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549화 (548/653)

제549화

라온은 별관의 정원이 보이기 시작할 때 뒤를 돌아보았다. 발데르가 주름이 늘어날 정도로 인상을 구긴 채 따라오고 있었다.

‘도망치지는 않네.’

발데르는 절대 가지 않겠다고 버텼지만, 본인이 했던 말에 발목이 잡혀서 어쩔 수 없이 별관까지 따라오게 되었다.

다만 정말 오기 싫었는지 그의 발은 땅에 질질 끌리고 있었다.

맨 뒤에서 걷고 있는 감찰부 직원들 역시 지옥에 끌려가는 듯 안색이 창백했다. 새벽에 연무장 문을 걷어차고 들어올 때의 자신감과 거만함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오늘의 굴욕은 절대 잊지 않겠….”

발데르가 라온을 보며 바드득 이를 갈 때 도괴가 그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빠아아악!

호박이 깨지는 듯한 시원한 소리가 터지고, 발데르의 몸이 쓰러질 것처럼 휘청였다.

“끄어억!”

발데르가 뒤통수를 부여잡으며 비명을 질렀다.

“왜 때려요!”

“원한을 가지고 감찰을 하다니, 특별 감찰관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면 안 되지요. 진짜 뒈지고 싶어서 환장 했냐? 가주전 찾아갈까?”

도괴가 눈을 부라리며 바위 같은 주먹을 들어 올렸다.

“끄윽….”

발데르는 감히 대꾸하지 못하고 고개를 굽혔다.

“그, 그냥 열받아서 한 말일 뿐입니다!”

“감찰관이 감정에 끌려다녀서는 안 됩니다. 항상 냉정하고, 철저하게 그 상황 자체를 파악해야 한다는 거 모르십니까?”

“해리안 님도 그렇게 못하시면서….”

“그래서 난 안 했잖아요!”

도괴가 입매를 비틀며 손바닥으로 발데르의 이마를 후려쳤다.

“아아악! 그만 좀 해요!”

“특별 감찰관님이 원하시는 대로 말도 높여드렸는데, 무슨 문제라도?”

“말만 높이고 있지. 계속 후려 패고, 욕하면서 무슨! 이럴 거면 그냥 예전처럼 하라구요!”

발데르가 정말 못 참겠다는 듯 악을 질렀다.

“그럼 나야 편하지.”

도괴가 서늘한 미소를 지으며 발데르의 머리통을 또 한 번 두들겼다.

“야이 멍청한 놈아! 운 좋게 특별 감찰관이 되었으면 일을 똑바로 해서 가주께 인정받아야지. 지 승질만 풀고 다녀? 넌 어떻게 나이를 먹을수록 돌대가리가 되는 거냐!”

그는 잘 걸렸다는 듯 발데르의 옆으로 붙어서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어훅….”

발데르는 체한 것처럼 가슴을 움켜쥔 채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말 나온 김에 충고 하나 하마.”

도괴가 손가락을 들어서 라온을 가리켰다.

“오늘 봐서 알겠지만, 저 녀석은 미친놈이다. 이 가문을. 아니, 대륙 전체를 뒤져도 저런 정신 나간 놈은 없어. 이 가문에서 계속 큰소리치고 싶다면 알아서 기는 게 좋을 거야.”

“기, 기라니요! 아무리 그래도 제가 저 어린놈에게 밀릴 정도는 절대 아닙니다!”

“지금이야 당연히 네가 위지.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관계는 역전될 거다. 망할 제자 놈에게 하는 마지막 조언이니까. 새겨들어.”

“싫습니다! 제 그릇은 아직 다 차지 않았어요!”

발데르는 그 말만큼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리고 앞으로 다시 존댓말 하십시오!”

“이랬다가 저랬다가 왔다갔다. 참 지랄 맞게 귀찮게 하시네요!”

도괴는 발데르가 원하는 대로 말을 높여주며 뒤통수를 내리쳤다. 이번에는 돌을 친 듯한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어쭈? 오러로 막아?”

“진짜 아프다구요!”

발데르는 뒤통수를 가린 채 도괴에게서 훌쩍 떨어졌다. 그 추한 보법에 뒤에 있던 감찰부 직원들의 표정이 한층 더 구겨겼다.

“후우….”

도괴가 눈동자를 굴리는 발데르를 보며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안 듣는군. 하긴 나라도 조카한테 굽히라고 하면 거절하겠지만.’

그래도 너는 가주의 그릇이 아니다.

발데르를 어렸을 때부터 봐 왔기에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는 무력이 뛰어나고, 용맹스럽기에 선봉에 서는 장수가 될 수 있을지언정 가문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군주의 옥좌에는 앉을 수 없다.

자격 없는 발데르가 가주가 된다면 지그하르트는 10년이 지나기도 전에 망하게 될 것이다.

‘반면….’

도괴가 흔들리지 않는 라온의 등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저놈은 진짜 물건이야.’

대범한 사람이라고 해도 내가 나타나서 발데르의 행패를 막아주었으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기뻐했을 것이다.

하지만 저 미친 꼬맹이는 내 이름을 최대한 이용해서 발데르와 감찰관들에게 엿을 먹이고, 실속까지 챙겼다. 솔직히 말해서 정상인이 할 수 있는 판단이 아니었다.

적의 무기를 빼앗는데서 그치지 않고, 식량과 그 식량을 담는 그릇까지 빼앗아가는 또라이 기질. 라온이 가주가 된다면 지그하르트는 육황오마의 틀을 벗어나 홀로 우뚝 설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이가 문제야.’

라온은 나이가 어리기에 카룬, 데니어, 발데르에 비해 쌓아 올린 실적과 무력이 부족했다.

그것만 채워진다면 정말 후계자 경쟁 구도에 올라가도 잘해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도와줄 방법이 있으려나….’

도괴가 라온과 발데르에 관한 생각을 정리하고 걷고 있을 때 라온이 멈춰서 손을 들어 올렸다.

“별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특별 감찰관님.”

라온은 정원의 입구를 가리키며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초라하군.”

발데르는 겨울이라 꽃 하나 피지 않은 정원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지금까지 쌓인 울분을 풀듯이 사나운 음성으로 말을 이어갔다.

“지그하르트 내부에 있는 정원 중에서 가장 추하고, 지저분한 정원이다. 그냥 들판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야.”

“그런가요.”

라온은 실비아의 정원이 모욕당했음에도 잔잔한 웃음을 잃지 않았다.

“정원을 보면 집주인의 성향을 알 수 있는 법이지. 별관 주인은 그릇이 작고 속이 좁은….”

“총관님.”

도괴는 라온의 부름을 듣자마자 달려가서 발데르의 입을 후려쳤다.

“커헉!”

말하다가 입을 얻어맞은 발데르가 눈을 찡그리며 뒤로 물러섰다.

“아가리에서 걸레를 빠셨나. 말 좀 곱게 곱게 합시다.”

도괴는 발데르를 때린 손을 털며 콧잔등을 찌푸렸다.

“어욱….”

발데르는 입을 매만지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끙끙 앓았다. 그의 눈동자는 산책에 지쳐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강아지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들어오시지요.”

라온은 발데르와 감찰부 직원들을 안내하여 별관의 현관 앞에 섰다. 도괴 덕분에 그들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졸졸 따라왔다.

현관문을 열자, 계단을 내려오는 실비아와 헬렌의 모습이 보였다.

“도련님?”

“왜 이렇게 빨리 와? 오늘 정리할게 많다고….”

실비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라온의 뒤에 서 있는 발데르를 보고서 걸음을 멈췄다.

“오, 오빠. 아니, 발데르 님….”

그녀는 발데르가 두려운 것처럼 하얗게 질린 입술을 떨었다.

“실비아. 너는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발데르가 실비아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가 무언가 말을 하기 위해서 입술을 달싹이려고 할 때 도괴가 발을 들어 올렸다.

퍼어어억!

도괴는 발데르의 엉덩이를 경쾌하게 걷어차고서 별관 안으로 들어갔다.

“좀 비켜! 곰 같은 놈이 서 있으니까 못 들어가지 않느냐!”

“끄응….”

발데르는 얻어맞은 엉덩이를 문지르면서 옆으로 물러섰다. 그는 도괴의 눈치를 보느라, 본인도 모르게 현관문을 어깨로 툭 쳤다.

라온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현관문을 그대로 뽑아버렸다.

빠드드득!

쇳덩이가 뭉개지는 듯한 소리가 울리며 현관문이 분질러져서 뒤로 넘어갔다.

“어…?”

발데르는 먼지를 일으키며 쓰러진 문을 보며 입을 떡 벌렸다. 이곳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아, 아니야! 난 아니야!”

“특별 감찰관님이 어깨로 치셨지 않습니까.”

“어깨로 쳤다고 문이 어떻게 분질러지는데!”

“말씀드렸잖아요. 별관이 낡아서 조심해야 한다고.”

라온이 함께 온 도리안에게 손짓을 했다.

“아, 네. 일단 문 한 짝….”

도리안은 수첩을 꺼내서 문 한 짝이라고 적었다.

“그게 아니지.”

라온이 수첩의 내용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문은 하나씩 바꿀 수 없어. 둘 다 바꾸는 걸로 해.”

“아, 넵!”

도리안은 고개를 끄덕이고서 문 두 짝이라고 수정했다.

“내가 아니라, 이놈이 한 것이다! 손으로 문짝을 뽑은 거라고!”

발데르가 두꺼운 손가락을 뻗어서 라온을 겨눴다.

“총관님.”

라온은 입씨름 하지 않고 바로 도괴를 불렀다.

“네가 어깨로 친 걸 여기 있는 모두가 봤는데 무슨 헛소리냐!”

도괴는 라온의 부름을 듣자마자 발데르에게 다가가서 인상을 구겼다.

“아니, 어깨로 쳤다고 문이 부서지는 게 말이 됩니까!”

“네 몸뚱이를 봐라! 안 부서지는 게 더 이상하지!”

“으….”

발데르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고 뒤에 있는 감찰관 직원들에게 손짓했다.

“조, 조사해. 최대한 빠르고, 안전하게. 절대 부수지 마라.”

그는 더는 변상에 돈을 쓰지 말라며 눈을 부라렸다.

“아, 알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덩달아 위축되어서 허리가 반쯤 굽어진 감찰부 직원들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흩어졌다.

“이, 이게 뭐야….”

실비아는 고양이 앞의 쥐처럼 기가 죽은 발데르를 보고서야 굳어진 표정이 풀어졌다.

“왜 발데르 오빠가 저렇게 기가 죽었지?”

그녀는 이 상황이 이해되질 않는 듯 눈을 꿈벅였다.

“그러게요….”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요.”

“음….”

헬렌과 시녀들도 발데르가 찌그러지는 모습을 상상도 못 한 듯 헛바람을 흘렸다.

“특별 감찰관님이 별관을 조사하고 싶다고 하셔서 모셔왔어요.”

라온이 실비아와 시녀들에게 다가가서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무 일도 없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목소리에 의념을 담아서 모두를 안심시켰다. 실비아와 시녀들의 표정이 한층 더 편안해졌다.

“특별 감찰관님. 저쪽부터 시작하시죠.”

라온이 손을 들어서 좌측 복도로 안내했다.

“쯧.”

발데르는 짧게 혀를 차고서 그 뒤를 따라왔다.

꾸구구국.

좌측 복도는 별관 내부 통로 중 가장 좁은 곳이었고, 발데르의 체구가 워낙에 크다 보니, 길이 꽉 차서 벽에 걸려 있던 액자가 자연스럽게 떨어졌다.

캬아아앙!

땅에 떨어진 액자들이 날카로운 소리를 울리며 깨졌다.

“허억!”

발데르가 당황하면서 외벽에 등을 기댔다.

콰르르릉!

라온은 발데르의 등이 벽에 닿았을 때 손아귀에 모든 근력을 집중해서 벽을 밀어냈다.

파괴왕의 칭호 덕분에 가벼워 보이는 손짓에도 벽이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이, 이 미친놈! 집을 왜 부숴!

라스는 본인 집을 본인이 부수는 건 처음 본다며 입을 떡 벌렸다.

“아….”

발데르는 가루가 되어 무너지는 벽을 보며 입을 떡 벌렸다.

“아니, 아니야! 진짜 아니야! 이놈이 부순 거라고!”

그가 라온을 가리키며 턱을 부르르 떨었다.

“너무 하시네요. 발데르 님이 등으로 벽을 후려친 모습을 이곳에 있는 모두가 보았는데.”

라온이 뒤에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고개를 저었다.

“사람이 등을 기댔다고 벽이 무너지는 게 말이 되느냐!”

“그럼 제가 손가락으로 밀었다고 벽이 무너지는 건 말이 됩니까?”

“끄윽….”

발데르는 반박하지 못하고 얼굴이 뻘게졌다.

“돌아버리겠네. 난 아니란 말이다!”

그가 성질을 참지 못하고 거세게 발을 굴렀다.

뿌드드득!

라온은 그 울림에 맞춰서 남아 있는 벽에 힘을 전달하여 반 토막 난 벽면을 무너뜨리고, 천장까지 주저앉혔다.

콰과과과과광!

천장이 내려앉고, 벽이 무너지는 소리에 다른 곳에 있던 사람들까지 달려왔고, 모두는 발데르를 보며 입을 동그랗게 벌렸다.

“그렇게 보지 마! 난 억울하단 말이다!”

발데르가 본인의 가슴을 후려치며 소리를 질렀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아예 집을 다 때려 부술 생각이냐!”

도괴가 정신 좀 차리라며 주먹으로 발데르의 정수리를 내리찍었다.

“진짜 억울하다구요!”

“시끄러워!”

그는 아예 들을 생각이 없는 듯 발데르의 입을 막았다.

“도리안.”

“아, 네….”

도리안은 발데르에게 겁을 먹고 있음에도 충실하게 망가진 별관의 견적을 적었다.

‘제대로 먹혔군.’

일부러 발데르를 가장 좁고, 낡은 복도로 데리고 왔는데 계획인 완벽하게 먹혀들었다. 너무 잘 통해서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너는 진짜 미친놈이니라. 협잡으로는 제일이라는 천계 놈들도 못 따라갈 것이니라!

라스는 진심으로 감탄했다며 혀를 내둘렀다.

“나, 나는 여기서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더이상은 네놈의 속셈에 놀아나지 않겠어!”

발데르는 본인의 양팔을 감싼 채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른 감찰부 직원들의 조사가 끝날 때까지 이곳에 있겠다며 눈까지 감았다.

‘그럼 또 방법이 있지.’

라온은 발데르를 놔두고 감찰부 직원들의 뒤를 따라갔다.

그들이 별관 뒤지기 시작할 때 낡으면서도 그리 중요하지 않은 물건들을 망가트려서 도리안의 청구서에 추가했다.

“진짜 왜 이러시는 겁니까!”

“좀 놔두세요! 그거 당신 거잖아요!”

“그 꽃병은 제가 부순 게 아니라구요!”

“이 악마야!”

감찰부 직원들은 조사를 할수록 재정이 빵꾸가 나는 상황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울상만 지었다.

“아아아악!”

“제발 그만!”

발데르는 별관 전체에서 들려오는 비명에 떨리는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여긴 악마의 성인가….”

*     *      *

한 시간 후.

감찰부 직원들이 발데르 앞에 섰다.

“아, 아무것도 없습니다.”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깨, 깨끗합니다.”

모두는 이상한 점은 하나도 없었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 그래? 그럼 가자!”

발데르는 드디어 별관을 떠날 수 있다는 게 기쁜 듯 미소를 지으며 일어섰다.

“어딜 가십니까.”

라온이 발데르의 앞을 막아서며 손가락을 흔들었다.

“감찰관님들이 저희 집을 좀 많이 망가트려서 변상을 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흥! 그놈의 음이온! 이젠 안 먹힌다! 그거 사기꾼들이 쓰는 말이지 않느냐!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어!”

발데르는 그 사이에 음이온에 대해 알아보았는지 턱을 치켜들었다.

“아쉽게도 저희 집에 음이온은 없습니다.”

라온은 차분하게 고개를 저었다.

“망가진 물건들은 모두 평범한 것들입니다.”

“그, 그래? 그럼 얼마 안 하겠군!”

발데르는 음이온이 아니라는 것이 기쁜 듯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라온이 고개를 숙이며 코를 훌쩍였다.

“이 물건들 그리고 이 집에는 저와 어머니 그리고 시녀들의 삶이 녹아 있습니다. 그건 음이온보다도 소중한….”

“으아아악!”

발데르가 머리를 부여잡으며 괴성을 질렀다.

“그래서 얼만데!”

“금화 30개 정도?”

“너무 비싸잖아!”

“추억이라는 건 돈으로 살 수 없는 법이죠. 가장 좋은 제품으로 바꿔서 어머니께 작은 기쁨이라도 드리고 싶네요.”

라온은 고개를 숙인 채 가늘게 어깨를 떨었다.

“슬프군.”

도괴도 그 뒤에서 코를 훌쩍였다.

“아, 진짜 미치겠네….”

발데르는 도괴를 보며 눈동자를 떨면서 결국 금화 30개를 꺼내주었다.

“이제 가겠다!”

“아, 잠깐만요.”

라온이 떠나려는 발데르의 앞을 다시 막아섰다.

“이곳에 있던 최신식 냉온 조절 아티팩트 따뜻이 1호가 보이지 않는군요.”

“그, 그건 또 무슨 소리냐.”

“특별 감찰관님이 깨부순 액자 옆에 요난 가문에서 가져온 아티팩트가 있었습니다. 이 집 전체를 따스하게 데워주는 아티팩트인데, 아무래도 액자가 깨질 때 함께 터진 모양입니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 이곳에는 액자밖에 없었다! 도대체 어디까지 돈을 빨아먹으려고….”

“총관 님!”

도되가 바로 튀어 나와서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아, 그거 나도 보았지. 작은 구슬 아니었나?”

“맞습니다. 아무래도 발데르님이 움직일 때 깨진 것 같습니다.”

“흐흠….”

라온과 도괴가 동시에 발데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하아아….”

발데르는 다 포기했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아공간 주머니를 꺼냈다.

“그건 얼마냐?”

“말씀드렸다시피 별관 전체의 온도를 조절하는 귀중한 아티팩트고, 요난 가문 후계자의 수제품이라….”

“됐고, 가격이나 말해!”

“금화 30개입니다.”

“적당히 좀 못 하….”

“총관님!”

라온은 발데르의 말이 길어진다 싶으면 바로 도괴를 불렀다.

“금화 300개 뿌리고 싶냐?”

“진짜 왜 이러세요!”

“빨리 줄 거나 줘!”

“너는 진짜 오래 살겠구나.”

발데르는 라온을 노려보며 다시 금화 30개를 꺼냈다.

“감사합니다.”

“…….”

발데르는 대꾸할 힘도 없는 듯 힘 빠진 걸음으로 현관으로 향했다.

“이 문은 계산 끝난 거지?”

“물론입니다. 다만….”

라온이 문 옆에 있던 테이블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이곳에 있던 최신식 경계경보 아티팩트 빼꼼이 1호가 보이지 않는군요. 아무래도 문이 떨어져 나갈 때 부서진 것 같습니다.”

“그런 건 있지도 않았잖아!”

“도리안 너도 봤지?”

“예? 어…. 봐, 봤습니다! 빠꿈이 1호!”

도리안은 도괴의 눈을 피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빠꿈이! 지금 빼꼼이가 아니라 빠꿈이라고 했어!”

발데르는 잘 걸렸다는 듯 빠꿈이라 외쳤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총관님!”

“야!”

도괴가 어서 돈이나 주라는 듯 손을 까딱거렸다.

“하아, 내가 죽어야 끝나려나?”

발데르는 해탈한 것처럼 허공을 올려보며 입만 벌렸다.

“그래서 빼꼼이는 얼마냐?”

“금화 30개입니다.”

“무슨 가격 담함이라도 했어? 왜 죄다 30개인데!”

그는 빈 지갑을 탈탈 털면서 헛웃음을 흘렸다.

“이제 돈 없어! 이 자식아!”

“외상도 됩니다.”

“외상….”

“특별 감찰관님이시니, 이자는 하루에 1할만 받겠습니다.”

라온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손가락을 하나 들어 올렸다.

“사채업자도 그렇게는 안 받아! 이 미친놈아!”

발데르가 미치고 팔짝 뛰겠다며 주먹으로 본인의 가슴을 두드리고 발을 굴렀다.

쿠구구구!

그 충격에 테이블이 아예 폭삭 무너졌다.

“테이블 추가….”

도리안은 이제 알아서 수첩에 망가진 가구를 적었다.

“끄으윽! 기다리고 있어라. 오늘 무조건 보낼 테니까.”

그는 죽일 듯 인상을 구기며 별관을 벗어났다.

라온은 그 뒤를 따라가면서 공간검을 운용하여 정원의 중심을 가격했다.

콰아아아앙!

땅 안쪽에서 폭발이 일어나며 정원이 거세게 뒤흔들렸다.

“이, 이건….”

“아무래도 감찰관님 때문인 것 같네요.”

“또 내가 뭘 했다고!”

발데르가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눈을 부릅떴다.

“혹시 식물이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다는 걸 아십니까?”

“어?”

“식물에게 좋은 말을 하면 성장이 빨라지고, 나쁜 말을 하면 성장이 느려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그게 어쨌다는 거냐!”

“감찰관님이 처음 이곳에 오셨을 때 식물들에게 추잡하고 초라하다고 하셨죠. 그 충격으로 씨앗들이 자살한 것 같습니다.”

그 말을 하면서 다시 공간검을 운용했다.

파아아앙!

정원 내부에서 연달에 폭발이 일어나며 허공으로 흙먼지가 튀어 올랐다.

“보십시오.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서 내부에서 터진 겁니다.”

“웃기지마라! 지금 네놈이 오러를 운용했지 않느냐!”

발데르는 전주답게 화가 머리끝까지 차오른 상태에서도 라온이 오러를 운용한 것을 알아차렸다.

“그건 제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입이다. 제 손에서 오러가 튀어나가는 모습을 보기라도 하셨습니까?”

“그, 그건….”

공간검을 익힌 줄 모르는 발데르는 당연히도 대답을 하지 못 했다.

-본왕이 정신이 나갈 것 같으니라.

라스가 어이가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도마뱀을 잡아가면서 습득한 기예를 고작 이런 곳에 쓰다니….

녀석은 악귀 그 자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렇게 되면 저도 어쩔 수가 없네요. 이쪽도 배상받아야겠습니다. 이곳의 씨앗들은 모두 게르마늄이 스며들어 있어서….”

“그만. 그만! 제발 그마아아아안!”

발데르는 귀를 막은 채 전력으로 보법을 밟으며 도망쳤다. 순식간에 그의 몸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특별 감찰관님이 떠났으니, 이제 우리끼리 남은 계산을 해볼까요.”

라온은 그 뒷모습을 보면서 남아 있는 감찰부 직원들에게 손짓을 했다.

“으으….”

“대체 우리가 여기에….”

감찰부 직원들은 라온의 손을 사신의 낫으로 겹쳐보며 입술을 떨었다.

*     *      *

호랑이 바위에 등을 기대고 있던 리메르가 일어섰다.

“발데르가 도망치는 건 처음 보네. 적이 아무리 많아도 버티면서 싸우던 놈이 저렇게 튄다고?”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는 발데르를 보며 참고 있던 웃음을 터트렸다.

“이런 모습을 예상하신 거예요?”

리메르가 웃음기를 가득 머금은 채 위를 올려보았다.

“그럴 리가.”

호랑이 바위 위에 서 있던 글렌이 잔잔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 역시 이 상황이 재밌는 듯 입가에 미소를 매달고 있었다.

“해리안이 있으니, 발데르의 수작을 막아줄 거라고는 생각했다. 하지만….”

글렌은 도망치는 발데르에게서 시선을 돌려 감찰부 직원들에게 정원을 다지라 지시하는 라온을 보았다.

“라온이 이 상황을 이용해 먹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긴 그걸 누가 생각하겠어요. 라온 저게 미친놈이지.”

리메르가 글렌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5연무장에서 금화만 60개를 삥 뜯었는데, 별관까지 데리고 가서 뽑아낼 줄은 몰랐네. 쟤도 참 독해.”

“그게 아니다.”

글렌이 고개를 저으며 라온의 뒤편에 서 있는 실비아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창백했던 안색에 다시 혈기가 돌고 있었다.

“라온은 실비아에게 자신감을 주기 위해서 발데르를 별관으로 데리고 간 것이다.”

“자신감이요?”

“그래. 라온은 내년에 실비아를 직계에 올리겠다고 말했다. 그리되면 실비아도 다시 가문의 간부들과 마주치게 되지. 그때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망가진 발데르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아….”

리메르가 글렌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속 깊은 녀석이…음?”

그가 감탄하며 시선을 돌릴 때 라온이 감찰부 직원들에게 금화를 뜯어내고 있는 게 보였다.

저 모습은 아무리 보아도 그냥 애들 코 묻은 돈을 뜯는 양아치로만 보였다.

“그거 정말 맞나요?”

그가 되묻자, 글렌이 주먹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가, 가주님?”

“분하군.”

“예?”

“저 기특한 녀석에게 아무것도 줄 수 없는 게 분하다. 발데르처럼 내 돈을 뜯어 가면 좋을 텐데….”

글렌은 정말 화가 난다는 듯 주먹을 떨었다.

“나를 협박하면 얼마든지 뜯겨 줄 수 있거늘!”

“…….”

리메르는 지그하르트의 보고 전체를 내어 줄 수 있다고 중얼거리는 글렌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 집안 곧 망하겠네.”

다른 직장 찾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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