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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537화 (536/653)

제537화

라온은 터질 것처럼 진동하는 땅과 노기를 두른 글렌의 눈동자를 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실수했어….’

여기서 이모라고 부르면 안 됐는데.

내 신분은 직계가 아니라, 방계다. 직계 중에서도 가장 위에 올라서 있는 아리스에게 이모라고 불렀으니, 글렌이 저리 화를 내는 건 당연했다.

‘그 사람의 장난이 여기까지 이어지는군.’

아리스는 처음 이모 소리를 들은 이후 매 시간마다 찾아와서 입이 닳도록 이모라고 부르게 시켰다.

짧은 시간 동안 이모 소리를 반복하다 보니, 그 단어가 입에 달라붙어 버렸다.

-멍청한 놈.

라스는 붉게 달아오른 글렌의 얼굴을 보며 키득거렸다.

-그러게 여기 오지 말고, 밥이나 먹자니까.

‘그게 되겠냐고.’

라온은 뽈뽈거리며 날아다니는 라스를 밀어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모?”

“너한테 이모가 있었어?”

루난과 마르타는 이모 소리에 놀란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부단주님의 이모면….”

“우리 가문 사람이잖아.”

“그런데 이모가 대체 누구… 아! 설마!”

“아리스 님?”

광풍대는 글렌의 첫째 딸인 아리스를 떠올리고서 헉 소리를 뱉었다.

“아….”

버렌은 아리스라는 말에 심하게 놀랐는지 이쪽을 보며 눈을 부릅떴다.

“이모. 이모라….”

글렌은 광풍대의 입에서 튀어나온 이모라는 단어에 더 짜증이 돋은 듯 마른 입술을 꾹 씹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를 했습니다.”

라온이 글렌에게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가주님이 가장 싫어하는 짓을 했어.’

글렌은 선을 지키는 것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다.

그와 함께 밥을 먹고, 수련하며 조금 가까워졌다고 해도, 아직 직계가 된 건 아니었기에 아리스를 이모라고 불러서는 안 되었다.

“…잘 알고 있구나.”

글렌이 냉랭한 시선을 내비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는 조심하도록.”

그는 한 번만 넘어가 준다는 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예.”

라온이 다시 머리를 숙인 후 몸을 일으켰다.

“하악….”

“어휴….”

한숨 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리메르와 로엔이 이마를 부여잡은 채 고개를 젓고 있었다.

“라온 지그하르트.”

두 사람이 왜 그러나 생각해볼 새도 없이 글렌의 부름에 다시 단상 위를 보았다.

“임무 시작부터 지금까지 무엇을 했는지 보고하라.”

“알겠습니다.”

라온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갑작스럽게 성검련주와 백혈교주가 습격을 해온 이후 저와 광풍대는 그곳에 있던 민간인들을 살리기 위해서 도시의 성벽을 무너뜨리고….”

라스를 소환했던 것과 암시장과 함께 데루스의 공장을 부순 일을 제외하고,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모두 말해주었다.

-얌마!

라스가 어깨를 치며 눈을 부라렸다.

-왜 본왕의 활약은 쏙 빼놓는 것이냐! 본왕이 그 약골의 목을 뽑고, 저것들을 치료까지 했다고 말하란 말이다!

‘제발 가만히 좀 있어!’

라온은 또 분위기 파악을 못 하고 끼어드는 라스를 빠르게 쳐냈다.

“드, 드래곤을 잡았다고?”

“카이바르면 도시를 다섯 개 이상 부쉈다는 광룡이잖아!”

“미친….”

“그 짧은 시간에 무슨 수로 드래곤을 잡고 온 건데!”

광풍대는 라온이 드래곤을 사냥하고 왔을 줄은 상상도 못 한 듯 눈동자에 경악을 드러냈다.

“하, 너는 진짜….”

“존잘 라온!”

마르타는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루난은 기쁨을 보이며 작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어욱….”

오늘따라 버렌의 반응이 격했다. 녀석은 이쪽으로 손가락을 겨눈 채 턱을 덜덜 떨었다.

“라온 지그하르트.”

아리스가 미리 알려주었기 때문인지 글렌은 조금도 놀라지 않은 채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체임버가 주었던 반지에 두 가지 능력이 있었다는 건 알고 있겠지?”

“예. 알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타인을 자신이 알고 있는 장소로 보내는 것이고, 두 번째는 알고 있는 사람을 자신의 위치로 소환하는 것이다. 왜 나를 그곳에 부르지 않았지?”

그는 예상과 달리 드래곤이 아니라, 그전에 있었던 일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가주님을 소환하면 저는 살아도, 광풍대가 죽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라온은 당시에 생각했던 바를 그대로 읊었다.

“조장들과 마크 괴튼, 도리안의 상태가 너무 심각해서 아무리 가주님이 오셔도 치료할 수 없었을 겁니다.”

“결계가 깨지면서 네가 튕겨 나간 건 운이 좋았을 뿐이다. 조금만 어긋났어도 죽었을 거다.”

“당시에 제 생사는 중요하다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저 저 녀석들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으로만 머리가 가득 찼습니다.”

광풍대는 라온의 말을 듣고서 입술을 깨물거나, 가슴을 움켜쥔 채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런가.”

글렌이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도리안에게 시선을 돌렸다.

“도리안 세피아.”

“아, 예!”

도리안이 어깨를 떨면서도 목을 치켜들었다.

“오르고스가 두렵지는 않았나?”

“무, 무서웠죠. 혀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왜 너를 라온이라고 속인 거지?”

“제가 죽는 것도 무서웠지만, 라온 님이 놈에게 당하는 게 더 두, 두려웠습니다.”

도리안은 양손으로 배 주머니를 쓸어내리며 말을 이었다.

“그럴 바에는 제가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억지로 입을 열었습니다.”

“다들 같은 생각인 모양이군.”

글렌은 그 대답을 도리안만이 아니라, 광풍대 모두의 대답이라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정한 동료의 조건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그의 질문에 누구도 답을 하지 않았다.

“동료의 목숨을 내 목숨보다 우선시할 수 있느냐다. 이건 함께 보낸 시간이 많다고 되는 게 아니야. 사람과 사람의 신뢰가 쌓여야만 가능한 일이지. 너희는 그 어린 나이에, 그 어려운 일을 이뤄냈구나.”

글렌의 음성에 웃음기가 묻어난다. 지금까지 들어본 그의 목소리 중 가장 부드러웠다.

“신주오령의 축제에서 지그하르트의 이름을 드높이고, 오마의 습격에서 민간인들을 구출하였으며, 동료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싸운 광풍대 모두에게 금패와 상급의 영약을 수여한다!”

글렌은 평소의 허무함이 깃든 눈이 아니라, 따스한 열기가 피어나는 듯한 시선으로 광풍대를 바라보았다.

“과, 광풍대 모두?”

“우리도 금패를 받는다고?”

“그, 그게 되는 거야?”

“이럴 수가 있나…?”

“대 전체가 금패를 받는 건 처음 아니야?”

광풍대는 전원 금패라는 상을 받을 줄은 몰랐다며 입을 떡 벌렸다.

“아….”

라온도 예상을 훌쩍 뛰어넘은 보상에 헛바람을 흘렸다.

‘그런데 이거 괜찮으려나?’

전주들이 불가하다고 외칠 게 눈에 뻔히 보였지만, 글렌은 이미 결정을 내린 듯 담담한 눈빛으로 로엔에게 손짓을 보냈다.

북멸왕이라는 남자는 예상보다 더 기분파인 것 같았다.

“준비되었습니다.”

로엔이 양손에 큼지막한 판을 든 채 단상 위로 올라갔다.

“라온 지그하르트. 앞으로.”

라온이 뒤를 돌아보았다. 마르타, 루난, 버렌. 그리고 광풍대 전체와 눈을 마주친 후 글렌의 옥좌 앞으로 걸어갔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운이 좋았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예.”

“전장에서 언제나 운이 따를 수는 없는 법. 다음에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생각해보거라.”

“명심하겠습니다.”

글렌은 믿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서 로엔에게서 전해 받은 금패와 영약을 건네주었다.

“광룡을 잡은 건은 따로 이야기하도록 하지.”

그는 내려가라는 듯 손을 저었다.

“감사합니다.”

-아오오!

라온이 글렌에게 정중하게 고개를 숙일 때 다시 라스의 발작이 시작되었다.

-본왕에게는 왜 아무것도 없는 건데! 본왕이 다 죽이고, 다 치료했단 말이다!

‘밥 줄게 밥!’

강아지에게 밥이라는 단어를 꺼내면서 조용히 시키듯이 라스를 설득하면서 단상 아래로 내려갔다.

“버렌 지그하르트. 앞으로.”

“아, 예!”

버렌은 이쪽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황급하게 단상 위로 올라갔다. 오늘따라 그의 눈빛과 반응이 이상했다.

-흐흐.

라스는 그런 버렌을 보며 키득거렸다.

‘갑자기 왜 웃어?’

-곧 재밌는 일이 벌어질 것이니라.

녀석은 버렌의 등을 보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얍삽함과 기대감이 함께 하는 듯한 웃음이었다.

‘에휴.’

라온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서 단상 위를 올려보았다.

“가, 감사합니다!”

버렌은 처음으로 받는 금패에 감격한 듯 입술을 꾹 깨문 채 글렌에게 고개를 숙였다.

“앞으로 더 나아진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반면 마르타는 받을 것을 받는 듯한 자신감 넘치는 몸짓으로 금패와 영약을 잡았다.

“달콤한 영약은 없나요?”

“…그런 건 없다.”

그리고 루난은 금패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영약을 차갑고 달달한 것으로 달라고 요구했다.

그 이후로 도리안, 크레인, 마크 괴튼을 비롯한 광풍대의 모두가 금패와 영약을 받아 갔다.

금패는 그렇다 치고 광풍대 개인에게 적합한 영약을 바로바로 주는 것을 보니, 미리 준비를 해두셨던 것 같았다.

“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금패를 받은 유아와 율리우스가 크게 고개를 꾸벅이고서 단상 아래로 내려왔다.

“지그하르트의 검사로서 역할을 다하느라 수고 많았다. 이만 돌아가서 휴식을 취하도록 하라.”

글렌은 광풍대에게 고개를 끄덕여준 후 주먹으로 턱을 괴었다. 그의 눈동자가 회색 허무함으로 차오른다. 이제 다 끝난 것 같았다.

쿠우우우웅!

어느새 뒤편으로 이동한 로엔이 알현실의 거대한 문을 열어주었다.

광풍대는 조용히 허리를 굽힌 후 한 명씩 알현실 밖으로 나갔다.

“자, 잠깐?”

리메르가 손가락으로 본인을 가리키며 눈을 꿈벅였다.

“전 아무것도 안 주셨는데요?”

그가 상을 받지 못했다고 외쳐도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광풍대 전체에게 준다며! 나도 광풍대라고! 그보다 내가 대주잖아!”

“…….”

광풍대는 귀를 막은 채 알현실을 나갔고, 글렌은 당연히 무시했다.

“저기 가주님.”

라온은 마지막으로 나가려다 말고 글렌을 돌아보았다.

“그래. 라온! 네가 뭐라고 좀 해줘!”

리메르가 본인 대신 말을 해달라는 듯 주먹을 흔들었다.

“아리스 님에게 듣기로 성검련주와 백혈교주를 홀로 막으셨다고 했는데, 몸은 괜찮으십니까?”

“크….”

글렌은 대답하지 않고, 턱을 괴고 있던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흔들리는 손으로 입가를 가렸다.

‘왜 기분이 나쁜 것처럼….’

-이런 멍청한 놈!

라스가 라온의 머리를 후려쳤다.

-저 영감탱이는 종을 초월한 경지에 올랐느니라. 무시당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나쁘지! 왜 당연한 것을 모르는 것이냐!

‘아….’

라온이 다시 사과하려 할 때 글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다.”

그는 그만 나가라는 듯 손을 저었다.

“예.”

라온이 고개를 숙이고 알현실을 나섰다.

“어이!”

리메르가 닫히는 문을 보며 공허하게 외쳤다.

“나 왜 무시하는데! 나 안 보이냐고!”

*      *       *

광풍대가 떠난 알현실은 고요했다.

다만 알현실에 남은 글렌과 리메르, 로엔 모두는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크흐흠….”

글렌은 크고 긴 손으로 하관을 가린 채 입꼬리를 길게 말아 올렸다.

‘누군가에게 걱정을 받아본 게 얼마 만인 줄 모르겠군.’

북멸왕이라는 이름과 지그하르트의 가주라는 위치 때문일까.

오랜 기간 내 몸 상태를 걱정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정말 오랜만에 그 걱정을 해준 사람이 있고, 그게 라온이다 보니, 그간의 걱정과 분노, 피로가 모조리 씻겨나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래도 이모는 좀….’

라온과의 첫 번째 술자리는 리메르에게 빼앗겼지만, 그 녀석이 절대로 할 수 없는 가족의 호칭만큼은 실비아의 엄마를 이어서 두 번째로 듣고 싶었다.

하지만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다더니, 갑자기 나타난 아리스에게 두 번째로 들을 수 있던 가족의 호칭을 빼앗겨 버렸다.

지금도 분노가 차올라서 손과 발이 벌벌 떨릴 지경이었다.

“당장 아리스를 호출해라. 이번에 안 오면 직접 찾아간다 전해라.”

“그전에!”

리메르가 한숨을 내쉬며 글렌의 앞으로 다가갔다.

“아까 왜 이모 소리를 하지 말라고 하신 겁니까.”

“그건 당연히 안 되지!”

글렌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할아버지 소리를 못 듣는데 어떻게 아리스에게 이모 소리를 하게 한단 말이냐! 절대 못 참는다!”

그는 그런 일은 귀에 흙이 들어와도 견딜 수 없다며 미간을 찌푸렸다.

“하아….”

“후우….”

리메르와 로엔이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라온에게 이모 소리를 금지 시킬 게 아니라, 가주님을 할아버지라고 부르게 하면 되잖아요! 아오! 답답해!”

리메르가 글렌을 올려보며 세차게 가슴을 두드렸다.

“그 생각도 해보았다. 다만….”

“다만?”

“내, 내 입으로 할아버지라고 하라는 건 조금 민망하지 않느냐.”

글렌이 부끄럽다는 듯 우측으로 시선을 돌렸다.

“가, 가주님….”

“손주랑 할아버지 관계에 부끄러운 게 어디 있어요!”

로엔과 리메르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후우….”

리메르가 숨을 고르며 글렌을 불렀다.

“버렌에게 할아버지 소리 들은 적 있죠?”

“그래. 그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날 할아비라 불렀지.”

“그거랑 똑같아요. 부끄러운 게 아니라, 당연한 거니까. 그냥 눈 딱 감고 말하라구요! 이제 할아버지라고 불러도 된다고!”

“크흠….”

글렌이 짧게 헛기침을 하고서 손가락으로 옥좌의 팔걸이를 매만졌다.

“나는 그런 것보다는 조금 자연스럽게 불리기를….”

“그러다 다 늙어 죽어요! 아니, 답답해서 내가 먼저 돌아가시겠다! 으아아악!”

리메르가 바닥에 드러누운 채 악을 질렀다.

“허허허!”

로엔은 다 포기한 듯 평소의 웃음을 흘리며 눈을 내리감았다.

“음.”

글렌은 바닥에서 버둥거리는 리메르와 헛웃음을 이어가는 로엔을 보며 씁쓸하게 입맛을 다셨다.

“노력해보마….”

*      *       *

라온은 뒤에서 광풍대를 살피며 대견함이 깃든 미소를 지었다.

‘다들 성장했네.’

버렌, 마르타, 루난은 마스터에 올랐고, 도리안과 부조장들은 마스터의 벽에 닿았으며, 조원들도 모두 익스퍼트 최상급이 되었다.

죽음을 경험했기 때문이 아니다. 부상을 회복한 이후에도 전력을 다해 수련을 해왔기에 이뤄낸 성장이었다.

‘그리고….’

바로 앞에서 걷고 있는 마크 괴튼의 등을 보았다. 그는 절망적으로 두꺼웠던 벽을 깨부수고, 당당하게 마스터 중급의 경지에 올라섰다.

자신감이 차 있는 마크 괴튼의 걸음걸이를 보자, 처음 그를 보았을 때가 떠올라 자연스레 웃음이 나왔다.

“라온….”

라온이 광풍대의 성장에 즐거워하고 있을 때 옆으로 버렌이 다가왔다.

“회포는 가주전을 나가서 풀자.”

“응. 그건 아는데….”

버렌은 어딘가 불편한 표정으로 관자놀이를 매만졌다.

“너 무슨 일 있어? 오늘 상태가 좀 이상한데.”

그는 금패를 받은 것도 잊은 듯 미간이 심각하게 굳어져 있었다.

“그, 그거 대체 뭐야.”

버렌이 아무것도 없는 손등을 가리켰다.

“뭘 말하는 거야?”

라온이 손등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손등 위에 둥둥 떠 있는 푸르딩딩한 거 뭐냐고….”

지금 보니 손등이 아니다. 버렌은 정확하게 라스가 떠 있는 공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라스가 박아넣은 푸른 눈동자가 세찬 빛을 발하고 있었다.

“…너 설마 이게 보여?”

라온이 버렌의 색이 다른 두 눈을 보며 입술을 떨었다.

“역시!”

버렌이 라스를 보며 주먹을 말아쥐었다.

“알현실에서부터 혼자 춤추고 난리를 치는데, 아무도 모르더라고! 난 내가 미친 줄 알았어!”

“아….”

오늘 버렌의 표정이 이상했던 게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갑자기 솜사탕 하나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난동을 부렸으니, 그런 얼굴이 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거 대체 뭐야? 몬스터야?”

-우후후! 미천한 눈깔아. 본왕은….

“아, 이거 그냥 솜사탕이야.”

라온은 본인을 소개하려던 라스를 한입에 삼켰다.

-이 미친놈이!

“그게….”

버렌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지금 네 볼을 뚫고 튀어나와 있는데?”

-캬하하하!

라스가 볼록 튀어나온 배를 부여잡은 채 키득거렸다.

-아까 왜 웃냐고 물었지? 바로 이것 때문이었느니라!

녀석은 버렌의 푸른 눈동자를 가리키며 턱을 치켜들었다.

-눈깔이의 눈깔에 순수한 분노의 기운을 담았느니라! 본왕의 축복을 받았으니, 당연히 본왕이 보일 수밖에 없느니라!

‘역시 우연이 아니었군.’

-본왕에게 우연 따위는 없느니라! 모두 철저하게 계산되어 있느니라!

라스는 분노의 군주의 위대함을 느끼라며 버렌에게 손가락을 까딱였다.

-본왕은 분노의 군주이자, 마계의 왕이니라! 본왕이 너희를 구했고, 너희를 치료했느니라! 모두에게 본왕의 존재를 알리거라!

녀석은 위엄 있는 척을 하며 포동한 양팔을 펼쳐냈다.

“…….”

하지만 버렌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멍하니 라스를 바라보았다.

“춤 잘 추네.”

그는 오히려 라스의 움직임이 귀엽다는 듯 웃으며 박수를 보냈다.

-뭐, 뭐냐! 왜 본왕의 말에 반응을 안 하는 것이냐! 당장 본왕의 존재를 알리고, 음식을 바치란 말이다!

라스가 입을 최대한 벌린 채 악을 질렀지만, 버렌은 여전히 신기하다는 듯 눈을 깜박였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야.’

라온이 한심하다는 듯 눈매를 찡그렸다.

‘네가 버렌에게 만들어 준 건 눈이지?’

-보면 알지 않느냐!

‘눈이 하는 일이 뭐야.’

-보는 거잖느냐!

‘그럼 버렌은 네가 보이기는 해도 들리지는 않지. 귀에는 아무것도 안 했잖아.’

-어? 어…. 어! 어어어어억!

라스가 버렌의 귀를 보며 비명을 터트렸다.

-귀를 안 건드렸어!

‘계산 참 철저하시네요. 분노의 군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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