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2화 (2/309)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2화

“경고는 이번 한 번으로 끝입니다. 다시 한번 소란이 일어나면 퇴실 조치할 테니 주의하세요.”

차가운 목소리로 경고한 시험감독관이 자리를 떠났고, 주변에 잠시 모여들었던 시선도 곧장 흩어졌다.

바벨 아카데미의 입학이 걸린 중요한 시험인 만큼 다른 사람이 실수하건 말건 눈여겨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경쟁자 중 한 명이 떨어져 나갔다고 생각하며 후보생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내는 무구에 박차를 가했고.

“…….”

주의받은 후보생, 이세훈은 멍한 표정으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31년 전으로 돌아왔다? 왜? 어째서?’

죽기 전 주마등인가 싶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오감으로 느껴지는 감각이 너무나도 선명하다.

손에 들린 싸구려 망치를 만지작거리며 조금이라도 기억을 되짚었고, 잠시 후 희미한 기억이 떠올랐다.

[무구 ‘───’의 심상이 발현되었습니다.]

[심상 스킬 ‘원점회귀(原點回歸)’가 벼려집니다.]

‘그래. 심상발현…….’

인연석을 사용해 만들어낸 무구에 강력한 스킬이 깃드는 현상.

수많은 무구를 만들어오면서 종종 겪었기에 그 자체는 익숙했지만, 딱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었다.

‘내 인연석에서 발현된 건 처음이야.’

자신의 인연석으로 수천, 수만 개의 무구를 만들어도 단 한 번도 발현되지 않았던 심상발현.

그런데 어째서 그때 그런 심상이 발현되었고, 자신은 과거로 돌아와 있는 것일까.

이유를 떠올리고도 납득이 안 가는 상황에 이세훈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한 가지 결론에 이르렀다.

‘……우연인가?’

생각해 보면 심상발현이 처음으로 발동했을 때도 일터를 습격당했을 때 허겁지겁 만들다가 일어나지 않았던가.

그러니 이번에도 자신의 심상발현이 우연히 일어났고, 그 덕분에 우연히 과거로 돌아왔다.

그 빈약하기 그지없는 결론에 이세훈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헛웃음을 터뜨렸다.

‘미쳤구만.’

자신의 머리가 미쳤거나, 아니면 세상이 미쳤거나. 둘 중 하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는 없으나 어쨌든 지금 자신은 과거에 다시 서 있다.

그것도 마지막에 되짚어보았던 수많은 후회 중에서 가장 첫 번째 순간에.

‘할 일은…… 생각할 것도 없지.’

드디어 머리가 개운해진 이세훈은 고개를 돌려 남은 시간을 확인해 보았다.

‘1시간인가.’

살짝 둘러보니 다른 후보생들은 단조를 거의 끝내가고 있는 상황. 그 모습을 살피던 이세훈은 과거의 자신이 벼리고 있던 철을 바라보았다.

‘병신 같네.’

멋지게 만들겠답시고 마구잡이로 두들겨놔서 무게중심도 엉망인 데다 형태도 고르지 않다.

장식용으로도 안 팔릴 쓰레기 같은 수준에 이세훈이 턱을 쓰다듬었다.

‘일단은 가다듬는 쪽으로 갈까.’

평가야 다소 떨어질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시험에 합격하기만 하면 그만 아닌가.

그리 생각하며 이세훈의 손이 다시금 망치를 가볍게 집어 들었다.

* * *

“처참하군.”

후보생들을 바라보던 중년의 사내, 김인철 교수가 언짢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애초에 보결 후보들만 모아둔 3조이니 큰 기대는 안 했지만, 상상 이상으로 수준이 떨어져 눈앞이 막막할 정도였다.

‘아무리 제련학과의 위상이 떨어졌다지만…….’

불을 다루는 솜씨와 망치를 두드리는 자세. 그런 기본기조차 제대로 갖추지 않고 그저 마력과 스킬만 쏟아부으며 철을 두드린다.

저것을 과연 ‘벼려낸다’라고 말할 수는 있을까.

‘후보생을 많이 모집한다고 해결될 게 아니었군.’

절로 한숨이 나오는 상황에 김인철이 고개를 숙이며 눈매를 매만지고 있을 때.

카앙─

시험장에 울려 퍼지는 쇳소리.

수십 명의 후보생이 내는 망치 소리를 꿰뚫고, 뇌리에 파고드는 듯한 울림에 김인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카앙─ 카앙─

느린 것 같으면서도 규칙적으로, 그리고 잡음이 섞이지 않은 청아한 울림. 그 예사롭지 않은 소리에 김인철이 고개를 번쩍 들어 주변을 살폈다.

‘누구지?’

방금까지 느꼈던 우울함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김인철은 소리의 주인을 찾기 위해 시험장을 살펴보았고, 이내 한 사람을 발견했다.

카앙─!

아무런 긴장도 없이 담담히 망치를 휘두르는 청년.

언뜻 보기에는 아무렇게나 때리는 것 같지만, 그 아래에 놓인 철은 이곳에 있는 그 어떤 것들보다도 확실하게 ‘벼려지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된 것 같군.’

후보생들의 수준이 한심하긴 했지만 그래도 채점을 위해서 기본적인 자세는 모두 살펴봤었다.

그리고 김인철의 기억에 이세훈의 실력은 중하위. 그것도 보결이 모인 3조에서의 평가였으니 바벨에는 절대로 입학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인성이한테 혼나고 멍하니 앉아 있었지.’

흔한 일은 아니지만 아무런 전조도 없이 스킬을 각성해서 몰라볼 정도로 실력이 좋아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어쩌면 저 후보생도 그런 상황일 수도 있을 터.

‘재밌군.’

검증할 필요도 없이 전원 불합격으로 끝날 것 같았지만, 어쩌면 제대로 심사를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시큰둥하게 앉아 있던 김인철이 자세를 고치며 이세훈을 바라본 순간.

파캉─!

시험장에서 가장 훌륭했던 작업물이 박살 났다.

* * *

처음 단조를 시작했을 때. 이세훈은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바벨의 이름값이 낮은 건 아니지만 그래 봐야 육성 기관. 회귀 전에 자신의 명성과 실력을 생각한다면 눈 감고도 합격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

이번 단조는 어디까지나 31년 전의 몸 상태를 확인하는 일종의 점검.

대장장이로서 전성기였던 시절만큼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어느 정도 타협하는 것이 분명 현명한 선택이었다.

꽈아악.

하지만 자신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검, 아니, 길쭉하고 뾰족한 척하는 쓰레기를 보고 있자니 이성이 버틸 수 없었다.

몸은 제대로 단련도 되어 있지 않아 망치질 하나 똑바로 못하고, 마력은 쥐꼬리만 해서 담금질은커녕 단조에도 못 쓰고 있다.

우득─

어쩔 수 없다. 지금 상태에서는 이것이 최선이다.

분명 머리로는 그것을 이해하고 있는데도, 전신에 두드러기가 난 것처럼 간질간질하고 머리에 피가 쏠려 얼굴이 흉악하게 일그러진다.

0.01㎜, 아니, 눈으로는 보이지도 않는 아주 미세한 오차조차 타협하지 않고 억 단위의 무구도 망설임 없이 부쉈던 진정한 장인.

“흐읍!!!”

통칭 ‘빚쟁이 대장장이’가 그것을 용납하는 일은 없었다.

파캉─!

모루에다 내려찍은 칼이 아주 깔끔하게 두 동강 났고, 감독관을 비롯해 모든 후보생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원하는 대로 결과물이 나오지 않아 좌절하는 후보생들이 종종 있긴 했지만 저렇게 박살 내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저 자식이 감히……!’

그 모습에 처음 이세훈에게 주의를 줬던 시험감독관, 한인성 조교의 얼굴이 왈칵 일그러졌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감히 제련학부의 지도교수이신 김인철 교수님 앞에서 저런 버르장머리 없는 행동을 하다니!

이번에야말로 퇴실시키겠노라 다짐하며 한인성이 이세훈에게 쿵쿵 발을 찍으며 다가갔고.

“감독관…… 님.”

흉흉하게 빛나는 이세훈의 안광에 몸이 딱 굳었다.

조카뻘인 청년, 거기에 스펙도 보결들만 모인 이 3조에서도 중하위권에 속한 보잘것없는 후보생이었다.

“…….”

그런데도 그 앞에 서니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마치 바벨에 다니던 시절 기분 나쁘다고 지랄할 건수만 찾아 헤매던 선배를 앞에 둔 것 같은, 그런 압박감이 눈앞의 이세훈에게서 느껴지는 것이다!

“드릴 말씀이 있…… 는데요.”

반사적으로 새어 나오려는 반말을 이를 꽉 물어 참아내며 이야기하는 이세훈의 모습에 한인성이 침을 꼴깍 삼키며 물었다.

“무, 무슨 일입니까?”

“과제물을 다시 만들고 싶…… 습니다. 재료를 내…… 주실 수 있을까요?”

부탁을 하는 건지 협박을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이세훈의 모습에 한인성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원래라면 어디 그런 행패를 부리고 뻔뻔하게 요구하냐며 기를 팍 죽였을 텐데 어째서인지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성은 거절을 말하지만 본능이 말리는 상황. 안 내놓으면 당장에라도 자신을 요절낼 것 같은 이세훈의 모습에 한인성이 고민하던 그때.

“흐음.”

어느새 다가온 김인철이 부러진 검 조각을 집어 들었다.

흥미롭다는 듯 조각을 이리저리 살펴보는 김인철. 그 모습에 은근히 쳐다보던 주변 후보생들이 웅성거렸다.

조교인 한인성과 달리 김인철은 제련학부의 우두머리라 할 수 있는 지도교수. 거기에 세계 100대 장인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는 거물이었기 때문이다.

“자네.”

부러진 검 조각을 모루에 올려놓은 김인철이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이걸 부러뜨린 게 옳았다고 생각하나?”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의미심장한 물음.

다른 후보생이었다면 혹시 자신이 괜한 짓을 했나 싶어 허둥지둥했겠지만.

“예.”

이세훈에게는 고민할 필요도 없는 물음이었다.

“저런 걸 제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렇군.”

단호하기 그지없는 이세훈의 대답에 김인철은 잠시 고민하다가 옆에서 멍하니 바라보던 한인성을 바라보았다.

“한 조교. 재료가 남아 있나?”

“예? 아, 예. 있습니다.”

“가져다주게. 어차피 규칙상 문제없으니.”

“그,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나 싶어 한인성이 조심히 반문하려던 순간.

“내가 가져와야겠나?”

“아닙니다!”

짧은 한마디에 한인성이 부리나케 재료실로 달려갔고, 잠시 후 커다란 상자를 들고 돌아왔다.

“헉헉…… 철괴랑 발화석도 모두 들고 왔습니다.”

“수고했네.”

한인성의 어깨를 토닥여준 김인철은 남은 시간을 확인한 다음 이세훈을 바라보았다.

“이제 40분 정도밖에 안 남았네만 이것들로 되겠나?”

“충분…… 합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안 되겠지만, 다 되게 하는 방법이 있다. 번뜩이는 이세훈의 두 눈에 김인철이 슬쩍 웃었다.

“기대하지.”

감독관들이 다시 자리로 돌아갔고, 이세훈은 눈앞에 놓인 재료들을 바라보았다.

철괴의 품질은 자세히 살펴볼 것도 없이 모두 동일하게 훌륭했고 발화석들도 시험에 쓰이는 것치고는 질 좋은 것들로 여러 종류가 갖춰져 있었다.

시험 준비가 미흡했다는 변명의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해서였는데 그 모습에 이세훈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 정도면 되겠네.’

다소 거칠긴 하겠지만, 본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에는 그만한 진통이 따르게 마련이다.

새로운 철괴와 발화석 몇 종류를 꺼내든 이세훈은 조금씩 식어가는 화로 앞에 섰다.

그리고는 오른손에 얼마 없는 마력을 집중시킨 다음 손안에서 발화석을 서로 충돌시켰다.

타닥! 탁!

부싯돌이 부딪치는 것처럼 탁 튀는 소리와 불똥.

점멸하는 램프처럼 손안에서 불이 번쩍이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 기괴한 광경에 시험장에 있는 모두가 바라보았다.

‘발화석에 마력 들어가면 엄청 뜨거울 텐데…….’

‘어디서 타는 냄새가…….’

무언가 일어난다. 모두가 그것을 직감하던 그때.

따악─

앞의 충돌음과는 확연히 다른, 모든 발화석들이 일제히 울린 공명음.

그 소리에 이세훈이 두 눈을 번쩍이며 화로 안에다 발화석을 집어던졌고.

───콰아아아앙!!!

화로의 입구에서 오색의 불꽃이 터져 나왔다.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