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92화
홍염귀의 정령화가 완전히 깨지고, 놈의 가슴팍에서 시뻘건 핏물이 뿜어져 나왔다.
터어억.
라온이 오른손에 쥐고 있던 제천검을 떨어뜨렸다. 더이상 검을 잡고 있을 힘이 없었다.
하지만 홍염귀의 눈동자에 차오른 불길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놈은 죽음을 앞에 두고서도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크아아아아아!”
홍염귀가 괴성을 지르며 라온이 아니라, 세계수 쪽으로 손을 뻗었다.
피부가 모두 뜯겨나간 시뻘건 손아귀에서 지독할 정도의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생명력을 불태워서 일으킨 홍염이었다.
쿠구구구구!
라온은 홍염귀의 불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 때문에 얼굴을 얻어맞은 것처럼 뒤로 튕겨 나갔다.
-불쟁이 주제에! 본왕이 우습게 보이는 것이냐!
-…….
반격하고 싶었지만, 아직도 이어지는 라스와 불의 정령왕의 경합 때문에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려왔다.
이대로 기절하고 싶었지만, 홍염귀가 살아 있기에 억지로 정신을 다잡았다.
쿠와아아아아아!
하늘에서 폭포가 돋아난 듯 고아한 물길이 흘러내려 홍염귀의 불길을 막아섰다. 물의 정령왕의 월수였다.
“방해하지 마라!”
홍염귀는 살벌한 양의 피를 토하면서도 불길을 거두지 않았다. 이대로 있으면 어차피 죽을 것이니, 끝까지 발악하려는 것 같았다.
치이이이이익!
놈의 불길이 더 짙게 타오르며 물의 정령왕이 쏟아낸 월수를 증발시키기 시작했다.
라온은 점점 얇아지는 월수의 폭포를 보며 눈을 부릅떴다.
‘물의 정령왕이 밀린다고?’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시선을 들자, 몸을 가누지 못한 채 비틀거리는 시얀이 보였다. 그녀의 코와 입에서 핏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한계?’
아니, 지금까지 버틴 게 이상한 일이야.
시얀이 하이엘프라고 해도 처음부터 정령왕의 힘을 다루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여태까지 버텨준 것만으로도 그녀는 제 할 일을 다 했다.
‘내가 끝을 내야 해.’
리메르는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고, 대장로와 장로들은 부상이 심했으며, 다른 엘프들은 이 열기에 접근조차 할 수 없다. 이 싸움은 내 손으로 끝내야 했다.
‘하지만 방법이….’
검계는 닫혔고, 라스와 불의 정령왕의 싸움 때문에 검을 휘두르기는커녕 서 있을 힘도 없었다.
홍염귀도 그걸 알고, 나를 무시한 채 오직 세계수만 공격하는 것이다.
‘잠깐….’
나를 무시한다?
라온은 이쪽을 쳐다보지도 않는 홍염귀를 살피며 왼손에 들고 있는 진혼검을 매만졌다.
‘있어.’
홍염귀를 죽일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 남아 있었다.
라온이 진혼검을 쥐고 있던 왼손에 힘을 풀고, 오른발로 다 타버린 땅을 내리찍었다.
발목에서부터 올라오는 탄력을 허벅지와 허리, 어깨로 이어서 단숨에 진혼검을 쏘아냈다.
피이이이잉!
오러 대신 비도술의 무리를 담아낸 붉은 칼날이 홍염귀의 심장을 향해 쇄도했다.
“흥!”
홍염귀는 진혼검에 오러가 실려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물의 정령왕이 쏟아낸 월수를 깨는 데만 집중했다.
열기의 벽 때문에 진혼검이 닿지도 못하리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후우우우웅!
실제로도 진혼검은 요기를 두르고 있음에도 홍염귀의 열기에 밀려서 앞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휘청거렸다.
라온은 가라앉을 것처럼 흔들리는 진혼검을 보고서도 움직이지 않았다. 아직은 때를 기다려야 했다.
홍염귀는 진혼검이 본인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모든 정신을 물의 정령왕에게 집중했다.
그 순간 라온의 눈동자에 마지막 화염이 차올랐다.
‘지금!’
잠시나마 회복한 상단전을 열었다. 불꽃을 뚫고, 홍염귀를 죽이겠다는 살의를 진혼검에 담았다.
우우우우웅!
극한의 상황이었기 때문일까. 진혼검과 나의 의념이 처음부터 하나였다는 듯 맞물린다.
익을 것 같았던 뇌리에 잠시나마 시원한 바람이 분 듯한 쾌감이 일었다.
치이이이이잉!
열기에 밀려서 추락하던 진혼검이 떨림을 멈춘 채 솟구친다.
강환을 담았을 때보다 더 빠르게 나아간 붉은 칼날이 홍염귀의 불꽃을 뚫었다.
퍼어어어억!
그야말로 빛살. 섬광처럼 뻗어나간 진혼검은 홍염귀의 투구를 으깨고 놈의 머리통에 박혔다.
“커헉!”
홍염귀의 손이 힘없이 떨어진다. 가슴을 갈라도 죽지 않았던 놈의 생명이 바스러지기 시작했다.
“이, 이기어검이라니….”
홍염귀가 라온을 보며 말라붙은 입술을 부르르 떨었다.
“나를 속이고 있었구나….”
“아니.”
라온이 거친 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저었다.
“우연이다.”
거짓말이 아니다. 너무도 급박한 상황이었기에 진혼검과 마음이 통할 수 있었다.
평범한 상황이었다면 100번 해서 100번 모두 실패했을 것이다.
“으으….”
홍염귀가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놈은 세계수를 향해 손을 뻗으며 입매를 비틀었다.
“소,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었는데….”
그 말을 끝으로 홍염귀의 숨이 끊어졌다. 혹시나 하여 지켜보았지만, 놈은 일어나지 않았다.
“지독한 놈….”
라온이 탄식을 흘리며 뒤로 넘어갔다.
‘이제 정말 한계야.’
체력도, 오러도, 정신력도 모조리 불살랐다. 이 이상은 눈을 뜨고 있을 힘도 없었다.
‘남은 적들은 알아서 처리할 수 있겠지.’
적귀사와 카산드라에 이어서 홍염귀까지 베었으니, 남은 적들은 엘프들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다 귀찮고, 그저 자고 싶었다.
왜냐하면….
-오냐! 그렇게까지 발버둥 친다면 아예 먹어 치워 주마!
-…….
지금도 라스와 불의 정령왕이 내 몸 안에서 싸우고 있었으니까.
힘으로는 라스가 압도하고 있지만, 불의 정령왕은 거머리처럼 떨어지질 않았다.
‘그만 싸워. 이 미친 것들아….’
나 이러다 진짜 죽어!
* * *
리메르가 쓰러진 라온에게 기어가며 헛바람을 흘렸다.
“결국 해내다니, 저 괴물 녀석.”
라온은 결국 본인보다 훨씬 더 강한 홍염귀의 불꽃을 가르고, 놈의 머리통을 깨부쉈다.
아무리 불의 정령왕과 물의 정령왕의 도움이 있었다고 해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마지막 그 검술.’
이기어검이었지….
완성도가 떨어져서 홍염귀가 방심하지 않았다면 통하지 않았을 테지만, 라온이 던진 단검은 분명 이기어검의 흐름을 가지고 뻗어나갔었다.
‘할배가 감화시를 전수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스테린이 라온에게 감화시의 묘리를 알려준 건 일주일도 되지 않은 일이다. 이 짧은 기간에 그 무리를 파헤치고 본인의 것으로 만들었다는 점이 경악스러웠다.
‘괴물. 아니, 그런 말로도 부족해.’
처음엔 천재라 불렀고, 지금은 괴물이라 칭하지만 이젠 저 단어들로도 라온을 평가할 수가 없어 보였다.
“잘했다.”
리메르가 간신히 라온에게 다가가서 검게 그을린 금발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고맙다.”
라온이 아니었다면 세이피아는 잿더미가 되었고, 에덴은 새로운 초월자를 맞이했을 것이다.
제자이자, 부하라는 관계를 떠나 라온이라는 사람에게 감사할 뿐이었다.
“라온 님!”
시얀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가 손등으로 코피를 닦으며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래. 저 아이에게도 은인이지.’
시얀이 다시 용기를 내게 되어 정령왕을 소환하게 된 것도 라온 덕분이다.
이 녀석이 일어나면 고맙다고 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시얀. 넌 괜찮….”
“라온 님!”
그녀는 리메르를 본 척도 하지 않고 라온의 앞에 무릎을 꿇고, 그의 상태를 살폈다.
“너 내 꼴은 안 보이냐….”
“오빠는 살았잖아. 그거면 됐지!”
시얀은 가서 약이나 바르라고 중얼거리면서 라온의 손을 잡았다.
“라온 님. 괜찮으세요?”
라온은 이미 정신을 잃었기에 대답을 하지 못했다.
“어떻게 해!”
시얀은 작아진 물의 정령왕에게 월수를 받아와 라온의 입에 흘려 넣어주었다. 내상 때문에 입술에서 핏물이 흘러내리고 있음에도 그녀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리메르.”
남은 적들을 처리하고 다가온 대장로가 리메르에게 손을 뻗었다.
“후….”
리메르가 상처가 가득한 대장로의 손아귀를 잡고 몸을 일으켰다.
“후….”
대장로가 라온을 보며 짧은 탄성을 흘렸다.
“저 괴물은 대체 뭐냐.”
“라온 지그하르트. 지금은 제 제자이자, 수하이지만 훗날에는….”
리메르는 눈을 감은 라온을 내려다보며 옅은 미소를 그렸다.
“제가 받들어야 할 왕이 될 아이입니다.”
그는 지금까지와 달리 진지한 음성으로 왕의 이름을 담았다.
“그런가.”
대장로는 놀라지도, 타박하지도 않았다. 그럴 만한 그릇이라는 듯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받듦에 우리도 포함되어야 할지도….”
“내가 말했지!”
그가 짧게 숨을 고를 때 에리안이 다가와 주먹을 들어 올렸다.
“저 인간! 정령왕의 계약자라고!”
에리안은 길고 긴 믿음이 드디어 보상받았다며 시원하게 웃었다.
“거기다 정령왕의 계약자로 끝나는 게 아니라, 우리 엘프들의 구원자까지 되었잖아! 내 예감은 틀리질 않는다니까!”
그는 히죽거리면서 멍하니 서 있는 레이란에게 손짓했다.
“레이란. 넌 라온을 안 믿었잖아! 지금 기분이 어때?”
“그, 그게….”
레이란은 대답하지 못하고 말을 더듬었다.
“너 나보고 미쳤다고 했지? 이게 바로 현명한 투자라는 거야!”
에리안은 세이피아가 살아남은 것보다 라온이 정령왕의 계약자가 된 게 더 기쁜 듯 성격 자체가 바뀌어 버렸다.
“이제 정령계도 안정을 되찾겠지. 물의 정령왕과 불의 정령왕이 살아났으….”
“조용히 좀 해요!”
그가 목소리를 높일 때 라온을 살피던 시얀이 빽 소리를 질렀다.
“시, 시얀 님?”
“라온 님의 상태가 이상해요.”
“이상하다니?”
리메르가 다급하게 라온에게 다가갔다.
“라온 님 내부에서 열기와 냉기가 싸우고 있어. 한쪽은 불의 정령왕이 분명한데, 다른 쪽은 뭐지?”
시얀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고개를 떨었다.
“다른 하나?”
“응. 냉기인데, 엘라임보다도 더 강한 냉기야….”
그녀는 물의 정령왕보다도 더 진하고 거대한 기운이 느껴진다며 고개를 저었다.
“두, 두 번째 물의 정령왕 아니야? 아니면 네 물의 정령왕이 라온과도 계약을 맺었다던가….”
에리안이 시얀을 보며 눈을 끔벅였다.
“그럴 리가 없잖아요!”
시얀은 고개를 홱 젓고서 다시 라온을 보았다.
“지금 라온 님의 몸속에 있는 건 어…?”
“왜?”
“가, 갑자기 불의 정령왕의 기운이 사라졌어! 뭐, 뭐지?”
그녀는 이해가 되질 않는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어…?”
“정말이다. 불의 정령왕의 기운이 느껴지질 않아.”
리메르와 대장로도 정령왕의 기운이 사라진 것을 느끼고 입을 떡 벌렸다.
“그, 그럼 어떻게 되는 거지? 라온이 위험한 건가?”
에리안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라온을 살폈다.
“아뇨. 오히려 냉기도 빠지면서 안정되고 있어요.”
시얀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불의 정령왕이 정령계로 돌아간 거 아니야?”
리메르가 턱을 긁적이며 물었다.
“아닌 것 같은데….”
시얀은 안색이 편안해진 라온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 * *
라온이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여기는….’
나무줄기를 곱게 엮은 듯한 갈색 천장이 보인다. 처음부터 머물던 숙소가 아니라, 다른 엘프의 집인 것 같았다.
‘하긴 다 타버렸을 테니까.’
세계수 뒤편에 있던 집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되었기에 날 이곳으로 옮겨온 것 같았다.
‘쉽지 않은 싸움이었어.’
홍염귀는 강했다. 아니, 강해졌다. 싸우면서 강해진다는 게 얼마나 사기 같은 능력인지 이제야 알 수 있었다.
‘다만….’
라온이 아직 힘이 다 차오르지 않은 손으로 주먹을 말아쥐었다.
‘그놈 덕에 나도 강해질 수 있었지.’
불의 정령왕과 라스의 힘을 이용하여 생사결을 펼친 덕분에 그랜드 마스터에 오른 후 멈춰 있던 경지가 조금이나마 상승했다.
단순히 경지만 오른 것이 아니라, 높은 힘을 다루는 경험을 쌓았기에 훗날 멀리 나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건 그렇고….’
라온이 눈을 감고 자신의 몸 상태를 다시 확인해보았다.
‘이제 안쪽의 싸움도 끝났나 보네.’
홍염귀를 쓰러뜨리는 순간까지 싸우고 있던 라스와 불의 정령왕의 기운도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둘 다 빠진 것 같았다.
‘라스가 이겼겠지.’
불의 정령왕이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었지만, 힘으로 압도하는 라스가 결국 이겼을 게 분명했다.
‘라스.’
-왜 부르느냥.
라스의 이름을 부르자, 녀석이 팔찌에서 슬금슬금 기어 나왔다.
‘불의 정령왕은 어떻게 됐어?’
-어떻게 되긴 본왕의 위엄에 밀려 짜졌느니랑.
녀석은 이쪽을 보지 않은 채 코웃음을 쳤다.
‘그럼 정령계로 돌아간 건가?’
라온이 쩝 입맛을 다셨다. 불의 정령왕을 제대로 보고 싶었는데, 그냥 사라졌다고 하니 조금 아쉬웠다.
-…….
라스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은 채 통통한 볼을 씰룩거렸다.
‘그런데 너 뭐하냐?’
-뭐, 뭘 말이냥.
‘음?’
라온이 라스의 뒤통수를 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평소와 달리 볼을 가만두질 못하고, 발음도 이상했다. 꼭 무언가를 먹고 있는 것 같았다.
‘너 뭐 먹어?’
-흡!
라스가 들켰다는 듯 통통한 손으로 입을 꼭 막은 채 고개를 저었다.
‘야.’
라온이 라스의 머리통을 잡고 고개를 돌렸다. 예상대로 녀석은 입에 무언가를 넣고 씹고 있었다. 기묘한 불안감이 화상처럼 등골을 스쳤다.
‘뱉어봐.’
영체인 라스가 평범한 음식을 먹고 있을 리가 없었다. 요상한 짓을 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시, 싫으니라! 본왕의 것이니라!
라스는 절대 안 뱉겠다며 입을 앙다물었다.
‘뱉으라고!’
라온이 라스의 입을 잡았다. 억지로 입을 벌리려고 했지만 턱 힘이 얼마나 좋은지 근력을 모두 써도 벌어지질 않았다.
‘대체 뭘 먹고 있는 거야!’
-사, 사탕이니라.
라스는 사탕일 뿐이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손을 휘휘 저었다.
‘사탕?’
-그렇느니라. 딸기 맛 사탕이니까 신경 쓰지 말거라.
‘딸기 맛….’
딸기 맛이라고 하니, 이전에 라스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녹색 정령은 청포도 맛이고, 빨간 정령은 딸기 맛이니라.]
라스가 정령계에 다녀왔다며 했던 말이었다.
라온이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다시 라스를 보았다.
‘너 서, 설마.’
-아니니라!
‘아니기는!’
이를 악문 채로 라스에게 다가갔다. 전심전력을 다해서 녀석의 입을 억지로 벌렸다.
투두둑.
가늘게 벌어진 라스의 입에서 시뻘건 사탕 하나가 떨어졌다. 어찌나 씹어댔는지 이곳저곳에 이빨 자국이 나 있었다.
‘진짜 사탕인… 어? 불꽃?’
라온이 사탕을 자세히 살피다가 눈을 부릅떴다. 사탕 주변으로 꺼질 듯 연한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불꽃이 이상하게도 친숙했다.
‘서, 설마….’
설마가 아니라 확실했다. 홍염귀와 싸울 때 내게 힘을 전해주었던 불의 정령왕의 기운이었다.
“정령왕이 죽었어….”
라온이 머리를 부여잡은 채 입술을 부르르 떨었다.
“천 년 만에 나타난 정령왕이 다시 죽었다고!”
-그러게 밥 달라니까….
“야이 식충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