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641화 (640/653)

제641화

은빛 마검이 톱날 같은 궤적을 그렸다.

촤아아악!

델프로스의 오른팔이 갈기갈기 찢겨지고, 그의 어깨에 시퍼런 냉기가 스며들었다.

“끄어어억….”

델프로스가 얼어붙은 어깨를 부여잡은 채 피에 젖은 비명을 내질렀다.

“벌써 소리를 지르면 곤란한데.”

라온이 담담히 고개를 저으며 델프로스에게 다가갔다. 오른손에 든 신검을 역수로 잡은 채 그대로 내리찍었다.

퍼어어억!

델프로스의 왼쪽 다리가 불길에 타오른 채로 뜯겨나갔다.

“으아아아악!”

델프로스가 벌레처럼 바둥거리며 바닥을 기었다.

“지금부터가 시작이거든.”

라온이 차게 웃으며 델프로스의 몸을 손가락으로 연달아 두드렸다.

“네, 네놈. 내게 무슨 짓을… 허억! 어어어억!”

델프로스의 얼굴 위로 핏줄이 줄기줄기 솟구쳤다. 놈은 지독한 고통에 질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전신을 떨었다.

-서, 설마 그 고문을 저 검에 깃든 오러로 한 것이냐?

‘맞아.’

-지독하지만, 저놈에게는 잘 맞는 고문이로군.

‘저런 놈은 그냥 죽이기 아까우니까.’

열기와 냉기로 행하는 고문 방법을 신검과 마검으로 운용했다.

지금 델프로스는 차라리 죽고 싶을 정도의 고통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으으으….”

델프로스의 입술이 터지고, 핏물이 흘러내렸다. 일그러지는 눈동자. 제발 죽여달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퍼억!

손바닥으로 델프로스의 가슴을 후려쳐서 심장 안쪽에 있을 레이지 웜을 기절시켰다.

소리가 빠져나갈 수 없도록 기막을 친 후 입매를 꼬아 올렸다.

“겁이 많은 건 여전하구나. 델프로스.”

“어…?”

델프로스가 고통 속에서 눈을 부릅떴다. 본인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에 극도로 당황하고 있었다.

“어, 어떻게 내 이름을….”

“네 주인은 어디에 있지?”

레이지 웜을 기절시켰다고 해도, 데루스의 이름을 꺼내는 순간 놈의 머리에 박힌 세뇌가 작동할 수도 있기에 주인이라고만 말했다.

“주인? 무슨 헛소리냐. 그런 건 없어!”

델프로스는 고문을 당하는 와중에도 연기를 하듯 콧잔등을 구겼다.

“남쪽에 처박혀 있는 놈 있잖아. 여기에는 없는 모양이지?”

“너, 너 누구야. 넌 대체 뭐냐고!”

놈은 남쪽이라는 말에 데루스를 떠올린 듯 턱을 바들바들 떨며 악을 질렀다.

“그 반응을 보니, 역시 그놈은 오지 않은 모양이네. 하긴 그게 당연해.”

데루스는 이번 일과 본인이 관련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이 무덤으로는 절대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그게 네게는 독이 되겠지.’

만약 이 무덤에 데루스가 있었다면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살아남지 못하고 놈의 계획대로 되었을 것이다.

한 번에 너무 많은 것을 원하는 놈의 욕심이 모든 것을 망쳤다.

“너 정체가 뭐야….”

“…….”

라온은 고통과 공포에 질려 점점 핏기가 사라지는 델프로스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얼마 못 버티겠군.’

놈이 머릿속으로 데루스의 정체에 대한 것을 떠올렸을 테니, 아마 오래 버티지 못하고, 뇌가 파괴될 것이다. 그 전에 알아야 할 것이 있었다.

“네 주인의 목표는 전쟁이겠지?”

“무, 무슨 말이냐. 뭔 전쟁을 일으켜….”

델프로스는 아예 귀신에 홀린 듯한 표정이 되었다. 육체의 고통보다 정신적인 충격이 더 커 보였다.

“놈이 전쟁을 일으키려는 이유는?”

“으으으….”

“역시 모르나.”

라온이 차게 웃었다. 데루스는 조심성이 많기에 직속 수하에게도 본인의 계획을 모두 알려주지 않는다.

이놈이 전쟁을 일으키려는 이유를 아는 게 더 이상했다.

‘이거면 충분해.’

데루스가 전쟁을 원하고 있다는 예측이 확신이 되었다. 목적을 알면 움직임을 예상할 수 있기에 아주 큰 수확이었다.

“너, 너 따위가 그분을 알 리가 없어! 아는 놈은 모두 죽었다고! 넌 대체 누구야!”

델프로스는 지독한 고통을 느끼고 있음에도 소리를 질렀다.

“네 주인도 지옥으로 보내줄 테니까. 그곳에서 물어봐.”

“미, 미쳤군. 너는 모른다. 그분이 정말 어떤 분인지….”

“아니. 잘 알고 있어. 누구보다도 잘.”

라온이 픽 웃고서 델프로스의 입을 막았다. 놈의 눈앞에 코만 기사단장 쿠잔의 검과 쇠뇌 바르필의 지팡이를 박아둔 채로 일어섰다.

“죽을 때까지 용서를 빌어라. 아니, 죽어서도 빌어.”

비릿한 미소를 기르며 델프로스의 전신 마나 회로를 파괴했다. 길을 잃은 열기와 냉기가 살을 파고들며 델프로스의 육체와 정신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끄아아아….”

델프로스는 입을 막았음에도 신음을 흘렸다. 고통에 질려 아예 눈이 돌아가 버렸지만, 기절조차 할 수 없이 계속 통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도 용서는 안 되겠지만.”

라온이 몸을 일으켰다. 델프로스가 일으키는 경련 때문에 가늘게 떨리는 쿠잔의 검과 바르필의 지팡이를 향해 짧게 묵례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편안히 가시길.’

두 사람을 위한 짧은 기도를 마치고 뒤를 돌았다.

“뺙뺙아.”

라온이 몬스터들을 모조리 태워버린 불사조 카이얀에게 손짓했다.

“이리 와봐.”

[뺘, 뺙?]

카이얀이 깜짝 놀라서 날개를 쭉 내렸다.

[뺙뺙이? 지금 내게 뺙뺙이라고 한 것이냐?]

“너지 그럼 누구야.”

[내가 왜 뺙뺙인 거냐!]

“뺙뺙 거리잖아.”

[분명 내 이름은 카이얀이라고 말했….]

“이름은 됐고. 아직 숨어 있는 놈이 있으니까. 그놈의 위치나 찾아봐. 네가 건드렸다간 도망칠 수도 있으니까. 장소만 알아봐 줘.”

아직 이 무덤 안에는 델프로스를 지원했던 주술사가 숨어 있다. 놈을 처리해야 모든 것을 끝낼 수 있었다.

[뺙! 나는 위대한 불사조다! 인간의 명령 따위는….]

카이얀이 거절하기 위해서 고개를 돌리다가 고문을 당하고 있는 델프로스와 눈이 마주쳤다.

핏줄로 안구를 가득 채우는 인간을 본 불사조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고개를 끄덕였다.

[바, 바로 가겠다!]

카이얀은 20여 번 죽었을 때처럼 병아리와 같은 크기로 몸을 줄인 후 천장 위로 날아갔다.

-이, 이상하느니라.

라스가 그 모습을 모두 보고서 고개를 저었다.

-본왕이 본 인간들은 이렇지 않았는데, 어째서 마왕보다 더한 놈이 이 세계에….

녀석은 이제 종족에 대한 고찰에 들어간 듯 눈을 내리감았다.

“자, 그럼….”

라온은 고민에 빠진 라스를 놔둔 채 등을 돌렸다.

“이 지루한 전쟁을 끝내볼까.”

마검을 델프로스의 옆에 박아둔 채 기척을 감췄다.

은밀함으로는 제일이라는 태화칠보를 밟으며 아직도 검명이 울리는 전장으로 들어섰다.

“멍청한! 이제는 물러서도 늦었어!”

“크윽!”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6사도와 공검대주 세레나의 대결이다.

강대한 혈기를 일으키는 6사도와 달리 세레나는 곧 죽을 것처럼 손이 떨리고 있었다.

사실 복부의 부상이 너무 심했기에 지금까지 버틴 게 용한 일이었다.

‘여기서부터 시작해야겠어.’

라온이 기척을 감춘 그대로 6사도의 등 뒤로 돌아갔다. 살기와 분노를 지웠다. 손에 들고 있는 신검을 나뭇가지라고 여기며 장난을 치듯이 6사도의 등에 찔러넣었다.

푸카아아악!

세레나의 머리를 향해 수도를 내리치던 6사도의 복부를 뚫고 신검의 칼날이 튀어나왔다.

“끄아아아아악!”

6사도가 공격을 멈춘 채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뒤를 돌아보는 놈의 눈동자에 경악이 차올라 있었다.

“라, 라온 지그하르트! 네놈은 분명 저기에… 아!”

6사도는 델프로스의 곁에 박혀 있는 마검을 보고서 피를 토했다. 이제야 본인의 감각을 믿은 게 실수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음!”

세레나도 당황했지만,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서 힘겹게 들고 있던 검을 세웠다.

“나 혼자만의 힘으로 널 끝내지 못한 게 아쉽지만….”

“비, 비겁한!”

“꼬우면 너도 후배 잘 두던가.”

그녀가 이를 악문 채로 상단에 들어 올린 검을 내리쳤다. 두터운 검날이 6사도의 머리통을 반으로 쪼개버렸다. 투명한 핏물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끄으으….”

6사도는 고위 혈귀답게 머리가 갈라졌음에도 재생을 하려는 듯 혈기를 응집시켰다.

“정말 벌레 같은 놈들이야.”

라온이 미간을 구긴 채 6사도의 심장에 신검을 박아넣었다. 황금빛 불꽃으로 혈기만이 아니라, 놈의 혼까지 태워버렸다.

“사, 사도시여!”

“안 돼….”

백혈교의 혈귀들은 6사도가 쓰러지자마자, 머리를 부여잡은 채 비명을 질렀다.

“지금이다! 모조리 죽여!”

마르타가 눈동자에 분노를 세운 채 광폭화를 일으켰다. 광풍대 역시 그녀의 뒤를 따라가 혈귀들을 몰아붙였다.

“하아….”

세레나가 입술을 떨다가 주저앉았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기에 곧 죽을 듯이 안색이 창백했다.

“그 미친놈은 죽은 거야?”

“아직은 아닙니다만, 곧 죽을 겁니다.”

그녀는 6사도를 막아내느라, 내 싸움이 끝난 줄도 모르고 있었다. 인내심과 정신력만큼은 나보다도 윗급인 것 같았다.

“그럼 좀 쉴게….”

세레나가 옅게 웃으며 우측으로 기울어졌다.

라온이 세레나의 어깨를 잡고서 조심스럽게 바닥에 눕혔다. 어둠에서 피어난 신성으로 그녀의 복부를 메워주고서 다시 전장을 보았다.

쩌어어엉!

리메르와 귀마검주 사이로 혜성 같은 빛무리가 뻗어나간다. 두 사람의 검격이 너무도 빨라 그저 오러의 궤적만이 흩날리고 있었다.

라온은 팔이 잘리기 전으로 돌아간 듯한 리메르를 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의수를 길들이신 건가?’

이 무덤에 오기 전 리메르는 의수를 완벽하게 다루지 못했다.

진짜 팔이 아니었기에 어색함이 보였는데, 지금은 그런 모습이 조금도 드러나지 않았다.

“빌어먹을!”

반면 귀마검주는 델프로스와 6사도가 당한 것을 확인하고서 점차 손이 어지러워지고 있었다.

이제 남은 게 본인뿐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네 사인은 과식이다.”

라온이 귀마검주를 보며 신검을 가볍게 휘돌렸다. 신검의 불꽃이 힘을 다한 듯 천천히 가라앉았다.

“넌 도검존의 무학을 먹을 깜냥이 안 됐어.”

“닥쳐라!”

귀마검주가 리메르와 검을 부딪치자마자, 급격히 몸을 돌렸다. 충격을 이용하여 속도를 높이는 보법. 빠름이라는 단어를 초월한 듯한 움직임으로 내게 달려들었다.

‘걸렸군.’

놈은 내 검계가 끝났다고 생각하고 기습을 해왔겠지만, 이건 연기일 뿐이었다. 조급함이 귀마검주의 숨통을 더 빠르게 조였다.

치이이이잉!

라온이 차게 웃으며 신검을 고쳐잡았다. 가늘어졌던 불길이 기름을 두른 듯 용오름처럼 솟구쳤다.

화아아아아아아!

칼날의 끝에서 불꽃 줄기가 춤을 추며 일어선다. 화령. 사계절을 견디고 떨어지는 화염의 꽃잎이 귀마검주의 앞을 막아섰다.

“이, 이런!”

귀마검주가 벽에 부딪힌 공처럼 거칠게 뒤로 튕겨 나갔다. 그의 팔과 다리가 화상을 입은 것처럼 뻘겋게 달아올랐다.

“이익….”

놈은 허공을 박차서 몸을 가누려고 했지만,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이었다.

리메르가 그의 뒤에서 섬뜩한 안광을 빛내고 있었으니까.

“자, 잠깐!”

“돈 있냐?”

“어? 도, 돈?”

“없으면 가라.”

리메르가 단호하게 검을 내리쳤다. 의수에 잡힌 검이 진중한 검명을 토해내며 귀마검주의 목을 갈랐다.

푸카아아악!

귀마검주는 자신의 죽음을 믿지 못하는 듯 눈을 부릅뜬 채 핏물 속에 가라앉았다.

“아오, 진짜 죽겠다.”

리메르가 한숨을 내쉬며 주저앉자, 그의 검계가 천천히 사그라들었다.

“왜 너랑만 다니면 이렇게 힘든 거야! 가주님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고생하셨습니다.”

라온이 옅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귀, 귀마검주 님이 죽다니….”

“말도 안 돼!”

“이런 제기랄!”

성검련의 검귀들은 귀마검주의 죽음을 믿지 못하는 듯 눈을 부릅뜬 채 움직이질 못했다.

“적들의 수장이 쓰러졌다! 끝을 낼 때가 왔다!”

버렌이 삭풍을 일으키며 귀마검대 속으로 파고들었다. 광풍대와 공검대도 남은 기운을 모조리 뽑아내며 전쟁의 끝을 향해 달렸다.

“라온… 대주.”

루난이 옆으로 다가와서 고개를 까딱였다. 광풍대와 공검대를 지키느라 누구보다 고생했기에 얼굴이 반쪽이 되어 있었다.

“다 끝났어…요?”

“아니.”

라온은 닭처럼 날갯짓하며 내려오는 카이얀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직 마지막 일이 남아 있어.”

***

“괴, 괴물이다….”

사비대주가 손에 들고 있던 수정구를 떨어뜨렸다. 그는 유리가 박살이 났음에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듯 손만 떨었다.

‘저건 통제가 불가능한 괴물이야!’

라온은 델프로스와 자신이 준비했던 수많은 함정을 으깨버리고, 마지막에는 데루스가 직접 만들었던 계획까지 박살 냈다.

모든 것을 깨부수고 델프로스마저 죽이다니, 라온 지그하르트라는 놈은 인간의 격을 벗어난 존재 같았다.

지금만큼은 데루스보다 라온이 더 무서울 지경이었다.

‘도망쳐야 해.’

그것도 최대한 빨리!

몬스터는 모두 죽었고, 결계는 통제를 벗어났으며, 남은 인원이나, 함정도 없다.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지상으로 올라가서 이곳의 정보를 알리는 것뿐이었다.

‘제기랄!’

라온 지그하르트라면 이 장소도 찾아낼지 모른다. 최대한 빨리 정리를 끝내고,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사비대주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서류를 챙겼다. 주술까지 외워가며 본인의 흔적을 지우고 위로 올라갈 준비를 마쳤다.

‘장치를 사용하면 1시간 안에 밖으로 나갈 수가 있… 아?’

사비대주가 지상으로 올라가기 위한 장치로 걸어가다 말고 멈춰 섰다.

그는 본인의 복부에서 튀어나온 칼날과 흘러내리는 핏물을 보며 입술을 떨었다.

“뭐, 뭐….”

“네놈이 그 주술사였군.”

라온 지그하르트다. 놈의 섬뜩한 목소리가 바닥에 떨어지는 핏물과 함께 귀를 울렸다.

“어, 어떻게….”

[뺘아악!]

라온의 어깨에 앉아 있던 작은 불사조가 날개를 퍼덕였다.

[내 앞에서는 누구도 숨지 못한다!]

“마, 망할….”

저 불사조가 자신이 있는 곳을 찾았던 것 같다. 머리까지 잘 돌아가는 놈이었다.

“너는 그놈보다 더 아는 게 없겠지.”

라온이 비웃음을 흘리며 자신의 배에 박혀 있는 검을 흔들었다.

“자, 잠깐! 나는….”

“그냥 죽어.”

“커헉….”

그는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검을 쳐올렸다. 사비대주의 몸이 반으로 갈라진 채 바닥으로 기울어졌다.

“흠….”

라온은 사비대주가 들고 있던 서류를 챙긴 후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이 통제실인가.”

알 수 없는 기계 장치와 수정구가 가득하다. 이 안에서 몬스터와 함정을 제어했던 것 같았다.

라온은 사비대주의 서류만이 아니라, 통제실 전체를 뒤졌다.

이곳의 구조나, 설명 그리고 무인들에 대한 분석이 가득했지만, 역시나 데루스 로베르트에 대한 정보는 단 한 글자도 나오지 않았다.

“여전히 깔끔한 성격이네. 다만….”

라온이 서류를 뒤로 던지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이번에는 화 좀 나겠어.”

***

라온이 통제실을 확인한 후 다시 5층 공동으로 내려왔다. 이쪽도 정리가 끝났다, 오마 중 살아남은 놈들은 하나도 없었다.

“늦잖아요!”

마르타가 이쪽을 보며 콧잔등을 구겼다.

“찾아야 할 게 좀 있어서.”

가지고 온 서류를 넘겨주려다가 멈춰 섰다. 무학서가 불에 탔을 때의 자세 그대로 멈춰 있는 도검존이 눈에 들어왔다.

“계속 저 상태인 건가?”

“아무런 반응도 없습니다.”

버렌이 여러 가지를 확인해보았지만 움직이지 않는다며 고개를 저었다.

“숨도 쉬지 않고.”

마르타가 도검존의 옆에 서서 혀를 찼다.

“후….”

라온은 굳어있는 도검존의 눈을 보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핵이 깨졌으니, 아예 몸을 움직일 수가 없는 것 같았다.

도검존은 이제 텅 비어버린 시체일 뿐이었다.

“그럼 빨리 보내주는 게 맞겠지.”

마음을 정하고 도검존에게 다가갔다.

“당신은 죄가 없습니다.”

도검존은 좋을 일을 하려고 했을 뿐이다. 이 모든 사태는 데루스의 죄였다.

손아귀에 만화공을 일으켰다. 그대로 도검존의 시체를 태워버리려고 할 때 그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터어억!

도검존이 손을 뻗어서 라온의 손목을 잡았다.

“어?”

“네게 말해주어야 할 게 있다.”

흑백이 뒤틀려 있던 그의 눈동자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며 정심한 빛을 뿌렸다.

“지그하르트의 온당한 후예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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