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13화
결계구성학 교수 로버트 패리.
현역 영웅 시절 일본에서 주로 활동했었던 그는 삼대가문 중 하나인 이노우에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
현 당주에게 각종 지원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의 아내가 이노우에 가문의 방계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지연과 혈연으로 묶인 사이. 그렇기에 이노우에와 관련된 이들이라면 더욱 신경을 써주는 편이었고.
“아가씨가 보르시파의 학과수석에 관심을 보이셨다고?”
자신의 제자가 가져온 소식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예. 보십시오.”
정류장에서 이세훈에게 시비를 걸었던 사나운 인상의 청년. 세이츠가 자신이 가져온 사진을 보여주었다.
에리카와 마주 보고 있는 이세훈의 모습. 딱히 특별한 것은 없지만 로버트는 골치 아픈 표정을 지었다.
“왜 갑자기 수업을 신청하셨나 했더니…… 이런 이유였군.”
본래 결계구성학이 주술학부에서 그럭저럭 인지도 있는 수업이긴 했지만 테스트로 사람을 걸러낼 만한 수준까지는 아니었었다.
하지만 올해는 신청자 수가 작년 대비 무려 3배나 늘어났는데 대부분이 에리카가 이 수업을 신청했다는 소문을 듣고 모여든 것이다.
‘도련님의 부탁도 있었으니 한 번 정리해야겠군.’
어떻게 걸러내야 할지 고민하던 로버트는 금방 적절한 방법을 떠올렸다.
“내일 테스트에는 현혼미궁을 사용한다.”
로버트의 이야기에 세이츠가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현혼미궁眩魂迷宮. 감각을 비틀어 헤매게 만드는 기초적인 효과의 결계였는데 그 위력은 결코 얕볼 수 없었다.
주술식이 매우 은밀하여 결계에 해박하거나 재능을 타고난 자가 아니라면 알아차리기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너무 과하다고 하지 않을까요?”
“신청자도 많으니 조금 과하게 걸러내도 뭐라 안 할 거다. 이것도 통과 못 할 정도면 수업을 들어도 의미가 없고.”
“알겠습니다.”
세이츠의 대답을 들은 로버트는 문득 사진 속의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이 녀석이 통과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
학과수석이니 기본적인 재능이야 있겠지만 결계와 관련된 재능이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잠시 고민하던 로버트는 금방 결론을 내렸다.
‘그것도 나쁘진 않겠지.’
같이 수업신청을 취소하든, 아니면 아예 이세훈에 대한 흥미를 잃든 어중이떠중이들을 떨어뜨릴 수 있을 테니 나쁘지 않다.
이세훈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대도 없었기에 로버트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넘겼고.
“테, 테스트 통과입니다…….”
예상치 못한 결과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테스트?”
의아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이세훈.
자신이 무엇을 통과한 것인지 전혀 모르는 듯한 그 모습에 로버트의 표정이 굳어졌다.
‘현혼미궁에 문제가 있었나? 아니, 그럴 리는 없다.’
결계에 문제가 있었다면 시술자인 자신이 모를 수가 없을 터. 그 경우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로버트는 이세훈과 함께 공터로 들어온 에리카를 바라보았다.
‘그럼 아가씨가 도움을 주신 건가?’
주술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아가씨라면 얼마든지 가능했겠지만, 이 역시 지켜보고 있던 자신이 모를 수가 없다.
여러 가능성을 떠올리던 로버트는 이내 한 가지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세훈이 자신의 능력만으로 현혼미궁을 돌파했다.’
그것도 주술을 사용해 대응하거나 마력을 끌어올려 저항하는 정석적인 방법도 아니었다.
오직 본능적인 감각만으로 현혼미궁의 효과를 돌파해서 이 공터까지 걸어온 것이다.
‘이걸 도대체 뭐라고 해야 할지…….’
주술에 대한 재능은 모르겠지만, 저 감각만큼은 학과수석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재능이었다.
복잡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로버트는 생각을 가다듬으며 현혼미궁을 돌파한 생도들을 바라보았다.
“지금부터 2차 테스트를 통해 학급을 분리하겠다. 차례대로 나오도록.”
로버트의 부름에 한 생도가 에리카를 힐끔 보더니 자신만만하게 앞으로 걸어 나왔다.
“제가 먼저 해보겠습니다.”
“……좋다. 2차 테스트는 간단하다.”
로버트가 지면을 향해 왼손을 가볍게 휘두른 순간. 손끝의 궤적을 따라 붉은색 마력이 지면을 타고 흘러 눈 깜짝할 사이에 주술식을 형성했다.
우웅!
로버트와 생도 사이에 생겨난 붉은색 결계.
마치 거미줄과 같은 형태였는데 그 심상치 않은 생도가 긴장한 표정으로 바라보았고, 로버트가 설명을 이었다.
“눈앞의 결계를 마력만으로 파훼하는 것. 시간에 따라 점수를 매길 테니 빠르고 정확하게 하도록. 시작.”
로버트의 호령과 동시에 생도가 재빠르게 결계에 양손을 얹어 마력을 흘려 넣었다.
결계를 유지하고 있는 핵을 찾아내서 그것을 파괴한다. 과정 자체야 단순했지만 문제는 그 대상이다.
“큭…….”
로버트가 펼쳐낸 결계는 그 생김새와 마찬가지로 거미줄과 같은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마력이 주술식에 파고들면 거미줄로 진동을 느낀 거미가 도망가듯 핵이 위치를 옮겨버린다.
그렇다 보니 주술식 전체를 둘러싸고 천천히 몰아가야 했는데 정신적으로나 마력적으로나 부담이 상당한 것이다.
파캉!
“후우…… 후우…….”
기세 좋게 나선 것과 달리 상당한 고생 끝에 결계가 파훼되었고 그 모습을 바라본 로버트가 담담하게 평가했다.
“2분 23초. 구조를 파악하는 데 좀 더 신경을 써야겠군. 나쁘지는 않았다.”
“……감사합니다.”
평가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뿐. 에리카가 눈길도 주지 않는 것을 본 생도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옆으로 빠졌다.
그 뒤로 이어진 테스트의 양상도 크게 다르지 않았고, 몇몇 생도들은 아예 파훼하는 데 실패하기도 했다.
“자네들은 기초반부터 시작하게.”
현혼미궁을 통과했으니 떨어뜨리진 않겠지만 지식이 없는 만큼 기초반으로 가는 것이 당연한 수순.
자신의 능력을 뽐내려 했었던 생도들이 패잔병처럼 옆에 늘어섰고, 그들의 시선을 받으며 에리카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시작하십시오.”
투웅-
로버트의 호령과 동시에 에리카의 손이 결계의 중심에 닿았다가 떨어졌다.
붉은색 결계에 파문을 일으키며 은은하게 퍼져 나가는 은빛 마력. 그리고 그 일렁임이 결계의 끝자락에 닿은 순간.
파스슥.
외곽에서부터 결계가 바스러지기 시작했다.
결계의 핵을 찾아내서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주술식을 통째로 해체해서 붕괴시킨 것인데 그 모습을 본 생도들이 입을 떡 벌렸다.
보통 저런 방식은 결계를 빠르게 파훼해야 하거나, 기반지식이 없는 자들이 무작정 밀어붙일 때나 사용하는 거추장스럽고 비효율적인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뭔…….”
“왜 저렇게 빨라?”
하지만 에리카는 단 한 번의 손짓, 그리고 극소량의 마력만으로 그것을 간단하게 해냈다.
그 말인즉 에리카에게 있어서 이 정도 결계는 핵을 찾아내는 것이나 주술식을 통째로 해체하는 것이나 크게 차이가 없을 만큼 간단하다는 것이었다.
“22초. 괜찮았지만 정석적인 파훼법이 2초 정도 빨랐을 것 같습니다. 방법을 좀 더 신중히 선택하십시오.”
“명심하겠습니다.”
크게 놀라는 기색 없이 대화를 나누는 로버트와 에리카.
그 모습에 외부에서 찾아온 생도들은 그제야 자신들이 잘 보이고자 했던 상대가 누구였는지 다시금 깨달았다.
‘저게 학과수석이구나.’
‘실력으로는 명함도 못 내밀겠네.’
모두가 멋쩍어하는 사이 에리카가 옆으로 빠졌고, 그다음 차례인 이세훈이 앞으로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잘 부탁드립니다.”
긴장감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는 모습.
속으로 이세훈을 제련학부라고 깔보고 있던 생도들이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같은 학과수석인 에리카가 엄청난 능력을 선보인 만큼 이세훈 역시 대단한 모습을 보여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세훈에게 기대감을 느끼고 있는 것은 마주 보고 있는 로버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별한 건 없어 보이는데…….’
눈매가 사납고 품행이 불량해 보이는 청년. 그나마 특이한 점이라면 눈빛에서 또래답지 않은 원숙함이 느껴진다는 것이지만 그것만으론 특별하다 할 수 없다.
‘지금부터 알아보는 수밖에.’
이세훈에 대한 판단을 보류한 로버트는 곧장 지면을 향해 자신의 손을 휘둘러 결계를 만들어냈다.
“흐음…….”
긴장하며 파훼를 준비하던 생도들과 달리 결계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이세훈.
특히 결계가 생성되며 지면에 새겨진 흔적을 계속해서 빤히 쳐다보았는데 그 모습에 로버트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대답하면서도 바닥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이세훈.
조금 건방져 보이는 그 태도에 로버트는 눈매를 찌푸리면서도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그렇군. 그럼 시작해라.”
삑!
조교 노릇을 하던 세이츠가 타이머를 눌렀고, 그제야 이세훈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결계를 마주 보았다.
“…….”
하지만 마주 보기만 할 뿐.
결계와 접촉한다거나 마력을 흘려보내는 등 파훼하려는 행동을 보이지 않았고, 주변에서 바라보던 이들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뭐 하는 거야?”
“시작된 거 모르나?”
예상치 못한 상황에 모두가 당황하고 있을 때. 이세훈은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들어 눈앞의 결계를 바라보았다.
‘거미와 거미줄을 모티브로 만들어낸 결계. 어떤 환경에서도 펼쳐내기 쉬운 범용성과 핵이 부서지지 않으면 재생되는 유지력을 겸비하고 있다.’
특이성은 없지만 방어용으로는 안정적이다. 그리고 교수가 펼친 기술답게 완성도가 뛰어났는데 특히 이세훈의 눈을 사로잡는 것은 주술식의 구조였다.
‘저만한 마력을 쏟아부었는데 흔적이 없어.’
아무리 완급 조절이 훌륭하다 해도 같은 자리에서 반복해서 결계를 펼치다 보면 그 여파로 지면에 자국이 남게 마련.
하지만 로버트의 결계는 바닥의 풀 한 포기도 뭉개지 않을 만큼 섬세하게 펼쳐졌다.
‘주변의 환경과 동화하는 데 특화된 구조라…….’
그 효과를 보고 있자니 이세훈의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하나의 재료가 떠올랐다.
화로의 불꽃과 망치질. 그리고 주입되는 마력조차 모조리 먹어치우는 묵빛의 광석. 묵중암을 제련하기가 까다로운 것은 그 엄청난 존재감 때문이었다.
‘그래서 자극이 흡수되지 않도록 두 가지의 자극을 동시에 가하며 제련해야 하지.’
불로 달굴 때는 열기가 사라지지 않도록 망치질을, 망치질할 때는 그 충격이 사라지지 않도록 불로 달궈야 한다.
이것도 그냥 하는 게 아니라 한쪽 자극이 비율이 높도록, 약 51%와 49% 정도로 아주 근소한 차이가 나도록 유지해 줘야만 했다.
안 그러면 앞에 누적시킨 자극이 일부분 흡수되면서 균형이 무너져 버리기 때문이다.
“도대체 뭐 하는 거지?”
1%의 오차도 허락하지 않을 정밀한 감각과 일반적인 제련보다 몇 배나 긴 과정을 버틸 체력.
묵중암을 제련하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가 꼭 필요했지만, 이세훈은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만약 묵중암에 누적시킨 자극을 사라지지 않게 붙잡아둘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지금 내 말을…….”
“놔두세요.”
“으음…….”
그 가능성을 떠올린 순간. 이세훈의 머릿속으로 한 팔찌의 도면이 순식간에 그려진다.
외형과 구조, 그리고 내부에 새겨질 마력회로까지. 설계는 끝났으니 남은 것은 이게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 줄 검증뿐.
그제야 자신만의 세계에서 벗어난 이세훈은 눈앞의 결계를 다시금 바라보았다.
‘구조는…… 얼추 알 것 같군.’
회귀 전 이름도 모르고 마구잡이로 쌓아왔던 수많은 지식. 그리고 어제 에리카의 잠깐 보여줬던 결계의 주술식.
머릿속으로 하나의 길을 만들어낸 이세훈은 곧장 오른손에 자신의 마력을 끌어올렸다.
화륵.
홍염을 휘감은 오른손. 이세훈은 그것을 결계의 중심부에 가볍게 두드렸고.
화르륵!
그 불길이 결계 전체로 번지기 시작했다.
주변으로 번진 불길은 얼마 지나지 않아 결계를 통째로 무너뜨렸고, 그 광경에 모두가 할 말을 잃은 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렇게 어색한 침묵이 공터를 채우던 그때.
“……됐다.”
이세훈이 주먹을 꽉 움켜쥐며 두 눈을 번뜩였다.
“이거면 된다!!!”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우렁차게 소리치고는 곧장 몸을 돌려 공터 밖으로 달려가는 이세훈.
누가 말릴 새도 없이 떠나 버린 그 뒷모습에 모두가 멍하니 바라보다 세이츠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타이머를 껐다.
삑!
“7분 45초입니다…….”
결계를 파훼한 생도 중에서는 가장 오래 걸린 기록. 하지만 모두가 그 시간이 크게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방금 이세훈이 한 것은 결계를 파훼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무너뜨리는 데 효과적인 ‘파훼식’을 아예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처음 본 주술식의 파훼식을 만들어내는 데 걸린 시간이 고작 7분 45초…….’
이번에야 7분 45초지만 다음에 똑같은 결계를 마주한다면 이세훈은 10초도 되지 않아 파훼해 버릴 것이다.
“…….”
그 사실에 로버트가 굳은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고.
“…….”
에리카 역시 굳은 표정으로 이세훈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