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588화 (587/653)

제587화

시얀이 은은하게 떨리는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항시 가라앉아 있던 푸른 눈동자에 환희와도 같은 감정이 피어났다.

‘다, 달라졌어.’

조금 전 공명 수련을 할 때 나와 세상이 하나로 이어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찰나에 불과했지만, 내 안의 무언가가 달라졌다는 건 분명했다.

‘틈이 벌어진 거야.’

언제나 내 영혼의 길을 가로막았던 굳건한 벽에 미세한 균열이 돋아났다. 그 틈을 파고든다면 내 의지를 세계와 합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아아….”

시얀이 탁한 숨을 내쉬며 바닥으로 기울어졌다.

‘드디어 닿았어.’

평생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동굴을 걸었다.

대체 이 동굴의 끝은 어디일지 절망하며 억지로 발을 움직였는데, 드디어 출구로 향하는 빛을 본 느낌이었다. 온몸에 힘이 쭉 빠져서 누워 있는 것도 힘들었다.

‘포기하지 않으면 되는구나….’

솔직히 포기한 거나 마찬가지였는데, 우상인 라온 덕분에 마지막으로 의지를 다질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이뤄낸 성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내일 바로 말씀드려야… 아.’

시얀이 라온을 떠올리며 가슴을 쓸어내리다가 멈춰 섰다.

‘그러고 보니 라온 님의 기운이 느껴진 것 같았는데….’

영혼을 가로막는 벽에서 돋아난 균열 속에서 라온의 오러와 비슷한 따스함과 선선함이 동시에 피어났었다.

‘설마.’

라온은 지금의 상태를 바꿀 수 있다며 내 안에 오러를 넣고 육체 내부를 살폈었다. 아무래도 그때 남은 오러가 영혼을 가두는 벽을 깨주었던 것 같았다.

시얀이 두 손을 모으며 연한 미소를 흘렸다.

‘라온 님 덕분이었구나….’

내일 그를 만나면 고맙다는 인사를 하겠다고 다짐하며 몸을 일으킬 때였다.

“시얀! 나와!”

문이 부서질 듯이 뒤흔들리며 리메르의 거친 음성이 들려왔다. 조금 전에 왔을 때와는 달리 다급함이 깃든 목소리였다.

“오, 오빠?”

시얀은 본능적으로 큰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깨닫고 바로 문을 열어주었다.

“왜, 왜 그래?”

“당장 나와! 결계가 깨졌어!”

“결계?”

리메르의 시선을 따라 허공을 올려보았다. 대수림 속에서 세이피아를 감추고 보호해주는 세계수의 결계가 녹아내리고 있었다.

“이, 이게 무슨….”

절대 깨질 리 없다고 생각했던 굳건한 결계는 허무할 정도로 잘게 조각나 흩어지고 있었다.

“감상할 시간이 없어.”

리메르는 멍하니 선 시얀의 허리를 왼팔로 끌어안고, 스테린의 집이 있는 방향으로 달렸다.

“대, 대체 무슨 일이야!”

“나도 아직은 몰라.”

그는 숲 전체로 퍼져나가는 화마의 열기를 식히려는 듯 더 빠르게 나아가며 무너지는 결계를 살폈다.

‘입구만이 아니라, 사방이 다 뚫리고 있어.’

그것도 강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아무래도 이 결계를 깨는 이들은 동족인 것 같았다.

‘세이피아에도 배신자가 있는 건가.’

짧게 생각 정리를 끝낸 순간 스테린의 집이 보였다. 바로 세계수를 감추고 있는 결계의 틈을 열었다.

리메르는 푸른 빛과 함께 열리는 결계의 틈을 보며 시얀에게 턱짓을 했다.

“넌 세계수 옆에 꼭 붙어 있어.”

세계수를 지키는 결계는 세이피아를 감추던 결계와는 격이 다른 내구성을 지니고 있다.

내부에 스테린을 지키기 위해서 경계를 서는 장로와 가디언들도 있으니, 세이피아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리메르!”

세계수로 통하는 길을 열자마자, 대장로가 밖으로 튀어나왔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배신자가 있는 것 같아요.”

“배, 배신자?”

“할배가 의식에 들어가자마자, 결계를 열고 불을 지른 것을 보면 내부에 배신한 놈이 있다는 뜻이죠.”

리메르는 이곳까지 오면서 정리했던 바를 그대로 말해주었다.

“으음, 확실히 그럴 가능성이 높군.”

대장로는 꼰대력이 있는 것과 다르게 리메르의 의견을 빠르게 받아들였다.

“후우….”

그가 미동조차 하지 않는 스테린의 육체를 보며 입술을 씹었다.

“세이피아의 모든 동족들을 이 안으로 들여보내야 합니다.”

리메르가 결계를 개방하라며 손을 까딱였다.

“불가하다.”

대장로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네 입으로 배신자가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 배신자가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모두를 받아들였다가 수호자님이나, 세계수에 문제가 생기면 감당할 수 없다.”

“그렇다고 이대로 놔둬서 동족들을 다 불태워 죽일 거예요?”

리메르는 대장로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제가 막을 테니까. 일단 다 들여보내라구요!”

“네 할아버지가 위험할 수도 있단 말이다!”

“할배라면 저처럼 했을 겁니다!”

“음….”

대장로는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한 듯 반박하지 않았지만, 동족들을 들여보낸다는 말도 없었다.

“하아….”

리메르도 이번만큼은 선택이 어렵기에 쉽사리 입을 떼지 못했다. 잠시 소강상태가 이어질 때 두 사람의 발밑으로 화살이 날아와 박혔다.

“레이란의 화살이다.”

“그 아이인가….”

리메르가 화살에 접혀 있는 종이를 펼쳤다. 피로 적었는지 붉은 글씨로 지금 이 상황에 관한 정보가 적혀 있었다.

“내부의 배신자가 아니었어!”

그는 이탈자들이 결계를 풀었다는 정보를 보고서 주먹을 움켜쥐었다.

“대장로님.”

“후우, 세이피아의 모든 동족들을 2차 결계 내부로 받아들인다. 지금 당장!”

“대장로?”

대장로의 지시에 놀란 다른 장로들이 눈을 부릅떴다.

“이탈자들이라고 해도 세계수를 지키는 결계는 쉽게 풀 수 없다. 결계 내부에서 세계수의 힘을 받고 싸우는 게 최선의 방법이다.”

“드디어 옳은 말을 하네.”

리메르가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서 손가락을 튕겼다.

“뭣들 해! 빨리 나가서 모두를 데리고 와!”

“아, 예!”

멍하니 서 있던 가디언들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외부로 달려 나갔다.

“오, 오빠! 라온 님은?”

시얀이 떨리는 다리로 기어와 라온에 대해 물었다.

“걱정 마.”

리메르가 손가락으로 지독한 불길이 타오르는 세이피아의 입구를 가리켰다. 하늘에서 은색의 빛무리가 번지며 숲 전체를 집어삼킬 것처럼 타오르던 불길과 연기가 단 한 순간에 조각이 된 것처럼 얼어붙었다.

“저놈은 안 죽으니까.”

*      *       *

라온은 눈앞에 선 적들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역시 에덴이었나.’

홍색의 불길을 코트처럼 걸친 남성은 외뿔이 달린 도마뱀의 투구를 착용하고 있었다. 저런 생생한 몬스터 형태의 투구를 쓰는 미친놈들은 오직 에덴의 귀신들뿐이다.

‘강해.’

그랜드 마스터에 오른 나보다 더 높은 격과 기세가 느껴졌다. 화속성 저항력을 뚫고 들어오는 강대한 열기에 피부가 모두 타버릴 것만 같았다.

‘저거 하나로도 버거운데….’

라온이 인상을 구긴 채로 에덴의 귀신 옆에 자리 잡은 잿빛 피부의 엘프들을 살폈다.

‘저 이상한 엘프들까지.’

엘프의 아름다운 외형은 그대로지만, 피부가 시체처럼 짙은 회색이었고, 자연의 기운이 아니라, 죽음을 두른 듯한 암울한 기운을 휘감고 있다. 사령술사를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빠, 빨리 왔군.”

말이 뚝뚝 끊어지는 에리안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양팔은 화상으로 인해 진물이 가득 잡혔고, 화살에 꿰뚫렸는지 큼지막한 구멍까지 돋아나 있었다. 살아있는 게 용한 상태였다.

‘싸우는 게 아니라, 지키려고 했군.’

에리안의 보법은 특별하다. 저들을 이길 수는 없어도 도망치면서 시간을 끌 수는 있었는데, 저런 상태가 된 것을 보면 세이피아의 입구를 지키기 위해서 정면에서 버틴 것 같았다. 대단한 정신력이었다.

“에리안….”

“난 괜찮다. 그보다 적을 봐라.”

에리안은 정신력으로 고통을 극복한 듯 본인이 아니라 적을 보라고 읊조렸다.

“저 투구. 이프리트의 투구다.”

“이프리트…?”

라온이 눈을 부릅뜬 채 되물었다.

“이프리트라면 불의 정령왕?”

“그렇다….”

에리안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것을 태우는 홍색의 불꽃, 그리고 저 투구의 외형을 보면 확실하다. 저건 불의 정령왕 이프리트의 힘을 지니고 있어.”

“그런….”

라온이 당황하여 입술을 씹을 때 홍색의 불꽃이 백은의 오로라를 뚫고 밖으로 튀어나왔다.

-흐음….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배가 고프다며 발버둥 치던 라스가 이프리트의 투구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확실히 불쟁이 놈의 기운은 맞구나.

‘정말 불의 정령왕이라는 거야?’

-그렇느니라. 다만….

녀석은 얇은 비웃음을 그렸다.

-본래의 불쟁이에 비해 터무니없이 약하느니라. 아무래도 제대로 된 힘은 이어받지 못한 것 같군.

그 말을 듣고서 다시 이프리트의 투구를 보았다.

‘확실히….’

정령왕이라면 초월에서도 꽤 높은 급일 텐데, 지금 눈앞에 있는 놈에게서는 그랜드 마스터 수준의 격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나보다 강한 건 분명하지만, 불의 정령왕의 힘을 이어받았다고 하기에는 많이 처지는 무력이었다.

“홍염귀.”

중앙에 선 잿빛 피부의 엘프가 이프리트의 투구를 보며 눈매를 찡그렸다.

“무얼 하는 거냐.”

그녀는 멍하니 선 홍염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럼 저 엘프는?”

“세이피아의 배신자다. 이름은 카산드라라고 하지.”

에리안이 카산드라를 보려보며 바득 이를 갈았다.

“배신자?”

“그래. 이전에 세이피아와 길이 달라져서 떠난 이탈자들이 배신자가 되어 돌아왔더군.”

그는 은혜를 원수로 갚을 줄은 몰랐다며 헛웃음을 흘렸다.

‘그 이탈자인가….’

정화 의식 전에 리메르가 이탈자들에 대해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그는 의견이 맞지 않아서 떠났다고 했는데, 지금 보니 아예 종족까지 달라진 것 같았다.

“홍염귀!”

카산드라의 외침에 홍염귀가 지옥불을 두른 듯한 안광을 번뜩였다.

“저 인간 무언가 이상하다.”

홍염귀가 라온을 보며 눈매를 찡그렸다. 그의 강렬한 눈빛이 잘게 흔들렸다.

“이상하다고?”

“지닌 무력보다 훨씬 거대한 격이 느껴진다. 정말 인간이 맞는 건가?”

그는 드래곤이 변화한 게 아니냐며 손끝을 까딱였다.

“드래곤이고 뭐고….”

“드래곤일 리가 없지. 저 인간은 드래곤을 죽인 용살자니까.”

카산드라가 홍염귀에게 인상을 쓸 때 그들의 뒤에서 담담한 음성이 들려왔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목소리였다.

재가 되어 가라앉는 수풀 사이로 붉은 뱀의 투구를 쓴 남성이 걸어 나왔다.

‘저 투구는….’

색이 붉은 것만 제외하면 에덴에 납치당했을 때 보았던 금면사의 투구와 완전히 똑같은 형태였다.

“금면사?”

“금면사는 죽었어. 나는 적귀사다.”

그는 스스로를 적귀사라 칭하며 홍염귀의 옆에 섰다.

“이곳은 우리에게 맡기고 네 할 일을 하러 가도록.”

적귀사가 손가락을 들어 세이피아를 가리켰다. 결계가 모조리 타버렸는지 세이피아의 입구가 그대로 보이고 있었다.

‘할 일을 한다?’

라온이 홍염귀와 적귀사를 보며 눈매를 찡그렸다.

‘단순히 습격을 하러 온 게 아닌가?’

잿빛 엘프와 홍염귀, 적귀사 셋이 힘을 합쳐서 날 죽이는 게 세이피아를 깨부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일 텐데, 저들은 홍염귀를 먼저 보내려고 했다. 아무래도 다른 계획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럼 보낼 수 없지.’

라온이 깊은 족적이 찍힐 정도로 대퇴부에 힘을 주며 나아가 사라지려는 홍염귀에게 서리연을 그어 내렸다. 은빛의 칼날과 그 뒤를 그림자처럼 따르는 서리의 칼날이 홍염귀의 목을 향해 쏟아졌다.

쩌어어어엉!

홍염귀는 팔뚝에 불꽃의 방패를 세워 서리연의 두 참격을 동시에 막아냈다. 불길과 냉기가 경합하며 허연 수증기가 허공을 가득 채웠다.

“이놈….”

“인사도 안 했는데, 어딜 가려고.”

라온이 왼발 직각을 밟았다. 무학의 중심은 하체. 밑에서부터 끌어 올린 중심을 제천검의 칼날로 이으며 설풍검결을 펼쳐냈다.

치이이이잉!

한 번의 휘두름이 첫 번째 초식부터 다섯 번째 초식까지 이어지며 제천검의 칼날 위로 푸른 섬광이 뻗어나갔다.

쩌어어어엉!

찬란한 빛무리가 홍염귀의 방패를 깨뜨리고, 놈의 심장을 향해 쇄도했다.

캬갸갸갸갸걍!

칼날이 붉게 달아오른 피부를 뚫기 직전 제천검의 투로가 우측으로 밀려났다. 홍염귀가 아니다. 놈의 옆에 서 있던 적귀사와 카산드라의 화살이 제천검을 쳐낸 것이다.

“빨리 가라. 네 위치는 여기가 아니야.”

적사귀는 어서 이동하라며 홍염귀에게 손짓을 했다.

“그놈 죽이지 마라. 돌아와서 내가 태워버릴 테니까.”

홍염귀는 라온을 죽일 듯이 노려보다가 세이피아가 있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홍색의 불길이 휘감은 놈의 육체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나아갔다.

“못 간다니까.”

라온이 태화삼보를 밟으며 홍염귀의 옆으로 따라붙었다.

제천검의 칼끝에 세운 서리의 나무로 화령을 일으켜서 홍염귀를 가두려 했지만, 적귀사의 검격과 카산드라의 화살이 다 피지 않은 나무를 꺾어버렸다.

터어어엉!

결국 홍염귀는 화령을 걷어낸 후 세이피아로 들어섰다.

쯧.

라온이 적귀사와 카산드라를 보며 짧게 혀를 찼다.

“집착하는 건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이쪽도 할 일이 있거든. 좀 봐줘.”

“그렇게 빨리 죽고 싶나?”

“사실 좀 죽고 싶기는 해.”

적귀사가 픽 웃으며 검을 휘돌렸다.

“너희는 큰 착각을 하고 있어.”

라온이 제천검 위로 붉은 기류를 일으키며 적귀사에게 다가갔다.

“둘이서 날 막을 수 있을 것 같나?”

“건방짐이 하늘을 찌르는군.”

카산드라가 짜증이 돋은 듯 미간을 깊게 구겼다.

“원래 저런 인간이야.”

적귀사가 어깨를 으쓱이고서 검을 다잡았다. 저리 말하는 것을 보면 가면만 바꿨을 뿐 금면사가 맞는 것 같았다.

“드래곤을 잡았다고 기고만장해진 것 같은데, 어차피 해적왕이 다 한 일….”

라온은 적귀사가 입을 놀리는 순간 태화이보를 밟았다. 한순간 시야가 어둑해질 정도로 빠르게 나아가 중단에 세운 제천검을 찔러넣었다.

만화공 천화.

적섬삽십육결.

서른여섯 방위를 찌르는 불꽃의 칼날이 적귀사의 전신을 휘감았다.

어디에도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적귀사가 눈동자를 떨 때 카산드라의 손이 움직였다. 화살을 걸지 않은 활을 검처럼 휘두르는데, 마기처럼 검은 기운이 매섭게 뻗어나갔다.

쩌어어어엉!

카산드라의 빠른 반응 덕분에 적귀사는 우측 어깨와 허벅지만을 베인 채 적섬삼십육결을 벗어날 수 있었다.

다만 그의 눈빛은 죽음을 마주친 것처럼 경련하고 있었다.

“하,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는데, 말도 안 되게 강해졌군.”

적귀사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터어엉!

라온은 입을 놀릴 시간도 주지 않겠다는 듯 사납게 대지를 박찼다. 뒤로 물러선 적귀사의 좌측으로 따라붙으며 제천검에 불꽃의 검집을 입혔다.

“흥!”

카산드라가 손가락을 비틀며 여섯 발의 화살을 쏘아낸다. 화살끼리 부딪치며 날아드는데, 궤적을 쫓기 힘들 정도로 투로가 난해했다.

‘대단한 궁술이지만….’

수호자님의 감화시는 발끝도 못 쫓아가.

라온이 불의 고리를 공명시키며, 왼손으로 진혼검을 뽑아 들었다.

요기를 이용한 염주벽을 펼쳐서 위협적인 화살 다섯 개를 막아내고, 마지막으로 날아드는 화살은 발로 차버렸다.

터어어엉!

화살을 찬 탄력을 이용하여 한층 더 바르게 적귀사의 앞에 이르렀다.

“크윽!”

적귀사가 당황하며 검을 찔러넣는다. 날카로운 검격이 심장을 파고들려 했지만, 무시하고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라온 지그하르트 류 검식.

제3형 은검몽.

꿈결처럼 아련하게 그어진 칼날이 적귀사의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어어억….”

적귀사는 목에 그어진 붉은 선을 막기 위해서 손아귀를 꽉 움켜쥐었지만, 터져 나오는 핏물을 잡지는 못했다.

터어억.

머리를 잃은 적귀사의 몸이 뒤로 넘어갓다.

“저, 정말 괴물이 됐군….”

적귀사는 죽으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은 채 입술을 떨었다.

“하지만 계획은 어긋나지 않아. 널 보는 것도 마지막이겠구나….”

“그럴 일은 없다.”

라온이 적귀사의 말을 무시하고 카산드라를 보았다. 제천검에 흐르는 핏물을 털어낸 그의 눈동자 속에서 붉은 뇌광이 번뜩였다.

“이제 네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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