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624화 (623/653)

제624화

라온은 회식이 끝나기 전에 별관으로 돌아왔다.

광풍대와 끝까지 회식을 즐기고 싶었지만, 거지꼴로 간부 회의에 참여할 수는 없기에 일찍 빠져나와서 샤워를 마쳤다.

정갈하게 다려진 제복을 걸치고 있을 때 라스가 개구리처럼 폴짝 뛰어올랐다.

-이 거짓말쟁이 놈아! 본왕은 아직 만족하지 못했느니라!

라스는 회식을 충분히 즐기지 못한 게 아쉽다는 듯 주먹을 휘둘렀다.

‘어쩔 수 없잖아.’

라온은 달려드는 라스를 밀어내며 고개를 저었다.

‘회의가 있는데 거기서 주구장창 시간을 보낼 수는 없어. 그리고 음식은 충분히 먹어줬잖아.’

라스가 이렇게 난동을 부릴까 봐. 뷔페에 있는 음식을 모두 먹어줬는데, 왜 날뛰는 건지 모르겠다.

-음식이 다가 아니니라. 수하들이 그곳에 있으니, 본왕도 회식에 끝까지 남아야 하느니라!

녀석은 왕으로서 항상 수하들의 곁에 남아 있어야 한다며 손을 휘저었다. 지금 보니 음식을 다 먹지 못한 것보다 그 자리에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한 게 아쉬운 것 같았다.

‘단순한 식충이인 줄 알았는데. 아니, 식충이는 맞지.’

라스는 항상 수하에게는 진심을 보였는데, 이번에는 회식 시간을 소중히 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

‘다음에 다시 자리를 만들어 볼게.’

나도 조금은 아쉽기에 다음에 새롭게 회식을 열자고 말하며 달라붙는 라스를 쳐냈다.

제복의 허리춤에 제천검을 걸치고서 방을 나섰다. 현관으로 나가려는데, 실비아와 시녀들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왜 여기에 계세요?”

“첫 간부 회의에 나가는 거잖아. 응원해주려고 기다리고 있었어.”

실비아가 다가와서 조금 구겨진 깃을 펴주었다.

“그걸 어떻게….”

“비연회에 제 친구가 있거든요! 걔한테 들었죠!”

엔시아가 브이 자로 만든 손을 눈에 가져다 대며 싱긋 웃었다.

“아….”

또 당신이야?

요즘 실비아나 시녀들이 내 정보를 너무 잘 파악하고 있어서 신기하다고 생각했는데, 전부 다 저 사람의 능력이었다. 역시나 멀린에게도 밀리지 않는 괴짜다웠다.

“준비는 잘 했니? 원탁에서는 널 인정하는 대주들도 조금 달라질 텐데….”

“달라진다는 게 무슨 뜻이죠?”

“원탁 회의는 작은 전쟁터야. 더 좋은 실적을 쌓을 수 있는 임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임무 혹은 편한 임무를 얻기 위해서 간부들끼리 논쟁을 벌이고, 대련까지 이뤄지거든.”

실비아는 간부 회의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텃세가 있겠지만, 지그하르트라는 곳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을 테니, 배운다고 생각하고 다녀오렴.”

“잘 알고 계시네요.”

“직계일 때 견학은 해봤거든.”

실비아가 옅게 웃었다.

“아, 내가 걱정할 필요는 없었네. 이번에는 리메르님이 함께 가실 테니까.”

“아뇨.”

라온이 담담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 인간. 술 취해서 자요.”

리메르는 본인이 다 먹고 죽겠다면서 뷔페에 차려진 술을 모조리 비우고 기절했다. 지금쯤이면 숙소에서 퍼질러 자고 있을 것이다.

“어, 음….”

실비아가 멍하니 눈을 끔벅이다가 입술을 꼭 모았다.

“라온 님이라면 잘하실 수 있을 거예요!”

엔시아는 다 괜찮을 거라며 웃었다.

“히, 힘내세요.”

시얀은 여전히 말을 더듬었지만, 예전보다는 확실히 목소리에 힘이 붙었다. 라온 전기가 잘 진행되고 있는 모양이다.

“…….”

주디엘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는데, 가라앉은 눈빛에서 잘하고 올 거라는 믿음이 보였다.

“갔다올게.”

라온은 모두에게 손을 젓고서 본관으로 향했다. 간부 회의장 혹은 원탁 회의장이라 불리는 원형의 건물로 걸어가 문 앞에 섰다.

“광풍대주님을 뵙습니다.”

회의장 문 앞에서 대기하던 두 명의 검사가 검에 손을 얹은 채 목례를 취했다.

“들어가십시오.”

검사들은 고개를 들어 올리며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문을 열어주었다.

라온은 검사들에게 눈인사를 보내고, 회의장 안으로 들어갔다.

짧은 복도를 걸어가자, 은은한 빛이 차오르며 수십 명의 사람이 앉아도 자리가 남을 듯한 거대한 원탁이 눈에 들어왔다.

원탁의 색은 그림자를 두른 듯 검게 물들어 있었는데, 달빛이 어우러진 은색 벽과 대조되는 기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원탁에는 이미 몇몇 간부들이 앉아 있었는데, 중간쯤에 앉아 있는 중년인이 빠르게 일어나서 손을 흔들었다.

“라온!”

짧게 자른 금발만큼이나 시원한 성격을 지닌 철전대주 트레빈이었다. 그는 한걸음에 다가와 큼지막한 미소를 지었다.

“철전대주님.”

“이제야 너를 만나게 되는군.”

트레빈은 반갑다고 말하며 어깨를 잡았다.

“얼마 전에도 뵈었지 않습니까.”

오랜만인 것처럼 말하지만, 복귀 후 알현실에서 만났었고, 그전에는 광풍대와 합동 훈련도 했었다.

“이곳에서 말이다.”

그가 검은 원탁을 가리켰다.

“이 원탁 회의에서 널 보고 싶었다.”

트레빈은 씩 웃으며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네가 여기에서 어떤 사고를 치는지 궁금했거든.”

그는 어깨를 잡은 채 검은 원탁의 끝으로 향했다.

“이쪽으로 와라. 광풍대주의 자리로 안내해주지.”

이 원탁은 간부마다 자리가 정해져 있는 것 같았다. 트레빈을 따라서 원탁의 우측 끝으로 향했다.

다만 이상하게도 다른 대주의 자리는 모두 안쪽에 위치해있는데, 광풍대주의 자리는 단보다도 낮은 끝에 배치되어 있었다.

“왜 광풍대만 따로 있는 거죠?”

“그건….”

“오질 않으니까.”

질문에 대한 설명은 트레빈이 아니라, 원탁의 안쪽에 앉아 있던 적발의 여인이 대신 해주었다.

햇살이 비치는 호수처럼 깊은 푸른 눈동자가 인상적인 공검대주 세레나였다.

세레나 역시 트레빈처럼 항상 호의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공검대주님.”

라온이 세레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인사는 됐어. 여긴 인사를 할 필요 없는 곳이니까.”

세레나는 편히 있으라며 손을 저었다.

“저, 그런데 오질 않는다는 게 무슨 뜻이죠?”

“말 그대로야. 너희 전대 대주가 도통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서 천검대주께서 끝자리에 박아넣었지.”

그녀는 원탁 회의장에서 리메르를 본 적이 거의 없다며 혀를 찼다.

“저 말이 맞아. 나도 리메르 님을 거의 뵌 적이 없어.”

철전대주도 여기서 리메르를 본 적은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군요.”

라온이 입술을 씹었다. 남에게 우리 대주의 일을 들었는데, 단번에 신뢰가 갔다.

‘이 망할 엘프가….’

리메르는 회의 때마다 좋은 임무를 물어오겠다며 연무장을 일찍 떠났었다. 지금 보니 그 시간 동안 도박장에 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럼 저희가 받은 임무는 어떻게 떨어진 거죠?”

“아무도 받지 않은 것들을 짬처리 당한 거지.”

세레나가 픽 웃었다.

“음….”

라온이 입술을 가늘게 씹었다.

‘어쩐지 임무가 죄다 구리다 했어.’

임무만 나갔다 하면 목숨이 위험했던 것을 생각해 보면, 남들이 안 가져가는 것들만 받아온 게 분명했다.

“후….”

라온이 한숨을 내쉬며 광풍대주의 자리에 앉았다. 먼지가 낀 명패를 닦으며 리메르를 더 골려주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어때? 대주가 된 기분은?”

세레나가 자리에 앉은 채로 한쪽 눈을 깜박였다.

“솔직히 말하면 별 느낌은 없습니다. 한참 전부터 제가 대주 역할을 하고 산 것 같아서요.”

솔직한 마음을 그대로 밝혔다.

“딱 예상한 그대로의 대답이네. 모범생 같아.”

세레나는 그럴 줄 알았다며 미소를 지었다.

“난 처음 너와 만났을 때부터 네가 대주라고 생각했다.”

트레빈이 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가요.”

라온이 옅은 미소를 그렸다. 처음으로 두 사람과 같은 위치에 서서 잡담을 나눴다.

*     *      *

글렌은 전망대라고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가주전의 최상층에 선 채로 팔짱을 꼈다. 그는 조금 전 회의장에 들어간 라온을 떠올리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미약하지만 성장했군.’

라온의 심상이 조금이지만 늘어난 게 느껴졌다. 무학의 해석본을 주며 조언해주었던 대로 새로운 것을 익히기보다 기존의 것들을 발전시킨 것 같았다.

라온이 3주 동안 광풍대만 신경을 쓰며 본인의 훈련을 소홀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저 아이는 수하들을 키우면서도 본인의 수련을 놓지 않았다.

‘아껴줄 수밖에 없는 아이로군.’

재능과 성격에 인내력까지 무엇 하나 버릴 게 없었다. 지그하르트 역사상 최고의 걸작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가주님.”

글렌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로엔이 옆으로 다가왔다.

“첫 원탁 회의라고 해도 너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곧 리메르 님도 오실 테니까요.”

“…그분은 기절하셔서 못 올 겁니다.”

비연회주 채드가 로엔을 보며 턱을 저었다.

“기절?”

글렌이 채드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훈련 중에 부상이라도 입은 건가?”

“그건 아닙니다. 광풍대주가 훈련을 끝낸 기념으로 회식을 열어줬는데, 거기서 술을 드시다가 기절했다고 하더군요.”

채드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리메르가 왜 기절했는지를 설명했다.

파지지직!

글렌은 리메르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손아귀에서 뇌전을 일으켰다. 리메르가 이곳에 있었다면 정말 재로 만들어버릴 강렬한 기파가 타올랐다.

“흐음….”

로엔이 입맛을 다시며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천검대주님도 안 계시니, 저라도….”

“아니, 그럴 필요 없다.”

글렌이 로엔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리메르는 없는 게 더 도움 될 테니까.”

그는 라온을 믿는 것처럼 필요없다고 중얼거렸다.

“그래도 알현실에서 보는 간부들과 원탁에서 보는 간부들은 다들 텐데….”

채드도 불안하다는 듯 눈썹을 내렸다.

“괜찮다.”

글렌이 뒤를 돌며 담담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는 미래를 보는 것처럼 가늘게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개를. 아니, 상어를 한 마리 풀어놨으니까.”

*     *      *

라온은 원탁에 자리를 잡은 간부들을 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전에 봤을 때와는 전혀 다르군.’

알현실에서 자주 보았던 사람들이었지만, 이곳에서 보니 기질이 전혀 달랐다.

글렌 지그하르트라는 초월자에게 짓눌려 있던 기세들이 들불처럼 일어나 서로를 잡아먹을 것처럼 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이게 지그하르트의 간부인가.’

단주도, 대주도 하나 같이 강렬한 기파와 혼이 깃든 눈빛을 지녔다.

나와 친분이 있든 없든 이런 무인들이 지그하르트에 속해 있다는 것에 자부심이 들 정도였다.

쿠웅!

라온이 만족스럽게 미소를 짓고 있을 때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기세가 출렁이며 회의장의 문이 열렸다.

묵직한 걸음과 함께 안으로 들어오는 건 발데르다. 원탁 회의는 간부 회의 혹은 대주 회의라 불린다.

전주는 거의 참가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는데, 의외로 발데르가 참여했다.

“발데르 님이?”

“진무전주께서 오시다니….”

“별 일이 다 있군.”

“그래도 광풍대주보다는 자주 오시지 않나?”

다른 간부들도 신기했던지 이곳저곳에서 술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흥.”

발데르는 구석에 앉아 있는 라온에게 콧방귀를 뀌고서 가장 안쪽의 자리에 가서 앉았다.

이번에는 기름을 칠한 듯 부드럽게 문이 열렸다.

다만 안으로 들어온 인물의 기세는 발데르에게 밀리지 않을 정도로 거대하면서도 정교했다. 실로 꿰맨 듯 완벽하게 짜인 기도를 지닌 데니어가 차분한 눈빛으로 걸어왔다.

데니어는 원탁의 간부들과 눈을 마주친 후 마지막으로 라온을 바라보았다. 그는 잘 왔다는 듯 잔잔한 미소를 보여준 후 발데르의 반대편 자리에 앉았다.

[현무전주도 가끔 오시는 겁니까?]

라온은 멀리 떨어진 트레빈에게 오러 메시지를 보냈다.

[아니.]

트레빈이 고개를 저었다.

[현무전주님은 임무 중이 아니라면 매번 원탁에 참여하셔. 임무 양보도 많이 해주셔서 간부들에게도 인기가 많지.]

그는 발데르와는 전혀 다르다며 웃었다.

라온은 가장 안쪽에 앉아 있는 두 전주를 바라보았다.

발데르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처럼 미간을 구겼고, 데니어는 평소와 다르지 않은 평온한 눈빛이었다.

두 사람의 무거운 기세에 다들 입을 다물고 있을 때 마지막으로 문이 열리고, 비연회주 채드가 안으로 들어왔다.

“제가 제일 늦었군요.”

채드는 실례했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그는 가장 안쪽으로 들어가 데니어와 발데르 사이에 서서 서류를 꺼내 들었다.

“시간이 되었으니,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채드가 첫 번째 서류를 펼치며 가볍게 고개를 까딱였다.

“먼저 대륙 정세부터 말씀드리죠. 이곳에 계신 간부들께서 노력해주신 덕분에 지그하르트의 영역 내에서는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외부의 사건을 해결해서 이름을 높인 경우가 많았죠.”

그의 시선이 서류를 넘어 라온에게 향했다.

“하지만 지그하르트의 영역이 평화롭다고 대륙 전체가 평탄하지는 않습니다.”

비연회주의 눈동자가 묘한 빛으로 일렁거렸다.

“에덴은 세이피아를 습격했고, 발카르와 흑탑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으며, 남북맹은 새로운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 가람 가문을 멸망시켰습니다. 백혈교 역시 카잔 신교를 먹어 치웠고, 성검련은 세상을 향한 진격을 시작했죠.”

그는 오마 전체의 동향을 조사한 듯 놈들의 행정을 상세하게 알고 있었다.

“물론 그것만이 아닙니다. 신주오령 역시 세밀하게 움직이고 있죠. 아리스 님의 세력이 가만히 있다고 쳐도 남은 넷 역시 무언가를 꾸미고 있습니다. 산불이 작은 불씨에서 시작하듯이 힘들다고 해도 무엇 하나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비연회주는 글렌의 앞에서 떨때와 다르게 냉철한 어조로 대륙 전체의 상황을 읊었다.

아예 사람이 바뀐 것 같았다. 역시나 쉽게 보아서는 안 될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그의 말이 이어졌다.

“다만 지금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건 육황오마도 신주오령도 아닙니다.”

“도검존인가.”

세레나가 짧게 입맛을 다셨다.

“맞습니다.”

비연회주가 세레나와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백 년 전 대륙 최강에 이름을 올리고 있던 도검존의 무덤 위치가 적힌 지도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현재 지도의 주인은 백사우라는 이명의 살수지요.”

그는 비연회의 정보력을 동원했는지 살수의 이명까지 알고 있었다.

라온이 그 이름을 들으며 미간을 구겼다.

‘백사우라….’

멀린이 말을 해주었을 때는 무령귀갱이라는 이름의 무인이 가지고 있었던 것 같은데, 수련하는 동안 그 주인이 바뀐 것 같았다.

“육황오마가 연달아 부딪치고 있고, 도검존의 무덤까지 드러났기에 현재 대륙은 화약고라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채드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임무에 나가시는 간부들께서는 항상 주의하시고, 수하들을 확실하게 통제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는 조언이자, 충고를 하고서 첫 번째 서류를 내렸다.

“그럼 지금부터 임무를 할당하겠습니다. 원하시는 임무가 있으신 간부는 거수해주시길 바랍니다.”

채드가 두 번째 서류를 들어 올렸다. 저 서류에 임무가 적혀 있는 것 같았다.

라온은 원탁의 분위기를 살피며 입맛을 다셨다.

‘이왕이면 도검존의 무덤을 보고 싶은데.’

채드가 도검존의 무덤을 먼저 이야기한 것을 보면 임무 중에 도검존의 무덤을 탐색하는 것도 끼어 있을 것이다. 다른 임무보다 얻을 게 많을 것 같아서 마음이 끌렸다.

“첫 번째 임무는 처음에 말씀드렸듯이 지그하르트 영지의 정찰입니다. 북해에서부터 북망산의 끝까지 탐색하는 루트로 혹여나 있을 이상 사태와 습격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하기에 보기와 달리 굉장히 중요한 임무입니다.”

채드가 목소리를 높이며 서류를 내렸다.

“정찰 임무를 원하시는 분은 거수해주십시오.”

그의 물음에 소수의 단주와 트레빈이 손을 들었다.

“흠, 그럼 이 임무는 철전대….”

“잠깐.”

채드가 트레빈을 고르려고 할 때 발데르가 손을 들었다.

“이런 사소한 일은 말이야. 보통 막내가 하는 게 맞지 않나?”

그는 조금 전 채드가 중요한 일이라고 말한 것을 벌써 잊은 듯 사소하다고 중얼거리며 이쪽을 바라보았다.

“막내라면….”

채드가 발데르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기 있잖나. 오늘 처음 원탁에 앉은 꼬맹이가.”

발데르가 대놓고 이쪽을 가리켰다. 시비를 걸려는 것 같은데, 수하를 통하지도 않고 직접 나서다니, 정말이지 일관된 인간이었다.

“이제 막 대주가 되었고 원탁 참여도 처음이지. 저럴 때는 선배들을 대신해서 잡스러운 임무를 맡아주는 게 맞잖아.”

그는 요즘 애들은 예의가 없다며 미간을 구겼다.

“으음….”

채드가 서류를 매만지며 미간을 구겼다. 발데르를 막기 위해서 머리를 굴리려는 것 같았다.

라온은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예상대로네.’

발데르는 기분대로 움직이는 짐승이나 다를 바가 없기에 분명 시비를 걸어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측대로였다.

“저도 간부 사이에 선후배가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라온이 발데르를 보며 가벼운 예를 취했다.

“허나 그 관계는 서로를 배려를 위한 것이지. 원치 않는 임무를 떠넘기기 위해서 존재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미간을 구긴 그를 향해서 정론을 내밀었다.

“수하들을 이끄는 무력대의 수장으로서 전력을 다해서 할 수 있는 임무를 받아야지. 후배라고 눈치를 보며 원치 않는 임무를 받는 건 이 원탁에 대한 실례라고 생각합니다.”

라온이 그렇게 말하고서 다시 자리에 앉았다.

“저, 저 건방진 놈!”

발데르가 미간을 구기며 일어섰다.

“네놈이 공을 좀 세웠다고 뵈이는 게 없는 것이냐! 여기가 어디라고 따져대는 것이야!”

“원탁이지 않습니까. 이런 논의를 하기 위해서 원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하는데요.”

라온이 앞에 있는 원탁을 매만지며 웃었다.

“크으, 그래. 네 말이 맞다.”

발데르는 의외로 순순히 본인의 실수를 인정했다.

“하지만 이곳은 논의만을 하는 곳이 아니다. 의견이 충돌한다면 무력으로 결정을 내릴 수도 있지.”

그는 잘 걸렸다는 듯 주먹을 움켜쥐었다.

“오늘 내가….”

발데르가 입매를 비틀려고 할 때였다. 회의장 문이 부서질 것처럼 열리고, 아리스가 들어왔다.

뻐어어어억!

그녀의 몸이 빛이 된 듯 사라지더니, 원탁의 끝에서 나타나 발데르의 뺨을 발로 후려쳤다.

콰아아아앙!

갑자기 얻어맞은 발데르가 의자를 부수고 벽에 처박혔다.

“어?”

“아….”

“뭐, 뭐지?”

갑잡스럽게 벌어진 일에 모두가 입을 떡 벌렸다.

“야이 꼰대 새끼야.”

아리스가 쓰러진 발데르의 머리를 밟으며 미간을 구겼다.

“새로 온 간부가 있으면 챙겨주지는 못할 망정 시비를 걸어? 쪼잔해서 닭살이 돋을 정도다!”

“크으윽!”

발데르가 아리스의 발을 밀어내며 벌떡 일어났다.

“누님! 이게 뭐 하는 짓이오!”

“꼰대짓 하는 게 너무 역겨워서 참을 수가 없잖아!”

아리스가 구역질이 난다고 중얼거리며 발데르의 자리에 앉았다.

“으으윽….”

발데르는 이를 갈 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입술을 씹었다.

“그 덩어리가 아깝다. 자식아.”

“덩어리라니! 무슨 덩어리!”

“비계 덩어리지 뭘 물어!”

아리스가 발데르의 우락부락한 근육을 보며 미간을 구겼다.

“이건 비계가 아니라, 근육이오! 아무리 누님이라고 해도 그런 말은….”

“그래? 그럼 근육 덩어리라고 해줄게.”

“그럼 됐소!”

발데르는 만족했다는 듯 아리스의 옆에 서서 고개를 끄덕였다.

라온은 그 모습을 보며 눈을 끔벅였다.

‘지금 저거에 만족한 거야?’

얻어맞고, 자리를 뺏기고, 모욕을 들었어도 근육 덩어리 하나에 만족한 것 같았다. 이해가 쉬우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채드?”

“예. 예!”

아리스의 부름에 채드가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줘봐.”

그녀는 채드의 손에 잡힌 서류를 강제로 뺏어가서 들어 올렸다.

“너희들은 배려가 없어. 처음 온 애가 있으면 챙겨줘야지.”

아리스는 그렇게 말하고서 라온을 향해 서류를 들어 올렸다.

“우리 조카. 뭐 하고 싶어? 첫 번째 임무니까. 이 이모가 쏜다.”

“아….”

라온은 방실거리는 아리스를 보다가 눈을 질끈 감았다.

‘제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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