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556화 (555/653)

제556화

라온이 실비아를 보며 입을 떡 벌렸다. 그녀는 해방이라고 외친 것으로 모자라서 자유를 얻은 노예처럼 양팔을 하늘로 들어 올린 채 함성을 내질렀다.

‘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지?’

내 수련을 만족스럽게 따라온다고 생각하던 실비아가 저렇게 해방이라고 외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악몽을 꾸는 듯한 기분이었다.

-악몽은 지랄!

라스가 푸른 눈을 부라리며 다가왔다.

-네놈이 엄마의 악몽이었느니라!

녀석은 더럽게 눈치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저 솜사탕 녀석에게 눈치 없다는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어이가 없어서 머리가 돌아가질 않았다.

“어, 엄마.”

라온이 떨리는 손끝을 들어 올려서 실비아를 불렀다.

“후우우….”

실비아가 긴 한숨을 내뱉으며 라온에게 시선을 돌렸다.

“정말 너무 힘들었어. 수련도 좀 적당히 시켜야지!”

그녀는 수련을 견디느라 너무 고통스러웠다며 눈을 흘겼다.

“엄마도 좋아하셨잖아요. 실력이 빠르게 늘어서 웃기도 했는데….”

라온은 당황하여 어릴 때처럼 어머니가 아니라, 엄마라 부르며 말을 놓았다.

“그건 좋아서 웃는 게 아니라, 힘들어서 나오는 헛웃음이야! 이 눈치 없는 아들놈아!”

실비아가 미간을 찌푸리며 발을 굴렀다.

“아….”

라온이 인상 쓰는 실비아를 보며 턱을 떨었다.

“하지만 엄마가 분명 열심히 수련하고 싶다고….”

“그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지! 여기서 하루종일 너한테 지적받다가 별관에 돌아가면 또 밤 훈련으로 갈굼 당하잖아! 난 열심히 수련하고 싶은 거지, 죽고 싶은 게 아니라고!”

그녀는 네가 아들이 아니었다면 진즉에 때려치웠을 거라며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뭐, 뭐야. 여기서만 훈련한 게 아니었어?”

버렌이 깜짝 놀라서 입을 떡 벌렸다.

“저 강도의 훈련을 별관에서도 시켰다고? 저거 진짜 미친놈이네….”

마르타도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듯 인상을 구겼다.

“악마 라온….”

루난은 무섭다고 말하며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으으, 찌르면 피가 아니라 독이 나올 거 같아요.”

도리안도 질린 것처럼 뒷걸음질을 쳤다.

“으윽….”

라온은 조장들과 도리안에게 차마 반박의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입술을 꾹 씹었다.

“어, 엄마. 그래도 실력은 확실히 늘었잖아요. 이렇게 빨리 발전한 사람은 육황에도 없을 거예요!”

“수명을 갈아서 만들어낸 실력이잖아! 조금만 더 했으면 정말 죽었을 거라고!”

실비아가 수명까지 깎았다고 하자, 정말 할 말이 없었다.

-푸헤헤헤헤!

라스가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네놈의 주둥이가 가만히 있는 날을 다 보는구나! 민트초코를 먹은 것보다 더 달달하느니라!

녀석은 실비아의 등을 두드리며 더 하라고 중얼거렸다.

“라온. 난 20년 넘게 별관에만 있었어. 시녀들과 함께 집안일을 하고 정원을 가꿨지만, 검사로서 하던 수련은 모두 그만뒀지.”

실비아가 탁 풀린 눈동자를 들어 올렸다.

“그런 내가 단전이 생겼다고, 어떻게 네 수련을 바로 따라가겠어. 실력이 늘어난 게 문제가 아니라, 살아남은 게 용한 거라고!”

그녀가 고개를 마구잡이로 흔들었다. 모래가 스며들어 너저분해진 금발이 출렁였다.

“아니, 그러면 말을 좀 하시지.”

“말을 해도 듣질 않았잖아!”

“어, 언제….”

“조금 쉬었다가 하면 어떨까, 다른 수련을 좀 하면 어떨까 했지만, 너 계속 기본이 중요하다며 기본 검술만 끝없이 반복시켰다고!”

실비아는 잘 걸렸다는 듯 빠르게 입술을 달싹였다.

“거기다 칭찬 한마디 없이 계속 지적만 하는데, 너 같으면 버틸 수 있겠니?”

“전 그게 더 좋은데요….”

“뭐?”

“아니에요.”

라온이 뺨을 긁적이며 목소리를 낮췄다. 전생은 당연했고, 글렌이나 리메르에게 배우다 보니, 거의 칭찬을 듣지 못했다.

하던 대로 했을 뿐인데, 욕을 먹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다 됐고. 난 이제 진짜 지쳤어.”

실비아가 바닥에 대 자로 드러누웠다. 그녀는 한동안 쉴 거라며 눈을 감았다.

-본왕이 매번 말했지 않느냐. 너처럼 수련에 미친 놈은 마계에도 없다니까.

라스는 입꼬리에 웃음을 건 채로 손을 저었다.

-엄마! 걱정 말거라. 앞으로는 인간적인 본왕이 챙겨주겠느니라.

‘끄으윽….’

마왕이 인간적이라고 하며 실비아의 어깨를 두드리는데 반박할 수 없다는 게 너무 분했다.

“내 이럴 줄 알았어.”

리메르가 옆으로 다가와서 픽 웃었다.

“이 위대한 스승님처럼 적당히 자유를 줬어야지.”

그는 요즘 교육은 자유와 강압이 공존해야 한다며 어깨를 으쓱였다.

“하아….”

라온이 한숨을 내쉬었다. 저 방임주의 스승한테도 조롱당하는 이 상황이 너무도 갑갑했다.

“넌 너무 각이 져 있어. 사람이 가끔은 둥글둥글해야 하는데….”

“임무부터 말씀해주세요.”

“성질 급하긴. 큰 임무는 아니야.”

리메르가 입맛을 다시며 임무서를 펼쳤다.

“시니건 지부에서 온 연락인데, 남쪽에 남북맹의 산채로 보이는 곳이 생겼고, 사람들이 실종되는 일이 많아졌다고 조사를 좀 해오래.”

“남북맹이라….”

부왕이 이름과 달리 남북맹 자체에 관해서는 오랜만에 들어보았다. 그동안 조용했으니, 산채를 늘리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대주님은 항상 간단해 보이지만, 힘든 임무를 가져오던데….”

“맞아. 이상하게 어려워지더라고.”

“똥손.”

버렌, 마르타, 루난은 리메르의 임무 고르는 솜씨를 의심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어쩔 수 없어! 편하고 좋은 건 다 위에서 가져간다고!”

리메르는 좋은 임무를 받고 싶으면 본인을 전주로 승진시켜 달라며 손을 내저었다.

“어쨌든 출발은 삼 일 후다. 그리 급한 임무는 아니지만, 준비는 철저히 해둬. 그리고 넌 자제라는 걸 좀 배우고.”

그는 라온의 어깨를 두드리고서 유유히 사라졌다.

“후우….”

라온은 리메르가 떠날 때까지 일어나지도 않는 실비아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정말 이대로 쉴 생각인 것 같았다.

“이제 우리 악마 부대주도 좀 조용해지겠네.”

크레인이 광풍대 검사들을 돌아보며 히죽 웃었다.

“한동안 저 괴물이 침울해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기분이 좋지 않냐?”

그는 실비아만이 아니라, 본인들의 훈련도 너무 힘들었다며 고개를 저었다.

“엔시아 님 없나? 충격받은 표정을 사진으로 남겨두고 싶은데…음?”

크레인이 말을 하다 말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검사들은 아무런 말도 없이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왜 말들이 없어?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놀리겠어!”

“뒤, 뒤….”

“뒤? 뒤에 뭐… 헉!”

그가 고개를 돌리다가 우뚝 멈췄다. 눈동자에 태양보다 더 진한 붉은 빛을 머금은 라온이 사나운 숨을 내뱉고 있었다.

“라, 라온 님! 저, 저는 그냥….”

라온은 도망치려는 크레인이 머리를 손으로 움켜쥐고 그의 고개를 억지로 틀었다.

“내가 조용해질 생각은 없고, 너희를 조용히 만들 생각은 있는데, 어때?”

그는 섬뜩한 미소를 그리며 광풍대 검사들을 차례로 살펴보았다.

“너희를 어머니처럼 가르치면 되는 거잖아.”

“아, 그, 그게 물리적으로 불가능한데요….”

크레인이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희는 실비아 님 정도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제 임무라 준비를 해야….”

“준비하는 건 한 시간이면 되잖아.”

“예?”

“지금부터 임무에 나가기 전까지 실전 대련을 진행한다. 물론 상대는 나고, 그 시작은….”

라온이 첫 번째 상대를 고르는 듯 눈동자를 굴렸다.

“으윽!”

“히익!”

광풍대 검사들은 당연하다는 듯 물러나서 크레인과의 대련장을 만들어 주었다.

“크레인. 너로 정했다.”

라온이 들어오라는 듯 손을 까딱였다.

“또 왜 나야!”

*     *      *

“흐아아암.”

눈매가 가느다란 여성이 새벽바람이 스치는 창가를 보며 입이 찢어질 정도로 크게 하품했다.

“리시아. 그렇게 지루하냐.”

안쪽 책상에 앉아 있던 인자한 얼굴의 지부장이 가볍게 웃었다.

“당직이야 항상 지루하지만, 시니건이라는 지역 자체가 너무 재미없어요. 남쪽에 생겼다는 산채도 규모가 작고, 동쪽에는 라키온 가문이 있어서 가만히 놔둬도 알아서 돌아가고.”

리시아라 불린 여성이 재차 하품하고서 책상에 턱을 얹었다.

“그래서 연말에 복귀 신청을 한 거였군.”

지부장이 보고 있던 책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저었다.

“본가는 이 지부와 달리 냉정한 곳이다. 조금만 뒤처져도 쳐다보지도 않아. 거기서 한 달만 있으면 이 지루한 동네가 그리워질 거다.”

“저도 본가에서 나왔는데, 너무 무시하시네요!”

리시아가 지부장을 보며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리고 제가 복귀 신청을 한 건 이곳이 지루해서만은 아니에요.”

“그럼?”

“내년 1월 1일에 광풍 부대주와 부왕의 생사결이 열리잖아요. 전 그 전투를 꼭 보고 싶다구요!”

그녀가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며 두 손을 꼭 모았다.

“지금까지 살면서 많은 미남을 보았지만, 라온 님 같은 미모는 처음이었어요. 그 잘생긴 얼굴로 부왕을 쓰러뜨린다고 생각하니, 아주….”

리시아는 라온이 부왕의 목을 베는 꿈을 꾼 것처럼 몽롱한 눈빛으로 달을 바라보았다.

“초를 치는 것 같다만, 부왕은 강해. 광풍 부대주가 태어나기 전부터 도끼의 고수로 명성을 떨쳤지. 난 솔직히 말해서 이기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비기는 게 제일이야.”

“라온 님은 광룡 카이바르를 잡았거든요? 인간한테는 안 져요.”

“부왕 역시 기회가 되면 용을 잡을 수 있는 무인이다.”

“지부장님은 누구 편이신 거예요!”

“당연히 광풍 부대주가 이기기를 바라지. 적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싶을 뿐이다.”

지부장이 손을 저을 때 지부 밖에서 경계를 서고 있던 무인이 들어왔다.

“지부장님? 나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무인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숙였다.

“무슨 일이지?”

지부장과 리시아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

“아이?”

무인의 등 뒤에는 붉은 머리칼이 인상적인 어린 소녀가 어깨를 움츠린 채 서 있었다.

어찌나 급했는지 신발 한 짝은 보이지 않았고, 귀티 나는 옷도 넝마가 되어 있었다.

“자, 잠깐 너는….”

지부장이 소녀의 얼굴을 확인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시을렌이 아니냐!”

소녀는 지그하르트의 봉신가문 라키온의 막내딸 시을렌이었다. 작년 라키온 가주의 생일에 인사를 나눴기에 잘못 봤을 리가 없었다.

“무슨 일이야! 습격이라고 받은 것이냐?”

지부장은 라키온의 금지옥엽과 다름없는 시을렌이 거지꼴로 있는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헛바람을 흘렸다.

“일단 진정 좀 시키고 물어봐요.”

리시아가 따뜻한 물을 가져오겠다며 탕비실로 들어갔다.

“그건 그렇군.”

“제, 제 말을 지그하르트에 전해주세요!”

지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내쉬었을 때 시을렌이 그의 소매를 붙잡았다.

“음, 이쪽으로 앉거라.”

지부장은 다리가 파르르 떨리는 시을렌을 지부 중앙에 있는 소파에 앉혔다.

“다 들어줄 테니, 천천히 말해보거라.”

“하아아….”

시을렌이 가슴을 부여잡은 채 숨을 골랐다. 그녀는 마음을 정한 듯 시선을 올려 지부장의 눈을 바라보았다.

“요, 요즘 저희 가문에서 갑자기 사라지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저랑 친하게 지내던 분들도 작별 인사조차 하지 않고 하루아침에 가문을 떠났죠.”

“음….”

지부장이 신음을 흘렸다. 가문의 인원이 갑작스럽게, 그것도 많이 사라진다는 건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반면에 잘 모르는 손님들이 자꾸 가문에 들어와서 떠난 사람들의 자리를 채웠어요. 느낌이 좋지 않아서 몰래 숨어서 알아봤는데 그 사람들은….”

시을렌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가려 할 때였다.

쿠우우웅!

지부의 정문이 거칠게 열리고, 적발의 중년인이 제집처럼 지부 안으로 들어왔다.

왼쪽 눈에 금색 안대를 쓰고 있었는데, 하나 남은 우안에서 어마어마한 패기가 타오르고 있었다.

“베, 벨스 검사?”

지부의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라키온 가주의 첫째 아들이자, 이미 후계자에 이름을 올린 벨스 라키온이었다.

“제 동생이 실례를 저질렀군요.”

벨스가 지부장에게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요즘 수련이 힘들어서 떼를 쓰는 중입니다. 이상한 소리를 했다고 해도 이해해주십시오.”

그는 패기를 두른 눈빛과 달리 부드러운 미소를 그렸다.

“으으….”

시을렌은 친오빠를 보았음에도 겁에 질린 것처럼 두 손을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음….”

지부장은 떨고 있는 시을렌의 손을 잡아주고서 그녀를 등뒤로 숨겼다.

“당연히 이해합니다. 다만 지금 저는 시을렌 양과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중이라, 조금만 기다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

벨스는 대답하지 않고, 경쾌해 보이던 미소를 어둑하게 물들었다.

“들었나보군.

“벨스 검사?”

“그러면 어쩔 수 없지.”

그는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등 뒤에 차고 있던 장검을 뽑았다.

“이, 이게 무슨 짓이오! 여기는 지그하르트의 지부….”

“어쩌라고.”

벨스는 지부장의 말을 무시하고, 들어 올린 장검을 벼락처럼 그어 내렸다.

“크윽!”

지부장은 시을렌이 검격에 맞지 않도록 뒤로 밀어낸 후 손날로 수도를 세웠다. 당황한 와중에도 그의 오러는 흔들리지 않았다.

촤아아악!

하지만 벨스의 대검은 지부장의 오러를 종잇장처럼 자르고, 그의 목까지 갈라버렸다.

“아….”

“지, 지부장님!”

무인들은 굴러떨어진 지부장의 목을 보고 입술을 부르르 떨었다. 지금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이었다.

“꺄아아아악!”

차를 타서 나오던 리시아도 쟁반을 떨어뜨리며 비명을 질렀다.

“지, 지부장…크윽!”

리시아는 재빠르게 정신을 차리고, 본가에 비상 호출을 보내기 위해 안쪽으로 달려갔다.

벨스는 그런 리시아의 생각을 파악한 듯 장검을 들어 올려 창처럼 쏘아냈다.

쿠구구구구구!

장검은 벽을 뭉개버리고, 그 뒤에 있던 리시아의 몸통을 반으로 갈라버렸다. 피에 젖은 돌조각이 가련하게 흩날렸다.

“동생아.”

벨스가 건조하기 짝이 없는 눈동자로 얼굴이 퍼런 입술을 덜덜 떠는 시을렌을 굽어보았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죽는 이유는 너 때문이다.”

그 말을 끝으로 시니건 지부에 사람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남은 건 오직 비명과 절규뿐이었다.

*     *      *

라온은 해가 뜨기 전 새벽에 방을 나섰다.

임무에 나가는 날이면 항상 그렇듯 실비아와 시녀들이 현관 앞에 서 있었다.

“도련님. 조심히 다녀오세요.”

“전 임무처럼 너무 무리하시면 안 돼요.”

“육포를 말렸어요. 출출해지면 드세요.”

헬렌과 시녀들은 준비한 육포와 간식들을 건네주며 잘 다녀오라고 고개를 숙였다.

여기까지도 임무에 나갈 때 꾸준히 있었던 일이었다. 다만 하나가 달랐다.

“라온. 다녀오렴.”

임무만 나가면 어두운 안색을 숨기지 못하던 실비아의 입꼬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어머니….”

라온은 실비아의 입매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제가 임무에 나가는 게 그렇게 좋으세요?”

“조, 좋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실비아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지금 일어난 지 얼마 안 되어서 얼굴이 굳어 있는 거라고.”

그녀는 본인의 입꼬리를 손가락으로 들어다가 내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방에서 좋아하시는 거 다 들었는데요.”

라온이 실비아를 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아주 똑똑히 들었지.’

오늘 새벽에 실비아의 방에서 환호가 들려왔었다. 오러를 연공하고 있었다면 마나회로가 꼬여서 내상을 입었을 것이다.

“아….”

실비아가 할 말이 없다는 듯 뒷머리를 매만졌다.

“증축을 했는데, 방음이 안 되나보네. 사람을 다시 불러야 하나?”

그녀는 어색하게 눈동자를 굴렸다.

“후….”

라온이 시선을 돌린 실비아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러 잔소리를 할 때는 귀찮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처럼 떠나는 것을 반가워하니, 조금 섭섭했다.

-즐겁구나.

라스가 다가와서 어깨를 두드렸다.

-네놈의 처량한 모습을 보는 게 이렇게 재밌을 줄은 몰랐느니라!

‘시끄러워.’

라온은 라스를 밀어내며 짧게 혀를 찼다.

“라온.”

실비아가 앞으로 다가와서 손을 잡아주었다. 입가에 피어난 은은한 미소가 함께였다.

“엄마가 라온과 함께 수련하면서 정말 힘들기도 했지만, 좋은 점도 있었어.”

“그건 당연하죠, 실력이 빠르게….”

“그게 아니야.”

그녀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네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네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알 수 있었어. 그래서 안심하고 보낼 수 있는 거란다.”

실비아는 그저 장난이었을 뿐이라며 라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조심히 다녀오렴.”

“알겠어요.”

라온이 옅게 웃으며 실비아의 인사를 받았다.

“다녀와서 얼마나 실력 늘었나 볼 거예요.”

“그래.”

실비아는 자신 있다는 듯 주먹을 움켜쥐었다.

라온은 이제 마음이 풀린 듯 실비아와 시녀들과 차례로 눈을 맞췄다.

“다녀올게.”

그 말을 마지막으로 별관을 나섰다.

봄이 찾아오며 조금 푸르게 변한 정원을 지나면서 아직 실비아의 온기가 남아 있는 손끝을 보았다.

‘다른 건 됐고, 어머니가 건강해져서 다행이야.’

단전과 마나회로가 망가졌을 때의 실비아는 항상 안색이 어두웠고, 금방 지쳐서 쓰러지는 일도 많았다.

그녀가 건강해진 것만으로 단전을 구해온 보람이 있었다.

‘그거면 만족….”

“이제 진짜 해방이다! 얘들아! 소리 질러!”

“와아아아아.”

라온이 정원을 다 빠져나갔을 때쯤 별관 안에서 실비아의 함성이 들려왔다.

조금 전의 다정한 말이 거짓이라는 듯 우렁차면서도 기쁨에 휩싸인 목소리였다.

“어, 엄마….”

라온이 다시 뒤를 돌아보며 입술을 부르르 떨었다.

-정말 만족하는 것이냐?”

라스는 히죽히죽 웃으며 어깨를 두드렸다. 녀석은 이 기회에 그간 당했던 것을 모두 갚겠다는 듯 비웃음을 깊게 머금었다.

-역시 엄마는 네놈보다 본왕을 좋아하고 있느니라!

“끄윽….”

라온은 대답하지 않고, 5연무장으로 향했다. 그의 걸음이 폭풍처럼 거칠었다.

‘적이 누구든 부숴버리겠어.’

-조사 임무인데 누굴 부수겠다는 것이냐?

‘입 좀 다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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