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5화
바벨 아카데미.
전 세계에 갑작스럽게 생겨난 영웅의 탑에 오를 등반자를 육성하는 교육기관 중 하나로 그 명성은 압도적인 수준이었다.
전투와 보조, 기술직 모두 최상위 수준의 커리큘럼과 설비를 보유하고 있으며 그 인프라를 통해 매해 수많은 영웅을 배출한다.
전체적인 규모만 놓고 보면 다른 육성 기관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압도적인 것은 바로 크기였다.
‘태평양에 인공섬을 만들어서 도시 규모의 학교를 만든다…… 누구 발상인지는 몰라도 참 대단해.’
처음에는 정말 작은 섬에서부터 시작했다고 들었지만 세월이 지나 끝없이 확장을 거친 결과 지금은 대도시에 버금가는 크기를 자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100개가 넘는 학부의 시설과 생도와 교직원의 생활시설. 그 이외에도 바벨에 투자받거나 협력을 맺은 외부 기업의 시설도 생기다 보니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면 사실상 독립 국가가 아닌가 싶지만…….’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건물들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경전철의 스피커에서 안내음이 울려 퍼졌다.
-이번 정류장은 제련학부 본관입니다.
마력으로 움직이던 경전철이 정류장에 멈췄고 밖으로 나온 이세훈은 제련학부의 본관을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크구만…….’
회귀 전 바벨에 입학은 실패했었지만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뒤에 초청받은 있었기에 와본 적은 있었다.
물론 그때는 제련학부가 사라져 다른 용도로 쓰이고 있었지만 외관은 그럭저럭 비슷한 상태였다.
‘보자. 3번 제련실이라고 했었지…….’
안내판을 보고 걸음을 옮기자 얼마 지나지 않아 매캐한 불 냄새와 달아오른 금속 냄새가 코끝을 간질인다.
엿 같으면서도 몸을 달아오르게 만드는 그 냄새에 이세훈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걸음을 빨리했다.
‘여긴가.’
3번 제련실이라 적힌 명패를 확인한 이세훈은 굳게 닫힌 문을 양손으로 열며 안으로 들어섰다.
줄지어 놓여 있는 수십 개의 마력화로와 각종 설비. 하나같이 지금 시점에서 엄청난 값을 자랑하는 최신식이었는데 그 모습에 이세훈이 감탄했다.
‘약소 학부에 이 정도 지원이라…… 여전히 규모가 다르구만.’
회귀 전에도 바벨의 씀씀이에 대해서 듣기는 했지만 이렇게 직접 보니 또 느낌이 다르다.
이세훈이 신기한 표정으로 내부를 살피고 있을 때.
“이세훈 생도.”
앞쪽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탁자에 앉은 채 날카로운 표정으로 바라보는 중년의 사내. 올백으로 넘긴 금발 머리나 새하얀 정장이나 조금 편집증적인 느낌이었는데 딱 봐도 성격이 더러워 보였다.
“다들 기다리고 있지 않습니까. 빨리 자리에 서세요.”
아직 시간이 10분이나 남았는데도 지각이라도 한 것처럼 재촉하는 사내. 노골적으로 적의가 느껴지는 그 반응에 이세훈의 눈매가 찌푸려지던 찰나.
“아직 10분 남았습니다. 부학과장님.”
단상 앞에 서 있던 김인철이 담담한 목소리로 지적했다.
“학과장님도 아직 안 오셨으니 급할 건 없지 않습니까.”
“태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럼 제가 주의를 주도록 하겠습니다.”
단호하게 이야기한 김인철은 표정을 풀고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곧 학과장님도 오실 테니 자리에 앉아서 기다리게.”
“알겠습니다.”
한쪽에 놓인 빈 의자에 앉은 이세훈은 짧게 신경전을 벌였던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제련학부가 사정이 안 좋다더니…… 부학과장한테도 밉보인 상태였나.’
안 그래도 실적도 안 좋은데 윗선이랑 틀어지기까지 했으면 시도 때도 없이 시비를 걸어올 터.
김인철이 왜 다른 교육기관을 추천했는지 이세훈이 어렴풋이 이해하고 있을 때. 옆쪽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음?”
반대편에 앉아서 자신을 흘겨보는 또 한 명의 생도.
깔끔히 손질해서 넘긴 금발머리에, 생도복은 구김 하나 없을 정도였는데 대충 입은 탓에 여기저기가 구겨진 이세훈과는 정반대였다.
“……쯧.”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혀를 차며 고개를 돌리는 생도. 부학과장만큼이나 노골적인 반응에 이세훈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오늘 진짜 무슨 날인가.’
한 놈도 아니고 두 놈이나 시작부터 성질을 긁는다니.
자신도 모르게 옆에 놓인 망치를 향해 이세훈의 손이 움직이려던 찰나.
“죄송합니다. 제가 제일 늦었군요.”
제련실의 문이 열리며 무덤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어딘가 익숙한 그 목소리에 이세훈은 그대로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뒷머리를 깔끔하게 올려 묶은 붉은 머리칼과 감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무표정한 얼굴.
객관적으로 봐도 미인이었으나 검은 정장과 표정 탓에 위압감이 느껴졌는데 그 익숙한 모습에 이세훈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류은하?’
S급 영웅 ‘웨폰 이터’ 류은하.
무구를 먹어 치워 힘을 증폭시키는 특이한 고유 스킬을 보유한 영웅이자 회귀 전 자신과 가장 오랫동안 거래했던 단골.
기간으로 따지면 삼견보다도 더 오래 알고 지냈던 상대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이세훈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1년 동안 바벨에서 잠깐 일한 적이 있다더니…… 그게 학과장이었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직책에 이세훈이 당황하고 있을 때. 류은하는 곧장 앞으로 걸어가 부학과장 옆의 빈자리에 앉았다.
“바로 시작하시죠.”
“알겠습니다. 두 사람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게.”
두 사람이 의자에서 일어서자 김인철이 그 모습을 바라보며 설명을 이었다.
“이번 추가시험의 주제는 앞서 공지했다시피 앞서 제작한 ‘검’과 함께 사용할 수 있는 무구를 만드는 걸세.”
김인철이 단상에서 패널을 조작하자 화로 옆쪽에 잠겨있던 철제상자가 열리며 그 안에 담긴 재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
기본적인 재료들만 갖춰져 있던 앞의 시험과 달리 이번에는 마력을 품고 있는 질 좋은 재료들이 상당히 많았다.
아마 이번에는 기본기뿐만 아니라 스킬과 마력의 활용까지 확실하게 보겠다는 뜻이리라.
‘이만한 구성이면…….’
재료를 한 번 훑어봤을 뿐인데도 무엇을 어떻게 만들지 머릿속에서 착착 맞춰지며 후보가 나열된다.
이세훈이 두 눈을 반짝이며 머릿속으로 설계도를 그리고 있을 때. 김인철이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제작한 무구는 여기 앉아계신 류은하 학과장님과 미하엘 바르무트 부학과장님께서 심사하실 테니 두 사람 모두 부끄럽지 않은 결과물을 만들도록.”
“……?”
재료를 살피는 데 정신이 팔려 있던 이세훈은 김인철의 이야기에 눈매를 찌푸렸다.
‘바르무트…… 이거 분명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지나가다 들었다고 하기에는 묘하게 거슬린다. 이세훈이 기억을 뒤지고 있는 사이 김인철이 패널을 조작해 허공에 타이머를 띄웠다.
“제한 시간 180분. 시작!”
타이머가 켜짐과 동시에 화로의 잠금장치가 풀렸고 옆의 생도가 먼저 재료를 고르기 시작한다.
‘일단 무구부터 만들고 보자.’
바르무트에 관한 것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이세훈은 곧장 생도복의 재킷을 벗어 뒤에다 던지고 셔츠의 소맷자락을 걷어 올렸다.
설명서에 의하면 온도 조절이나 방호기능이 있었다는 것 같지만 이세훈에게는 거치적거리기만 했기 때문이다.
“품위 없기는…….”
그런 이세훈의 거침없는 행동에 옆의 생도가 한심하다는 듯 중얼거렸고 그 모습에 김인철이 바라보았다.
“한스 바르무트. 시험과 관련 없는 발언은 하지 않도록.”
“주의하겠습니다.”
정중하게 대답하며 다시 재료를 고르는 생도, 한스의 성씨에 이세훈이 앞에 앉은 미하엘 학과장을 바라보았다.
‘과연…… 사이가 안 좋기만 한 게 아니었구만.’
설마 부학과장의 아들이 자신의 경쟁자였을 줄이야. 다른 사람들 같았으면 기겁할 상황이었지만, 이세훈은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한 놈만 조질 생각이었는데…… 이러면 둘 다 같이 조질 수 있겠는데.’
의욕이 마구 샘솟은 이세훈이 재료를 살피고 있을 때. 먼저 재료를 고른 한스가 화로 옆 탁상에 그것을 올려놓았다.
“라즐라이트와 해남옥. 마력함유랑이 높은 재료들이군요.”
푸른빛이 감도는 두 종류의 광석. 그 모습을 본 류은하가 관심을 보이자 미하엘이 미소를 지으며 설명을 덧붙였다.
“예. 거기에 수 속성 마력이 깃든 속성 재료지요.”
마력이 담긴 재료가 원래 다루기 어려운 편이었지만 그중에서도 ‘속성’을 띤 재료들은 차원이 다르다.
제련 중에 조금만 실수해도 내부의 속성 마력이 자극받아 광석의 품질이 순식간에 떨어지기 때문이다.
“수 속성 마력은 불에 민감해서 제련하기가 특히나 더 까다롭다고 들었습니다.”
“보통은 그렇습니다만…… 누가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다르겠지요.”
미하엘이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했고 모든 준비를 끝낸 한스가 자신의 마력을 끌어올렸다.
우우웅─
양손에 모여든 회색빛의 마력.
그 상태로 허공에 손을 움직이자 궤적을 따라 복잡한 도형이 새겨졌고 잠시 후 거대한 구의 형태를 띤 마법진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어서 꺼내둔 마석들을 마법진 곳곳에 끼워 넣자 다시 한번 변화가 일어났다.
키잉-
마석으로부터 마력을 공급받으며 환하게 빛나는 마법진.
마치 작은 별과 같은 화려한 마법진에 한스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라즐라이트와 해남옥을 안쪽에 집어넣었다.
부우웅-
그러자 마법진 안에 들어간 두 광석이 부르르 떨리더니 갑작스럽게 형태가 무너지며 액체처럼 변한다.
가열 없이 제련을 끝낸 한스는 곧장 마법진에 손을 넣어 그 형태를 가다듬었고 그 모습을 류은하가 담담히 이야기했다.
“연금제련법이었군요.”
기존의 제련법과 다르게 연금술과 마법을 토대로 만들어진 새로운 제련법.
단조와 담금질 같은 절차를 모조리 생략할 수 있고 재료의 마력을 끌어내기 쉬워 대장장이 업계에서도 주목받고 있는 기술이었다.
“일반적인 제련법에 비해 까다롭지만 능숙하게 다룬다면 재료의 힘을 완벽히 끌어낼 수 있는 기술이지요.”
“아직 불안정한 부분이 많다고 들었습니다만.”
“그것도 옛말이지요. 얼마 지나지 않아 연금제련법이 구시대적인 제련법을 완벽히 뛰어넘을 겁니다.”
옆에서 은근하게 연금제련법을 치켜세우는 미하엘.
그의 가문인 바르무트가 연금제련법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했고 이것을 제련학부의 핵심학파로 만드는 것이 미하엘의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학과장을 설득한다면 김인철도 더 이상 방법은 없겠지.’
제련학부의 부진이 몇 년 동안 계속되고 있는 만큼 약간의 명분만 주어진다면 얼마든지 뜯어고칠 수 있으리라.
시간문제나 다름없는 상황에 만족스러워하던 미하엘의 눈에 문득 이세훈이 들어왔다.
“바르무트…… 마도제련법…….”
재료를 고르다 말고 뭔가 중얼거리며 생각에 빠진 이세훈. 아무리 봐도 자신의 아들보다 덜 떨어져 보이는 그 모습에 미하엘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기본기는 제법 갖춘 것 같다만…… 이번에는 힘들 거다.’
구시대적인 제련법을 우선시한 앞의 시험과 달리 이번 추가시험은 스킬과 마력을 제대로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알아본 바에 의하면 이세훈의 마력은 이번 입학생 중에서 최하위. 제련학부의 2학년의 학부수석과도 견줄 수 있는 한스를 상대로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리라.
‘하필이면 잡은 줄이 김인철이라니. 운도 없군.’
보잘것없는 집안에서 태어나 마지막으로 붙잡은 밧줄이었을 텐데. 속으로 이세훈을 비웃은 미하엘이 고개를 돌렸고.
“아!”
이세훈이 개운한 표정을 지으며 소리쳤다.
바르무트 가문. 연금제련법. 회귀 전에도 대장장이 업계에서 그럭저럭 알아주는 놈이었지만 이세훈이 이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다른 이유였다.
‘그래. 분명히 폭견 걔랑 엮여 있었지.’
자신이 반드시 회유해야 하는 개놈들 중 폭견 루이제 발렌트와 악연으로 엮인 놈들.
한스를 밟아야 할 이유가 또 늘어난 이세훈은 좀 더 확실하게 깔아뭉개기 위해 머릿속에 떠오른 설계도를 바꾸고 발화석을 움켜쥐었다.
타닥! 탁!
손아귀에서 서로 부딪치며 불똥을 터뜨리는 발화석.
단순하면서도 낯선 기법에 모두의 시선이 모였고, 거기에 이세훈은 천천히 마력을 끌어올려 특정 발화석에 집중시키기 시작했다.
‘연금제련법이란 말이지.’
회귀 전. 이세훈은 대장장이와 관련된 기술이라면 무엇이든지 닥치는 대로 익혔다. 이것저것 가리면서 배우기에는 인류의 사정이 썩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말이 무엇인가.
‘니들이 나보다 잘 알겠냐?’
저 두 놈 모두 덜떨어진 놈들이라는 뜻이었다.
콰아아아앙─!
아무런 전조도 없이 터져 나온 폭발.
이세훈의 손을 장작 삼아 타오르는 주홍빛 불꽃에 시험장에 있는 모든 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시험이 시작하자마자 사고가 터지다니? 그 갑작스러운 상황에 모두가 당황하고 있을 때.
[인연각인 ‘화함’이 발동됩니다.]
우우웅!
이세훈의 손아귀로 불꽃이 압축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