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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가 다 만들어줌-1화 (1/309)

회귀자가 다 만들어줌 1화

처음 마력을 각성했을 때. 사람들은 ‘심상心象’이라 불리는 현상을 겪게 된다.

누군가는 수많은 별이 떨어지는 밤하늘을 보았고, 또 누군가는 온갖 진수성찬들의 향기를, 어떤 이는 모든 것이 빨려 들어가는 소리를 들었다고 말한다.

아무런 규칙도 없이 무분별하게 나타나는 심상. 나 역시 그러한 현상을 겪었다.

쏴아아-

귓가를 간질이듯이 고요하게 울리는 파도 소리.

마력을 각성하며 들려오기 시작한 그 소리에 내가 느낀 감상은 딱 하나밖에 없었다.

‘왜 파도 소리야?’

내게 적성이 있다고 판명된 직업은 대장장이.

불이라면 모를까, 파도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었기에 왜 하필 그런 소리가 들린 것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나는 주기적으로 그 파도 소리가 들려왔고 그럴 때마다 의문만 쌓여갔다.

그리고 그 의문은 망치를 두드리고, 화로를 달구며, 수많은 무구를 만들어내는 동안에도 풀리지 않았고.

쏴아아아-

세계가 멸망해 가고 있는 지금에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개X발…….”

그 X같은 파도 소리는 세계가 멸망해 가는 소리였다고.

쿠구구궁-

저 멀리서 들려오는 진동과 굉음.

이 일대를 날려 버릴 것 같던 진동도, 고막을 터뜨릴 것처럼 우렁차던 굉음도 이제는 힘이 떨어졌는지 희미해져 간다.

자신과 함께 멸해의 마신에게 덤벼들었던 결사대의 싸움이 끝나가고 있다는 뜻이리라.

“후우…….”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직접 보고 싶었지만, 목뼈가 끊어져 고개를 돌릴 수가 없다.

척추도 박살 나 하반신에 감각이 없었고 내장 쪽도 상태가 안 좋은지 틈만 나면 입에서 피가 울컥하고 올라온다.

피가래를 뱉어낼 힘이라도 남아 있어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입안의 피에 익사했으리라.

“아까 그냥 뒤졌어야 했는데…….”

이렇게 어중간하게 다칠 줄 알았으면 막지도 않았을 것을.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등을 받쳐주는 대검에 몸을 기댔다. 그리고 통증을 줄이기 위해 숨을 가다듬고 있을 때.

쿠웅!

눈앞에 흉측하게 일그러진 머리가 떨어졌다.

세 개의 뿔은 남김없이 부서졌고 푸른빛으로 빛나던 네 개의 눈동자는 고문이라도 한 것처럼 짓이겨져 있다.

마지막이 그리 편치 않았음을 알려주듯 엉망이 되어 있는 머리, 멸해의 마신을 바라보다가 입가를 비틀었다.

“꼴좋네. 병신…….”

자기가 육대마신 중 최강이니, 세계의 종말이니 허세란 허세는 다 부리더니 결국 마지막에 만만하게 보던 인간들에게 목이 날아갔다.

마음과 같아서는 힘껏 웃어주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피를 토하며 죽을 것 같아서 숨죽인 채 몸을 들썩거리고 있을 때.

“지랄을 하는군.”

멸해의 마신을 죽인 세 명이 뒤늦게 걸어왔다.

“누가 보면 네가 죽인 줄 알겠다.”

“내 말이. 꾀병 부리면서 누워 있던 새끼가…….”

“제가 말했잖습니까. 형님이 군단 쪽 맡은 거 날로 먹으려고 한 거라니까요?”

기분 좋아서 웃은 게 그리도 마음에 안 드는지 비아냥거리는 셋. 그 익숙한 광경에 나 역시 입가를 비틀며 대답했다.

“내 무구 없었으면 진작 뒤졌을 놈들이 허세는…….”

“뭐라고?”

“이 새끼가…….”

“와. 어이가 없네.”

눈을 부라리며 노려보는 세 사람.

처음 결사대를 조직할 때부터 지금까지 눈곱만큼도 변하지 않은 그 태도에 쓴웃음을 짓고 있을 때. 녀석들이 먼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됐다. 죽어가는 놈한테 이게 뭐하는 짓인지.”

“그래. 저 새끼가 저러는 게 한두 번도 아니고.”

“에휴. 제가 참습니다.”

지쳤다는 듯이 바닥에 주저앉은 셋.

서로 마주 보기도 싫은지 저마다 등을 돌린 채 앉아 있는 그 한결같은 뒷모습에 담담히 물었다.

“살 수 있는 사람?”

“난 끝이다. 내장이 모조리 으깨졌어.”

“나도. 저주 때문인지 피가 안 멈추네.”

“씁. 심장이 찔려서 안 되겠는데요.”

자신이 죽어가는 것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셋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은 이렇게 되는 건가.”

멸해의 마신.

인류를 위협하던 육대마신 중 녀석이 마지막이었지만, 이미 지상의 9할은 녀석이 만들어낸 멸해滅海에 휩쓸려 버렸다.

지구를 유지해 주던 영웅의 탑도 이미 모두 무너져 버렸으니 멸해가 지상을 모두 휩쓸고 나면 만마전의 늪이 빈자리를 채우게 되리라.

“하아…….”

이겼지만 이미 패배했다.

결사대를 모으기 전부터 알고 있었음에도 씁쓸하기 그지없는 결과에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진작 좀 도와주지 그랬냐.”

눈앞의 셋, 삼견은 흔히 말하는 회색 종자들이었다.

인류와 만마전. 그 어느 쪽의 편에 서지 않고 기분이 내키는 대로 움직이며 자신들의 이익만 탐한 개새끼들.

‘저 녀석들만 있었다면…….’

저 셋보다 강한 이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저 셋만이 가진 ‘재능’으로만 가능한 일들도 많았다.

그것을 조금만 더 일찍 발휘했더라면, 그렇게 다른 영웅들이 허무하게 목숨을 잃지 않았더라면 더 좋은 결과로 갈 수 있지 않았을까.

결사대를 만들었을 때부터 쭉 품어왔던 한탄에 녀석들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마지막에 도와준 것만으로도 감사히 여겨라…….”

광견 염성하.

“꼬우면 우리보다 강했어야지. 새끼야…….”

폭견 루이제 발렌트.

“엿 드십쇼. 형님…….”

빙견 아미르 싱.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자신들의 의견을 굽히지 않는 그 개새끼들의 모습에 왠지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지긋지긋한 새끼들.”

마음과 같아서는 욕이라도 실컷 퍼붓고 싶었지만, 듣지도 못할 텐데 무슨 의미가 있을까.

등을 돌린 채 앉아 있는 셋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어두컴컴한 하늘 위를 올려다보았다.

‘어디서부터 잘못한 걸까.’

저 세 명을 진작 끌어들이지 못해서? 인류의 최강자들인 완등자들이 제대로 힘을 합치지 못해서?

그도 아니면 아주 오래전, 마력을 각성했을 때부터 들어온 파도 소리가 무엇이었는지 깨닫지 못해서?

지난 수십 년간의 인생이 주마등처럼 흘러가니 금방 원인을 알아낼 수 있었다.

‘나구나.’

아주 조금이라도 더 일찍 타인을 위하여 망치를 두드릴 줄 알았더라면,

그렇게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을 일찍 깨달았더라면 모든 상황을 바꿀 수도 있지 않았을까.

미련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그 생각에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미쳤지…….”

이미 지나가 버린 일로 이게 무슨 추태인가.

무슨 일이 있어도 후회만큼은 하지 않기로 했었기에 머릿속을 가득 채운 생각을 억지로 떨쳐내며 허리춤에 손을 가져다 댔다.

꽈악─

지난 수십 년간 쉴 새 없이 휘둘러왔던 망치.

이제는 몸의 일부나 다름없는 녀석을 움켜쥐며 천천히 대검에 기대고 있던 등을 일으켰다.

쿨럭!

대검에서 흘러나오던 치유력이 끊어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피가 터져 나온다.

이대로 가만히 앉아 있으면 그나마 고통 없이 편안하게 죽을 수도 있겠지만, 너무 무의미하게 끝내고 싶지는 않았다.

“내 인생 최고의 걸작들인데…… 저렇게 흉하게 둘 순 없지…….”

한계에 다다른 몸을 마지막으로 쥐어짜 내며 녀석들 곁에 널브러진 무구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폐허의 위에서 손에 들린 망치를 휘둘렀다.

카앙! 카앙!

튀어 오르는 불씨와 점점 붉게 달아오르는 망치.

공방에서 단조한 것만큼 제대로 되진 않겠지만 스승에게서 받은 이 ‘잔화의 망치’라면 가다듬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이빨이 다 나가 엉망이었던 무구들이 다시금 벼려졌고, 수리가 끝날 때마다 녀석들의 옆에 힘껏 쑤셔 박았다.

“후우…….”

곧 멸해에 휩쓸릴 곳에서 무슨 부질없는 짓인가 싶었지만 아무렴 어떤가. 어설프게나마 만들어진 세 명의 묘비를 바라보다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쏴아아아-

어느덧 지척까지 밀려온 멸해.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달으며 손에 들린 망치를 내려다보았다.

‘마지막인가.’

정말로 곧 끝나 버린다면, 저 빌어먹을 검은 파도에 휩쓸리는 것보다는 직접 마무리 짓고 싶다.

불현듯 떠오른 그 생각에 천천히 가슴을 움켜쥐었다.

‘인연추출.’

[대상 ‘이세훈’에게서 인연을 추출합니다.]

[제작자 ‘이세훈’과의 인연은 Lv.─입니다.]

환한 광채와 함께 손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투명한 광석. 언제나 변함없는 그 무색의 광석을 내려다보았다.

‘역시 밋밋하구만.’

인연을 맺은 대상에게서 특수한 광석을 추출할 수 있는 고유 스킬 ‘인연의 대장장이’.

어떤 인연을 맺었는지와 대상의 잠재력에 따라 광석의 효과가 달라졌는데 자신에게 사용하면 평범한 철광석보다 못한 놈이 나왔었다.

‘이거라도 빨리 각성했다면 좋았을 텐데 말이야…….’

과거를 떠올림과 동시에 다시금 밀려오는 후회. 떨쳐내려 해도 달라붙는 그 아쉬움에 한숨을 내쉬며 손에 들린 텅 빈 인연석을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담기지 않았다면…….’

자신을 괴롭히는 이 후회라도 가져가라.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내 망치를 움켜쥐고 무색의 광석을 향해 망치를 두들긴다.

쏴아아-

망치 소리를 대신해 귓가를 채우는 파도 소리.

이곳을 향해 다가오는 멸해의 소리일까, 아니면 언제나 들려오던 환청일까. 이제는 구별도 가지 않는 파도 소리 속에서 쉴 새 없이 망치를 휘두르며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이 소리가 귓가에 울릴 때는 언제나 자신의 상상 이상으로 좋은 물건이 나왔기 때문이다.

‘하. 나도 미친 새끼구만.’

세계가 멸망해 가는 소리를 듣는 와중에 좋은 물건이 나올 것 같아 기뻐한다니.

그 헛웃음 나오는 상황 속에서 묵묵히 망치를 두드렸고 손에 힘이 빠져 자연스레 망치질을 멈췄다.

“하아…… 하아…….”

평범하게 벼려진 무색의 단검.

잘 만들어지긴 했으나 그저 그뿐. 다른 재료도 없이 자신의 인연석만 사용했기에 특별한 힘은 없었다.

쏴아아아-

지척까지 밀려온 멸해.

셋의 시체마저 사라진 것을 바라보며 천천히 손에 들린 단검을 역수로 움켜쥐었다.

이럴 땐 뭐라고 말하는 게 좋을까. 세상을 향해 욕이라도 퍼부을까 싶다가 그건 아니다 싶어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인생…… X발…….”

그거면 충분하다.

푸욱!

허공을 찌른 것처럼 부드럽게 심장을 관통한 칼날.

누가 만들었는지 몰라도 기똥차기 그지없는 그 예리함에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었고.

[무구 ‘───’의 심상이 발현되었습니다.]

[심상 스킬 ‘원점회귀原點回歸’가 벼려집니다.]

* * *

쏴아아-

희미하게 들려오는 파도 소리.

평생을 질리도록 들어온, 그리고 듣기 싫은 그 소리에 절로 인상이 일그러졌다.

‘아직도 안 죽었어?’

단검을 너무 날카롭게 벼린 탓에 심장이 찔린 것도 모르고 있는 것일까. 이대로라면 멸해에 휩쓸려 죽겠다 싶어 다시 찌르려고 할 때.

툭.

가슴을 때리는 뭉툭한 감각.

달라도 너무 다른 그 느낌에 천천히 눈을 떴고, 예상한 것과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매캐한 연기와 얼굴을 달구는 불. 그리고 검댕으로 엉망이 된 옷과 가슴에 닿은 투박한 망치.

어디서 본 것 같은, 하지만 너무 오래전이라 떠오르지 않는 풍경에 멍하니 내려다보고 있을 때.

“이봐요.”

“…….”

“후보생. 정신 안 차립니까?”

“……?”

“이세훈 후보생!!”

그제야 자신을 부른 것임을 깨달으며 고개를 들자 보이는 것은 인상을 일그러뜨린 신경질적인 얼굴의 사내.

그리고 자신처럼 간이화로 앞에 서 있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청소년들이 보였다.

“시험 중에 이게 무슨 추태입니까? 제대로 할 생각 없으면 당장 짐 싸서 나가세요.”

“시험…….”

눈앞의 사내, 아니, 시험감독관의 이야기에 기억이 천천히 떠오른다.

영웅의 탑을 오르는 등반자를 육성하는 ‘바벨 아카데미’. 나는 거기서 제련학과에 지원했었고, 형편없이 떨어졌었다.

그것만 두고 보면 그저 씁쓸한 추억이지만 문제가 있었다.

그 추억은 무려 31년 전의 일이었고.

“시험?”

나는 그 과거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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