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19화
라온은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제대로 먹혔군.’
입이 아플 정도로 길게 설명한 보람이 있어.
조금 전 글렌이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한 질문을 던졌을 때 평소와 달리 모든 사실을 생생하게 설명했다.
특히 주디엘이 얼마나 쥬벨을 그리워했는지, 쥬벨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느린 어조로 말하여 알현실에 있는 간부들의 감정을 조금씩 건드렸다.
이곳에 있는 간부들은 칼날처럼 냉정한 이들이지만,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듯 내 이야기를 들으며 주디엘과 쥬벨의 사정에 조금씩 빠져들었다.
모든 이야기를 끝낸 지금에 와서는 간부들은 본인의 동생이 당한 것처럼 분노를 드러내고 있었다.
주디엘과 쥬벨이 흐느끼는 소리가 간부들의 감정의 벽을 부수는 망치 역할을 해준 것 같았다. 미리 연기 연습을 시키길 정말 잘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라온은 겁을 먹은 것처럼 흔들리는 눈망울을 들어 카룬을 바라보았다. 스스로도 이 이상의 연기는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불안함과 서글픔을 담은 시선을 따라간 간부들의 눈동자가 안색이 석고처럼 굳어진 카룬을 향했다.
“어…?”
“서, 설마?”
“중무전주가?”
“진짜냐….”
간부들은 입을 틀어막은 라온과 턱에 힘줄이 돋아난 카룬을 번갈아 보며 입술을 떨었다.
“크으….”
카룬은 주저앉아 있는 라온을 노려보며 입술을 질겅 씹어댔다.
“야.”
아리스가 라온으로 향하는 카룬의 시선을 막으며 턱을 치켜들었다.
“너 뭐 했어.”
짧은 한마디였지만, 그녀의 분노가 스며들었기에 듣는 것만으로 소름이 돋아 오를 정도였다.
“설마 저지른 것이오?”
발데르도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이건 너무하잖아! 해도 적당히 해야지!”
그는 카룬의 멱살을 잡을 것처럼 두꺼운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
직접 손을 쓸 것 같았던 글렌은 입을 다문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카룬과 아리스, 발데르를 조용히 지켜만 보았다.
“아닙니다.”
라온은 알현실의 분위기를 모두 읽어낸 후 상체를 들었다. 목소리에 물기를 담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라고?”
“너 카룬을 쳐다봤잖아!”
발데르와 아리스가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
카룬 역시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카룬 님이 했는지 안 했는지는 모릅니다.”
라온이 한숨을 내쉬며 손짓을 하자, 주디엘이 무릎으로 기어서 옆으로 다가왔다.
“제가 정신을 차렸을 때 쥬벨은 보이지 않았고, 저는 이미 중무전 안에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시녀가 되는 교육을 받았죠.”
주디엘은 흐느끼는 음성으로 중무전에서 있었던 일을 말했다.
“아, 그럼 아닌가?”
“역시 카룬 님이 그런 일을 하실 리가 없지!”
“의심했던 놈들은 다 머리 박아!”
간부들은 다행이라고 중얼거렸고, 직계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카룬은 이쪽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냐는 듯한 의문이 담긴 눈빛이었다.
‘불안하지?’
그 불안을 현실로 만들어주마.
“하지만!”
라온이 주디엘을 대신해서 소리를 쳤다.
“주디엘은 중무전에서 시녀 교육만 받지 않았습니다.”
“뭐?”
“그녀는 낮에는 시녀가 되는 교육을 받고, 밤에는 끌려가서 첩자 교육을 받았다고 합니다.”
“마, 맞습니다.”
주디엘이 일부러 말을 더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밤에 자다가 끌려가서 첩자로서 익혀야 할 몸가짐을 배웠습니다. 기척을 죽이는 법과 먼 곳의 소리를 듣는 지청술 그리고 육체 내부를 조절하는 체현술을 배웠고, 암살 기술까지….”
그녀는 말을 다 잇지 못하고 허리를 굽힌 채 눈물을 글썽였다.
“누, 누나.”
쥬벨이 그런 주디엘의 어깨를 안으며 입술을 씹었다. 이젠 간부 모두가 미간을 깊게 구겼다.
“참 서글프죠. 누나는 동생을 만나기 위해 첩자로 살았고, 동생은 누나를 살리기 위해서 암살자로 살았습니다. 누구 짓인지 몰라도 정말 악마의 심장을 가졌다는 생각밖에 안 드네요.”
라온은 마지막으로 두 사람의 삶을 짧게 정리했다.
“남매를 갈라서 한 명은 암살자로, 한 명은 첩자로 키웠다고?”
“그게 전부가 아니야. 서로를 인질로 잡은 거잖아!”
“세상에….”
“차라리 죽이는 게 낫지. 이건 인간이 할 짓이 아니야.”
“끄응….”
직계를 제외한 모두는 카룬을 보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
그와 반대로 카룬이 안색은 숯이 된 것처럼 시꺼멓게 굳어 있었다.
“저는 묻고 싶습니다.”
라온이 주디엘을 뒤로 숨기며 앞으로 나왔다. 카룬을 보며 거세게 가슴을 쳤다.
“대체 왜 중무전에서 첩자를 키운 겁니까. 그리고 그 첩자를 왜 별관에 보내신 거죠?”
“라온….”
아리스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보았다.
“전 괜찮습니다. 그저 제 뒤에 있는 녀석들이 왜 이런 고통을 겪어야 했는지 알고 싶을 뿐입니다.”
그 말을 하고서 입 모양으로 이모라고 중얼거렸다.
“이런 해파리 같은 새끼야!”
아리스는 이모라는 입 모양을 보자마자, 포효를 내지르며 카룬에게 달려들었다.
피이잉!
카룬이 빠르게 손을 올려 방어 태세를 잡았지만, 아리스의 주먹은 그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오른쪽 볼에서 핏줄기가 흘러내렸다.
“내가 한 게 아니다.”
카룬이 담담한 눈빛으로 고개를 저었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정말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침착했다.
“나도 라온의 이야기를 듣고, 전을 조사했는데, 저 일을 저지른 놈은 이미 죽어 있었다.”
그는 주디엘에게 첩자 교육을 한 집사가 스스로 목을 맸다며 아리스를 밀어냈다.
라온은 목소리 하나 변하지 않는 카룬을 보며 픽 웃었다.
‘추하네.’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질 않아.
“그럴 수도 있겠죠.”
옅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다만 전 카룬 님이 중무전 안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몰랐다는 게 놀랍네요. 설마 전주라는 이름만 가진 바지사장은 아니셨을 테고.”
“이 건방진….”
카룬의 이마에 두꺼운 힘줄이 돋아났다.
“안타깝군요. 이 두 사람의 인생은 누가 보상을 해줘야 할지….”
라온은 카룬의 말을 끊으며 주디엘과 쥬벨의 어깨를 잡았다.
-와아….
라스가 감탄했다는 듯 눈을 끔벅였다.
-이 미친놈. 연기가 점점 늘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것이야! 검 실력보다 연기 실력이 늘었잖느냐! 초월급이니라!
‘이건 연기가 아니라, 진심이라는 거야.’
-웃기고 자빠졌네! 네놈이 저 녀석들에게 연기 수업을 하는 것도 봤는데,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그거 착각이야. 모두 진심을 말할 뿐이라고.’
-착각은 무슨! 다른 놈은 다 속여도 본왕은 못 속인다. 본왕의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네놈을 믿을 수가….
‘어. 그래.’
라온은 주절거리는 라스의 눈을 찔렀다.
-끄악! 본왕의 눈!
이런 때도 내 눈이 아니라, 본왕의 눈이라고 하면서 바닥을 구르다니.
자아정체성 하나만큼은 확실한 녀석이었다.
라온은 버둥거리는 라스를 쳐내버리고 카룬을 올려보았다.
“저는 죽었다는 집사의 시체를 꺼내와서라도 이 두 사람에게 복수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마에 깊은 주름을 새기고 있는 카룬을 보며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 * *
카룬은 라온의 당찬 눈동자를 보며 입술을 씹었다.
‘저 망할 놈이….’
알현실에 들어온 라온의 가라앉은 눈빛을 보았을 때는 놈이 예상대로 움직일 거라고 생각했다.
다른 건 몰라도 라온의 머리 회전은 인정했기에 서로 간의 말 없는 거래가 이루어졌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건 큰 착각이었다.
라온 지그하르트는 알현실에 온 간부들의 감정을 자극하며 모두를 본인의 편으로 만들고, 나를 명실공히 악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래. 내가 하나를 놓치고 있었군.’
저놈은 머리가 좋지만, 그 이상의 또라이라는 것을.
‘허나 너도 이 이상은 무리다.’
주디엘 때문에 중무전이 이번 일에 연결되어 있다는 건 막을 수 없었지만, 자신이 관여했다는 증거는 절대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라온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여기까지가 한계였다.
‘그럼 내가 할 일은 정해져 있지.’
카룬은 뺨에서 흐르는 피를 닦아내고서 자세를 바로 했다. 그대로 라온과 주디엘, 쥬벨에게 고개를 숙였다.
“중무전주로서 너희에게 사과한다. 내가 이번 일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해도 중무전의 주인으로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보상을 하겠다.”
오히려 당당하게 나갔다. 내가 저지른 일은 아니지만, 적당한 수준의 책임을 지겠다는 발언. 대인배의 모습으로 아직 라온에게 완전히 넘어가지 않은 간부들의 시선을 뺏었다.
“두 사람의 인생은 중무전에서 책임지겠다. 다시 한번 사과하지.”
당연하게도 주디엘과 쥬벨을 잘 봐준다는 뜻이 아니었다. 이 이상 중무전을 건드리면 두 사람을 죽이겠다는 의미의 협박이었다.
“후….”
라온이 슬쩍 시선을 내렸다. 놈은 각도를 조절하여 이쪽을 향해서만 비웃음을 그렸다.
“감사한 말씀이시지만, 첩자와 암살자 교육을 받은 곳에 두 사람을 보낼 생각은 없습니다. 밥도 편히 못 먹을 겁니다.”
“첩자 교육만 했다고 했지. 암살자는 모르는 일이다.”
카룬이 참지 못하고 입술을 구겼다.
“아, 그랬죠.”
라온이 평온한 안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과 말투를 보니 알면서 일부러 찔러본 게 분명했다.
“전주님이 스란 부족 근처까지 오셔서 제가 잠깐 착각했나 봅니다.”
그는 얄미운 눈빛을 드러내며 우연인 척 스란 부족의 이야기를 꺼냈다. 정말이지 열이 뻗치게 만드는 놈이었다.
“스란 부족?”
“서, 설마 암살자들이 습격한 장소에 가 있던 거야?”
“그럼 진짜….”
“전주님….”
간부들은 점점 더 짜맞춰지는 이야기에 마른침을 삼켰다.
뿌득.
이를 갈며 라온을 보았다. 놈은 얼굴을 숙인 채로 입매를 길게 말아 올리고 있었다.
‘저 개자식이!’
당장 쫓아가서 때려 죽이고 싶었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 최대한 침착하게 이 상황을 벗어나야 했다.
‘아버지만 움직이지 않으면 돼.’
아리스도 위험하지만, 그녀는 이곳에서 함부로 행동할 수 없다. 글렌만 움직이지 않는다면 생로는 아직 남아 있었다.
“답답하군.”
카룬은 평소와 같은 표정, 같은 눈빛을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 그 차분함에 사람들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난 그저 숲이 불타고, 비명이 들려오기에 그곳에 갔을 뿐이다.”
“맞습니다. 그러셨을 겁니다.”
라온이 그게 당연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 새끼 또 왜 저래?’
라온이 노골적으로 편을 드니, 등골 사이로 오싹한 소름이 돋아 올랐다. 좋은 일이 아닌 게 분명했다.
“얼마나 걱정을 하셨으면 제가 다 잡아놓은 암살자의 수장을 죽이셨을까요?”
“죽여? 그게 무슨 말이야?”
아리스가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저는 스란 부족 마을 주변이 폭발할 때 숨어 있던 암살자들의 수장을 생포했습니다. 놈들의 뒤에 누가 있는지를 들으려고 하는데, 갑자기 튀어나오신 중무전주께서 놈을 죽여버리셨죠. 우연치고는 참 신기하죠? 꼭 사고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나타나다니.”
라온은 고개를 숙인 채로 중얼거렸다. 발성이 좋아서 작은 음성임에도 모두의 귀에 똑똑히 들려왔다.
“아예 움직일 수도 없게 만들었는데, 바로 몸통을 잘라버리더군요. 제 걱정을 정말 많이 해주신 것 같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을 하며 입맛을 다셨다.
“그건….”
“으음….”
간부들의 시선에 노골적인 의심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뿌드드득.
카룬이 뒤로 젖혀둔 손으로 주먹을 말아쥐었다.
‘저 망할 여우 새끼가….’
아예 처음부터 모든 사실을 밝혔다면 어떻게든 대응을 했겠지만, 라온은 사람들의 심리와 감정을 조종하면서 조금씩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지금에 와서는 의심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감당을 할 수가 없었다.
“늦었지만,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라온이 어정쩡하게 일어나서 고개를 숙여왔다. 밑으로 굽어진 놈의 입꼬리가 귓불까지 올라가는 게 보였다. 하얀 목덜미를 뜯어버리고 싶었다.
치이이이잉!
아리스가 검을 뽑아 들고 카룬에게 달려들었다.
“이익!”
카룬은 분노한 와중에도 검을 뽑아서 아리스의 검격을 막아냈다. 하지만 힘에서 밀려 금방 벽을 등지게 되었다.
“이 해초 같은 새끼. 여기서 죽여주마!”
아리스는 진심으로 죽이려는 듯 칼날 위에 강환을 휘감았다. 서늘한 빛으로 번쩍이는 기류가 카룬의 목으로 휘어졌다.
“그만.”
글렌이 처음으로 손을 저었다. 그의 나지막한 음성에 아리스가 검을 내리고 뒤를 돌았다.
“아버지! 이건….”
“그만두라 했다.”
“윽.”
아리스는 글렌의 공허한 눈빛을 마주하고 입술을 씹었다.
글렌은 아리스의 뒤편에 선 카룬을 보며 두 눈을 내리감았다.
“후….”
카룬은 글렌의 안색을 보며 손가락을 비볐다.
‘징계가 떨어지겠군.’
글렌은 바보가 아니다. 여기 있는 누구보다 먼저 자신의 짓이라는 것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 많은 사람 앞에서 후계자 후보이자, 전주인 자신을 혼내는 건 다른 일. 아마 따로 불러서 징계를 내릴 게 분명하다.
“가주님.”
카룬이 안심하며 손을 내릴 때 라온이 고개를 들었다. 그는 또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입가에 연한 미소를 그렸다.
“드려야 할 게 있습니다.”
* * *
라온은 모든 상황을 멈춰버린 글렌을 보며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럴 줄 알았어.’
글렌이 요즘 자신을 잘 챙겨준다고 해도 그건 보상의 일환이었다.
아들이자, 후계자에 가장 가까운 카룬을 더 챙겨주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아리스와 발데르 그리고 다른 간부들의 감정과 심리를 건드린 것이다.
‘이게 스란 부족에 있을 때의 계획이었지. 하지만….’
지금의 내게는 하나의 무기가 더 있었다.
“줄 것이 있다?”
글렌이 차분히 눈동자를 떴다. 그의 눈빛은 죽음을 앞둔 시한부 환자처럼 허무해 보였다.
“예. 야수연맹주가 가주님께 보내는 서신입니다.”
라온이 오그람이 주었던 편지를 꺼냈다.
“음.”
글렌이 가볍게 손가락을 까딱이자, 누런빛의 편지가 둥실 떠올라 그의 손아귀에 잡혔다.
스으으.
글렌은 편지를 펼치자마자, 눈살을 찌푸렸다.
‘저럴 수밖에 없지.’
저 편지에 적혀 있는 글귀는 노골적이니까.
[글렌 지그하르트. 자식 농사를 거름도 안 되는 똥밭에서 지었구나. 네 얼굴을 봐서 딱 한 번은 넘어간다. 다만 빚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네 손자가 대신 갚았으니까.]
오그람은 그 담대한 성격을 편지에 그대로 옮겼다. 저런 내용이었기에 글렌의 표정이 구겨질 수 밖에 없었다.
“후우….”
글렌이 낮은 숨을 내쉬고서 일어섰다. 그는 결심을 내린 듯 거칠게 편지를 불태웠다.
“너희 모두에게 말했을 터다. 최소한 인간의 탈을 벗지는 말라고.”
그의 목소리에 담긴 울림이 심장에 박히는 칼날처럼 아릿했다.
“너는 인간과 마를 가르는 선을 넘었구나.”
글렌이 묵직한 음성을 내뱉으며 단상의 계단을 내려온다. 한 걸음마다 대지가 진동하는 듯한 웅대한 기파가 뻗어 나왔다.
-무슨 헛소리냐!
라스가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저건 마도 아니니라! 그저 추잡한 악의일 뿐이니라!
녀석은 마족도 저런 건 취급 안한다며 고개를 저었다.
“카룬 지그하르트.”
“예에….”
카룬은 글렌의 눈동자에 담긴 분노를 읽은 듯 피나도록 입술을 씹었다.
“나오거라.”
글렌의 눈동자에 겁화가 차오른 듯 피가 말라붙을 정도로 건조한 빛이 번뜩였다.
“네게 오늘 인간을 가르쳐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