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48화
“허….”
라온은 빨개진 이마를 매만지는 발데르를 보며 입을 떡 벌렸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지그하르트에서 성질 더럽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발데르가 고양이 앞의 쥐가 된 것처럼 도괴한테 꼼짝도 못 하고 있었다.
아예 상상도 못 하던 모습이라 머리가 돌아가질 않았다.
“트, 특별 감찰관을 때렸어….”
“근데 왜 진무전주가 가만히 있는 거지?”
“꾸, 꿈인가?”
광풍대도, 감찰부 직원들도 당황하여 도괴와 발데르에게서 눈을 떼질 못했다.
라온은 얻어맞은 발데르가 더 쩔쩔매는 모습을 살피며 조금 전 그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교관이라….’
발데르가 도괴에게 교관이라는 호칭을 사용한 것을 보면 한때 제자였던 것 같았다.
‘도괴 님은 원로원에 속할 정도로 힘과 지위가 있었으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야.’
도괴는 본인의 발로 원로원을 나왔음에도 어떠한 제재도 받지 않았다.
쌓아둔 실적과 무력, 지위 모두 높은 곳에 있었다는 뜻이었기에 어린 시절의 발데르를 가르쳤다고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앞에만 존대지 뒤는 똑같이 욕이잖습니까!”
발데르는 또 맞기는 싫은 듯 한발 물러서며 시선을 낮췄다.
“특별 감찰관 나리는 참으로 까다로우시군요. 하라는 대로 해 줬는데, 왜 지랄이십니까.”
도괴는 발데르가 물러선 만큼 다가가서 그의 이마에 딱밤을 때렸다.
빠아악!
호두가 깨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발데르의 이마가 더욱 뻘겋게 달아올랐다.
“끄으으윽….”
발데르에게도 상당한 충격이었는지 그가 신음을 흘리며 손을 떨었다.
“봐요! 이번에도 앞만 정중하지, 뒤에서 욕이 튀어나왔잖습니까!”
“특별 감찰관님. 대가리가 더 단단해지셨네요. 내 손가락이 더 아프군요.”
도괴는 딱밤을 후려쳤던 손가락에 바람을 불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발데르가 뭐라고 하든 무시하는 모습이었다.
“이번에는 양쪽 모두 정중하게 말씀드렸는데, 만족하시는지?”
“그, 그만 좀 하십시오!”
발데르는 목소리만 높일 뿐, 도괴를 어찌하지 못하고 눈동자만 굴렸다.
“크으으!”
라온이 키가 반절로 쪼그라든 듯한 발데르를 보며 헛웃음을 흘릴 때 등 뒤에서 시원한 탄성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어느새 리메르가 와서 맥주를 들이켜고 있었다.
“대주님?”
“재밌지?”
리메르는 발데르와 도괴를 차례로 보면서 맥주잔을 흔들었다.
“저 둘 사제관계야. 발데르가 저 영감 아래에 꽤 오래 있었지.”
“그건 알겠는데, 진무전주가 생각 이상으로 어려워하는 건 신기하네요.”
“너희가 나한테 왔을 때보다 더 어린 시절부터 얻어맞아 가면서 배웠거든.”
“아….”
그러면 이해할 수 있다. 어릴 적에 무서웠던 사람은 성인이 되어도 불편하고 두려운 법이니까.
“물론 후려 맞기만 해서는 저런 관계가 되지 않지. 저 영감이 은퇴하기 직전이라 발데르를 정성을 들여서 가르쳤어. 목숨을 구해준 적도 몇 번 있을걸.”
“그런 관계 치고는 같이 있는 모습을 보질 못했는데….”
“전주까지 올라갔는데, 부하들에게 저런 꼴을 보여주고 싶겠어? 당연히 발데르가 슬금슬금 피해 다녔지.”
“하긴 도괴 님도 회의에 참여하시질 않으시니.”
도괴는 원로원을 나와서 도박장과 술집을 운영할 정도의 괴짜다.
발데르가 찾지 않으면 두 사람이 만날 일 자체가 없었을 것이다.
“저 꼴을 보니 속이 다 풀리네.”
리메르는 오랜만에 보는 재밌는 장면이라며 웃다가 도리안에게 손을 뻗었다.
“응?”
도리안은 리메르의 손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과자 좀 줘 봐.”
“저라고 항상 과자가 있지는 않아요….”
도리안은 툴툴거리면서도 배 주머니에서 옥수수로 만든 과자를 꺼내주었다.
-무얼 하는 것이냐! 네놈도 먹어라!
라스는 옥수수 과자가 먹고 싶은 듯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여태 드러누워서 자다가 과자가 나오자마자 움직이다니, 아무리 생각해봐도 얘가 왜 분노의 군주인지 모르겠다.
“저, 전주님.”
“정신 차리셔야 합니다!”
“지금 전주님은 감찰 업무를 행하시는 중이시지 않습니까!”
“사제관계는 잠시 잊으셔야 합니다!”
감찰부의 무인들이 발데르에게 특별 감찰관의 지위를 이용하라고 설득했다.
“크흠!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특별 감찰관입니다! 아무리 해리안 님이라고 해도 제게 이러시면 곤란해지실 겁니다!”
발데르는 수하들 덕분에 용기를 얻은 듯 도괴의 눈을 마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아이고, 이젠 소리까지 지르네. 귀청 떨어지겠다!”
도괴는 발데르의 말을 못 들은 척하며 귀를 후볐다.
“해리안 님!”
“이래서 애들 키워 봐야 다 소용없다는 말이 나오는 거지. 감찰관님이 뒈질 뻔한 걸 살리느라 개고생을 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목소리를 높이고, 아주 지랄을 하시네요.”
“그, 그건….”
발데르가 뒤에 있는 수하들의 눈치를 살피며 제발 말하지 말라는 듯 손가락으로 입을 가렸다. 아무래도 비밀이 있는 듯했다.
“다 됐고. 특별 감찰관님? 다시 지껄여 보십시오. 뭘 어쩌라는 겁니까.”
도괴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라는 듯 팔을 벌린 채 턱을 들어 올렸다.
“끄으윽….”
발데르는 콩 벌레처럼 몸을 말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이 인간이 대체 왜 여기에 있는 거야!’
도괴가 광풍대에 들어간 건 당연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광풍대에 큰 관심이 없고, 가끔 나타난다고 들어서 일부러 이른 시간에 찾아왔다.
새벽에는 5연무장을 때려 부수고, 정오쯤 별관을 찾아가서 난동을 부리려고 했는데, 첫 단추부터 아주 단단히 꼬였다.
계획이 망가지는 것을 넘어서 아주 짜부가 되어버렸다.
‘제기랄….’
도괴와의 인연 때문에 그가 불편하고 어려운 건 맞지만, 지금 강하게 나갈 수 없는 이유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도괴 해리안은 어떠한 대가도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원로원을 나왔을 정도로 많은 실적을 쌓았고, 강대한 힘과 인맥을 지니고 있다.
아직도 원로원주와 친분을 유지하고 있기에 여기서 도괴를 잘못 건드렸다간 원로원이 움직이게 될 것이다. 그 일만큼은 막아야 했다.
“죄, 죄송합니다….”
발데르는 결국 도괴의 눈을 피하며 고개를 떨궜다.
“크흠!”
도괴가 헛기침을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특별 감찰관이 그리 말한다면 내 할 말이 없지. 하던 지랄 계속 하시오.”
그는 알아서 잘하라는 듯 손을 저으며 뒤로 물러섰다.
“후우….”
발데르가 탁한 숨을 내쉬며 시선을 굴렸다.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어.’
더 망가지기 힘들 정도로 망신을 당했으니, 어떻게 해서든 라온 지그하르트를 짓누를 방법을 찾아야 했다.
‘안쪽은 다른 놈이 관리하겠지.’
발데르는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 후 실내 훈련장으로 들어갔다.
* * *
라온은 실내 훈련장으로 들어가는 발데르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내부에서 시비를 걸려는 건가.’
그와 감찰관들은 도괴와 상관없어 보이는 실내 연무장에서 트집을 잡으려는 게 분명했다.
‘이건 이용할 만하겠어.
라온이 생각을 정리한 후 도괴에게 다가갔다.
“총관님. 오늘 총관님의 이름 좀 팔아도 되겠습니까?”
“네 마음대로 하거라.”
도괴는 발데르를 대할 때와 달리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감사합니다.”
라온은 도괴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 후 발데르가 만졌던 전투 인형들의 관절을 모조리 부러뜨리고, 연무장의 중심을 파헤쳐서 땅을 망가트렸다.
“부, 부대주님.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도리안이 먹던 과자를 떨어뜨리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니까. 너 왜 연무장을 망가뜨리고 있어!”
버렌이 말리려는 듯 다가와서 팔을 붙잡았다.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 살림살이 다 바꿔줄 테니까.”
라온은 당황한 광풍대에게 손을 저으며 발데르가 건드렸던 장비들을 망가트렸다.
“쟤가 보통 놈이냐? 알아서 하게 놔둬.”
리메르는 앞으로의 일이 기대되는 듯 맥주를 들이키며 히죽거렸다.
“왜 이렇게 더러워!”
“먼지가 가득하군!”
“이런 곳에서 훈련이라니, 병만 옮을 것 같습니다!”
발데르와 감찰관들은 실내 훈련장에서 트집 잡을 것을 발견한 듯 연무장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라온은 여유로운 걸음으로 실내 훈련장으로 들어갔다.
“단련 기구에 녹이 슬어 있고, 쇳가루가 떨어지지 않느냐!”
발데르는 덤벨과 바벨의 모서리에 박힌 녹을 가리키며 미간을 찌푸렸다.
손이 닿지 않을 정도로 구석에 박힌 미세한 녹으로 억지 트집을 잡고 있었다.
“훈련을 하다가 상처에 녹이 닿기라도 하면 파상풍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걸 모르는 것이냐!”
그는 외부 훈련장을 도괴가 관리하고, 안쪽은 다른 사람이 관리할 거라 확신하며 사납게 시비를 걸어왔다.
“그것만이 아니야. 훈련장 전체에 먼지가 가득해! 청소도 제대로 안 하고, 장비 관리도 허술하고 대체 어디에 정신을 빠뜨린 것이냐!”
그는 하얀 장갑으로 창틀의 끝에 박힌 먼지를 억지로 빼내며 이를 갈았다.
“광풍부대주! 입이 있으면 말을 해봐!”
“알겠습니다.”
라온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밖을 향해 소리쳤다.
“총관님!”
그 호칭을 부르기 무섭게 도괴가 실내 훈련장으로 들어왔다.
“아, 아니, 갑자기 저분을 왜 부르는….”
“입이 있으면 말을 해보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이곳도 총관님이 관리하십니다.”
라온이 방긋 웃으며 도괴를 앞으로 밀었다.
“책임자 대령했습니다. 이 새끼아.”
도괴가 손가락을 까딱이며 발데르에게 다가갔다.
“아, 아니 저는 검사들이 위험할까 봐….”
발데르는 도괴의 눈을 피하며 작은 먼지가 박힌 장갑을 뒤로 숨겼다.
“이 정도 먼지로 위험할 정도면 전부 다 뒈졌겠지! 창염마군의 손에서도 살아온 놈들이 먼지랑 녹 따위에 위험할 것 같으냐! 트집을 잡으려면 좀 제대로 잡아!”
도괴는 발데르를 감찰관이 아니라, 여전히 본인의 제자로 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그래도 있는 것보다는 없는 게 나은….”
“그럼 내가 진무전으로 한 번 가볼까? 창틀 뒤져서 먼지 나오면 어쩔래요?”
“으윽….”
발데르는 할 말이 없는 듯 고개를 떨구며 라온에게 시선을 돌렸다.
“사, 사무실은 어디냐. 총관 말고 대주의 사무실!”
“이쪽입니다.”
라온은 실내 훈련장 우측에 있는 리메르의 집무실을 가리켰다.
“가자!”
발데르와 감찰관들은 마지막 희망을 두른 채 집무실로 달려갔다.
뿌드드득!
라온은 발데르가 만졌던 바벨과 덤벨의 쇳덩이 부분을 뭉개버리고 그 뒤를 따라갔다.
새벽에 나와서 청소를 했기에 리메르가 끼고 사는 쓰레기들은 보이지 않았지만, 다른 곳과 달리 먼지가 가득했고, 정리도 엉망진창이었다. 솔직히 여긴 할 말이 없었다.
“더럽군! 청소를 언제 했는지 알 수 없을 정도야. 손님이 오면 일반적으로 대주의 사무실부터 들리는 법이기에 이곳은 대의 얼굴이 되는 장소다. 너희들의 얼굴은 쓰레기인가!”
발데르는 대주의 사무실이 도괴와 아예 상관이 없는 장소라고 생각하며 조금 전보다 더 목소리를 높였다.
“거기다 서류들이 왜 이렇게 쌓여 있는 거지? 그것도 결재 받지 않은 서류가 가득해! 대체 지금까지 무얼 한 것이냐!”
그는 리메르는 어디서 뭘 하고 있냐며 책상을 거칠게 내리쳤다.
“아직 마감이 지난 서류는 없습니다. 오늘 다 처리할 수 있습니다.”
“이번 건은 그냥 넘어갈 수 없을 정도로 의심스럽군. 광풍대 간부 전원을 감찰부로 소환할 테니, 합당한 조사를….”
“책임자를 부르겠습니다.”
라온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고서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책임자? 자, 잠깐만!”
“총관님!”
발데르가 말리려고 할 소리를 질렀다.
“무슨 일이냐.”
도괴가 이전보다 더욱 시원스러운 걸음으로 사무실에 들어왔다.
“또 책임자를 찾으셔서요.”
“해, 해리안 님이 여기도 관리하시는 겁니까?”
“대주 놈이 누구처럼 쓸모없어서 이곳도 봐주고 있습니다.”
실제로 도괴는 이곳에 거의 오지 않지만, 말을 맞춰서 움직여주고 있었다.
“제게 할 말이 있다면 뱉어보십시오. 특별 감찰관님.”
도괴가 당당하게 허리를 편 채로 발데르에게 턱짓했다.
“으….”
발데르는 사자를 본 토끼처럼 시선을 홱 돌리며 마른침을 삼켰다.
“따, 딱히 할 말 없습니다.”
“그럼 왜 자꾸 오라 가라 하는 거야! 이 새끼야!”
도괴는 인상을 구기며 발데르의 이마에 다시 딱밤을 놓았다.
빠악 소리와 함께 발데르의 고개가 홱 젖혀졌다.
“제, 제가 안 불렀는데요….”
발데르가 얻어맞은 이마를 손가락으로 비비면 고개를 저었다.
“시끄럽고 할 말 없으면 빨리 나가!”
그는 광풍대가 수련해야 하니, 가라면서 손을 휘휘 저었다.
“후우….”
발데르는 결국 망신만 당한 채 리메르의 사무실을 나갔다. 그가 실내 연무장에서 밖으로 나가려 할 때 라온이 손짓을 했다.
“잠시만요.”
라온은 발데르에게 한쪽 쇳덩이가 망가진 덤벨과 바벨을 가리켰다.
“덤벨과 바벨이 망가졌는데 어떻게 하실 겁니까?”
“망가지다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아까 감찰관님이 만지신 후에 쇳덩이가 갈라졌습니다. 멀쩡한 것을 망가트렸으니, 배상해 주셔야죠.”
“헛소리! 난 그냥 들어보기만 했다! 망가트리지 않았어!”
“총관님!”
라온은 더 대화할 가치가 없다는 듯 바로 도괴를 불렀다.
“아아악! 알겠다! 알겠어! 얼마인데!”
라온이 손가락을 하나 들어 올렸다.
“금화 열 개입니다.”
“그, 금화 열 개? 무슨 개소리를! 쇳덩이 따위가 어떻게 금화 열 개라는 거냐!”
“사실 이 덤벨은 평범한 덤벨이 아닙니다. 음이온 덤벨이라고 해서 내부에 무게를 조절하고, 음이온을 뿜어내는 초정밀 아티팩트가 들어 있습니다. 사용자에게 편안함과 안락함을 주고, 고된 훈련을 함께 할 수 있는 의지를….”
“크으윽!”
발데르가 이를 갈면서 옆으로 눈짓했다.
몇 분 전만 해도 거만함을 두르고 있던 감찰관이 주머니에서 금화를 꺼내 내밀었다. 아까운지 손이 덜덜 떨렸다.
“감사합니다. 잘 쓰도록 하겠습니다.”
“가자!”
발데르는 이제 이곳에 1초도 있기 싫다는 듯 바로 밖으로 나갔다.
그가 감찰관들을 데리고 연무장을 떠나려 할 때 라온이 다시 발데르를 불렀다.
“감찰관님!”
“또 뭐냐!”
“이걸 이렇게 부숴놓고 가시면 어떻게 합니까.”
이번에는 망가진 전투 인형들을 가리키며 한숨을 내쉬었다.
“난 진짜 안 했어! 안 건드렸다고!”
“저 인형을 만진 건 특별 감찰관님뿐인데요.”
“네놈이 부수고 나한테 떠넘기는 거잖느냐! 이런 일을 하고도 무사할 거라….”
“총관님!”
라온의 외침에 도괴가 귀신처럼 튀어나왔다.
“아아아악!”
발데르가 머리를 부여잡은 채 악을 질렀다.
“그만 좀 나와요!”
“이제 내 땅도 못 밟게 하는군. 당장 가주한테 가서….”
도괴가 눈매를 찡그리며 손을 털었다.
“교관님은 대체 누구 편이십니까! 너무하잖습니까!”
발데르가 참기 힘들다며 얼굴을 구겼다.
“네놈이 싸구려 술이라도 하나 들고, 날 찾아왔다면 당연히 네 편이었겠지.”
“윽….”
“요 녀석은 외부에 나갔다 올 때마다 그 지역의 명주를 사오고 있다. 내가 누구 편을 들겠느냐.”
도괴가 라온의 어깨를 두드리며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음….”
발데르는 도괴의 말을 듣고 라온을 조용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후, 알겠다. 그건 얼마냐.”
“금화 20개입니다.”
“어…?”
발데르가 액수를 듣자마자 눈을 부릅떴다.
“무슨 전투 인형 따위가 금화 20개….”
“이건 사실 평범한 전투 인형이 아닙니다. 음이온 전투 인형으로 음이온을 내뿜고, 상대의 전투 흐름을 기억하는 자동화 아티팩트가 들어 있어서….”
“으으, 알겠다! 알겠어!”
그는 고개를 마주 젓고 나서 금화 20개를 하나하나 세서 넘겨주었다.
라온은 받았던 금화를 도리안에게 넘긴 후 바로 망가진 연무장을 가리켰다.
“저 연무장도 망가트리셨는데….”
“진짜 미치겠네! 내가 대체 언제!”
“아까 모래 속에 자갈이 있다고 하실 때 발을 굴렀지 않으셨습니까. 특별 감찰관님의 힘이 너무 강해서 나중에 무너지더군요.”
“네놈이 정녕….”
“총관님?”
“그만! 알겠다! 알겠어!”
도괴를 부르자마자, 발데르가 빠르게 손을 저었다.
“자, 잠깐! 설마 저것도 음이온이냐?”
“잘 알고 계시는군요. 이 음이온 모래는 남부에서 가져온 최고급 모래로 남해의 황금이라고도 불리지요.”
“음이온. 음이온! 음이오오오온!”
발데르는 대체 음이온이 뭐냐며 악을 질렀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워낙에 구하기가 어려워서….”
“닥치고 돈이나 말해!”
“금화 30개입니다.”
“아윽….”
그는 액수를 말하라고 외칠 때와 달리 금액을 듣고서 헛바람을 흘렸다.
다만 도괴가 보고 있기에 제대로 값을 치렀다.
“와….”
“미, 미친….”
“저게 정말 돼?”
라온이 직접 장비들을 부수는 모습을 보았던 광풍대는 발데르가 변상하는 모습을 보며 입을 떡 벌렸다.
“이제 다 끝났겠지?”
발데르가 20년은 늙은 얼굴로 시선을 들어 올렸다.
“네. 특별 감찰관님의 현명하고도 청렴하신 감찰에 감탄했습니다.”
라온은 방긋 웃으며 또 오라고 손을 흔들었다.
“그 웃음이 어디까지 가나 보겠다.”
“예?”
“지금 나는 별관에 갈 생각이거든.”
발데르가 섬뜩한 눈빛으로 입술을 씹었다.
“뭘 그리 놀라지? 별관은 본관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 속 검은 짓을 하기에 가장 좋은 위치지. 이번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 빠져나갈 수 없도록 뒤져주마.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맞는 말씀이십니다.”
라온은 웃음기를 지우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웃어? 거기서는 네놈이 무슨 짓을 해도 소용없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부분이 있다면 모조리 소환해서….”
“총관님! 가시죠!”
라온은 발데르의 말을 무시하고 도괴를 불렀다.
“아니, 그건 월권이다!”
발데르가 입매를 비틀며 도괴에게 손을 저었다.
“이곳이라면 모르겠지만, 해리안 님이 별관에 끼어드는 건 권한을 넘어서는….”
“아닌데요.”
라온이 발데르에게 다가가며 서늘한 미소를 그렸다.
“감찰관님이 큰 착각을 하시는데, 저희 총관님의 소속은 별관입니다. 광풍대나 5연무장이 아니에요.”
“어…?”
발데르가 도괴를 바라보며 멍하니 눈을 꿈벅였다.
“그 말이 맞다. 지금 내 소속은 별관이지.”
도괴가 옛 제자를 보며 코웃음을 쳤다.
“빨리 가시죠.”
라온이 발데르의 소매를 잡고 흔들었다.
“저희 별관도 낡아서 바꿀 게 좀 많습니다.”
“아, 안 돼!”
발데르가 팔을 마구 흔들어서 라온의 손아귀를 벗어났다.
“안 가겠다! 안 갈 테니까! 그만!”
“아뇨. 가주셔야죠! 별관이 이상한 짓을 하는지 아닌지 조사를 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래. 일을 시작했으면 제대로 끝내야지.”
도괴가 우측으로 이동해서 발데르의 길을 막았다.
“후후.”
“크흐흐.”
라온과 도괴는 겁에 질린 듯한 발데르를 사이에 둔 채 섬뜩한 웃음을 흘렸다.
-하….
라스가 라온과 도괴를 번갈아 보며 입술을 떨었다.
-이딴 것들이 정말 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