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627화 (626/653)
  • 제627화

    “아….”

    목을 잃은 불란트의 시체가 바싹 마른 장작처럼 툭 쓰러졌다.

    “어…?”

    “으아아악!”

    “다, 단주님!”

    “아, 안 돼….”

    흑적단은 불란트의 시체를 보며 비명과 괴성을 질렀다.

    “광풍대.”

    라온이 뒤에서 대기하는 광풍대와 시선을 맞췄다.

    “모조리 죽여라.”

    이곳에 있는 마적들은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을 학살한 후 불태우려고 한 인간 말종들이다. 살려둘 가치가 없었다.

    “명을 받듭니다.”

    광풍대는 5 연무장에 있을 때와는 인격이 달라진 것처럼 냉랭한 눈동자를 드러내며 흑적단을 향해 검날을 세웠다.

    촤아아악!

    수많은 실전을 겪으며 한 사람의 무인으로서 완성이 된 광풍대의 검은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마적단의 목을 갈랐다.

    “사, 살려주십시오!”

    “당장 물러나겠습니다!”

    “그, 그만! 멈추라고!”

    흑적단이 살려달라고 외치며 무릎을 꿇었지만, 라온의 명령을 받은 광풍대의 검은 마지막 한 명의 마적을 벨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라온은 목이 떨어져 나간 마적 두목의 시체를 넘어 복부에서 피를 토해내는 노인에게 다가갔다.

    ‘지독한 상처야.’

    상처가 큰 것도 문제지만, 체력이 약한 노인이었고, 출혈도 너무 심해서 단순히 신성력을 퍼붓는 것만으로는 치료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다만 이 노인은 마적들의 위협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마을을 구하려고 한 의인었기에 살리고 싶었다.

    우우우웅!

    어둠에서 피어난 신성을 일으켜 손아귀에 응집시켰다.

    스란 부족의 일을 겪으며 얻은 깨달음을 이용하여 신성력을 바늘과 실의 형태로 다듬었다.

    “거, 검사님!”

    “제발 촌장님을 살려주세요!”

    “부탁드리겠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본인들이 칼에 찔리고, 다친 상태에서도 먼저 촌장을 살려달라며 무릎을 꿇었다. 촌장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라온이 불의 고리를 공명시켰다. 초상승의 영역에 들어설 때처럼 집중력을 끌어 올렸다.

    신성력을 밀어 넣어, 죽은 피를 제거하고 장기를 살피는데, 혈관이 모두 터진 듯 신성력으로도 막기 힘든 출혈이 계속되었다.

    ‘젠장. 출혈부터 막아야 하는데….’

    찢어진 혈관이 너무 많아.

    나름 의술을 배웠지만, 이 수준의 장기 손상을 치유하는 건 처음이었기에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제가 보지요.”

    미간을 찌푸린 채 신성력만을 소모하고 있을 때 마르타가 옆으로 다가왔다.

    “이쪽입니다.”

    그녀는 성수를 뿌린 손을 촌장의 복부에 넣어서 출혈이 심하게 터진 부위를 직접 찾아냈다.

    “이 혈관부터 연결하세요. 다른 곳은 아직 여유가 있어요.”

    “알겠어.”

    라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르타를 믿고, 신성력으로 다듬은 바늘과 실을 이용하여 촌장의 혈관을 이었다.

    그녀의 말대로 첫 번째 혈관을 잡자, 출혈이 확연히 줄어들어서 다른 장기들을 살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남은 신성력을 이용하여 장기의 상처를 막고 살을 채워 넣었다.

    “으….”

    곧 죽을 것처럼 창백했던 촌장의 얼굴에 천천히 혈색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가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내, 내가….”

    “촌장님!”

    “아아!”

    마을 사람들은 흐느끼면서 눈을 뜬 촌장에게 달려갔다.

    “내가 죽은 게 아니었나?”

    “이 검사분들이 구해주셨습니다!”

    “지그하르트에서 나오신 것 같아요.”

    “그런….”

    촌장은 마을 사람들의 말을 듣자마자, 몸을 일으키려는 듯 팔다리를 버둥거렸다.

    “아직 안정을 취해야 합니다.”

    라온이 촌장의 어깨를 눌러서 다시 바닥에 눕혔다.

    “으음….”

    촌장은 흔들리는 눈빛만으로 허리를 굽히는 것보다 더 깊은 감정이 섞인 감사 인사를 해왔다.

    “저, 저희 마을을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본인의 목숨보다 마을 사람을 구해준 것을 더 고맙게 여기고 있었다. 생각했던 대로의 사람이었다.

    “저희는 지그하르트 소속도 아닌데….”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촌장의 말대로 이 마을은 지그하르트의 영역에서 벗어난 곳이다. 다만 그게 이들을 구해주지 않을 이유는 되지 않는다.

    일이 급하다고, 눈앞에서 죄없이 죽어가는 이들을 방관한다면 데루스 로베르트와 다를 게 없었다.

    “혹시 모르니, 이번 일이 끝날 때까지는 지그하르트의 영역 안쪽에 머무세요. 바로 위쪽에 저희의 보호를 받는 마을이 있으니, 길을 찾기 어렵지 않을 겁니다.”

    “저, 정말 괜찮습니까? 저희는 지그하르트에 해드린 게 없는데.”

    “신경 쓰지 마세요.”

    라온이 연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저었다.

    “아, 뭐, 뭐라도 드리고 싶지만, 전부 타버려서….”

    촌장이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그는 재만 남은 사과나무들을 보며 입술을 씹었다.

    “그럼 나중에 숲을 되살린 후 사과를 보내주십시오.”

    라온이 촌장의 복부에 약을 발라주고서 고개를 저었다.

    “그거면 충분합니다.”

    “아….”

    촌장은 사과만을 원할 줄은 몰랐는지 눈을 부릅뜬 채 말을 잇지 못했다.

    “도리안.”

    라온이 뒤에서 정리를 끝낸 도리안에게 손짓했다.

    “옙!”

    도리안이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이분들을 시몬 마을로 안내해드리도록.”

    “알겠습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고서 조심스럽게 촌장을 업었다.

    “귀한 물건만 챙겨서 절 따라오세요!”

    도리안은 타버린 물건 중에서도 쓸만한 것들을 배 주머니에 넣은 뒤 마을 사람들과 북쪽으로 올라갔다.

    라온은 도리안을 따라가는 마을 사람들을 지켜보다가 뒤를 돌았다. 본인의 손을 보는 마르타에게 다가가 고개를 까딱였다.

    “고마워. 덕분에 살릴 수 있었어.”

    “아닙니다.”

    마르타는 피에 젖은 손을 내리며 담담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본인이 했던 말을 지키려는 듯 둘만 있음에도 말을 놓지 않았다.

    “계속 의술을 공부했던 건가?”

    “시간이 날 때 성자님을 찾아가 조금씩 배웠습니다.”

    그녀는 오르고스 습격 이후 모두의 부상을 고치고 싶다는 말이 진짜인듯 지금까지 계속 의술을 공부했던 것 같았다.

    “사람을 죽이던 손으로, 사람을 살리는 건 참 묘한 기분을 들게 하는군요.”

    마르타는 한참 동안 본인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굳은 입가가 가늘게 풀리는 것처럼 보였다.

    -크으!

    라스가 소고기를 한 껏 씹어먹은 듯한 탄성을 흘렸다.

    -역시 소고기 소녀이니라! 본왕의 수하가 될 자격이 있느니라!

    녀석은 마르타의 정신적인 성장이 마음에 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쟤는 네 존재도 몰라.’

    -상관없느니라! 진정한 왕은 수하의 성장을 지켜볼 뿐이니까.

    라스는 오랜만에 마왕다운 말을 하고서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후우웅!

    살랑거리는 라스의 꼬리를 보며 피식 웃을 때 뒤편에서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대주님.”

    마크 괴튼이 들소처럼 거친 걸음으로 다가와 부복했다. 그와 함께 온 광풍대 검사들도 고개를 숙였다.

    “암시장의 정보대로 쿠벤 마을을 점거하던 무인들이 있었습니다. 전부 처리한 후 복귀했습니다.”

    “고생했습니다.”

    라온이 마크 괴튼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도 끝났다.”

    이번에는 리메르가 북동쪽에서 걸어 내려왔다. 그는 지쳤다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아오, 약한 놈들이 왜 이렇게 끈질긴지 모르겠어.”

    “고생하셨어요.”

    라온이 터덜터덜 걷는 리메르를 보며 은은한 미소를 그렸다.

    ‘이제 다 끝났군.’

    데닝로즈에게 가장 먼저 요청했던 정보는 귀마검주의 위치가 아니라, 지그하르트 영역 근처에서 욕망에 눈이 먼 무인들에게 피해를 입은 마을의 위치였다.

    광풍대의 임무는 도검존의 무덤이 아니라, 영지 순찰과 보호였고, 평범한 사람들이 보물에 눈이 먼 무인들에게 죽어가는 모습을 너무도 많이 봐왔기에 이 문제부터 해결하고 싶었다.

    “지금까지 다섯 마을을 구했으니, 다 처리한 건가?”

    버렌이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고 옆으로 다가왔다.

    “암시장의 정보가 정확하다면 그게 맞겠지.”

    마르타가 담담한 눈빛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

    루난이 그런 마르타를 맹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뭐야! 할 말 있으면 해!”

    마르타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차갑지만 따뜻한 치료 감사.”

    루난이 마르타를 보며 두 손을 모았다.

    “다정한 나찰녀.”

    “닥쳐! 이것아!”

    마르타는 언제 침착한 모습을 보였냐는 듯 루난에게 달려들었다.

    치이익!

    두 사람이 부딪치려는 순간 바닥의 그림자에서 회색 로브를 두른 남자가 일어났다.

    “광풍대주를 뵙습니다.”

    그는 가슴에 손을 얹은 채 허리를 굽혔다. 암시장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전해주는 데닝로즈의 직속 요원이었다.

    “피해를 입고 있는 다른 마을은 없습니까?”

    “예. 무인들이 귀마검주를 따라 서쪽으로 이동하여 더이상 사고가 생긴 마을은 없습니다.”

    요원은 광풍대 덕분에 다 정리가 되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라온이 뒤를 돌았다. 서늘한 눈동자를 드러낸 광풍대를 보며 턱짓했다.

    “이제부터가 진짜다. 준비는 됐겠지?”

    “예!”

    광풍대는 높지도, 낮지도 않게 읊조렸다. 자신감과 긴장감이 적절하게 어린 눈빛을 마주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

    라온은 미소를 지은 채 제천검의 검병을 매만졌다. 서쪽에서 전해져오는 살의와 욕망의 기류를 느끼며 입매를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귀마검주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주세요.”

    *     *      *

    라온과 광풍대는 암시장의 요원을 따라 서쪽으로 이동했다.

    지그하르트와 발카르의 영역을 떠나 숲과 사막이 뒤섞인 기이한 지형에 도착했을 때 눈앞이 사람이라는 벽으로 가득 차 있었다.

    “뭐가 이렇게 많아.”

    마르타는 인파에 질린 것처럼 미간을 구겼다.

    “어중이떠중이라고 해도 인원이 압도적이군.”

    버렌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 있을 줄은 몰랐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으함.”

    루난은 별 관심이 없다는 듯 짧게 하품했다.

    라온은 사막 안쪽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멈춰 선 이들을 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누군가 길을 막고 있군.’

    사막 앞에서 기회를 엿보는 무인과 마법사 중에 특별한 강자는 없었다.

    진짜 고수는 실력을 감춘 채 숲과 사막의 구석에서 눈동자를 굴리고 있는 것 같았다.

    ‘반면에….’

    이들의 길을 막고 있는 놈들은 고수야.

    이 인파가 사막으로 나가지 못하는 건 질서가 없어서가 아니라, 앞에서 길을 막고 있는 놈들이 있어서였다.

    이 정도 인원을 막고 있는 것을 보니, 상당한 강자인 것 같았다.

    “쯧쯧. 아주 욕심들이 그득하구만.”

    리메르가 어떻게든 안쪽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보며 혀를 찼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욕심을 버리는 것이거늘.”

    그의 중얼거림에 라온과 광풍대가 동시에 뒤를 돌았다.

    -저 귀때기 무슨 개소리냐?

    ‘몰라.’

    라스까지 무슨 헛소리를 하냐는 듯한 멍한 눈동자를 드러냈다.

    “왜? 맞는 말이잖아!”

    “그 말을 부대주가 하지 않았다면 맞았겠지.”

    마르타가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라온이 픽 웃을 때 가벼운 바람과 함께 두건을 쓴 중년인이 내려섰다.

    “라온 님.”

    “리스른 님이시군요.”

    스란 부족까지 안내를 해주었던 암시장의 요원 리스른이었다. 귀마검주를 추적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이곳까지 따라온 것 같았다.

    “모습을 바꿨는데, 알아보시는군요.”

    리스른이 두건을 벗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기척이 같으니까요.”

    “하, 라온 님 앞에서는 기운을 감추고, 변장을 해도 의미가 없겠군요.”

    그가 고개를 젓고서 한 발 앞으로 다가왔다.

    “회포를 풀 시간도 없으니, 바로 상황 설명부터 드리겠습니다.”

    리스른은 암시장이 아니라, 지그하르트 소속이 된 것처럼 정중함을 갖췄다.

    “저 인파 앞에서 길을 막고 있는 놈들은 성검련의 검사와 흑탑의 마인들입니다.”

    “흑탑?”

    “예. 층주인 설괴후의 수하들이죠.”

    “성검련과 흑탑이 손을 잡은 모양이군요.”

    이전에 성검련주가 신주오령을 습격할 때 흑탑은 발카르를 습격한 적이 있었다. 둘은 여전히 동맹 수준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 같았다.

    “그런 것 같습니다.”

    리스른이 본인의 생각도 비슷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귀마검주와 설괴후는 어디에 있죠?”

    “사막 안쪽에서 지그하르트의 공검대주와 발카르의 뇌쇠 바르필과 전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싸우면서 도검존의 무덤을 찾는 것처럼 보이더군요.”

    그는 이 주변을 모두 지켜보고 있던 것처럼 바로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지금 길을 막고 있는 놈들 중에 강자는 귀마검대의 부검주 루시튼과 부층주 벨루리안입니다. 두 괴물의 막강한 무력 때문에 저들이 아예 사막에 발도 디디지 못하고 있죠.”

    리스른이 길이 막혀서 머뭇거리는 사람들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숨어 있는 고수들도 꽤 많아 보이는데요.”

    “예. 다만 저들은 무덤이 발견될 때까지는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리스른도 이곳저곳에 숨은 기인들의 존재를 알아차린 듯 입맛을 다셨다.

    “어쩌시겠습니까?”

    그는 라온이 움직이는 대로 따르겠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라온이 뒤를 돌아보았다. 광풍대는 어떤 명령이든 따르겠다는 듯 잔잔한 시선을 비추고 있었다.

    ‘예전이라면 다른 사람들처럼 숨었겠지.’

    전생의 삶이었다면 다른 이들처럼 몸을 숨긴 채 기회를 엿보았겠지만,

    현생에서는 광풍대주 라온 지그하르트라는 이름을 얻었다. 더는 숨을 필요가 없었다.

    새롭게 검을 두드린 광풍대의 이름을 알리기에 무엇보다도 좋은 때였다.

    “길을 뚫는다.”

    라온은 그 말을 남기며 먼저 앞으로 향했다.

    저벅.

    대지를 묵직하게 짓누르는 걸음과 그 아래여서 이글거리며 피어나는 강대한 기파에 앞만을 바라보고 있던 무인들이 자연스럽게 뒤를 돌아보며 물러섰다.

    “아….”

    “뭐, 뭐야….”

    “왜, 왜 이렇게 밀어!”

    무인들은 서로 부대끼고 부딪치면서도 길을 열었다. 스스로도 왜 물러나는지도 모르는 듯한 표정이었다.

    “어? 저건….”

    “지그하르트의 문양?”

    “금발적안이라면 설마!”

    “맞아. 라, 라온 지그하르트다.”

    “광견. 아니, 광풍대다!”

    무인들은 라온과 광풍대를 알아보고 마른침을 삼키며 뒷걸음질 쳤다.

    썰물처럼 빠진 인해를 넘어가자, 얇은 검을 든 중년의 검사와 눈 밑이 시꺼멓게 물든 여성이 보였다.

    “음?”

    “저건….”

    두 사람도 라온과 광풍대를 알아차린 듯 눈매를 찌푸렸다.

    “라온 지그하르트. 용살자인가.”

    귀마검대의 부검주 루시튼이 라온을 보며 입술을 핥았다.

    “여기는 출입 금지인데.”

    벨루시안은 긴장한 듯 눈매를 좁히며 손가락을 풀었다.

    “…….”

    라온은 두 사람의 말을 무시하는 것처럼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놔둬 봐.”

    루시튼이 라온에게 달려들려던 벨루시안에게 손을 저었다.

    “사실 좀 궁금했거든.”

    그가 묘한 눈빛을 드러내며 고개를 틀었다.

    “저놈이 정말 강한지 말이야.”

    “그게 무슨 말이지? 용살자라고!”

    벨루시안이 루시튼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생각해봐. 저놈이 클라우드를 죽였을 때 그곳에는 아리스 지그하르트가 있었고, 광룡을 베었을 때도 그 괴물이 옆에서 대기했지.”

    “어? 그럼….”

    “그래. 아리스 지그하르트가 저놈에게 공적을 몰아준 거야. 21살에 그 무력이 말이 되겠냐고.”

    루시튼은 라온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듯 입가에 비웃음을 그렸다.

    “저놈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해.”

    “확실히….”

    벨루시안도 루시튼의 말에 신뢰를 가진 듯 입가에 미소를 피워냈다.

    “그래서 어쩌자는 거지?”

    라온이 루시튼과 벨루시안의 앞에 서서 걸음을 멈췄다.

    요즘 저런 소문이 도는 건 사실이었다. 새롭게 다듬은 광풍대를 위해서라도 이곳에서 확실히 무위를 드러내야 했다.

    “어쩌기는! 네놈의 헛소문을 여기서 끊어준다는 거지! 네놈이 날 꺾는다면 죽어서라도 네 소문을 퍼뜨려주마!”

    루시튼은 승리를 확신한 듯 사나운 기파를 일으키며 달려들었다.

    그의 얇은 칼날이 은은하게 번쩍임과 동시에 공간을 꿰뚫은 것처럼 목젖으로 향해 쇄도해왔다.

    치이잉!

    벨루시안은 그와 합을 맞춘 듯 좌측으로 짓쳐 들어 검은 기운이 타오르는 손톱을 들이밀었다.

    둘이 함께 싸운 게 처음이 아닌 듯 서로의 공세가 거친 조화를 이뤘다.

    라온이 천천히 손을 내려 제천검의 검병을 쥐었다. 산보라도 나가는 듯 가볍게 왼발을 뻗으며 검을 들었다.

    치이이이잉!

    푸른 바람을 일으키며 솟구친 검극이 벨루시안의 마기와 루시튼의 검격 사이에 청아한 빛을 그렸다.

    쩌어어어억!

    루시튼의 검과 벨루시안의 손톱이 동시에 갈라지고, 두 사람의 목에 붉은 선이 그려졌다.

    투욱.

    한 호흡을 내쉬고도 전에 루시튼과 벨루시안의 목이 떨어졌다.

    현실을 벗어난 듯한 유려한 궤적을 그린 제천검이 아련한 빛과 함께 가라앉았다.

    “소문을 내줄 필요는 없다.”

    라온은 두 사람의 시체를 넘으며 제천검에 묻은 핏방울을 털어냈다.

    “싸구려 주둥이에서 나오는 건 싸구려 소문일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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