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31화
라온은 불사조가 아니라, 라스를 보며 눈매를 찌푸렸다.
‘불사조는 이미 불에 타고 있는데, 무슨 구이야!’
-멍청하구나.
라스가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죽었다가 살아나는 불사조의 살결은 최상급 소고기처럼 야들야들 하느니라. 거기다 이미 불에 타고 있어서 구울 필요도 없지!
녀석은 이미 불사조 구이를 먹어보기라도 한 듯 침을 질질 흘렸다.
‘넌 대체 뭘 먹고 다니는 거야….’
라온은 강아지처럼 혀를 내민 라스를 밀어내고 다시 불사조를 바라보았다.
‘그랜드 마스터 급 무인들이 먼저 지나갔을 텐데. 아직 불사조가 남아 있는 것을 보면….’
공간이 나뉘어 있는 건가?
아무래도 두 번째 층부터는 길이 갈리는 것 같았다.
‘뭐가 어찌 되었든 드디어 반지의 봉인을 풀 수 있겠네.’
암시장에 불사조의 위치를 요청한 이유는 수련생 시절에 샀던 낡은 반지의 봉인을 풀기 위해서였다.
오래 기다렸는데, 드디어 그 기회가 왔다.
‘그런데 저 불사조….’
왜 저렇게 크지? 천 년 이상 살아온 건가?
지금 눈앞에 떠 있는 불사조는 전생에 마주쳤던 불사조보다 세 배 이상 거대했고, 날개에서 뿜어지는 열기도 정상 범주를 한참 넘어서 있었다.
불사조도 오래 살수록 강해지기에 굉장히 긴 세월 동안 살아온 것 같았다.
[버러지 같은 인간 놈들.]
불사조가 날개를 거칠게 세우며 섬뜩한 안광을 일으켰다. 보이지 않는 불길이 목을 옥죄이는 것 같았다.
“마, 말을 해?”
버렌이 입을 떡 벌렸다. 불사조가 말을 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한 것 같았다.
“말이 아니야.”
라온이 불사조에게 시선을 고정하며 턱을 저었다.
“의념을 이용한 의사 전달이다.”
불사조는 의념을 이용하여 이곳에 있는 모든 인간에게 악의를 전했다. 의념을 사용한 것을 보면 급 자체가 그랜드 마스터 이상인 것 같았다.
[모조리 재로 만들어주마.]
불사조가 화염에 타오르는 부리를 벌렸다. 무저갱처럼 시꺼먼 목구멍에서 뻘건 불꽃이 번쩍였다.
먼 곳에 있음에도 피부가 익어버릴 것 같은 어마어마한 열기였다.
“아아….”
“저, 저걸 어떻게 막아!”
“끝났다. 다 끝났어….”
무인들은 불사조의 위압감에 질린 듯 그 자리에서 서서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했다.
하지만 광풍대는 달랐다.
불사조 이상의 공포를 느껴보았던 검사들은 살아남기 위해 검을 다잡았다.
“개진!”
버렌이 검사들에게 지시를 내리며 진법의 중심에 섰다. 거칠게 솟구친 삭풍이 그의 주변을 휘감았다.
“1조! 내 옆으로 붙어!”
마르타가 광폭화를 운용하며 1조의 앞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두터운 강기의 벽이 광풍대를 보호하듯이 치솟았다.
“2조. 뒤로.”
루난은 잔잔한 음성을 내뱉으며 2조의 앞을 막아섰다. 그녀의 애검 설화의 검신에 고고한 서리의 꽃이 피어났다.
“정면은 내가 맡도록 하지.”
마크 괴튼이 도를 두 손으로 잡은 채 대광풍진의 가장 앞에 서서 강기를 뿜어냈다.
“2층에서 불사조가 나오면 다음에는 뭐가 나오려나….”
리메르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불평과 달리 그는 언제라도 움직일 수 있도록 검병에 손을 얹었다.
라온은 뒤에서 광풍대를 지켜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좀 봐줄 만하네.’
마스터들조차 당황하고 있었지만, 광풍대는 나와 리메르의 도움을 바라지 않고, 스스로 이 위기를 이겨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3주 동안 집중력 강화 훈련을 시킨 보람이 있었다.
콰아아아아아아!
불사조의 화염이 대광풍진을 향해 쏟아져 내린다. 화산에서 터져 나온 용암이 그대로 떨어지는 듯 괴악한 모습이었다.
“전력을 다하라!”
버렌의 외침을 따라 광풍대는 전의를 불태우며 푸른빛으로 명멸하는 오러의 방패를 더 두껍게 조형했다.
우우우웅!
세 명의 조장들의 오러가 대광풍진의 끝단을 적시며 한층 더 굳건한 벽을 세웠다.
불길조차 잡아먹는다는 불사조의 화염과 대광풍진의 최강의 방진이 정면에서 맞부딪쳤다.
쿠구구구구구!
대광풍진의 방어는 강기를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굳건했지만, 불사조의 불길은 오러 자체를 태우며 광풍진을 뭉개버리기 시작했다.
“아직.”
“끝까지 버텨!”
“한 명이라도 물러나면 다 죽는다!”
루난, 마르타, 버렌. 세 명의 조장이 검사들의 전의를 북돋고, 마크 괴튼이 최전방에서 몸으로 불길을 막아섰다.
하지만 불사조의 불길은 꺼지지 않은 채 광풍대의 발밑까지 파고들었다.
‘아쉽군.’
라온이 짧게 입맛을 다셨다. 광풍대가 조금만 더 강했다면 정말 저 불길을 이겨냈을지도 모른다.
그리 크지 않은 차이에 밀렸다는 게 안타까웠다.
‘그래도 잘했다.’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광풍대의 각오가 보이는 듯해서 자연스레 웃음이 나왔다.
라온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그리고서 불사조의 불꽃을 향해 손을 뻗었다.
단전에서 일으키는 건 만화공도, 글래시아도 아니다. 아름답게 타오르는 홍색의 불꽃. 이프리트에게 받았던 홍염이었다.
불길에 대한 지배력을 갖춘 홍염을 운용하자, 광풍대를 집어삼키려던 불사조의 불꽃이 힘을 잃은 것처럼 꺾여서 좌측으로 흘러내렸다.
쿠와아아아아앙!
불꽃과 용암이 만나며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하늘 위로 재가 가득 찬 시꺼먼 먹구름이 떠올랐다.
[네놈….]
불사조가 이쪽을 보며 부리를 떨었다.
[방금 무얼 한 것이냐.]
놈은 당황이라는 단어가 그대로 새겨진 듯한 푸른 눈동자를 비틀었다.
[왜 네놈이 그런 힘을….]
“…….”
라온은 대답 없이 불사조의 깃털을 살폈다.
‘저놈의 약점은 어디지?’
불사조의 시작과 끝은 저 황금빛 깃털이다. 드래곤에게 역린이 있듯이 불사조에게도 약점을 감추는 깃털이 있었다.
홍염과 분노의 마안, 설화의 감각을 동시에 운용했다.
공명하는 불의 고리가 세 특성을 강화하자, 불사조가 품고 있는 기운이 손에 닿을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졌다.
‘우측 날개 아래인가.’
아주 조금이지만, 날개 밑 깃털의 불꽃이 다른 곳보다 잔잔했다. 저곳이 약점인 것 같았다.
[말하라! 왜 인간 주제에 그런 힘을….]
“동생한테 받았다.”
[도, 동생?]
라온은 당황하는 불사조를 무시하고, 태화보를 밟았다. 비상하는 듯이 도약을 했지만, 불사조가 너무 높은 곳에 떠 있어서 닿지 않았다.
[어딜 감히!]
불사조는 본인에게 다가올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 듯 비웃음을 흘리며 날개를 내리쳤다. 수를 헤아릴 수 없는 깃털에서 불꽃의 비가 쏟아져 내렸다.
‘걸렸군.’
입술을 꾹 씹은 후 허공을 깊게 밟고 뛰어올랐다.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 보았던 귀마검주의 허공 밟기였다.
[크윽!]
불사조는 당황하며 날개를 올려서 더 높은 하늘로 올라갔다.
덕분에 허공에서 한 차례 더 뛰었음에도 여전히 불사조와는 상당한 거리가 벌어져 있었다.
[멍청한 놈!]
불사조는 놀랐다는 게 민망했던지 눈매를 찌푸린 채 날개를 펼쳤다.
[그대로 태워주마!]
놈은 허공에서 움직일 수 없다는 점을 이용하려는 듯 부리의 끝에 불꽃을 응집시켰다.
모여든 불꽃이 거대한 화염구를 이룬 채 떨어져 내렸다. 무시무시한 열기에 공간이 일그러질 정도였다.
라온은 눈앞으로 짓쳐 드는 화염구를 보며 입매를 말아 올렸다.
‘끝났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허리춤에 걸린 제천검의 검병에 손을 얹었다. 손아귀에 힘을 주며 만화공을 일으켰다.
외부가 아닌 내부에 집중하며 전신의 마나 회로를 일깨웠다.
치이이이잉!
육체와 정신 모두가 만화공의 불꽃으로 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아리스의 공간검과 오그람의 격해무를 동시에 운용했다.
찌지지지직!
아직 익숙하지 않은 두 무학을 한 번에 사용하니, 뇌리가 뜯겨나갈 것 같은 고통이 일었다.
하지만 지금은 고통을 참고 나아갈 때였다. 불의 고리를 공명시키며 제천검을 뽑아냈다.
촤아아아아악!
검집 속에서 솟구친 붉은 칼날이 불사조가 내뻗은 화염의 구를 무시하고, 놈의 왼쪽 날개 아래를 갈랐다.
[끼아아아아아!]
불사조는 단순히 날개가 베였다고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뱉었다.
놈은 지독한 통증에 정신이 나간 듯 그대로 땅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아직 안 죽었어.’
숙련도도 부족했고, 화염구를 피해내느라 완벽한 검술을 펼치지 못했다. 불사조는 아직 살아 있었다.
라온은 몸을 무겁게 만들어 빠르게 땅에 내려온 후 추락하는 불사조에게 돌진했다.
[꺼져라!]
불사조는 영물답게 그사이에 정신을 차리고 불길의 벽을 세웠다.
‘예상했어.’
제천검을 뒤로 젖히고, 진혼검을 뽑았다. 붉은 칼날 위로 아롱져 떨어지는 푸른 섬광을 그대로 찔러넣었다.
쩌어어억!
진혼검은 짙은 불길을 뚫어버리고, 다시 한번 불사조의 약점을 거칠게 파고들었다.
[캬아아아아!]
불사조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눈이 돌아가 버렸다. 아예 이성이 나가버린 듯했다.
라온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뒤로 젖혀둔 제천검을 내뻗었다. 붉게 젖은 열선이 은은한 빛과 함께 불사조의 목을 갈랐다.
쿠구구구구구!
불사조의 거대한 몸체가 목과 분리된 채 떨어져 내렸다.
쿠우우웅!
불사조의 목은 용암 속으로 떨어졌고, 몸체는 반쯤 땅에 걸친 채 휘적거렸다.
“와….”
“며, 몇 번 휘둘렀지? 세 번인가?”
“세 번 맞아. 이젠 불사조 검 세 번 휘둘러서 잡네….”
“이젠 괴물 소리도 못 하겠어.”
광풍단은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저, 저게 라온 지그하르트인가….”
“용살자라 불린 이유가 있군.”
“또 이명이 바뀌는 거 아니야? 불사조 슬레이어로?”
“저런 괴물이랑 경쟁해야 한다고…?”
“갑자기 집에 가고 싶네….”
다른 무인들은 아예 주저앉은 채 고개만 절레절레 저었다.
[아직이다!]
모두가 힘이 빠져서 헛바람만을 흘릴 때 다시 불사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놈들은 절대 이곳을 벗어나지 못한다!]
“네가 부활하려면 10년이 넘게 걸릴 텐데?”
라온이 불사조의 의념이 흘러나오는 용암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불사조가 부활하는 영물은 맞지만 바로 살아나는 건 아니다.
10년 후 본인이 죽었던 깃털 중 하나에서 태어나는 것으로 아는데, 왜 저런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이곳은 특별하다. 내가 원한다면 언제라도 부활할 수 있다!]
불사조는 이번에는 잡술에 당하지 않겠다며 이를 갈았다.
“음….”
라온이 용암을 굽어보며 입술을 씹었다.
‘그럼 용암 속에서 부활하겠군.’
불사조도 부활했을 때는 본래의 힘을 내지 못한다.
놈은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용암 속에서 부활한 뒤 힘을 되찾아서 나올 게 분명했다.
‘부활하는 깃털이 뭔지만 알면 쉽게 제압할 수 있을… 음?’
라온이 사방으로 흩어진 불사조의 깃털을 보며 눈을 끔벅였다.
‘뭐지?’
아직까지 홍염을 운용하고 있기 때문인지 불사조의 깃털 하나하나에서 작은 불씨가 타오르는 게 느껴졌다.
평범한 불씨가 아니라, 조금 전까지 싸우던 불사조의 생기였다.
‘설마…’
깃털에 스며든 생기를 이용해서 부활하는 건가?
[기다려라! 뼛조각 하나 남기지 않고 모조리 태워주마!]
불사조는 죽은 게 분한 듯 계속해서 악의를 드러냈다.
[끝까지 따라가 녹일 것이다. 차라리 용암에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혹시….’
라온은 불사조의 말을 무시하고서 바닥에 떨어진 깃털을 하나 주웠다.
우우우웅!
만화공과 홍염을 뒤섞은 후 깃털 속에서 타오르는 불씨에 열기를 전해주었다.
화아아아!
갑자기 깃털이 부르르 떨리더니 하늘에 닿을 듯한 거대한 화염의 구체가 솟구쳤다.
찌지지지직!
알처럼 동그란 화염이 반으로 갈라지더니, 그 안에서 처음 보았던 불사조보다 반 정도 작은 놈이 튀어나와 땅으로 떨어졌다.
[네놈들을 절대 놓치지 않… 삐약?]
불사조는 분노를 내뱉다가 병아리 소리를 내며 고개를 쳐들었다. 당황한 듯 부리가 바들바들 떨렸다.
[뭐, 뭐냐! 내가 왜 여기에….]
“이게 되네.”
라온이 바르르 떨리는 불사조의 눈동자를 보며 빙긋 웃었다.
“너 좀 전에 뭐라고 했더라? 다시 말해줄래?”
[아….]
* * *
카이얀이라는 이름을 지는 불사조는 방실거리며 웃는 라온을 보며 부리를 떡 벌렸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용암 속에서 부활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정신이 외부로 끌려가더니, 강제로 부활이 되어 버렸다.
막고 싶었지만, 폭풍에 빨려들어 간 것처럼 통제할 수가 없었다.
[대,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것이냐. 난 아직 부활할 생각이 없었는데!]
“아, 내가 했어.”
인간 놈이 얄밉게 손을 흔들었다.
[무슨 개소리냐! 네놈이 어떻게 날 부활시킨다는 거냐!]
“하다 보니까. 되던데?”
[말 같지도 않은 소리! 거짓말하지 마라!]
“그럼 다시 해보자.”
인간은 씩 웃으며 손을 휘둘렀다. 순간 세상이 갈라지더니, 목에 따끔한 통증이 일었다.
[끼에에에엑!]
뒤를 이어서 어마어마한 고통이 찾아옴과 동시에 시야가 껌껌해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다시 내 정신의 존재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하아, 꿈이었군.’
잠시지만 끔찍했어.
인간이 나를 강제로 부활시키다니, 꿈이라고 해도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현실이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내가 너무 긴장을 한 모양이군.’
예상치 못하게 당해서 악몽을 꾼 것 같았다.
다음에는 제대로 싸우겠다고 다짐한 후 용암 속에 넣은 깃털의 기운을 느끼려고 할 때였다.
갑자기 영혼이 움직여지질 않고, 외부로 뜯겨나가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서, 설마?’
어떻게든 막으려고 했지만,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머리채가 잡히듯 그대로 외부로 빨려들었다.
[뺙?]
눈을 뜨니, 그 얄미운 인간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봤지?”
[아아….]
카이얀이 라온을 보며 입을 떡 벌렸다.
“아직도 못 믿는 눈치네? 한 번 더 할까?”
[아, 아니! 잠깐만 믿는….]
퍼어억!
그의 시야가 또 어둠으로 물들었다.
* * *
회색 안개가 천막처럼 세워진 고요한 땅.
델프로스는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 고풍스러운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쉬는 게 아닌 듯 그의 주변으로 쇠를 으깨버릴 듯한 강렬한 오러가 꿈틀거렸다.
폭풍처럼 사납게 요동치던 오러는 시간이 지날수록 가라앉으며 예기를 흘릴 정도로 날카롭게 다듬어져 델프로스에게 되돌아갔다.
“이 정도면 되겠지.”
델프로스가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일 때 그의 뒤편으로 검은 그림자가 솟구쳤다.
“델프로스 님.”
사비대주가 델프로스에게 고개를 숙였다.
“주요 인물들이 전부 3층으로 내려갔습니다. 부상은 심화되었고, 정신적 피로도 배로 쌓인 듯 합니다.”
“사망자는?”
“부상자는 많지만 사망자는 거의 없습니다.”
그는 계획대로 되고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놈은 어떻게 됐지?”
“예…?”
사비대주는 그놈이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들었지만 못 들은 것처럼 입술을 떨었다.
“라온 지그하르트 말이다.”
“저, 전투 중입니다.”
“아직까지 전투 중이라니, 역시 버거운 모양이군.”
델프로스가 옅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말하지 않았나. 불사조의 불꽃은 화속성 저항력과는 상관 없다고.”
“그, 그게 아닙니다.”
“뭐?”
“으….”
사비대주는 말을 하고 싶지 않은 듯 입술을 씹었다.
“빨리 말해.”
“노, 놈은 불사조로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본인이 말하고도 믿기지가 않는 듯 머리를 감쌌다.
“그게 무슨 개소리지?”
델프로스의 손에 잡혀 있던 금박 입힌 찬잔이 바스러졌다.
“저, 정말입니다. 불사조를 죽인 후에 다시 부활시켜서 싸우는 훈련을….”
“지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거짓이 아닙니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라온 지그하르트는 불사조를 부활시키는 위치를 정할 수 있는 것 같았습니다.”
“…가져와봐.”
그가 손을 뻗자 사비대주가 원형의 수정구를 내밀었다. 그 안에 오러를 밀어 넣자 내부가 비치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웅!
불길이 하늘과 땅을 모두 적시고 있는 용암지대.
작은 깃털에서 불사조가 태어난다. 불사조는 주변을 압도하는 위용을 드러낸 채 거대한 날개를 뻗었다.
[키에에에!]
검은 제복을 입은 검사들은 기다렸다는 듯 우르르 달려들어 불사조를 후려 패기 시작했다.
[키아아아악!]
불사조는 비명을 지르며 발광을 했지만, 부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에 본래의 힘을 일으키지 못한 채 쓰러졌다.
그 후 금발적안의 미청년이 바닥에 떨어진 깃털을 쥐고 힘을 주자, 다시 깃털에 불이 붙으며 불사조가 부활했다.
이번에는 다른 쪽에 있던 검사들이 불사조에게 다가가 전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캬아아앙!
델프로스는 손에 힘이 풀려 수정구를 떨어뜨리며 고개를 떨었다.
“이놈들 뭐야….”
* * *
“다음 2조.”
라온이 뒷짐을 진 채로 루난에게 고개를 까딱였다.
“넹.”
루난이 2조 검사들과 함께 앞으로 나왔다.
라온이 불사조의 깃털에 만화공의 기운을 담아서 내던졌다. 깃털에서 강렬한 불길이 치솟으며 불사조가 태어났다.
[이, 이놈들! 그만두어라!]
“가자.”
루난이 앞으로 나아가며 은빛 서리를 흩뿌렸다.
촤아아아악!
아직 힘을 되찾지 못한 불사조의 깃털이 모조리 얼어붙었다.
2조 검사들은 불사조가 움직이지 못하는 틈을 이용하여 사위에서 달려들어 검격을 내리찍었다.
뻐버버버버벅!
불사조가 불길을 일으키고, 날개를 펄럭였지만, 약화 된 상태였기에 광풍대는 그리 어렵지 않게 불길로 차오른 공간을 파고들었다.
[끄에에엑!]
불사조는 2조에게 얻어터진 후 깃털이 뽑힌 채 바닥을 굴렸다.
[그, 그만! 제발 그만….]
불사조는 이제 그만하라며 고개를 저었다.
[벌서 20번 가까이 죽었다! 이제는 나도 힘들다고!]
놈은 그만 좀 하라며 악을 질렀다.
“흐음….”
라온이 거의 빌다시피 하는 불사조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아직 저희 남았습니다!”
버렌이 손을 들어 올렸다.
“대주님! 저는 일대일로 상대해보고 싶습니다!”
마크 괴튼은 직접 싸워보고 싶다며 손을 들었다.
“그렇다네.”
라온이 불사조를 보며 손가락을 저었다.
“일단 쟤네까지 끝내고 생각하자.”
[자, 잠깐!]
라온이 불사조를 베어버리고서 다시 깃털을 쥐었다. 깃털에 불길을 넣자, 또 다시 불사조가 태어났다.
[키아아아악!]
이제는 포효가 아닌, 비명을 지르며 태어나는 불사조를 보며 손가락을 까딱였다.
“잘 부탁해.”
“가자!”
[제발 그만!]
버렌이 곧 부활한 불사조에게 달려들었고, 불사조는 울먹이는 눈으로 날개를 휘저었다.
[나 자살한다? 진짜다! 정말 자살할 거라고!]
불사조는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며 날개를 휘저었다.
-불사조를 전투 교보재로 쓰다니….
라스가 울먹이는 불사조를 보며 헛바람을 흘렸다.
-네놈한테는 악마라는 단어도 아까워! 이 미친놈아!
‘불사조를 먹는 것보다는 낫지.’
너보다는 낫다고 중얼거릴 때 불사조가 울먹이며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차라리 날 잡아먹어! 이 악귀들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