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38화
“도검존…?”
라온은 핏물을 즈려 밟는 노인을 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저게 도검존이라고?’
도검존은 수백 년 전의 인물이었기에 그의 외모에 대한 정보는 암시장에서도 얻을 수 없었다.
푸른 검과 붉은 도를 사용하던 초월의 무인이라는 정보가 다였는데, 저 노인은 그 속성에 완벽하게 부합했다.
은하처럼 푸르게 번뜩이는 검과 용암처럼 끝없이 타오르는 도를 세운 채 걸어오는 노인의 기파는 이곳에 있는 모두를 압도하고 있었으니까.
눈자위가 검고, 동공이 허옇다는 것을 빼면 기록에 남아 있는 도검존의 모습 그대로였다.
‘아무리 도검존이 초월의 무인이라고 해도 인간인 이상 지금까지 살아있는 건 말이 안 돼. 즉, 저건….’
죽은 자를 되살렸다는 뜻이겠지.
찰팍.
도검존의 기세가 너무도 거대하여 파악하기 힘들지만, 그에게서는 본래 살아 있는 사람이 가져야 할 생기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죽은 자를 조종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도, 도검존이라고?”
“이 무덤의 주인…?”
“그, 그게 말이 돼? 도검존은 수백 년 전의 인간이잖아!”
무인들도 도검존을 보며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가, 가짜겠지?”
“저 검과 도를 봐! 도검존의 기록에 적혀 있는 것과 똑같다고!”
“마병도, 참마검…. 도검존은 무기와 무학의 이름이 같은데, 딱 그 모양새야….”
사람들은 도검존이 내뿜는 괴랄한 기파와 섬뜩한 번쩍이는 그의 무기를 보며 뒷걸음질을 쳤다.
“의심할 필요 없다. 그 도검존이 맞으니까.”
델프로스가 짧은 머리칼을 위로 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의 눈빛에 다시 여유가 차올랐다.
“너희가 지금 밟고 있는 이 공동이 도검존의 진짜 무덤이었지.”
“그럼 그의 유산은….”
라온이 미간을 찌푸린 채 델프로스를 바라보았다.
“그래. 내가 챙겼다.”
델프로스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검존은 후인을 남기지 못한 게 한이었다는 듯 이곳에 무기와 무학 그리고 본인의 시체를 그대로 안치해 놓았지. 덕분에….”
그가 단상 앞에 선 도검존을 보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이렇게 도검존 자체를 부릴 수 있는 기회까지 얻을 수 있었다.”
델프로스가 지휘를 하는 것처럼 손을 휘적거렸다.
“역시 초월자는 초월자야. 죽어서도 시체가 멀쩡하더구나.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유언을 적어놓기는 했지만,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
그는 도검존이 멍청해서 다행이라며 키득거렸다.
“…….”
라온이 허무를 담은 도검존의 안구를 보며 입술을 씹었다.
‘내 예상이 맞았어.’
지그하르트의 초대 가주는 후인들을 위해서 이 수련장을 만들었고, 도검존은 그를 존경하기에 이곳까지 찾아와 본인의 무학과 무기를 지그하르트에 남기려고 했다.
다만 그 뒤에 이 땅이 지그하르트의 영역에서 벗어나게 되어서 모두에게 잊혀졌던 것 같았다.
도검존은 분명 좋은 의도로 이곳에 본인의 유산을 남겨두었지만, 데루스 로베르트라는 희대의 악인에 의해서 이 땅은 지옥이 되었고, 중립 세력으로서 의와 협을 세우던 무인은 죽어서 사람을 학살하는 악귀가 되어 버렸다.
-쓰레기 같은 놈이니라!
라스도 이제 상황을 파악한 듯 입술을 씹었다.
-인간들은 매일 같이 마족을 욕하는데, 지금 보면 너희가 더 지독하느니라!
‘그러게.’
입이 있음에도 반박할 말이 없었다. 델프로스와 데루스 모두 인간의 탈을 쓰고 있는 악귀나 다름없었으니까.
“도검존.”
델프로스가 손가락을 까딱이자, 도검존이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신하가 왕을 모시는 듯 극도의 예를 담은 인사였다.
“모조리 죽여라. 다만 찢어 죽이지는 말도록. 시체를 쓸 곳이 있으니까.”
“…….”
도검존이 턱을 끄덕이고서 등을 돌렸다. 그의 허연 안광 속에서 짙은 혈향이 피어났다.
라온이 신검과 마검을 다잡은 채 입술을 씹었다.
‘시체를 쓸 곳이 있다고?’
찢어죽이지 말라는 것을 보니, 시체에 거짓 상흔을 새겨서 전쟁을 일으킬 생각은 여전한 것 같았다.
‘그렇게는 안 되지.’
다른 건 몰라도 전쟁만큼은 막아야 한다.
“어어….”
“자, 잠깐만!”
델프로스의 단상 근처에 있던 무인들은 도검존이 뿜어내는 살의에 질린 듯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했다.
스스스스!
도검존의 왼손이 빛으로 화했다. 푸른 광채가 번뜩이며 무인들의 목 위로 뚝 떨어져 내렸다. 가벼운 검격에 어마어마한 속도가 어렸다.
치이이이잉!
라온이 태화보를 밟았다. 도검존의 앞으로 나아가며 신검의 불꽃에 무거움을 담았다.
푸른 바람이 되어 추락하는 도검존의 검격을 나선의 화염으로 막아섰다.
쩌어어어어엉!
불꽃의 검이 푸른빛의 검과 맞부딪치며 강대한 충격파를 터트렸다. 사방으로 강기의 여파가 뻗어나가 바닥을 뭉갰다.
“크윽.”
라온이 신검을 쥔 손을 떨며 입술을 깨물었다.
‘손아귀가 잘려나간 것 같아.’
예측을 한참 벗어난 고통이다. 검계가 멈췄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찌지지지직!
검을 맞대고 있는 도검존의 눈에는 호기심도, 악의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저 델프로스의 지시를 완수하겠다는 듯 허연 눈동자를 뒤르륵 굴릴 뿐이었다.
“라, 라온 님?”
“왜 우리를….”
“구해주신 겁니까?”
간신히 살아남은 무인들은 광풍대를 공격한 자신들을 왜 살려주었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일부러 공격한 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물러나요!”
라온이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가,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꼭 갚겠습니다!”
무인들은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서 뒤로 달려갔다.
-네놈이 저런 버러지들을 구해주다니, 신기한 일도 다 있구나.
라스가 신기하다는 듯 턱을 갸웃거렸다.
-이제 와서 선행을 해봐야 의미 없느니라!
‘그런 이유가 아니야.’
착해 보이기 위해서도, 저들이 이뻐서 구해준 것도 아니다.
데루스의 전쟁 계획을 망치려면 한 명이라도 많은 사람을 살려야 하기에 구해주었을 뿐이다.
쿠구구구구!
도검존의 검이 점점 더 무거워진다. 초월자였던 그의 무력을 그대로 가져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나보다 강한 건 확실했다.
후욱.
라온이 숨을 깊게 들이마신 후 좌수의 마검으로 도검존의 어깨를 찔렀다.
도검존은 기다렸다는 듯 붉은 도를 들어 마검의 칼날을 막아냈다.
쩌어어어엉!
검과 검. 검과 도가 경합하며 검게 물든 스파크가 사위로 번져나갔다.
터엉!
라온이 태화삼보를 밟았다. 빙판에 미끄러지듯 뒤로 물러섰다. 오른발 앞꿈치의 만화공을 일으켰다. 하체에 불의 기운을 담은 채 나아가 도검존의 가슴을 향해 적섬삼십육결을 일으켰다.
“…….”
도검존은 조금 균형이 틀어진 상태에서도 전력을 낼 수 있는 무인이었다. 그의 마병도에서 붉은 기류가 신룡처럼 타올랐다.
쿠와아아아앙!
신검과 도검존의 마병도가 맞부딪치며 거센 불길이 치솟아 공동의 천장을 후려쳤다.
저벅.
라온이 도검존의 공간 속으로 한 발 더 들어갔다. 밀려 나가는 신검대신, 마검을 다잡았다.
마검에 어린 푸른빛이 두 갈래로 갈라지며 도검존의 목과 심장을 동시에 파고들었다.
치이이이잉!
도검존의 왼손이 달무리와도 같은 기류를 일으켰다. 참마검이 기괴한 용음을 토하며 마검의 칼날을 막아서는 두터운 벽을 세웠다.
쿠와아아앙!
신검과 마검 모두 도검존의 방어를 뚫지 못하고 허무하게 가라앉았다.
거대한 충격파가 퍼지며 공동 전체를 뒤흔드는 진동이 일어났지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크으….”
라온이 본인도 모르게 꽉 다물고 있던 입술을 벌렸다.
‘초월자는 죽어서도 이 정도인가….’
힘과 민첩성 자체는 내가 뛰어났지만, 오러의 양과 무학의 경지 자체는 저쪽이 한참 위였다. 완전히 밀려나지 않는 것만으로 칭찬받아야 할 정도였다.
투웅!
도검존이 처음으로 보법을 밟았다. 바닥을 뭉개는 듯한 무거운 보법. 다만 그 속도는 태화보에 밀리지 않았다.
급격하게 가까워진 도검존이 검과 도를 동시에 내리찍었다.
“크윽!”
몸을 빼내려고 했지만, 도검존이 일으킨 압력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신검으로 염주벽, 마검으로 무금향을 일으켰다.
적의 오러를 휘감아 지워버리는 무금향과 모든 공세를 차단하는 염주벽이 도검존의 무학과 정면에서 격돌했다.
치이이익!
라온이 뒤로 쭉 밀려나가며 미간을 찌푸렸다. 무금향으로 도검존의 오러 대부분을 지웠음에도 염주벽이 깨져나갈 정도의 충격이 느껴졌다.
‘혼자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죽었기 때문인지 오러를 아끼지를 않는다. 이대로 계속 싸웠다가는 그대로 몸통이 뜯겨 나갈지도 모른다. 지금의 자신이 상대하기 어려운 괴물이었다.
후우우욱!
도검존을 향해 견제용 강환을 쏘아낸 후 뒤편으로 시선을 돌렸다.
“금방 갈 테니까! 조금만 참아!”
“젠장. 부상만 없었다면….”
리메르와 세레나는 6사도와 귀마검주는 상대하느라 바빴다.
리메르는 아직 의수에 익숙해지지 않았고, 세레나는 큰 부상을 입었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치이이이잉!
도검존은 죽은 사람답게 조금도 지치지 않은 눈빛으로 참마검과 마병도를 내질렀다. 푸르고 붉은 빛살이 칼날 폭풍이 되어 뻗어 나왔다.
'혼자 할 수밖에 없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이를 악물 때였다.
콰르르르릉!
좌측에서 거대한 벼락 줄기가 튀어나와서 도검존의 도를 쳐내고, 우측에서 육중한 검격이 뻗어나가 도검존의 검을 찍어 눌렀다.
쿠우웅!
도검존이 처음으로 물러선 틈을 다 두 사람이 앞으로 뛰어들었다. 코만 기사단장 쿠잔과 뇌쇠 바르필이었다.
뒤를 돌아보는 두 사람의 표정은 필사의 각오를 담고 있는 듯 했다.
“혼자서는 버거울 것이오.”
“도와주겠소.”
“위험합니다.”
라온이 쿠만 기사단장과 뇌쇠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두 사람 모두 제 몸 상태가 아니었기에 자칫 잘못하면 도검존의 일검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말했지 않소. 빚을 갚겠다고. 그 기회가 빠르게 찾아와서 다행이오.”
“내 뜻도 같소.”
두 사람은 죽어도 상관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옆에 와서 섰다.
“후후.”
델프로스가 팔짱을 낀 채로 비웃음을 그렸다.
“마음대로 하도록. 다만 셋으로 될까?”
“…….”
라온은 대답 없이 어금니를 지그시 씹었다. 분하지만 놈의 말대로 도검존의 무력은 여전히 막강했다. 셋이 덤빈다고 해도 이긴다는 보장이 없었다.
“기다리기 지루하니, 이쪽도 움직이도록 하지.”
델프로스가 손가락을 튕기자, 어둠 속에서 검은 제복을 입은 이들이 걸어 나왔다.
‘영귀대인가.’
델프로스가 속한 무력 단체 영귀대의 무인들이었다. 암살 기술을 익힌 그림자와 달리 제대로 된 무학을 닦은 놈들이었다.
“죽여라.”
그의 지시에 영귀대의 무인들이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무인들에게 달려들었다.
촤아아아악!
무력의 차이도 차이지만, 상황 자체가 너무도 급격하게 흘러갔기에 중립 세력의 무인들이 버티지 못하고 빠르게 죽어 나갔다.
“음….”
라온이 뒤를 보며 손끝을 떨었다.
‘저들이 죽으면 안 되는데.’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한 명이라도 많은 사람을 살려 보내야 한다.
하지만 광풍대와 공검대가 백혈교와 흑탑에 막혀서 도울 수가 없었다.
“사람들을 살려야 하는 거군.”
코만 기사단장 쿠잔이 뒤를 돌아 수하들에게 외쳤다.
“코만 기사단은 살귀들을 막아라!”
“너희도 마찬가지! 기사단을 도와서 사람들을 지켜!”
뇌쇠 바르필 역시 사람들을 지키라는 말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해서든 도와준다는 두 사람의 말은 진심이었던 것 같다.
“이쪽도 시작하지. 내가 선봉에 서겠소!”
코만 기사단장이 시원한 포효를 터트리고서 도검존의 정면을 향해 뛰어들었다.
쩌어어어엉!
그의 두터운 검도 도검존의 마병도 앞에선 나뭇가지가 된 것처럼 가볍게 튕겨 나갔다.
“어딜 가는 것이냐!”
하지만 그는 밀려 나가거나, 물러서지 않았다. 진각을 밟은 채 재차 검을 그어 도검존을 물고 늘어졌다.
파지지지직!
뇌쇠는 도검존의 시선이 코만 기사단장에게 흘러간 틈에 나무의 뿌리 같은 형태의 거대한 벼락 줄기를 떨어뜨렸다.
콰르르르릉!
도검존은 코만 기사단장을 막고 있는 상태에서 참마검을 들어 뇌쇠의 벼락을 꺾어버렸다. 유연하면서도 두터운 검막이었다.
터어엉!
라온이 붉은 빛살을 일으키며 땅을 박찼다. 각기 다른 빛으로 번득이는 신검과 마검을 연하게 가라앉은 도검존의 검막을 향해 찔러 넣었다.
빠지지직!
검막이 깨지고 신검과 마검의 칼날이 도검존의 얼굴 앞에서 멈춰 섰다. 놈의 눈빛은 여전히 평온했다.
라온이 신검과 마검을 쥐고 있는 손목을 비틀었다. 단전의 오러를 모조리 끌어내며 묵직한 진각을 밟았다.
쿠구구구구!
신검의 검극에서 화룡이, 마검의 칼날에서 수룡이 치솟아 오연한 숨결을 뿜어낸다. 검계현신 상태에서 쏘아내는 염룡결이었다.
쿠오아아아앙!
화염과 서리가 단숨에 폭발하며 도검존의 검막을 완전히 깨부쉈다.
“크아아아아!”
“뇌영!”
코만 기사단장이 깨져나간 검막 위로 강환을 내리찍고, 뇌쇠가 거대한 뇌기의 구슬을 터트렸다.
쿠와아아아아앙!
두 번째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며 도검존이 서 있던 바닥이 움푹 파여 나갔다.
“끝났나?”
뇌쇠가 한숨을 내쉴 때 시꺼먼 연기 속에서 검은빛이 번득였다.
“허억!”
“아….”
전력을 다 쏟아부은 코만 기사단장과 뇌쇠는 피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빛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치이이잉!
라온이 입술을 깨문 채 달려 나갔다. 신검을 휘돌려 아래에서부터 타오르는 불길의 방패를 세웠다.
쿠우우우웅!
강렬한 도격에 염주벽이 단숨에 깨져나갔다. 바로 마검을 눕혀 서리의 방패를 일으켰다.
쿠와아아앙!
간신히 막아내기는 했지만, 전신의 뼈가 울리는 것 같았다. 오러의 질과 가진 무력의 차이가 너무 심했다.
후우우욱!
연기가 그치고 도검존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의 의복은 갈라졌지만, 하얀 피부에는 피 한 방울 흘러내리지 않았다.
‘정말 시체이기는 한… 음?’
라온이 도검존의 안쪽을 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그가 무복 안에 입고 있는 옷의 문양이 지그하르트 닮아 있었다.
‘맞아. 도검존은 지그하르트의 초대 가주를 존경한다고 했었지.’
그게 정말이라면 만화공을 알아볼지도 몰라.
만화공을 극성으로 운용하여 화령을 그렸다.
화아아아아아아!
불꽃이라는 양분으로 태어난 화염의 꽃잎들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가 도검존을 휘감았다.
만화공의 특색 그 자체인 화령이라면 그의 정신을 되돌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촤아아아악!
하지만 도검존은 벌목을 하듯 거칠게 도를 휘둘러 어둠을 자욱하게 물들인 붉은 꽃잎들을 모조리 가라앉혔다.
‘역시 안 되나….’
세뇌를 당한 채 다시 살아난 자를 무학으로 깨우는 건 이야기 속에서나 가능한 일인 것 같았다.
‘그래. 차라리 잘 되었어.’
라온이 두 검을 고쳐 잡았다. 도검존의 가라앉은 눈을 보며 입매를 비틀었다.
‘무학서를 얻을 필요도 없이. 여기서 밑천을 다 털어주지.’
* * *
쿠구구구구!
거대한 충격파가 폭발함과 동시에 코만 기사단장이 튕겨 나가 벽에 박혔고, 뇌쇠가 바닥을 구르며 피를 토했다.
“커흑!”
“끄으윽….”
코만 기사단장은 간신히 일어나기는 했지만, 다리를 부르르 떨었고, 뇌쇠는 무릎을 꿇은 채 일어서지를 못 했다.
“허억….”
라온이 입가로 흘러내리는 핏물을 닦으며 고개를 저었다.
‘역시 초월자였던 사람은 다르네.’
불의 고리를 극성으로 휘돌리고 있어도 도검존의 무학을 파악하는 게 쉽지 않았다.
무학을 파악했다고 해도 도검존의 오러와 의념이 너무도 막강하여 틈을 만들 수가 없었다.
“이상해….”
코만 기사단장이 검을 쥔 손을 떨며 천천히 숨을 골랐다.
“왜 오러가 줄어들지 않는 거지?”
“으음, 아무리 초월자라고 해도 한계가 있을 텐데….”
뇌쇠도 동의하는 듯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라온이 도검존을 보며 턱을 매만졌다.
‘처음과 오러의 양이 같아.’
죽었다가 되살아났으니, 체력이 줄지 않는 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도검존은 오러도 무한한 것처럼 사용했다.
일격 일격에 전력을 담고 있음에도 그의 오러는 줄어들지를 않았다.
“리치와 같은 건가?”
“리치?”
코만 기사단장이 무슨 말을 하냐는 듯 고개를 돌렸다.
“리치는 영혼을 담아놓은 핵만 멀쩡하면 죽어도 되살아나고, 마나도 끝없이 사용할 수 있죠. 그것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 그럼 저건 못 죽인다는 건가?”
“그건 아니야.”
뇌쇠가 고개를 저었다.
“영혼의 옥을 만들었다고 해도 한계는 있어. 저런 힘을 사용한다는 건 분명 그에 합당한 단점도 있을 거야.”
그는 저런 힘을 아무런 조건도 없이 사용하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이를 악물었다.
“맞습니다. 분명 약점이 있을 거예요.”
라온이 호흡을 가라앉히며 신검과 마검을 들었다.
“계속 가보죠.”
“하아, 말을 했는데 안 지킬 수도 없고!”
코만 기사단장이 되도 않는 불평을 터트리고서 도검존의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뇌룡!”
뇌쇠는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한 채 지팡이에서 벼락을 뿜어냈다. 샛노란 뇌기가 용의 형상이 되어 도검존의 좌측으로 뻗어나갔다.
“흐읍!”
라온이 진각을 밟았다. 우측으로 회전하여 신검으로 적섬, 마검으로 은검몽을 그렸다.
촤아아악!
세 그랜드 마스터가 전력을 다해 친 공세가 합격술로 이어질 때 도검존의 검과 도가 번뜩였다.
쿠아아아아앙!
그는 전투를 시작할 때와 마찬가지로 강대한 힘을 폭발시키며 세 사람을 동시에 밀어냈다.
‘일단 도검존을 막아야 뭘 찾기라도 할 텐데….’
우리는 점점 지켜가지만, 도검존의 체력과 오러는 끝이 없었다.
이런 식으로 전투가 진행되면 그의 무학을 해석하더라도 이기는 건 불가능했다.
“후우….”
라온이 입술을 깨문 채 도검존의 검격을 버티고 있을 때였다. 등 뒤에서 다가온 아주 은밀한 기척이 갑자기 머리 위로 뛰어올랐다.
“도검존의 무학은 내가 가져간다!”
지금까지 조용히 숨어 있던 자다. 흑단 같은 머리칼을 길게 늘어뜨린 노인. 도검존의 무덤 지도를 처음 발견하고, 이곳을 열었던 무령귀객이었다.
그는 모두의 시선이 돌아간 틈을 이용하여 도검존의 무학서를 향해 손을 뻗었다.
치이이이익!
무령귀객의 손이 무학서에 닿는 순간 도검존이 뇌룡을 막고 있던 참마검을 거칠게 쳐올렸다.
푸카아아악!
참마검의 푸른 칼날이 무령귀객의 몸을 종잇장처럼 갈라놓았다.
“멍청한 놈. 무인이 본인의 무학서를 뺏길 것 같으냐.”
델프로스가 몸통이 갈라진 무령귀객을 보며 비웃음을 그렸다.
“네 역할은 이 무덤을 연 것으로 끝이었다. 버러지다운 죽음이로군.”
“으으….”
무령귀객은 손에 넣지 못한 무학서를 바라보다가 숨이 끊어졌다.
“…….”
라온은 델프로스도, 무령귀객도 보고 있지 않았다. 도검존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설마….’
저거였나?
딱 한순간이지만, 무령귀객이 도검존의 무학서를 만진 순간 도검존과 무학서가 사이한 기운으로 연결되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불의 고리가 있는 자신이 그 모습을 잘못 보았을 리가 없었다.
라온이 천천히 시선을 올렸다. 공중에 떠 있는 무학서를 보는 그의 눈동자에 피보다 진한 휘광이 맺혔다.
‘찾았다.’
저게 도검존의 핵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