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50화
“저, 저거 부원주의 부모를 욕하는 거 맞지?”
“맞아. 아주 고급스럽게 썼지만 결국 부모 욕이야….”
“광풍대는 진짜 미친 인간들만 가는 곳인가. 무슨 대주가….”
간신히 정신을 차린 검사들은 아직도 지워지지 않은 마법의 글을 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런데 저거 되게 잘 쓰지 않았어? 시나, 노래 가사 같은데.”
“맞아. 노래처럼 들렸어.”
“난 저 내용이 머리에 박혀서 떠나질 않아!”
소수의 검사들은 라온의 글과 유아의 목소리에 감탄하며 헛웃음을 흘렸다.
“무지한 자는 열등감을 남에게 표출하는 법이고, 성인은 스스로의 부족함을 깨닫고 마음을 단련한다!”
“비천한 자는 자기보다 모자란 자를 찾아 비웃음을 그리고, 존귀한 자는 부족한 자에게 지식과 마음을 나누는 법이다!”
아이들은 라온의 글을 노래처럼 따라 불렀다. 유아의 리듬감이 그대로 살아있었다.
“안 돼!”
“절대 따라 하지 마!”
부모들이 빠르게 아이의 입을 막았지만, 이미 그 현상은 본관 이곳저곳에서 터져서 수습할 수 있는 상황을 벗어나 있었다.
“결국 저거 검투 신청이지? 일이 크게 터지겠는데….”
“평소 부원주의 성격을 생각하면 절대 안 받겠지만, 이번 검투는 안 맞으면….”
“호로자식이 되는 거잖아. 무조건 받겠지. 아니, 받을 수밖에 없어!”
“라온 지그하르트. 진짜 무서운 인간이야….”
검사들은 마법으로 적힌 글을 다시 읽으며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리메르는 벽에 등을 기댄 채 사람들의 반응을 즐기다가 가주전으로 들어갔다.
그는 알현실의 무거운 문을 걷어차 버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보셨어요? 우리 미친놈이 사고 친 거?”
리메르는 조명을 켠 듯 환히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베르빈을 소개해줬을 뿐인데, 아주 난장판을 만들어 놨다구요!”
그는 난장판이라고 한 것과 다르게 창밖으로 비치는 마법의 글을 보며 키득 웃었다.
“크허허허허!”
로엔이 드물게도 시원한 웃음을 터트렸다.
“라온 도련님이 가만히 계시지 않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저런 일을 계획하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는 점점 더 상상을 뛰어넘는다며 뒷목을 매만졌다.
“좋네.”
셰릴이 허공에 그려진 라온의 글을 읊으며 은은한 미소를 그렸다.
“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야. 조롱이라고 해도 정말 잘 썼는데?”
그녀는 바로 외웠다고 중얼거리며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너는 그런 말 안 할 줄 알았는데?”
리메르가 셰릴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우아한 글이라고 해도 결국 의미는 느그….”
“부모를 먼저 건드린 건 부원주야. 오히려 저렇게 우아하게 표현을 해줬으니, 라온이 신사적인 거지.”
셰릴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며 어깨를 으쓱였다.
“와, 우리 꼰대도 인정할 정도라니.”
리메르는 라온의 계획을 칭송한다며 허공에 박수를 쳤다.
“사실 이렇게까지 퍼진 이유에는 유아 아가씨의 힘도 있었을 겁니다. 그분의 목소리에는 귀를 뗄 수 없게 만드는 마성의 힘이 있으니까요.”
로엔은 유아가 대견하다는 듯 은은한 미소를 그렸다.
“그렇죠. 여러모로 머리를 잘 썼어요.”
리메르가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검투는 볼 것도 없이 이루어지겠네.”
“그렇겠지. 미꾸라지 같은 부원주도 저 말을 듣고서는 빠져나갈 수 없을 테니까.”
셰릴이 동의하며 픽 웃었다.
“3주 뒤가 기다려지네. 그런데….”
리메르가 아직도 남아 있는 마법의 글을 보다가 뒤편으로 시선을 돌렸다.
제일 날뛸 것 같았던 아리스가 구석에 박힌 채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뭐해? 댁이 이뻐하는 조카가 신나게 사고를 쳤는데 웬일로 가만히 있어?”
리메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리스에게 다가갔다.
“그게….”
아리스가 허공에 떠 있는 글씨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처음에는 좋았는데, 읽다 보니까….”
“읽다 보니까?”
“좀 찔리더라고.”
그녀의 눈동자가 천천히 단상 위를 향했다.
“…….”
글렌은 아리스의 시선을 받자마자, 고개를 홱 돌린 채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고 보니 평소라면 천장을 향해 솟구쳐야 할 그의 입꼬리도 축 늘어져 있었다.
“허.”
리메르는 라온의 도전장을 천천히 읽으며 자신도 모르게 크게 숨을 들이켰다.
‘이거 광역으로 터졌는데….’
***
도괴가 우직한 걸음으로 원로원에 들어섰다.
“아!”
“도, 도괴 님….”
원로원 내부에 있던 무인들은 갑작스럽게 찾아온 도괴를 보며 막아야 할지 물러나야 할지 고민하는 듯 눈동자를 떨었다.
“말만 전하고 갈 테니, 신경 쓰지 마라.”
도괴는 무인들에게 손을 젓고서 원로원 우측 복도로 들어가 부원주실 앞에 섰다.
“아, 안 됩니다! 지금은 절대….”
“입다물어라.”
크리슨이 출입 불가라며 길을 막았지만, 도괴는 그를 밀쳐내고 부원주의 집무실 문을 열었다.
“흐음!”
도괴가 내부를 살피며 입매를 비틀었다.
본래 부원주의 집무실은 화려하지는 않아도 먼지 하나 없이 정갈하게 정리가 되어 있는 곳이지만, 지금은 전투가 벌어진 것처럼 모든 게 망가져 있었다.
흑단목 책상은 반으로 쪼개진 채 나뒹굴었고, 책장은 모조리 박살 나서 무너졌으며, 장식품도 망치로 내려친 것처럼 깨져 있었다.
“아주 난장판이로군. 네가 망쳤던 별관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어졌어.”
“…….”
부원주는 망가진 의자에 걸터앉은 채 도괴를 노려보았다.
“이렇게 보니까 대단한데? 누구는 열흘에 걸쳐서 망쳐놓은 것을 단 하루 만에. 아니지. 몇 분 만에 이 꼴로 만들었으니까. 라온 녀석의 판정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어.”
도괴는 부원주를 조롱하듯 엄지 손가락을 뒤집었다.
“여기서 죽고 싶지 않다면 입 다물어라.”
부원주는 당장 달려들 것처럼 이를 바드득 갈았다.
“크하하하하!”
도괴는 그런 부원주를 비웃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능구렁이 같은 영감이 그런 표정을 짓다니, 10년 묵은 체증이 싹 내려가는군!”
“도괴!”
부원주가 미간을 구기며 일어서려고 할 때 그가 고개를 저었다.
“아쉽게도 놀리러 온 것만은 아니라서 말이야.”
도괴가 서류 한 장을 꺼내서 부원주에게 던졌다. 종이는 나풀거리며 날아가 부원주의 손에 잡혔다.
“별관의 주인이 보내는 검투 신청이다. 별관과 부원주실의 2대2의 대장전. 승자가 계속 싸우는 방식이다.”
“2대2라고?”
부원주는 2대2까지는 예상하지 못한 듯 콧잔등을 찌푸렸다.
“네놈, 허울뿐이라고 해도 별관의 총관이라고 했었지. 직접 나오는 건가?”
“아니.”
도괴가 담담하게 고개를 저었다.
“마음 같아서는 내가 나와서 네 목을 따 주고 싶다만 그 꼬맹이가 허락해주지 않더구나.”
“음….”
부원주는 도괴의 생각을 파악하려는 듯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뭘 그리 노려봐. 나는 네놈처럼 거짓말은 입에 담지 않는다.”
도괴가 입매를 비틀며 손을 휘휘 저었다.
“다시 말하지. 별관과 부원주실의 검투다. 다른 놈을 끌고 왔다가는 지금보다 더 추한 꼴을 보게 될 것이야.”
“…알고 있다.”
부원주가 도괴를 노려보며 입술을 씹었다.
“크흐흐흐.”
도괴는 못 견디겠다는 듯 품에서 술병을 꺼냈다.
“표정 한번 맛있군. 이런 안줏거리를 놓칠 수는 없지.”
그는 부원주의 일그러진 표정을 눈에 담으며 술병을 통째로 비워버렸다.
“네놈 같은 너구리 영감도 그 아이에게는 어쩔 수 없다는 게 웃기는군. 하긴 비천하고, 무지하고, 부모에게 배우지 못한 자가 됐는데 참을 수 없겠지.”
“네놈이 끝까지!”
“할 말은 다 했으니, 돌아가마.”
도괴는 비어버린 술병을 부원주 실 바닥에 던져버리고서 등을 돌렸다.
쿠와아아아앙!
그가 떠난 부원주실에서 천장과 바닥이 으깨지는 듯한 굉음이 들려왔다.
“소리도 맛있는데?”
도괴는 낄낄 웃으며 두 번째 술병을 입에 물었다.
***
“유아야. 괜찮아?”
실비아가 마탑에서 돌아온 유아를 끌어안으며 헛바람을 흘렸다.
“괜찮아요!”
유아는 힘차게 고개를 저으며 오히려 실비아를 안아주었다.
“라온! 차라리 나한테 말하지! 유아한테 그런 말을 하게 하다니….”
“유아가 하고 싶다고 했어요. 그리고….”
라온이 유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 일은 유아만이 할 수 있어요.”
거짓이 아니다. 유아가 읊어준 덕분에 내가 쓴 글이 노래와 시처럼 울려 퍼지고 있었다.
만약 실비아가 저 말을 했다면 지금보다 효과가 훨씬 떨어졌을 것이다.
“그래도 아직 어린아이인데….”
“걱정마세요. 나쁜 말은 거의 없었으니까.”
까놓고 보면 ‘너희 부모님은 대체 뭐했니?’지만 최대한 말을 곱게 적어서 유아의 입을 더럽히지는 않았다.
“유아야! 잘했어! 속이 너무 시원해!”
헬렌이 유아의 어깨를 잡으며 웃음을 터트렸다.
“나도! 그 영감탱이가 화내는 얼굴은 못 봤지만, 상상만 해도 너무 좋아!”
“참느라 혼났는데, 이제 좀 속이 풀리네요!”
“오늘은 두 발 다 뻗고 자겠다!”
다른 시녀들도 너무 좋다는 듯 얼굴에서 웃음을 지우지 못했다.
“저도….”
주디엘조차 큼지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가 저리 기뻐하는 것을 보면 부원주가 얼마나 악독했는지 알 수 있었다.
“솔직히 나도 좀. 아니, 많이 시원하긴 해.”
실비아가 어색하게 웃으며 뒷머리를 매만졌다.
“유아에게 미안할 뿐이지."
“전 정말 괜찮아요!”
유아는 멍이 든 실비아의 손을 매만지며 고개를 저었다.
“저도 진심으로 화가 났으니까요. 이런 일이라도 도와서 다행이에요.”
유아는 복귀한 후 별관이 망가진 모습을 보고 처음으로 분노를 드러냈었다.
덕분에 내 부탁에도 흔쾌히 응해주었고, 확성 마법을 사용할 때도 그녀가 진심으로 힘을 내어서 모두의 감정을 울릴 수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하실 일은 따로 있어요.”
“내가 할 일?”
실비아가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글이 결투장인 건 알고 계시죠?”
“그래.”
“저는 일대일의 검투를 신청하지 않았어요.”
라온이 천천히 사라지는 마법의 글을 보며 시선을 내렸다.
“2대2의 대장전. 승자가 계속 싸우는 방식으로 검투를 신청했습니다.”
“그, 그러면….”
실비아도 이제 무슨 말인지 알아들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선봉으로 어머니가 나가셔야 합니다.”
라온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부원주실에서 나오는 건 크리슨과 부원주일 테니, 크리슨을 잡고 부원주까지 어머니가 상대하세요.”
“둘을 모두?”
실비아가 입을 떡 벌렸다. 크리슨은 몰라도, 부원주까지 상대하라는 소리에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분하셨잖아요. 별관을 지켜야 하는데,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
그녀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입술을 꾹 씹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 분노를 표출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릴게요.”
라온은 그 말을 하며 부원주의 무학 십종검결을 꺼냈다.
“검투까지 남은 시간은 3주. 원로원의 감찰보다도 몇 배는 더 힘든 시간이 될 겁니다. 선택은 어머니가 하세요.”
그 말을 하며 실비아의 눈을 바라보았다.
천천히 타오르는 붉은 눈동자. 수없이 많이 눈물을 보이고, 스스로의 약함을 탓하던 여성은 더는 보이지 않았다.
지금 존재하는 것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검을 든 한 명의 검사뿐이었다.
-엄마도 꽤 재능이 있지만,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니라.
라스는 실비아의 눈을 보고 더 안타까운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도 있겠지.’
-그걸 알면서 왜?
‘1,000 중 999를 진다고 해도 자기 손으로 싸워야 할 때가 있으니까.’
라온이 실비아의 적안을 마주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은 필요없네요. 바로 시작하죠.”
***
북망산 초입의 공터가 폭격을 맞은 것처럼 파헤쳐져 있었다.
“허억….”
실비아는 구덩이처럼 파인 땅을 구르며 탁한 숨을 내뱉었다.
“느립니다. 머리로 생각한 후 몸을 움직이는 게 아니라, 몸과 머리가 동시에 움직여야 해요.”
라온이 물러서는 실비아에게 따라붙으며 제천검을 내리쳤다. 햇살이 이지러지는 은빛 칼날이 실비아의 다리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만화공의 검술도, 광아검도 아니다. 검이 열 개의 빛으로 화하는 십종검결이었다.
“크윽!”
실비아가 다급하게 보법을 밟았다. 그림자가 사라질 정도로 빠르게 물러섰지만, 라온의 검은 그녀의 뒤를 자석처럼 따라붙었다.
“십종검결은 환검과 변검만 깃든 게 아닙니다. 굉장히 빨라요. 제대로 대비하지 않는다면 환검에 눈이 익기도 전에 팔다리가 잘려 나갈 겁니다.”
라온이 실비아의 눈앞으로 짓쳐 들어 그녀의 가슴을 향해 제천검의 검극을 찔러넣었다.
“알겠어!”
실비아가 악을 지르듯 대답하며 명치를 향해 파고들어 온 검격을 간신히 쳐냈다.
피이이익!
하지만 십종검결의 진의는 빠름이 아니라, 변화와 환상이었기에 급격하게 번진 검의 궤적이 그녀의 살을 갈랐다.
“흐읍!”
실비아는 검에 베였음에도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본인의 검술을 이어갔다.
“당황하지 않는 건 좋지만, 움직임이 굳어졌습니다.”
라온이 피를 흩뿌리며 검을 휘두르는 실비아의 공간으로 한 걸음 들어섰다. 쏟아지는 검격을 제천검으로 흘려내며 왼쪽 팔꿈치로 실비아의 허리를 후려쳤다.
뻐어어억!
실비아가 짧은 비명을 지르며 흙바닥에 나가떨어졌다.
“크윽….”
“검사라고 검술만 신경 써서는 안 돼요. 상대는 노련한 너구리입니다. 어머니보다 몇 수는 위에 있으니, 모든 상황에 대비해야 합니다.”
“그래….”
그녀가 입술을 꾹 씹으면서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섰다. 통증을 느끼고, 지쳤음에도 눈동자는 절대 흔들리지 않았다.
다시는 별관의 가족을 고통스럽게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가 의념이 되어 타오르고 있었다.
“그럼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라온이 거칠게 땅을 박찼다. 수채화처럼 흐릿한 보법으로 다가가 십종검결의 초식을 연달아 펼쳤다.
콰아아아아아아!
하늘과 땅이 검의 궤적으로 가득 찬다. 수많은 검격이 폭풍이 되어 휘몰아쳤다.
“아….”
실비아는 너무도 많은 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환검, 변검과 싸울 때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바로 스스로의 눈입니다. 눈이 상대의 흐름에 현혹되면 그 순간 끝입니다. 힘들고, 머리가 타버릴 것 같아도 마지막까지 오러와 기감으로 분석해야 합니다.”
라온은 짧은 조언을 마치고, 땅과 하늘을 가득 채운 검격의 폭풍을 내리쳤다.
화아아아아아!
실비아는 움직이지 않았다. 용암처럼 들끓는 눈동자로 쇄도해오는 십종검결의 절기 풍아괴참의 궤적을 바라볼 뿐이었다.
피이이익!
날카로운 검격이 피부를 가르기 시작할 때 그녀의 손이 벼락처럼 뻗어나갔다. 단 한 번의 찌르기. 다만 그 찌르기는 풍아괴참의 중심을 꿰뚫고 있었다.
쩌어어어어엉!
극한으로 다듬은 찌르기가 천지를 가득 메웠던 검의 궤적을 가라앉힌다. 수십 개의 빛의 검이 비에 젖은 나뭇잎처럼 가라앉았다.
“하아….”
하지만 실비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때 죽어가던 검의 흐름이 되살아났다.
“아!”
오히려 더 빠르게 솟구친 검격이 실비아를 헤집듯이 스치고 지나갔다.
“으윽….”
실비아가 비틀거리며 무릎을 꿇었고, 라온이 그녀의 앞에 서서 고개를 저었다.
“말씀드렸죠? 상대는 노련한 너구리라고. 저런 절기도 허초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라온이 냉랭한 눈동자로 실비아를 굽어보았다.
“끝까지 집중하세요. 지금 상태로는 부원주의 십 합도 버틸 수 없어요.”
“…알겠어.”
실비아는 라온이 일어나라고 하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일어나 검을 다잡았다.
치이이잉!
라온과 실비아는 눈을 마주치자마자, 서로의 급소를 향해 검을 찔러넣었다.
쩌어어어엉!
강렬한 충격파가 터지며 나뭇잎이 겁에 질린 듯 떨어져 내렸다.
눈매가 닮은 모자의 수련은 해가 지고, 다시 해가 떠올라도 이어졌다.
나무와 수풀에 매달린 나뭇잎은 두 사람의 검이 부딪칠 때마다 기다렸다는 듯 하나씩 떨어져 내렸다.
나무의 이파리가 모두 떨어졌을 때 두 사람의 검이 멎었고, 3주의 시간이 모두 흘러갔다.
검투의 날이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