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17화
회귀 전. 이세훈은 무술을 제대로 익힌 적이 없었다.
그럴 시간에 망치나 한 번 더 두드리는 게 이득이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무술에 재능이라고 할 만한 것도 딱히 없었기 때문이다.
‘넌 딱 중간까지만 잘 배우는군. 좋게 말하면 어정쩡하고, 솔직히 말하면 이도 저도 아닌 쓰레기 정도다.’
성질머리가 더럽긴 해도 단련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시키던 광견 염성하조차 두손 두발을 다 들게 만든 어중간한 재능.
다른 단골들에게도 몇 수 배워보기도 했지만 이것만큼은 정말 재능이 없었는지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그렇기에 이세훈도 딱히 무술에 대해 욕심을 낸 적이 없었지만.
“…….”
방금 펼쳐진 검술로 그 상황이 애매하게 되어버렸다.
‘회귀 전에도 이렇게 매끄럽게 나간 적은 없었는데…….’
기술을 겨우겨우 따라 해냈다는 뻐근함이 아닌,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펼쳐졌다는 충족감.
난생처음 느껴보는 생소한 감각에 이세훈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피가 흐르는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을 때.
“다쳤나.”
이세훈의 곁으로 다가온 리카로스가 손을 바라보았다.
“아. 조금 찢어졌습니다.”
“흠. 이 정도면 휴게실에서 간단하게 처치해도 되겠군. 잠시 연습하고 있어라.”
다른 생도들에게 이야기한 리카로스는 이세훈을 데리고 트레이닝 센터 안에 있는 휴게실로 향했다.
소파나 침대, 수십 종류의 음료가 배치된 냉장고 등 온갖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는 내부. 사람이 살아도 될 것 같은 으리으리한 시설에 이세훈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놈의 학교는 돈을 참 아낌없이 쓰는구만.’
이세훈이 주변을 훑어보고 있을 때. 응급처치 도구를 가져온 리카로스가 맞은편 의자를 눈짓으로 가리켰다.
“앉아라.”
“아, 예.”
리카로스가 직접 소독제와 재생스프레이로 이세훈의 찢어진 오른손을 치료해 주었고 순식간에 상처를 아물어갔다.
그 모습을 이세훈이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때. 리카로스가 주변을 살피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만…… 추궁하거나 그런 건 아니니까 편하게 대답해라.”
“알겠습니다.”
“방금 펼쳤던 검술. 혹시 누군가에게 따로 배운 건가?”
어느 정도 예상했던 리카로스의 질문에 이세훈이 그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확실히 추궁할 생각은 없어 보이네.’
정말 순수한 호기심에 물어보는 듯한 모습. 그에 이세훈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민했다.
회귀 전에 단골 중 한 명한테서 연체료의 이자 값으로 배운 것이지만, 그 사정을 설명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뭐. 어차피 그 양반도 10분 만에 대충 만든 기술이었으니…….’
이 정도는 그냥 대충 급조했다고 해도 괜찮지 않을까. 그리 판단한 이세훈이 대답했다.
“배운 건 아니고 그냥 제가 만들어본 겁니다.”
“……네가 만들었다고?”
“예. 영상 사이트에서 본 다른 영웅분들의 전투를 보면서 대충…….”
이 기술을 가르쳐준 노인네가 진짜 그런 식으로 만들었으니 마냥 없는 말은 아니다.
이번에야 좀 잘 펼쳐져서 그렇지 본래 근본이 없는 기술이었기에 이세훈은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했지만.
‘이걸 직접 만들었다고……?’
그 기술을 겪은 리카로스의 생각은 달랐다.
상대를 자연스럽게 빈틈으로 유도해내는 절묘한 보폭조절과 손에 들린 검의 특성을 완벽히 끌어내는 파지법. 그리고 마지막으로 두 가지의 요소를 완벽히 묶어내는 호흡.
하나하나만 놓고 보면 그리 특별하진 않지만, 저 세 가지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적에게 치명상을 입힌다.
‘그나마 속도가 느렸기에 즉각 반응할 수 있었던 거지 나와 비슷하거나 조금 아래인 상대가 사용했다면…….’
운이 좋았어도 중상. 재수가 없으면 즉사했어도 이상하지 않다.
물론 생도와 대련을 하는 상황이었기에 리카로스가 평소보다 더 느슨하게 풀려 있던 것도 있었지만, 그걸 핑계로 삼는 것은 변명밖에 되지 않았다.
“으음…….”
“뭔가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니. 문제는 딱히 없다. 문제는 없는데…… 흠. 이걸 어디서부터 말해야 하나…….”
한참을 고민하던 리카로스는 한 가지 결심을 내리며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우선 방금 사용한 검술은 이제 함부로 쓰지 마라.”
“예?”
“그건 초견살(初見殺)에 특화된 기술이다. 아무 때나 사용했다가 그 검술이 알려지게 되면 그만큼 위력이 떨어진다. 특정 상황에서만 사용하는 게 좋을 거다.”
상세하게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이세훈은 리카로스가 말하는 특정 상황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죽일 때만 써라 이거구만.’
기술에 대해 아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무뎌지는 검술. 그 위력을 보존하는 방법이야 당연히 목격자를 제거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고 보면 어느 순간부터 제대로 펼치기도 힘들었었지.’
처음에야 좀 유용하게 썼지만 나중에 가서는 자신이 이 검술을 쓴다는 걸 모르는 녀석이 없을 정도였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이세훈은 문득 한 가지를 떠올렸다.
‘……설마 그것 때문에 답답하게 느껴졌던 건가?’
검술의 미숙함 때문이 아니라 상대가 검술에 대해서 모두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답답했던 것이다.
그 가설에 이세훈은 잠시 고민하다가 금방 생각을 털어냈다.
‘에이. 그럴 리가.’
아무리 자신이 무술에 재능이 없다고는 해도 그런 기본적인 것도 몰랐을 리가 있겠는가.
그렇게 이세훈이 필사적으로 현실을 외면하고 있을 때.
“그리고…….”
잠시 고민하던 리카로스가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혹시 검술을 진지하게 수련해 볼 생각은 없나?”
단순히 영상만 보고 이런 검술을 만들어낼 정도라면 예사롭지 않다. 그런데 이런 재능을 갈고닦지 않고 방치시킨다?
그것만큼 교육자로서 글러 먹은 태도가 어디 있겠는가. 교육열과 의무감으로 불타는 리카로스의 눈빛에 이세훈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제대로 오해를 산 것 같은데…….’
아무래도 자신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호신술이 좋은 기술인 모양이다.
자칫 잘못하면 무술의 천재로 오해받았다가 밑천이 까발려져 무안해질 수도 있는 상황.
이걸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던 이세훈은 문득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생각해 보니 상관없지 않나?’
젊었을 때 천재라고 칭송받다가 나중에 한계를 보이며 고꾸라지는 사람이 어디 세상에 한둘이던가.
당장 자신만 해도 회귀 전에 대장장이로서 평가가 들쑥날쑥했던 탓에 여러 사람을 무안하게 만든 적도 있었다.
‘자기들이 좋다고 주는 걸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지.’
어차피 자신은 대장장이니 체면이 좀 떨어져도 나중에 무구만 잘 만들면 상관없다. 결정을 내린 이세훈은 자신에게 필요한 방향으로 이야기를 살짝 틀었다.
“죄송하지만 검술에는 딱히 뜻이 없습니다.”
“으음…… 그건 너무 아깝…….”
“하지만 몸을 움직이는 것 자체에는 조금 관심이 있습니다.”
어떻게든 설득해 보려던 리카로스는 이세훈의 이야기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몸?”
“예. 특정 무기보다는 몸을 움직이는 방식에 관심이 있다고 해야 하나…… 이번에 만든 검술도 검이 보편적으로 많이 쓰이기에 연구해 본 거지, 특별히 느낀 것은 없었습니다.”
사용하는 ‘무기’가 아니라 움직이는 ‘몸’에 관심이 있다.
이세훈의 대답에 리카로스는 방금 겪었던 검술을 다시금 떠올리며 곱씹어보았다.
‘확실히…… 검술적으로 특별한 영감은 없었군.’
보폭 조절이나 호흡이라면 자신도 금방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검의 특성을 완벽히 끌어낸 파지법도 어찌 보면 대장장이로서의 재능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천재로서 자신의 ‘영감’을 기술에 녹여내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필요에 따라 정확하게 몸을 움직이는 ‘방법’을 찾아낸다.
이세훈이 가진 재능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게 된 리카로스의 두 눈이 빛났다.
‘그렇다면 더더욱 저 재능을 방치해선 안 된다.’
천재들이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사람이라면, 이세훈은 그 길을 갈고닦아 다른 이들이 걸을 수 있게 만드는 사람.
어떤 의미에서는 일반적인 천재들보다도 더 필요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러면 최대한 여러 무기와 접할 수 있는 수업이 좋을 텐데…….’
자신이 가르치는 도구 이해 수업도 나쁘진 않겠지만 생도들이 너무 많아서 집중도가 떨어지기도 하고 설비도 제한이 많다.
좀 더 좋은 환경이 필요한 상황. 도움이 될 곳이 없을지 리카로스가 한참을 고민하던 그때.
‘……있다.’
딱 한 곳. 이세훈에게 적합한 수업이 아칼쿠프에 있다.
하지만 그 담당교수를 떠올린 리카로스는 자신도 모르게 눈매를 찌푸렸다. 실력은 몰라도 그 인성이 너무 개차반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이세훈의 재능을 살리는 데 딱 맞기도 하고, 의외로 자신과 달리 두 사람은 죽이 맞을 수도 있지 않은가.
결정을 내린 리카로스가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추천해 주고 싶은 수업이 있다만…… 한 번 가서 견학이라도 해보는 건 어떠냐?”
기다리고 있던 리카로스의 질문에 이세훈이 미소를 지었다.
“물론이죠.”
* * *
도구 이해의 수업이 끝난 뒤.
리카로스에게 추천서를 받은 이세훈은 기숙사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휴대폰을 켰다.
‘아칼쿠프의 신체 제어학이라.’
이름만 봐서는 그리 특별할 게 없어 보이는 수업. 바벨의 비공식 커뮤니티인 ‘타워’에도 검색을 해봤지만 딱히 정보라고 할 만한 게 보이지는 않았다.
‘흠. 회귀 전에도 들어본 적이 없단 말이지…….’
리카로스가 따로 추천서까지 써서 보내줄 정도면 뭔가 있긴 할 텐데 도대체 어떤 곳이기에 이렇게까지 외부에 소문이 퍼지지 않은 것일까.
이세훈이 의아한 표정으로 검색하고 있을 때. 인기 탭에 올라와 있는 한 글의 제목이 눈에 보였다.
이 사람 왜 여기 있나요? [673]
“…….”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불길한 감각.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한 이세훈은 곧장 글을 눌러보았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제련학부의 본관 입구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에리카의 사진. 합성처럼 보일 만큼 홀로 붕 뜬 분위기였는데 이세훈을 더욱 기겁하게 만드는 것은 그 주변이었다.
‘저기는…….’
류은하의 품에 안겨서 기숙사로 날아갈 때. 에리카로 보였던 그림자를 발견한 위치.
정확히 거기에 서 있는 에리카의 모습에 이세훈은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알아차리고 본문을 읽어보았다.
이 사람 왜 여기 있나요? [673]
이 사람 우르 신입생 학과수석 아님?
지금 3시간째 제련학부 본관 앞에 서있음ㄷㄷ
[익명 1] : ??
[익명 2] : 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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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38] : 보르시파 학과수석 기다리는 거 아냐? 전에 기숙사 앞에서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잖아.
└[익명 22] : 그런가?
└[익명 18] : 그럼 진작 연락해서 내려오라고 했겠지 등신아
└[익명 38] : 그냥 그런 건가 하는 거지. 말도 못 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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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128] : 글 내려주세요. 초상권 침해입니다.
[익명 129] : 빨리 글 내려주세요.
“이게 뭔…….”
댓글까지 살펴본 이세훈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처음에는 왜 저러고 있냐는 댓글이 대다수였다가 자신이 몇 번 언급되더니 나중에 가서는 글을 내리라는 댓글들이 주르륵 달려있었다.
아마 에리카와 관련된 이들이 소식을 듣고 찾아와 글을 내려달라고 한 것이 분명하리라.
‘교수가 찾아오니 대화를 나누고는 돌아갔다…….’
확신은 할 수 없지만, 자신이 제련이 끝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돌아간 것이 아닐까.
너무 자의식과잉이 아닌가 했지만 그게 아니면 굳이 에리카가 제련학부로 찾아와 저러고 있을 이유가 마땅히 없었다.
‘이해가 안 가네.’
인연이라도 성립됐다면 성격에 따라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을 텐데 그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군단 말인가.
도저히 알 수 없는 속내에 이세훈이 의아해하며 아칼쿠프로 가기 위해 기숙사 입구로 내려왔고.
“아.”
“…….”
생도들에게 구경거리가 되어 있는 에리카와 눈을 마주쳤다.
에리카의 시선에 맞춰 자연스레 주변 생도들의 시선도 쏠렸고, 그들의 표정에서 묘한 흥미로움이 보였다.
아마 어제 타워에 올라온 글을 떠올리며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닐까.
‘젊네…… 젊어…….’
기대가 담긴 시선들을 흘려넘긴 이세훈은 계속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에리카에게 다가갔다.
“여기서 왜 이러고 있어?”
“네가 기숙사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그래서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고?”
“응.”
뭐가 문제냐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에리카. 그 모습에 이세훈이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그럴 시간에 수업을 듣거나 연습이라도 하지. 시간이 남아도는 것도 아니고.”
“연습하고 있어.”
“뭐?”
이세훈의 물음에 에리카가 자신의 머리를 가리켰다.
“머릿속에서.”
“…….”
다른 생도가 말했으면 뭔 개소리냐고 했겠지만, 학과수석이 저렇게 담담하게 말하니 뭔가 그럴싸하게 느껴진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에리카를 바라보던 이세훈은 한숨을 푹 내쉬며 화제를 돌렸다.
“그래서, 뭐 때문에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제 제련으로 만든 물건. 보여줄 수 있어?”
역시 그쪽이 목적이었던 것인가. 딱히 비밀로 할 것도 아니었기에 이세훈은 곧장 소매를 살짝 걷어 묵주환을 드러냈다.
“이거야.”
“…….”
아무런 말 없이 묵주환을 빤히 내려다보는 에리카.
정보창을 읽고 있는 것 같기도 했고, 묵주환의 구조를 꿰뚫어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음. 이거 좀 불편하네.’
제대로 만든 거면 모를까. 재료의 잠재력도 다 못 끌어낸 물건을 이렇게 보여주고 있자니 괜히 기분이 찝찝해진다.
이세훈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다시금 파괴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오던 그때. 에리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잘 봤어.”
“……끝?”
“응.”
이것저것 캐묻는 것보다야 낫긴 하지만, 미적지근한 반응도 상당히 상상력을 자극시켜 거슬린다.
파괴 욕구를 한층 더 자극받은 이세훈이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묵주환을 노려보았다.
‘올해 안에는 무조건 다시 만든다.’
그렇게 이세훈이 이를 갈고 있을 때. 에리카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앞으로 내밀었다.
“이거.”
“음?”
지난번에 결계술의 시범을 보인다며 건네줬던 것과 똑같은 디자인의 사각봉투. 거기에 걸려있는 한층 두꺼운 결계를 발견한 이세훈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애는 애인가.’
말은 안 했지만 그때 결계가 파훼당한 게 조금 분했던 모양이다. 이세훈이 사각봉투를 건네받자 에리카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이세훈이 사각봉투에 둘러진 결계를 찬찬히 살펴보고는 내심 감탄했다.
‘이번에는 진짜 제대로 만들었네.’
저번과 비슷해 보이면서도 빈틈이 보이지 않는다. 이세훈이 섣불리 움직이지 않자 에리카가 살짝 기고만장해진 눈으로 바라보았다.
“전과는 다를 거야.”
“음. 확실히 다르네.”
계속 보다 보면 파훼법이 떠오를 수도 있지만, 시간이 걸릴 것 같으니 이번에는 다른 방법을 쓰는 게 좋아 보인다.
‘흑령사.’
치잉.
손끝으로부터 뻗어 나간 검은 실. 묵주환을 만들면서 얻은 스킬로 그 효과는 매우 간단했다.
[흑령사] 『D』
주술식을 압축시켜 실처럼 만들어낸 결계술.
어떤 환경에서든 결계를 펼칠 수 있으며 중첩될수록 그 내구도가 상승합니다.
*흑령사가 펼쳐진 공간의 환경에 따라 마력소모율이 증가합니다.
*흑령사가 중첩될수록 결계의 내구도가 상승합니다.
어디에서든 쉽고 간단하게 펼칠 수 있는 결계술.
범용성에 특화되어 있었기에 효과 자체는 보잘것없었지만,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효과는 무궁무진했다.
‘기본적인 골자 자체는 비슷하니…….’
중심이 되었던 부분들을 흑령사로 하나씩 이어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편지봉투의 위로 검은색 거미줄이 완성되었다.
그 모습을 살피던 이세훈은 곧장 한 부분을 가볍게 검지로 튕겨냈다.
우웅-
그러자 흑령사를 통해 결계 전체에 충격이 가해지며 그 반탄력에 거미줄이 일제히 요동친다.
그 미세한 움직임을 눈으로 훑어보던 이세훈은 금방 기존의 파훼식을 고친 다음 봉투를 잡았고.
“사실 그 봉투는…….’
부욱! 부욱!
다시 한번 힘차게 찢어지는 사각봉투.
그 모습에 에리카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뒤쪽에 모여 있던 생도들 사이에서도 놀라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그 사이에 선 이세훈이 흔적도 알아볼 수 없는 사각봉투를 내려다보았고.
“음음.”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