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528화 (527/653)

제528화

-어이! 본왕 말 안 들리냐?

라온은 라스가 아니라, 아리스를 보며 멍하니 눈을 꿈벅였다.

“그, 그게 다예요?”

“그럼 뭐 다른 게 있겠어?”

아리스는 본인이 더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설마 너한테 목숨이라도 바치라고 하겠니?”

그녀는 이상한 생각은 하지 말아 달라며 손을 위아래로 저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드래곤 하트잖아요.”

드래곤 하트는 드래곤을 잡아야만 구할 수 있기에 돈을 산처럼 쌓아도 구할 수 없는 보물 중의 보물이다.

세상에 나왔다 하면 피바람을 불러일으킬 물건을 아무런 대가도 없이 주겠다고 하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도 물어봐야 하고.”

내가 카이바르를 잡는 데 큰 공을 세운 건 맞지만, 혼자서는 절대 이룰 수 없는 일이었다.

전함의 선원들이 해양 몬스터들을 처리해주었고, 아리스가 카이바르의 브레스를 막고 반격까지 해준 덕분에 이길 수 있었다.

가장 큰 보물을 받기에는 솔직히 부담스러웠다.

“이야기는 다 됐어.”

아리스가 엄지손가락으로 뒤를 가리키며 미소를 지었다.

“네게 드래곤 하트를 주는 것에 반대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어. 물론 반대했으면 내가 죽였겠지만….”

그녀는 산뜻한 얼굴과 달리 섬뜩한 음성을 흘렸다.

“거기다 우리에겐 카이바르의 시체가 있잖아. 적당히만 팔아도 모두 평생은 먹고살 수 있을 거야.”

아리스는 죽은 사람들의 가족까지 모두 챙겨줄 거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저기요? 본왕 여기 있는데에?

라스가 눈앞으로 튀어 올라 눈을 부라렸다.

-빨리 고기나 뒤집….

“정말 신기하네.”

아리스가 손을 들어 라온의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우리 가문에서 어떻게 너 같은 녀석이 나왔지?”

“예?”

“내 아들을 포함해서 죄다 냉정하고, 자기만 아는 놈들 뿐인데, 너는 기질 자체가 다르잖아.”

“음….”

라온이 입맛을 다셨다. 지그하르트의 직계들을 떠올리니 아리스의 말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아, 하긴 실비아도 너랑 좀 비슷했지.”

“어머니가요?”

“그래. 나도 당시에는 지금보다 날카로울 때라 제대로 챙겨주지는 못하고, 마주치면 간식이나 하나씩 줬는데, 다람쥐처럼 까먹는 모습이 귀여웠지.”

아리스는 옛 기억을 떠올리는 듯 조금 어둑해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당시의 실비아와 지금의 너랑 눈빛이 비슷해.”

그녀는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내리고, 다시 드래곤 하트를 내밀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래? 빨리 결정해.”

“음….”

라온이 무지갯빛으로 번쩍이는 드래곤 하트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이모 소리 한 번에 드래곤 하트가 손에 들어온다.

실비아에게 단전을 만들어 주는 정도가 아니라, 단번에 마스터 급으로 올려줄 수 있을지도 모르니, 무조건 받아야 했다.

‘다만….’

말이 쉽게 나오질 않아.

지금까지 가족의 호칭으로 부른 건 어머니가 유일하다. 할아버지, 삼촌, 형, 누나 같은 말을 해본 적이 없기에 쉽사리 입이 열리질 않았다.

-빨리 이모 쳐 부르고, 고기나 뒤집어! 이 굼벵이 놈아!

“응?”

라스가 악을 지를 때 아리스가 어이없다는 듯 눈매를 찡그렸다.

“내가 이모인 게 그렇게 싫어?”

“그게 아닙니다.”

라온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사실 어머니 이외에 다른 사람에게 그런 호칭을 부르는 게 처음이라 조금 긴장되어서….”

“아아….”

아리스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그 집안에서 그런 말을 했을 리가 없지.”

“네. 그래서 잘 나오질 않네요.”

“조만간 집에 한 번 가야겠는데….”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서늘한 눈빛으로 붉은 입술을 축였다.

“후….”

라온은 생각에 잠긴 아리스를 보며 낮은 숨을 내쉬었다. 마음을 가라앉힌 후 천천히 입술을 뗐다.

“이, 이모.”

“헉!”

아리스는 이모 소리를 듣자마자, 가슴을 움켜쥔 채 허리를 뒤로 젖혔다.

“이, 이거 좀 위험한데?”

“예?”

“나도 이모 소리를 처음 듣다 보니, 잘 몰랐는데. 이게 좀 쎄네.”

그녀는 요상한 소리를 중얼거리며 손가락을 폈다.

“한 번만 더 해줄래?”

“…이모.”

“크으으!”

아리스가 맥주 한 사발을 들이마신 듯한 탄성을 흘리고서 라온을 품으로 끌어안았다.

“그래! 우리 조카!”

“자, 잠시만….”

“이 이모만 믿어!”

그녀는 술주정하는 것처럼 라온을 품에 넣은 채 한참이나 헤죽거렸다.

“얼굴에, 능력에, 성격까지! 완벽한 조카라는 게 이런 거였구나!”

“윽….”

라온은 끙끙거리며 아리스의 얼굴을 보았다. 부드럽게 내리감은 눈꺼풀을 보자, 어릴 적 자장가를 불러주던 실비아가 떠오른다.

어머니 이외에 처음으로 가족의 호칭으로 부를 사람이 생겼기에 기분이 묘했다.

실비아와는 다른 바다꽃의 청초한 향이 여러 걱정을 지우지 못한 마음을 부드럽게 풀어냈다.

-진짜 탄다! 정말 타고 있느니라! 도둑 계집을 밀어내란 말이다!

라스는 고기를 보며 빽 소리를 질렀다. 녀석의 말대로 아리스의 향이 고기 탄 냄새에 지워지고 있었다.

“저기 이모. 고기가….”

“아!”

아리스가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눈을 뜨고 뒤로 물러섰다.

“미안. 너한테서 그리운 향이 나서 나도 모르게 잠이 들 뻔했어.”

그녀는 미안하다는 듯 두 손을 모은 채 고개를 꾸벅였다.

-끄그그극!

라스의 입에서 허연 거품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저 도둑 계집의 목을 빼기 전에 빨리 다시 구워!

녀석의 몸이 폭풍처럼 세차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내가 구워줄까?”

“아니에요.”

라온이 고개를 저었다. 라스가 발작을 일으킬 게 뻔해서 지금은 혼자 굽는 게 나아 보였다.

“어차피 첫 시도는 망한 거라, 다시 구우면 돼요.”

아리스에게 새로운 고기를 보여주며 미소를 지었다.

“처음부터 여러 방법으로 익힐 생각이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음, 하지만….”

“정말 괜찮아요.”

라온은 미안해하는 아리스에게 다 타버린 팬과 고기를 주고 내보냈다.

그녀는 끝까지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빠르게 문을 닫았다.

-본왕은 오늘의 굴욕을 절대 잊지 않을 것….

‘다시 구워줄 테니까. 좀 참아.’

라온은 으르렁거리는 라스를 밀어내며 아리스가 주고 간 드래곤 하트를 보았다.

영롱한 빛과 깊고 넓게 흐르는 짙은 마나의 향기. 보고만 있어도 단전의 오러가 요동치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걸 정말 주시다니….’

솔직히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기에 당황스러우면서도 기쁨을 숨길 수가 없었다.

‘더 좋은 단전을 만들 수 있겠지.’

엔씨아는 인공단전을 만들기 가장 좋은 재료가 드래곤 하트라고 했었다.

그걸 구하기 힘들어서 씨 서펜트 하트와 드레이크 하트를 합친다고 했는데, 처음부터 원하던 물건을 구했으니 최고의 단전을 만들어 줄 것이다.

라온은 떨리는 손으로 드래곤 하트를 아공간 주머니에 넣었다.

-감상이 끝났으면 빨리 고기나 구워라! 뱃가죽이 찢어질 것 같으니라!

‘그건 배부르다는 뜻인데….’

-닥치고 구워!

‘응….’

라온이 새로운 프라이팬을 꺼내서 드래곤 고기를 올렸다.

이번에는 타지 않도록 화력을 조절하면서 고기를 구웠다. 불꽃에 대한 작은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인지 처음보다는 익는 속도가 빨랐다.

-그렇게 해서 어느 세월에 익겠느냐! 본왕은 지금 당장 먹고 싶으니라!

라스가 빽 소리를 지르며 분노의 기운을 밀어 넣었다. 녀석의 기운이 저절로 손끝에서 피어나며 고기에 스며들고, 불꽃의 화력을 높였다.

‘네가 이러면 인과율인가, 뭔가가….’

-그딴 건 본왕이 감당할 테니까! 고기나 제대로 구워라!

녀석은 신경 쓰지 말라고 외치며 고기를 보고 침을 질질 흘렸다.

‘알겠어.’

라온은 고기가 어느 정도 익기 시작할 때 버터를 넣고, 버터가 녹은 물을 열심히 고기에 부었다.

고기가 바닥의 열기와 버터 물에 천천히 익으며 아까보다 더욱 진한 육향을 풍겼다.

‘냄새가 좋기는 한데, 내가 왜 이러고 있는 건지….’

원래부터 음식에는 그리 욕심이 없었기에 왜 이렇게까지 해서 드래곤 고기를 먹어야 하나 의구심이 들었다.

-오오! 잘하고 있느니라! 조금 더 빨리 손을 움직여!

라스가 처음으로 칭찬을 하면서 등까지 두드렸다.

“응….”

녀석의 조잘거림을 참으며 조리를 계속하자, 드래곤 고기의 빛깔이 잘 익은 소고기처럼 황색으로 물들었다.

-잘했느니라!

라스가 손뼉을 치며 큼지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고기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열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접시로 덮어두어라!

‘바로 안 먹어?’

-이런 무식한 놈!

녀석이 짐승처럼 이를 드러냈다.

-네놈은 레스팅도 모르는 것이냐!

‘레스팅?’

-고기를 구운 이후에는 육즙이 줄줄 나오기 때문에 조금 뜸을 들이는 시간이 필요 하느니라!

라스는 한심하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후….”

라온이 도마 위에 고기를 올리며 입술을 부르르 떨었다. 뒤집어엎고 싶지만, 일단 해주기로 약속했기에 억지로 참았다.

10분 정도가 지났을 때쯤 라스가 다시 등을 두드렸다.

-지금이니라!

라스는 빨리 고기를 먹어보라며 폭풍처럼 손짓을 해댔다.

라온이 나이프와 포크로 드래곤 고기를 썰었다. 라스의 분노가 마나를 녹였기 때문인지 예상과 달리 부드럽게 썰렸다.

-헉헉! 빨리!

라스가 배고픈 강아지처럼 침을 질질 흘리기 시작했다.

‘숨 좀 쉬자.’

라온이 한숨을 내쉬고 고기 한 점을 포크로 찍어서 입 안에 넣었다.

화아아아!

드래곤 고기를 씹자마자, 농축되어있던 육즙이 대해의 파도처럼 번져온다. 입안 전체가 고기에서 흘러나온 육즙으로 가득 찬 것 같았다.

“아….”

강렬한 육향에 정신을 못 차릴 때 고기 자체가 지닌 탱탱한 식감이 먹는 재미까지 전해주었다.

라스의 말대로 드래곤 구이는 별미 중 별미였다.

-아아!

라스가 입을 틀어막은 채 눈물을 글썽거렸다.

-이것이니라! 이것 때문에 본왕이 살아 있는 것이니라!

녀석은 이 맛을 위해 지금까지 살아왔다며 끝없이 입술을 오물거렸다.

-계속 먹어라! 어서!

‘알겠… 음?’

라스가 빨리 먹으라고 외칠 때 갑자기 눈앞으로 메시지가 튀어 올랐다.

[<분노>의 기운이 깃든 음식을 먹었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하?

라스는 고기 맛을 즐기다가 메시지를 보자마자 땅으로 뚝 떨어졌다. 녀석의 뱃살이 두껍게 접혔다.

-이런 미친! 고기를 먹었는데, 왜 능력치가 오르는 것이냐!

라스는 믿을 수가 없다며 눈을 부릅떴다.

-이건 사기잖느냐!

‘사기가 아니야.’

라온이 메시지를 살피며 고개를 저었다.

‘네가 아까 고기랑 불꽃에 네 분노를 밀어 넣었잖아. 그 기운이 고기 안에 녹아내려서 능력치가 오른 것 같은데.’

<식탐>의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닌데, 드래곤 고기를 먹었다고 능력치가 오를 리가 없다.

이건 라스가 빨리 고기를 먹고 싶다며 전해준 기운 때문이었다.

-제기랄! 본왕은 이런 상황은 바라지 않았느니라!

라스는 메시지를 노려보면서 바드득 이를 갈았다.

“고기 먹고 능력치가 오른다니, 이거 좋네.”

라온이 씩 웃으며 잘라놓은 고기를 포크로 찍었다.

-잠깐! 멈추거라!

고기를 먹으려고 할 때 라스가 빠르게 손을 저었다.

-그거 먹으면 네놈의 능력치가 오르잖느냐!

‘그렇겠지.’

-그럼 절대 먹어서는 안 되느니라!

‘이거 식으면 맛없을 텐데? 육즙 빠진다며.’

-어억….

라스는 고기에서 흘러내리는 육즙을 보며 턱을 부르르 떨었다.

-그럼 머, 먹는 게….

‘먹으면 능력치가 오르는데?’

-아아아악!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냐!

녀석은 고기를 먹자는 말도, 먹지 말라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머리를 쥐어뜯었다.

라온이 여유롭게 포크를 흔들고 있을 때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블루 드래곤 사냥에 성공하셨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20포인트 상승합니다.]

[칭호 <드래곤 슬레이어>가 생성됩니다.]

[특성 <설화의 마갑>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시스템이 일을 한 번에 하는 건지, 카이바르를 잡았던 업적에 대한 보상이 지금에서야 전해졌다.

-아….

라스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창백하게 물들었다.

-그냥 죽을란다….

*     *      *

달이 구름 뒤에 숨은 어둑한 밤.

오웬 왕국의 삼왕자가 왕실 치료소에 딸린 재활 훈련장 앞에서 멈춰 섰다.

“아직도 있는 건가?”

그는 내부를 밝히고 있는 선명한 조명을 올려다보며 헛바람을 흘렸다.

“아직도가 아니라, 이제 시작입니다.”

왕실 기사가 삼왕자에게 다가가 고개를 숙였다.

“새벽이 되기 전까지 누구 하나 훈련장을 나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게 정말인가?”

“예. 어의의 말에 의하면 재활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수련을 한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괜찮은 건가? 아직 회복되지 않았을 텐데?”

삼왕자는 광풍대의 상태를 걱정하는 듯 목소리가 높아졌다.

“육체의 상처는 모두 회복되어 문제없다고 합니다. 들어가시겠습니까?”

왕실 기사는 재활 훈련장의 문고리를 잡으며 삼왕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음….”

삼왕자는 고민을 하는 듯 재활 훈련장의 문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방해하지 않는 게 좋겠어. 마르타. 아니, 저들 모두에게는 시간이 필요해 보이는군.”

그는 조금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고서 훈련장을 떠났다.

재활 훈련장 안에 있는 광풍대는 삼왕자가 입구까지 왔었다는 것도 모른 채 검을 내리쳤다.

이번 전쟁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울분을 풀듯이 눈동자에 광기를 두른 채 끝없이 검술을 단련했다.

회복한 후 수련을 시작한 지 그리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았지만, 그들의 검세는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쿠우웅!

구름 속에 모습을 감추고 있던 달이 하늘의 중심에서 기울어지기 시작할 때쯤 버렌이 큼지막하게 발을 굴렀다.

“후욱….”

대지를 울리는 굉음에 광풍대 검사들이 허리를 펴고, 시선을 들어 올렸다.

전력을 다해서 수련했는지 모두의 얼굴을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버렌의 외침에 광풍대 검사들이 처음으로 검을 내렸다.

“이 이상하면 내일 수련에도 영향을 준다. 모두 돌아가서 휴식을 취하도록.”

그는 빨리 돌아가서 쉬라고 말하며 손을 저었다.

“수고하셨습니다!”

광풍대 검사들은 예전처럼 반박하거나, 더 수련하고 싶다고 외치지 않았다.

버렌의 말이 맞다는 것을 알기에 바로 고개를 숙이고 훈련장을 떠났다. 모두 정신적으로 성장해 있었다.

“잘 끊었네. 그런데….”

마르타가 훈련장을 정리하는 버렌에게 다가가 가볍게 턱짓했다.

“너는 애들을 보내고 어딜 가는 거지?”

“뭐?”

“크레인이 너 매일 숙소에 늦게 들어온다고 하던데?”

그녀는 무슨 꿍꿍이를 숨기고 있냐며 눈썹을 찌푸렸다.

“…도서관에 간다.”

“도서관? 거길 왜?”

“전략과 전술에 대해 알아보고 있다.”

버렌이 하늘을 올려보며 낮은 숨을 내뱉었다.

“전략과 전술?”

“이번에 라온 대신 광풍대를 이끌면서 스스로의 부족함을 알았으니까.”

버렌은 무력만 강해져서는 부족하다고 말하며 입술을 가늘게 씹었다.

“그러는 너도 늦게 돌아온다고 하던데, 치료소에 가서 뭘 하는 거지?”

그 역시 마르타의 움직임을 알고 있는 듯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네가 의술을 배우는 건 아닐 테고… 음?”

버렌은 얼굴이 붉어진 마르타를 보며 입을 떡 벌렸다.

“저, 정말 의술을 배우는 거야?”

“그냥 할 수 있는 게 많으면 좋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마르타가 버렌을 노려보며 비명 같은 소리를 질렀다.

“허….”

“허? 내가 의술을 배우면 허 소리가 나오는 거야? 나찰녀는 의술을 배우면 안 돼?”

“아니, 그건 아니고….”

버렌이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놀리는 게 아니라, 놀랐을 뿐이다. 마르타가 광풍대를 위해서 의술을 배울 거라고는 정말 상상도 못 했으니까.

“야!”

마르타는 말을 돌리고 싶은 듯 조용히 바닥을 다지는 루난을 불렀다.

“너도 늦게 들어오던데, 요즘 뭐 하는 거야?”

버렌이 전략 전술을 익히고, 자신이 의술을 배우는데 루난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다른 일을 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요리.”

루난은 왜 묻냐는 듯 뚱하게 대답했다.

“요, 요리?”

“무슨 요리?”

“아이스크림이랑 쿠키.”

그녀는 이른 시간부터 일을 시작하는 왕실 주방의 하인들에게 요리를 배우고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왜 배워?”

“라온이랑 모두에게 해주고 싶어서.”

루난은 아파서 누워 있을 때 모두와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었다며 눈을 깜박였다.

“나 참….”

마르타가 루난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진짜 신기한 녀석이라니까.”

“그건 그렇지.”

버렌이 동의하면 부드럽게 웃었다.

“우리도 그만 가자.”

그는 연한 미소를 유지한 채 마르타와 루난을 데리고 훈련장을 나섰다.

“그럼….”

“그래.”

“응.”

버렌, 마르타, 루난. 세 사람은 훈련장의 문 앞에서 서로에게 인사를 하고서 각자가 가야 할 곳으로 떠났다.

어둠과 침묵이 내려앉은 훈련장 위로 리메르와 셰릴이 모습을 드러냈다.

“무슨 복이냐.”

셰릴이 리메르를 노려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너 같은 놈한테 왜 저런 애들이 붙은 건데!”

“그러게.”

리메르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보다 더 좋은 쪽에 갔어야 했는데.”

그는 조장들이 서 있던 곳을 보며 낮은 숨을 내쉬었다.

“쯧.”

셰릴이 혀를 차면서 리메르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쓸데없는 소리 좀 하지 마!”

“네가 먼저 물어봐 놓고….”

리메르가 어이가 없다는 듯 얻어맞은 뒤통수를 매만지며 훈련장으로 내려섰다.

“오늘도 할 거야?”

셰릴이 리메르의 앞에 서며 눈매를 좁혔다.

“당연히.”

리메르가 고개를 끄덕이며 소리 없이 검을 뽑았다. 항상 여유를 담고 있던 눈동자 위로 거센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내 복수를 저 아이들에게 넘겨줄 수는 없으니까.”

“그런 생각이라면 죽을 각오를 하고 덤벼.”

셰릴이 기막을 일으켜 소리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막으며 쌍검을 뽑았다. 색이 다른 두 자루의 검이 섬뜩한 빛을 일으켰다.

“네 수련이 아니라, 내 수련이라고 생각할 테니까. 나도 무력한 건 짜증 나거든.”

*      *       *

-끄어어엉!

라스는 결국 드래곤 고기를 먹는 것을 선택했다. 능력치는 주고 싶지 않은 질투를 식욕이 이긴 것이다. 물론 울면서 고기를 먹었지만.

라온은 기운이 빠진 라스를 어깨에 걸친 채로 청풍을 나섰다.

자정이 한참 지난 시간임에도 도시는 밝았다. 다른 마을의 사람들까지 왔는지 도시 전체가 시끌시끌했다.

‘축제는 이래야지.’

즐거움과 위로를 함께 하는 축제였기에, 이렇게 밤늦게까지 시끄럽고 어지러운 게 더 잘 어울렸다.

“라온 님!”

라온이 사람들의 인사를 받으며 축제를 구경하고 있을 때 라바윈이 맥주잔을 든 채로 다가왔다.

“안 그래도 청풍으로 가고 있었는데, 잘 되었군요.”

“무슨 일 있으십니까?”

“라온 님을 찾아온 손님이 계십니다.”

라바윈은 마을의 외곽에 있는 주점을 알려주며 그곳으로 가보라 말했다.

라온은 고개를 끄덕이고서 주점으로 향했다. 주점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쿠베러드의 등이 보였고 맞은 편에 로브로 얼굴을 가린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생각보다 빨리 왔구나.”

쿠베러드가 씩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도시 중앙에서 라바윈 님을 만났습니다.”

라온이 쿠베러드에게 고개를 숙이고 안으로 들어가자, 뒤에 있던 사람들이 일어나며 로브의 후드를 벗었다.

‘역시 데닝로즈. 그리고 옆은…음?’

왼쪽에 있는 사람은 보랏빛 머리칼에 안대를 쓴 데닝로즈였다.

그녀의 기척을 느꼈기에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 옆에 있는 사람의 정체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창문 사이로 비치는 달빛과도 같이 우아한 분위기를 머플러처럼 두르고 있는 노파. 암시장주 로젤린이었다.

“암시장주님?”

“오랜만이군요.”

로젤린이 고아한 예법으로 인사를 해왔다.

“여긴 어떻게….”

“제 제자 녀석을 구해주셨으니, 당연히 찾아뵈어서 감사 인사를 드려야지요. 그리고….”

그녀는 입가에 맺힌 미소를 일그러뜨리며 말을 이었다.

“꼭 알려드려야 할 정보가 하나 있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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