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34화
암시장주 직속 흑선단의 부단주 덴젤은 나무 뒤에 몸을 숨긴 채로 배욘 호수를 살폈다.
콰아아아아아!
지하에서 무슨 일이 터진 건지 호수 표면이 거칠게 출렁이고 있었다.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
암시장주는 라온을 주인처럼 모시라고 명령했었다.
그 말대로 목숨을 걸고 지키려 했지만, 라온은 혼자서 모두 처리할 수 있으니, 외부에 있는 인원들만 확실하게 제압해달라고 요청했었다.
백검룡. 아니, 이젠 용살자가 된 라온의 무력은 익히 알고 있지만, 상대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비밀 단체이다 보니, 그가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끄응.”
“부단주님.”
덴젤이 들어갈지 대기할지 고민하며 머리를 부여잡고 있을 때 그의 수하인 시핀이 다가왔다.
“철광석 공장 쪽 정리가 끝났다고 합니다.”
“전부 잡았나?”
“예. 라온 님의 말씀대로 정체를 숨긴 이들을 모두 처리하고, 민간인들을 내보냈습니다. 다만 생포는 실패했습니다.”
시핀이 송구하다는 듯 고개를 푹 숙였다.
“어차피 기대도 안 했어. 쉬운 일이 아니니까.”
덴젤은 시핀의 어깨를 두드린 후 다시 호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럼 외부에 있는 인원은 다 처리했다는 건데….’
호수를 지키던 암살자들도 처치했으니, 남은 건 저 안에 숨어 있는 놈들뿐이었다.
‘고민 그만하고 들어가 보자. 혹시 모르니까.’
덴젤은 들어가기로 결정을 내린 후 라온이 알려주었던 방법대로 호수 앞에 있는 바위에 마나를 주입했다.
촤아아아아!
정해진 방법대로 마나의 길을 잇자, 요동치던 호수가 칼로 벤 것처럼 반으로 갈라졌다.
‘정말 되는군….’
라온은 딱 한 번 보고 이 바위의 조작법을 익혔다고 했다. 인간의 눈썰미가 아니었다.
“진입한다.”
덴젤은 시핀과 수하들을 이끌고, 호수의 중심으로 걸어갔다. 중앙에 볼록 솟아 있는 거북이를 닮은 듯한 바위에 다시 마나를 주입했다.
우우우우웅!
바위의 윗부분이 뚜껑처럼 열리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가 나타났다.
덴젤이 먼저 그 안으로 내려갔다. 통로는 넓으면서도 깊었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상황이 모두 끝났는지 아무런 소음도 들려오지 않았다.
“이동한다.”
그는 보법을 전력으로 밟으며 통로를 달렸다. 한참을 뛰고 나자, 통로 중앙에 기괴한 형태의 언덕이 보였다.
‘아니, 언덕이 아니야….’
저건 시체다. 백 이상의 시체가 쌓여서 작은 언덕처럼 보이게 된 것이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눈매를 찌푸릴 때 통로 좌우에 설치된 철창이 눈에 들어왔다. 다행히 그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선 생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허억!”
“지, 진짜 왔어!”
“살려주세요!”
“제발 좀 꺼내주시오!”
죽은 듯 조용히 있던 무인들은 덴젤과 흑선단의 단원들을 보며 구해달라고 소리쳤다.
“진짜 오다니? 그게 무슨 말이오?”
덴젤은 한쪽 눈이 없는 무인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저놈을 죽인 중년인이 곧 우리를 구해줄 사람이 올 거라고 말했소.”
그는 라온이 곧 자신들이 와서 구해줄 거라고 말했다고 하면서 하나 남은 눈을 꿈벅였다.
“허….”
덴젤이 천장을 올려다보며 헛바람을 흘렸다.
‘내가 참지 못하고 들어올 것도 예측한 건가.’
라온은 외부의 암살자만 처리하고, 입구와 출구를 지켜달라고 했었는데, 이들의 말을 들어보니, 내가 진입하는 것도 예측했던 모양이다.
‘볼수록 신기하군.’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라온이 죽였다는 남자를 살펴보았다.
‘고수.’
죽은 지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전신에 차오른 마나가 충만하다. 단련된 육체와 길고 곧게 뻗어 있는 마나회로만 보아도 뛰어난 강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만 라온은 이 고수를 단 일검으로 베어버렸다.
‘이자만이 아니야.’
통로 이곳저곳에 쓰러진 암살자와 무인들 역시 비수 하나로 심장을 부숴버렸다. 이 모든 게 단 한 수에 일어난 일이다. 상황을 보았음에도 믿기 힘들 정도의 신위였다.
‘이런 싸움에 익숙하다고 하더니….’
정말이었나?
덴젤이 마른침을 삼키고 몸을 일으켰다.
“이분들을 구해드리도록.”
그는 절반의 수하들에게 사람들의 구출을 지시한 후 통로의 끝에 있는 계단을 올라갔다.
사령술사와 암살자들이 가득하다던 공장으로 들어갔다.
천장과 바닥, 벽이 사정없이 으깨져 있었고, 곳곳에 시체들이 가득했다. 밑에 있던 암살자처럼 전부 일격에 죽은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라온은….
“오셨군요.”
눈자위를 붉게 물들인 채 경련하고 있는 여자의 옆에서 차디찬 눈빛으로 앉아 있었다.
“그, 그 여자는….”
“전에 말씀드렸던 이곳의 책임자입니다.”
“오, 옥면괴령과 괴주사령은 어떻게 된 겁니까? 혹시나 도망쳤다면….”
“죽였습니다.”
라온은 대륙 중서부를 공포에 떨게 했던 옥면괴령과 괴주사령을 무슨 파리 잡듯이 죽였다고 말했다.
“기습해서 쉽게 끝낼 수 있었죠.”
그는 고문당하는 여자 옆에 놓인 반쯤 녹아내린 시체를 가리켰다.
“아….”
덴젤이 옥명괴령과 라온을 차례로 살피고서 헛바람을 흘렸다.
‘이 자는 대체….’
무력이 강하다는 것이야 익히 알고 있지만, 암살자와 사령술사들을 상대로 조금의 실수도 없이 모든 일을 완벽하게 처리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특히 이곳에는 옥면괴령과 괴주사령이 있었고, 지하에 있던 남자나, 지금 고문을 당하는 저 여자도 초고수인데, 부상 하나 입지 않았다는 게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 남자는 절대 적으로 만들어서는 안 돼.’
덴젤은 라온에게서 육황오마의 수장들과 같은 수준의 위험함을 느끼며 마른침을 삼켰다.
* * *
“부단주께 드려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라온이 곧 죽을 것처럼 경련하는 레시아를 놔둔 채 덴젤에게 손짓을 보냈다.
“어떤….”
“이 여자에게 정보를 얻었습니다. 이런 공장이 다른 곳에도 있는 모양이더군요.”
“그, 그게 정말입니까?”
덴젤은 이 짧은 시간에 이미 정보를 파악할 줄은 몰랐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예. 부단주님이 오시기 전에 들었습니다.”
라온이 레시아를 내려보며 차게 웃었다.
“얼마 버티지 못하더군요.”
레시아는 당차게 말했던 것과 달리 고문을 오래 견디지 못하고, 알고 있는 것을 모두 내뱉었다.
-크으으윽….
라스가 두렵다는 듯 입술을 부르르 떨었다.
-그걸 버티면 인간이 아니라, 신이나 마신이니라!
‘그 정도는 아닌데?’
-피부를 헤집는 고통에, 가려움, 열기와 냉기 그리고 이젠 살 안쪽을 뜯어내는 통증까지 추가했잖느냐! 그걸 누가 버텨!
녀석은 악마도 안 할 고문이라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대체 바람은 왜 추가한 거야!
‘얻은 건 써봐야지.’
바람의 기운이 강해지면서 피부 안쪽을 헤집는 듯한 고통을 고문에 추가시켰다. 그 고문의 첫 번째 대상인 레시아는 당차게 말했던 것과 달리 밥 한 번 먹을 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알고 있던 모든 정보를 말해주었다.
“베시르 마을과 소펜시에 공장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두 곳에 자금을 지원하는 곳은 이 철광석 공장을 지어주었다는 유화 상단입니다. 결국 다 한 패라는 거죠.”
라온은 레시아에게 들었던 정보를 모두 덴젤에게 전해주었다.
“허어….”
덴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헛바람을 흘렸다.
“시핀. 들었지?”
“아, 예….”
시핀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맹한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았다.
“빠르게 확인하고, 다시 오겠습니다!”
그는 암시장에 정보를 전하겠다고 외치고 외부로 달려나갔다.
“그럼 그 조직의 뒤에 누가 있는지도 알아내셨습니까?”
“…그건 지금부터 알아봐야죠.”
라온이 레시아에게 다가가서 그녀의 이마를 짚었다. 병에 걸린 것처럼 전신을 떨던 그녀가 축 늘어진 채 더운 숨을 내뱉었다.
“제, 제발. 제발 그만. 차라리 죽여. 죽이라고….”
레시아는 고문을 하지 말고, 죽여달라고 외치며 퍼래진 입술을 달싹였다.
“으음….”
덴젤은 눈동자가 찌그러진 레시아를 보며 낮은 신음을 흘렸다.
‘대체 무슨 고문이길래….’
이런 일을 할 정도의 요원이면 고문과 고통 저항 교육을 받았을 텐데, 저런 반응이 나오는 게 놀라웠다. 라온이 고문이 공포스러우면서도 궁금해졌다.
“마지막 질문이다.”
라온은 레시아의 머리에 손가락을 얹었다.
‘들을 수는 없겠지만.’
레시아에게 다른 공장과 그 조직을 운용하는 상단까지 알아냈으니, 이제 남은 질문은 하나뿐이었다. 그리고 그 대답은 아마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일을 지시한 사람의 이름을 말하라.”
“으….”
뭐든 다 대답할 것 같았던 레시아가 입을 꾹 다물었다.
“좋다. 그럼 다시 시작하지.”
라온이 피식 웃으며 손가락 끝에 오러를 집중할 때 레시아의 입이 빠르게 열렸다.
“그…어억!”
그녀는 꼭 침묵 마법에 걸린 것처럼 소리를 내지 못했다. 붕어처럼 입만 벙긋거리다가 혀를 쭉 내민 채 숨이 끊어졌다.
“헉!”
덴젤이 다급하게 다가와 레시아의 상태를 살폈다.
“주, 죽었습니다. 다른 곳도 아니고, 뇌가 녹은 듯한데….’
그는 생기가 빠져나가는 레시아의 눈을 보며 입술을 꾹 씹었다.
라온은 담담함 속에 씁쓸함을 담은 눈빛으로 레시아를 내려보았다.
‘역시….’
데루스의 이름을 꺼내려고 하면 레이지 웜이 아니라, 세뇌가 먼저 움직여서 스스로의 뇌를 녹여버리는 지독한 방식은 여전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데루스는 인간의 탈을 쓴 악마 그 자체였다.
“생각 이상으로 지독한 놈들이군요.”
덴젤은 진심으로 당황한 듯 안색이 창백해져 있었다.
“일단 정리부터 하죠.”
라온은 레시아의 몸에 남겨놓았던 오러의 흔적을 모조리 지운 후 일어섰다.
“흔적은 제가 처리할 테니, 부단주님은 이곳의 자료를 모아주세요.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덴젤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사령술사들이 남겨둔 서류와 책자를 모으기 시작했다.
라온은 레시아의 시체를 내려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이제 놈에게도 소식이 전혀졌겠지.’
레이지 웜 때문에 데루스는 이들 모두가 죽었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단순히 암살자만 죽은 게 아니라, 다른 공장도 밝혀졌고, 돈을 융통하던 상단까지 망하게 생겼으니, 그가 입게 될 금전과 시간 적 손해는 상상을 초월하게 될 것이다.
‘네 수십 년이 사라졌는데….’
라온은 그 잘난 표정이 무너졌을 데루스를 떠올리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이제 어떻게 움직일 거냐.’
데루스 로베르트.
* * *
쿠바라는 데루스의 호출을 받고, 대정원의 외곽으로 향했다.
‘무슨 일이시지?’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올 때는 절대 부르지 않는 사람이 먼저 호출을 했다는 것을 보면 문제가 생긴게 분명해 보였다.
‘재료는 전해졌다고 연락이 왔는데, 발메일의 복귀 때문인가? 아니면….’
어떤 문제일지를 떠올리며 데루스의 뒤에 다가가던 그녀가 우뚝 멈춰 섰다.
“아….”
데루스의 분위기가 혹한을 두른 듯 차갑다. 손끝 하나만 움직여도 목이 날아갈 것 같은 위험한 분위기가 스멀스멀 타올랐다.
“…부르셨습니까.”
쿠바라는 철사로 조이는 듯 아려오는 심장의 통증을 참으며 무릎을 꿇었다.
“발메일, 레시아, 슈펠, 쥬란이 죽었다.”
데루스는 등을 돌리지도 않은 채 수화객 공장에 있는 이들이 모두 죽었다고 말했다.
“그게 무슨….”
“넷만이 아니야. 그곳에 있던 그림자들의 신호가 모두 끊어졌다.”
그 말과 함께 데루스가 시선을 돌린다. 언뜻 평온해 보이는 푸른 동공 안에서 오싹할 정도의 분노가 요동쳤다.
“그럼 발메일이 추적당했다는….”
“아니, 처음부터 공장이 드러났고, 발메일의 도착이 도화선에 불을 붙였을 것이다. 단순한 기습이라면 최소한 쥬란과 슈펠, 레시아는 살았어야 해.”
데루스는 당황하여 머리가 어지러울 상황에서도 냉정하게 사태를 파악하고 있었다.
“가주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쿠바라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수화객 공장에는 호수에 이어지는 출구가 있다. 그곳으로도 도망치지 못했다는 건 이미 모든 게 드러나 있었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후….”
데루스가 섬뜩한 숨을 내쉬며 가죽 장갑을 벗었다. 그의 손등에서 시뻘건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주변의 그림자와 요원, 무인을 모두 보내서라도 상황을 파악해라. 정보를 긁어모아.”
“…알겠습니다.”
쿠바라는 목 위에 검이 닿아 있는 듯한 긴장감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에는 내가 직접 움직이겠다.”
데루스는 그 말을 남기고 다시 레폰 로베르트의 생일 파티가 벌어지는 대정원의 중심으로 향했다.
“데루스 님. 좋으시겠습니다. 막내 아드님의 재능도 보통이 아니더군요.”
남부의 명가 중 하나인 라시안 가문의 가주가 다가와 미소를 지었다.
“자제분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천재라니, 정말 부럽습니다.”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시칸 님께서 많은 가르침을 내려주십시오.”
“허허허, 그야 물론이지요!”
데루스는 수십 년을 준비해온 수화객의 공장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조금 전에 알았음에도 흥겨워 보이는 미소를 흘리며 손님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
쿠바라는 데루스의 뒷모습을 보며 입술을 씹었다. 등골 사이로 소름이 돋아오른다. 밤낮으로 모신 주인이건만, 볼수록 공포가 깊어지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데루스의 두려움을 지우려는 듯 눈을 내리감고서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조용히 사라졌다.
* * *
다음 날.
라온은 철광석 광산이 있는 하로 산 정산에 올라갔다. 누구도 찾을 수 없게 몸을 숨기고, 기척을 죽인 채 캐폴리 마을과 배욘 호수의 전경을 살폈다.
-다 끝났으면 밥이나 먹지 왜 또 숨어서 육포나 깨작이는 것이냐!
라스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눈매를 찌푸렸다.
‘아직 안 끝났어. 어떻게 보면 이제 시작일 수도 있다고.’
데루스의 성격이라면 처음에는 요원을 보내서 살펴보고 거기서 정보를 얻지 못한다면 분명 직접 움직일 것이다.
‘너라며 저 마을에 누가 와도 알아차릴 수 있지?’
-흥. 본왕은 마계의 왕이자, 분노의 군주이니라! 이 정도 거리라면 세상 그 무엇도 본왕의 감각을 빠져나갈 수 없느니라!
라스는 당연한 것을 왜 묻느냐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그럼 저 안으로 인간의 초월자가 들어가면 알려줄 수 있어?’
-싫으니라.
녀석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본왕이 네놈을 왜 도와주겠느냐! 맨날 잘난 척만 하는 뺀질이….
‘돌아가서 네가 먹고 싶다는 음식 먹어주는 기간 일주일 추가.’
-이주일!
‘10일.’
-콜이니라!
라스가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후우….’
솔직히 별로 쓰고 싶지 않은 방법이지만, 이번 일에는 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목숨도 걸려 있기에 어쩔 수 없었다.
-흐흐흥. 이번에는 뭘 먹을까?
‘…….’
라온이 밥 먹을 생각에 콧노래를 흘리는 마왕을 무시하고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을 때 뒤편에서 덴젤이 조용히 다가왔다.
“마을 사람들을 전부 외부에 보내놓았습니다.”
“반발은 없었나요?”
“당연히 있었죠.”
덴젤이 힘들었다는 듯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다만 납치되었던 무인분들이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덕분에 나름 빠르게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시케론 가문을 비롯한 여러 무인들이 나서서 증언을 해준 덕분에 마을 사람들이 대피해주었다며 눈을 깜박였다.
“시체들은 어떻게 되었죠?”
“말씀하신 대로 신상을 파악해서 유가족들에게 연락을 보냈습니다.”
덴젤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유가족들이 오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덕분에 대륙 전체에 시체로 암살자를 만들고 있었다는 비밀 단체에 관한 소문이 퍼졌습니다. 이런 상황인데, 그 비밀 단체가 움직일까요?”
그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올 겁니다.”
라온은 확신을 담은 어조로 고개를 끄덕였다. 데루스의 성격이라면 분명 직접 와서 정말 암시장이 했는지 흔적을 살피려 할 것이다. 놈이 성격을 폭발하면 저 마을과 이 산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기에 대비해야 한다.
“설사 오지 않더라도 대비는 해두는 게 맞지요.”
“그건 그렇네요.”
덴젤이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는 준비하겠다고 말하고서 조용히 사라졌다.
라온은 덴젤이 떠난 후 아공간 주머니에서 식욕을 떨어뜨리는 색의 빵을 꺼냈다.
-나, 나딘 빵! 네놈 미친 것이냐!
‘원래 잠복에는 나딘 빵이 최고야.’
-본왕이 먹고 싶은 것 먹어준다고 했잖느냐!
‘그건 돌아가서였잖아.’
-크윽, 차라리 육포를 먹거라! 그것만큼은….
‘다 먹었어.’
-그럼 그냥 흙이나 풀을 뜯어 먹으라고! 저 괴상한 빵보다 그게 낫단 말이다!
라스는 나딘 빵을 먹을 거면 돌을 씹으라면서 비명을 질렀다.
‘맛 괜찮은데.’
-네놈은 혓바닥에 석화가 걸려 있는 게 분명해.
‘일단 먹어보고 다시 말해.’
라온은 라스를 무시하고, 나딘 빵을 씹어 삼켰다. 입안 전체에 탄 고무를 씹는 듯한 신기한 맛이 전해졌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잘 씹어서 삼키자 과식을 한 것처럼 배가 가득 차올랐다.
-끄어어억….
라스는 그 맛에 감격한 듯 눈을 까뒤집은 채 뒤로 넘어갔다.
-네, 네놈은 지옥에 떨어질 것이니라….
‘그럴지도.’
라온은 옅게 웃으며 캐폴리 마을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흘렀을 무렵 칼날처럼 오싹한 한기를 풍기는 바람이 일었다.
라온은 배욘 호수 앞에 검은 그림자가 차오르는 모습을 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