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532화 (531/653)

제532화

라온은 캐폴리 마을 인근에 세워진 작은 마을의 여관에서 늦은 밤을 보냈다.

식당과 숙박업을 모두 하는 곳이었는데, 한숨 자고 일어나니 가게가 텅 비어있었다. 주인도, 주방장도 보이지 않았다.

-배고픈데, 다 어디에 간 것이냐!

라스가 빨리 주방장을 찾아오라며 손을 흔들었다.

-본왕에게 식사를 바치거라!

‘곧 올 거야.’

라온은 본인의 포동한 배를 들이미는 라스를 쳐내며 중앙의 테이블에 앉았다.

잠시 후 여관의 문이 열리더니, 가면을 쓴 것처럼 표정이 옅은 사내가 다가와 맞은편에 섰다.

“라온 님을 뵙습니다.”

사내는 두 손을 모은 채로 고개를 숙였다.

“암시장주 직속 흑선단의 덴젤이라고 합니다.”

“라온 지그하르트라고 합니다.”

덴젤이 기막을 펼쳐 놓은 상태였기에 신경 쓰지 않고 본명을 밝혔다.

“생각보다 빨리 오셨군요.”

라온이 덴젤을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수화객 공장에 대해 미리 알고 있던 자신과 달리 암시장이 그 정보를 알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기에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은 몰랐다.

“보통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덴젤이 탄식 같은 한숨을 내쉬고서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라온 님의 말씀대로 최근 무인들의 실종이 늘어났습니다. 부상자나, 사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체가 사라진 경우는 더 많았다고 합니다.”

“음….”

라온은 자연스레 정보를 푸는 덴젤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빠르고, 정확하군.’

덴젤은 어디서, 어떤 무인과 시체가 사라졌는지도 말해주었다. 저런 세세한 정보를 이렇게 빨리 알아 오다니, 역시 암시장주의 정보력과 금력은 육황오마 이상인 것 같았다.

“무인들이 사라진 흔적을 계속 조사한다면 조금 억지로지만, 그 비밀 세력을 추적할 수 있는 길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시간이 좀 걸릴 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딱히 긴 시간은 필요 없을 겁니다.”

“예? 그게 무슨….”

덴젤은 무슨 말을 하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제 시체로 암살자를 만드는 공장의 위치를 찾았습니다.”

“저, 정말이십니까?”

“예상대로 철광석 공장 밑에 자리를 잡고 있더군요. 규모가 생각 이상으로 컸습니다. 암살자들과 사령술사의 숫자도 많았고….”

라온은 어제 보고 온 수화객 공장의 위치와 시설, 인원을 모두 말해주었다.

“허어.”

덴젤은 단 하루 만에 천금 같은 정보를 모두 모아서 올 줄은 몰랐다는 듯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옥명괴령과 괴주사령이 그곳에 있었군요. 사람을 짐승만도 못하게 보는 악귀들이….”

그는 사령술사인 슈펠과 쥬란을 혐오하는 듯 잘게 입술을 씹었다.

“이 정도 정보라면 더 빨리 움직일 수 있을 겁니다. 준비를….”

“아직 남았습니다.”

라온이 일어나려던 덴젤에게 고개를 저었다.

“그곳의 책임자로 보이는 여자가 내일 새로운 보급이 온다고 하더군요.”

“보급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좀비 암살자의 재료가 될 무인들이겠죠.”

살아 있는 무인과 이미 죽은 무인의 시체가 바로 내일 그 장소에 쏟아질 거라고 말해주었다.

“아, 그러면!”

덴젤은 이제 알았다는 듯 탄성을 흘렸다.

“그 무인들을 추적해서 그 장소를 발견했다는 핑계를 만들 수 있겠군요! 내일 바로 치면 되겠어요!”

“맞습니다.”

대륙 그 어디에도 암시장의 주민이 없는 곳은 없다.

실종된 무인들을 찾기 위해 움직이다가 호수로 들어가는 모습을 발견했다고 한다면 데루스의 의심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대단하군요. 지금 상황에서 그보다 좋은 방법은 없겠어요!”

덴젤이 라온을 보며 헛바람을 흘렸다.

‘왜 암시장주께서 그리 많은 배려를 해주었는지 알겠어.’

암시장주는 라온에게 값을 매길 수 없는 귀중한 정보를 꾸준히 보내주었다.

왜 그런 손해를 보나 했는데, 이 젊은 무인은 돈으로 매길 수 없는 가치를 지닌 사람이었다.

지금이 아니라,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남자에게 미리 하는 투자가 분명했다.

“내일 바로 진입할 수 있게 준비하겠습니다. 저희 쪽 무인들도 빠르게 소집해서….”

“아뇨.”

라온이 느릿하게 고개를 저었다.

“싸움은 저 혼자 하겠습니다.”

“하, 하지만 놈들은 암살자입니다. 무인을 상대하는 것과는 전혀 다를 텐데….”

덴젤은 걱정된다는 듯 마른침을 삼켰다.

“괜찮습니다.”

라온이 천천히 눈꺼풀을 내리감았다가 떴다. 냉랭한 눈동자 위로 오싹할 정도로 서늘한 한기가 차올랐다.

“그런 싸움은 익숙하니까요.”

*     *      *

로베르트 가문의 대정원.

데루스 로베르트의 조용한 산책로는 평소와 달리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려요.”

“도련님. 생일 축하드립니다!”

정원에 모여든 사람들은 화려한 예복과 드레스를 입은 채 데루스 로베르트의 막내아들 레폰 로베르트에게 다가가 축하의 인사를 보냈다.

“감사합니다.”

라온의 것과 닮은 듯한 검은 예복을 입은 레폰이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의 앞에는 인사를 하기 위한 줄까지 세워져 있었다.

아직 스무 살도 되지 않은 아이에게는 과할 정도의 예의. 로베르트 가문의 위엄이 얼마나 높은지를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다만 많은 사람에게 축하받고 있음에도 레폰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그가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정원의 입구를 지키던 두 명의 검사가 크게 발을 굴렀다.

“가주님께서 입장하십니다!”

검사들의 웅장한 외침과 함께 대정원의 입구로 데루스 로베르트가 들어섰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았지만, 존재감이 그대로 드러나는 진중한 걸음.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등장이었다.

“가주님!”

“가주님을 뵙습니다.”

데루스는 사람들의 인사를 가볍게 받으며 정원의 중앙에 세워진 분수 앞에 섰다.

“레폰 이리 오거라.”

“예.”

오늘의 주인공인 레폰이 그의 옆으로 다가갔다.

“레폰의 생일을 축하해주시기 위해서 먼 곳까지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데루스는 레폰의 어깨를 잡으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저희가 영광이죠!”

“언제라도 불러주십시오!”

사람들은 이 자리에 있는 게 기쁠 뿐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 말씀해주시니, 감사드릴 뿐입니다.”

데루스 로베르트는 은은한 웃음을 흘리며 사람들과 차례로 눈을 마주했다.

“레폰. 너도 인사를 드려야지.”

“예. 아버지.”

레폰이 입매를 굳게 다문 채로 데루스의 앞으로 나왔다.

“제 생일을 함께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는 어딘가 딱딱한 미소를 지으며 중앙을 향해 허리를 굽혔다.

“와아아아아!”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도련님!”

“앞으로도 건강하시길.”

사람들은 레폰의 표정을 알고 있음에도 그 뒤에 있는 데루스를 보며 귀가 울릴 정도의 박수를 보냈다.

“이제 레폰 님도 성인이 될 때까지 얼마 남지 않으셨군요. 혹시 목표가 있으십니까?”

가장 앞에 자리를 잡고 있던 로베르트 가문의 봉신가 라파탄 가문의 가주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저는 라온 님 같은 검사가 되고 싶습니다.”

레폰은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본인의 목표이자 꿈을 꺼냈다.

“라온 지그하르트?”

“아, 백검룡….”

“그래서….”

사람들은 왜 레폰의 표정이 좋지 않았는지 알아차린 듯 짧게 입맛을 다셨다.

“이 아이의 목표는 예전부터 라온 검사였습니다. 지금 상황이 좋지 않으니, 여러분께서 이해해주십시오.”

데루스가 떨리는 레폰의 손을 잡아주며 인자한 미소를 흘렸다.

“아직 라온 검사가 떠났다는 공식적인 발표는 없으니, 믿고 기다리렴. 내가 보기에 그렇게 쉽게 죽을 사람은 아니었단다.”

“예. 아버지!”

레폰은 감격한 듯 데루스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날 분위기를 망쳐서 죄송합니다.”

그는 감정을 다잡으며 먼저 손님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나누었다.

사람들은 다정한 부자 관계와 라이벌인 가문의 무인까지 생각해주는 데루스의 다정함에 감동한 듯 미소를 지었다.

데루스는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 레폰의 모습을 뿌듯하게 지켜보다가 사람이 없는 좌측 공간으로 빠졌다.

“무슨 일이지?”

그가 등을 돌리며 묻자, 수풀의 그림자 속에서 쟁반을 들고 있는 쿠바라가 나타나 부복했다.

“지시하신 보급이 공장의 통로 앞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숫자는?”

“살아 있는 재료가 예순둘, 죽은 재료는 백삼십입니다.”

“호위로는 누가 갔지?”

“발메일입니다.”

“좋은 선택이다.”

그는 발메일이 움직인 게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감각이 뛰어난 발메일이니, 알아서 잘 움직였겠지. 좋다. 들여보내도록.”

“예.”

쿠바라는 쟁반 위에 가져온 술잔을 데루스에게 넘기고서 조용히 사라졌다.

“그리 쉽게 죽지 않는다라….”

데루스는 쿠바라가 놓고 간 술로 입을 축이며 레폰을 바라보았다.

웃음을 되찾은 자신의 아들을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세상에 그런 일은 없단다.”

*     *      *

하로 산과 맞닿아 있는 배욘 호수가 소리 없이 갈라진다.

호수 앞에 서 있던 레시아가 짧게 손짓하자, 마나의 흐름이 뒤틀리며 처음부터 물길이 쪼개지지 않은 것처럼 평온한 호수의 환상을 만들어냈다.

“됐습니다.”

레시아가 뒤를 향해 고갯짓을 하자, 검은 로브를 두르고, 복면을 쓴 괴인들이 나타났다.

“지금부터 제가 밟은 곳만 따라오십시오.”

“…….”

복면인들은 대답하지 않고, 조용히 그녀의 뒤에 따라붙었다.

레시아가 진흙과 이끼가 낀 길을 걸어서 호수의 중앙에 솟구친 거북이 모양의 바위까지 도착했다.

그녀가 마나가 깃든 손가락으로 바위를 매만지자, 바닥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가 열렸다.

“…….”

누가 보아도 입을 떡 벌릴 법한 신기한 광경이건만 복면인들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듯 눈빛 하나 변하지 않았다.

“들어오시죠.”

레시아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별 반응 없이 먼저 통로 안으로 들어갔다.

우우우웅!

그녀는 복면인들이 모두 통로에 들어오자마자, 벽면을 매만졌다. 열렸던 천장이 닫히고, 갈라졌던 호수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이쪽입니다.”

레시아는 문이 닫히자마자, 복면인들을 이끌고 통로를 달려갔다.

그녀의 보법은 웬만한 무인도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빨랐지만, 복면인들은 누구 하나 뒤처지지 않았다.

터억!

죽은 무인들을 가두고 있던 수십 개의 철창이 보이는 곳에서 레시아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았다.

“이곳까지 오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발메일 님.”

레시아가 가장 앞에 서 있는 복면인에게 고개를 숙였다.

“레시아.”

키가 크고, 사나운 눈빛을 가진 복면인이 느릿하게 턱을 주억거렸다.

“그분께서 이곳에 관심이 많으신 건 알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레시아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숙였다.

“수화객의 개선은 잘 진행되고 있나?”

“발메일 님께서 가져와 주신 재료들을 사용한다면 확실하게 개선할 수 있을 겁니다.”

그녀는 자신이 있다는 듯 담담한 눈빛으로 발메일을 바라보았다.

“흠.”

발메일이 뒤를 향해 손짓을 하자, 복면인들이 바닥에 손을 얹었다.

화아아아악!

그들의 손아귀를 중심으로 솟구친 검은 그림자가 이백 명에 가까운 사람들을 토해냈다.

오른쪽에 있는 육십여 명의 사람들은 살아 있는 듯 낮은 숨을 내쉬었고, 왼쪽에 쓰러진 사람들은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다.

“살아 있는 재료가 예순둘, 죽은 재료는 백삼십이다. 전부 익스퍼트 이상이고 마스터도 셋 있지.”

발메일은 손가락을 들어 직접 마스터를 찝어 주었다.

“마스터까지!”

레시아가 마스터들의 상태를 확인하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함께 올라가시죠. 두 분께서도 환대해주실 겁니다.”

“됐다. 그 늙은이들을 보면 기분만 더러우니까.”

발메일은 전혀 관심 없다는 듯 손을 저었다.

“…알겠습니다.”

레시아가 가볍게 손짓을 하자, 감옥 주변에 숨어 있던 암살자들이 튀어나와 발메일이 꺼내놓은 사람들을 철창 속에 가두기 시작했다.

손길이 거칠었기 때문에 살아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정신을 차렸다.

“뭐, 뭐야….”

“여긴 어디….”

“너희는 누구야!”

무인들은 철장에 갇힌 채로 소리를 질렀지만, 레시아와 발메일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이깟 철쯤은 음?”

“다, 단전이….”

“오러가 막혔어!”

“이런!”

그들은 철장을 깨부수려다가 오러를 운용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입술을 떨었다.

“그럼 전 보고를 하고 오겠습니다.”

레시아는 무인들을 모두 가둔 후 통로 끝에 세워진 계단으로 올라갔다.

“이 새끼들! 당장 날 꺼내! 내가 누구인지 알아?”

뒤늦게 정신을 차린 중년 무인이 철창을 흔들며 악을 질렀다.

“나는 시케론 가문의 마스터….”

“시케론이라.”

가문의 이름이 나오자, 발메일이 처음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는 시케론 가문이라고 외친 남성에게 다가가 서슬 퍼런 눈웃음을 흘렸다.

“시케론이고, 지그하르트고 나한테는 아무 의미도 없다.”

“자, 잠깐….”

무인은 그의 웃음에 공포를 느낀 듯 뒤로 몸을 젖혔다.

“어딜 가나. 시케론 가문의 마스터.”

발메일이 입매를 비틀며 무인의 오른쪽 눈동자를 손가락으로 뽑아버렸다.

“끄아아아악!”

그가 괴성을 지르며 쓰러지자, 꺼내달라며 소리를 지르던 사람들 모두가 입을 다물고 눈동자를 떨었다.

“조용해서 좋군.”

발메일이 피에 젖은 손을 털어낼 때였다.

치이이잉!

그의 등 뒤에서 십수 개의 비수가 비상하는 매처럼 뻗어나가 감옥의 틈새에 숨어 있던 암살자들과 복면인들의 심장을 뚫어버렸다.

“뭐… 커헉!”

발메일은 뒤를 돌아보기 전에 먼저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어느새 그의 심장 위로 시퍼런 칼날이 튀어나와 있었다.

“이이….”

“지그하르트도 의미 없다?”

흑발흑안으로 염색한 라온이 발메일의 입을 틀어막은 채 섬뜩한 미소를 흘렸다.

“그건 아닌 모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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