고 일단 용건부터 던지고 본다.

싸가지 없다면 싸가지 없는 행동이었지만, 탁한 눈동자 안에서 빛나는 기이한 열기에 이세훈이 흥미를 느끼며 되물었다.

“그렇다면?”

그 물음에 소녀 역시 씩 웃어 보였고.

[대상 ‘레아 클로델’과의 인연이 성립되었습니다.]

“인챈트 해줄까?”

괴팍한 인연이 맺어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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