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558화 (557/653)

제558화

“이, 이상하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게프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

라온은 그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여성의 시체만이 아니라, 다른 시체들까지 살핀 후 턱을 주억였다.

‘역시 다 똑같군.’

시체들은 꼭 백혈교의 혈귀들에게 당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처럼 목덜미나, 손목이 거칠게 뜯겨나가 있었다. 별생각 없이 보았다면 나도 백혈교의 짓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처들을 세밀하게 살펴보면 이 일을 저지른 놈들이 실수한 부분을 알 수 있었다.

‘상처가 생긴 시간 사이에 차이가 있어.’

심장이 파이거나, 허리를 베어서 무인들을 죽게 만든 상처보다, 피를 빨기 위해서 손목이나, 목을 물어 뜯은 상처가 더 나중에 생겨났다.

‘그건 말이 안 되지.’

백혈교의 혈귀들은 십중팔구는 살아있는 사람의 피와 살을 뜯으니까.

백혈교가 일으키는 피의 축제는 혈신에게 산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행사이기에 신선한 피를 마셔야만 한다.

즉, 죽은 사람이 아니라, 산 사람의 피와 살을 뜯어야 하는데, 지금 이곳에 있는 시체들 대부분은 죽은 이후에 손목이나 목덜미를 뜯겼다.

‘누가 이 일을 꾸민 거야.’

젊은 여성만이 아니라, 다른 시체들까지 확인하니, 더욱더 확실해졌다.

‘거기다 가장 중요한 건….’

라온이 왼손으로 허리 뒤편에 착용한 진혼검을 쓸어내렸다.

‘진혼검이 울지 않는다는 거지.’

진혼검은 나도 느끼기 힘든 미세한 혈기를 감지할 수 있지만, 지금 녀석은 죽은 이들에 대한 안타까움만 가질 뿐 백혈교에 대한 분노를 일으키지 않고 있었다.

지부의 인원들은 백혈교에 당한 게 아니라, 백혈교로 위장하고자 하는 괴인들에게 당한 게 분명했다.

“맞아.”

마르타가 중년 무인의 시체를 살피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있는 사람들 백혈교에게 당한 게 아니야.”

“그, 그게 무슨….”

도리안이 깜짝 놀라서 뒤로 물러섰다.

“백혈교 놈들이 혈공을 운용하면서 살을 물어뜯으면 피를 더 많이 뿜어내기 위해서 혈관이 바깥쪽으로 벌어지게 돼.”

마르타가 시체의 목덜미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혈관이 안으로 말려 들어가 있어. 이빨로 뜯었을 수는 있지만, 백혈교의 짓이 아니야. 가짜다.”

그녀는 확신을 지닌 채 고개를 저었다.

라온은 당차게 가짜 백혈교의 짓이라 선언한 마르타를 보며 옅게 웃었다.

‘그동안 조사를 계속했나.’

단숨에 백혈교의 짓이 아니라는 것을 파악하다니, 마르타는 그녀의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서 계속 백혈교를 연구했던 것 같았다.

“그녀의 말이 맞습니다.”

라온이 마르타의 말에 동의하며 게프와 벨스에게 시선을 돌렸다.

“혈관만이 아니라, 손목이나 목을 뜯긴 상처를 보면 죽은 이후에 난 것들입니다. 산 사람의 피를 흡혈하는 백혈교 놈들의 행동 방식이 아니죠. 이건 백혈교가 아니라, 백혈교를 연기하려는 놈들의 짓입니다.”

이곳에 있는 모두에게 목덜미와 속목의 상처 안쪽의 색이 미세하게 다른 것을 보여주었다.

“넌 그걸 어떻게 알았냐?”

마르타가 신기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연히 알아야지.”

백혈교는 주적이나 다름없는 놈들이었기에 꾸준한 조사는 필수였다.

“으음….”

마르타는 그 말을 듣자마자, 이상한 소리를 들은 것처럼 얼굴을 찡그리며 뒤로 훌쩍 물러섰다.

“너 뭐해?”

라온이 헛웃음을 흘릴 때 벨스가 시체들을 향해 다가갔다. 기분이 좋지 않은 듯 서늘하면서도 묵직한 기운이 느껴졌다.

“…….”

벨스는 말없이 시체들을 천천히 살핀 후 몸을 일으켰다.

“두 분의 말씀이 맞는 것 같소.”

그가 라온과 마르타를 차례로 보고서 진중하게 턱을 끄덕였다.

“난 백혈교를 만난 적이 없어서 혈관까지는 모르겠지만, 상처가 난 시간은 확실히 다르오. 누군가 백혈교의 짓으로 꾸미려고 한 것 같군.”

벨스는 순순히 본인들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겪어보지 않았다면 모를 수도 있죠.”

마르타는 별일이 아니라는 듯 손을 저었다. 벨스가 먼저 인정을 하니, 그녀도 평소와 달리 부드럽게 반응해주었다.

“…….”

라온은 마르타에게 정중한 자세를 취하는 벨스를 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정말 몰랐을까?’

벨스의 이명은 장현검. 침착하면서도 냉정한 성격이며 라키온 가문의 차기 가주가 될 사람이 이 정도 수법에 넘어갔다는 게 이해되질 않았다.

‘무조건 의심할 필요는 없지만, 조심하는 게 좋겠… 음?’

주의할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벨스에게서 무언지 모를 악취가 풍겨왔다.

쓰레기가 쌓이고 쌓인 구덩이에서 스멀스멀 피어나는 듯한 괴악한 냄새는 아주 짧은 순간 동안 후각. 아니, 영혼을 자극하고서 사라졌다.

‘뭐지?’

라온이 눈을 부릅뜬 채로 다른 사람들을 보았다. 버렌과 마르타, 도리안은 벨스의 바로 옆에 있으면서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듯 평온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 악취를 나만 느낀 건가?’

-본왕도 느꼈느니라.

라스가 짜증이 올라온 눈빛으로 혀를 찼다.

-지금 그건 오염된 마기의 냄새이니라.

‘오염된 마기?’

-순수한 마기에 오물이 덕지덕지 묻어서 더럽혀진 추악한 냄새이니라. 어그러짐이 심해서 어떤 놈의 기운이었는지도 모르겠구나.

녀석은 더러운 냄새를 맡았다며 본인의 코를 매만졌다.

‘마기라….’

대륙에서 마기를 사용하는 집단은 흑탑과 마족추영회뿐이다.

다만 마기에 씌인 아티팩트 같은 것을 사용할 수도 있기에 무조건 그쪽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어찌 되었든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되겠군.’

혹시나 해서 시체들을 다시 살펴보았지만, 자그마한 마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벨스에게 무슨 비밀이 있는지는 천천히 파헤쳐야 할 것 같았다.

“게프 님.”

라온이 게프에게 시선을 돌렸다.

“남쪽에 있다던 산채는 어떻게 됐습니까?”

“아, 아까 소식이 들어왔는데, 산채를 통째로 무너뜨리고 도망쳤다고 합니다.”

게프는 지금도 백혈교의 짓이 아니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는 듯 어벙한 눈으로 대답했다.

“조사는 그곳부터 시작해야겠군요.”

버렌이 짧게 혀를 찼다.

그의 말대로 산채를 조사해야 하지만, 그곳에 가도 아무것도 건질 게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일단 그 전에 이분들부터 가문으로 복귀시키도록 하지.”

라온이 시체를 가리고 있는 천막을 걷으며 묵례하듯 눈을 감았다.

“그래야죠. 그게 맞죠.”

도리안이 그 말이 옳다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 이후에는 우리 가문으로 가는 게 어떻겠소? 이 주변에는 묵을 곳이 없을 것이오.”

벨스는 동쪽에 있는 라키온 가문으로 가자며 리메르에게 다가갔다.

“음….”

리메르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입맛을 다시다가 시선을 돌렸다.

“라온. 어떻게 생각하냐?”

“가도록 하죠.”

의심되는 인간이라면 조금 더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게 옳은 일이었다.

라온은 눈을 감지도 못한 채 죽은 가문의 검사들을 보며 입술을 꾹 내리 씹었다.

‘상대가 누구든. 원한을 갚아드리겠습니다.’

*     *      *

라온과 광풍대는 지그하르트와 거래하는 상단에게 죽은 사람들을 가문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부탁한 후에야 시니건 지부를 떠났다.

죽은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다 살폈기에 달이 하늘의 중심으로 기어오르고 있을 때가 되어서야 라키온 가문에 들어설 수 있었다.

시간이 늦어져서 껌껌한 어둠이 커튼처럼 세상을 휘감았지만, 조명이 가득한 라키온 가문 내부는 대낮처럼 환했다.

“라키온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벨스가 진중하면서도 과하지 않게, 고개를 주억이고서 태양처럼 붉은 빛을 띈 정문을 열었다.

‘이쪽도 어마어마하군.’

라키온 가문의 규모도 일반적인 가문과는 궤가 달랐다.

가문이 아니라, 왕성을 보는 듯한 느낌. 지그하르트보다는 작았지만, 웬만한 가문과는 비교할 수 없을 규모의 건물과 시설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벨스를 따라 중앙대로를 걷고 있는데, 주변에 있던 검사들이 절도 있게 고개를 숙여왔다.

장검술로 이름 높은 가문답게 무인들의 기세가 하나 같이 날카로우면서도, 고고했다.

“이곳이 가주께서 머무는 가주전이오.”

벨스는 가문 가장 안쪽에 세워진 첩탑처럼 웅장한 건물의 앞에서 멈춰 섰다. 꼭 장검으로 하늘을 찌르는 듯한 모양새였다.

‘이곳이….’

라온이 그 말을 들으며 손끝을 비볐다. 저 건물 안에서 칼날을 세운 듯한 강렬한 기운이 풍겨 나오고 있었다.

“크흠.”

벨스는 짧게 헛기침을 하고서 적색 사자가 그려진 문을 두드렸다.

“가주님. 지그하르트의 손님들을 모셔왔습니다.”

“들어오거라.”

목소리에 추가 달린 듯한 묵직한 음성이 즉답으로 흘러나왔다. 문 바로 뒤에서 말하는 것 같기도 했고, 길게 뚫린 동굴의 끝에서 들려오는 것 같기도 했다.

“예.”

벨스는 고개를 끄덕이고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라온은 광풍대에 눈빛을 한 번 보내고서 벨스의 뒤를 따라 가주전으로 들어섰다.

지그하르트와 달리 가주전 자체가 알현실도 겸하는 듯 다른 방이 보이지 않고, 오직 중앙 단상으로 향하는 대로만 눈에 들어왔다.

화려함. 그 단어를 그대로 비친 듯한 공간이다. 붉은 카펫은 올 하나하나가 살아 있어 잔디를 밟는 듯했고, 양옆에는 보기만 해도 값을 측정할 수 없는 예술품들이 줄지어져 놓여 있었다.

“어서 오게나.”

돌 대신 금을 쌓은 듯한 단상 위에서 적발의 노인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 크지 않은 체구였지만, 산이 일어나는 듯한 우악스러운 패기가 느껴졌고, 얼굴의 주름과 달리 눈동자에는 생기가 흘러넘쳤다.

“내가 라키온의 가주 후안일세.”

후안 라키온이 광풍대 전체를 굽어보며 거만하게 턱짓했다.

“라키온 가주님을 뵙습니다.”

라온의 인사를 따라 광풍대가 후안에게 고개를 숙였다.

“훤칠한 영웅들을 보니 기분이 좋군.”

후안이 광풍대의 인사를 받으며 멀뚱히 선 리메르를 바라보았다.

“귀전대주도 오랜만이야.”

“아….”

리메르가 귀전대라는 말을 듣자마자, 눈매를 찌푸렸다.

“지금은 광풍대주거든요. 제대로 불러주시겠어요?”

“아, 실수했군. 늙어서 말이야.”

후안 라키온이 껄껄 웃으며 손을 저었다.

“그럼 그쪽이 용살자인가.”

그의 검은 시선이 리메르에게서 돌아가 라온을 향했다.

“확실히 격이 다르군. 21살에 그 무력이라니, 직접 보지 못했다면 믿기 힘들었겠어.”

후안은 진심으로 놀란 듯 목울대가 출렁거렸다.

“용살자와 광검이 방문해주었으니, 연회를 여는 게 좋겠지.”

그는 이런 기쁜 날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며 술상을 차려야겠다고 중얼거렸다.

“죄송합니다.”

라온이 앞으로 나오며 고개를 저었다.

“가솔들을 잃은 상황이다 보니, 술을 마실 여건이 되지 않습니다. 이해해주십시오.”

조심스럽게 거절의 의사를 비쳤다.

“으음, 그렇지. 내가 실수를 할 뻔했군.”

후안이 본인의 이마를 치며 허허 웃었다.

“미안하네. 이 나이가 되면 헛소리가 자주 나오지. 이해해주게.”

그는 실례했다고 말하며 벨스를 불렀다.

“벨스.”

“예.”

벨스가 후안의 부름을 듣고 단상 위로 올라갔다.

“어떻게 되었지? 시니건 지부를 습격한 놈들이 백혈교가 맞았느냐?”

“아니었습니다.”

“아니다?”

“예. 라온 검사와 마르타 검사 덕분에 알아낸 것이 있는데….”

그는 시니건에서 있었던 일들을 모두 후안에게 보고했다.

“멍청한 놈!”

후안이 이를 바득 갈고서 벨스의 뺨을 후려쳤다. 북이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벨스의 입에서 핏물이 튀어나가 붉은 카펫을 적셨다.

“그런 것 하나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다니, 손님들 앞에서 무슨 망신이냐!”

그는 얼굴을 돌린 벨스의 뺨을 한 번 더 후려치고서 악을 질렀다.

“음….”

라온이 후안과 벨스를 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무력은 강하지만, 폭급하고 생각이 짧다는 게 주 의견이었지. 신기하게도 본인의 그릇은 잘 알고 있다고 했었고.’

후안이라는 남자는 암시장과 비연회의 정보에 적힌 글귀 그대로의 사람이었다.

다만 아무리 그래도 후계자로 정한 벨스를 외인인 광풍대 앞에서 모욕하고 폭력을 행사할 줄은 몰랐다. 생각 이상으로 무식한 사람이었다.

“이놈 때문에 쓸데없는 고생을 하게 되어서 미안하네.”

“아닙니다.”

라온은 고개를 떨구고 있는 벨스의 등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피곤할 텐데, 너무 오래 잡아둔 것 같군. 일단 오늘은 쉬도록 하게나.”

후안은 구겼던 인상을 펴며 뒤에 있는 집사에게 손짓했다.

“이쪽으로 오시죠.”

집사는 조용히 고개를 숙인 후 가주전의 문을 열고 광풍대를 밖으로 안내했다.

“아, 네….”

광풍대는 어색해진 분위기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집사를 따라 알현실을 나섰다.

라온은 나가기 전에 고개를 슬쩍 돌렸다. 후안과 벨스는 앞뒤로 교차하여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저 둘의 관계는….’

*     *      *

“이야.”

리메르가 별채 로비에 있는 소파에 등을 묻으며 기지개를 폈다.

“여긴 오랜만에 오네.”

“오신 적이 있었어요?”

크레인이 신기하다는 듯 리메르의 옆으로 다가갔다.

“응. 복속할 때 한 번 왔었어.”

“복속이라구요? 그럼 라키온과 싸웠던 거예요?”

“그래. 가주님의 얼굴에 주름이 없을 때였지.”

리메르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에 라키온은 비상하기 시작하는 가문이었거든. 본인들도 자신감이 넘쳤고, 위치가 겹치다 보니 우리하고 자주 부딪쳤지. 결국 전면전이 일어났고, 우리가 이겨서 이들을 봉신가로 받은 거야.”

그는 본인이 겪었던 일을 역사서에 나오는 것처럼 가볍게 읊었다.

“살려둔 게 신기하네요.”

마르타가 처음 듣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라키온이 강하기도 했고, 이상한 술수 같은 걸 부리지 않았거든. 항상 정면에서 힘으로만 싸운 게 가주님의 마음에 드셨나 봐.”

리메르가 그 당시를 떠올리는 듯 눈동자를 위로 굴렸다.

“그랬구나.”

“그, 그건 몰랐네.”

검사들은 당연히 라키온 가문이 먼저 지그하르트를 따랐을 거라 생각한 듯 헛바람을 흘렸다.

“그런데 벨스 님 괜찮을까요? 라키온 가주님이 심하게 화난 것 같던데….”

도리안이 걱정된다는 듯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몰상식한 인간이야.”

마르타도 벨스가 얻어맞을 줄은 몰랐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추해.”

루난은 후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중얼거리며 맹한 눈을 부라렸다.

“벨스 님과 달리 너무 폭급하던데요.”

“그러게. 아들을 우리가 있는 곳에서 때리다니….”

“성질대로 사는 사람 같았어.”

조장들만이 아니라, 광풍대 검사들 모두가 라키온 가주를 욕하고, 벨스가 불쌍하다고 중얼거렸다.

라온은 벨스가 불쌍하고, 라키온 가주가 폭급하다는 일관적인 의견이 나오는 것을 들으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설마 이 반응을 원했던 건가?’

잠시지만, 광풍대의 시점이 지그하르트의 지부가 아니라, 벨스와 후안으로 전환되었다.

무식하고 폭급한 가주라는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벨스를 쳤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짜악!

라온이 가볍게 손뼉을 쳐서 광풍대 검사들의 시선을 모았다.

“오늘 수고했다. 너희도 충격이 컸을 테니, 이만 가서 쉬도록.”

“저, 정말 쉬어요?”

“웬일이래?”

“그러게. 난 오늘도 훈련시킬 줄 알았어….”

검사들은 쉬라고 말한 라온이 의외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시켜줘?”

“흐읍!”

“아, 아니에요!”

“당장 가겠습니다!”

라온이 시켜주냐고 말하며 고개를 틀자, 검사들은 재빠르게 고개를 저으며 본인들의 방으로 달려갔다.

“조장은 남아봐.”

라온은 버렌과 마르타, 루난을 소파에 남기고 기막을 쳤다.

“무슨 일인데?”

버렌이 왜 본인들만 남겼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라키온 가문이 좀 의심스러워서.”

라온은 조장들에게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들을 모두 말해주었다.

“사실 시니건에 지부를 세운 것도 처음에는 라키온을 견제하기 위해서였을 거야. 세월이 지나고, 라키온 가문이 조용해지면서 유명무실해졌겠지만.”

“맞아.”

리메르가 놀란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라키온 가문을 복속하자마자, 견제를 위해 바로 지부를 세웠지. 수십 년이 지났고, 그동안 라키온이 아무런 일도 저지르지 않아서 다 잊혀졌지. 넌 그걸 어떻게 알았냐?”

“그게 당연한 거니까요.”

라온은 별일 아니라고 말하며 손을 내렸다.

“그럼 지부가 습격당했을 때 가장 먼저 의심받는 게 이 라키온 가문 아니야?”

버렌이 라온을 보며 눈매를 찡그렸다.

“일반적으로 그렇게 생각하니까. 라키온 가문을 용의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의견도 많지. 지금 너희만 봐도 라키온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

라온이 차분히 고개를 저었다.

“무엇보다도 벨스 라키온이 백혈교의 상처를 알아보지 못했다는 게 걸려.”

백혈교에 대한 지식이 없다고 해도 상처가 난 시간 차이가 크다는 것을 놓쳤다는 게 이해되질 않았다.

가장 큰 의심점은 당연히 마기였지만, 그건 혼자만 느낀 것이기에 일단 말을 하지 않았다.

“라키온 가주는 그냥 성격이 더러운 놈 같던데, 손님들 앞에서 아들을 치는 인간이 그렇게 술수를 짠다는 게 믿기지 않아.”

마르타는 라키온 가주가 단순한 사람 같다며 입매를 비틀었다.

“그것조차 연기일 수 있지.”

라온이 세 조장을 차례로 보며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찍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배신자들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거든.”

“시간이 많지 않다고?”

“그래. 얼마 전에 가문의 배신자를 색출한 건 모두 알고 있지?”

“그래.”

“가문 내부 정리가 끝났으니, 다음은 봉신가를 살필 차례라는 건 누구나 알지. 조급함에 제 발 저린 놈들이 일을 저지르기 전에 지부에 들켜서 그쪽을 습격했을 가능성도 있어.”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리고 범인이 라키온이라는 증거는 없지만, 의심할 구석은 충분했다.

“그럼 왜 여기에 온 건데? 위험할 수도 있잖아.”

루난이 맹한 눈으로 합당한 질문을 찔러 넣었다.

“위험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라온은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입매를 말아 올렸다.

“이곳에 와야만 알 수 있는 일들이 있으니까.”

-밥!

그 말을 하자마자, 침을 흘리며 자던 라스가 벌떡 일어났다.

-오늘 하루 종일 굶었으니, 일단 밥부터 먹자! 그게 가장 중요한 일 아니더냐!

‘…제발 그냥 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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