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6화
“오…….”
오른손을 중심으로 팔꿈치까지 넘실거리는 주홍빛 불꽃.
온몸을 집어삼킬 듯 넘실거리는 홍염紅焰은 불에 익숙한 장인조차 움츠러들게 만드는 위압감을 지녔지만, 이세훈은 오히려 히죽 웃었다.
겉으로는 사나워 보여도 절대 자신의 팔꿈치 위로는 올라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거 상상 이상인데.’
회귀 전이라면 모를까 지금 이세훈의 몸으로는 이만한 불꽃을 다루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불꽃을 제어할 순 있지만 마력이 너무 부족한 탓에 제대로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을 효율적으로 가능하게 만들어준 스킬이 있었으니 바로 인연의 대장장이에 추가된 ‘인연각인’이었다.
*인연각인 : 인연석을 신체에 착용하여 사용할 수 있습니다. 현재 착용 가능 부위 ‘좌완’, ‘우완’.
재료로만 쓰였던 인연석을 신체에 장착할 수 있는 스킬.
회귀 전에 한 번도 보지 못한 새로운 스킬이었는데 그 활용도는 효과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그야말로 무궁무진했다.
‘화함철이 가지고 있던 불꽃을 모으는 효과. 그것을 오른팔에 적용해서 홍염을 가둔다.’
여기에 입학시험 때 습득한 스킬인 ‘불꽃의 장인’이 가진 저항력과 지배력으로 홍염을 컨트롤한다.
과거에는 제대로 써먹지도 못했던 Lv.1의 인연석이 몇 가지 요소가 더해진 것만으로 어마어마한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물론 예전에 비하면 투박하지만…… 이 정도로 충분하지.’
손에 담긴 홍염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은 이세훈은 미리 봐둔 재료들을 집어 들었다.
‘하이드레이그트와 화홍석. 이 둘이면 되겠지.’
한스가 고른 재료와 마찬가지로 마력 함유랑이 높으며 화 속성 마력을 품고 있는 재료들.
그런 이세훈의 선택을 본 미하엘은 눈매를 찌푸렸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한스가 고른 수 속성 마력과 대칭되는 구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쾌해하는 것도 잠시. 이세훈을 살펴보던 미하엘은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네놈도 한 성격 하는 모양이다만…… 실력은 받쳐주지 않는 모양이구나.’
재료의 선택도 나쁘지 않고 오른팔에 깃든 불꽃의 제어도 그럭저럭 쓸만하다. 그러나 연금제련법이라에 대한 이해도는 턱없이 부족했다.
‘연금제련법은 속성 마력이 폭주하지 않도록 순수한 마력만을 사용해 공명시킨다. 그런데 불꽃을 저렇게 휘감다니…….’
아마 부족한 마력을 보충하기 위해 불꽃을 이용해서 쉽게 공명시키려고 한 것 같지만, 속성 마력은 깎여나가는 것뿐만 아니라 더해지는 것으로도 결함이 생겨날 수 있다.
연금제련법의 본질은 생각하지 못한 전형적인 실수. 그 모습에 미하엘이 속으로 비웃고 있을 때.
콰아앙─!
다시 한번 폭음이 울려 퍼졌다.
콰아앙! 콰아앙! 콰아앙!
왼손으로 발화석을 조약돌처럼 가볍게 던지고, 그것을 집어삼킨 오른손의 불꽃이 미친 듯이 요동치며 타오른다.
그것만 하더라도 엄청난 모습이었지만 진짜 놀라운 것은 불꽃의 중심에 있는 이세훈의 주먹이었다.
우우웅-
사납게 요동치는 불꽃의 안쪽에서 이세훈의 주먹을 감싸듯 유유히 흐르고 있는 홍염.
그 속에서 하이드레이그트와 화홍석이 완벽히 녹아 주홍빛 쇳물로 합쳐진 것이다.
“뭐…….”
그 모습을 본 미하엘은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두 광석이 녹는 것 자체는 빨라도 이상할 게 없다. 폭발을 일으킬 정도로 강력한 화력을 사용하고 있었으니 너무나도 당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하엘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저렇게 거친 방법으로 녹였음에도 불구하고 두 광석이 품고 있었던 속성 마력이 멀쩡하다는 점이었다.
‘저만한 화력을 부딪친다면 속성 마력도 자극받아 폭주하는 것이 당연하다. 당연할 텐데…….’
도대체 무슨 방법을 사용했기에 속성 마력의 폭주를 막아내면서 저렇게 빠르게 두 광석을 녹인 것일까.
미하엘이 그 원인을 찾기 위해 바라보고 있을 때.
“이세훈 생도는 신기하군요.”
류은하가 무표정한 얼굴로 이세훈의 손을 바라보았다.
“연금제련법을 발동함과 동시에 두 광석을 공명시키다니. 재료에 대한 이해도가 높거나, 마력에 대한 감각이 천부적인 모양입니다.”
“……발동과 동시에 바로 공명시켰다고요?”
“예. 속성 마력이 유지된 것도 그것 때문인 것 같습니다.”
담담한 류은하의 대답에 미하엘이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연금제련법은 크게 두 가지 절차로 나뉘어 있다. 첫 번째는 마력과 광석을 공명시켜 형질을 변화시키는 것. 두 번째는 변화된 광석을 무기로 구성해내는 것.
두 가지 모두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까다로운 것은 첫 번째 과정인 형질 변화였다.
‘똑같은 종류의 광석이라 할지라도 마력이 배열된 상태와 주변 환경에 따라서 공명시키는 방법이 천차만별로 달라지는데…….’
연금제련법에 숙달된 한스조차 아직 공명을 시도하는 중이었고, 미하엘 자신도 익숙한 재료와 장소가 아니라면 10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일개 입학생이 그 모든 과정을 시작과 동시에 완료했다? 단순히 이해도가 높다거나 감각이 뛰어나다고 끝날 수준이 아니었다.
‘……무언가 있다.’
저런 보잘것없는 녀석에게 그런 재능과 실력이 있을 리가 없다. 그렇게 확신한 미하엘의 두 눈이 차갑게 빛났다.
‘무슨 수작을 부렸는지 모르겠지만 생각대로는 안 될 거다.’
생도 수준의 장난질 따위는 진심으로 알아내고자 하면 얼마든지 파악할 수 있다.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 미하엘은 곧장 자신의 주력 스킬인 ‘보석안(A)’을 발동시켰다.
키이잉-
이명과 함께 변하는 시야.
광석 내부에서 움직이는 마력과 형질. 그리고 그것을 제련 중인 이세훈의 마력 역시 선명하게 보인다.
A급 장인의 부정도 단숨에 발견해냈던 눈. 미하엘의 명성을 만들어준 보석안이 이세훈을 샅샅이 살펴보았고.
“……뭐?”
누구보다도 정순하게 움직이는 광석의 흐름을 목격했다.
* * *
‘용쓴다.’
자신을 노려보는 미하엘의 모습에 이세훈은 속으로 그를 비웃었다.
두 눈에 감도는 기묘한 일렁임. 아마 스킬을 사용해 자신이 부정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 아닌지 살펴보고 있으리라.
‘뭐, 그럴 만도 한가.’
서류상으로는 특별한 것도 없던 생도가 갑자기 엄청난 수준의 연금제련법을 구사하고 있다.
대장장이 업계에서 연금제련법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전문가 입장에서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리라.
‘그렇다고 내가 이해시켜 줄 이유는 없지만.’
미하엘이나 한스는 연금제련법을 연금술과 마력을 사용하는 보다 진화된 제련법으로 여기는 듯하지만 이세훈의 생각은 달랐다.
연금제련법이란 결국 정상적인 제련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마력만으로 무구를 제련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술.
그렇기에 연금제련법이 추구하는 길은 일반적인 제련법과는 완전히 달랐다.
‘연금제련법이란 광석의 생명을 펼쳐내는 것.’
광석을 죽이고 대장장이의 생명을 깃들게 만드는 일반적인 제련법과는 구조 자체가 다르다.
그런데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일반 제련법처럼 연금제련법을 펼치고 있으니 단순히 마력이 많다고 자랑하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화르르륵!
공명을 통해 광석에 담겨 있던 불순물들이 모조리 분리되었고, 주홍빛 액체가 홍염과 함께 흐른다.
두 광석이 품고 있었던 생명, 광핵鑛核이 이세훈의 손안에 만들어진 것이다.
“후우…….”
연금제련법에서 공명이란 이 광핵의 뿌리를 찾아서 분리하는 것이 전부다.
하지만 한스는 광핵을 자신이 원하는 형태로 다시 만들려 했고, 그 결과 불순물이 섞일 뿐만 아니라 시간도 몇 배나 차이 났다.
“큭…….”
이쪽을 쳐다보더니 입술을 꾹 깨물며 자신의 마법진을 노려보는 한스. 얕잡아보던 상대가 자신을 앞질러 갔으니 아마 상당히 초조함을 느끼고 있으리라.
‘안 그래도 지저분한데 불순물이 더 늘어나는구만.’
저렇게 된다고 해서 무구를 못 만드는 건 아니지만 불순물이 섞여 내구성이 떨어지고 속성 마력이 폭주할 가능성이 생겨 잠재적인 폭탄이 된다.
그것이 연금제련법의 가장 큰 위험성이었고, 삼견 중 한 명인 ‘폭견’ 루이제 발렌트가 겪은 불행 중 하나이기도 했었다.
‘바벨에 다닐 때 돈이 없었는데…… 바르무트라는 새끼가 잡일 좀 해주면 싼값에 무구를 만들어준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몇 달 동안 일했더니 그놈이 나한테 폭탄을 팔았더라.’
회귀 전 삼견은 자신들은 과거에 억울한 일을 많이 당해서 이렇게 삐뚤어진 것이라고 늘 주장했었다.
물론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이세훈으로서는 알 수도 없었고, 당시에는 알고 싶지도 않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육대마신을 쉽게 쓰러뜨리려면 어찌 됐든 그놈들의 힘이 필요하니까. 조금이라도 회유하기 쉽게 만드는 게 좋겠지.’
이번에야말로 물리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그 개놈들을 개과천선시켜 전선으로 끌고 간다.
그리고 그 첫 시작은 폭견 루이제 발렌트에게 후유증을 안겨주고 자퇴하게 만든 돌팔이 대장장이, 한스 바르무트를 철저하게 짓밟는 것.
‘가볼까.’
광핵을 무구로 만들 때는 손상이 가지 않도록 정말 최소한의 의도만 담아내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최소한의 의도란 이 무구를 사용하게 될 대상의 특성.
‘그리고 여기서 적합한 양반은…….’
앞에서 무심하게 바라보는 붉은 머리칼의 여인, 류은하를 슬쩍 바라본 이세훈은 천천히 숨을 골랐다.
그리고 옆에서 끙끙거리는 한스를 바라보았고.
“잘 봐둬.”
손안에 모인 광핵의 생명을 피워내기 시작했다.
화르륵─!
원형을 이루며 회전하던 홍염이 조금씩 타원형을 그리며 이세훈의 뜻에 따라 형태를 갖춰간다.
오색화도를 보조해야 하기에 기본적인 형태는 칼집. 하지만 단순한 칼집이라면 수석은 둘째치고 저 깐깐한 학과장이 마음에 들어 할 리가 없다.
여러 요소를 고려하며 이세훈의 손아귀에서 홍염이 더욱 선명하게 빚어졌고, 그 안쪽으로 주홍빛의 광핵이 천천히 흘러 들어간다.
우우웅-
수십 개의 마법진이 떠오르는 화려함도, 뒤섞인 광석들이 광채를 발하며 요동치는 웅장함도 존재하지 않는다.
소리 없이 타오르는 홍염과 그 안에 흐르는 광핵. 하나의 생명이 이세훈의 손끝에서 새롭게 빚어졌고.
‘공정 완료.’
파앙─!
거대한 맥동이 시험장 전체를 강타했다.
[무구 ‘화적초’가 완성되었습니다!]
[무릇 기술을 사용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거기에 담긴 의도를 파악해내는 것!
사용된 마력과 재료의 질은 떨어지지만 광석의 생명을 새롭게 피워낸 대장장이의 기술은 일류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판정 결과 ‘화적초’의 등급은 ‘희귀’입니다]
[속성 마력 ‘홍염(F)’을 개화하셨습니다.]
눈앞에 어지러이 떠오르는 결산창.
하지만 이세훈은 그것보다도 새롭게 만든 오색화도의 칼집, 화적초를 움켜쥔 자신의 오른손을 바라보았다.
화륵─!
방금까지 사용한 불꽃과 같이 유유히 타오르는 마력.
그 익숙한 속성 마력의 모습에 이세훈은 곧장 정보를 살펴보았다.
[홍염] 『F』
진홍빛의 불꽃을 연상케 하는 화 속성 마력.
금속을 녹여 액체로 만드는 데 특화된 성질을 지니고 있다.
‘이야…… 이거 오랜만이네.’
회귀 전. 수습 대장장이 시절에 처음으로 개화해서 매일같이 다뤄왔었던 화 속성 마력.
남들보다 늦게 습득했던 터라 신나서 매일같이 사용했었는데 이번에도 똑같이 홍염을 가장 먼저 개화한 것이다.
‘지금 상태에 홍염도 나쁘진 않지.’
회귀 전에 사용했던 ‘창세염화創世染火’에 비한다면 성냥불이나 다름없지만 지금 상태에서는 어쩔 수 없으리라.
앞으로도 차근차근 실력을 복구해 나가자고 결심하며 이세훈은 완성된 무구를 살펴보았다.
[화적초火積鞘]
[등급 : 희귀] [품질 : 최하]
화 속성 마력이 담긴 칼집.
재료로 쓰인 광석의 핵이 고스란히 유지되어 화 속성 마력의 위력을 증폭시킨다.
내부에 불꽃을 저장할 수 있으며 그 흐름을 극대화해 막대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만들어낸 대장장이의 발상이 돋보이는 물건.
*화 속성 마력을 저장, 증폭시킵니다.
*스킬 ‘야화野火’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흐음. 역시 인연석이 적용되었구만.’
이번에 사용한 재료들은 단순히 화 속성 마력을 품고 있었을 뿐이지만, 완성된 화적초에는 불꽃을 저장하는 ‘화함철’의 성질이 부여되어 있었다.
아마 제작 과정에 인연각인을 사용하면서 자연스럽게 그 효과가 무구에 녹아든 것이리라.
‘이러면 진짜 사용법이 무궁무진해지는데.’
회귀 전에 만들었던 무구들을 더욱 일찍 재현할 수도 있을 것 같고, 그보다 더 뛰어나게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
대장장이로서 온갖 창작욕이 끓어오르고 있을 때.
파앙!
인연각인을 사용한 오른팔에서 무언가 툭 끊어졌다.
[인연각인 ‘화함’이 모두 소진되었습니다.]
오른팔에 장착해 둔 화함철이 사라졌음을 알려주는 알림창. 그 내용에 이세훈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Lv.1은 그리 오래 못쓰나 보네.’
그래도 아예 못 쓰는 것보다는 나으니 나쁘진 않다. 그럭저럭 만족스러운 결과에 이세훈은 아직 형질 변화 중인 한스를 바라보았다.
“윽…….”
자신이 만들어낸 무구를 보고는 기가 팍 죽은 한스. 실력이 아예 없진 않았는지 격차를 제대로 알아본 듯했다.
‘이걸로 주제 파악은 한 모양이군.’
그 모습에 이세훈은 피식 웃으며 남은 시간이 지나기를 앉은 채 여유롭게 기다렸고.
“시험 종료!”
김인철의 목소리가 추가시험의 끝을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