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55화
알현실로 돌아온 글렌의 안색은 창가를 스치는 달빛처럼 환했다. 천장에 닿을 듯 솟구친 입꼬리 역시 그가 지금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를 보여주었다.
“그렇게 좋으십니까?”
리메르가 글렌을 보며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조금만 빨리 용기를 내셨으면 지금 할아버지라고 불렸을 수도 있었어요.”
그는 벼락을 맞아서 구겨진 머리를 억지로 펴며 입맛을 다셨다.
“지금부터 시작하면 되는 일이지.”
셰릴이 리메르의 등을 걷어차며 단상 앞으로 걸어갔다.
“가주님. 고생하셨습니다. 오늘처럼 먼저 손을 내미신다면 실비아와 라온도 더 가까이 다가와 줄 겁니다.”
그녀는 어제와 다르게 부드러운 어조로 미소를 지었다.
“크흠.”
글렌은 턱을 괴는 척하면서 손으로 입을 가렸다.
“아, 그냥 시원하게 웃어요! 손주가 술 먼저 따라줬다고 자랑하는 사람이 무슨!”
“먼저 따라준 게 다가 아니라….”
“아, 네. 추가로 10번도 따라줬죠. 됐어요?”
리메르는 질렸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도 기쁜 일이지만, 지금 내가 웃는 건 그것 때문이 아니다.”
글렌은 리메르의 말대로 얼굴에서 손을 떼며 입가에 깊은 우물을 만들었다.
“라온이 기특해서 웃음이 나오는 것이다.”
그가 시선을 들어 황금을 녹인 듯한 달빛을 바라보았다.
“무인이 되기도 힘들다고 했던 아이가 스스로의 힘으로 성장하여 제 어미의 단전을 만들어주고, 직계로 복귀시킬 준비까지 해 왔다는 게 대견하여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는 것이다.”
“그건 저도 동의해요.”
리메르가 타버린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 제자라서가 아니라, 그만한 효자는 또 없죠.”
“보면 볼수록 손을 내밀어주고 싶은 아이입니다.”
셰릴도 동의한다며 잔잔한 미소를 그렸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라온 님을 봬면 하나라도 더 챙겨드리고 싶더군요.”
로엔이 셰릴의 옆에 서며 허허롭게 웃었다.
“크허험!”
글렌은 리메르와 셰릴, 로엔이 라온의 인성을 칭찬하자, 더 기분이 좋아진 듯 말아 올린 입꼬리를 떨었다.
“하.”
리메르는 그런 글렌을 보며 픽 웃었다.
‘기쁨의 최상급 표현이네.’
글렌 본인은 모르겠지만, 그는 가장 기쁠 때 꼭 강아지가 꼬리를 흔드는 것처럼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하고 떨었다.
‘라온, 실비아와 함께 사는 상상이라도 하시는 건가?’
글렌은 벌써 라온이 할아버지라 부르는 미래를 떠올리는 것 같았다.
다만 그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큰 산 하나를 넘어야 했다.
“그래서 앞으로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어떻게 하다니?”
글렌이 무슨 말을 하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실비아가 직계가 되고, 이 본관으로 오려면 결국 라온이 부왕을 꺾어야 하잖아요. 그게 안 되면 말짱 도루묵. 아니, 라온이 죽을 거라구요!”
리메르는 왜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있냐며 미간을 구겼다.
“가주님이 저보다 더 잘 아시겠지만, 지금의 라온은 부왕을 이길 수 없어요. 사실 그랜드 마스터에 올라갔다고 해도 힘들죠. 혹시 직접 가르치실 생각인가요? 그러면 가능성이 높아지기는 할 텐데.”
“아니.”
글렌이 담담하게 손을 저었다.
“내가 라온을 아끼고 있다고 해도 지금 이상의 특혜를 주는 건 안 될 일이다.”
“하긴 뭐 줄 건 다 줬으니.”
리메르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떻게 하실 건데요?”
“생사결은 변수가 많아 보이니, 차라리 남북맹을 지우는 게 좋아 보이는군.”
글렌은 개미집을 부수는 것처럼 남북맹을 부순다고 뇌까렸다.
“예에…?”
리메르가 바닥에 턱이 닿도록 입을 벌렸다.
‘지금 저 인간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릴 때 글렌이 로엔을 불렀다.
“로엔.”
“예. 가주님.”
“남북맹 본단의 위치는 파악했나?”
“본단을 알아냈습니다만, 워낙에 딸린 수채와 산채가 많아서 남북맹 전체에 관한 조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로엔은 송구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남북맹주만 죽이면 다 와해될 잔챙이들이니까.”
“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리메르가 빽 소리를 지르며 턱을 치켜들었다.
“그렇게 부왕을 죽이면 남는 게 없잖아요!”
“이리 죽으나 저리 죽으나 부왕만 죽으면 되는 거 아니냐?”
글렌은 실비아를 최대한 빠르고 안전하게 직계로 올리고 싶은 듯 눈동자가 반쯤 돌아가 있었다.
“허허허. 칼을 갈아 놓겠습니다.”
로엔도 어느새 암살자의 눈빛으로 돌아가 섬뜩한 살의를 일으켰다.
“야! 네가 뭐라고 좀 해봐!”
리메르가 옆에 있는 셰릴을 팔꿈치로 밀었다.
“왜? 맞는 말이잖아. 어느 길로 가든 북망산에만 닿으면 그만 아니야?”
셰릴도 그게 가장 안전한 길 같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는 말이지! 처맞는 말!”
리메르가 세 사람을 보며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부왕이 죽으면 누가 인정해! 가문 위신만 땅에 떨어지지! 남북맹은 나중에 멸하고, 지금은 어떻게 부왕을 이기게 할지만 생각하라구요!”
그는 이곳엔 정상이 없다고 외치며 가슴을 두드렸다.
“아쉽군….”
글렌이 입맛을 쩝 다셨다. 라온을 위해 남북맹을 치겠다는 말은 진심이었던 것 같다.
“그럼 임무를 내보내는 게 좋겠지.”
“임무요?”
“라온은 이미 그랜드 마스터의 벽에 올라 서 있는 상태다. 임무를 나가 더 나은 경험을 쌓는다면 스스로 벽을 부술 수도 있겠지.”
“이전 임무가 너무 위험했다 보니, 라온을 내보내지 않을 줄 알았는데요.”
“끼고 있어 봐야 그 아이에게 도움이 되질 않는다. 온실 속 화초는 비바람을 이길 수 없으니까. 그리고….”
글렌은 이미 결정을 내려놓은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 안 되면 남북맹을 부수면 되잖아.”
“그렇죠.”
“준비하겠습니다.”
셰릴과 로엔이 서늘한 미소를 그렸다. 마치 늑대 셋이 양을 앞에 두고 웃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어으….”
리메르가 뜨거워지는 이마를 감싸 쥐었다.
‘여기에 정상이 나뿐이라니….’
어이가 없어서 헛바람을 흘릴 때 글렌의 표정이 다시 진지함으로 물들었다.
‘이번에는 또 뭐지?’
무슨 말을 할지 긴장하고 있을 때 그의 입술이 달싹였다.
“요난 가문의 아이는 아주 훌륭하더구나.”
“예?”
“아직 어리지만 보는 눈이 대단해. 요난 가주가 아끼는 이유가 있더군.”
글렌은 그랜드 마스터급 무인보다 더 과하게 엔시아를 칭찬해주었다.
“그렇죠. 인공단전을 만드는 건 굉장히 어려운….”
“나보고 라온의 할아버지라고 하지 않았더냐. 존잘? 그건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좋은 뜻이겠지.”
“아….”
리메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인공단전을 이야기하는 줄 알았는데, 아예 딴소리였다.
“굉장히 잘생겼다는 뜻입니다.”
셰릴이 미소를 지으며 존잘의 뜻을 설명해주었다.
“엔시아는 라온의 외모를 칭송할 때 존잘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듣기로는 앞으로 라온의 얼굴을 본인의 시그니처 마크로 삼고 싶다고 했다더군요.”
“어찌 그리 훌륭한 아이가!”
글렌은 진심으로 감탄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나온 엔시아의 아티팩트를 전부 구매하고, 요난 가주에게 연락을 보내도록 해라. 내가 보자고 한다고.”
“알겠습니다.”
로엔이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
리메르는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팔불출이 불치병이 되어가고 있네.’
진짜 다른 직장 알아봐야 하는 거 아니야?
* * *
실비아가 차분히 검을 들어 올렸다. 그녀는 한참 동안 상단세를 유지하며 오러를 끌어 올렸다.
바다색 마나가 새하얀 칼날을 적신 순간 검을 수직으로 내리찍었다.
후우우우웅!
강렬한 검풍이 연무장을 휩쓸며 바닥에 두꺼운 검흔을 새겼다.
“와아….”
“바람 속성도 아닌데, 무슨 검풍이 저래?”
“저게 20년 넘게 검을 놓은 사람의 내려치기라고?”
“미쳤다. 역시 부대주님의 어머니시네….”
광풍대 검사들은 실비아의 내려치기에 감탄한 듯 본인들의 수련을 멈추고 진심 어린 감탄을 흘렸다.
“거기까지.”
실비아가 거친 숨을 내쉬며 다시 검을 세울 때 라온이 손을 들어 올렸다.
“검술이 너무 가벼워요.”
라온은 실비아의 옆으로 다가가서 고개를 저었다.
“손목의 각도가 망가졌고, 발목도 안쪽으로 말려 들어간 거 보이시죠? 팔다리의 힘을 너무 풀어버리니까. 검풍이 응집되지 않고 흩어지는 거예요.”
그는 광풍대 검사들과 달리 실비아의 검술을 냉정하게 지적했다.
“아, 아직 적응이 덜 끝나서 그래!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어!”
“별관에서 다 말씀드렸던 건데요?”
“…그랬나?”
실비아가 어색하게 웃으며 얼굴에 손부채질을 했다.
“집중해서 다시 해보세요.”
“음….”
그녀가 낮게 고개를 끄덕이고서 머리 위로 검을 들어 올렸다.
다시 검을 내리치는데, 조금 전과 비슷해 보이지만 힘이 압축되어 더 빠르고 강맹한 검격이 떨어졌다.
쿠우우우우!
연무장 바닥이 한 움큼 파이며 안쪽의 새하얀 모래가 드러났다.
“어때?”
“이번에는 힘이 과해요.”
라온이 망가진 바닥을 보며 눈매를 좁혔다.
“본인이 본인의 검격을 감당하지 못해서 바닥을 파먹었잖아요. 이렇게 검을 휘두르면 몸이 먼저 망가질 겁니다.”
“윽….”
“어깨와 손아귀에 힘을 푸세요. 지금 빨래하는 게 아니에요.”
그는 검집으로 실비아의 단점을 지적하고서 뒤로 물러섰다.
“알겠어….”
실비아는 고개를 끄덕이고서 검을 세웠다. 라온의 조언을 듣고, 힘과 긴장을 풀었는지 검 끝이 살아난 채 떨어져 내렸다.
“오….”
“확연히 달라졌어.”
“역시 재능도 유전인가….”
광풍대 검사들은 단번에 발전한 실비아를 보며 박수를 보내왔다.
“어, 어때?”
실비아도 자신감이 붙은 듯 밝은 안색으로 라온을 불렀다.
“이번에도 아니에요.”
라온이 아쉽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힘을 과하게 풀어서 검 끝이 흔들리고 있어요. 지금 변검이나 환검을 쓰는 게 아니라 기본 검술을 수련하는 중이잖아요.”
“마, 맞지.”
“그럼 검신과 검극만큼은 확실하게 힘을 주셔야죠. 채찍 치는 것도 아니고, 다 풀어버리면 어떻게 합니까.”
“응….”
실비아는 힘없이 고개를 떨궜다.
“다시 해보세요.”
라온은 아직 멀었다고 말하며 손을 들어 올렸다.
“알겠어.”
실비아가 라온의 조언을 들으며 상단세를 취했다. 팔꿈치를 안쪽으로 좁혀서 육체 자체의 힘을 고정시키며 검을 내리찍었다.
화아아악!
이번에는 적절한 힘이 깃들었는지, 검극이 흔들리지 않으면서도 부드럽게 떨어져 내렸다.
“아!”
실비아도 괜찮았다는 것을 느끼고 바로 라온을 돌아보았다.
“별로.”
하지만 라온의 얼굴은 여전히 뚱했다.
“검극은 흔들리지 않았지만, 그것에 집중하느라 너무 빠르게 내려왔어요. 지금 우리는 싸우는 게 아니라 수련을 하는 겁니다. 더 집중해주세요.”
그는 이번에도 마음에 차지 않는다며 다시 해보라고 지시했다.
“이, 이번에는 괜찮지 않았나?”
“그러게. 검을 다시 잡은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기본 검술을 언제까지 쓰려고….”
광풍대 검사들은 라온의 눈치를 보며 한 마디씩 주절거렸다.
“너희 언제까지 구경만 할 거야.”
라온이 등을 돌려서 광풍대 검사들에게 눈을 흘겼다.
“기본 검술로 한 달 굴려줘?”
“아니죠! 아닙니다!”
“갈게요!”
“오, 오늘 수련할 게 많았는데….”
광풍대 검사들은 고개를 떨면서 연무장 이곳저곳으로 흩어졌다.
“와, 쟤는 엄마도 안 봐주네….”
버렌이 다시 실비아에게 수련을 지시하는 라온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저게 맞는 거야.”
마르타가 실비아의 등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소중하니까. 제대로 가르치는 거지.”
그녀는 씁쓸함이 담긴 듯한 눈으로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라온 존잘.”
루난도 가족에 관한 상처를 간직하고 있기에 그 말에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도 하고 싶어?”
라온이 멀리 떨어진 세 조장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 그건 아니지….”
“저 악마 자식 귀도 밝아서….”
“갈게.”
버렌, 마르타, 루난은 기지개를 펴며 실내 단련장으로 들어갔다.
“으으….”
도와줄 사람을 모두 잃은 실비아가 신음을 흘리며 손을 떨었다.
“라온.”
리메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라온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너무 과하게 하지 말고, 적당히….”
“대주님도 하실래요?”
“아….”
그는 말문이 막힌 듯 입을 떡 벌렸다.
“여기 조금 더 계시면 어머니와 함께 수련을 하고 싶으신 거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자, 잠깐만. 내가 대주인데….”
“그래서 기본 훈련 함께 하신다는 거죠?”
“아니지! 절대 아니야! 수고해라!”
리메르는 재빠르게 고개를 젓고서 라온의 시야에서 빠져나갔다.
“아니, 대주님이 대주잖아요!”
크레인이 도망친 리메르를 보며 어이가 없다는 듯 외쳤다.
리메르는 떨떠름한 얼굴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나도 쟤 무서워….”
* * *
실비아가 검을 든 지 2주가 지났다. 그녀의 실력은 하루마다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달라졌지만, 라온은 그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다시. 이번에는 오러가 틀어졌어요.”
라온은 가늘게 흔들린 오러를 가리키며 고개를 저었다.
“응.”
실비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검을 들었다. 그녀는 수직 베기, 수평 베기, 사선 베기, 찌르기로 이루어진 기본 검술을 수십 차례 반복했다.
라온은 허공에서 비치는 아릿한 검광을 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확실히 재능은 사라지지 않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어.
실비아를 몰아붙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녀에게 뛰어난 재능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를 지적하면 그 이상으로 나아가는 사람이기에 계속해서 봐주고 싶었다.
스승들이 왜 뛰어난 제자를 받아들이려고 하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2주 내내 옆에서 지적만 하는 것 심하지 않느냐!
라스가 공포스럽다는 듯 입술을 부르르 떨었다.
-저것을 보아라! 엄마 눈 밑이 숯검뎅이가 되었느니라!
녀석은 실비아의 눈 밑이 검어진 것을 가리키며 눈살을 찌푸렸다.
‘어머니도 다 이해해주고 계실 거야.’
말은 안 했지만, 실비아도 잘 받아주었기에 지금까지 함께 수련할 수 있었다. 아마 그녀도 빠르게 나아가는 실력에 기뻐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도 적당히 해야지! 기본 검술을 언제까지 시키는 건데! 다른 사람은 네놈 같은 변태가 아니란 말이다!
라스가 미친놈이라고 말하며 손가락을 겨누었다.
-이제 네놈 주변으로 아무도 안 오지 않느냐!
‘괜찮다니까.’
라온은 라스에게 손을 젓다가 실비아에게 다가갔다.
“찌르기를 할 때 목표를 정확히 생각해야 합니다. 정검의 묘리를 항상 지니고 있어야 해요.”
“응….”
실비아는 바람이 빠진 것처럼 힘없이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사선 베기를 할 때도 각도가 중요합니다. 베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
라온이 지적을 할수록 실비아의 안색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
“지, 진짜 독해….”
“저 정도일 줄은 나도 몰랐어. 저건 괴물이야….”
“라, 라온 존못. 아니, 무서워.”
처음에는 라온을 응원했던 버렌과 마르타, 루난도 이젠 무서운 듯 고개를 저으며 떠났다.
라온은 그들의 말을 들으면서도 미소를 지었다.
‘곧 알게 되겠지.’
실비아가 제 실력을 발휘한다면 지금의 시선이 모두 바뀌게 될 것이다.
거기다 실비아는 지금의 상황을 이해해줄 것이 분명했다. 그거면 충분했다.
“기본 검술은 빠르고 힘이 있다고 다 좋은 게 아니에요. 정확함과 진중함이….”
다시 실비아에게 조언을 하려 할 때 연무장 문을 박차고 리메르가 들어왔다. 그는 손에 종이 한 장을 흔들면서 미소를 지었다.
“임무 받아왔다!”
그는 오랜만의 임무라며 기뻐하라고 외쳤다.
“임무?”
“오래 걸렸네.”
“드디어 내 실력 발휘를 할 수 있겠군.”
“와아아아아아!”
광풍대 검사들이 어떤 임무인지를 궁금해 하며 리메르에게 다가갈 때 안쪽에서 우렁찬 함성이 들려왔다.
“해방이다! 이 지옥에서 해방이야!”
실비아가 양팔을 들어 올리며 하늘 높이 소리를 높였다.
그녀의 안구에서 옅은 물방울이 고이기 시작했다. 꼭 감옥을 탈출한 죄수와도 같은 표정과 감정 폭발이었다.
라온은 그런 실비아를 보며 멍하니 입을 벌렸다.
“어, 엄마….”
그는 해방이라는 말에 충격을 받은 듯 입을 떡 벌렸다.
-엄마조차 질려버리게 만드는 인성….
라스가 당황한 라온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게 바로 마신의 길인가.
‘닥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