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16화
이른 오전.
전공수업을 듣기 위해 강의실에 모인 제련학부의 신입생들이 한쪽을 힐끗거리며 바라보았다.
책상 위에 머리를 박은 채 미동도 하지 않는 이세훈. 온몸이 축 늘어져 있는 것이 설마 죽었나 싶은 정도였는데 그 모습에 생도들이 서로 수군거렸다.
“제대로 못 만들었나?”
“그냥 피곤한 거겠지. 희귀 등급 무구도 만들었는데 그것도 못 하겠어?”
“그래도 영웅 등급 재료인데 모르지.”
신입생들 중에서도 처음으로 진행된 중급 제련. 그것도 학과수석이 시도한 만큼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모두가 완성품에 대해서 궁금했지만, 막상 다가가서 물어보려는 생도들은 한 명도 없었다.
강의실에 들어올 때 보인 이세훈의 표정이 워낙 흉흉했던 데다 동갑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특유의 분위기 때문에 말을 걸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지금 건드리면 무조건 터진다.’
‘그래도 학과수석인데 조심해야지.’
눈치만 살피며 머릿속으로만 추론하고 있을 때. 책상에 머리를 박고 있던 이세훈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죽겠네…….’
젊은 몸이니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지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자신의 몸을 너무 과대평가했던 모양이다.
안 쑤시는 곳이 없는 몸 상태에 이세훈은 제대로 힘도 주지 못하고 축 늘어졌다.
‘그래도 이만큼 굴린 보람은 있었어.’
[이세훈]
근력 - E(68) 내구 - E(63)
마력 - F(47) 민첩 - E(52)
고유 스킬 : ‘인연무구’
속성 마력 : 홍염(F)
보유 스킬 : 불꽃의 장인(C), 흑령사(D)
아직 별다른 단련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스탯이 평균적으로 5 이상 올랐다.
물론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생각하면 새 발의 피나 다름없지만, 과거의 자신과 비교한다면 아주 빠른 성장 속도였다.
‘그리고 지금부터가 시작이지…….’
양 손목과 발목에서 느껴지는 묵주환의 묵직한 무게와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마력.
안 그래도 없던 힘이 더 빠지는 것 같았지만, 이세훈은 되려 미소를 지었다. 이 고통이 크면 클수록 육체의 성장도 빨라지기 때문이다.
‘1학년이 끝나기 전에는 무조건 쓸 만한 몸으로 만든다.’
이세훈이 두 눈을 번뜩이며 축 늘어져 있을 때. 강의실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교수가 왔나.’
이번에 들을 수업은 기본전공 중 하나인 ‘도구 이해’.
각 도구가 가진 특징 같은 것을 알려주는 수업이라 했는데 체육복을 입으라고 한 것을 보아 어느 정도 몸을 움직이는 것으로 보였다.
‘묵주환의 성능을 시험해 보기에 딱 맞겠어.’
이세훈이 고개를 들어 올려 단상을 내려다보았고 담당 교수로 보이는 사내가 보였다.
혼자서 등은 긁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 만큼 우락부락한 근육을 지닌 사내. 흉기나 다름없어 보이는 그 몸에 이세훈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저런 양반이 왜 제련학부에 있는 거지?’
눈으로 보이는 근육뿐만 아니라 몸 곳곳에서도 대장장이보다는 전사에 가까운 흔적들이 보인다.
게다가 실력도 상당해 보였는데 제련학부가 아니라 아칼쿠프에서 교수직을 하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저런 사내가 왜 여기에 있는 것인지 이세훈이 궁금한 표정으로 보고 있을 때. 단상에 선 교수가 입을 열었다.
“오늘부터 도구 이해의 수업을 맡게 된 리카로스 마일즈다. 자네들과 마찬가지로 올해부터 취임하게 됐으니 앞으로 잘 부탁한다.”
짝짝짝.
가볍게 박수를 치는 생도들의 반응에 교수, 리카로스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이었다.
“소개는 이 정도면 된 듯하고, 수업을 위해 트레이닝 센터로 이동하도록 하지. 모두 일어나도록.”
“뭐야.”
“이론 수업 아니었나?”
체육복을 입고 오란 것도 그렇고 선배들에게 들은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생도들이 의아해하며 자리에서 일어선 순간.
“가장 늦게 도착하는 녀석은 트랙 20바퀴.”
리카로스의 두 눈에서 가학심이 번뜩이며 빛났다.
“출발!”
호령과 동시에 강의실 밖으로 달려 나간 이세훈.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 대비한 덕분이었는데 그 모습에 다른 생도들도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그 뒤를 쫓았다.
“갑자기 뭔데!”
“몰라. 일단 달려!”
제련학부의 본관에서 트레이닝 센터까지의 거리는 약 2㎞. 기술직이긴 해도 모두 기본적인 체력은 보유하고 있었기에 순식간에 달려 나갔는데 그중 한 사람은 달랐다.
“후우…… 후우……!”
제일 먼저 반응했는데도 순식간에 맨 뒤로 처지는 이세훈.
마치 일부러 속도를 줄인 것처럼 보일 정도였는데, 당연히 그럴 생각은 없었다.
쿠우우-
팔다리에서 들려오는 불길한 소리.
몸을 움직이느라 신경이 느슨해지자 억눌려 있던 묵주환들이 무서운 속도로 마력을 빨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물에 젖은 솜처럼 마력을 빨아들여 점점 무거워지는 묵주환. 달리기는커녕 걷기조차 힘든 상태에 이세훈이 입꼬리를 비틀었다.
‘성능 한번…… 확실하구만……!’
평범한 달리기 와중에 이 정도로 몸을 몰아붙일 수 있다니. 자신이 원하던 그대로지만, 이대로라면 수업이 끝나기도 전에 쓰러진다.
그렇기에 이세훈은 묵주환의 다른 기능을 사용했다.
‘폭환.’
우우웅!
묵주환에 저장되었던 마력이 해방되어 몸 안에 스며들었고, 쓰러지기 직전이었던 전신에 조금이나마 활력이 돌아왔다.
쓰러질 것 같지만 쓰러지지 않는, 아슬아슬한 상황 속에서 육체는 한계까지 혹사당하고 그 안에 마력이 스며들어 성장을 촉진한다.
‘아주 좋아…….’
남들이 들으면 기겁할 만한 훈련법을 아무렇지 않게 펼치며 이세훈이 히죽거리고 있을 때. 뒤에서 그 모습을 바라본 리카로스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김인철 교수에게 신체 능력이 떨어지는 편이라고 따로 듣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학과수석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묵주환에 대해서 모르는 리카로스가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바라보았고. 두 사람이 뒤늦게 트레이닝 센터에 도착했다.
“후우…… 후우…….”
다른 생도들보다 5분이나 늦게 도착한 이세훈.
이것도 꼴찌가 확정돼서 생도들이 천천히 뛰었기에 이 정도지, 아니었으면 10분은 더 늦었으리라.
‘죽겠네…….’
묵주환의 효과가 좋아도 너무 좋다.
벌써 한계로 내몰리려는 육체에 이세훈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을 때. 두꺼운 손이 어깨를 붙잡았다.
“20바퀴.”
“……예. 갑니다.”
금방 호흡을 가다듬은 이세훈이 다시금 트랙을 달리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생도들 몇몇이 슬쩍 웃었다.
“체력은 진짜 바닥이네.”
“그러게. 전투는 영 꽝이겠는데.”
학과수석으로서 엄청난 존재감을 보이던 이세훈의 저런 모습을 보니 조금 가깝게 느껴졌고, 몇몇 이들은 그게 우습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 봐야 자신들과 같은 생도. 그 사실이 그들의 머릿속에 다시금 떠오른 것이다.
“자자. 주목.”
가볍게 박수를 치며 생도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리카로스가 이세훈에게도 들리게끔 큰 목소리로 수업을 시작했다.
“본래 도구 이해 수업은 무구들의 구조에 관해서 공부하는 이론 위주의 수업이었으나, 최근 들어 계속되는 ‘염도 사냥’ 때문에 수업 방식을 바꾸자는 의견이 나왔다.”
리카로스가 ‘염도 사냥’에 대해서 언급하자 생도들이 웅성거렸다. 영웅 등급 이상의 화속성 도검을 만들어낸 대장장이를 습격하여 강탈해가는 연쇄 사건.
아직 사망자는 없지만 상당히 논란 중인 사건이었는데 피해자인 대장장이들이 자신의 검과 함께 ‘양손’을 잃었기 때문이다.
“대장장이라고 해도 기본적인 전투능력은 필요한 법. 물론 부전공으로 충족할 수 있기에 반대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염도 사냥과 같은 일도 있기에 예외는 있어선 안 된다고 판단하여 정해졌다.”
생도들을 바라본 리카로스가 진중한 표정을 지었다.
“어떤 방비를 갖추더라도 최후에 자신의 몸을 지켜주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밖에 없다. 그러니 이번 수업을 통해 도구에 대한 이해를 높이며 동시에 자기 몸을 지키는 데 적합한 기술을 찾도록. 알겠나?”
“예!”
“좋아. 그럼 오늘은 검에 대해서 다뤄보도록 하지. 저쪽에 훈련용 검이 있으니…….”
리카로스가 수업을 진행하기 시작했고, 트랙을 돌면서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세훈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염도 사냥이라…… 그러고 보니 그런 게 있었지.’
워낙 옛날에 있었던 일인지라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했지만 그래도 다른 것들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잘 떠올랐다.
그도 그럴 것이 회귀 전에 염도 사냥은 결국 마지막까지 범인의 정체조차 알아내지 못하고 미제사건으로 끝나 버렸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도난당한 게 환염귀도였었지, 아마.’
누가 만들었는지는 기억은 안 나지만 전설 등급 무구로 상당한 완성도를 지닌 물건이었다는 것은 기억났다.
염도 사냥에 대해서 떠올리던 이세훈은 새삼 자신의 몸에 대한 경각심이 다시금 샘솟았다.
‘나도 이번에는 좀 조심해야겠어.’
바벨의 학과수석이면 당장 실력이 떨어지더라도 미래의 장인으로 여기고 어느 정도 높게 쳐주는 위치.
언제 어떤 사고에 휘말릴지 모르니 만약의 상황 정도는 대비해 두는 것이 좋으리라. 그런 생각을 하던 이세훈은 불현듯 한창 진행 중인 수업을 바라보았다.
“자. 이런 식으로 공격을 흘려내는 것도 가능하지.”
카가강!
생도가 휘둘러온 검을 간단하게 흘려내는 리카로스. 그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에 이세훈이 유심히 바라보았다.
‘검도 잘 다루기는 하는데 주특기는 아닌 것 같고…… 뭐지?’
보통 특정 기술을 집중적으로 익힌 사람이면 다른 무기를 휘두르더라도 그 일부가 엿보이게 마련.
하지만 리카로스의 움직임에서는 정확히 ‘검술’의 흔적만 보였는데 그 수준이 본인의 무력과 매치되지 않아 상당히 이질감이 들었다.
‘흐음. 어디서 많이 본 특징인데…….’
두 눈을 가늘게 뜬 이세훈이 검을 휘두르는 움직임을 자세히 살피며 뛰고 있을 때. 그 시선을 알아차린 리카로스가 소리쳤다.
“그만 뛰고 이리 와라!”
그 부름에 이세훈이 곧장 방향을 틀어 앞으로 향했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는 이세훈. 달리기가 그렇게까지 힘들었나 싶을 만큼 엉망이었는데 상태를 살펴보던 리카로스가 의외인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상태가 썩 나쁘지는 않군.’
숨을 헐떡거리는 와중에도 몸의 중심이 흐트러지지 않고 바로 잡혀 있다. 형편없는 체력과 별개로 자신의 몸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듯한 모습.
흥미롭게 바라본 리카로스는 미리 꺼내둔 훈련용 검을 이세훈에게 건넸다.
“앞에 말한 수업 취지에 대해서는 들었겠지?’
“예.”
“검술이 적합한지 봐줄 테니 한 번 휘둘러봐라.”
훈련용 검을 쥔 이세훈은 반사적으로 상태를 훑어보았다.
‘조잡하구만.’
최악이라고 말할 정도는 아니지만 빈말로도 괜찮다고는 말해줄 수 없는 수준. 훈련용으로 쓰이는 것이니 어쩔 수야 없겠지만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보자. 이런 밸런스면…….’
이세훈이 검에 맞춰서 파지법을 살짝 바꿨고 그 모습을 본 리카로스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방금 그건…….’
너무 자연스러운 움직임이라 다른 생도들은 이상한 점을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리카로스는 파지법에 의한 변화를 바로 알아차렸다.
방금까지 엉성하게 풀려 있던 이세훈의 자세가 한순간에 다른 사람처럼 완벽하게 잡혔기 때문이다.
‘검술을 따로 익힌 것 같진 않은데…… 설마 재능인가?’
자신이 잘못 본 게 아닐까 싶을 만큼 극적인 변화에 리카로스가 묘한 표정으로 보고 있을 때. 이세훈은 자신의 자세를 점검했다.
‘묵주환 때문에 제대로 움직이기는 힘들겠는데.’
여기서 무작정 검을 휘둘러봐야 느려터진 검 때문에 속에 천불이 날 뿐이다.
‘흐음. 그래, 그거나 써볼까.’
썩 좋은 기술은 아니지만 그래도 처음에는 그럴싸하게 받아칠 수 있을 터.
어떻게 움직일지 머릿속으로 정한 이세훈이 앞으로 검을 휘둘렀고, 그 모습에 리카로스가 두 눈을 빛냈다.
‘자세는 나쁘지 않군.’
하지만 방금까지 달리다가 온 탓인지 힘이 너무 떨어진다. 당장 쳐낼 수도 있었지만 잠재력을 살펴보는 게 목적이었기에 리카로스는 이세훈의 속도에 맞춰 대응했다.
카앙!
두 사람의 검이 다소 느리게 맞부딪쳤고, 그 모습을 구경하던 생도들이 서로 수군거렸다.
“진짜 느리네. 그거 달렸다고 저렇게 지쳤어?”
“그래도 모양새는 좀 나는데.”
“저렇게 느리게 휘두르면 나도 저 정도는 하겠다.”
누가 봐도 형편없는 이세훈을 위해 리카로스가 맞춰주고 있는 모습. 하지만 정작 그 검을 맞대고 있는 당사자는 생각이 달랐다.
‘훌륭하다.’
검이 사방팔방으로 휘어대던 다른 생도들과 달리 이세훈의 검은 정해진 경로를 따라 흔들림 없이 휘둘러졌다.
이만큼 검을 휘두르려면 검술에 조예가 있거나 자신의 몸을 제어하는 데 뛰어난 감각이 필요했다.
‘역시 학과수석으로 뽑힌 데는 다 이유가 있군.’
지금은 신체 능력이 낮아서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지만, 시간을 들여 성장시킨다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될 것이다.
흥미가 생겨난 리카로스가 성심성의껏 검을 마주 휘둘러주고 있을 때. 두 사람이 펼치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변했다.
‘이런…….’
나름대로 잘 막아내던 방금과 달리 뻥 뚫린 허점.
보폭조절에서 실수가 나온 것이었는데 앞에서도 조금씩 보이던 이세훈의 안 좋은 버릇이 체력의 한계와 맞물려 드러난 것이다.
‘이건 짚고 넘어가야겠군.’
대련에서는 몰라도 실전에서 이런 실수를 했다가는 눈 깜짝할 사이에 머리가 날아가게 될 것이다.
이번 공격을 마지막으로 대련을 끝내기로 한 리카로스가 빈틈을 향해 단숨에 파고들려던 그 순간.
“……?”
자신도 모르게 보게 된 이세훈의 두 눈.
빈틈을 찔린 사람의 눈이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차분한 모습에 리카로스의 사고가 가속되었고, 그의 시선이 이세훈의 검 끝을 향해 움직였다.
그리고 그 검 끝이 그려내는 궤적에 리카로스의 두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고.
카앙!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한 자루의 검이 허공을 날았다.
“…….”
“…….”
생도들 사이를 감도는 기묘한 정적.
그 속에서 리카로스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고, 아직 쥐어져 있는 검을 발견했다.
그리고 자신이 무슨 행동을 했는지 떠올리고는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나를 못 믿었다고?’
일개 생도, 그것도 아칼쿠프도 아니고 보르시파의 기술직 생도의 일검을 막아내지 못해 검을 놓쳤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니.
그 사실에 리카로스가 충격받은 표정으로 서 있었고.
‘……이게 왜 된 거지?’
이세훈 역시 충격받은 표정으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