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639화 (638/653)

제639화

라온은 도검존의 무학서 마병도법과 참마검결을 보며 턱 밑으로 흐르는 땀을 훔쳤다.

‘확실해.’

저게 도검존의 핵이야.

무령귀객 덕분에 도검존의 영혼과 두 권의 무학서가 연결된 것을 확인했다. 도검존의 무한한 체력과 오러는 저 무학서에서 나오는 게 분명했다.

‘이치에도 맞아.’

도검존은 훗날 이 무덤에 들어온 후인들을 위해서 무학서를 남겨두었다.

그는 후계자를 두지 않은 것에 미련을 가지고 있었을 테니, 저 무학서를 핵으로 삼아도 이상할 게 없었다.

-이제야 알아차렸나.

라스가 한심하다는 듯 콧잔등을 슥슥 긁었다.

-저놈은 저 책에서 힘을 얻고 있었느니라. 핵을 겉으로 보여준다는 제약을 걸어서 저 시체의 힘까지 강화시켰지. 꽤 도발적인 행사이니라.

녀석은 누구의 짓인지 대담하다며 웃었다.

‘뻔하지.’

데루스 로베르트다. 그놈이 아니고선 이딴 계획은 세우지 못한다.

“찾았습니다.”

라온이 확신을 담은 눈으로 코만 기사단장과 뇌쇠를 불렀다.

“찾았다니?”

“그게 무슨 말이오?”

두 사람은 찾았다는 말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검존에게 무한한 힘을 주는 핵을 찾았습니다.”

“저, 정말이오?”

“그게 무엇이오? 내가 바로 부숴주겠소!”

코만 기사단장과 뇌쇠는 이 지옥 같은 전투를 끝낼 수 있다는 게 기쁜 듯 목소리를 높였다.

“핵?”

델프로스가 라온을 굽어보며 비웃음을 흘렸다.

“그딴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나? 헛생각하지 말고 조금이라도 오래 살 방법을 찾는 게 좋을….”

“무학서.”

라온이 델프로스의 말을 끊으며 손을 들었다. 가늘게 띄운 검지로 도검존의 무학서를 가리켰다.

“마병도법과 참마검결이 도검존의 핵이다.”

“그게 무슨.”

“마, 말도 안 돼….”

코만 기사단장과 뇌쇠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술을 떨었다. 당연한 반응이다. 핵을 저렇게 대놓고 보여주는 건 미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니까.

저놈들은 바로 그 맹점을 파고들었다.

“…….”

라온은 두 사람에게 답을 주지 않고, 델프로스의 표정을 살폈다. 놈의 안색에 지우지 못한 경악이 그대로 묻어 나왔다.

“답은 저놈이 직접 말해주고 있네요.”

가벼운 미소와 함께 턱으로 델프로스를 가리켰다.

“크윽!”

델프로스가 빠르게 표정을 굳혔지만, 이미 늦었다.

코만 기사단장과 뇌쇠만이 아니라, 이곳에 있는 모두가 그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았으니까.

“허….”

“정말 저 책이 도검존의 핵이라고?”

“저 책만 불태운다면 도검존의 무한한 오러도 끊어지게 될 겁니다.”

라온이 이제 기회를 잡았다고 말하며 신검과 마검을 들었다.

‘빠르게 끝내면 이길 수 있어.’

체력과 오러가 거의 바닥을 치고 쳤고, 검계도 한계에 달했지만, 진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셋이 함께 싸운다면 이 싸움을 끝낼 수 있다.

“하필 무학서라니….”

“으음….”

다만 코만 기사단장과 뇌쇠는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무학서를 보며 입술을 꾹 씹었다.

“후….”

라온은 그 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당연하겠지.’

솔직히 말해서 나도 아까우니까.

무인과 마법사들이 이곳에 온 이유는 도검존의 유산. 그것도 저 무학서를 얻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 목표이자, 이유인 무학서를 불태워야 하니, 저들이 당황하고 고민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데루스는 그 점까지 노리고, 무학서를 핵으로 삼았을 것이다. 놈의 계획을 부수기 위해서라도 저 무학서는 모조리 불태워야 한다.

“심정은 이해합니다.”

라온이 신검을 세웠다. 꺼져가던 불길이 새로운 삶을 토해내듯 짙은 금빛으로 타올랐다. 무인들의 가슴에 씌인 어둠을 지워버리는 듯한 불꽃이었다.

“다만 저 무학서를 태우는 것만이 우리가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     *      *

“하….”

델프로스는 담담한 라온의 눈동자를 보며 미간을 깊게 구겼다.

‘저놈은 대체 뭐야….’

뭐 하는 놈인데, 핵까지 찾아내는 거냐고!

라온 지그하르트의 말대로다. 도검존에게 무한한 오러를 제공해주는 힘의 원천은 저 두 권의 무학서가 맞았다.

일반적으로 생물은 본인의 핵을 보이지 않는 곳에 놔두는 법이지만, 그 맹점을 이용하여 무학서를 도검존의 핵으로 삼았다.

적에게 핵을 보여준다는 제약을 건 덕분에 도검존의 무력을 강화시키는 효과까지 얻었는데, 그 비밀을 밝히는 놈이 나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왜 하필 저놈이냐고!’

훔치지 못하는 보물이 없다는 무령귀객이나, 수많은 전쟁을 이겨낸 코만 기사단장, 뛰어난 지식을 가진 뇌쇠도 못 찾은 걸 저 애송이가 어떻게 발견한 건지 도통 이해가 되질 않았다.

뿌드드득!

델프로스는 잇몸에서 피가 나도록 이를 갈았다.

‘진즉에 저놈을 죽였어야 했는데.’

아니, 죽이려고 했지만, 저놈이 다 뚫은 거였지.

2층에서부터 라온 지그하르트를 죽이려고 했지만, 저놈은 모든 함정을 뚫고 스스로의 힘으로 마지막 층까지 도착했다. 솔직히 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빌어먹을 놈이다.’

라온에게 타오르는 분노 때문에 이를 악물고 있을 때였다.

확신을 가진 라온 지그하르트와 달리 코만 기사단장 쿠잔과 뇌쇠 바르필은 전투 태세를 갖추지 못한 채 고민을 하고 있었다.

‘잠깐만….’

이걸 이용하면.

델프로스가 피나도록 주먹을 말아쥐었다. 이 상황을 반전시킬 방법이 떠올랐다.

‘이번만큼은 쉽게 넘어갈 수 없을 것이다.’

빠르게 생각을 마치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대로다. 저 두 권의 무학서. 마병도법과 참마검결이 도검존의 힘의 근원이지. 그래서 어쩌겠다는 거지?”

델프로스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까딱였다.

“설마 저 무학서를 태우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그렇다.”

라온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게 진짜 도검존의 무학서라고 해도?”

델프로스가 다리를 꼰 채로 옥좌의 팔걸이를 톡톡 두드렸다.

“지금 도검존은 생전 무력의 반도 내지 못하고 있다. 저 무학서를 얻는다면 제2의 도검존이 될 수 있는데 저 보물을 태우겠다는 거냐?”

“귀찮으니까. 두 번 말 시키지 마.”

라온은 이번에도 단호하게 대답했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동자에는 더 깊은 고뇌가 차올랐다.

“후후.”

델프로스가 입술을 매만지며 가벼운 웃음을 흘렸다. 어느새 전투가 멎었고, 모두가 이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델프로스 님.]

사비대주가 기다렸다는 듯 연락을 보내왔다.

[결계의 통제권이 전부 라온 지그하르트에게 넘어갔습니다. 방법이 없는….]

[통제권을 빼앗을 필요는 없다. 딱 하나만 추가해.]

[예? 무슨….]

[욕망. 보물에 대한 욕망만 불러일으켜. 그건 할 수 있겠지?]

[해보겠습니다! 아니, 하겠습니다!]

델프로스는 사비대주의 대답을 들으며 도검존의 무학서를 올려다보았다.

“대륙에 몇 없는 초월에 이를 수 있는 무학이다. 그것도 도검존이 말년에 얻은 심득과 해석까지 적어두었지. 안 그런가?”

그의 시선이 직접 무학서를 확인했던 만통검자 크라셀에게 향했다.

“으음….”

크라셀은 답을 하지 않았지만, 입술을 씹는 것만으로 모두에게 답을 주었다.

사람들의 눈동자에 천천히 욕망의 빛이 스며드는 것이 느껴졌다. 사비대주가 어떻게든 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잘 생각하는 게 좋을 것이다. 도검존의 무학서를 얻어서 이 대륙의 주인공이 될지 아니면, 남 좋은 일이나 시켜줄지.”

델프로스는 때가 되었음을 깨닫고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남 좋은 일?”

“그게 무슨 말이지?”

“아직도 모르나?”

픽 웃으며 손을 저었다.

“라온 지그하르트는 저 무학서를 불태우겠다고 했다. 헌데 여기서 불을 가장 잘 다루는 게 누구지? 바로 저놈이다. 그 말은….”

“태우는 척하면서 무학서를 챙길지도 모른다는 건가?”

귀마검주가 검을 내린 채 미간을 구겼다.

“정답이다.”

델프로스가 손가락을 튕긴 순간 공동의 분위기가 급격하게 달라졌다. 힘을 합친다는 신뢰의 벽이 단숨에 무너진 것처럼.

“너….”

“후후.”

델프로스는 얼굴을 구긴 라온을 보며 고개를 까딱였다.

“추잡한 싸움을 계속 해보자고.”

*     *      *

라온이 따갑게 꽂히는 무인들의 시선을 느끼며 입술을 씹었다.

‘젠장….’

눈동자를 돌릴 필요도 없다. 분위기가 바뀌었다. 사람들의 눈빛에 다시 욕망이 차올랐다.

‘다른 놈이 있는 것 같은데.’

델프로스의 말만으로는 이런 상황이 만들어질 수는 없다.

이 공동의 기운을 조절하는 고위급 주술사가 따로 있는 것 같았다.

불의 고리를 운용하여 초대 가주의 결계를 복구하려고 했지만, 쉽지 않다. 내 정신력과 오러가 한계에 달했고, 저쪽도 필사의 각오로 버티고 있었다.

‘이 상태로 싸울 수밖에 없겠군.’

불리하지만, 시간을 들일 틈이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코만 기사단장과 뇌쇠가 이전처럼 욕망에 빠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다만 두 사람은 욕망 대신 겁을 내고 있었다.

“저, 정말 저걸 태우는 방법밖에 없는 건가….”

“어쩔 수 없다는 건 알지만 초월의 무학을 내 손으로.”

두 사람은 본인의 손으로 초월에 닿을 무학을 파괴하는 것을 무서워했다.

“괜찮습니다.”

라온이 목소리에 청우의 묘리를 심었다. 청아한 음성으로 두 사람의 정신을 일깨웠다.

“중요한 무학이 아니라, 사람이에요. 도검존께서도 그걸 바라실 겁니다.”

“하아, 그렇겠지.”

“두 번이나 멍청한 짓을 할 수는 없으니.”

뇌쇠와 코만 기사단장이 마음을 정한 듯 입매를 굳게 다물고서 도검존의 앞에 섰다.

“이런 미친 놈들!”

“무학서를 태우다니! 절대 안 돼!”

귀마검주와 6사도가 눈동자에 핏줄을 세운 채 강맹한 공세를 퍼부었다.

귀마검대와 혈귀들도 무학서를 태우는 것을 막겠다는 듯한 악의를 드러낸 채 뛰어들었다.

“분위기 파악 못 하네. 너희는 좀 빠져.”

“못 간다!”

물러서 있던 리메르와 세레나가 바람을 타고 나가 귀마검주와 6사도를 막아섰다.

“대주! 여기는 저희가 맡겠습니다!”

“저 새끼 면상부터 마음에 안 드는데, 조져버려…요!”

“존잘 라온 힘내.”

버렌과 마르타, 루난도 귀마검대의 공세를 차단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뒤를 맡겨도 될 것 같았다.

“길만 열어주십시오. 무학서는 제가 태우겠습니다.”

라온이 코만 기사단장과 뇌쇠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이런 싸움은 내 전문이야.”

“후우, 심장이 터질 것 같군.”

코만 기사단장이 입가에 어린 핏물을 뱉어내며 검을 들었고, 뇌쇠는 지팡이에 의지한 채 허리를 폈다.

고오오오오오.

라온은 조금씩 연해지는 신검과 마검을 고쳐잡은 채 그들의 뒤에서 오러를 응집시켰다.

"흐아아아아!"

코만 기사단장은 이번에도 선봉에 서서 도검존을 향해 뛰어들었다. 부러지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은 그의 검이 시퍼렇게 번쩍였다.

쩌어어어엉!

다만 의지와 실제의 힘은 달랐다. 마병도의 거친 일격에 코만 기사단장의 몸이 휘청거렸다.

“아직이다!”

코만 기사단장은 발목을 땅에 박아둔 채 도검존의 도격을 억지로 받아냈다.

“뇌우!”

뇌쇠의 떨리는 손아귀에서 벼락의 화살이 쏟아져 내렸다.

치이이잉!

도검존은 참마검을 세워 뇌쇠가 쏘아낸 벼락의 화살들을 처참히 갈라버렸다.

터어엉!

라온은 도검존의 두 손이 모두 들린 순간 태화보를 밟았다.

틈을 노리고 신검을 찌르려는 순간 등 뒤에서 오싹한 파공음이 들려왔다.

‘검기?’

날카로운 검기가 나와 코만 기사단장, 뇌쇠의 등을 노리고 있었다.

평소라면 신경도 쓰지 않겠지만, 지금 코만 기사단장과 뇌쇠는 저 검기를 막아낼 여력이 없었다.

파아앙!

도검존을 치는 것을 포기했다. 매섭게 날아든 검기를 쳐낸 후 누구의 짓인지를 살폈다.

“크윽….”

“실패인가.”

“계속해! 놈들도 지쳐있다고!”

눈동자가 붉게 젖은 무인들이 다시 검기를 일으키고 있었다.

“무조건 막아!”

“절대 태우면 안 돼!”

“무학서만 가지면 우리도 도검존이 될 수 있어!”

오마에 가까운 중립 세력들이 악을 지르며 이쪽으로 검기와 도기를 쏘아냈다.

“망할 놈들.”

라온이 입술을 씹으며 염주벽을 일으켰다. 오러가 아까웠지만, 코만 기사단장과 뇌쇠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크하하하하하!”

델프로스가 이마를 부여잡은 채 광소를 터트렸다.

“어떠냐. 네놈이 구해주었던 이들에게 공격받는 기분이?”

“저런 놈들 구해준 적 없어!”

라온이 무인들의 검기와 도검존의 검격을 동시에 막아내며 빠르게 시선을 돌렸다.

'광풍대와 공검대는 돕지 못해. 기사단과 마법사들도 마찬가지고.'

광풍대와 공검대는 오마에 묶여 있고, 코만 기사단과 마법사들은 델프로스의 영귀대와 경합을 벌이고 있었다.

아쉽게도 누구에게도 도움을 기댈 수가 없었다.

‘극단적인 방법을 써야 하나?’

시간이 없기에 빠르게 판단을 내리려고 할 때였다.

“멍청한 놈들!”

“멈춰라!”

도검존의 기세에 질려서 뒤로 빠져 있던 무인들이 검기를 날리던 놈들을 막아섰다.

“적당히 좀 해!”

“저분들은 우리를 위해서 싸우고 있잖아!”

“이 개만도 못한 것들!”

얼굴이 익숙하다. 조금 전에 도검존에게서 구해준 사람들이었다.

아니, 그들만이 아니다. 광풍대와 공검대의 도움을 받거나, 1층에서 구해주고 치료를 해주었던 무인들이 욕망에 물든 사람들을 막아주고 있었다.

“이 미친놈들!”

“비켜!”

“저 책만 얻으면 초월자가 될 수 있단 말이다!”

욕망에 물든 이들이 악을 지르며 달려들었지만, 무인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이곳은 저희가 맡겠습니다!”

“제발 끝을 내주세요!”

그들은 욕망에 지지 않은 맑은 눈동자로 검을 들었다. 무력이 달려서 손을 떨면서도 끝까지 벽이 되어 뒤를 지켜주었다.

“이, 이게 무슨….”

델프로스는 여기까지는 예상하지 못한 듯 입술을 떨었다.

“내가 구해주었던 사람들은 저쪽이다.”

라온이 의지를 세운 무인들을 가리치며 입매를 비틀었다.

“이게 마지막입니다. 힘을 내주십시오.”

“물론이오. 아직 한참 더 할 수 있어!”

“나도 끝까지 가겠소.”

피범벅이 된 코만 기사단장과 뇌쇠가 고개를 끄덕였다.

“크아아아아!”

코만 기사단장이 온몸으로 피를 뿌리며 도검존과 검을 맞부딪쳤다.

쿠우우웅!

도검존의 힘과 오러는 여전했지만, 무학서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며 처음처럼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다.

“지금이오!”

코만 기사단장의 피부에서 핏줄기가 터져나간다. 그는 근육이 파열되고 뼈가 부러지고 있음에도 검을 내리지 않았다.

“뇌후… 커헉!”

뇌쇠는 지금까지 중 가장 짙은 벼락 줄기를 뿜어내다가 피를 토했다. 하지만 그는 입가를 피로 물들이고서도 끝까지 영창을 마쳤다.

여신의 형상을 갖춘 벼락 줄기가 도검존의 전신을 에워쌌다.

쿠구구구구!

도검존은 코만 기사단장의 검격과 뇌쇠의 결전 마법을 맞으면서도 밀려나지 않았다.

쿠웅!

라온이 이를 악물고 태화보를 밟았다. 시야가 검게 물든다고 느껴질 정도의 속도로 나아가 도검존의 뒤편에 이르렀다.

“…!”

도검존은 코만 기사단장과 뇌쇠의 공세를 받으면서도 뒤편의 기척을 잡고 움직였다.

치이이잉!

그가 뒤를 돌려는 순간 분노를 개방했다. 전신의 마나 회로가 모조리 얼어붙는 듯한 오싹한 기운을 신검과 마검 위로 끌어내며 진각을 밟았다.

대지를 찍어누르는 힘과 육체에서 폭발하는 기운을 손아귀에 휘감았다. 허리와 어깨 뒤로 젖혀두었던 신검과 마검을 동시에 그어 내렸다.

라온 지그하르트류 검식.

제6형 신마조화결 연계기 청홍무적검.

도플갱어 로드와 싸우며 얻었던 깨달음이 깃든 필살의 검격이 도검존의 심혼을 향해 뻗어나갔다.

쿠와아아아아앙!

붉고, 푸른 검의 기류가 아련하게 춤을 춘다. 가느다란 오러에 어린 파천의 기파가 도검존의 검격과 도격을 동시에 뭉개버렸다.

쿠구구구구!

도검존의 몸이 처음으로 밀려난다. 그가 뒷걸음질 칠 때마다 대지가 한 움큼씩 파여나갔다. 어마어마한 충격이었다.

“흐아아아아!”

“크아아악!”

코만 기사단장과 뇌쇠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연달아 검격과 마법을 퍼부었다.

콰아아앙!

계속해서 밀려난 도검존의 육체가 결국 벽에 부딪혔다.

‘지금… 크윽!’

라온이 몸을 일으키려다가 신음을 토했다. 육체와 마나 회로가 모두 파열된 듯 지독한 통증이 머리를 파고들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도검존이 다시 오기 전에 끝을 내야 했다.

움직여지지 않는 다리로 억지로 뛰어올랐다. 다리 근육이 끊어질 것 같았지만 무시하고 신검의 불꽃에 집중했다.

“멈춰라!”

델프로스가 처음으로 악을 질렀다.

“초, 초월에 이르는 무학이다! 네놈도 초월자가 될 수 있다고!”

놈은 유혹하듯 말을 걸어오며 단상을 박찼다. 말끔한 인상이 당황으로 물들어 있었다.

“중요한 건 무학이 아니라, 사람이다.”

그걸 알려준 건 글렌과 렉타르. 두 사람의 굳건한 등을 떠올리며 신검을 세웠다.

“초월 따위 내 힘으로 가겠어.”

“사비대주! 막아라!”

델프로스의 외침이 들리자마자, 무학서를 감싸고 있던 마나가 짙어지기 시작했다.

“이미 늦었다.”

라온은 델프로스를 비웃으며 무학서를 향해 신검을 찔러넣었다.

뿌드드득!

아직 완벽하게 강화되지 않은 마나의 막이 갈라지며 두 무학서의 중심에 신검의 칼날이 박혔다.

콰아아아아아!

신검은 마지막이라는 것을 아는 듯 황금빛 불꽃을 일으켜 도검존의 무학서를 단숨에 태워버렸다.

한때 초월에 이르는 무학서였던 것이 검은 재가 되어 허공에 휘날렸다.

쿠우웅!

무학서를 지키기 위해서 달려오던 도검존이 보법을 밟던 자세 그대로 멈춰 섰다. 그의 기운이 빠르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라온 지그하르트!”

하지만 델프로스의 움직임은 더욱 빨라졌다. 검에 어마어마한 강환을 응집시킨 채 쇄도해왔다.

라온이 허공에서 등을 돌리며 입술을 씹었다.

‘여기까지는 피할 수 있어.’

귀마검주의 보법을 응용하여 빠르게 땅으로 내려서려고 할 때였다.

마검의 서리와 신검의 불꽃이 다 타버린 듯 가라앉는다. 검계의 끝이 다가왔다.

‘하필이면 지금?’

검계가 꺼지는 반동으로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급격하게 커지는 델프로스의 검을 바라보는 게 전부였다.

‘맞을 수밖에 없어.’

피하는 건 불가능했다. 최대한 급소가 없는 허리를 내미는데, 델프로스는 끝을 보려는 듯 처음부터 심장을 노리고 있었다.

“라온!”

“이런!”

리메르와 세레나의 비명이 들려왔다.

‘빌어먹을….’

이건 정말 방법이 없었다. 이를 악물고 어떻게든 몸을 돌리려고 할 때였다.

눈앞으로 은빛 갑주가 날아들었다.

퍼어어억!

델프로스의 검은 내가 아니라, 앞을 막아선 남자의 가슴을 뭉개버렸다.

“크흐흐!”

코만 기사단장 쿠잔이었다. 그가 델프로스를 검을 손으로 잡은 채 시원한 웃음을 터트렸다.

“기, 기사단장님?”

라온이 코만의 등을 보며 입술을 떨었다.

“대체 왜….”

그는 할 만큼 해주었다. 왜 여기까지 와서 나를 살린 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마, 말했지 않소. 끝까지 돕겠다고.”

코만 기사단장이 뒤를 돌아보며 웃었다. 그의 입가로 죽은 피가 흘러내렸다.

“기사란 주군의 얼굴이 되는 자! 내 아둔함으로 전하를 망신시켰으니, 이 정도는 해주어야 꾸중을 듣지 않을 것이오!”

그가 마지막 힘을 다해서 델프로스를 밀어냈다.

“이놈이 끝까지!”

“꺼져!”

델프로스가 악귀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달려들 때 뇌쇠가 피를 토하면서 뇌격을 날렸다. 그 역시 안색이 창백하다. 마나가 아니라, 생명력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만!”

라온이 두 사람을 보며 입술을 씹었다.

“그만하세요!”

멈추라고 외쳤지만 쿠잔도 바르필도 손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 부담가질 필요 없소. 내상이 심해서 어차피 살 수 없었으니까.”

쿠잔이 갈라진 갑주를 열었다. 그의 복부가 시꺼멓게 물들어 있었다.

“마찬가지요. 어차피 죽는다면 끝은 화려하게 가야지.”

뇌쇠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미쳐있을 때 배려를 해주어서 고맙소.”

“함께 싸워 영광이었소. 광풍대주.”

두 사람은 다시 돌진해오는 델프로스를 향해 뛰어들었다.

쿠와아아아아앙!

달무리처럼 아련한 빛이 세 사람을 뒤덮었다. 어마어마한 폭발이 터지며 공동이 뒤흔들리고, 시꺼먼 연기가 하늘까지 치솟았다.

“크아아아아!”

델프로스가 연기를 뚫어내고 튀어나왔다. 피를 흘리고 있었지만, 심각한 부상은 보이지 않았다.

“사비대주! 모조리 꺼내! 다 죽여버려!”

그는 이성을 잃은 듯 주먹을 말아쥔 채 악을 질렀다.

쿠구구구구!

공동을 둘러싸고 있던 어둠이 갈라지고, 1층부터 4층까지 만났던 몬스터들이 모조리 튀어나왔다.

키아아아아아!

몬스터들은 적아를 가리지 않고 모든 인간들을 달려들었다.

“이제야 네놈의 목을 따겠구나.”

델프로스가 뒤틀린 눈동자를 굴리며 다가왔다.

라온은 델프로스가 아니라, 조금 전까지 함께 싸웠던 코만 기사단장 쿠잔과 뇌쇠 바르필이 죽어간 땅을 보며 입술을 씹었다.

‘제기랄!’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둘 다 좋은 사람들이었다.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할 줄 아는 진짜 어른들이었다.

이런 일이 아니었다면 전우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이들이었기에 속이 아려왔다.

-본왕도 화가 나는구나.

라스가 입술을 씹었다.

-몸을 넘겨라. 아니, 그러면 이성을 잃을 테니, 전에 했던 그거를 해라!

녀석이 빨리 하라는 듯 손을 까딱였다.

‘빌어먹을!’

분하다.

내 손으로 직접 복수를 하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너무도 분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오러만 없는 게 아니라, 체력과 정신력도 한계였으니까.

라온은 악귀 같은 얼굴로 다가오는 델프로스를 보며 제천검을 역수로 잡았다. 그대로 배를 찌르려고 할 때 어둑한 천장이 뒤흔들렸다.

쿠와아아아아앙!

절대 깨지지 않을 것 같았던 천장이 무너지며 시뻘건 불길이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어둠을 불태우는 찬연한 화염 속에서 불사조 카이얀이 거대한 날개를 펼쳤다.

[이 버러지 인간 놈들! 감히 나를 가둬!]

4층에서부터 보이지 않던 녀석이 포효를 내지르며 화염의 폭풍을 일으켰다.

쿠와아아아아!

나선으로 쏟아지는 불길이 무인들을 공격하던 몬스터들을 모조리 불태워버렸다.

“크으윽!”

델프로스는 카이얀의 불꽃을 무시하면서 달려왔다. 여기서 끝을 보겠다는 듯한 악의가 보였다.

우우우웅!

그 순간 가슴에서 진한 불꽃과 함께 진동이 일어났다. 카이얀의 깃털로 말아두었던 쇠반지였다.

품에서 반지를 꺼냈다. 반지는 카이얀의 깃털과 같은 빛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봉인이 풀렸다는 뜻이었다.

“불 꺼.”

라온이 반지를 손가락에 꼈다. 불길을 식히는 서슬 퍼런 눈빛으로 뇌까렸다.

“저놈의 목은 내가 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