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24화
[네놈의 눈은 그 푸른 마왕과 닮았다.]
카이바르가 성인 남성보다도 큼지막한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더이상 그 눈을 보고 싶지 않군.]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자연의 마나가 요동치며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의 마법들이 봄꽃처럼 피어났다.
아름다울 정도의 마나 흐름에 지독한 살의가 깃든다. 하나하나가 즉사 급 마법. 방심했다간 살점 하나 남기지 못할 것이다.
[벌레처럼 밟혀 죽어라!]
카이바르가 비웃음을 흘리며 턱짓을 하자, 술식이 완성된 마법이 쏟아져 내린다. 그야말로 마법의 유성우. 하늘 전체가 놈의 마법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 미친 도마뱀 주제에 왜 주둥이를 놀려. 그냥 싸우자고!”
아리스가 이를 드러내며 쇄도해오는 마법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붉은 칼날 위로 기묘한 비틀림이 일어나며 끝없이 내려오는 마법의 흐름을 갈랐다.
콰과과과과광!
검격과 마법이 격돌하며 허공에서 무수한 폭발이 일어난다. 시꺼먼 마나 폭풍이 치솟고, 바다 전체가 뒤집힐질 것처럼 출렁였다.
-아!
라온이 정면에서 맞부딪치는 아리스와 카이바르를 보며 마른침을 삼킬 때 라스가 탄성을 흘렸다.
-그게 저놈이었구나! 어쩐지 얼굴이 익숙했느니라!
녀석은 이제야 생각이 난 듯 경쾌하게 손뼉을 쳤다.
‘역시 너였군.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라온이 라스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이 식충이 마왕 놈아!’
사고뭉치라는 건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광룡을 만들어 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나비효과가 대체 어디서부터 날아온 건지 모르겠다.
-본왕은 딱히 한 게 없느니라!
라스는 먼저 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며 고개를 저었다.
‘저 미친 도마뱀이 너한테 당했다잖아!’
-본왕을 먼저 건드린 건 도마뱀들이니라! 네놈도 보지 않았더냐. 빤짝이 도마뱀이 나타나자마자 공격해온 것을!
‘음, 그건….’
라스가 성검련주, 백혈교주와 싸우고 있을 때 갑자기 나타난 골드 드래곤은 그 어떠한 대화도 없이 일단 브레스를 내리꽂았다.
그 꼴을 보면 예전에도 비슷한 짓을 했을 가능성이 컸다.
‘무슨 일이 있었는데?’
-꽤 오래전에 흥미로운 분노가 느껴져서 인간계에 강림했었느니라. 안갱잽이 놈을 도와주었을 때보다 전이었지.
라스가 안경잽이라 부르는 사람은 예전에 던전에서 만났던 로엔그린이다. 로엔그린이 멀린과 전쟁을 벌인 게 500년 전쯤이니, 그보다 훨씬 옛날이라는 뜻이었다.
-분노를 가진 인간에게 도움을 주고, 인간계를 잠시 구경한 후 마계로 돌아가려고 할 때 검댕이 도마뱀 한 마리가 나타났느니라.
‘블랙 드래곤이로군.’
-그놈이 다짜고짜 브레스를 쏘기에 조금 패버린 후에 꺼지라고 자비를 베풀었는데 더 미쳐서 달려들더구나. 귀찮아서 그냥 죽여버렸지.
‘그냥 죽였다고….’
라온이 라스를 보며 헛바람을 흘렸다.
‘정말 드래곤을 도마뱀이라고 생각하나?’
라스는 최강의 생물이라는 드래곤을 파리 잡는 것처럼 말했다.
-짜증이 나서 돌아가려는데, 도마뱀 놈이 쏜 헬파이어에 제 몸이 구워지고 있더구나. 냄새가 좋아서 맛을 보았는데, 신기하게 씹는 맛이 좋았지. 제대로 구워 먹어보려고 준비를 할 때 저놈이 나타났느니라.
라스가 손을 들어 계속 마법을 내리치는 카이바르를 가리켰다.
-당시에는 저것보다 훨씬 작았느니라. 브레스를 쓰기에 백은의 오로라로 막고, 뺨 한 대만 쳤는데, 뿔이 부러질 정도였지.
‘뺨에 뿔이 부러져…?’
헛소리 같지만, 얼마 전에 라스의 진짜 무력을 보았기에 믿을 수 밖에 없었다.
-너무 허약해서 어부들이 새끼 물고기를 잡았다가 놓아주듯이 방생했느니라. 살 좀 쪄서 오라고.
‘아….’
-잘 컸구만! 아주 잘 컸어! 놓아준 보람이 있느니라.
녀석은 군침이 돈다는 듯 혀로 입술을 핥았다.
‘음.’
라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듣고 보니까. 딱히 네 잘못은 없네.’
-그렇다니까!
라스는 아무 이유도 없이 브레스를 날린 블랙 드래곤을 바로 죽이지 않고, 한 번의 기회를 주었다.
두 번째로 달려온 카이바르 역시 라스를 죽이기 위해 달려들었지만, 일격에 죽이지 않고, 뿔만 부러뜨린 후에 돌려보냈다.
솔직히 말해서 마왕이 아니라, 성자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문제는 라스가 아니라, 저놈이었어.’
라온이 카이바르를 노려보며 입매를 비틀었다.
‘광룡은 개뿔. 밴댕이였잖아.’
라스에게 얻어맞고 살아남았으면 평생 숨어 살든가 아니면 복수를 준비하든가 해야지. 놈은 아무 죄도 없는 인간에게 화풀이를 하고 있었다.
뒷골목 양아치도 안 할 짓인지라 동정심조차 들지 않았다. 광룡이 아니라, 소인배 도마뱀일 뿐이었다.
‘다만….’
이건 이용할 수 있겠어.
라스의 사정대로라면 그때의 일은 카이바르에게 있어서 굴욕 그 자체일 것이다. 놈의 심리를 뒤흔들 기회였다.
고오오오오오!
라온이 제천검을 들어 올리며 불의 고리를 공명시켰다. 만화공과 글래시아를 동시에 끌어 올리며 아리스의 뒤에서 빠져나갔다.
“라온!”
“저도 돕겠습니다!”
그녀의 만류에 자신에 찬 미소로 답하며 태화보를 밟았다. 출렁이는 파도를 타고 카이바르를 향해 쇄도했다.
우우우우우웅!
라온이 발목을 비틀며 전신에 휘도는 열기를 폭발시켰다. 발목에서부터 끌어 올린 근력을 허벅지 대퇴부와 허리의 최장근으로 이으며 제천검을 휘둘렀다.
[의미 없는 짓이다.]
카이바르가 그 정도는 예측했다는 듯 푸른 비늘 위에 마나의 방패를 둘렀다.
‘이 마나 구조….’
날 무시하고 있군.
라온이 이를 악물며 끝까지 제천검을 뻗어냈다. 강기를 일으키지 않고, 검날 안쪽에 열기를 가득 담았다.
쩌어어어엉!
카이바르의 마나의 방패는 뚫리지 않았다. 하지만 500이 넘어선 근력은 마나의 방패 채로 카이바르의 몸을 후려쳤다.
뻐어어어억!
수백 개의 북이 찢어지는 듯한 굉음이 터지며, 카이바르의 목이 낫처럼 꺾였다.
[크어어어억!]
카이바르가 목을 부들부들 떨며 비명을 터트렸다. 끝도 없이 이어지던 놈의 마법이 뚝 끊어졌다.
라온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카이바르는 강기와 맞부딪치면 방패를 깨뜨려서 충격을 무효로 만드는 웨버 실드를 사용했다.
초월자인 아리스를 상대하고 있으니, 마스터인 나를 무시하는 건 당연한 처사였다.
그래서 놈의 심리를 이용했다. 검기 이하에는 깨지지 않고 밀려나는 웨버 실드의 특성을 이용하여 제천검 내부에 만화공의 열기를 밀어 넣고, 근력을 모조리 끌어내서 물리력만으로 웨버 실드를 후려쳤다.
덕분에 카이바르가 운용한 실드는 깨지지 않았고, 힘을 받은 제천검과 함께 놈의 몸통을 후려칠 수 있었다. 파괴왕의 효과까지 터져서 가진 힘보다 더 큰 위력이 나왔다.
‘지금 몰아쳐야 해.’
라온은 카이바르가 정신을 차리지 못한 틈을 놓치지 않고, 놈의 목을 타고 올라가서 다시 제천검을 휘둘렀다.
우우우웅!
카이바르는 충격을 받은 상태에서도 다시 웨버 실드를 세웠다.
하지만 조금 전의 일이 우연이라고 생각한 듯 방패를 조금 더 두껍게 세울 뿐이었다.
‘당연한 선택이겠지.’
오우거를 맨손으로 찢어 죽일 수 있는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할 테니까.
치이이잉!
라온이 제천검의 칼날에 나선력을 일으키며 적섬삼십육결을 내질렀다.
이번에도 웨버 실드는 깨지지 않았고, 그 충격이 그대로 카이바르에게 전해졌다.
뻐버버버버벅!
적섬삼십육결은 일검에 삼십육방을 찌르는 쾌속의 검술이지만, 속도를 조금 늦추는 대신 나선력을 이용하여 위력을 강화했다.
그 어마어마한 충격에 카이바르의 목이 부러질 것처럼 뒤틀렸다.
[끄어어어어어!]
카이바르가 괴성을 지르며 뒤로 물러난다.
치이잉!
바로 그 순간 모든 마법을 지워버린 아리스가 움직였다. 제자리에서 그어 내린 공간의 참격이 카이바르의 목을 갈랐다.
쩌어어억!
하지만 카이바르 역시 고룡급 드래곤. 고통에 몸부림치는 와중에도 아리스의 공격이 위험하다는 것을 깨닫고 용언을 일으켰다.
[사라져라!]
카이바르의 외침에 놈의 목을 찢으려던 아리스의 검격이 물에 젖은 종이처럼 녹아내렸다.
“그럼 여기가 비지.”
라온이 카이바르의 목을 밟으며 서리연을 그었다. 질주하는 은빛 칼날과 그 뒤를 쫓는 냉기의 송곳이 카이바르의 목을 향해 나아갔다.
[세 번이나 당할 줄 아느냐!]
카이바르는 아리스를 견제하면서 새로운 마나의 방패를 세웠다. 웨버 실드와는 전혀 다른 구조의 술식. 본인에게 다가올 수 없도록 두꺼운 마나를 응집시킨 것 같았다.
‘이 상황에서 술식을 바꾸다니, 대단하네. 하지만….’
예상했어.
라온이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글래시아로 극성의 강기를 일으켰다.
쩌어어엉!
의념을 담은 덕분에 강환에도 밀리지 않는 냉기의 칼날이 카이바르의 실드를 뚫고, 놈의 목에 처박혔다.
푸카아아아악!
카이바르의 목에서 푸른 비늘과 대조되는 붉은 핏물이 쏟아져 나왔다.
[끄어어어어어!]
카이바르가 고개를 숙이며 비명을 질렀다. 너무나도 오랜만에 겪는 고통에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리스 님! 지금 더 쳐야 합니다!”
“알고 있다.”
아리스는 말할 필요도 없다는 듯 허공을 뛰어오르며 검격을 내쳤다. 인간을 초월한 공간의 칼날이 벼락이 되어 강림했다.
[짓눌려라!]
카이바르는 이 상황에서도 본인에게 더 위협이 되는 사람이 아리스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용언을 집중하여 아리스가 펼쳐낸 공간검을 모조리 꺾어버렸다.
“드래곤 치고는 멍청하네.”
라온이 카이바르의 비늘을 박차고 더욱 위로 올라갔다. 아예 목을 갈라버릴 기세로 적섬을 일으켰다.
제천검의 칼날 앞으로 시뻘겋게 돋아난 열선이 카이바르의 목을 향해 쇄도했다.
놈은 아리스를 견제하느라, 이쪽에 용언을 쓸 수 없다. 실드나 배리어 혹은 공격 마법을 쓰는 게 최선이었다.
우우우우웅!
예상대로 적섬이 꽂히는 곳에 반투명한 막이 생겨났다. 두께는 얇았지만, 마나의 밀도가 이전과는 격이 달랐다. 마나와 집중력을 소모해도 피해를 줄이려는 것 같았다.
캬아아아앙!
지금 사용할 수 있는 검술 중 가장 예리한 적섬이 카이바르의 실드를 깨지 못하고 사그라들었다. 역시나 드래곤다운 마나 운용이었다.
‘하지만….’
준비는 너만 한 게 아니야.
푸른 질풍을 두른 왼손으로 진혼검을 뽑았다. 청우의 묘리를 일으키며 금이 간 마나 실드를 내리찍었다.
쩌어어어억!
청우의 울림에 실드를 이루던 마나의 흐름이 뒤틀리며 자그마한 틈이 드러났다.
그곳으로 열기를 두른 진혼검을 박아넣고 아래로 그어 내렸다.
푸카아아아악!
카이바르의 목에 사선으로 검흔이 돋아나며 살벌한 양의 피를 뿌렸다.
[크아아아악!]
광룡의 시선이 굽어진다. 놈이 공격 마법을 쏘아내려 할 때 아리스의 공간검이 카이바르의 용언을 뚫고, 놈의 얼굴에 처박혔다.
쩌어어억!
카이바르의 비늘이 뜯겨나가고, 놈의 콧잔등에 길쭉한 상흔이 돋아났다.
[크으으으!]
카이바르가 고통에 질린 듯 몸체가 뒤로 물러났다.
“…….”
라온과 아리스는 서로 눈을 마주쳤다. 대화는 필요 없었다. 여기서 전투를 끝날 생각으로 두 사람이 전력을 끌어낼 때 카이바르가 아가리를 쩍 벌렸다.
[꺼져라!]
지금까지 중 가장 짙은 의념이 들어간 용언. 라온이 갈고리에 채인 듯 튕겨 나가고, 아리스가 열 걸음 이상 뒤로 밀려났다.
우우우웅!
카이바르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이동마법을 발동시켜서 한참 뒤로 물러섰다.
[크으으으으!]
놈이 바다에 잠겨 있던 상체를 들어 올렸다. 바다가 갈라지는 듯한 괴이한 현상과 함께 대륙을 감싸고도 남을 것 같은 푸른 날개가 수평선을 따라 펼쳐졌다.
퍼어어어어엉!
무시무시한 파공성과 함께 카이바르가 허공으로 날아오른다.
바다 위로 튀어나왔던 목은 빙산의 일각이었다. 제 몸체를 드러낸 광룡의 위용은 이 전세를 다시 역전시킬 수 있을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죽인다! 죽여버리겠어!]
카이바르가 살기 짙은 용언을 뱉으며 주둥이를 벌렸다.
무저갱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목구멍에서 시퍼런 냉기가 차오른다. 그저 준비단계일 뿐인데 대기가 진동하고, 허공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저건….’
라온이 카이바르의 입안에서 번쩍이는 빛을 보며 눈매를 찡그렸다.
‘브레스인가?’
브레스인 것처럼 보이지만, 바다 밑에서 쏠 때와는 마나의 규모 자체가 달랐다.
이 바다 전체가 놈의 숨결에 얼어붙을 듯 우악스러운 파동이 전해져왔다.
치이이잉!
아리스가 공간검을 찔러넣었지만, 카이바르 주변에서 뿜어지는 마나의 압력에 검이 제대로 들어가지 못하고 튕겨 나왔다.
“이건 힘들겠군.”
아리스가 붉은 칼날을 도로 검집에 넣었다.
“예?”
“드래곤이 하루에 쓸 수 있는 브레스는 세 번이야. 저놈은 남은 두 번을. 아니, 한동안 브레스를 쓸 수 없게 되어도 좋다고 생각할 정도로 무리를 하며 마나를 응집시키고 있어.”
그녀는 저걸 평범한 공간검으로는 벨 수 없다며 짧게 혀를 찼다.
“저걸 막지 못하면 너와 나는 물론이고, 뒤에 있는 녀석들까지 전멸이다.”
“그럼….”
“검계를 열겠어.”
아리스가 왼발을 앞으로 내뻗고, 오른쪽 어깨를 몸의 중심에 두며 검병에 손을 얹었다. 발검술의 자세. 이전에 보았던 검계현신의 준비였다.
“카이바르의 브레스는 내가 확실하게 지워줄게. 대신 그 이후는 네게 맡기마.”
그녀의 검계현신은 단발형. 가진 모든 기운을 일격에 쏟아붓기에 사용하고 나면 잠시 몸을 움직이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믿겠다. 라온 지그하르트.”
“알겠습니다.”
라온이 마른침을 삼키며 아리스의 뒤편으로 물러섰다. 선택권도, 시간도 없었다. 아리스가 말한 방법이 유일한 승리의 길이었다.
쿠구구구구!
카이바르의 입에서 명멸하던 냉기가 시퍼런 광휘와 함께 뻗어 나온다.
물결치는 바다가 통째로 얼어붙고, 천공이 새하얗게 일그러진다. 심장을 터트릴 듯한 거대한 마나의 파동. 영혼조차 얼려버릴 냉기의 숨결이었다.
[죽어라! 벌레들아!]
광룡은 브레스에 용언까지 부어서 그 위력을 더했다. 숨 한 번 내쉬기도 전에 천해를 얼어붙게 만드는 냉기가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살아 있는 존재라면 막을 수 없는 지옥의 손길이었다.
“라온. 이 싸움이 끝나고도 살아남으면 앞으로 이모라고 불러라.”
아리스가 시원스레 웃으며 검을 뽑았다.
“검계현신.”
달빛에 스며든 단아한 검의 여신이 된 듯 그녀의 검이 청초한 투로를 그렸다.
“멸절.”
그 우아한 자태와 달리 아리스의 검에서 피어나는 건 섬뜩한 살의다.
눈앞에 존재하는 것을 모조리 베어버리겠다는 오연한 의념이 하늘을 향해 타올랐다.
쩌저저저저저적!
세상을 지워버릴 듯 밀려들던 브레스가 양손으로 뜯어내듯이 갈라진다.
얼어붙은 하늘과 바다가 뒤틀린 수평선처럼 찢어지고, 카이바르의 가슴에서 뚝을 무너뜨린 강물처럼 붉은 핏물이 뿜어져 나왔다.
하늘에 오른 무신이 천벌을 내리친 듯한 장엄한 광경이었다.
쿠구구구구구!
용언까지 얹었던 카이바르의 브레스가 지워지고, 무방비가 된 놈의 육체가 드러났다.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일격. 생명을 건 초월자의 무력은 상상을 뛰어넘고 있었다.
“라온….”
아리스가 검과 함께 무릎을 꿇는다. 가진 힘을 모조리 쏟아부은 게 분명했다.
“부탁한다.”
라온이 갈라진 공간을 짓누르며 벼락처럼 튀어 나갔다.
태화이보를 전력으로 운용하고 있음에도 육체가 느리게 느껴진다.
카이바르가 정신을 차리기 전에 다가가야 하기에 조급함이 밀려왔다.
‘빠르게. 더 빠르게!’
의념. 아니, 절실한 마음으로 육체와 오러를 움직였다. 기분일지는 모르겠지만, 몸이 더 빠르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터어엉!
간신히 카이바르의 앞에 도착했지만, 그 짧은 순간에 놈의 눈동자에 빛이 돌아왔다. 강인한 정신력. 괜히 에이션트 급 드래곤이 아니었다.
[꺼지거….]
놈이 지친 목으로 용언을 일으키고, 9서클 급 마법을 발동시켰다.
‘저걸 맞았다간 끝이야.’
마법은 억지로 벤다고 쳐도 용언을 버틸 방도는 없다. 여기서 아껴두었던 무기를 풀어야 했다.
우우우우웅!
라온이 제천검 위로 백은의 오로라를 일으켰다. 공간마저 얼어붙게 만드는 라스의 냉기가 머리를 향해 떨어진 마법을 얼려버렸다.
[그, 그 능력은!]
“내가 푸른 마왕이다!”
당황한 카이바르의 목에 제천검과 진혼검을 박아넣으며 뇌까렸다.
[크으윽!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맞아. 뻥이야.”
라온은 두려움에 손이 어지러워진 카이바르를 비웃으며 두 검에 응집되어 있던 열기와 냉기를 단숨에 폭발시켰다.
쿠와아아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