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533화 (532/653)

제533화

“끄으으윽!”

발메일은 본인의 가슴에서 솟구친 칼날을 보며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이곳에 들어온 이후로 방심 자체를 하지 않았다. 레시아에게 물건들을 넘기고, 그녀가 사라질 때까지 기감을 풀지 않을 정도였다.

유일하게 긴장을 풀었던 건 가문의 이름을 뱉으며 신경을 건드렸던 애송이의 눈을 뽑을 때뿐이었다.

1초. 아니, 어쩌면 1초도 걸리지 않을 시간이었지만, 내 등에 칼을 꽂은 놈은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소리 없이 비수를 날려 숨어 있는 암살자들의 숨통을 끊고, 내가 이동하려는 방향까지 예측하여 심장에 칼을 박아 넣었다.

조금의 틈도 없는 완벽한 연계. 무력과 암살 기술을 극한까지 갈고 닦은 괴물이었다.

‘사, 살왕이라도 온 건가?’

발메일이 로엔을 떠올리고 있을 때 라온이 그의 심장에 박아놓은 칼을 거칠게 뽑았다.

푸카아아악!

시뻘건 핏물이 바닥을 적시고, 발메일이 실이 끊긴 목각인형처럼 주저앉았다.

“네, 네놈은….”

“정보를 빼내고 싶지만, 아쉽게도 시간이 없군.”

라온이 경련하는 발메일을 보며 눈매를 찌푸렸다.

‘누가 보았다간 다 망하니까.’

이 위에는 암살자와 사령술사들이 가득하다.

발메일에게 정보를 빼내기 위해서 고문하다가 다른 이들에게 들킨다면 모든 상황이 어그러진다. 아깝지만 여기서 죽이는 게 맞는 일이다.

“네놈은 누구냐. 대체 누구기에 날….”

“네 주인에게 물어봐.”

라온은 냉랭한 눈빛으로 피에 젖은 검을 그었다.

“그, 그어….”

발메일의 목젖에서 피어난 붉은 선이 두껍게 자라나며 그의 숨이 끊어졌다.

-흥.

라스는 눈을 부릅뜬 채 죽은 발메일의 시체를 보며 콧방귀를 뀌었다.

-이런 쓰레기도 억울하다는 감정은 아는 건가?

녀석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라온은 잠시 발메일을 바라보다가 그가 가지고 있던 검을 풀어서 허리에 착용했다.

“허억.”

시케론 가문의 차남 말토는 하나 남은 눈으로 라온을 보며 입술을 부르르 떨었다.

‘괴물인가….’

저 남자는 비수를 던져서 스무 명에 가까운 암살자를 한 번에 죽이고, 마스터인 자신이 상대조차 할 수 없는 고수의 심장을 일검에 꿰뚫었다.

눈으로 보아도 피할 수 없는 비도술과 절제된 살검에 등골 사이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대체 누구지?’

저 정도 무력을 가진 괴물이 무명일 리 없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저, 저기!”

“살려주세요!”

“제발 꺼내주십시오!”

멍하니 발메일을 보고 있던 무인들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구해달라고 외쳤다.

“…….”

“흡….”

“으….”

라온이 발메일을 죽였을 때처럼 서늘한 시선을 보내자, 철창 속 무인들은 창백해진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우, 우리를 구하러 오신 게 아닙니까?”

“나는 상단의 후계자요! 구해만 준다면 뭐든지 드리겠소!”

“저도 유펜 가문 소속이라, 여기서 내보내 주신다면 원하시는 만큼 금화를 챙겨드릴 수 있습니다!”

무인들은 라온에게 겁을 먹었음에도 목숨을 구하기 위해 살려달라고 소리쳤다.

“조용히 하시오.”

라온은 갈라지는 듯한 음성으로 무인들의 입을 틀어막은 후 발메일의 얼굴을 살폈다.

‘코는 높고, 입은 튀어나오지 않았군. 변장하기 어렵지 않겠어.’

-변장?

라스가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놈 로브도 벗지 않고, 복면도 계속 쓰고 있었잖아. 키도 나랑 비슷해서 먹힐 거야.’

레시아와 발메일의 대화를 볼 때 두 사람의 관계는 그리 깊지 않았다.

이 상황을 잘만 이용한다면 귀찮은 사령술사 둘을 한 번에 처리할 수도 있었다.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가 다 놓치는 법이니라.

‘네가 웬일로 정상적인 말을 하냐.’

-본왕은 항상 정상이니라!

‘여기 오기 전에 호수에 있던 물고기를 구워 먹자고 한 놈이 무슨 정상….’

라스는 발메일의 뒤를 추적해서 호수를 지날 때 물고기가 먹음직스럽다며 몇 마리 잡아서 먹자는 헛소리를 내뱉었었다.

‘어쨌든 괜찮을 거야.’

라온이 오른팔을 돌리며 미소를 지었다.

‘내 팔은 토끼 두 마리를 한 번에 잡을 정도로 길거든.’

옥면괴령 슈펠과 괴주사령 쥬란은 고위 사령술사다.

둘 중 하나는 암살로 죽일 수 있겠지만, 남은 하나는 놓칠 가능성도 있다.

혹여나 도망치면 귀찮은 일이 벌어질 수도 있기에 두 놈은 꼭 한 번에 제거하고 싶었다.

‘대신 준비는 철저하게 해야겠지.’

라온은 눈동자를 발메일과 같은 갈색으로 물들이고, 콧대와 눈썹, 광대를 조금 만진 후 복면을 착용했다.

마지막으로 후드를 깊게 눌러 쓴 다음 몸을 일으켰다. 콧대에서 입까지 이어지는 실루엣만 보면 발메일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라온은 발메일의 모습으로 변장한 뒤 그와 같은 차디찬 시선으로 철창을 바라보았다.

“읍….”

“으….”

무인들은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기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지금 당신들을 꺼내주었다간 위에 있는 놈들에게 들킬 수도 있소. 곧 구해 줄 사람이 들어올 테니, 조금만 기다리시오.”

잔잔한 물결이 큼지막한 파도가 되듯 조금씩 굵어진 라온의 목소리는 어느새 발메일을 그대로 닮아 있었다.

“저, 정말입니까?”

발메일에게 눈을 잃은 시케론 가문의 무인이 철창을 잡은 채로 턱을 떨었다.

“조용히 기다리시오.”

라온은 그에게 통증을 줄이고, 지혈을 할 수 있는 가루약을 던져주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겠습니다.”

살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인지 무인들은 입술을 깨문 채로 물러섰다.

‘후우….’

천천히 숨을 고른 후 허리를 곧게 폈다.

발메일의 검에 미리 가지고 온 투명한 물을 부은 후 계단으로 향했다.

불의 고리와 분노의 감정을 이용하여 발메일의 사나운 기세를 연기하며 계단을 올랐다.

‘발메일의 성격은 냉정하고, 날카로웠어.’

가문에 열등감을 느끼고 있고.

발메일이 빈틈을 드러냈던 건 시케론 가문의 이름이 나왔을 때뿐이다. 이유는 몰라도 명가를 싫어하는 게 분명했다.

‘레시아나 사령술사와도 친한 사이가 아니야.’

머릿속에서 발메일의 정보를 정리하며 그리 길지 않은 계단을 올라갔을 때 다시 내려오려던 레시아와 마주쳤다.

미리 기척을 읽었기에 아무렇지도 않은 척 멈춰 섰다.

“발메일 님?”

밑에서 기다린다고 했던 사람이 올라왔기 때문인지 레시아의 눈동자에 의문이 드러났다.

“그 늙은이들에게 주어야 할 재료가 하나 더 있었다.”

라온은 빠르게 뛰기 시작한 심장을 불의 고리로 가라앉히며 날카로운 음성을 뱉었다.

‘이게 맞아.’

발메일은 옥면괴령 슈펠과 괴주사령 쥬란을 늙은이라고 불렀다. 두 사람에게 지위로 밀리지 않는다는 뜻. 둘을 무시하는 듯한 어투로 말하는 게 정답이다.

“어떤 재료입니까?”

레시아는 의심을 하는 듯 뒤로 물러서지 않은 채 재료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주신다면 제가 전해드리겠습니다.”

그녀는 가져온 재료를 달라는 듯 손을 내밀었다.

“나도 그 늙은이들을 보고 싶지 않지만, 그분께서 직접 전하라 명하셨다.”

“그런 중요한 지시를 잊다니, 발메일 님답지 않군요.”

레시아의 눈빛이 가시처럼 가늘어졌다. 의심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맞는 말이다. 쓰레기 하나 때문에 실수를 했어.”

“쓰레기?”

“처음 납치할 때부터 가문을 주절거리던 버러지 때문에 신경이 쏠렸다. 눈깔을 뽑고 나서야 생각이 나더군.”

명가를 싫어하는 발메일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며 입매를 비틀었다.

“설마 재료를 건드리신 겁니까?”

“눈알 하나뿐이다.”

“정말이지….”

레시아가 한숨을 내쉬며 올렸던 손을 내렸다. 그녀는 뜻을 알 수 없는 투명한 눈동자로 라온의 후드 안쪽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안 통하나?’

라온이 볼 안쪽 살을 씹으며 손끝으로 오러를 움직였다. 바로 검을 뽑을 수 있는 준비를 할 때 레시아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레시아가 따라오라는 듯 등을 돌렸다. 완전히 신뢰하는 건 아닌지 그녀는 기감을 열고 있었다.

-허욱!

라스가 팔딱이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신음을 흘렸다.

-본왕도 심장이 콩닥거리는데, 네놈은 떨리지도 않는 것이냐!

녀석은 초월자 둘을 상대할 때보다 더 긴장한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정도야 뭐.’

지금 수준의 연기는 암살자로 살던 시절에 매일같이 하던 짓이었다. 문제가 생겼을 때 바로 대비를 해야 했기에 최대한 긴장을 풀고 있었다.

라온은 레시아를 따라가며 공장의 내부를 기감으로 훑어내렸다.

‘위치는 그대로군.’

벽과 천장에 숨어 있는 암살자들과 수화객을 제작하는 사령술사의 위치는 바뀌지 않았다.

다만 이틀 전과 달리 완성된 것으로 보이는 수화객들이 기둥 앞에 서 있었다.

‘저건 위험할 수도 있겠어.’

눈동자를 굴려서 수화객의 숫자와 상태를 확인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똑똑.

레시아는 옥면괴령과 괴주사령의 연구실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노크를 한 뒤 문을 열었다.

“안 그래도 지금 내려가려고 했는데. 오랜만이군요. 발메일.”

옥면괴령 슈펠이 잘 다려진 코트를 걸치며 미소를 지었다.

“싱싱한 놈들을 많이 가져왔다며? 몇 마리는 내가 맛 좀 봐도 되겠지?”

괴주사령 쥬란은 비짝 마른 손을 비비며 히죽 웃었다.

“발메일님께서 다른 재료도 가져오셨다고 하십니다. 그분께서 직접 주셨다고 하시는군요.”

레시아가 우측으로 비켜섰다. 라온은 레시아가 섰던 자리로 걸어가 괴주사령과 옥면괴령을 바라보았다.

“그분께서 주신 재료라고?”

“어떤 재료죠? 인간은 아닌 듯한데?”

괴주사령과 옥면괴령은 데루스가 준 재료라는 말에 호기심이 동한 듯 입맛을 다시며 다가왔다.

“그분께서….”

라온은 데루스를 그분이라 말하며 로브 속에 감추고 있던 검을 뽑았다. 은백색 광휘가 명멸하는 칼날이 옥면괴령과 괴주사령의 목을 동시에 갈랐다.

촤아아아악!

마지막으로 우측에 서 있던 레시아까지 죽이려 했지만, 그녀는 두 사령술사가 당하는 순간에 반응하며 뒤로 물러섰다.

“크윽….”

덕분에 레시아의 목은 완전히 갈라지지 않고, 가는 핏줄기만 흘러내렸다.

다만 검을 피하지 못한 옥면괴령 슈펠과 괴주사령 쥬란의 머리는 살벌한 양의 핏물을 흩뿌리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멍청한 놈! 나는 검기 따위에 죽지 않는다!”

괴주사령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듯 낄낄 웃으며 본인의 머리를 부여잡았다.

“우리를 평범한 마법사로 생각한 듯하네요. 아쉽게도 저희는 이미 죽는 것과 다름없답니다.”

옥면괴령도 비웃음을 흘리며 본인의 머리통을 주워들었다.

“당신이 누구인지는 그 몸에 천천히 물어보기로… 어?”

“이, 이게 왜?”

“재생의 공능이 이루어지질 않아!”

두 사령술사는 불이 붙은 양초처럼 녹아내리는 본인들의 몸을 보며 입술을 떨었다.

“크아아아악!”

괴주사령은 어깨까지 녹아버린 육체에서 고통을 느낀 듯 찢어지는 비명을 질렀다.

“이, 이놈 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이냐!”

“빌어먹을! 신성력과 성수야! 완전히 먹혔어!”

옥면괴령은 검에 묻어 있던 성수와 신성력을 파악했지만, 어떠한 대처도 하지 못한 채 무릎을 꿇었다. 그 역시 상반신이 거의 다 녹아내린 상태였다.

“잘 알고 있군.”

라온이 봄눈처럼 녹아내리는 두 사령술사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 괴주사령과 옥면괴령을 벨 때 칼날 위에 어둠에서 피어난 신성을 담았다.

이곳에 올라오기 전에 최상급 성수를 뿌렸던 검에 신성력이 맺히며 옥면괴령과 괴주사령의 사령술이 무효화된 것이다.

“끄으으, 젠장….”

“네, 네놈을 저주하겠….”

두 사령술사는 재가 되어가는 본인들의 몸을 보며 눈을 까뒤집은 채 숨이 끊어졌다.

“넌 대체 누구냐….”

레시아가 이를 악문 채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았다.

“너 따위가 질문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나?”

라온이 차게 웃으며 레시아를 향해 다가갈 때 연구실의 벽이 무너지고, 기둥 앞에 서 있던 수화객들이 들이닥쳤다.

‘이쪽에도 명령권이 있는 건가?’

수화객과 연결된 건 사령술사뿐이라고 생각했는데, 레시아에게도 명령권이 있던 모양이다.

‘어디….’

라온이 레시아에게 달려들려 하자, 가장 가까이에 있던 수화객이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본인의 몸을 터트렸다.

쿠와아아아앙!

전보다 더 강해진 듯한 폭발에 연구실 천장이 무너지고, 바닥이 터져나갔다.

후우우욱!

라온은 그 폭발의 여파를 등으로 견뎌내며 수화객이 무너뜨린 벽을 넘어 공장으로 나갔다.

‘단 하나도 살려둬서는 안 돼.’

한 명이라도 빠져나갔다간 데루스에게 정보가 이어질지도 모른다. 이곳에 있는 누구도 놓쳐서는 안 된다.

“뭐, 뭐야!”

“왜 수화객이 움직인 거지?”

“폭발까지? 신호에 문제가 생긴 건가?”

외부에 있던 사령술사와 암살자들은 아직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한 채 본인들의 자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딱 좋은 곳에 있군.’

라온은 왼손으로 비수를 쏘아내고, 오른손에 든 검으로 바람의 기운이 깃든 검기를 일으켰다.

피아아아앙!

묵색의 비수는 달려들려던 암살자들의 심장을 꿰뚫었고, 극쾌의 묘리가 깃든 검기가 사령술사들의 머리를 갈랐다.

‘반 정도 남았군.’

라온이 두 번째 공격을 준비하려 할 때 검은 연기를 헤치고, 수화객들이 쇄도해왔다.

뻐어어억!

가장 빠르게 돌진해온 수화객의 몸이 붉게 물들며 폭발하려는 순간 놈의 좌측으로 다가가 발로 허리를 걷어찼다.

인간을 초월한 힘과 속도의 각법에 수화객은 튕겨 나간 이후에야 본인의 몸을 폭발시킬 수 있었다.

쿠와아아아앙!

무시무시한 폭발이 터지며 구석에 물러서 있던 암살자 넷이 한 줌 핏물이 되어 가라앉았다.

피이이이이잉!

라온은 재차 달려드는 다른 수화객들의 공세를 보법조차 사용하지 않고 피한 후, 우측 통로로 도망치려는 사령술사의 등을 향해 검기를 쏘아냈다.

“꺼, 꺼져!”

사령술사들이 사기의 방패를 운용하여 검기를 막으려 했지만, 그건 평범한 검기가 아니었다.

캬아아아아앙!

성수와 신성이 깃든 검격이 조잡한 사기를 단숨에 가르고, 사령술사들의 몸을 반으로 찢어놓았다.

‘끝났군.’

이곳에 올 때마다 확인했던 암살자와 사령술사가 모두 쓰러졌다. 이제 남은 건 레시아와 수화객뿐이다.

라온이 뒤를 돌려고 할 때 좌측과 우측으로 수화객이 짓쳐 들어 왔다.

“죽여!”

레시아가 비명처럼 지시를 내리자, 수화객들의 움직임이 급변했다.

‘빨라졌어.’

수화객들의 움직임은 전에 싸웠던 놈들보다 더 빠르고 부드러웠다. 꼭 살아 있는 암살자들에게 포위된 느낌. 놈들은 폭발을 피할 수 없게 사방을 에워싼 후 몸을 붉게 물들였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벌써 개선이 이루어졌다는 건가.’

수화객 개선이 진행 중이라고 하더니 벌써부터 그 효과가 나타날 줄은 몰랐다.

“굉장하네. 하지만….”

강해진 건 너희만이 아니야.

라온이 불의 고리와 분노의 마안을 운용했다. 수화객의 단전에서 피어난 사기가 놈들의 심장을 향해 질주하는 모습을 보며 검을 쥔 손목을 쳐올렸다.

촤아아아아악!

바다에 비친 노을처럼 뻗어나간 검격이 수화객들의 상체를 반으로 갈랐다.

투두두둑.

수화객들의 몸이 사선으로 비틀어져 떨어졌건만, 폭발하는 개체는 단 하나도 없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레시아의 안색이 곧 죽을 것처럼 창백해졌다.

‘말도 안 돼! 신호가 끊어졌어!’

수화객은 몸이 조각나서 잘리더라도 자폭을 할 수 있다. 고작 몸이 반으로 갈라졌을 뿐인데, 명령 신호가 끊어졌다는 게 믿기질 않았다.

“심지를 잘랐다.”

라온이 피에 젖은 검을 내리며 레시아에게 다가갔다.

‘화약과 불꽃이 만나지 못했으니, 터지지 않을 수밖에.’

수화객은 멈춰버린 심장에 사기가 스며들었을 때 폭발을 하게 된다.

신성력과 성수가 깃든 검으로 사기의 흐름 자체를 베었기 때문에 자폭이 멈춘 것이다.

“너, 넌 대체 누구냐….”

“질문을 하는 건 네가 아니야.”

라온이 턱을 모로 틀며 레시아의 앞에 섰다.

“미안하지만, 내 입에서 들을 수 있는 건 없….”

자살을 하려는 듯 레이지 웜을 자극하려는 레시아의 가슴팍을 후려쳤다.

“커헉”

레시아가 피를 토하며 입술을 떨었다.

“뭐, 뭐야. 왜….”

그녀는 레이지 웜이 움직이지 않는 것에 놀란 듯 떨리는 눈동자를 들어 올렸다.

“지금까지 고문만 하면 너무 쉽게 입을 열어서 재미가 없었는데….”

라온의 붉은 눈동자 위로 서슬 퍼런 뇌광이 번뜩였다.

“넌 얼마나 버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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