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7화
“완성된 무구를 가지고 앞으로 나오게.”
김인철의 부름에 두 사람이 완성된 무구를 가지고 심사위원들이 앉아 있는 탁자 앞으로 향했다.
탁자에는 앞의 시험에 제출했던 물건들이 놓여 있었는데 이세훈은 한스가 만든 물건을 바라보았다.
‘앞에 만든 건 세검. 그리고 이번에 만든 건 방패인가.’
한 손으로도 착용이 가능한 원형의 소형방패로 흔히 ‘버클러Buckler’라고 부르는 것이었는데 썩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스의 방패를 본 이세훈이 탐탁지 않은 표정을 하고 있을 때. 류은하가 입을 열었다.
“그럼 우선 한스 생도의 물건부터 보겠습니다.”
방패의 중심을 이루는 십자가 형태의 뼈대와 푸른색 광택이 은은히 흘러내리는 겉면. 파도를 상징하는 물결무늬를 새겨 넣은 것이었는데 성능과는 별개로 매우 고급스러웠다.
[웰러실트WelleSchild]
[등급 : 고급] [품질 : 최상]
수 속성 마력이 담긴 방패.
재료로 쓰인 광석의 힘을 극대화시켜 수 속성 마력을 증폭시키며 순수마력을 수 속성 마력으로 치환할 수 있습니다.
*수 속성 마력의 위력을 상승시킵니다.
*마력을 수 속성 마력으로 치환할 수 있습니다.
“마력 증폭에 속성 치환이군요. 어려운 효과를 잘 만들어냈습니다.”
무표정한 얼굴로 칭찬하는 류은하의 모습에 굳어 있던 한스의 표정이 살짝 펴졌다.
‘그래. 이번 주제는 어디까지나 앞선 제출품과의 호환성. 그 부분이라면 아직 가능성은 있어.’
이번에 만든 물건만 비교하면 저쪽이 더 뛰어날 수도 있겠지만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아는 법. 그렇게 한스가 다시 의욕을 내려던 그때.
“하지만.”
웰러실트를 내려놓은 류은하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평가를 이어 나갔다.
“방패의 무게중심이 고르지 않고 마력회로가 너무 바깥으로 노출되어 있습니다. 치환된 마력을 방출하기 쉽게 의도한 것 같지만 이래서야 공격을 몇 번 막고 나면 금방 효율이 떨어지겠군요.”
“…….”
“거기에 구조를 살펴보니 속성 치환을 사용할 경우 방패가 영구적으로 손상되는 것 같은데, 이 부분에 대한 대비책은 있습니까?”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류은하의 혹평.
심지어 하나같이 반박할 수 없는 지적에 한스의 표정이 순식간에 새하얗게 질렸고, 미하엘의 표정이 참담해졌다.
“없나 보군요. 다음에는 무구의 쓰임새와 유지보수에 대해서 좀 더 신경을 써주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예…… 예…….”
“그리고 기존 무구와의 호환성도 단순히 검과 방패라는 단순한 접근이라 아쉬웠습니다. 제 평가는 여기까지입니다.”
류은하의 평가가 끝나자 자연스레 미하엘에게 시선이 향했고 눈매를 찌푸린 그가 짧게 대답했다.
“학과장님의 평가에 거들도록 하겠습니다.”
“아…….”
평가조차 받지 못했다는 것에 한스가 고개를 푹 숙였고 그 모습에 미하엘의 눈이 더욱 싸늘해졌다.
아무리 봐도 집에 돌아간 뒤 대판 깨질 것 같은 모습. 그 광경에 이세훈이 슬쩍 웃었다.
‘예나 지금이나 평가는 정확하구만.’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을 온화하게나마 말해준 류은하의 모습에 이세훈이 만족하고 있을 때. 김인철이 헛기침하며 분위기를 다잡았다.
“그럼 다음은 이세훈 생도…….”
“먼저 보겠습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앞으로 나선 류은하.
그 적극적인 모습에 모두가 당황하는 사이 류은하가 신중히 화적초를 살펴보았다.
주홍빛이 은은히 감도는 칼집. 일정한 간격으로 세모꼴의 무늬가 이빨처럼 새겨져 있었는데 그 형태를 유심히 바라보던 류은하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이세훈 생도.”
“예.”
“이 제출품. 제게 팔지 않겠습니까?”
예상치 못한 이야기에 주변의 분위기가 얼어붙었고, 미하엘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자, 잠깐…… 제출품을 팔라니요.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심사위원이라는 사람이 갑자기 제출품을 팔라고 하다니. 상황 자체도 당황스러웠지만, 미하엘을 더욱 신경 쓰이게 만드는 것은 태도의 차이였다.
‘한스의 제출품에는 혹평만 쏟아붓던 사람이…….’
어느 정도 잘 만들었다는 것은 자신도 알고 있었지만 설마 저 정도란 말인가?
“지금 당장 넘기라는 건 아닙니다.”
미하엘의 물음을 가볍게 무시한 류은하는 이세훈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제안을 이어 나갔다.
“수석 선별과 입학식이 끝나면 제출품은 모두 생도에게 반납됩니다. 그러니 그때 저에게 팔라는 뜻입니다.”
“…….”
“희귀 등급 최하품이지만, 제게 파신다면 시세가의 다섯 배를 드리겠습니다. 어떠십니까?”
“……희, 희귀 등급?”
류은하의 제안에 미하엘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해봐야 고급 등급일 줄 알았는데 희귀 등급이라니! 자신의 예상을 넘어선 결과물에 그가 당황하고 있을 때.
“학과장님.”
단상에 서 있던 김인철이 나지막하게 이야기했다.
“아직 심사 중이니 사적인 대화는 조금 자중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실례했습니다.”
고개를 꾸벅인 류은하는 화적초를 내려놓은 뒤 이세훈을 다시 바라보았다.
“이전에도 희귀 등급 무구를 만드신 적 있습니까?”
“아뇨. 없습니다.”
회귀 전을 포함한다면 질리도록 만들었지만, 이번 생으로 따지면 이번이 처음이다.
“그럼 오늘 처음으로 희귀 등급 무구를 만드셨다는 건데,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는군요. 대장장이 업계에서는 초보에서 벗어나 인정받는 단계라고 들었습니다만.”
재료의 특성을 살리는 데서 끝나지 않고 새로운 힘, 스킬을 벼려내는 단계.
한 사람의 대장장이로서 기반을 다지기 시작했음을 증명해 주는 게 바로 희귀 등급인 것이다.
“높은 등급의 재료를 사용해서 따낸 것도 아니고……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드시지 않는 겁니까?”
이세훈의 반응이 의문스럽다는 듯 계속해서 물어보는 류은하. 그 모습에 미하엘이 눈을 번뜩였다.
‘혹시 학과장도 의심하고 있는 건가?’
어느 날 갑자기 생도의 실력이 늘어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세훈은 그 변화가 너무 극렬했다.
하다못해 영웅의 탑에 들어갔다가 나온 뒤라면 이해라도 하겠지만 아직 입학생인 이세훈이 들어갔을 리가 없을 터.
자신이 찾아내지 못한 무언가를 발견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하엘이 마지막 희망을 붙잡았을 때.
“마음에 안 들어서 그렇습니다.”
이세훈이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생애 ‘처음’으로 만든 희귀 등급의 무구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데 기뻐하기는 좀 그렇지 않습니까.”
인연각인의 효과를 확인해서 좋은 거지 물건만 놓고 보면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한둘이 아니다.
게다가 진짜 처음으로 희귀 등급 무구를 만든 것도 아닌데 어떻게 기뻐한단 말인가.
“…….”
“…….”
상상을 초월하는 이세훈의 대답에 미하엘이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고 한스가 넋이 나간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입술을 꾹 깨물며 웃음을 참고 있던 김인철이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대답했다.
“이, 이세훈 생도. 좀 더 예의 바르게 이야기해 주게.”
“주의하겠습니다.”
“…….”
이세훈을 가만히 바라보던 류은하는 생각을 끝마친 듯 다시 입을 열었다.
“다시 평가하자면 무구 자체는 훌륭합니다. 무게중심도 고르고 형태가 깔끔하게 잘 잡혀 있군요. 착용한 채로 싸우는 것도 염두에 둔 것 같은데 맞습니까?”
“예. 맞습니다.”
“역시 그렇군요. 불꽃을 저장하는 효과도 오색화도와 상성이 좋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화적초를 잡고 마력을 흘려 넣는 류은하.
그 행동에 주변이 의아해하고 있을 때. 화적초가 점점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화르륵!
자연스럽게 칼집 전체를 휘감으며 타오르는 불꽃.
단순히 방출되는 것이 아니라 마치 겉면을 타고 흘러내리듯이 움직였는데 그 불꽃을 바라보던 류은하가 자신의 손가락 끝을 살짝 가져다 댔다.
화르륵!
그러자 살짝 닿았을 뿐인데도 순식간에 손으로 타고 넘어가는 불꽃. 그 엄청난 전파력에 모두가 놀랐고, 류은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력회로의 압축률 차이를 이용해 ‘흐름’을 부여해서 불꽃의 전파력을 높인 이 부분은 매우 맛…… 아니, 훌륭했습니다.”
화적초를 내려놓은 류은하가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다만 무구 스킬인 ‘야화’는 구조를 보아하니 사용할 때마다 영구적으로 내구도가 깎일 것 같군요. 이 부분은 대응책이 있나요?”
한스가 지적받았던 부분과 동일한 문제점.
연금제련법으로 만들어낸 무구에 종종 나오는 단점이었기에 이세훈도 피할 수 없었으나.
“마석액에 담가두면 수복됩니다.”
그런 기본적인 단점은 광석의 핵만 살려두면 간단히 해결할 수 있었다.
“후우…….”
“…….”
이세훈의 대답에 미하엘은 한숨을 푹 내쉬었고, 한스는 다시 고개를 푹 떨어뜨렸다.
“부학과장님은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없습니다.”
“그럼 결과는 정해진 것 같군요.”
저만한 성능을 만들어내고 심지어 안전성까지 갖춰졌다.
“제련학부의 대표는 이세훈 생도로 하겠습니다.”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 * *
추가시험이 끝나고 류은하의 언질에 시험장에 남은 김인철은 신기한 표정으로 눈앞을 바라보았다.
탁자에 놓인 붉은색 칼집, 화적초를 계속해서 바라보는 류은하. 그동안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 반응에 김인철이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이세훈 생도를 학과수석으로 생각하고 계십니까?”
“예. 그렇게 되겠군요.”
“……정말이십니까?”
류은하의 즉답에 김인철이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희귀 등급 무구라면 확실히 신입생들 사이에서 손꼽힐 정도긴 하지만 학과수석으로 단정 지을 만한 수준은 아니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김 교수님의 생각은 다르십니까?”
“저야 물론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만…… 다른 학부의 수석들을 압도할 만큼 좋은 물건인지는 확실치 않군요.”
“겉만 보면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 무구의 진가는 무구 스킬에 있습니다.”
화적초에 담겨 있는 무구 스킬 ‘야화’.
똑같은 등급과 품질이어도 무구 스킬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무구의 가치가 천차만별로 변하게 마련.
만약 류은하가 화적초의 무구 스킬을 높게 쳤다면 저런 평가가 나와도 이상한 것은 없었다.
‘이세훈 생도의 무구 스킬이 그 정도란 말인가…….’
스킬을 만들어내기도 쉽진 않지만, 그 효율과 성능을 높이는 것은 또 차원이 다르다.
스킬의 구조에 대한 이해도와 그것을 무구에 맞춰서 재단해낼 구상력. 그리고 그것을 실현해내는 운용 능력까지.
희귀 등급의 무구를 만드는 게 출발 지점이라면 무구 스킬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은 그보다 몇 단계 높은 지점인 것이다.
“흠. 김 교수님은 자세히 살펴보지 않았으니 모를 수밖에 없겠군요. 저도 궁금했으니 간단하게 보도록 하죠.”
“예?”
화적초를 들고 자리에 일어선 류은하는 손바닥으로 칼집의 구멍을 막으면서 자신의 마력을 불어넣었다.
우우웅-
바깥으로 흘러나오지 않고 안쪽에 축적되는 마력. 다른 이들에 비해 상당히 난폭한 자신의 마력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화적초의 모습에 류은하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이상해.’
분명 그 생도와는 초면일 텐데 만들어진 무구는 자신이 직접 의뢰를 넣은 무구들처럼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
보기만 해도 느낄 수 있었던 익숙함. 이 이해할 수 없는 완성도 때문에 류은하가 냉정함을 잃고 이세훈에게 무구를 팔라고 말했던 것이다.
꾸욱.
‘……진정하자.’
다시 치밀어 오르는 욕구를 꾹 눌러 담으며 류은하가 검을 뽑아내듯이 손을 앞으로 뻗어냈고.
“야화.”
시동어와 함께 응축된 마력이 전방을 향해 쏘아졌다.
콰아앙─!
시험장의 허공을 뒤덮은 거대한 불꽃.
방호 마법이 발동해 완전히 막아냈지만, 그 어마어마한 규모를 본 김인철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
내부에 마력을 압축하여 단숨에 해방하는 스킬.
마력의 압축과 조정, 방출 등 하나라도 잘못하면 무구가 파손될 수 있는 복잡한 구조였는데 이세훈은 그것을 흠잡을 곳 없이 완벽하게 만들어낸 것이다.
“어떻습니까?”
“이 정도라면…… 확실히 압도적이군요.”
아마 미하엘 부학과장도 이 결과를 걸고넘어지지는 못할 것이다.
속으로 안도한 김인철은 다시 화적초를 살펴보고 있는 류은하를 바라보았다.
“상당히 마음에 드신 듯하군요.”
“예. 최근에 본 것 중에서는 가장 흥미롭군요.”
류은하의 대답에 김인철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다른 건 몰라도 무구에 한해서는 그 누구보다도 엄격하게 보는 것이 그녀였다.
그런데 그런 류은하가 고작 희귀 등급 무구에 저렇게까지 호평을 내리다니. 김인철은 살짝 호기심이 생겨나 조심스레 물었다.
“어떤 부분이 그렇게 흥미로우십니까?”
“흠. 당장 이 무구로만 본다면…… 확실히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완성도는 괜찮지만 본인의 신체 능력이 떨어져 세부 조정이 어설프죠.”
화적초를 날카로운 눈으로 내려다본 류은하가 담담히 이야기했다.
“제 생각에 이세훈 생도가 본래 의도한 완성도의 7할, 아니, 어쩌면 6할 이하일 겁니다.”
“허…….”
“그리고 그런 부족함이 기대되는 거죠.”
화적초를 천천히 쓰다듬던 류은하의 붉은 눈동자가 희미하게 빛났다.
“만약 지금 부족한 신체 능력이 채워진다면? 다양한 스킬과 속성 마력. 그리고 더 뛰어난 재료들이 주어진다면?”
그 미래를 보고 온 것처럼, 무표정한 얼굴 속에서 희미한 열기를 드러낸 류은하가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핥았다.
“아마…… 그는 무척이나 맛있는 무구를 만들어낼 겁니다.”
“…….”
이세훈을 향한 기대감이 잔뜩 느껴지는 류은하의 대답에 김인철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S급 영웅 ‘웨폰이터’ 류은하. 그녀에게는 대장장이 업계에서 주로 불리는 또 하나의 별명이 있었다.
무구에서 느껴지는 ‘맛’을 즐기며 식도락을 취미로 삼는 별종. 열심히 만든 무구를 구매해서는 한 끼 식사로 먹어 치운 뒤 혹독한 평가를 남기는 미식가.
그것이 바로 류은하인 것이다.
‘미식가에게 기대받는 대장장이 유망주라…….’
이걸 불행이라 해야 할까 행운이라 해야 할까. 무표정한 얼굴로 화적초를 연신 쓰다듬는 류은하의 모습에 김인철이 쓴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