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11화
빠드득!
콜린이 뺨에 새겨진 화상을 짓누르며 이를 갈았다.
“그 연놈들은 어디에 있어!”
“4조와 5조가 근처까지 추적했습니다.”
환살대 2조장이 옆으로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너희도 움직여! 뼛조각 하나 남기지 말고 놈을 찢어 죽이라고!”
악의에 찬 콜린의 외침에 암살자들이 속도를 높인 채 전방으로 뛰쳐나갔다.
“불도 더 크게 질러!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게!”
뒤에 빠져 있던 암살자들은 좌우로 이동하면서 기름을 뿌리고, 불의 마법이 새겨진 스크롤을 찢었다.
콰아아아아아아!
시뻘건 불길이 끝도 없이 치솟으며 숲 전체에 빠져나갈 수 없는 화마의 그물이 펼쳐졌다.
“대주.”
2조장이 점점 더 거세지는 불길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조금만 더 들어가면 스란 부족의 영역입니다. 불길 때문에 밖으로 나와서 경계를 서고 있을 텐데, 백구십육 호를 보호하기라도 한다면….”
“그럴 일은 없다.”
콜린은 언제 화를 냈냐는 듯 평온한 눈빛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 야만인 새끼들은 무엇보다도 숲을 소중히 여기지. 너 같으면 불을 끄느라 정신이 없는데, 야행복을 입고 암살자들을 데리고 온 백구십육 호를 보호해줄 것 같나?”
“아….”
“그래. 오히려 가장 먼저 때려죽이겠지.”
그는 분노를 터트린 게 연기였던 것처럼 서늘한 웃음을 그렸다.
“오히려 잘 되었어.”
콜린이 화상이 새겨진 뺨을 가볍게 치며 입맛을 다셨다.
“어차피 우리의 목표는 스란 부족의 암살이 아니니까.”
* * *
라온은 꼭 길을 막는 것처럼 거세게 타오르는 불의 장벽으로 들어갔다.
‘주디엘의 위치는?’
-본왕은 네놈의 수하가 아니니라.
라스가 비웃듯이 입매를 틀었다.
-살아있는 건 알려주었으니, 알아서 찾거라!
녀석은 힌트는 주었다며 동그란 손을 흔들었다.
‘진짜 귀찮은 성격이라니까.’
라온은 눈매를 찡그리고서 바닥을 살폈다. 바닥에 혈흔이 떨어져 있기는 했지만, 불길에 탄 곳이 많아서 방향을 잡을 수가 없었다.
설화의 감각을 운용하며 기감을 펼쳐보았다.
숲이 광활한데다, 상당한 시간이 지났기에 주디엘은 물론이고, 암살자들의 기척도 잡히지 않았다.
“크흠.”
리스른이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옆으로 다가왔다.
“불을 아주 거하게 질렀군요. 제가 본 것보다 불씨가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는 이 정도로 난리를 칠 줄은 몰랐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밖에 계시는 거 아니었습니까?”
“라온 님을 끝까지 보필하라는 아가씨의 부탁을 받았습니다.”
리스른은 본인의 의사가 아니라, 데닝로즈의 뜻이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평소라면 거절했겠지만, 시간이 많지 않아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일단 스란 부족 쪽으로 가는 게 좋겠군요.”
리스른이 연기를 지우며 전방을 가리켰다.
“위치를 아십니까?”
“방향은 알지만, 숲이 이 꼴이라 찾아가려면 시간이 조금 걸릴 듯합니다.”
“음….”
라온이 다시 숲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눈매를 좁혔다.
‘라스에게 부탁을 해야 하나?’
음식이라도 하나 던져주고, 정보를 얻어야 하나 고민할 때였다. 심장 주변을 회전하는 불의 고리 위로 지금까지와는 다른 색의 불꽃이 타올랐다.
화아아아아!
강렬한 불길은 단숨에 상단전으로 치솟으며 연기와 화마로 가득 찬 시야를 열어주었다.
숲 전체에 퍼져 있는 불씨들이 마치 내 호흡처럼 느껴진다.
설화의 감각을 운용해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먼 거리에 위치한 사람들의 기척이 잡혔다.
‘이건….’
이 열기는 얼마 전에 느꼈던 불꽃과 똑같았다. 불의 정령왕 이프리트가 남기고 갔던 홍염. 그의 불꽃이 내 새로운 감각이 되어주고 있었다.
고오오오오!
불의 고리와 함께 공명하는 홍염의 감각을 이용하여 숲 전체를 살폈다.
수십. 아니, 백이 넘는 인원이 새의 날개처럼 길게 펼쳐져서 이동하는 게 느껴졌다.
‘암살자들이야.’
지금 기감에 잡힌 사람들은 존재감을 감춘 채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암살자의 기척이 분명했다.
‘그리고 누군가를 쫓고 있어.’
암살자들이 저렇게 길게 펼쳐져서 움직이고 있다는 건 누군가를 따라가고 있다는 뜻. 저들의 이동 방향을 따라가면 주디엘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라온 님 이 방향으로….”
“이쪽으로 가죠.”
“예? 그쪽은 조금 돌아가야 하는….”
“이 앞에 있습니다.”
라온은 리스른의 말에 고개를 젓고서 암살자들의 기척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내달렸다.
터어어어엉!
전력으로 태화보를 밟았다. 바람의 신이 깃든 듯한 움직임에 수풀에 차오른 불길이 힘을 잃고 가라앉았다.
“괴물이라는 건 들었지만….”
리스른은 불을 지우며 나아가는 라온을 보며 헛바람을 흘렸다.
“생각보다 더 대단한데. 무력이나. 성격이나.”
* * *
“허억!”
쥬벨이 혈향이 섞인 거친 숨을 내쉬며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 주디엘까지 업고 달리다 보니, 체력 소모가 심했다.
평소처럼 달렸다면 벌써 스란 부족 마을 근처에 도착했겠지만, 아직도 거리가 한참 남아 있었다.
“쥬벨? 괜찮아?”
등에 업혀 있는 주디엘이 물기가 흐르는 음성으로 물었다.
“괜찮아.”
쥬벨은 지친 표정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 전방에 시선을 둔 채 고개를 끄덕였다.
“내려줘. 지금부터는 내가 달릴게.”
“내가 업고 달리는 게 더 빨라.”
쥬벨이 고개를 젓고서 속도를 높였다.
“…….”
주디엘은 땀이 비 오듯 흐르는 쥬벨의 목을 보며 입술을 씹었다.
‘쥬벨….’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의 불길이 사위를 휘감고 있었고, 암살자들과 전투를 치르면서 달려왔기에 쥬벨은 호흡이 흔들릴 정도로 지쳐 있었다.
하지만 그는 절대 다리를 멈추지 않았다. 죽기 직전까지 달릴 기세였다.
‘오지 말았어야 했어.’
언덕에서 내려오지 않았다면 쥬벨이 이런 꼴이 되었을 리 없었다.
누나가 되어서 동생을 챙겨주지는 못하고, 오히려 최악의 상황을 만든 게 서글프고 미안했다.
“미안해….”
“미안은 무슨. 오히려 다행이야.”
“뭐?”
“말했잖아. 난 누나만 만나고 죽으려고 했다고. 누나를 봤으니, 여기서 죽더라도 후회 안 해.”
쥬벨은 정말 괜찮다는 듯 뒤를 돌아보며 가느다란 미소를 그렸다.
어릴 적 안아줘야 잠이 들던 어린 동생은 홀로 비바람을 견디고 일어서 누구보다 듬직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래.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주디엘이 어금니를 지그시 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함께 살자. 네게 보여주고 싶은 게 많….”
그녀가 쥬벨의 어깨를 강하게 잡을 때였다. 좌측과 우측에서 그림자를 휘감은 듯한 비수가 날아들었다.
“크윽!”
쥬벨은 급히 걸음을 멈추며 눈앞으로 날아든 비수를 피해냈다. 그의 걸음이 멎은 틈을 이용하여 세 명의 암살자가 길을 막아섰다.
“…….”
암살자들은 말도 필요 없다는 듯 단검을 손에 쥔 채 돌진해왔다.
쥬벨은 주디엘을 내려놓고 암살자들을 향해 뛰어들었다. 어깨를 젖혀서 가장 앞에서 달려온 암살자의 단검을 피한 후 그의 발을 찍었다.
뿌드드득!
발이 땅에 박히며 암살자의 몸이 휘청인 순간 왼손의 단검으로 놈의 목을 찔렀다.
“끄으윽….”
첫 번째 암살자가 죽어가는 순간 뒤에 있던 두 명의 암살자들이 미간을 찌푸린 채 좌측과 우측에서 비수를 날려왔다.
피이이익!
동시에 날아드는 열 개의 비수. 다섯 개는 쳐내고, 세 개는 피했지만 두 개는 허리와 허벅지를 스치고 지나갔다.
“으윽….”
신음을 흘리며 무릎을 굽힌 순간 암살자들이 기회를 잡고 달려들었다.
터엉!
쥬벨은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굽힌 무릎을 펼치며 암살자들의 품으로 파고 들었다.
쩌어억!
단검으로 좌측에서 달려든 암살자의 심장을 갈랐다.
하지만 우측에서 들어온 암살자는 이 상황을 예측한 듯 몸을 뒤로 젖혀서 단검을 피해냈다.
후우욱!
놈이 오른손에 든 단검으로 쥬벨의 머리를 찍으려는 순간 뒤편에서 검은빛이 날아들었다.
퍼어억!
암살자는 머리에 검은 단검이 박힌 채 뒤로 넘어갔다.
“하아….”
주디엘이 단검을 날린 손을 내리며 입술을 떨었다.
“쥬벨. 괜찮아?”
“괜찮아. 누나가 더….”
쥬벨은 본인의 부상보다 주디엘이 살인을 한 것을 더 신경 쓰는 듯 그녀를 보며 입술을 씹었다.
“난 괜찮으니까. 걱정말고 가자. 이제 나도 달릴게.”
주디엘은 이빨로 입술을 내리누르며 앞으로 향했다.
“…….”
쥬벨은 죽은 암살자들을 보며 주먹을 말아쥐었다.
“미안하다.”
동료라고는 할 수 없지만, 비슷한 삶을 살았던 인생이었기에 할 수 있는 말은 그저 미안하다는 것밖에 없었다.
암살자들은 악의로 찬 눈이 아니라, 이해한다는 듯한 맑은 눈동자로 위를 올려보다가 숨이 끊어졌다.
쥬벨은 탁한 숨을 내쉬고서 주디엘과 함께 스란 부족 마을로 달렸다. 그는 뒤를 돌아보며 눈매를 깊게 찌푸렸다.
‘오는군. 그것도 지금까지와 달리 대규모야.’
숨어 있던 암살자들이 모두 오고 있는지 그 숫자가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았다. 이번에 잡힌다면 무조건 죽게 될 것이다.
“조금만 더….”
이 길은 자신만이 아는 스란 부족에게 향하는 지름길이다. 조금만 더 가면 부족 사람들이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뒤에 있는 암살자들이 가까워졌다.
‘제발. 제발!’
평생 빌어본 적 없는 신에게 기도하며 무거워지는 다리에 힘을 줄 때 불길을 가라앉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스란 부족의 주술사와 무인들이다. 불을 끄기 위해서 마을을 벗어나 이곳까지 나온 것 같았다.
가장 앞에 부족장이 있었는데 주술을 사용하는지 그의 전신이 푸른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족장님!”
쥬벨이 족장에게 다가갈 때 부족민 중 하나가 나무로 만든 창을 던졌다.
피이이잉!
빛살처럼 날아든 창이 뺨을 스치고 지나갓다. 화상을 입은 듯 아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접근하지 마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웃으며 인사를 나눴던 부족민이 분노에 차오른 시뻘건 눈동자를 드러냈다.
“필립.”
부족장이 앞으로 나오며 쥬벨의 가짜 이름을 읊조렸다.
“족장님 들어주십시오! 지금은 불을 잡을 때가 아닙니다.”
“그럼 무얼 해야 하지?”
그의 음성이 허탈함으로 가득 차오른 듯 기울어졌다.
“너를 죽여야 하는 것이냐?”
“예?”
“이곳에서 터진 불씨에서 네 온기가 느껴지더구나.”
부족장이 헛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내 심안은 특별하다. 물체의 온기를 볼 수 있지. 이곳에서 터진 불길은 너와 네 친구들의 작품이지 않느냐.”
“그건….”
쥬벨이 답을 하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실제로 이곳에 불씨를 심어둔 건 자신이었으니까.
“마, 맞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곧 암살자들이….”
“저들을 말함이냐.”
부족장이 뒤편을 가리켰다.
어느새 따라붙은 수십 명의 암살자가 그림자 속에서 섬뜩한 살의를 드러내고 있었다.
“불로 길을 막고, 암살자를 부른다. 이게 네가 원했던 것이겠지.”
그가 점점 더 거세지는 불길을 보며 턱을 끄덕였다.
“정을 주고, 마음을 준 대가가 이런 것이란 말이냐!”
부족장은 진심으로 분노한 듯 그의 눈동자 위로 시뻘건 분노가 타올랐다.
“…죄송합니다.”
쥬벨은 죄송하다는 말을 제외하고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실제로 스란 부족을 암살하려고 했던 건 사실이었으니까.
누나를 만났기 때문인지 죽고 사는 것보다 진심을 먼저 말하고 싶었다.
“저를 죽이셔도 됩니다. 다만 지금은 먼저 저들부터….”
“개소리!”
“너부터 죽여버리겠어!”
“필립!”
부족장을 대신해서 스란 부족민들이 악을 지르며 살기를 일으켰다. 그들 모두는 스란 부족에서 쥬벨과 가장 친했던 이들이었다.
“모조리. 모조리 죽여라!”
부족장이 떨리는 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외침에 스란 부족의 주술사와 무인들이 주디엘과 쥬벨에게 달려들었다.
스으으으으.
암살자들 역시 검과 단검에 살기를 휘감은 채 주디엘과 쥬벨에게 다가갔다.
쥬벨은 살의를 두른 채 뛰어오는 스란 부족의 무인들을 보며 얇은 웃음을 그렸다.
‘아예 말이 안 통할 줄이야.’
딱 한 마디만 들어주면 됐을 텐데, 저들은 아예 내 말을 들을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니다. 저들은 누구보다 순수하고 착한 이들이었으니, 배신감이 더 크게 다가왔을 것이다.
‘그래도 암살은 당하지 않아서 다행이군.’
스란 부족은 강하다. 암살이 아닌, 정면 대결이라면 환살대에게 전멸할 일은 없을 것이다.
“누나.”
쥬벨이 주디엘의 손을 놓으며 뒤로 손짓을 했다.
“물러나 있어.”
“쥬벨….”
그는 주디엘을 밀어내고 앞으로 나왔다. 양손에 단검을 말아쥐고, 가진 기운을 모두 끌어냈다.
조장들의 살법이나, 부족장의 주먹 한번 막을 수 없는 힘이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배신자를 죽여라!”
스란 부족과 암살자들이 동시에 달려든다. 악의와 살의가 흘러넘치는 전장의 중심에서 쥬벨이 이를 악물었다.
“으아아아아아!”
주디엘만큼은 어떻게 해서든 지킨다고 다짐하며 괴성을 지를 때 주디엘이 앞으로 나왔다.
“누나! 대체 왜!”
“오셨어!”
“뭐?”
주디엘이 어둑한 밤하늘을 올려보며 두 손을 모았다.
그 순간 달이 없는 하늘에 황금빛 태양과 은색의 달이 차오른다.
오연하게 명멸하는 불길과 서리가 태양과 달과 이어져 하계로 강림한다.
쿠와아아아아앙!
불길과 서리의 칼날이 스란 부족과 암살자들을 동시에 밀어냈다.
후우우욱!
숲을 지우는 화마보다 더 깊은 불꽃 속에서 금발의 검사가 걸어 나온다.
태양보다 진하게 타오르는 눈동자와 완벽하게 다져진 기파가 이곳에 선 모두를 압도했다.
“싸움을 멈추시오.”
나지막이 가라앉은 음성이 흐르자, 넋이 나가 있던 사람들의 눈에 빛이 돌아왔다.
“저 장포는….”
스란 부족장은 라온이 입은 흑룡포를 알아차리고 입술을 떨었다.
“주디엘.”
라온이 두 검을 내린 채 뒤에 선 주디엘을 불렀다.
“예.”
주디엘이 앞으로 나와 부복했다.
“누, 누나?”
쥬벨이 이런 상황에서 무릎을 꿇은 주디엘을 보며 눈을 부릅떴다.
“이 사태에 너와 네 동생의 책임이 있나?”
“있습니다.”
“그런가.”
라온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책임이 있다는 말을 들으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대충이나마 이해가 갔다.
“먼저 오해를 풀고 싶소.”
그 말을 하며 스란 부족의 장으로 보이는 남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대화를….”
“오해를 푼다?”
부족장이 부서질 정도로 강하게 이를 갈았다.
“그 장포가 아니었다면 당장 당신의 목을 쳤을 것이오. 물러나시오!”
그는 이미 이성을 잃은 듯 지독할 정도로 사나운 눈빛을 드러냈다.
고오오오오.
암살자들 역시 대화를 할 생각이 없다는 듯 피부가 아려올 정도의 살기를 뿜어냈다.
콰아아아앙!
둘 다 싸움을 멈추지 않겠다는 의지가 불씨가 된 듯 스란 마을 주변으로 거대한 폭발이 연달아 일어났다.
“좋소.”
라온이 신검을 쥔 손을 뻗었다. 사위를 휘감은 불길이 파도처럼 출렁이더니, 그의 손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 모습은 불과 함께 춤을 추는 것 같기도 했고, 불 자체를 지배하는 듯 보이기도 했다.
그 신비로운 광경에 모두가 침묵할 때 라온이 앞으로 나왔다.
“스란 부족의 분노도.”
신검으로 스란 부족을 가리키며 담담한 눈빛을 보였다.
“살귀들의 악의도 모두 내가 감당하지.”
마검으로 암살자들을 겨누며 서늘한 빛을 일으켰다.
쿠우웅!
라온이 왼발 진각을 찍었다. 바스러지는 대지 위에서 피어나는 패왕의 기세가 이 세계를 짓눌렀다.
“내가 지그하르트의 라온이다.”
신검과 마검에서 타오르는 그의 굳건한 의지가 불길과 서리가 되어 뻗어나갔다.
“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