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562화 (561/653)

제562화

뻐어어억!

마르타가 라키온 가문의 간부로 보이는 중년인의 어깨를 검집으로 내리찍었다.

“살았다고 안심하지 마.”

그녀는 무릎을 꿇은 중년인의 머리채를 잡아서 들어 올리며 사나운 눈빛을 드러냈다.

“지그하르트를 배신하고, 성검련에 붙은 네놈들은 언제 죽여도 문제 되지 않으니까.”

“끄으윽….”

“네놈의 주둥이가 얼마나 쓸모 있냐에 따라서 모가지가 붙어 있을지 말지가 결정될 테니, 대가리 잘 굴리는 게 좋을 거야.”

마르타의 섬뜩한 음성에 라키온의 간부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어깨를 떨었다.

“성검련은 어디에 있지?”

“누구와 거래를 한 거냐.”

“저 마검은 대체 뭐야!”

그녀만이 아니라, 광풍대 검사들 모두가 라키온 가문의 검사들을 무릎 꿇린 채 정보를 캐냈다.

“…….”

루난은 혹여나 도망치는 이들이 나올까 봐 뒤로 떨어져서 맹한 눈으로 광풍대와 라키온 가문의 검사들을 지켜보았다.

“에휴.”

리메르가 반 토막 나버린 가주전의 벽에 등을 기대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래서 잘해줘봐야 아무 소용도 없다니까.”

“언제 잘해줬는데요?”

지금까지 자그마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던 버렌이 눈을 흘겼다.

“맨날 자율 훈련만 시켜놓고 놀러 갔으면서 해주긴 뭘 해줘.”

그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생각해보면 광풍단 시절부터 라온 님한테만 다 떠넘기고 도박하러 다녔죠.”

크레인이 버렌의 옆에 붙으며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에는 연무장에서 대주님보다 도괴 님을 더 자주 뵈는 느낌이에요.”

도리안도 해를 안 보는 듯 말끔한 리메르의 피부를 보며 눈매를 찌푸렸다.

“바지 대주.”

루난이 리메르를 보며 짧게 고개를 흔들었다.

“바, 바지 대주는 좀 심하잖아! 그게 아니라….”

리메르가 반박을 하려다가 우뚝 멈춰섰다.

“잠깐만! 너희 지금까지 다 들렸는데도, 가만히 있었던 거야?”

그가 멍하니 눈을 꿈벅였다.

“이 건방진 녀석들이! 대주의 말을 들어놓고도 대꾸도 안 해?”

리메르가 당장 달려갈 것처럼 주먹을 들어 올린 채 미간을 찌푸렸다.

“크흠!”

“빨리 불어!”

“이러고 있어봐야 너희들 손해야!”

버렌과 크레인, 도리안은 다시 귀가 막힌 척하면서 무릎 꿇은 마인들을 후려 패기 시작했다.

“바지 대주.”

다만 루난은 뭐 어쩔 거냐는 듯 맹한 눈으로 다시 한번 바지 대주라 중얼거렸다.

“어휴, 저것들….”

리메르가 긴 한숨을 뱉으며 고개를 저었다. 비에 젖은 잎사귀를 닮은 눈빛은 조금 전과 달리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래. 나를 볼 필요는 없다.’

그는 라온을 대주처럼 따르는 광풍대를 보며 입매에 연한 미소를 내걸었다.

‘내가 복수를 이룬 후에도 남아 있다는 보장이 없으니까.’

용현검주는 오른팔을 잃고, 왼팔로 검을 들었음에도 이전의 무위를 거의 다 회복했다.

당시에도 셰릴이 옆에 붙어 있지 않았다면 용현검주에게 패했을 수도 있었다. 다시 괴물의 반열에 오른 그놈을 죽이기 위해서는 나도 목숨을 걸어야 했다.

‘지금부터 이별을 준비해둔다면 조금은 더 편하겠지.’

리메르는 마기가 걷히며 맑아진 하늘을 올려보다가 눈을 내리감았다.

‘그나저나 이곳에 올 놈은 누구려나.’

라온은 벨스와 바시온의 대화를 통해 오늘 성검련의 검귀들이 도착할 거라고 말해주었다.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다면 이어지는 싸움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만약 용현검주 놈이 온다면 기회이자, 위기겠지.’

이곳에 찾아온 용현검주 죽일 수 있다면 최고의 결과겠지만, 놈은 강하기에 광풍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함께 피어났다.

‘그때처럼…. 아니, 그건 생각하지 말자.’

리메르가 고개를 흔들어서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오르는 뇌리를 비우고서 라온을 불렀다.

“라온. 이제 그만하고, 정보 좀 뽑아! 열 받아도 얻을 건 얻어야지!”

*     *      *

“알겠습니다.”

라온은 리메르에게 짧게 고개를 끄덕여주고서, 건조한 눈동자로 후안을 굽어보았다.

‘대주님의 말이 맞아.’

후안이 고통에 질려가는 모습을 보다 보니, 분노가 가라앉았다. 고통도 줄 만큼 주었으니, 이제 정보를 빼내도 될 것 같았다.

‘다만….’

조금 거슬리는데.

후안과의 전투 자체는 치열했고, 살벌했다.

일검에 목숨이 날아갈 정도로 험난한 싸움이었지만, 장검술로 이름 높은 후안 라키온이 수많은 인간의 원정으로 성장한 마검을 든 것치고는 그리 수준이 높았던 것 같지는 않았다.

아무리 내 무력과 검계 자체가 성장했다고 해도 조금 이상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후안이 무언가 꿍꿍이를 숨기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는 내게 공포를 느끼며 눈동자를 제대로 마주치지도 못하고 있었으니까.

라온이 가늘게 입맛을 다시고서 후안의 어깨에 박혀 있는 제천검을 비틀었다.

뿌드드득!

뼈가 으깨지는 소리가 흘러나오며 후안이 눈을 꼭 내리감은 채 온몸을 떨었다.

“끄아아아아악!”

“입 닥쳐.”

라온이 후안의 눈꺼풀을 억지로 열면서 눈을 부라렸다.

“성검련의 검귀는 언제 찾아오지?”

“끄으윽….”

후안은 지금까지 느꼈던 고통과 공포 때문인지 피딱지가 말라붙은 입술을 바로 벌렸다. 추함으로는 지금까지 본 인간 중 제일이었다.

“저, 저녁쯤에 올 것이다. 그들은 항상 해가 진 이후에만 찾아왔어.”

그는 성검련은 해가 있을 때 온 적이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저녁이라….”

라온이 말라붙은 벨스와 바시온의 시체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새벽에 들었던 것과 같군.’

벨스는 바시온에게 오늘 저녁쯤 성검련에서 그가 찾아올 거라 말했었다. 그때의 대화를 생각해보면 후안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빨리 준비해야겠어.’

성검련을 함정에 빠뜨리려면 최대한 빨리 상황을 정리하고, 체력과 오러를 회복시켜 두어야 했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성검련에서 온다는 그는 누구지?”

“그, 그는….”

후안이 입을 열려다가 말고 전신을 경련했다. 입에서 침을 질질 흘리던 그의 전신 모공으로 가공할 양의 마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뭐, 뭐야….”

라온이 제천검과 진혼검을 들고 뒤로 물러섰다. 지금까지 진혼검이 뽑아냈던 마기는 장난이었다는 것처럼 거대한 기운이 출렁였다.

-마검이니라!

드러누워 있던 라스가 벌떡 일어나 외쳤다.

‘마검?’

마검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크리아투스가 있는 곳으로 보았다.

열두 개의 검극과 검신을 모조리 깨부숴버렸던 마검이 기이한 진동을 일으키며 떠오르고 있었다.

-저 마검이 아이들을 노리고 있느니라! 빨리 가서 막거라!

녀석은 마검이 노리고 있는 대상이 광풍대임을 알아차리고 다급하게 손짓했다.

라온이 라스의 손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광풍대는 다시 바닥을 적시는 마기를 보며 당황한 듯 멍하니 서 있었다.

“크윽….”

움직이려 할 때 다리에 짧은 경련이 일어났다. 검계현신에 분노 개방까지 사용한 후유증 때문에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지만, 억지로 태화보를 밟으며 광풍대를 향해 뛰었다.

“모두 물러나!”

“전부 마기에서 떨어져!”

라온이 물러나라 외치자마자, 리메르도 바람을 타고 달려왔다. 그 역시 마기에 실려 있는 사이한 기운을 느낀 것 같았다.

치이이이잉!

하지만 당연하게도 광풍대의 반응은 늦었다. 살기 짙은 마기의 칼날은 이미 그들의 발밑까지 다가와 있었다.

숨 한 번 내쉬기에도 짧은 찰나의 순간에 리메르와 눈으로 의사를 교환했다.

라온이 우측으로 이동하고, 리메르가 좌측으로 돌진하여 바닥에서부터 솟구치는 마기의 칼날을 향해 검격을 쏟아냈다.

콰아아아아아아!

공간검의 묘리를 휘감은 불꽃과 바람을 실은 벼락이 장판처럼 깔리며 광풍대의 숨통을 노리던 마기의 칼날을 모조리 분질렀다.

하지만 아직 마검의 공세는 끝나지 않았다.

마기의 늪 깊숙한 곳에 숨어 있던 마지막 칼날이 시간차로 튀어나와 라온의 심장을 향해 쇄도했다.

‘젠장!’

라온이 등골을 스치는 오싹함을 느끼며 입술을 깨물었다.

‘못 피하겠어.’

지친 상태에서 큰 검격을 사용했더니, 오러와 육체의 반응이 늦다. 억지로 몸을 비틀어도 치명상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더군다나 뒤에 있는 사람은 유아와 율리우스다. 두 아이는 절대 이 검격을 피할 수 없기에 내가 막아야 했다.

죽음을 각오하며 검을 들어 올릴 때 좌측에서 매서운 바람이 일었다. 섬광처럼 다가온 리메르가 라온의 옆으로 붙으며 공간을 열어주었다.

피이이익!

하지만 그럼에도 완벽하게 부상을 피할 수는 없었다. 라온은 허리가 한 움큼 파여나갔고, 리메르 역시 팔뚝에 상처를 입었다.

“크으….”

리메르는 마기가 스며든 팔뚝의 살을 그대로 잘라냈다. 야만스럽지만, 지금 상황에서 마기의 침투를 막아내는 최고의 방법이었다.

“괜찮아?”

그는 피가 두껍게 흘러나오는 팔뚝을 잡은 채로 라온에게 다가갔다.

“괜찮아요.”

라온이 어금니를 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리의 상처에서 검은 핏물이 흘러내린다. 이미 마기가 살을 파고들었다는 뜻이다.

어둠에서 피어난 신성으로 치유하고 싶었지만, 전투에 사용하여 남은 게 거의 없었다.

‘후안이 잡았을 때보다 더 지독해.’

흑룡포를 찢으면서 들어온 공격이다. 리메르가 아니었다면 정말 죽었을지도 모르겠다.

-멍청한 놈.

라스가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수하들을 구하려다가 네놈이 다치면 어찌하느냐!

녀석은 답답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지쳤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저게 진짜였나 봅니다.”

라온이 천천히 떠오르는 마검을 보며 눈매를 찌푸렸다. 열두 개의 검신이 아니라, 저 검자루가 마검의 본체였던 것 같았다.

‘후안을 보고 느꼈던 약간의 기시감이 이것 때문이었나.’

후안이 마검을 들고서도 생각보다 약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진짜는 후안이 아니라, 저 마검 자체였다.

“도, 도련님….”

“…괜찮으세요?”

바로 뒤에 서 있던 유아와 율리우스가 턱을 떨면서 다가왔다.

“괜찮아.”

라온은 두 아이에게 은은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부대주님….”

“사, 상처가 큰데….”

“걱정 말고 물러서 있어.”

광풍대에게 멀리 떨어지라 손짓하고서 제 스스로 떠오르는 마검을 바라보았다.

“하아.”

리메르가 옆으로 다가오며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쩐지 빨리 끝났다 했지.”

“지금까지 노셨으니까. 이번에는 부탁 좀 드려야겠네요.”

라온이 허리를 움켜쥔 채 고개를 저었다.

“어쩔 수 없지. 이 대주님이 나서야….”

“여전히 네 몸만 아끼는구나.”

무너진 가주전 지붕 위에서 들려온 나지막한 음성이 리메르의 말을 거칠게 끊었다.

“이 목소리는….”

라온이 떨리는 시선을 들어 올렸다. 문사처럼 머리를 말끔하게 넘긴 중년인이 하나뿐인 왼팔로 턱수염을 쓸어내렸다.

용현검주. 신주오령의 도시 바레네에 나타났던 성검련의 검주가 모습을 드러냈다.

용현검주의 옆에 있는 청년 역시 모를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성검련주의 제자 클라우드. 죽일 수 있음에도 어쩔 수 없이 살려두었던 놈이 새로운 팔을 가진 채 악의로 가득 찬 안광을 드러냈다.

“용현검주. 네놈의 짓이었나?”

리메르가 용현검주를 올려보며 바드득 소리가 나도록 이를 갈았다.

“이런 추잡한 짓에 나서다니, 너도 떨어질 대로 떨어졌구나.”

“추하다? 난 성검련의 검이다. 검에 개인의 생각 따위는 필요 없지. 다만….”

용현검주가 여유롭게 고개를 저었다.

“지금의 난 명령과 상관없이 그저 네놈을 죽이고 싶군.”

그가 왼손을 펼치자, 마검 크리아투스가 부드럽게 날아와 손아귀에 잡혔다.

뿌드드득!

용현검주가 마검 크리아투스의 얼마 남지 않은 날을 완전히 부러뜨렸다.

그가 칼자루를 쓸어내리자, 칼날이 박혀 있던 구멍에서 어둠을 두른 듯한 빛의 칼날이 솟구쳤다. 마기로 타오르는 칼날은 섬뜩한 정도로 매끄럽게 번쩍였다.

“아름답군.”

용현검주가 마기의 칼날을 보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점잖았던 표정이 사악하게 굳어졌다.

“이게 마검 크리아투스의 진정한 개화다. 너희가 싸웠던 건 그저 껍질일 뿐이야.”

그가 거칠게 타오르는 마검을 들어 리메르를 겨누었다.

“요, 용현검주….”

후안이 검은 피를 내뿜으며 용현검주에게 손을 뻗었다.

“구, 구해주….”

“그래. 구해주마.”

용현검주가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후안이 한 줌 핏물이 되어서 가라앉았다. 마검 크리아투스는 본래 주인의 피를 마시며 더 짙은 마기를 뿜어냈다.

“수고했다. 네 덕분에 크리아투스의 개방이 빨라졌어.”

그가 마검의 칼날을 올려보며 빙긋 웃었다.

“그럼 이제 끝을 내야지.”

“용현검주!”

리메르는 여유로웠던 안색을 시꺼멓게 굳힌 채 검을 쥔 손을 부르르 떨었다.

그처럼 흥분하여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이가 하나 더 있었다.

“라온 지그하르트!”

클라우드가 피나도록 주먹을 말아쥐며 라온을 노려보았다.

“네놈의 모가지를 꺾기 위해서 돌아왔다!”

그가 오른팔로 검을 뽑아 든 채 기괴한 웃음을 흘렸다.

“울면서 목숨을 구걸하더니, 이제 와서 센 척이야?”

라온이 불의 고리를 극성으로 운용했다. 내부로 파고드는 마기를 억지로 누르며 비웃음을 흘렸다.

“네가 지금까지 살이 있는 이유는 스승을 잘 둬서일 뿐이야.”

“닥쳐!”

“그 팔은 어디서 났지? 아예 가루로 만들었을 텐데.”

“네놈이 알 것 없다!”

클라우드의 오른팔은 다시 붙일 수도 없도록 아예 재로 만들어 버렸다. 피부의 색이 미세하게 다른 것을 보면 다른 사람의 팔이나, 아티팩트 같았다.

“죽이겠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네놈만큼은 죽일 것이야!”

“그 말 전에도 들은 거 같은데.”

라온이 짧은 숨을 내쉬며 제천검과 진혼검을 들어 올렸다.

‘좋지 않아.’

새로운 팔 때문인지 클라우드에게서 느껴지는 기파가 이전보다 더 강해졌다. 검계현신을 사용할 수도 없고, 몸 상태도 정상이 아니었기에 최악의 상황이었다.

고오오오오오!

클라우드와 용현검주의 뒤로 성검련의 검귀들이 부복했다. 하나 같이 고수가 아닌 자가 없었다. 광풍대도 어려운 싸움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도 버티면 희망은 있어.’

어제 벨스와 바시온의 대화를 듣고, 바로 가문에 연락을 취해서 지원을 요청했다. 그 소식이 제대로 도착했다면 곧 지그하르트에서도 사람이 올 것이다. 그때까지 어떻게 해서든 버텨야 했다.

“예전 생각이 나는군.”

용현검주가 검지 손가락을 까딱였다.

“당시의 네놈은 수하들을 지키지 못하고 혼자 살아남아 그 질긴 목숨을 지금까지 이어왔지. 이번에는 어떨까?”

“너….”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지만, 이번에는 네놈도 살아남지 못할 거야.”

“입 닥쳐!”

리메르가 당장이라도 뛰어들 것처럼 폭발적인 기세를 일으켰다.

“대주님.”

라온이 리메르를 불렀지만, 그는 용현검주에 대한 분노에 휩싸여 그 말을 듣지도 못하고 있었다.

“대주님!”

목소리를 높이며 리메르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억….”

“정신 차리세요.”

라온은 눈을 동그랗게 뜬 리메르의 어깨를 잡으며 고개를 저었다.

“함께 돌아가야죠.”

그 말에 리메르의 눈동자에 차오른 분노가 흐릿하게 가라앉았다.

“그래. 그래야지.”

리메르가 호흡을 고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너 내 엉덩이 차는 거 누구한테 배운 거냐?”

“누구겠어요.”

“으음, 다른 건 따라하지마. 그 여자 이상하니까.”

그는 셰릴을 욕하면서 옅은 미소를 그렸다.

“그래봐야 변하는 건 없다.”

용현검주는 리메르의 흥분이 가라앉은 것에 짜증이 돋은 듯 이마에 힘줄이 올라왔다.

라온은 그런 용현검주의 안색을 살피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역시 대주님의 단전을 부순 게 저놈이었군.’

대화를 들어 보면 리메르의 부하를 죽이고, 그의 단전을 깬 사람이 용현검주이고, 리메르 역시 용현검주의 팔을 베었던 것 같았다.

광검이라 불릴 정도로 고고한 성격이었던 리메르가 나태해진 건 저 사건 이후였던 게 분명했다.

“모조리 죽여라.”

용현검주의 손짓에 성검련의 검귀들이 광풍대를 향해 돌진해 나갔다.

“누구도 지나가지 못한다.”

리메르가 앞으로 나아가며 검을 뽑았다. 바람이 휘몰아치는 칼날로 검귀들을 베려는 찰나 용현검주가 움직였다.

쩌어어어엉!

용현검주는 마기로 타오르는 크리아투스로 리메르의 앞을 막아서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지금 네놈의 힘으로는 무리다.”

“그건 네가 정하는 게 아니야.”

리메르의 미소와 함께 은색의 칼날 위로 붉은 뇌전이 차올랐다.

“북멸왕의 뇌전. 그건 전에도 보았다.”

“아니, 그때와는 달라.”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뇌전이 쇠사슬처럼 엉키며 강렬한 빛을 뿜어냈다.

콰아아아아아!

리메르가 붉은 폭풍이 휘몰아치는 검을 세우며 서슬 퍼런 눈동자를 번뜩였다.

“오늘 이곳에서 네놈과의 악연을 끝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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