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29화
어둡다.
밤이 찾아온 듯 묵색의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라온은 눈이 침침하게 느껴질 정도로 어두컴컴한 숲을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지?’
밖은 창창한 대낮이었지만, 지하로 내려왔으니 어두워지는 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보이는 건 웅장한 규모의 숲이었다. 왜 지하에 이런 거대한 산림이 있는 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라온은 숲을 구성하는 나무의 가지와 잎을 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숲이 있는 것도 그렇지만, 나뭇잎도 이상해.’
나뭇잎과 가지를 보면 그 지역의 기후를 추측할 수 있다.
잎이 얇으면 추운 지방, 넓으면 더운 지역인데 지금 이 숲에는 그 두 종류가 뒤섞여 있었다.
‘거기다….’
저 하늘은 또 뭐지?
지하라면 아무리 높다고 해도 천장이 붙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머리 위로 기감을 펼쳐보아도 천장이 느껴지지 않았다. 추락하는 시간이 길었다고 해도 이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어?’
라온은 시선을 올리다가 가늘게 손을 떨었다.
‘설마 달인가?’
하늘의 좌측 구석에 새끼손톱보다 작아 보이는 초승달이 떠 있었다. 진짜 달과 달리 아주 미세한 빛만 흘렸지만 달은 맞는 것 같았다.
‘여긴 대체 뭐지?’
혹시나 해서 손등을 꼬집어 보았지만, 통증이 느껴졌다. 꿈이 아니라는 뜻. 이 기괴한 땅은 현실에 존재하는 장소였다.
‘결계? 진법?’
역시 함정이었나?
불안감을 휘감은 머리와 달리 본능적인 감각으로는 함정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친숙하다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군.’
도검존의 무덤 입구를 다시 떠올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정말 함정이라면 나갈 출구도 없을 텐데….’
-그건 아니니라.
라스가 팔찌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아니라니? 여기가 어디인지 아는 거야?’
-모르느니라.
녀석은 아는 척 말을 해놓고 손을 휘휘 저었다.
‘그럼 조금 전에 했던 말은 무슨 뜻인데?’
-네놈의 걱정과 달리 나갈 수 있는 출구가 있다는 뜻이니라.
라스가 허공에 떠 있는 달을 가리켰다.
-이곳이 정상적인 공간이 아니라는 것은 네놈도 알겠지.
‘그래.’
-마법으로 만든 결계든, 주술로 만든 진법이든, 설사 무학으로 만든 공간이라고 해도 입구를 만들었다면 출구도 존재할 수밖에 없느니라. 그건 완성된 공간을 이루는 차원의 법칙이니까.
녀석은 찾기는 힘들지 몰라도 외부로 나갈 수 있는 입구는 존재할 수밖에 없다며 손가락을 흔들었다.
‘그렇군.’
다행히 최악의 상황은 아니라는 정보를 얻었다. 식충이 같아도 가끔은 도움이 되는 마왕이었다.
‘고맙다.’
-고마우면 빨랑 튀어나가서 아이스크림이나 사거라. 또 새로운 맛이 나왔다고 들었느니라.
‘…….’
남하고 소통도 못 하는 놈이 아이스크림 정보는 어디서 얻는지 모르겠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을 때 등 뒤로 광풍대 검사들이 하나씩 떨어졌다.
“뭐야. 여긴.”
버렌이 시선을 돌리며 눈매를 찌푸렸다.
“분명 낮이었는데? 왜 어둡죠?”
크레인이 어두컴컴한 숲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멍청아. 지하로 내려왓으니까. 어둡지!”
마르타가 크레인의 머리에 꿀밤을 찍었다.
“달이 있어.”
루난이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그녀의 맹한 눈동자에 얇은 초승달이 비쳤다.
“어…?”
“왜 지하로 내려왔는데 달이….”
마르타와 버렌은 루난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을 보며 입을 떡 벌렸다.
“시, 신기한 곳이네요. 바로 나가고 싶을 정도로….”
도리안은 벌써 겁에 질린 듯 입술을 떨면서 배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의 손아귀에 불에 타고 있는 횃불이 들려 나왔다.
“…그건 뭐야?”
라온이 도리안을 보며 눈을 끔벅였다. 횃불을 만들 수 있는 재료가 아니라, 횃불 자체가 튀어나오다니, 저 주머니는 아무리 봐도 적응이 되질 않았다.
“횃불이잖아요. 필수품.”
도리안은 헤헤 웃으며 광풍대 검사들에게 횃불을 나눠주었다. 불타는 횃불이 왜 주머니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조금이나마 어둠이 걷혔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안 들어오네요….”
그는 주변을 둘러보며 입맛을 다셨다.
“우리보다 먼저 들어간 사람들도 보이지 않습니다.”
버렌이 주변을 둘러보며 고개를 저었다.
도검존의 무덤에 뛰어내릴 때 앞서간 사람도, 뒤에서 대기하는 사람도 많았는데, 사람 자체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들어간 시간에 따라서 떨어지는 위치가 바뀌는 것 같았다.
“마법으로 만든 결계인가.”
리메르가 주변을 돌아보며 미간을 구겼다.
“도검존이 마법을 썼다는 말은 못 들어봤는데.”
“맞습니다.”
가장 마지막으로 무덤에 들어온 리스른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검존은 평생 검과 도만을 쥐었습니다. 마법이나, 주술을 익힌 적은 없죠.”
“그럼 여긴 대체 뭐지?”
리메르가 달이 없는 것처럼 어둑한 하늘을 올려보며 미간을 구겼다.
“도검존과 친분 있는 마법사나 주술사가 몇 있기는 하지만, 이런 규모의 공간을 만들 정도는 아닙니다.”
리스른은 도검존에 대해 많은 조사를 했는지 바로 정보를 읊었다.
“도검존은 어떤 사람이죠?”
“초월에 들었던 무인이라는 건 알고 계실 테니, 그 외의 부분을 말씀드리자면 그는 성향은 의인에 가까웠습니다. 세력은 없지만, 대륙 전역을 떠돌며 의로운 일을 행하며 무학을 닦는 데만 집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리고?”
“이건 확실한 정보는 아니지만, 지그하르트의 무인을 존경했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데닝로즈에게도 듣지 못했던 말이었기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예. 하지만 지그하르트를 찾아가거나 만난 적은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확실하지 않다고 말씀드린 겁니다.”
“그렇군요.”
데닝로즈는 암시장주의 제자이자, 지부장으로서 확실한 정보만을 말해야 했기에 저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던 것 같다.
라온이 턱을 매만지며 눈꺼풀을 내리감았다.
‘그렇다면 이곳은 세 가지 중 하나겠군.’
첫 번째는 아무런 세력도 만들지 않은 도검존이 본인의 무학을 전할 후인을 위해서 만들어 놓은 장소.
두 번째는 이미 누군가가 만들어 둔 장소를 도검존이 이용을 한 경우.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함정.
지금으로서는 세 번째가 가장 확률이 높아 보였다.
“일단 움직인다.”
라온이 광풍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들어간 사람들이 있으니, 빨리 따라잡는 게 좋겠지.”
“출구가 있는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함정일지도 모릅니다.”
버렌이 옆으로 다가오며 걱정스러운 눈빛을 드러냈다.
“아니.”
차분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 공간은 이미 완벽을 이룬 장소다. 진법이든, 결계든 입구가 있다면 출구도 만들 수밖에 없는 게 세계의 규칙이다. 찾기 어렵다고 해도 출구는 분명히 있어.”
라스가 말해주었던 정보를 그대로 읊었다.
-그, 그거 본왕이 한 말이잖느냐!
라스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 규칙이 있었어?”
“난 몰랐는데.”
“나도 처음 들어.”
“역시 대주는 대주네. 저런 쪽에도 조예가 있고.”
광풍대가 감탄한 듯 입을 떡 벌렸다.
“마, 맞습니다. 진법이든, 결계든 입구가 있다면 출구도 만들 수밖에 없죠. 보통은 모를 텐데, 대단하시군요.”
리스른도 놀랍다는 듯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빌어먹을 놈아!
라스가 빽 소리를 지르며 멱살을 쥐었다.
-당장 네게 향한 칭찬을 본왕에게 가져오거라! 왜 네놈이 본왕의 정보로 칭송을 받냐고!
‘누가 받으면 어때.’
-와! 이 뻔뻔함! 이젠 감탄만 나온다! 이 얍실한 이중인격자 놈아!
녀석은 분하다는 듯 손을 떨었다.
‘그게 아니라….’
라온이 손을 흔들려고 할 때 눈앞으로 메시지가 튀어나왔다.
[<분노>에게 놀람과 감탄을 받았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1포인트 상승합니다.]
‘오?’
-…어?
라스가 메시지를 보며 눈을 끔벅였다.
-이, 이게 아니잖느냐! 대가리에 파스타가 들었나! 정말 칭찬하는 거겠냐고!
녀석이 발광을 하든 말든 메시지는 본인의 할 일을 끝냈다는 듯 사라졌다.
-당장 튀어나와! 오늘 네가 죽든 본왕이 죽든 누구 하나는 죽어보자!
라스는 화가 식지를 않는 듯 본인의 머리채를 잡고 흔들었다.
‘그만 좀 해.’
-너 같으면 그만 하겠냐!
‘에휴.’
라온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서 정면에 보이는 숲으로 들어갔다.
“이쪽으로 가자.”
방향을 정하고 나아가려고 할 때 숲 안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은 아니야.’
묵직하면서도 피비린내가 흐른다. 인간의 기척이 아니다. 몬스터 특유의 둔탁한 움직임이었다.
쿠오오오오!
숲을 모조리 밀어버릴 것 같은 거친 포효와 함께 누런 뻐드렁니를 드러낸 오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뭐야. 오크야?”
“하, 오크라니.”
“괜히 긴장했네.”
광풍대는 오크 무리를 보며 피식 웃었다. 숫자는 많았지만, 한 주먹도 되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우습게 보지 마라.”
라온이 오크들을 보며 눈매를 좁혔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버렌이 오크를 다시 보고도 알아차리지 못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평범한 오크가 아니야.”
오크의 외형은 외부에 있는 놈들과 같지만, 눈빛과 기운이 다르다. 평범한 오크가 아니었다.
거기다 놈들의 피부에는 더운 피가 뿌려져 있었다. 이미 다른 무인들을 죽이고 이쪽으로 온 것 같았다.
“직접 겪어 보면 알겠지. 크레인.”
“예!”
고유 크레인은 지시를 받자마자 보법을 밟고 나아갔다. 단숨에 오크 무리 속으로 파고들어 검을 내리쳤다.
치이이잉!
오러가 흐르는 검날이 가장 앞에 선 오크를 베려는 찰나 가라앉아 있던 양날 도끼가 벼락처럼 솟구쳤다.
쩌어어엉!
크레인의 검은 오크의 도끼에 막힌 채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뭐야….”
“투기?”
마르타가 오크의 도끼에 차올라 있는 붉은 투기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평범한 오크가 어떻게 투기를?”
그녀는 믿을 수가 없다는 듯 헛바람을 흘렸다.
후우우웅!
마르타의 놀람만큼이나 전투는 급박하게 진행되었다.
오크가 힘으로 크레인을 밀어내고 도끼를 내리쳐왔다.
“칫!”
크레인이 눈쌀을 찌푸린 채 검에 오러를 집중시켰다. 칼날 위로 연한 빛이 타오르며 양날 도끼와 오크의 목이 동시에 갈라졌다.
“대주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이놈들 보통 오크가 아니에요! 미약하지만 투기를 쓸 수 있습니다!”
그는 검을 쥐고 있는 손을 다잡으며 숨을 골랐다.
캬아아아아아!
오크들은 동료의 죽음에 흥분한 듯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움직이는 속도도 평범한 오크와 격이 달랐다. 오크 중에서 가장 강하다는 블랙 스킨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교육용으로 나쁘지는 않겠군.’
라온은 오크들을 향해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사람을 죽인 놈들이다. 모조리 베어라.”
“예!”
광풍대는 크레인과 오크의 전투를 직접 눈으로 보았기에 처음부터 검기를 일으켰다.
오크들 하나하나는 강했지만, 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성장한 광풍대의 상대는 아니었다.
검사들은 오크들을 투기 째로 갈라버리며 숲을 푸른 피부의 시체로 가득 채웠다.
“허어.”
리스른은 정말 폭풍처럼 나아가는 광풍대를 보며 헛바람을 흘렸다.
‘어떻게 죄다 익스퍼트 최상급이지?’
광풍대의 나이는 20대 극초반이다. 저 어린 검사들 모두가 익스퍼트 최상급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뭐가 이래?’
라온 같은 한 명의 천재는 나올 수 있지만, 저들 모두가 마스터 직전의 수준까지 오른 영재라는 점이 더 놀라웠다.
“이쪽은 거의 다 끝났… 크윽!”
크레인이 눈앞에 있던 오크 투사를 베어버리고 좌측으로 움직이다가 신음을 흘렸다. 그는 오른 다리를 절며 뒤로 물러섰다.
“으윽!”
“뭐, 뭐야!”
다른 광풍대 검사들도 크레인과 비슷한 시기에 비명을 질렀다.
“무슨 일이지?”
라온이 한걸음에 크레인에게 다가갔다.
“더, 덫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발을 들어봐.”
그의 말대로 덫을 밟은 듯 오른쪽 부츠 바닥에 구멍이 뚫렸고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오크의 덫인가?’
조금 전 크레인이 서 있던 잡초 사이에 검은 바늘이 박힌 덫이 놓여 있었다.
그런데 크레인의 피를 제외하고도 보라색을 띤 액체가 바늘에 발려 있었다.
“독인가?”
“도, 독이요? 저 죽는 거예요?”
“오크의 독은 그리 강하지 않아. 오러로 밀어낼 수 있을 거다.”
“하아, 다행이네요.”
“하지만 이건 오크 독 같지가 않은데?”
“아악! 어느 쪽이에요!”
기겁하는 크레인을 놔두고 손가락으로 독을 떼어내서 입에 넣었다.
“대, 대주!”
“뭐 하는 거야!”
“라온!”
버렌과 마르타, 루난이 동시에 달려왔다. 마르타와 루난은 존댓말을 하겠다는 맹세도 잊은 듯 말을 놓고 소리를 질렀다.
“걱정마. 버틸 수 있으니까.”
불의 고리 덕분에 육체 자체에도 독에 대한 저항이 강하지만, 특성으로도 독 저항력이 있다.
아무리 강한 독이라고 해도 배출할 수 있기에 무슨 독인지 알기 위해서는 직접 먹어보는 게 가장 좋았다.
‘장기에는 영향을 주지 않고, 근육과 육체 그리고 단전에 자극이 있군.’
예상대로 보라색 독은 오크들이 사용하는 마비독이 아니었다.
‘벨라의 꽃.’
전생에 가끔 썼던 독초다. 강하지는 않지만, 빠르게 체력을 빼앗고, 오러의 소모를 가속시키는 형태의 독이었다. 목표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기 위해서 사용했다.
“벨라의 꽃을 이용한 독이다.”
“베, 벨라의 꽃?
리스른은 암살자답게 먼저 반응했다.
“그, 그게 뭔데요?”
크레인이 기겁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강한 독은 아니지만, 체력을 빠르게 빼앗는 독입니다. 치료하기 꽤 귀찮죠.”
“후우 그나마 다행이네요….”
“그렇게 좋아할 일이 아닙니다. 이 독은 오러로 밀어낼 수 없으니까요. 여기에 해독제가 있을 리가 없는데….”
그는 상황이 어렵게 되었다며 고개를 저었다.
“도리안.”
라온이 안색을 굳히고 있는 도리안에게 손짓했다.
“혹시 펠렌의 꽃과 로세렌의 잎 있어?”
“당연히 있죠.”
도리안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배 주머니에서 꽃과 줄기를 여러 개 꺼내들었다.
“필수품이잖아요.”
“…….”
이제 필수품이 아닌 게 뭔지 헷갈리지만 일단 받았다. 약초용 절구로 두 재료를 빻은 후 크레인과 부상을 입은 검사들의 발에 발라주었다.
“어?”
“토, 통증도 줄고, 손의 떨림도 멈췄어요.”
검사들은 다시 움직일 수 있겠다며 주먹을 말아쥐었다.
치료가 모두 끝났을 무렵 다시 몬스터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오크만이 아니라, 중대형 몬스터들도 끼어 있었다.
“몬스터만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돼. 이 공간과 싸운다고 생각해라.”
“예!”
광풍대는 칼날처럼 예리한 기합을 내지르고서 몬스터들을 향해 뛰어들었다.
라온은 몬스터들의 뒤편에 쌓여 있는 무인들의 시체를 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도검존.’
당신이 원하는 건 대체 뭐지?
* * *
“저 저, 괴물들은 뭐냐….”
“지그하르트의 광풍대….”
“그걸 누가 몰라서 물어? 아무리 지그하르트라고 해도 20대 초반이잖아. 어떻게 다 익스퍼트 최상급에 있는 건데!”
“몬스터의 수준도 높은데, 저 꼬마들이 더 높아 보여.”
“무력은 그렇다치고 지치지도 않네. 저쪽이 몬스터 같을 정도야….”
숲 이곳저곳에 주저앉은 무인들은 오크와 트롤 무리를 학살하는 광풍대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허어….”
리스른 역시 순식간에 몬스터들를 시체로 만드는 광풍대의 등을 살피며 헛바람을 흘렸다.
‘말 그대로 괴물이로군.’
이곳은 작은 지옥이었다. 며칠 째 밤이 지속되고 있고, 자신들의 위치도 정확히 모르며, 강화된 몬스터들이 끝도 없이 나타난다.
중간중간 덫과 함정까지 있어서 신경을 쓸 일이 너무도 많았다.
아무리 숙련된 무인이나, 암살자라고 해도 지쳐서 빌빌거릴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실제로 자신을 비롯한 암시장의 요원들도 체력이 빠져서 반쯤 눈을 감고 있었다.
하지만 광풍대는 달랐다.
지금 막 전투를 시작한 것처럼 생기를 두른 채 몬스터를 베고, 함정을 깨부쉈다.
저건 20대 초반 무인이 보일 수 있는 정신력이 아니었다.
실제로 이동하면서 꽤 많은 무인이나 마법사들을 만났다.
광풍대보다 더 많은 인원, 더 많은 경험을 치른 세력들도 있었는데, 그들 모두의 안색에는 그늘이 차 있었다.
이동을 포기하고 제자리에서 휴식만 취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다만 광풍대는 뿌리 깊은 나무처럼 흔들리지 않고 계속 앞으로만 나아갔다. 이제는 감탄을 넘어 저들이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리스른이 후미에서 이동하는 광풍대 검사에게 다가갔다. 도리안이라는 이름의 검사인데, 식사 때는 식탁과 화덕을 꺼내고, 잘 때는 천막을 꺼내는 기괴한 인물이었다.
“저기.”
“네?”
도리안이 방긋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괜찮은 겁니까?”
“뭐가요?”
그는 무엇을 물어보는지도 모르는 듯 고개를 저었다.
“며칠째 이 어둠에서 싸우고 있는데, 힘들지 않은 겁니까?”
“당연히 힘들죠.”
도리안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것보다 더 힘든 일을 겪었으니까요.”
“더 힘든 일?”
“네. 여기 오기 전에 대주님한테 3주간 특별 훈련을 겪었거든요. 그건….”
“지옥이었지.”
크레인이 도리안의 말을 대신 받았다.
“맞아. 그 3주에 비하면 여기는 천국이야.”
버렌도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야기는 꺼내지도 마. 손 떨리니까.”
마르타는 아예 말을 하지 말라며 입술을 씹었다.
“으으….”
언제라도 맹한 눈을 보이는 루난조차 머리를 부여잡았다.
“대, 대체 무슨 일을 겪었길래….”
“3주 동안 하루에 한 시간도 못 자면서 싸워댔거든요. 대주님이나 조장님만이 아니라, 다른 대원들하고도 만나면 싸워야 해서 정말 죽을 뻔했어요.”
크레인이 깊은숨을 내뱉으며 그간의 수련을 설명해주었다.
“떠올리기도 싫어….”
도리안이 그때가 생각난 듯 식은땀을 흘렸다.
“허….”
리스른이 눈을 끔벅이며 강장 앞에서 걷고 있는 라온을 바라보았다.
“저쪽 함정이다. 밟지 말도록.”
라온은 어두워서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함정을 연달아 가리켰다.
암살자로 살아온 자신도 제대로 발견하기 힘든 어둠 속 함정을 정확히 짚다니, 저건 무학의 천재라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진짜 괴물이로군.’
무력이 강한 건 당연히 알았지만, 독과 함정, 진법에도 조예가 깊으며 수하를 잘 키우는 능력까지 있을 줄은 몰랐다. 무엇 하나 부족함이 보이질 않았다.
리스른은 흔들리지 않는 라온의 등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지부장이 진짜 보석을 발견했군….’
* * *
라온은 지금까지 보았던 나무 중 가장 큰 느티나무를 보며 미간을 가늘게 좁혔다.
‘저건….’
도검존의 무덤에 들어온 온 후 스스로 빛을 내는 장소는 처음이었다. 바보라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확실한 표식이었다.
“출구인 듯합니다!”
뒤에 있던 크레인이 빛나는 땅을 보며 비명 같은 소리를 질렀다.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았지만, 나흘이 지나며 지쳤던 것 같았다.
“아쉽지만 출구는 아니야.”
라온이 빛나는 땅을 향해 시선을 고정하며 고개를 저었다.
“고작 이 정도 시련을 주려고 여길 만들었을 리가 없으니까.”
몬스터는 강했고, 함정과 덫은 다양했다. 체력과 정신력은 많이 빼앗겼지만, 고수에게 큰 피해를 줄 정도는 아니었다.
어중이떠중이를 가리는 차단막 정도라고만 생각되었기에 빛이 솟구치는 구멍은 출구가 아니라, 다음 층으로 내려가는 입구일 것이다.
“다음 층이겠지.”
버렌도 같은 생각을 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먼저 가보지.”
라온이 광풍대를 뒤로 물리고 빛나는 땅을 살폈다. 도검존의 무덤에 들어올 때와 비슷한 형태의 구멍이었다.
다만 외부에서 봤을 때와 달리 직사각형 형태의 마감에서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거지….’
눈매를 좁힌 채 구멍을 살피는데, 하얀 구멍 안쪽에서 황금빛 불길이 치솟았다.
라온은 시야가 금색 불꽃으로 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땅을 짚은 손을 떨었다.
‘또?’
아니, 이 사람은 왜 안 간 곳이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