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615화 (614/653)
  • 제615화

    “대체 라온이 무슨 일을 저질렀길래 그리 웃으십니까.”

    셰릴이 글렌을 올려보며 자그마한 미소를 그렸다.

    “그러게.”

    리메르가 고개를 까딱였다.

    “라온이 물이라도 줬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났네.”

    그는 무슨 일인지 대충 예상을 한 듯 히죽거렸다.

    “커흠!”

    글렌이 헛기침을 한 번 뱉고서 억지로 표정을 굳혔다. 하지만 그의 입꼬리는 본인의 의사와 상관이 다시 올라가려는 듯 꿈틀거렸다.

    “별일은 아니다.”

    “별일이 아닌 것치고는 저도 못 봤던 표정이로군요.”

    로엔이 허허허 웃으며 단상 앞으로 다가갔다.

    “아니라니까.”

    글렌이 고개를 저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다 보인 건가….’

    보고서로 얼굴을 가린다고 생각했는데, 라온의 활약이 너무 기뻐서 자신도 모르게 손을 내렸던 것 같다.

    민망하여 얼굴에 열이 차올랐지만, 오러를 운용해서 가라앉혔다.

    “알겠으니까. 라온이 뭘 했는지나 알려주시죠. 궁금해서 간지러울 지경이라구요.”

    리메르가 어깨를 탁탁 턴 손으로 보고서를 가리켰다.

    “뭐, 그리 궁금하다면 어쩔 수 없지.”

    글렌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다시 보고서를 들어 올릴 때 가주전의 문이 거세게 열리고 아리스가 들어왔다.

    “아버지!”

    그녀는 어떻게 알았는지 중앙으로 달려오며 목소리를 높였다.

    “라온의 편지가 왔다면서요!”

    “네가 그걸 어떻게….”

    글렌은 이해할 수가 없다는 듯 눈매를 구겼다.

    “비연회에 제 사람 하나 만들었거든요!”

    아리스는 비연회에 머물다가 정보원 하나를 얻었다며 웃었다.

    “크흠….”

    글렌이 채드에게 고개를 돌리며 매서운 시선을 번뜩였다.

    딸꾹!

    채드는 바짝 얼어붙어서 어깨를 떨었다. 과하게 긴장했는지 본인도 모르게 딸꾹질까지 하기 시작했다.

    “괜히 비연회주 압박하지 마시고. 빨리 편지나 읽어 봐요. 그거 맞죠?”

    아리스는 채드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서 앞으로 나왔다.

    “후우.”

    글렌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고서 보고서에 시선을 돌렸다.

    “이 녀석이 수련을 하러 간다고 해 놓고 실제로는….”

    그는 라온이 스란 부족에 가서 했던 일들을 모두 말해주었다.

    “걔 진짜 뭐야?”

    아리스가 보고서를 보면서 헛웃음을 터트렸다.

    “스란 부족과 암살자들의 전쟁을 혼자서 멈춰 세웠다고? 이게 말이 되나?”

    “그러게 말입니다.”

    로엔이 멍하니 눈을 끔벅였다.

    “스란 부족에 사망자가 한 명도 없다니, 업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군요.”

    그는 라온이 장하다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불에 익숙하다고 해도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하여튼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다니까.”

    셰릴은 라온이 많은 사람을 구한 게 가장 기쁜 듯 미소를 그렸다.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나름 노력했다는 건 알겠더군.”

    글렌이 담담한 눈빛으로 고개를 저었다. 다만 그의 입꼬리는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아! 저 나가볼게요!”

    아리스가 손을 들어 올린 채 바로 뒤로 물러섰다.

    “뭐? 어딜.”

    글렌이 불안한 듯 콧잔등을 찡그렸다.

    “라온이 스란 부족 전체를 구했으면 야왕 성격상 분명 축제를 열 거라구요! 거기에 참가해야죠!”

    아리스는 늦으면 안 된다며 당장 달려 나갈 자세를 취했다.

    “넌 제발 가만히 좀 있어!”

    글렌이 아리스를 멈춰 세우고서 다시 편지를 보았다.

    ‘그러고 보니….’

    보고서의 마지막 줄을 다시 보았다.

    [야수연맹주께서 놓아주질 않으셔서 복귀가 조금 늦을 것 같습니다. 보고서를 먼저 보냅니다.]

    라온은 마지막 줄에 야왕 오그람에게 잡혀 있기에 이 보고서를 먼저 보낸다고 적어놓았다.

    ‘술인가….’

    자신과도 술자리를 가진 적은 두 번 밖에 없는데, 야왕에게 잡혀서 술을 먹는다는 상상을 하니, 머리에 뜨끈한 열이 뻗쳤다.

    ‘죽일까?’

    글렌이 진심으로 고민하고 있을 때 그의 표정을 알아본 리메르가 눈을 부릅떴다.

    “안 돼! 가주님도 제발 좀 참아요!”

    *     *      *

    야수연맹 영역 밖의 이름 없는 숲.

    카룬이 바들바들 떨리는 주먹으로 시꺼멓게 굳은 땅을 내리쳤다.

    쿠와아아아앙!

    그의 주먹이 파고든 대지는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거대한 균열이 피어났다.

    “빌어먹을 놈들이!”

    카룬은 그러고도 분이 안 풀린 듯 연달아 주먹을 내리찍으며 오그람 앞에서 참고 있던 분노를 드러냈다.

    한참 동안 울분을 토하던 그는 입에서 검은 피까지 흘리고 나서야 손을 내렸다.

    하지만 이미 숲은 복구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서 폐허처럼 변해 있었다.

    “크으….”

    카룬은 입가에서 흘러내린 검은 피를 닦으며 짓이겨진 대지에 주저앉았다.

    ‘고통이 가라앉지를 않는군.’

    오그람에게 맞았던 복부의 통증이 점점 더 심해진다.

    오러와 육체의 방어를 뚫고, 내부에 충격을 그대로 밀어 넣는다는 야왕의 기예다웠다.

    ‘어쩔 수 없군.’

    카룬이 미간을 찌푸린 채 복부에 손을 올렸다. 손아귀에서 청아한 푸른빛이 일어나는 순간 그의 입에서 흘러내리던 핏물이 붉은빛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후욱.”

    카룬은 한참동안 호흡을 조절하다가 몸을 일으켰다. 몸가짐을 바로 하여 본래의 고귀한 모습으로 돌아간 그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부르셨습니까.”

    몸을 감추고 있던 중무전의 제1 비서 막시안이 앞으로 나와 부복했다.

    “그 계집에게 지시를 내리던 놈이 누구지?”

    “집사 베리프입니다.”

    “그의 입을 다물게 하는 게 좋겠군.”

    카룬은 밤하늘을 보며 고개를 까딱거렸다.

    “베리프라면 어떤 고문이 들어와도 입을 열지 않을 것입니다.”

    입을 다물게 하라는 건 죽여서 입을 막으라는 뜻이었기에 막시안은 베리프를 믿어달라는 듯 고개를 숙였다.

    “나는 입을 다물게 하라고 했는데.”

    카룬의 시선이 숨통을 조일 정도로 오싹하게 가라앉았다.

    “…조치하겠습니다.”

    막시안이 어깨를 가늘게 떨고서 고개를 숙였다. 그가 다시 돌아가려다가 멈춰 섰다.

    “그런데 라온 지그하르트가 이미 가문으로 소식을 보냈다면 문제가 커질 텐데요.”

    “아니.”

    카룬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보고서를 올렸다고 해도 나에 관한 내용은 빠져있을 것이다. 라온 지그하르트는 확실한 물증 없이 움직이는 놈이 아니니까.”

    “하지만 가주님이….”

    “아버지는 사정을 알아도 움직일 사람이 아니다. 라온 놈이 복귀한 후 직접 수색할 가능성이 높으니, 돌아가는 대로 세작들과의 연결고리를 모조리 끊도록.”

    “알겠습니다.”

    막시안이 입술을 다물고서 뒤로 물러섰다.

    카룬이 숲의 어둠을 바라보며 이를 바득 갈았다.

    ‘라온 지그하르트….’

    주디엘의 반응을 보면 라온은 내가 그녀의 뒤에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일에 끼어들었다는 건 내게 선전포고를 했다는 것과 다름없었다.

    ‘죽고 싶다면 죽여주어야겠지.’

    지금까지는 라온에게 직접 손을 쓰지 않았다.

    아니, 간접적으로도 크게 손을 쓴 적은 없었다. 건드려도 의미 없는 놈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먼저 선을 넘은 건 라온이다. 그렇다면 그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는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뿌드드득.

    카룬이 소리가 날 정도로 주먹을 강하게 말아 쥐었다.

    ‘오늘 일을 평생 후회하게 해주마.’

    아니, 후회할 틈도 없을 것이야.

    *     *      *

    꿀꺽.

    라온은 눈앞에 쌓이는 술 항아리를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또 먹는 거야?’

    어제 그렇게 마셨는데?

    어젯밤부터 오늘 오후까지 술 항아리 열 개를 비웠는데, 어디서 났는지 술 항아리가 배달되기 시작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입이 다물어 지지가 않았다.

    ‘미치겠네.’

    술을 못 마시는 건 아니지만, 저렇게 많은 양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특히 옆에 있는 솜사탕 때문에 더 힘들었어.’

    라온이 어깨 위에 앉아서 고로롱 코를 골고 있는 라스를 바라보았다.

    이 솜사탕 녀석은 술을 마시면.

    -꿰에에에엑! 더럽게 맛없느니라! 인간들은 뭐가 좋다고 저 딴 것을 먹는 것이냐! 당장 뱉거라!

    거기서 안주를 하나 집어먹으면.

    -우헤헤헤헤! 맛나느니라! 저 야만인 놈들이 음식 하나는 잘 만드는군! 특히 통구이가 일품이니라!

    그러다가 다시 술을 마시면.

    -이 술고래 자식아! 그만 좀 마시고! 안주나 처먹으라고!

    술이 싫으면 팔찌에 들어가서 자기라도 하지, 안주 때문에 들어가지도 않고 옆에서 떠들어대서 귀가 따가울 지경이었다.

    -오….

    지금도 잠에서 깬 채 혀를 날름거리고 있는 것을 보니, 어젯밤의 안주를 생각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좋은 날이야. 안 그런가?”

    오그람이 시란 부족장을 보며 큼지막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요! 좋은 날, 좋은 사람, 그리고 좋은 술입니다!”

    시란 부족장도 시원하게 웃었다. 시란 부족에 부상자는 있어도 사망자는 없기 때문인지 기분이 좋아 보였다.

    “형제여!”

    술 항아리 스무 개가 채워지는 비현실적인 모습에 헛웃음을 흘리고 있을 때 우측에서 어디선가 들어본 목소리가 울렸다.

    “음?”

    시선을 돌리니, 덩치만큼은 오그람보다 더 큰 청년이 양손에 술 항아리를 든 채 달려오고 있었다.

    “가로나?”

    술 항아리를 든 청년은 육황 결투 대련에서 싸웠던 흑수족의 가로나였다. 예전보다 덩치가 더 켜졌다. 참룡수가 아니라, 아예 용이 되려는 것 같았다.

    “오랜만이다! 형제여!”

    “내가 왜 네 형제야.”

    “너와 나는 서로의 영혼을 부딪치는 결투를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형제다!”

    가로나는 당연한 것을 왜 묻냐는 듯 웃었다.

    “허….”

    라온이 헛웃음을 흘렸다.

    ‘하나도 안 변했네.’

    가로나는 결투 대련에서 내게 패배했을 때도 바로 결과를 인정하고 내 승리라고 외치며 형제가 되자고 했었다. 그게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었던 것 같다.

    “네가 왜 여기에 온 것이냐? 분명 일을 맡겨두었을 텐데?”

    오그람이 가로나를 보며 눈썹을 구겼다.

    “형제가 스란 부족을 구했다고 하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겠습니까! 술을 찾는다고 하시길래 제가 전부 가져왔습니다!”

    가로나는 자신감이 넘치는 눈빛으로 허리를 세웠다.

    “그건…잘했다! 너도 와서 먹어라!”

    일을 하지 않고 왔다고 해서 혼을 낼 줄 알았는데, 오그람은 오히려 칭찬하면서 옆자리에 가로나를 앉혔다.

    야수연맹의 사람들은 본능을 넘어서 반사 신경으로 살아가는 것 같았다.

    “안주도 꺼내 와라!”

    가로나가 손짓을 하자, 짐승들의 등에서 가지각색의 재료들이 내려왔다. 야수연맹의 요리사들이 바로 음식을 만들 준비를 하며 이곳저곳에 불을 피웠다.

    -오오! 네놈은 오늘부터 본왕의 형제이니라!

    라스는 가로나를 보며 큼지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형제 되기 참 쉽네….’

    어이가 없어서 고개를 저었다. 부하로 받는 것도, 형제로 받는 것도 먹을 것만 주면 땡이었다. 이렇게 쉬운 마왕이 또 있나 싶었다.

    “좋은 녀석이 하나 더 왔으니, 다시 시작하지!”

    오그람이 술이 든 잔을. 아니, 술이 든 냄비를 들어 올렸다.

    “좋습니다! 형제여! 너도 들어라!”

    가로나가 오그람보다 더 큰 냄비에 술을 담아서 건네주었다.

    “형제는 통이 그니, 이 정도 잔은 되어야지!”

    “…….”

    라온은 바다처럼 찰랑이는 잔 속의 술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누가 좀 안 구해주나?’

    혹시나 하며 시선을 돌렸다.

    주디엘과 쥬벨은 어깨를 붙인 채 그간의 일을 말하느라 바빴고, 리스른은 스란 부족들 사이에 껴서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 확실히 위험했지! 위험했지만! 내가 사람을 구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니, 조금도 무섭지 않았고, 그저 생명의 귀함을….”

    암살자로 살아왔다는 양반이 뭐 저리 말이 많은지 모르겠다.

    “후….”

    다 포기하고 가로나가 준 잔을 들었다.

    -안주! 안주부터 먹거라!

    라스는 술 앞에 채워지는 음식들을 가리키며 헤죽거렸다.

    “들어라!”

    “마셔라!”

    -오늘은 축제이니라!

    “…….”

    라온은 오그람과 가로나의 포효와 라스의 발광을 들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

    ‘집이 그립다….’

    *     *      *

    술자리는 이틀이 넘어서도 계속 되었다.

    오그람과 가로나는 술을 물처럼. 아니, 공기처럼 들이마시고도 취하질 않았다. 다른 의미로 괴물을 보는 듯했다.

    “으….”

    라온은 빈 술잔을 내리며 어깨를 떨었다.

    ‘이제 좀 힘든데.’

    불의 고리 덕분에 술에 취하지는 않지만, 이제 술을 마시는 것만으로도 몸에 힘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히히….

    라스는 이미 음식을 즐길 만큼 즐긴 후 얼음꽃 팔찌 속에 들어가서 꿀잠을 자고 있었다.

    ‘나도 그만하고 싶다.’

    앉아서 술만 먹다보니, 검을 좀 휘두르고 싶었다. 손이 근질근질했다.

    “크으으으.”

    오그람이 잔을 내려놓으며 땅이 울릴 정도의 트림을 내뱉었다.

    “어후….”

    가로나도 힘이 드는지 벽에 등을 기댄 채 거친 숨을 내쉬었다.

    “자, 그럼….”

    오그람이 어깨를 돌리며 몸을 일으켰다.

    ‘드디어 끝인가?’

    라온이 입술을 말아 올렸다. 이제야 이 술자리가 끝난다고 하니, 자연스럽게 미소가 흘러나왔다.

    쿠우웅!

    하지만 오그람은 뒤에서 거대한 술 항아리 하나를 더 들고 왔다. 지금까지 중에서 가장 큰 항아리였다.

    “이제 2차를 시작해볼까?”

    “아하하하! 좋습니다!”

    가로나가 언제 지쳤냐는 듯 헤죽거리며 앞으로 다가왔다.

    “형제도 좋지?”

    그는 빨리 오라며 손짓을 했다. 반짝이는 이마를 손바닥으로 치고 싶었다.

    라온이 창백한 안색으로 손을 떨었다.

    ‘여기서 더 마신다고?’

    진짜 술에 미친 인간들이었다. 도괴와 쿵짝이 잘 맞을 것 같았다.

    ‘으….’

    라온이 신음을 흘리며 일어섰다. 더는 이 술자리에 있을 힘이 없었다.

    “저 맹주님.”

    “편하게 형님이라 부르거라!”

    오그람은 무슨 맹주냐며 손사래를 쳤다.

    “궁금한 게 있는데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

    그는 뭐든 말하라는 듯 크게 손을 흔들었다.

    “중무전주에게 세 번째 주먹을 날리실 때 그의 방어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 같았는데, 제가 본 게 맞습니까?”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 지금까지 있었던 일 중에 가장 흥미로웠던 것을 물어보았다.

    “그걸 보았나?”

    오그람이 신기하다는 듯 눈썹을 들어 올렸다.

    “격해라고 하는 무예다. 형제.”

    가로나가 어느새 술잔을 비운 채 고개를 까딱였다.

    “격해?”

    “네 말대로 상대의 방어를 무시하고, 자신의 공격을 그대로 때려 박는 기예지. 나도 요즘 배우고 있다.”

    그는 굉장히 어려운 무예라며 고개를 저었다.

    “역시 무인이로구나.”

    오그람이 술잔을 모두 비운 후 몸을 일으켰다.

    “둘 다 따라오거라.”

    그는 처음으로 술잔을 내려놓은 후 마을 옆에 있는 작은 공터로 향했다.

    오그람이 뒤를 돌아보고서 턱을 치켜들었다. 자신감과 당당함만큼은 육황에서도 제일인 것 같았다.

    “본래 무인과 무인의 싸움은 서로 공방을 주고받는 것에 있다. 누가 더 강한 공격을 하는가. 누가 더 완벽한 방어를 하는가가 중요하지. 허나….”

    오그람이 주먹을 말아 쥐었다. 큼지막한 주먹에서 색이 없는 기류가 이글거리며 타올랐다.

    “내 힘을 상대에게 그대로 처박을 수 있다면 어떠한 싸움에서도 이길 수 있다.”

    그가 주먹을 내 앞으로 내질렀다. 거북이가 기어가는 듯 지루할 정도로 느린 주먹이었는데, 보는 것만으로 등골 사이로 오싹한 소름이 돋아 올랐다.

    뻐어어어억!

    오그람의 주먹을 잡기 위해서 오러를 휘감은 손을 뻗었다. 하지만 오그람의 주먹은 방어하는 오러를 무시하고, 손아귀에 어마어마한 충격을 일으켰다.

    콰아앙!

    라온은 몸을 가누지 못하고, 뒤로 튕겨 나가 땅에 처박혔다.

    “크윽….”

    양 손아귀에서 뜯겨 나갈 것 같은 통증이 일었다. 오러를 뚫고, 살이 아닌 영혼에 직접 박힌 듯한 충격. 손아귀가 아니라 정신이 날아갈 정도였다.

    “격해무는 그렇게 만들어졌고, 발전해왔다.”

    오그람이 쥐었던 주먹을 펼치며 시원한 웃음을 보였다.

    “어떠냐. 배워볼 테냐?”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