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61화
“개진!”
버렌의 낭랑한 외침에 광풍대가 서 있던 자세 그대로 대광풍진을 발동시켰다.
검사 개개인의 무력이 크게 성장했고, 죽음을 경험하며 영혼의 격마저 깨어났기에 대광풍진은 그 어느 때보다도 굳건한 기파를 일으켰다.
“지그하르트를 좀먹는 마인들을 쓸어버려!”
마르타가 전방으로 나오며 광폭화를 일으켰다. 광풍 1조가 그녀의 뒤를 보조하자, 대광풍진이 하나의 창이 되어 라키온 검사들의 기세를 거칠게 꿰뚫었다.
말 그대로 폭풍이 되어 나아가는 광풍대의 눈동자에는 자그마한 두려움도 비치지 않았다.
쿠와아아아앙!
광풍대의 적색 기류와 라키온 검사들의 마기가 정면에서 맞부딪치며 대지에 돋아난 균열이 큼지막하게 벌어졌다.
“빌어먹을….”
벨스 라키온은 표정이 굳어지는 수하들을 보고 입술을 꾹 씹었다. 그가 마기에 몸을 담은 채 대광풍진의 중심을 흔들려는 찰나 녹색 바람이 앞을 막아섰다.
쩌어어어엉!
코등이가 잎사귀 모양으로 된 검을 쥔 리메르가 벨스의 장검을 가볍게 쳐내며 손가락을 좌우로 흔들었다.
“너까지 날 무시하면 어떻게 하냐.”
리메르가 빙긋 웃으며 벨스의 복부를 발로 걷어찼다.
뻐어어억!
고무공이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벨스가 튕겨 나가 바닥을 굴렀다.
“광풍대 대주는 저 건방진 놈이 아니라, 나야!”
리메르가 엄지손가락을 들어서 본인을 가리켰다.
“제일 맛난 건 뺏겼으니, 너라도 조져야지.”
“크으윽….”
그는 신음을 흘리는 벨스를 보며 사나운 눈빛을 드러냈다.
“광검….”
벨스가 피나도록 입술을 씹으며 마기로 타오르는 장검을 세웠다.
“이 땅의 주인은 라키온이다!”
“이젠 아니야.”
리메르의 손아귀에서 붉은 뇌전이 일어나 녹색 바람 속을 헤집었다.
“하필 성검련이라니, 너희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는 바람과 뇌기가 조화를 이룬 검격으로 벨스의 마기를 내리쳤다.
쿠와아아아앙!
뻘건 뇌전과 어둑한 마기가 초 단위로 터져나가며 허공에 자욱한 연기를 피워냈다.
터어엉!
라온은 광풍대와 라키온 가문의 전투가 시작된 것을 확인한 후 태화보를 밟았다.
신검의 불꽃과 마검의 서리로 대지를 긁어내자, 바닥에 깔린 사이한 기운들이 비명을 지르며 터져나갔다.
“검계현신을 개방했다는 소문이 진짜였을 줄이야. 하지만….”
후안이 입술을 깨물며 마검 크리아투스를 들어 올렸다.
“이 마검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가 세운 마검 위로 살을 아리게 만들 정도로 짙은 마기가 타올랐다. 조금 전에 수하들에게 심었던 마기를 도로 흡수하여 마검의 기운을 깨운 것 같았다.
후우우우웅!
후안 라키온이 마검을 표홀하게 찔러왔다.
열두 개의 검극에서 뿜어져 나온 마기가 유수처럼 구부러지며 심장을 향해 짓쳐 들었다. 검격 자체가 살아있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고오오오오오!
라온이 왼쪽 다리의 마나 회로에 오러를 집중시켰다. 갈라진 대지를 태화이보로 나아가며 오른손의 신검을 세웠다. 반원을 그리며 솟구친 붉은 칼날이 검은 섬광을 막아섰다.
쿠와아아아앙!
신검과 마검. 화염과 마기가 맞부딪치며 수만의 인간이 비명을 내지르는 듯한 폭음이 터져 나왔다.
찌지지지지직!
붉은 칼날과 검은 칼날이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경합하며 자주색 스파크가 사위를 자욱하게 뒤덮었다.
“고작 그 정도냐!”
후안이 검은 눈동자를 번들거린 채 마검을 들이밀었다. 죽은 이들의 영혼이 담긴 듯 놈의 검격이 버티기 힘들 정도로 무거워졌다.
“내 아들을 죽인 대가는 철저하게 받아내겠다!”
“딸은 소중하지 않은가 보네.”
라온이 입술을 비틀며 시선을 내렸다.
“시을렌은 실패작이다! 가족을 내버린 배신자일 뿐이야!”
“시을렌은 네놈들을 살리기 위해서 용기를 냈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뱉으며 마검을 내질렀다. 불꽃과 서리가 사선으로 교차하며 마검 크리아투스의 마기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라키온을 구하기 위해서 마지막까지 노력하던 그 아이의 손을 쳐낸 건 네놈이다.”
라온은 검 사이로 후안의 검은 눈동자를 마주하며 입술을 말아 올렸다.
“죽어서도 후회하게 만들어주마.”
그 말을 함과 동시에 검과 검 사이에서 응집되던 기운이 견디지 못하고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눈앞이 시꺼멓게 물들며 괴이한 어둠이 차올랐다.
터어엉!
라온은 신검과 마검을 등불 삼아 꺼뭇한 어둠을 나아갔다. 공간검을 익히며 한층 더 빨라진 태화보가 등 뒤에 붉고 푸른 날개를 달아준 듯한 기분이었다.
후안이 뒤로 물러서며 정비를 갖추기 전에 따라잡은 후 무희가 가련한 춤을 추듯 신검과 마검을 내뻗었다.
화아아아아!
붉은 칼날에서 화염의 봉오리가 피어나고, 푸른 칼날에서 서리의 꽃잎이 흩날린다. 신검과 마검으로 펼쳐내는 화령이었다.
봄이 스쳐 지나간 벚꽃처럼 검날을 떠난 꽃잎이 낙화한다. 수백이 넘는 강기의 조각들이 후안의 사위를 휘감았다.
쿠와아아아아아!
라온이 신검과 마검을 아래로 내린 순간 가라앉던 꽃잎들이 새로운 생을 얻은 듯 떠오르며 불꽃과 서리의 폭풍을 일으켰다.
“크으윽!”
후안이 눈매를 찌푸린 채 마검을 우측으로 꺾었다. 열두 개의 검극이 살아있는 듯 진동하며 마기의 파도를 뿜어냈다.
콰과과과광!
화령의 폭풍과 마기의 해일이 대지와 천공을 뒤덮으며 무수한 폭발을 일으켰다.
라온이 오러의 방패조차 으깨버리는 폭발 속으로 몸을 던졌다. 속도를 높이자, 시야가 급격하게 좁아졌지만, 후안의 마기는 생생하게 느껴졌다.
신검과 마검의 칼날 위에서 사나운 짐승의 울음이 요동친다. 두 자루의 검으로 펼쳐내는 광아검이었다.
셰릴에게 가르침을 얻었던 쌍검술의 묘리가 한층 더 깊게 진화하며 불꽃과 서리를 사납게 흩뿌렸다.
쿠와아아아아앙!
두 칼날에 실린 장대한 기운이 결국 끈적한 마기를 뜯어내고, 후안의 가슴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후안 역시 봉신가를 이끌어 온 무인답게 오래 당황하지 않았다. 미끄러지듯 뒤로 물러나며 마검을 부채처럼 휘저었다.
후우우웅!
마기의 안개가 차오르며 신검과 마검의 투로를 뒤틀었다. 마검의 힘만을 이용하는 게 아니라, 검술의 묘리도 제대로 담고 있었다. 역시나 방심해서는 안 될 상대였다.
‘다만….’
검술의 균형은 좋지 않아.
마검의 힘이 너무도 폭발적이었기에 그의 검술과 오러가 제대로 뻗어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 틈을 노리는 게 최적의 전법 같았다.
치이이잉!
라온은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며 밑에서부터 두 검을 쳐올렸다. 들소가 돌진하듯 나아가 쇄도해오는 마기의 중심을 꿰뚫었다.
쿠우우우웅!
불꽃과 서리를 반시계 방향으로 회전시켜서 응집된 마기를 풀어냈다. 마검 크리아투스가 벌거벗은 듯 검은 칼날을 드러냈다.
‘지금!’
라온이 신검과 마검을 잡은 손아귀에 힘을 주며 마검 크리아투스의 굴곡진 검극을 짓눌렀다.
쩌어어어어어엉!
붉고 푸른 칼날과 묵빛 검극이 다시 한번 정면에서 맞부딪치며 막대한 충격파가 사위를 휩쓸었다.
“크으으윽….”
후안은 끌어모은 마기가 이렇게 쉽게 녹아내릴 줄은 예상하지 못한 듯 손끝을 떨고 있었다.
“망할 지그하르트! 망할 놈의 검계현신!”
그가 악을 지르며 손목을 비틀었다. 마검의 다섯 번째 검극과 일곱 번째 검극이 매섭게 진동하며 신검과 마검을 쳐냈다.
하지만 후안의 큰 동작이 새로운 빈틈을 만들어냈다.
라온이 그 틈을 노리고 신검을 찌르려고 할 때 후안이 막무가내로 발을 굴렀다.
쿠우우웅!
막대한 마기가 내리꽂히자, 지축이 뒤틀리고 대지가 사정없이 갈라졌다.
라온이 무너지는 땅을 돌다리 삼아서 나아갔지만, 후안은 마검을 휘두르는 반동을 이용하여 이미 뒤로 물러서 있었다.
“후회하게 될 사람은 네놈이다!”
놈은 입매를 비틀며 마검을 수평으로 쳐냈다. 소리가 들려오기 전에 먼저 시꺼먼 검격이 튀어나왔다. 초승달을 눕힌 듯한 섬뜩한 칼날이 목을 노리고 있었다.
치이이잉!
신검과 마검을 십자로 세웠다. 불꽃과 서리의 선이 뻗어나가며 마기의 칼날을 가루로 만들었다.
라온은 폭발이 일어나며 솟구친 먼지에 몸을 숨긴 채 후안의 좌측으로 파고들었다.
“이, 이놈이!”
후안이 다급하게 몸을 빼려 할 때 태화보로 놈의 공간으로 들어가 신검을 내리치고, 마검을 찔러넣었다.
콰아아아아!
시뻘겋게 달아오른 검신이 아직 대비를 갖추지 못한 크리아투스의 열두 번째 칼날을 뜯어냈고, 푸른 송곳이 후안의 옆구리를 꿰뚫었다.
푸카아아악!
처음으로 터져 나온 깊은 상처에 후안의 안색이 급격하게 창백해졌다.
“고작 그 정도로 지그하르트를 넘보았나?”
라온이 입매를 비틀며 후안에게 다가갔다. 부러진 크리아투스의 칼날을 발로 차며 턱을 모로 틀었다.
“대, 대체 왜 마기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냐!”
후안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턱을 떨었다.
“마기에 노출만 되어도 살이 썩어야 하거늘 왜 멀쩡한 거냐고!”
그는 가주로서 보여주던 고풍스러운 말투마저 버리고, 어린아이처럼 떼를 썼다.
“네놈이 약하니까.”
라온이 크리아투스에서 피어나는 시꺼먼 마기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마기를 막아내는 저항력이 있는 데다가, 내부에 침투하는 마기는 신성으로 지우고 있기에 마검의 기운은 내게 조금의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마, 말도 안 돼….”
“당황하지 마. 아직 시작도 안 했으니까.”
라온이 눈동자에 붉은 뇌광을 터트리며 후안에게 돌진했다.
마기를 밀어내며 오른발을 내디딜 때 후안이 마검 크리아투스를 쥐고, 땅을 내리찍었다. 마기의 안개가 솟구치며 길을 막아섰다
“도망쳐봐야 소용없어.”
입술을 꾹 씹으며 마기를 베어내고 후안의 기척을 뒤쫓았다.
“어?”
라온은 갈라진 마기의 틈새로 달려가려다 말고 걸음을 멈췄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말이 나오질 않았다.
“저 미친….”
후안은 마검 크리아투스로 이쪽이 아니라, 마기를 지니고 있는 부하들의 가슴을 찔렀다.
“어어억….”
“가, 가주님!”
“왜 우리를….”
라키온 가문의 검사들은 본인들의 심장을 뚫고 나온 마검의 칼날을 보며 턱을 덜덜 떨었다. 그들의 눈동자에 배신감이라는 이름의 핏줄이 섰다.
고오오오오오!
열한 개의 검극이 스무 명의 가슴을 뚫어버리고, 마검에 마기를 채워넣기 시작했다.
-저 구제도 안 될 쓰레기 놈이!
라스가 눈동자에 푸른 귀화를 뿜어내며 몸을 일으켰다.
-부하를 구할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죽여서 마기를 뽑아내? 어떻게 저런 쓰레기가 존재한단 말이냐!
녀석은 누구보다도 부하를 소중히 여기기에 후안의 행동에 진심으로 분노하고 있었다.
-빨리 저놈을 죽여라! 아예 갈기갈기 찢어버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어.’
라온이 마기의 안개를 가르고, 후안에게 다가갔다.
“히, 힘이. 힘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다! 다 힘이 부족해서!”
후안은 이미 정신이 나간 듯 눈동자가 뒤집혀 있었다. 그가 마검으로 찌른 라키온 가문의 검사들은 숨 한 번 내쉬기도 전에 살과 피가 모두 빠져나가 좀비보다 못한 상태가 되어 갈라진 대지 속에 처박혔다.
쿠구구구구구!
마검 크리아투스 위로 웅대한 마기가 타오르며 검은 태양을 형성했다.
“아아아아악!”
“가, 가주님….”
“대, 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검은 태양이 뿜어내는 강대한 마기의 파동에 주변에 있던 라키온 가문의 검사들이 핏물이 되어 녹아내렸다. 마기를 지닌 인간들이 죽으며 검은 태양은 더욱더 짙은 불꽃을 일으켰다.
‘저대로 놔둬서는 안 돼.’
라온이 입술을 깨물며 검은 태양의 범위 안으로 들어섰다.
“모두 물러서!”
광풍대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퇴각을 명령하고, 후안에게 달려들었다.
놈에게 다가갈수록 마기가 늪지처럼 달라붙는다. 지독한 마기의 흐름에 손끝이 떨리고, 마나회로가 수축되어 오러의 이동이 느려졌지만, 무소의 뿔처럼 나아갔다.
“죽어라!”
후안이 검은 태양을 일으킨 마검 크리아투스를 내리쳤다. 어마어마한 열기에 대기가 지워지고, 공간이 비틀어졌다.
라온은 나아가던 반동을 이용하여 신검으로 적섬을 긋고, 마검으로 서리연을 펼쳐냈다. 두 검 모두 공격이다. 방어를 도외시하고, 후안을 죽이겠다는 일념만을 담았다.
찌지지지지직!
열기와 냉기 그리고 마기가 경합하며 하늘과 땅이 뒤흔들렸다. 검날 사이로 회색 용오름이 치솟아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였다.
치이이잉!
라온이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든 압력 속에서 신검과 마검을 비틀었다. 열기와 냉기 사이로 청아한 바람이 치솟으며 조화되지 않았던 두 기운을 하나의 선으로 이었다.
쿠와아아아아앙!
폭발적으로 치솟은 불꽃과 서리의 파동에 후안의 손이 덜덜 떨리면서 마검이 꺾일 것처럼 밀려 나갔다.
“으아아아!”
후안이 비명 같은 기합을 내지르며 마검을 쥔 손에 억지로 힘을 준다.
그동안 쌓아 두었던 무인의 본능 때문인지 놈의 검에 진중한 검술의 묘리가 휘감겼다. 정확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장검술 특유의 움직임이었다.
“이제와서 정신 차려도 늦었어.”
라온이 분노를 개방했다. 신검과 마검의 기운이 마지막 불씨를 태우듯이 장대한 빛과 함께 솟구쳤다.
쿠우웅!
후안이 그 기운을 견디지 못하고 물러날 때 왼발로 대지를 찍어누르며 뒤로 젖혀두었던 신검과 마검을 내질렀다.
두 검으로 동시에 펼쳐내는 염룡결. 화룡과 수룡의 숨결이 마기로 타오르는 태양을 덮쳤다.
무시무시한 폭발이 전방을 뒤덮으며 마기의 결계가 깨져나가고, 마검 크리아투스의 검극 다섯 개가 가루가 되어 바스러졌다.
“커헉….”
후안이 비틀거리며 뒤로 넘어갔다. 그의 얼굴이 한순간에 20년은 더 늙은 것처럼 초라하게 변했다.
“아버지!”
벨스 라키온은 리메르에게 왼팔을 잃은 상태에서도 망설임 없이 후안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후안은 목숨을 걸고 달려와 준 첫째 아들의 배를 마검으로 꿰뚫었다.
“아, 아버지? 이게 뭐….”
“고맙구나. 네 덕분에 살았어.”
평생 열등감을 가지고 살아온 무인의 타락은 날 때부터 마인이었던 악마들보다도 더 지독했다.
“아버….”
벨스는 가뭄이 찾아온 논처럼 피부가 말라붙은 채 쓰러졌다. 안구조차 녹아내린 그는 죽어서도 후안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후욱….”
후안은 다시 젊어진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가장 많은 마기를 지니고 있던 벨스를 먹어 치웠기 때문인지 그의 기세는 처음보다 더 강해진 상태였다.
“이게 네놈이 원하던 삶이냐?”
라온이 입술을 꾹 내리 씹었다.
“성검련과 손을 잡고, 마검에 혼을 위탁하고, 아들까지 제 손으로 죽여가며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 거지?”
“닥쳐라!”
후안이 짐승 같은 포효를 내지르며 마검 크리아투스를 들어 올렸다.
“내 자식들의 원수를 갚겠다!”
마기가 골수까지 파고들었는지 놈은 제 손으로 죽인 벨스의 원수를 갚아주겠다며 마검 크리아투스를 내리쳤다.
장검술의 묘리와 폭발적인 마기가 융합하며 칼날 위로 닿는 것을 모조리 녹여버리는 시꺼먼 파도가 뻗어 나왔다.
“네 선택을 부정해주마.”
라온이 왼발을 앞으로 내뻗으며 무릎을 굽혔다. 신검을 오른쪽 어깨 뒤로, 마검을 우측 허리 뒤로 젖힌 후 남아 있는 모든 기운을 응집시켰다.
신검의 불꽃과 마검의 서리가 천천히 가라앉으며 잔불처럼 옅게 타올랐다.
치이이이잉!
마검의 해일이 머리카락을 스치는 순간 발밑에서부터 끌어 올린 힘에 회전과 압력을 더하며 손끝에서 폭발시켰다.
라온 지그하르트류 검식.
제6형 신마조화결 연계기 청홍무적검.
극한까지 압축된 신검과 마검의 기운이 찰나의 순간에 폭발하며 마기의 파도를 사정없이 찢어발겼다.
쿠와아아아아아아!
폭풍의 눈처럼 뚫려버린 마기의 중심으로 나아갔다. 열기와 냉기가 잦아드는 두 자루의 검으로 마검을 가르고, 후안의 양팔을 베어냈다.
“커흐윽!”
후안이 양쪽 어깨에서 검은 피를 뿜어내며 자빠졌다. 놈의 검은 눈동자는 공포와 경악에 질려 끝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라온은 마검 크리아투스를 짓밟으며 후안에게 다가갔다.
힘이 빠져서 검계현신은 풀렸지만, 상관없었다. 제천검과 진혼검은 여전히 날카로웠으니까.
퍼어어어억!
제천검을 밑으로 내리찍어 후안의 어깨에 박아넣었다.
찌지지지직!
은색의 검신을 적신 시뻘건 불꽃으로 후안의 마기와 그의 살과 피를 지져버렸다.
“끄아아아아아!”
후안은 지독한 고통에 고개를 마구잡이로 흔들며 비명을 터트렸다.
“자, 잠깐! 말해주마! 누구와 거래를 했는지. 왜 우리가….”
“너 같은 놈에게는 얻고 싶은 정보 따위는 없다.”
라온은 왼손 진혼검을 역수로 잡고 후안의 심장에 박아넣었다.
샛노란 요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며 후안의 호흡을 유지 시킨 채로 몸에 깃든 마기를 모조리 뽑아내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악!”
후안은 생살과 핏줄을 그대로 뽑아내는 듯한 고통에 눈을 까뒤집고 발버둥을 쳤지만, 어깨에 박혀 있는 제천검 때문에 그 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다.
“제, 제발! 제발 그만! 차라리 죽여….”
“말했지.”
라온은 건조한 눈동자로 후안을 굽어보며 턱을 틀었다.
“죽어서도 후회하게 해주겠다고. 이게 그 시작이다.”
그는 후안의 핏줄이 모조리 터져나갈 때까지 그 자리에서 지켜만 보았다.
“아으으윽….”
후안은 마기가 빨려 나가는 고통보다도 라온의 붉은 눈동자가 더 두려운 듯 눈을 감은 채 호흡이 뚝뚝 끊어지는 비명만 내질렀다.
“이게 이름 높은 라키온 가주의 말로라니, 처참하군.”
“저 쓰레기는 그냥 목을 베어서 죽이기에는 아까워. 할 수 있는 모든 고통을 다 주고 죽여야 해.”
“…….”
버렌과 마르타, 루난도 후안을 그냥 죽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듯 고개를 주억였다.
“꿇어!”
“다 끝났다. 무기 버려.”
“무기를 들고 서 있는 자는 모두 베겠다.”
광풍대는 멈춰진 전장 속에서 라키온 검사들의 무기를 빼앗고, 무릎을 꿇렸다.
“역시 대장을 잘 둬야 전투가 편하네.”
“상황이 어그러졌는데, 그걸 이용해서 전투를 끝내버렸잖아. 대단한 인간이라니까.”
“부상자도 없는 것 같고, 완벽한 승리야.”
광풍대 검사들은 큰 피해 없이 라키온 가문을 무너뜨렸다는 생각에 라온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대, 대장?”
리메르는 갑자기 상대를 잃어서 당황한 상태 그대로 눈을 꿈벅였다.
“저기… 대장은 난데?”
그가 손가락을 앞으로 까딱였지만, 누구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내가 대주잖아! 너희 벌써부터 라온이 대주라고 착각하는 건 아니지? 응? 얘들아?”
여전히 답은 들려오지 않았고, 리메르의 목소리만 공허하게 메아리쳤다.
“야 이것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