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11화
커뮤니티 사이트 ‘타워’.
생도들이 익명으로 활동하는 이 사이트는 학과수석 출신인 졸업생이 재수 없는 교수들을 욕하기 위해 만든 곳이었는데 오랜 세월이 지나 바벨의 비공식 커뮤니티로 자리 잡았다.
편의성도 편의성이지만 주변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생도들이 애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타워에서 엄청난 화제를 모으는 주제가 있었으니 바로 이세훈, 정확히는 그 ‘전시품’이었다.
<역대 최고니 뭐니 올려치는 게 좀 이해가 안 가네> [493]
교수들도 스킬에 의한 특이현상이라고 말하는데 그냥 특이하다고 역대 최고니 뭐니.
그 전시품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너무 단순한 이유로 고평가하는 거 같아서 보기가 좀 그렇더라.
학과수석 배출해서 기분 좋은 건 알겠는데 좀 적당히 했으면 좋겠음.
[익명1] : 진짜 이때다 싶어 올려치는 거 웃기더라
└[익명2] : ㄹㅇ 좀 적당히 했으면
└[익명1] : 교수가 아니라는데 자기들끼리 고평가하는 게 제일 웃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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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51] : 그냥 니들 심보가 꼬인 거 같은데?
└[익명1] : 응 너희들이 더 심해
└[익명2] : 어김없이 튀어나오네 ㅋㅋㅋ
└[익명13] : 거창하면 다 좋은 줄 아는 애들이 있음.
어느 정도 특이해야 독창성이 있다는 말을 듣지 그 선을 넘어버리면 괴팍하다는 말밖에 듣지 못한다.
게다가 스킬의 특이성이라는 설명도 붙었기에 겉멋이 들었다거나 실속이 없다, 이목을 모으려고 꾸민 것이라는 등 부정적인 의견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자신들이 ‘진가’를 알아봤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었고.
“왜 먹…… 아니, 살 수 없다는 겁니까?”
보르시파의 학과장 류은하도 그중 한 명이었다.
“어차피 전시가 끝나고 나면 생도의 소유로 돌아가는 게 아니었습니까?”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하면서도 열기가 보이는 류은하의 모습에 맞은편에 서 있는 김인철이 쓴웃음을 지었다.
‘달라져도 너무 달라졌군.’
다른 일에는 할 일만 끝내고 일절 관심을 보이지 않지만, 이세훈만 관련되었다 하면 태도가 바뀐다.
학과장보다는 ‘미식가’로서 충실한 류은하의 모습에 김인철이 차근차근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이번에 만든 ‘분신’만큼은 안 됩니다. 그게 어떤 물건인지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제련학부는 입학식 후와 졸업 전시회 전, 이렇게 딱 두 번만 투영합금으로 분신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것들을 보관했다가 졸업 전시회 때 나란히 전시했는데 바벨에서의 생활이 생도를 얼마나 성장시켰는지 보여주는 의도였다.
“저희 학부의 전통인 만큼 존중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것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는 듯 단호하게 이야기하는 김인철. 그 모습에 류은하는 조용히 바라보다 고개를 꾸벅였다.
“죄송합니다. 추태를 보였군요.”
“아닙니다. 저도 학과장님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니…….”
처음 이세훈이 만들어낸 전시품을 봤을 때. 김인철 역시 그것을 당장 분석하고 싶은 충동이 밀려왔었다.
도대체 무구라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기에 저런 물건이 나온 것일까. 그 비밀을 알아낸다면 자신의 고민도 조금은 풀리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것만큼은 안 된다.’
그렇게 궁금하면 그냥 투영합금을 가져다주고 다시 만들어달라고 하면 안 되냐, 라고 할 수도 있지만 두 사람은 그에 대해서는 확고했다.
‘똑같이 만들더라도 절대 처음과 같은 맛이 나지 않아.’
‘같은 물건처럼 보이는 모방품이 될 뿐이지.’
이 세상에 완벽하게 일치는 물건이란 있을 수 없는 법. 어중간하게 비슷한 것을 받아서 먹고, 분석해 봐야 오히려 더 궁금해질 뿐이다.
“업무 이야기로 넘어가야겠군요.”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
계속 이야기해 봐야 아쉬움만 남았기에 두 사람은 곧장 다음 화제로 넘어갔다.
“외부에도 알려질 만큼 화제가 됐던데 이세훈 생도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별다른 반응은 없습니다. 평범하게 수업을 들으면서 부전공을 알아보고 있더군요.”
“부전공이라…….”
제련학부는 부전공을 보면 그 생도가 앞으로 어떤 무구를 만들어갈 것인지 대략적으로 추측할 수 있었다.
이세훈은 과연 무엇을 배우고, 또 그것을 토대로 어떤 것을 만들어낼까.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그런 류은하의 의문에 대답하듯 김인철이 부드럽게 웃었다.
“우선 몸부터 단련하지 않을까 싶군요.”
* * *
까앙! 까앙! 까앙!
화로 앞에서 규칙적으로 울려 퍼지는 망치 소리.
한 번 두드릴 때마다 달궈진 쇠가 펼쳐지며 정밀하게 검신을 만들어 나간다. 그 모습에 똑같이 제련하고 있던 생도들이 작은 목소리로 수군거렸다.
“시간 재봤어?”
“……방금까지 0.01초의 오차도 없었어.”
“진짜 미쳤네…….”
영웅의 탑이 나타난 이후 새롭게 정립된 제련 기술에서 중요한 요소는 두 가지.
첫 번째는 광석 내부의 마력을 균일하게 배열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마력을 주입하는 과정에서 광석이 비틀리지 않게 조정하는 것이다.
까앙! 까앙! 까앙!
마력의 배열에만 신경을 쓰면 광석이 비틀리고, 반대로 광석에만 신경 쓰면 마력의 배열이 흐트러져 못쓰게 된다.
그렇기에 두 요소가 적절하게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단조를 펼치는 것이 가장 중요했는데, 지금 이세훈이 그것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해내고 있는 것이다!
“으음…….”
그런 이세훈의 모습에 금속제련 수업을 대신 진행하고 있던 조교, 한인성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뭘 가르치라는 건지…….’
이세훈의 단조 실력은 이미 자신에게 조언받을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끼어들 여지가 없는 실력에 잠시 고민하던 한인성은 금방 결정을 내렸다.
‘애는 그냥 넘기자.’
어쭙잖게 조언하려다가 생도들 앞에서 창피를 당할 수도 있다. 한인성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른 생도들에게 향했고, 잠시 후 알림과 함께 수업이 끝났다.
“…….”
쉴 새 없이 망치를 두드리던 이세훈이 손을 멈췄고, 땀에 흠뻑 젖은 채로 자신이 만들어낸 검들을 바라보았다.
기본기에 충실하게 벼려진 검신. 단순 제련만 했기에 특별한 건 없지만 조금만 더 가다듬으면 하위 등급의 영웅들이 쓸 수 있을 만큼 괜찮은 수준이었다.
“흐음…….”
하지만 그 검들을 내려다보는 이세훈의 눈빛이 점점 이글거렸고, 망치를 쥔 손이 파르르 떨렸다.
“흐으으음…….”
그리고 마침내 망치를 쥔 이세훈의 손이 벼락처럼 움직이려던 그 순간.
“또 부수려고?”
수업 내내 다가오지 않던 한인성이 슬쩍 다가왔다.
“다음 수업에도 써야 하니까 어지간하면 부수지 마라. 이번 주 제련수업 끝나고 나면 상점가에 납품해야 하니까.”
“……납품 말입니까?”
“생도들이 예산을 어떻게 타겠냐. 그렇게 학부 밖에다 팔아서 얻고, 판매 실적에 따라서 바벨이 지원해 주는 걸로 받아내는 거야. 집에 돈 많은 거 아니면 신경 써야 해.”
전투직 생도들의 대련용 무구로 판매되거나 외부업체를 통해 현직 영웅들에게 팔기도 했는데 평가의 일환이자 생도들에게 사회경험을 쌓아주는 의도이기도 했다.
“……후우.”
예전 같았으면 납품이란 소리를 듣자마자 바로 부숴 버렸겠지만, 예산이 걸려 있다면 좀 더 타협해야 한다.
망치를 쥔 손에 힘을 푼 이세훈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진짜 이 몸을 전부 갈아버리든가 해야지.’
회귀 후 자신의 신체 능력에 불만을 안 가져본 날이 없었지만, 최근에는 정말 폭발 직전까지 갔었다.
단련용 도구를 만들기 위해 루트비히에게 받은 재료 중 하나인 묵중암을 제련하려고 했는데 신체 능력이 너무 떨어져 시도조차 못 했기 때문이다.
‘제일 쉬운 방법이었는데 설마 그것도 안 될 줄이야…….’
밤중에 제련실에서 몇 번이고 시도해봤지만 남은 것이라고는 근육통과 쓰레기 같은 몸뚱이에 대한 분노뿐.
그 기억을 떠올린 이세훈이 다시금 이를 갈고 있을 때. 유심히 바라보던 한인성이 물었다.
“지금 정확히 뭐가 마음에 안 드는 거냐?”
“……무슨 말씀이십니까?”
“신체 능력이 마음에 안 드는 거잖아? 몸인지 마력인지 말해보라는 거야.”
생각보다 진지한 한인성의 물음에 이세훈은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지금은 몸이네요.”
이번에 사용할 묵중암의 제련 방법은 마력을 많이 쓰지 않는 대신 시간이 오래 걸려 체력을 요구한다.
이세훈은 지금 그 체력 부분에서 계속 걸리고 있는 것이다.
“몸이라…… 제련 중에 필요한 거냐?”
“맞습니다.”
“그러면 제련하는 동안에만 신체 능력이 올라도 상관이 없다는 건데…… 아!”
무언가 떠올린 한인성이 이세훈에게 물었다.
“그럼 단련보단 버프 쪽이 빠르지 않겠어?”
한인성의 물음에 이세훈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이내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걸 생각 못 하고 있었네.’
회귀 전에 꺼리던 방식이다 보니 이번에도 무의식적으로 고려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돌파구를 찾은 이세훈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한인성에게 고개를 꾸벅였다.
“조언 감사합니다.”
“뭐, 별것도 아닌 거 가지고. 버프도 종류가 꽤 갈리니까 여러 군데 다니면서 직접 체험해 보는 게 좋을 거야.”
“예.”
입학시험 때는 영 맹탕으로 보였는데 이렇게 보니 또 먼저 졸업한 선배가 맞는 모양이다.
한인성을 바라본 이세훈은 그가 시범으로 만들었던 검을 슬쩍 살핀 다음 이야기했다.
“단조할 때.”
“음?”
“마력을 너무 많이 쓰고 있습니다. 지금의 70%로 줄이고 대신 한 점에 집중하듯 때리세요. 지금은 그쪽이 더 잘될 겁니다.”
대답은 필요 없다는 듯 밖으로 걸어 나가는 이세훈.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한인성은 뒤늦게 자신의 상황을 깨닫고 어이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한테 훈수를 둔 거야?”
입학한 지 며칠도 안 된 신입생이 조교인 자신에게?
다른 때 같았으면 그대로 뚜껑이 열려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을 테지만, 이상하게도 그리 화가 나지 않는다.
상대가 학과수석이라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그 조언에서 무언가가 느껴졌기 때문일까.
“…….”
텅 빈 제련실을 슬쩍 살피던 한인성은 슬그머니 자신의 자리에 놓아둔 망치를 움켜쥐었다.
까앙! 까앙! 까앙!
그리고 묘한 열기를 띤 망치질이 뒤늦게 울려 퍼졌다.
* * *
“후우.”
샤워를 끝내고 작업복에서 생도복으로 갈아입은 이세훈은 곧장 경전철을 타고 지원직 생도들이 모여 있는 ‘우르’의 구역으로 향했다.
‘어디 갈 때마다 경전철을 타야 하고. 너무 넓은 것도 썩 좋지는 않단 말이야.’
바벨은 영웅의 탑과 마두르크 저택이 있는 중앙광장을 제외하고 크게 세 개의 구획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리고 각각의 구획을 학과들이 저마다 따로 관리하고 있었는데 자연스럽게 분위기도 조금씩 달랐기에 다른 마을 같은 느낌마저 풍겼다.
‘보르시파는 곳곳에 시제품들이 보여서 난잡한 느낌이라면 우르는 신도시처럼 깔끔한 느낌이구만.’
바깥의 풍경을 바라보며 이세훈은 어느 학부를 먼저 가야 할지 고민했다.
‘똑같이 신체를 강화해도 어떤 기술을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니까.’
신체 능력을 쉽게 강화할 수 있는 대신 정밀성이 떨어져 제작에 맞지 않을 수도 있고, 특정 감각만 비틀려 설계도와 다른 물건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그렇다 보니 제작 도중에 버프를 사용하는 것은 하지 않느니만 못하다는 의견도 많았다. 과거의 이세훈 역시 거기에 동감하긴 했으나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나는 어떻게 보면 디버프를 받은 상태니까.’
회귀 전 육체와는 비교하기가 미안할 정도로 썩어빠진 육체. 그러니 지금 상황에서 버프로 신체 능력을 끌어올리는 것은 오히려 기존 상태로 돌아가는 것에 가까웠다.
‘일단 제작 중에 계속 써야 하니까 간단하면서도 지 속성이 높은 쪽이 좋겠네.’
머릿속으로 후보군을 좁혀가고 있을 때. 스피커에서 안내방송이 울려 퍼졌다.
-다음 역은 ‘주술학부’입니다.
‘주술이라…….’
주술을 사용하는 버프는 마법보다 간단하게 사용할 수 있긴 하지만 효과가 단순하게 적용되어 제련과는 맞지 않았다.
‘그래도 지 속성은 뛰어난 편이니까 한 번 구경이나 해볼까.’
바벨의 주술학부는 우르 안에서도 손꼽히는 주력학부 중 한 곳. 그만큼 수준도 높고 지원도 많을 테니 정밀성을 높인 버프도 있을지 모른다.
한 번 살펴나 보기로 한 이세훈이 경전철에서 내렸고.
“어.”
“…….”
우르의 학과수석인 에리카와 마주쳤다.
“…….”
“…….”
변함없이 창백한 피부와 새카만 머리카락.
눈을 마주치고 피하기는커녕 더욱 빤히 바라보는 에리카의 행동에 두 사람 사이로 기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에리카는 무언가 할 말이라도 있는 것처럼 바라보고, 이세훈은 무슨 말이든 해보라는 듯 바라본다.
그 이상한 대치가 계속되려던 그때.
“이봐.”
에리카의 주변을 포진하고 있던 생도 중 한 명, 사나운 인상의 청년이 이세훈을 노려보았다.
“길 막지 말고 비켜.”
나름 곱게 말하려는 듯했으나 적의가 넘치는 말투.
딱 봐도 한 성질 할 것 같은 상대의 모습에 이세훈이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바라보았다.
“니들이 비켜야지.”
사람이 내리고 나서 타는 게 이치에 맞지 않는가.
이세훈으로서는 당연한 말을 했을 뿐이지만, 청년과 그 일행들은 욕이라도 먹은 것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린다.
순식간에 험악해지는 분위기에 이세훈은 어이가 없어졌다.
‘내가 그렇게 만만한가?’
이해가 안 갈 정도로 적대적인 반응에 이세훈의 더러운 성질머리가 점점 고개를 내밀려던 찰나.
“어디 가?”
에리카가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 물음에 이세훈은 에리카의 주변에 포진한 일행, 부하들을 살펴보다 무심히 대답했다.
“주술학부.”
“무슨 일로?”
“부전공으로 들을 게 있을까 싶어서.”
이세훈의 대답에 에리카가 무언가 고민하더니 결정을 내린 듯 이야기했다.
“그럼 나랑 같이 가.”
에키라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이세훈이 놀란 표정을 지었고, 주변에 포진해 있던 부하들도 깜짝 놀랐다.
“예? 에리카 아가씨. 이다음에는 모임이…….”
“너희들끼리 가.”
“그, 그렇지만 선배들이 꼭 참석하셨으면 한다고…….”
“관심 없어.”
쩔쩔매는 부하들을 무시하고 대답을 기다리는 에리카. 그 모습에 이세훈은 잠시 고민하다가 그녀를 바라보았고.
“싫어.”
두 눈이 휘둥그레지는 것을 실시간으로 구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