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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가 다 만들어줌-15화 (15/309)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15화

“후우우우…….”

온몸에서 느껴지는 피로감에 몸을 축 늘어뜨린 이세훈은 자신이 만들어낸 결과물을 바라보았다.

작업대 위에 놓인 네 개의 묵빛 팔찌. 품질은 모두 동일하게 중급이었고, 원하는 성능 역시 완벽히 발현되었다.

‘주술식이랑 묵중암의 상성이 생각보다 좋았네.’

제작 과정은 절반 이상 단축되었고 효과는 기존에 계획한 것 이상으로 발현되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세훈을 만족스럽게 만든 것은 따로 있었다.

우우웅-

한데 놓인 묵주환들이 일으키는 희미한 공명.

별다른 효과 없이 마력만 살짝 일렁이는 정도였지만, 무구 제작에서 이 공명 현상이 의미하는 바는 컸다.

여기서 몇 가지만 개선하면 무구들이 서로 상승효과를 만들어내는 이른바 ‘세트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몸으로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한데…… 좀 더 기다려볼까.’

안 그래도 생각보다 묵주환의 효과가 강하게 나와서 부담스러운데 여기에 세트 효과까지 더해지면 지금 몸으로 감당하기 힘들어질 수도 있다.

어느 정도 신체 능력이 오른 다음이나, 아니면 적절한 방안이 떠오를 때까지는 미뤄두기로 이세훈이 결정했을 때.

“……공명 현상?”

뒤늦게 묵주환의 공명 현상을 발견한 류은하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중얼거렸다.

“예. 그렇게 강하진 않지만 잘하면 세트 효과도 노려볼 수 있겠네요.

“…….”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는 이세훈과 달리 류은하는 믿을 수 없는 눈으로 묵주환을 바라보았다.

무구끼리 공명 현상이 일어나려면 재료와 제작기술에 공통점이 있어야 하며 그 완성도가 균등해야만 한다.

그렇기에 대장장이의 실력이 기복 없이 체계가 잡혀있어야 했는데 이세훈은 그걸 벌써, 그것도 회귀등급 무구 네 개로 펼쳐낸 것이다.

“음…….”

아껴먹으려던 초콜릿이 한입에 먹으면 더 맛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버린 듯한 감각.

묵주환을 빤히 바라보던 류은하는 두 눈을 꾹 감으며 마음을 가라앉힌 뒤 이세훈에게 받은 것을 입가로 가져갔다.

콰드득 콰드득!

류은하의 입안에서 과자처럼 부서지는 거푸집 조각.

꼬르륵 소리까지 내는 류은하가 안쓰러워 입가심이라도 하라고 넘겨준 것인데 저렇게 허기만 채우듯이 마구 먹고 있는 것이다.

키이잉.

거푸집 조각을 먹을 때마다 류은하의 붉은 머리카락이 아주 희미하게 빛을 발하며 불길이 일렁이듯이 넘실거린다.

마치 화로의 불꽃과도 같은 그 모습에 이세훈이 그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오랜만이구만.’

류은하의 고유 스킬 ‘용혼광로鎔魂鑛爐’에 의한 신체 반응.

먹어 치운 무구의 힘이 소화되면서 저렇게 외부로 발현되는 것이었는데 회귀 전에 자신이 보았던 광경에 비하면 성냥이나 다름없는 수준이었다.

‘그때는 머리카락도 그렇고 장난 아니었는데 말이지.’

회귀 전의 기억을 떠올린 이세훈이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그 시선을 알아차린 류은하가 눈을 마주치고는 헛기침했다.

“크흠. 조금 소란스럽게 했군요. 죄송합니다.”

“아뇨. 저 때문에 고생 중이신데 제대로 된 무구도 못 드리는 제가 죄송하죠.”

회귀 전에 직접 들은 바에 의하면 류은하는 무구의 재료와 등급에 따라 효과와 맛이 다채로워지며 깊어진다고 했었다.

그러니 대충 만들어낸 거푸집 조각은 아마 소금 뿌린 밀가루 부스러기 같은 맛밖에 안 날 터. 멋쩍어하는 이세훈의 모습에 류은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괜찮습니다. 이것도 꽤 먹을 만하니까요.”

“그게요?”

“예. 비교하자면…… 튀김 부스러기 같은 느낌입니다.”

생각보다 좋은 평가에 이세훈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그래도 거푸집처럼 대충 만든 게 그런 맛이 날 수 있는가. 잠시 고민하던 이세훈은 그럴싸한 이유를 떠올렸다.

‘류은하한테 맞춰서 만들어주는 게 습관이 돼서 그런가.’

사람들이 저마다 입맛이 있듯 류은하도 선호하는 무구의 ‘맛’이 있었다.

물론 자신은 그걸 느낄 수 없었기에 완벽히 맞춰줄 수는 없었는데 평가를 들으면서 조정한 결과 어느 정도는 맞출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거 어쩌면 생각보다 인연 레벨을 쉽게 올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예상치 못한 소득에 이세훈이 슬쩍 웃으며 대답했다.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이네요.”

“물론 눈앞에 저런 물건들을 두고 먹고 있다는 게 조금 아쉽긴 하지만…… 아, 그러고 보니 오색화도와 화적초는 언제쯤 처리하실 생각입니까?”

묵주환을 보고 더더욱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두 눈을 빛내며 욕심을 내는 류은하. 그 모습에 이세훈은 어쩔까 하다가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지금은 판매할 생각이 없습니다.”

“예? 혹시 값이 모자란 건…….”

“아뇨. 그보다는 수업에 대비해서 놔두려고요.”

대부분의 수업은 연습용 무구를 따로 사용하지만 몬스터 토벌 수업 같은 실전적인 수업은 본인 장비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만약에라도 그런 수업에 참가하게 될 수도 있으니 자신과 상성이 좋은 오색화도와 화적초를 남겨두려는 것이다.

‘그리고…… 아직은 조금 그렇지.’

과거의 일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래도 썩 좋지 않은 기억이었기에 류은하에게 제대로 만든 무구를 먹이는 것이 망설여졌다.

언제까지고 이래서야 안 되겠지만 당장은 인연도 성립된 상태니 조금 정도는 미뤄도 되리라.

‘공복만큼 최고의 조미료가 없다는 말도 있고.’

류은하의 기대치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그것을 만족시켰을 때 인연 레벨도 극적으로 오르지 않겠는가.

물론 만족시키지 못하면 실망감만 주겠지만, 그런 경우는 자신이 대장장이를 때려치우면 때려치웠지 절대로 없으리라.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군요.”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이는 류은하. 분명히 표정은 변화가 없는데 그 눈빛에서 아쉬움이 절로 느껴진다.

그 모습에 이세훈이 슬쩍 웃으며 몇 마디를 덧붙였다.

“나중에 다른 장비가 마련되면 학과장님께 가장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크흠.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류은하는 남은 거푸집 조각을 입안에 털어 넣은 다음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제련은 이걸로 모두 끝입니까?”

“예. 다 끝났습니다.”

“그럼 이제 나가도록 하죠. 뒷정리는 직원들이 와서 할 테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다행이네요. 청소할 힘도 안 남았었는데.”

회귀 전에 다녔던 아카데미에서는 이런 것도 하나하나 직접 해야 했는데 별거 아닌 부분에서도 장점이 느껴진다.

묵주환과 재료들을 모두 챙긴 이세훈이 만족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순간.

“아.”

현기증과 함께 갑작스레 반 바퀴 도는 시야.

체력과 마력이 바닥날 때 나타나는 탈진증상. 회귀 전에도 망치질하다 많이 겪어본 증세가 나타난 것이다.

‘너무 무리했나?’

나름대로 조절한다고 한 것 같았는데 긴장감으로 겨우겨우 버티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대로 넘어지면 조금 아프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툭.

몸이 기울어지기도 전에 등을 받쳐주는 손.

그에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리자 쓰러지는 자신을 잡아챈 류은하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려다보았다.

“괜찮습니까?”

“아, 예. 체력 분배에서 약간 실수했나 보네요. 그냥 가벼운 현기증입니다.”

이런 탈진 증세는 정말 질리도록 겪어왔었기에 이세훈은 별다른 느낌도 없었지만, 류은하의 시선에서는 달랐다.

“…….”

한계까지 쥐어짜서 떨리는 몸과 거칠어진 숨. 이 정도로 탈진증세가 올 정도면 온 뼈마디가 쑤셔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아픈 내색조차 하지 않는다.

강하다기보다는 무감각하게 느껴지는 그 모습에 류은하는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몸을 일으켜줬다.

“열심히 하는 것도 좋지만, 너무 무리해서도 안 됩니다. 오늘은 돌아가면 푹 쉬도록 하십시오.”

“물론이죠.”

“정말 쉬어야 합니다. 한번 다치면 돌이킬 수 없으니까요.”

“걱정하지 마세요.”

“진심으로 하는 말입니다.”

“…….”

알겠다는데도 계속해서 주의를 주는 류은하의 모습에 이세훈이 살짝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뭐 잘못 먹었나?’

회귀 전에는 맛있는 무구 좀 만들어보라고 그렇게 닦달만 해대던 사람이 왜 이렇게 변했단 말인가?

갑자기 왜 저러나 싶어 류은하를 바라보던 이세훈은 금방 그 원인을 깨달았다.

‘아. 생도라서 그런가.’

회귀 전에 만났을 때는 대장장이로서 활동하고 있던 시절. 그때는 고객으로서 찾아온 것이니 학과장인 지금과 태도가 다를 수밖에 없으리라.

‘모처럼 발견한 유망주가 무리하다 다치는 것만큼 아까운 일도 없을 테고.’

이러나저러나 회귀 전과는 참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이세훈이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고, 그 반응에 류은하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제 말을 진지하게 듣지 않은 모양이군요.”

“아니. 그런 건…….”

“됐습니다. 숙소까지 부축해 드릴 테니 얌전히 기대십시오.”

어느 정도 힘이 돌아왔기에 혼자서 걸을 수 있다고 했지만, 류은하는 단호하게 거절하며 계속해서 부축했다.

그렇게 두 사람이 딱 붙은 채 본관의 밖으로 나온 뒤. 류은하가 자신의 몸을 살폈다.

“이 정도면…….”

도약 한 번에 사용하기에 딱 적당할 것 같다. 그렇게 계산을 끝낸 류은하는 그대로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고소공포증은 있나요?”

“없습…… 으억?!”

대답을 다 듣기도 전에 이세훈의 오금 쪽에 손을 집어넣어 번쩍 들어 올린 류은하.

졸지에 목에 매달리게 된 이세훈이 기괴한 표정을 지었고 류은하의 붉은 머리칼 끝이 주홍빛으로 타올랐다.

“갑니다.”

구우우웅.

류은하의 몸 안에 울려 퍼지는 묵직한 구동음. 그리고 발끝이 가볍게 바닥을 박찬 순간.

투웅─!

두 사람의 몸이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

눈 깜짝할 사이에 변한 주변의 풍경. 어두컴컴한 밤하늘 아래서 보르시파의 전경을 내려다보게 된 이세훈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방금 거푸집이 이 정도였다고?’

꼬르륵 소리가 났었으니 앞서 먹은 무구도 없었을 터.

한 마디로 거푸집 조각만 먹어서 이만한 힘을 끌어냈다는 것이었는데 이세훈이 예상한 출력의 두 배 이상이었다.

‘맛이 좋을수록 출력도 꽤 오르나 보네.’

회귀 전에는 자신의 실력이 늘어서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맛 또한 영향이 컸던 모양이다.

이세훈이 신기해하며 보르시파의 구역을 내려다보고 있을 때. 문득 제련학부의 본관 건물의 입구 쪽에서 눈에 익은 모습이 보였다.

‘에리카?’

혹시나 해 다시 보려 했지만,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다른 건물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방금 본 풍경을 떠올린 이세훈은 이내 생각을 털어냈다.

‘설마 에리카겠어.’

결계구성학 테스트도 다 봤는데 뭐하러 자신을 쫓아와서 몇 시간이고 본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겠는가.

자신이 잘못 본 것이라고 판단한 이세훈은 금방 그 인영을 머릿속에서 지웠고, 류은하가 기숙사 건물 앞에 착지했다.

투웅.

뛰어오른 높이와 다르게 부드러운 착지.

방금 도약으로 힘을 다 쓴 듯 희미하게 주홍빛으로 빛나던 머리칼 끝부분도 원래대로 돌아왔고 류은하도 이세훈을 곧장 바닥에 내려주었다.

그리고 다시금 이세훈의 어깨를 잡으며 엄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앞에도 말했지만 오늘은 푹…….”

“…….”

“……쉴 것 같으니 더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이세훈의 표정을 보고 적당히 말을 끊어낸 류은하는 어깨를 놓아주며 다른 말을 꺼냈다.

“오늘 제련. 무척 훌륭했습니다.”

오래전의 기억을 떠오르게 만드는 칭찬. 그에 이세훈이 씁쓸함을 숨기며 웃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인사를 한 류은하가 돌아가고, 자신의 방으로 올라온 이세훈은 대충 몸을 씻은 다음 침대에 몸을 내던졌다.

“윽…….”

부드러운 침대에 누웠는데도 온몸이 쑤셔온다.

류은하가 왜 저렇게 호들갑을 떠나 했는데 아무래도 자신의 몸을 너무 과대평가했던 모양이다.

‘오늘은 이제 진짜 쉬어야겠구만.’

몰려오는 졸음에 반쯤 몸을 맡긴 채 이세훈은 가만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금방이라도 잠에 들 것처럼 피곤했지만, 의외로 눕고 나니 정신은 또렷해진다. 그리고 그 와중에 떠오르는 것은 회귀 전의 기억들.

‘류은하랑 만난 뒤라 그런가…….’

하루 종일 공방에 처박혀 있기는 했으나 이세훈은 일반인들과 비교하자면 여러 가지를 아는 편이었다.

말년에는 인류연합의 중추이기도 했고 삼견 중 정보에 빠삭한 빙견 아미르가 제 잘난척한다고 이것저것 떠벌렸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녀석한테 들은 건 대부분 한참 뒤의 사건들이란 말이지.’

물론 지금도 암암리에 진행되고 있는 사건들도 있겠지만, 그건 몇 가지 단편적인 정보로만 대응하기는 힘든 일들이다.

‘뭐…… 당장은 바벨 안에서 가능한 것부터 해볼까.’

그리고 지금은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진작 정해뒀다. 휴대폰을 꺼낸 이세훈은 미리 찾아봤던 뉴스를 읽었다

[무형문화재 ‘염륜잔화창’ 지정해제 위기. 현 문주의 자격 부족 논란.]

[염화문 “곧 실적으로 증명해낼 것”. 공백기를 끝낼 후계자는 나오나.]

[대한민국을 책임질 유망주. 염화문의 ‘염성하’는 누구인가?]

여기저기 보이는 재수 없는 상판. 아직 어린 광견의 모습을 바라보던 이세훈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딱 기다려라.’

이번에야말로 허튼짓을 못 하도록 아주 단단히 기강을 잡고 말 것이다. 그렇게 결심하며 이세훈이 두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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