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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가 다 만들어줌-12화 (12/309)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12화

정류장에서 나온 이세훈이 주술학부의 본관으로 향했고, 그 뒤로 한 명이 총총거리며 따라붙었다.

기척을 숨길 생각도 없이 세 발짝 정도만 거리를 두고 따라오는 인기척. 돌아갈 생각이 없어 보이는 그 발소리에 이세훈이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

똑같이 걸음을 멈추고 빤히 올려다보는 에리카.

빨리 안 가고 뭐 하냐는 듯이 바라보는 그 모습에 이세훈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물었다.

“계속 따라올 거냐?”

“응.”

“내가 싫다고 했을 텐데.”

“알아. 나도 따로 볼일이 생긴 거야.”

“무슨 볼일?”

이세훈의 물음에 에리카가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널 따라가는 거.”

“…….”

뻔뻔하기 그지없는 에리카의 대답에 이세훈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얘는 또 왜 이러는 거야?’

무슨 사건이라도 있었으면 모를까 입학식 때 눈 한 번 마주친 것 말고는 아무런 일도 없었지 않았던가.

수상할 정도로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에리카의 모습에 이세훈이 지그시 바라보았다.

“혹시 예전에 나랑 만난 적 있었냐?”

“입학식 때가 처음이야.”

“그럼 나한테 왜 이렇게 관심이 많아?”

이세훈의 물음에 에리카가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의아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처음 본 사이면 관심을 가지면 안 돼?”

“그야…….”

당연하지, 라고 대답하려던 이세훈은 문득 자신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았다.

만약 회귀 전이었다면 지금 이때의 자신은 보잘것없었으니 에리카처럼 유명한 인물이 관심을 보이는 것에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보르시파의 학과수석으로 바벨 내부와 바깥에서도 주목받는 유망주.

‘이상할 건 없나?’

바벨뿐만 아니라 어디든 능력 있는 사람에게 사람이 모여드는 것은 당연한 일. 묘하게 납득해 버린 이세훈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에리카를 다시 바라보았다.

“안 돼?”

정말로 안 되냐는 듯 물어보는 에리카.

악의는 없는 듯한 그 모습에 이세훈이 잠시 고민하다가 멋쩍게 대답했다.

“뭐…… 안 되는 건 아니지.”

“그럼 다행이네.”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는 에리카.

그 스스럼없는 모습에 이세훈은 왠지 모를 낯간지러움을 느끼며 다시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정확히 어떤 부전공을 찾는 거야?”

동의를 얻었다고 생각했는지 에리카가 세 발짝을 좁혀 나란히 선 채 물었고, 이세훈도 순순히 대답했다.

“버프와 관련된 부전공.”

처음에는 단순히 버프를 걸어줄 사람이나 물건만 구할 생각이었지만, 생각해 보니 미래를 생각한다면 이번 기회에 배워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아 보였다.

자신이 직접 배워서 사용한다면 조정하기도 쉬울뿐더러 이후에도 쓸 때가 많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너무 회귀 전의 방식에 얽매여 있었어.’

무심코 그때와 비슷한 성장방식만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라진 만큼 좀 더 시야를 넓힐 필요성이 있다.

그리고 그 첫걸음이 이번에 배울 버프가 되리라.

“버프라면 어떤 종류?”

“세부적으로 강화되는 쪽이 좋겠지. 제련에 방해가 되면 안 되니까.”

“제련…….”

이세훈의 대답에 잠시 고민하던 에리카가 물었다.

“그러면 결계술은 어때?”

“결계술? 그건 방어 쪽 아닌가?”

“사용법에 따라서는 달라질 수 있어. 예를 들면.”

품에서 고급스러운 문양의 사각봉투를 꺼낸 에리카가 그 겉면을 오른손으로 부드럽게 훑었다.

그러자 은빛의 마력이 그 뒤를 따르며 주술식을 형성했고 사각봉투 겉면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자. 찢어봐.”

에리카가 건넨 사각봉투를 받은 이세훈은 망설임 없이 두 손으로 붙잡고 힘차게 위아래로 뜯었다.

드득.

하지만 사각봉투는 구겨지기는커녕 강철로 만든 것처럼 빳빳하게 버텨냈고, 그 결과에 이세훈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강도를 높인 건가? 아니, 그보다는…….’

무언가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린 이세훈은 사각봉투를 찢는 대신 입구 쪽을 열어보았다.

그러자 방금까지의 빳빳함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부드럽게 휘어지며 열리는 사각봉투. 그 모습에 이세훈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과연. 이런 식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거구만.’

일정 이상의 힘을 받을 때는 강철처럼 단단해지지만, 그 이외의 상태에서는 본래의 형질을 유지한다.

상황에 따라서 능동적으로 적용되는 강화 수치. 매 순간 섬세한 조정이 필요한 제련과 잘 맞는 기술이었다.

‘그리고 이 주술식…… 뭔가 익숙한 느낌인데.’

회귀 전에 참고한 자료 중에 비슷한 게 있었던 걸까.

이세훈이 사각봉투를 빤히 바라보고 있을 때. 에리카가 옆에서 의기양양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이 정도로 복합적인 응용은 쉽지 않겠지만, 특정 상황에서만 사용할 거라면 교수의 도움을 받아서 적합한 결계술을 만들어낼 수 있을 거야.”

“흐으음…….”

“결계구성학의 교수와 친분이 있으니까 원한다면 따로 소개도 해줄게. 대신 그…….”

“아. 이거구만.”

부우욱!

이세훈의 손에 반으로 찢어진 사각봉투. 그 모습에 에리카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간단하게 새겨 넣었다고는 해도 가문의 결계술로 강화한 물건. 그런데 그게 마력이 제대로 실려 있지도 않은 손에 저리 허무하게 찢어지다니?

“…….”

저런 일이 가능하려면 두 가지밖에 없다.

결계를 파훼하는 데 특화된 스킬을 보유하고 있거나, 아니면 그 짧은 시간 안에 ‘이해’하고 파훼했거나.

어느 쪽이든 심상치 않은 능력이었기에 에리카가 굳은 표정으로 보고 있을 때. 이세훈은 남은 주술식까지 모조리 해체하듯이 사각봉투를 잘게 찢어냈다.

‘이런 구조라면 확실히 쓸 만하겠어.’

전투 중에 쓰기는 까다롭겠지만 제련할 때 사용할 거라면 조금만 배워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은 이세훈이 에리카를 바라보았다.

“결계술도 확실히 괜찮네. 조언 고맙다.”

“……응.”

“나는 수업 신청하러 갈 테니까 너는 저기 뒤에 따라오는 놈들이랑 밥이나 먹으러 가라. 이건 내가 버릴게.”

손을 흔든 이세훈이 대답을 듣지도 않고 주술학부의 본관을 향하자 그동안 소리 없이 뒤쫓아 왔던 부하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에리카에게 곧장 달려왔다.

“괜찮으십니까 아가씨?!”

“그 녀석이 뭔가 이상한 짓이라도 한 건…….”

온갖 호들갑을 떨며 에리카의 몸을 살피는 부하들.

하지만 에리카는 그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본관으로 향하는 이세훈을, 정확히는 그 손에 구겨져 휴지통에 버려진 사각봉투를 바라보았다.

“……초대장.”

생도 중에서도 상류층에 속한 엘리트들만이 참석할 수 있는 교류회 ‘노블레스’.

일반 생도들은 어떻게든 얻으려는 그 초대장이 이세훈의 손에서 갈기갈기 찢어졌고

“준 건데…….”

에리카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 * *

“…….”

블라인드 틈새로 들어오는 햇살과 어둑한 천장.

잠에서 깨어난 이세훈은 침대에 누운 상태 그대로 천천히 숨을 고르며 어제 있었던 일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부전공 신청 끝낸 다음에 트레이닝 센터에서 훈련했었지.’

기억 사이에 무언가 애매하거나 어색한 점은 없었는지 세세하게 떠올리던 이세훈은 이어서 자신의 몸과 주변 물건을 쓰다듬으며 감촉을 확인했다.

그리고 약 30분에 걸친 확인이 끝난 뒤. 침대에 다시 푹 늘어진 이세훈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진짜 맞네.”

과거로 회귀한 뒤 매일 아침 행해지는 확인 작업.

혹시 죽어가는 와중에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닌지, 그도 아니면 만마전의 잔당들이 자신의 뇌를 통 속에 담아두고 마력으로 자극을 주고 있는 건 아닌지.

그런 만약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것이다.

‘아니라는 걸 아는데도 확인을 안 하면 찝찝하단 말이지…….’

자신의 이런 모습이 조금 답답하긴 하지만 이건 시간이 해결해 주는 수밖에 없다.

기분이 나쁘면서도 한편으로는 개운함을 느낀 이세훈은 곧장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

소파와 탁자, TV 같은 기본적인 가구가 모두 갖춰진 거실. 혼자서 쓰기에는 매우 넓은 집이었는데 이 모든 것이 학과수석이기에 주어진 것들이었다.

‘어째 회귀 전에 살던 집보다 더 좋은 것 같네.’

보르시파가 한눈에 보이는 전경을 내려다보던 이세훈은 가볍게 몸을 씻은 다음 생도복으로 갈아입고 밖으로 나섰다.

‘오전은 주술학부만 다녀오면 되나.’

어제 부전공으로 신청한 ‘결계구성학’에서 간단한 테스트를 본다고 했기에 주술학부를 잠시 들러야 한다.

그게 끝나고 나면 점심때까지 트레이닝 센터에 처박혀서 이 거지 같은 몸을 쥐어짜 내면 되리라.

오전 일정을 정리한 이세훈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순간.

“뭐야. 여긴 왜 온 거야?”

기숙사의 현관 앞에서 묘한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나도 몰라. 그 녀석 보러 온 거 아니야?”

“그러고 보니 저번 전시회 때도…… 야. 왔다.”

현관에 모여서 속닥거리던 생도들이 이세훈을 발견하고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일제히 시선을 보내온다.

‘뭐야?’

그 갑작스러운 상황에 이세훈이 생도들이 바라보고 있던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고.

“…….”

현관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에리카의 뒷모습을 발견했다.

다른 용무로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주변에 생도들이 보내는 시선이나 어제 일들을 생각하면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지 명확하다.

속으로 한숨을 내쉰 이세훈은 곧장 에리카에게 다가갔다.

“누구 기다리는 거야?”

이세훈의 물음에 정면만 바라보고 있던 에리카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눈을 맞추며 대답했다.

“너.”

“……그렇구만.”

어째서 아니었으면 했을 때는 꼭 맞는 걸까.

쓴웃음을 지은 이세훈은 계속해서 자신을 쳐다보는 에리카에게 물었다.

“무슨 일인데?”

“오늘 결계구성학 테스트 있잖아. 나도 봐야 해서 같이 가려고.”

“그럼 주술학부 앞에서 기다리면 되지…….”

뭐하러 여기까지 와서 이런 소란을 만든단 말인가. 이세훈이 어이없는 표정을 짓자 에리카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찾아오면 안 돼?”

“……그래. 된다, 돼.”

입학식 때는 전도유망한 젊은이로 보였는데 이제 보니 그냥 겉만 멀쩡하지 속은 영 이상한 녀석이었다.

괜히 이것저것 신경 써봐야 골치만 아프다고 판단한 이세훈은 생각을 털어내고 바라보았다.

“그럼 가자고.”

“응.”

두 사람이 나란히 걸음을 옮기며 주술학부로 향했고, 자연스럽게 가는 곳마다 이목이 쏠렸다

아직 이른 시간이긴 해도 아침 단련이나 식사를 위해 나오는 생도들이 꽤 있는 상황. 게다가 두 사람 모두 학과수석인지라 못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이거 괜히 이상한 헛소문 도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남들이 보기에는 에리카가 자신에게 호감을 가진 것처럼 보이겠지만, 이세훈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정말로 그렇다면 자신의 고유 스킬인 ‘인연의 대장장이’에 의해 에리카와 자신 사이에 인연이 성립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마 실제로는 약간 흥미가 있는 수준이겠지. 그리고 그게 떨어진다면 바로 기억 속에서 지워 버릴 수 있는 수준.’

옆에서 아무런 말 없이 서 있는 에리카를 힐끗 바라본 이세훈은 자연스럽게 회귀 전 그녀에 대해서 다시 떠올렸다.

신화등급의 무구를 다뤘던 S급 영웅. 흔히 ‘만각萬刻’이라 불렸는데 수많은 주술을 모두 수준급으로 구사하여 붙을 별명이었다.

‘그리고 훗날 탐망貪忘이라 불리는 마인이 되었지…….’

만마의 늪에 오염되어 인간에서 벗어난 존재인 마인들.

그중에서도 S급 헌터들조차 죽일 수 있는 강자들을 한데 묶어 ‘십악十惡’이라 불렀었는데 에리카, 탐망은 그 자리를 차지할 만큼 강력한 존재였다.

어쩌다가 그런 마인이 된 것인지는 이세훈도 모르지만 주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뭐, 그래도 지금 당장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

에리카가 마인이 된 것은 먼 미래. 그리고 만마전의 세력에 의해 인류가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던 시점.

한참 뒤의 일이기도 하고 거대한 변수, 회귀자인 자신과 만났으니 얼마든지 바뀔 수 있으리라.

이세훈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주술학부의 본관에 도착했고 에리카가 한쪽을 가리켰다.

“테스트는 밖에서 한다니까 따라와.”

앞장서서 걸음을 옮기는 에리카. 그 뒤를 따르던 이세훈은 방금보다 따끔하게 쏟아지는 시선에 주변을 훑어보았다.

‘앞에는 호기심이었다면…… 이쪽은 적의인가.’

자신의 학과에 소속감을 느끼고 배척하는 문화가 있다고 듣기는 했지만 주술학부는 유독 강한 느낌이었다.

어제는 이런 시선을 느끼지 못했던 것을 보면 아마 같이 걷고 있는 에리카 때문일 가능성이 높으리라.

‘인기가 참 많구만.’

집안도 좋고 능력도 좋으니 본인이 뿌리치지 않는 이상 부하들이 자연스럽게 생길 수밖에 없으리라.

적의가 듬뿍 담긴 시선을 느끼며 본관의 뒤뜰로 나온 두 사람은 곧장 울창한 숲으로 들어섰다.

“흐음.”

햇빛도 잘 들지 않고 묘하게 음침한 분위기의 숲.

주변에는 똑같이 테스트받으러 온 것으로 보이는 생도들이 보였는데 하나같이 상태가 이상했다.

“젠장…….”

“도대체 어디야?”

무언가를 찾듯이 사방을 돌아다니며 투덜거리는 이들. 그 모습에 이세훈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보물찾기라도 하나?’

어쩌면 숲 곳곳에 결계로 물건을 숨겨두고 그걸 찾으라고 한 걸지도 모르겠다. 귀찮아 보이는 테스트에 이세훈이 눈매를 찌푸리며 계속해서 에리카의 뒤를 따랐고.

파스슥.

눈앞에 넓은 공터가 갑작스레 나타났다.

그 상황에 이세훈이 의아한 표정으로 공터를 바라보았고, 안쪽에 서 있는 이들 역시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묘한 정적이 감돌던 찰나.

“테, 테스트 통과입니다.”

“……예?”

더 이해가 안 가는 대답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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