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559화 (558/653)

제559화

광풍대가 떠난 후 라키온 가주전.

“괜찮으냐?”

후안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벨스의 찢어진 뺨을 바라보았다.

“피륙의 상처일 뿐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벨스는 뺨에서 흘러내리는 핏물을 훔치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이 정도가 아니었다면 저들도 속지 않았을 겁니다.”

그는 텅 비어버린 카펫 위를 내려다보며 짤막한 숨을 내쉬었다.

“그래. 다행히 넘어간 것 같구나.”

후안은 언제 사나운 기세를 일으켰냐는 듯 부드럽게 턱을 주억였다.

“아직 안심할 때는 아닙니다.”

벨스가 왼쪽 손목을 잡으며 눈매를 찌푸렸다.

“라온 지그하르트와 나찰검은 시니건 지부의 시체를 보자마자 백혈교의 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눈치가 굉장히 빠르니, 지금도 저희를 의심하고 있을 게 분명합니다.”

“그렇겠지. 하지만 저들은 결국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후안과 벨스는 광풍대가 시니건 지부를 습격한 게 백혈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릴 거라 예상한 듯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단서가 존재하지 않으니, 우리도 의심하고, 오마도 의심하다가 결국 새로운 적까지 떠올리며 생각의 늪에 빠지다가 결국 우리의 제물이 될 것이다.”

“제물이라는 건…….”

벨스가 제물의 의미를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광풍대가 찾아왔다고 하니, 그가 직접 오겠다고 하더구나.”

후안이 의자에 등을 기대며 입매로 호선을 그렸다.

“시을렌 때문에 수십 년간 세운 계획이 망가졌다고 생각했는데, 차라리 잘 되었어. 이 기회에 굴욕적인 봉신가의 이름을 벗어던지는 게 낫다.”

“아버지의 뜻을 존중합니다. 다만 조금 아쉽군요.”

벨스가 허공을 올려보며 짧게 혀를 찼다.

“준비가 완벽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때를 기다릴 수는 없어. 지그하르트가 오마에게 견제를 당하고 있는 지금이 최적기다.”

“그 뜻이 아닙니다.”

그가 후안을 보며 느릿하게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이렇게 될 거였으면, 시니건의 시체를 지그하르트로 옮기지 못하도록 막을 걸 그랬습니다.”

“음?”

“그 시체들을 먹였으면 크리아투스의 배를 꽤 채울 수 있었을 테니까요.”

“크하하하하!”

후안이 광소를 터트리며 벨스의 등을 두드렸다.

“그래. 그래야 이 후안의 아들이고, 이 라키온의 후계자지!”

그는 진심으로 벨스가 마음에 찬 듯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푸근한 미소를 그렸다.

“하지만 그런 버러지들의 피를 먹여도 크리아투스는 그리 큰 성장을 이룰 수 없다. 곧 광검과 용살자의 살을 뜯고 피를 마시게 될 터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후안은 기대하라고 말하며 손을 저었다.

“그럼 언제 시작하는 겁니까?”

“그가 바로 오겠다고 했으니, 내일 저녁이면 모든 것이 끝나있을 것이다.”

그는 옥좌의 팔걸이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사이한 웃음을 그렸다.

“그때까지 시을렌이 헛짓 못 하도록 잘 감시해라.”

“바시온을 보내놨으니, 절대 빠져나갈 수 없을 겁니다.”

“둘째 녀석은 너무 과격해. 무슨 짓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군.”

“제가 가서 살펴보겠습니다.”

“그래. 라키온의 가주가 될 자는 항상 모든 것을 알고 있어야 하는 법이다.”

후안이 그 말을 마지막으로 창가를 바라보았다. 밤하늘에 홀로 뜬 달을 보며 서늘한 미소를 그렸다.

“이 라키온이 홀로 떠오를 날도 머지않았어.”

*     *      *

라온이 복면을 뒤집어쓴 후 시선을 돌렸다.

“오…….”

같은 방을 쓰는 도리안이 멍하니 눈을 꿈벅였다.

“나갔다 올 테니까. 잘 부탁한다.”

“걱정하지 마세요.”

도리안이 배 주머니에서 금색 가발을 착용한 사람 크기의 인형을 꺼내 들었다.

그는 그 인형을 라온의 침대에 넣고 이불까지 덮어준 후에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됐죠?”

“되, 되기는 했는데, 그런 인형이 왜 있어?”

“필수품이잖…….”

“됐다. 그만해.”

저놈의 필수품은 어디까지 가는지 모르겠다.

라온은 빠르게 고개를 젓고서, 창문이 조금 열고 작은 틈새 사이로 몸을 빼냈다.

-네놈이 찾던 물건들 다 저놈 주머니에 있는 거 아니냐?

라스가 어이가 없다는 듯 헛바람을 흘렸다.

‘그럴지도.’

옅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드래곤 하트를 달라고 하면 필수품이라고 하면서 꺼내줄 것만 같았다.

라온은 별채의 지붕 위에서 반대편에 있는 저택을 바라보며 눈매를 좁혔다.

‘역시 감시하고 있군.’

저택의 창문에서 이 별채를 감시하고 있는 사람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놈들의 시선이 어그러지는 틈을 이용하여 창문에서 나갔기에 자신의 존재를 알아차린 놈은 한 명도 없었다.

라온은 밤의 그림자 속에 몸을 숨긴 채 후안이 있던 가주전으로 향했다.

새벽이었기에 후안과 벨스는 보이지 않고, 경계를 서는 무인들만 곧은 자세로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여기서부터 시작해볼까.’

기척을 극도로 낮춘 상태에서 설화의 은막까지 운용하면서 라키온 가문의 탐색을 시작했다.

경계를 서는 인원이 몇 명이고, 어디를 지키고, 어느 곳의 방비가 삼엄한지를 모두 조사한 후 다시 가주전 앞으로 돌아왔다.

‘이상하군.’

라키온 가문 내부를 샅샅이 뒤져보았지만, 마기나 혈기 혹은 진법 같은 특별한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무력만 강할 뿐 평범하기 짝이 없는 무가였다.

라온이 달빛이 스며들지 않은 벽에 등을 기댄 채 입술을 씹었다.

‘내가 느낀 마기가 착각은 아닐 텐데…….’

벨스에게서 풍겨 나왔던 오염된 마기의 악취는 진짜였다. 느끼지 못할 뿐 지금 이 가문 내부에 마기를 일으키는 무언가가 있는 건 확실했다.

‘내일 찾아야 하나?’

몇 시간 뒤면 날이 밝는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내일 새벽이 되었을 때 재개하는 게 좋아 보였다.

‘아니야.’

라키온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데 시간을 끌어서는 안 돼.

후안과 벨스의 관계가 어떤지, 놈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시니건 지부를 습격한 게 누구인지 무엇 하나 밝혀진 게 없다.

상황을 예측할 수 없는 지금은 최대한 빠르게 정보를 수집하는 게 맞았다.

라온이 가주전의 높고 곧은 기둥을 타고 올라갔다. 가장 높은 곳에서 라키온 가문 전체를 굽어보았다.

‘건물이나, 정원, 호수, 시설물에도 없었어. 그럼 어디에…….’

시선을 돌리다가 라키온 가문과 맞닿아 있는 동쪽의 작은 산이 눈에 들어왔다.

‘산? 사유지인가?’

그럼 가장 좋은 위치긴 한데…….

가문의 바로 옆이고,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살지 않으니, 무언가를 숨겨두기에는 가장 좋은 장소였다.

저 산 전체를 뒤지려면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빠르게 움직이면 해가 떠오를 때쯤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라온이 마음을 정하고 라키온의 담을 넘어서 이름 모를 산으로 향했다.

‘음?’

산의 초입에 이르렀을 때 폐수에서 피어나는 듯한 끔찍한 악취가 영혼을 자극했다.

‘이 악취는…….’

어제 벨스에게서 느꼈던 악취보다 옅을 뿐 냄새 자체는 거의 흡사했다. 오염된 마기가 분명했다.

‘라스.’

-…….

라스를 불렀지만, 대답이 없다. 그사이에 잠을 자는 것 같았다. 하여튼 중요할 때는 도움이 안 된다.

라온이 악취에 인상을 찌푸리며 산을 올랐다. 오염된 마기의 향은 산 중턱에 있는 바위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여기는…….’

라온이 바위를 보며 눈매를 좁혔다. 악취는 끝없이 흘러나오지만, 마나는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암살자로 살아온 눈에 잡히는 부분이 하나 있었다.

‘흙의 색이 미세하게 달라.’

바위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흙의 색이 진한 것과 옅은 것이 있었다.

이 바위가 움직이면서 밑에 깔렸던 연한 색의 흙을 바깥으로 밀어낸 게 분명했다.

‘그럼 기관이겠군.’

마나의 향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면 기계만으로 이 장치를 만들어낸 것 같았다.

‘들어가야 하나?’

바위를 자세히 살피니, 어디를 만지면 움직일 수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문을 열면 저 안에 있는 놈들이 알아차릴 수 있기에 섣불리 들어갈 수가 없었다.

라온이 바위에서 훌쩍 떨어져서 근처에 있는 나무 위로 올라갔다. 분명 누군가가 들어갈 테니, 그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나무 위에서 기다린 지 한 시간쯤 지났을 무렵 산 아래가 아니라, 위에서 사람의 기척이 느껴졌다.

그는 존재감을 거의 완벽하게 지웠지만, 설화의 감각을 운용하는 자신의 기감을 피할 수는 없었다.

호흡을 낮춘 채 대기하고 있으니, 로브를 입은 덩치가 큰 남성이 소리 없이 산을 내려와서 바위 앞에 섰다.

라온이 그 남자의 등을 보며 눈매를 찌푸렸다.

‘벨스 라키온?’

로브로 전신을 가린 남자는 벨스였다. 바로 어제 만났기에 기척을 숨겼어도 몰라볼 수가 없었다.

스으윽.

그는 바위 주변의 흙의 색이 다른 것을 느낀 듯 손으로 조심스럽게 흙을 섞고서 바위의 끝에 파여있는 구멍에 손가락을 넣었다.

스으으윽!

바위가 부드럽게 밀리며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 구멍을 열었다. 예상했던 대로 마나가 조금도 스며들지 않은 기관이었다.

라온은 구멍으로 내려가는 벨스의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지독하군…….’

내부로 들어가니, 악취가 더욱 심해졌다. 아무래도 바깥에선 기관을 설치하고, 내부는 이 마기가 벗어 나가는 것을 막는 주술이나 마법을 써둔 것 같았다.

‘철저한 놈들이야.’

자기 집 안방이나 다름없는 장소에서도 이 정도로 은밀한 기관을 설치하다니, 역시나 보통 놈들이 아니었다.

벨스와 같은 계단만을 밟으며 아래로 내려가자, 샛노란 조명이 비치는 공동이 눈에 들어왔다.

공동과 연결된 방들이 꽤 많았는데, 안쪽에서 사람들의 호흡 소리가 들려왔고, 그 호흡에서 오염된 마기의 악취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지?’

오염된 마기로 무엇을 하는 건지 그리고 어떻게 오염된 마기를 운용하는 건지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며 벨스의 뒤를 따라갔다.

벨스는 다른 곳에는 관심 없다는 듯 공동의 중앙에 세워진 가장 큰 문을 향해 다가갔다.

쿠우웅.

그가 문을 열자, 붉은 물감을 뿌린 듯한 공간이 열렸다.

*     *      *

먼지가 낀 구석에는 옷이 넝마가 된 어린 여자아이가 쇠사슬에 묶여 있었고, 방 중앙에는 중년 여성이 목각인형처럼 얇은 실에 묶인 채 허공에 떠 있었다.

“어? 형. 왔어?”

중년 여성의 살점을 뜯어내며 히죽이던 청년이 턱을 치켜들었다.

“흐읍….”

생살이 터져나간 중년 여성은 구석에 있는 아이 때문인지 피나도록 입술을 씹으며 비명을 삼켰다.

“바시온. 뭘 하는 거냐.”

“애만 돌보면 지루하잖아. 심심해서 조금 장난을 치고 있었지.”

바시온이라 불린 청년은 손가락을 튕겨서 손에 잡혀 있던 살점과 핏물을 튕겼다. 날아간 살점이 어린 여자아이의 발밑으로 떨어졌다.

“난 분명 시을렌을 감시하라고만 했을 텐데?”

벨스가 신음을 흘리는 여자아이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어제 피를 보고도 참아줬잖아. 이 정도는 이해해주라고.”

바시온이 투덜거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

벨스는 잠시 바시온을 바라보다가 구석에 묶여 있는 시을렌에 다가갔다.

“오, 오빠. 제발 부탁이야! 유모를 놔줘!”

시을렌은 본인인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실에 묶여 있는 유모를 구해달라며 벨스에게 무릎을 꿇었다.

“다시는 안 할게! 가만히 있을 테니까. 제발!”

“행동에는 결과가 따르는 법이다.”

벨스는 담담한 눈빛으로 고개를 저었다.

“네가 시니건 지부를 찾아가지 않았다면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죽을 일도, 네 유모가 저 꼴이 될 일도 없었지. 모두 네 탓이다.”

“오, 오빠…….”

시을렌은 벨스의 건조한 눈동자에 공포를 느낀 듯 입술을 떨었다.

“맞지. 맞아. 너만 가만히 있었으면 나도 여기서 시간 죽이고 있을 필요 없었다고.”

바시온이 인상을 구긴 채 손을 저었다.

“그래도 넌 운이 좋은 편이야. 네가 내 동생이 아니었다면 진즉에 목을 따 버렸을 테니까.”

그는 아쉽다는 듯 손으로 목을 긋는 모양새를 취했다.

“바시온.”

벨스가 등을 돌리며 바시온을 내려 보았다.

“지그하르트 놈들이 움직이고 있으니, 한동안 이곳을 벗어나지 마라.”

“내가 두더지도 아니고, 왜 처박혀만 있어야 하는데! 지루하다고!”

“조금만 참으면 된다. 곧 네놈이 원하던 일이 벌어질 테니까.”

“어? 정말로?”

“아버지께서 마음을 정하셨다. 그도 직접 오겠다고 하더군.”

“드디어! 봉신 가문라는 더러운 칭호를 떼는 건가?”

바시온은 그날이 기대된다는 듯 기괴한 웃음을 흘렸다.

“알아들었으면 조용히 있도록.”

벨스는 그 말을 남기고 문고리를 잡았다. 그는 잠시 뒤를 돌아서 시을렌을 바라보다가 그대로 문을 열고 방을 떠났다.

“이걸 어쩌나.”

바시온이 터벅거리는 걸음으로 시을렌에게 다가갔다.

“우리 막내. 지그하르트의 잡것들만 기다리고 있었을 텐데, 아버지께서는 놈들을 제물로 바칠 생각이신가 본데?”

그가 시을렌의 뺨을 쓰다듬으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이제 다 끝났어. 그리고 너도 곧 나처럼 되겠지.”

바시온은 광기가 흐르는 눈동자로 시을렌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미리 적응해두는 게 좋을 거다. 이제 네가 알던 가족은 아무도 없으니까.”

그는 동생을 향해 비웃음을 날리고서 밖으로 나갔다.

“미안해…….”

시을렌이 고개를 숙인 채 참고 있던 눈물을 흘렸다.

“괘, 괜찮아요. 아가씨.”

실에 묶여 있는 그녀의 유모가 말라붙은 입술을 달싹였다.

“옳은 일을 하시려고 한 거잖아요. 전 괜찮으니, 마음을 굳게 다지세요.”

유모는 시을렌을 보며 억지로 미소를 그려주었다.

“정말 미안해.”

시을렌이 손을 덜덜 떨었다. 그녀의 손목을 붙잡고 있던 쇠사슬이 흔들리며 아릿한 소리를 울렸다.

‘나만 가만히 있었으면…….’

시니건 지부에 찾아간 일 때문에 자신을 밖으로 내보내 준 사람들 모두가 죽었고, 유모는 살이 뜯겨나가는 고문을 당하고 있었다.

시니건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죽었다는 죄책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을 정도였다.

“흐으윽…….”

시을렌이 피가 흐르는 손톱으로 바닥을 긁고 있을 때 문 뒤의 그림자에서 검은 복면을 쓴 남성이 흘러나왔다. 그는 입가에 손가락을 올린 채로 오연한 눈동자를 드러냈다.

*     *      *

라온은 밖에 있을 바시온이 듣지 못하도록 얇은 기막을 친 후에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아…….”

“누, 누구세요?”

시을렌은 신음만 흘렸고, 그녀의 유모가 간신히 입술을 벌렸다.

“지그하르트에서 왔습니다.”

라온은 지그하르트의 문양이 새겨진 패를 꺼내서 두 사람을 보여주었다.

“아, 아아…….”

유모는 아이를 위해서 참고 있던 눈물을 떨어뜨리며 절규에 찬 듯한 숨을 내뱉었다.

“제발. 제발 저희 아가씨를 구해주세요!”

라온이 유모의 말을 들으며 쇠사슬에 갇혀 있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이 아이가 시니건 지부에 정보를 전한 건가?’

벨스와 바시온의 대화를 통해서 알 수 있게 된 정보가 많았다.

두 사람의 동생인 이 시을렌이라는 아이가 시니건 지부에 라키온의 악행을 알리려고 했던 것 같았다.

“사정을 말해다오.”

라온이 한쪽 무릎을 꿇으며 시을렌과 눈을 마주쳤다.

“으…….”

시을렌은 감정이 북받친 듯 어깨를 떨었지만,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알고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 지금 저희 가문은 성검련과 함께 하고 있어요.”

“성검련?”

라온이 시을렌을 보며 눈매를 찌푸렸다.

‘여기서 성검련이 나온다고?’

이 공간에 차오른 마기 때문에 당연히 흑탑이 뒤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성검련의 이름이 나올 줄은 몰랐다.

“네. 성검련이 맞아요. 그쪽의 검사가 찾아와서 아버지께 검을 건네준 이후로 가문이 바뀌었으니까요.”

“바뀌었다는 게 무슨 뜻이지?”

“사람을 향해 함부로 검을 휘두르지도 못했던 검사들이 아무 이유도 없이 살인을 저질렀어요. 오, 오직 검만 바라보면서 강해지는 것만 생각하고, 다른 일에는 아무런 관심도 가지지 않아요.”

시을렌이 떨리는 입술을 억지로 벌리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 변하지 않는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어요. 점점 우리 집이 제가 모르는 곳으로 바뀌고 있어서…….”

“그래서 시니건 지부에 찾아갔던 거야?”

“서, 성검련이 뒤에 있다는 것을 알고 전하려고 했는데, 다, 다 죽었어요….”

그녀는 벨스가 직접 찾아가서 시니건을 무너뜨린 것을 말하며 머리를 숙였다. 아이는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마음속에서 절규했다.

“죄송해요. 제가 괜히 찾아가서 그분들을…….”

“아니다.”

라온이 불안할 정도로 떨리는 시을렌의 어깨를 잡아주며 고개를 저었다.

“넌 잘못한 거 없어.”

그 말을 하며 다른 방에서 피어나는 마기를 살폈다.

‘저들의 마기는 그 검의 영향을 받은 건가.’

오염된 마기를 만들어내는 검이라니, 마검이라 불려도 이상하지 않군.

‘그런데 왜 그런 검을 넘겼지?’

성검련은 오직 강한 검술과 검을 얻으려는 미친 검귀들의 집단이기에 그런 검이 있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걸 라키온 가문에 넘겼다는 게 이해되질 않았다.

‘그가 온다고 한 것을 보면 거래 관계일 수도 있겠군.’

라키온 가문의 뒤에 무엇이 있고, 무슨 짓을 하는지 밝혀졌지만, 해결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아니지. 쉽게 해결할 방법이 있잖아.’

벨스의 말을 들어보면 후안은 광풍대를 성검련에 넘길 생각인 것 같았다.

그럼 최대한 빨리 이 가문을 접수하고, 함정을 만들어서 성검련이 찾아왔을 때 역으로 습격하면 피해 없이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성검련이 주었다는 검은 어디에 있지?”

“제가 본 이후에 사라져서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몰라요. 미안해요….”

“괜찮아.”

라온이 시을렌의 머리에 손을 얹으며 미소를 지었다.

“미안하지만, 지금 당장 구해줄 수는 없을 것 같아. 내일 아침에 다시 올게. 버틸 수 있겠니?”

지금은 광풍대도 이 상황을 모르고 있었기에 움직이는 게 좋은 선택이 아니다.

이쪽은 완벽하게 준비를 끝내고, 상대가 준비되지 않았을 때 움직이는 게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저는 괜찮은데…….”

시을렌이 그녀의 유모를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괜찮아요. 전 버틸 수 있어요.”

유모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금방 돌아올 테니까. 버텨주세요.”

라온은 두 사람에게 고개를 끄덕여주고서 어둠 속에 모습을 감췄다. 마기로 가득 찬 방을 빠져나가는 그의 눈동자 위로 붉은 섬광이 맺혔다.

‘할 일이 많겠군.’

*     *      *

다음날.

후안 라키온은 옥좌에 앉은 채로 인상을 구겼다.

‘무슨 일이지?’

리메르가 갑자기 가문 내부에 있는 모든 사람을 소집해달라고 해서 아침부터 가주전에 가문의 무인들 대부분이 모여 있었다.

“라온 지그하르트가 아니라, 리메르라면 큰일은 아닐 겁니다.”

벨스가 차분히 고개를 저었다.

“단전은 고쳤지만, 여전히 망나니처럼 살고 있다고 합니다. 어제처럼 헛소리만 할 게 분명합니다.”

“광검도 영악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놈이다. 주의해야 해. 시을렌과 바시온은 확인했나?”

“예. 둘 다 그곳에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후우.”

후안이 눈매를 찌푸리며 탁자에 놓인 차를 가볍게 들이켰다.

“거사가 멀지 않았다. 조금만 참으면 되니, 언행에 주의하도록.”

“명심하겠습니다.”

벨스가 고개를 끄덕였을 때 알현실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라.”

후안이 고개를 끄덕이자, 가주전의 문이 열리고 리메르와 광풍대가 들어왔다. 검사들의 눈빛이 전장에 서는 장수처럼 형형하게 번뜩였다.

‘음?’

리메르와 대부분의 광풍대 검사들이 있었지만, 라온 지그하르트와 다른 한 명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 모여달라고 해놓고, 그쪽은 왜 사람이 없는…….”

“범인을 찾았습니다.”

리메르가 후안의 말을 끊으며 방긋 웃었다.

“범인…?”

“범인이라니?”

“우리가 모두 찾고 있던 범인 말입니다. 시니건 지부를 습격하여 수많은 사람을 죽인 악귀들이 누구인지 찾아냈죠.”

그는 이미 진실을 파악한 것처럼 자신감 넘치는 눈빛으로 중앙의 길을 나아갔다.

“그게 누구인가.”

후안은 시뻘겋게 달아오른 듯한 심장을 내리누르며 물었다.

“그 새끼는…….”

리메르가 더 진한 미소를 그리며 입을 떼려 할 때 라키온 가문의 동쪽에 세워진 산에서부터 거대한 진동이 일어났다.

쿠와아아아아앙!

이어지는 웅대한 폭발음에 알현실에 있는 모두의 시선이 그쪽을 향했다.

“저건 뭐야!”

“미친개 한 마리를 풀어놨거든요.”

리메르가 후안을 올려보며 하얀 이를 드러냈다.

“곧 범인을 데리고 올 겁니다. 물론…….”

숨통이 끊어졌을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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