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519화 (518/653)
  • 제519화

    라온은 허공에서 버둥거리는 라스를 밀어내고, 첫 번째로 떠오른 메시지를 확인했다.

    [인간의 격을 벗어나 하늘에 닿은 자를 처치했습니다.]

    [지금의 경지로 이룰 수 없는 위대한 업적을 이뤄냈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30포인트 상승합니다.]

    모든 능력치 30포인트. 단일 보상으로 오르는 능력치 중에서 역대급 수치였다.

    -사, 삼십….

    라스도 놀랐는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고오오오!

    전신에서 새로운 활력이 차오른다. 근육과 마나회로가 극한의 탄력을 지닌 듯 육체 내부에서 거센 울림이 번져가는 느낌이었다.

    라스는 능력치가 오를수록 그 효과를 체감하기 힘들다고 했었는데, 이 정로 수치라면 큰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었다.

    라온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강철조차 찌그러뜨릴 법한 악력을 느낀 후 두 번째 메시지를 살폈다.

    [새로운 특성 <설화 흡결>이 생성됩니다.]

    [새로운 특성 <설화 척창>이 생성됩니다.]

    새로운 특성 두 개를 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설화라….’

    설화라는 이름이 붙은 걸 보면 라스의 기술이라는 뜻인데, 그 뒤에 적힌 단어로는 정확한 의미를 알 수가 없었다.

    -이, 이걸 줘? 이걸 왜 줘!

    라스가 메시지를 노려보며 본인의 머리털을 쥐어뜯었다.

    -이건 좀 심하잖느냐!

    ‘이게 뭔데?’

    -마, 말 안 해줄 것이니라!

    녀석은 절대 알려주지 않을 거라며 입을 꾹 다물었다.

    ‘흐음….’

    라온이 다시 메시지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아무거나 주지는 않을 텐데.’

    시스템은 항상 해왔던 업적과 행동에 맞는 보상을 내어주었다.

    즉, 흡결과 척창은 라스가 강림했을 때 보여주었던 기술일 가능성이 높았다.

    “척과 흡…. 아!”

    라온이 탄성을 흘리며 크게 손벽을 쳤다.

    ‘이거 그거지? 네가 냉기로 상대를 끌어당기고 밀어냈던 거!’

    라스는 냉기를 이용하여 성검련주의 흑검을 밀어내고, 백혈교주를 손아귀로 끌어당겼다.

    지금 얻은 특성들은 그때 보여주었던 능력이 분명했다.

    -아, 아닌데?

    라스의 눈동자에 구멍이 났는지 푸른 기운이 줄줄 샜다. 말은 아니라고 하지만, 녀석은 흔들리는 눈빛과 목소리로 사실이라는 걸 말해주었다.

    ‘그거 마음에 들었는데, 딱 좋네.’

    -이 빌어먹을 시스템! 대체 어디까지 퍼주는 것이냐! 자제라는 걸 안 배웠냐고!

    라스는 악을 지르며 시스템에게 욕을 퍼부었다.

    ‘다음으로.’

    이번에는 새롭게 얻은 칭호를 확인했다.

    [새로운 칭호 <무색의 치유사>가 생성됩니다.]

    <무색의 치유사>

    스스로의 상처보다 동료를 먼저 생각하는 무인에게 주어지는 칭호.

    능력 : 어둠에서 피어난 신성으로 타인을 치유할 때 그 효과가 배가 된다.

    내용은 간단하지만, 능력은 간단하지 않았다.

    앞으로 <어둠에서 피어난 신성>으로 누군가를 치유할 때 그 효과가 2배가 된다는 것이니, 엄청난 효과였다.

    ‘다행이야.’

    오르고스의 습격과 비슷한 일이 생겼을 때 광풍대 녀석들을 더 빠르고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는 뜻이었기에 마음이 넉넉해진 기분이었다.

    -흠….

    라스도 본인의 수하들을 위한 능력이라고 생각했는지 이번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참으로 일관성 있는 녀석이었다.

    라온은 마지막으로 상승한 특성들을 보았다.

    [특성 <분노의 마안>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특성 <나선력>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특성 <어둠에서 피어난 신성>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특성 <사기 저항력>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특성 <설화의 마갑>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예상했던 대로 이번 전투에서 나와 라스가 사용했던 능력들의 등급이 상승했다. 물론 다섯 개나 오를 줄은 몰랐지만.

    -정말 미쳐버리겠느니라!

    라스가 특성 등급 상승 메시지를 보며 입술을 쭉 잡아당겼다.

    -많은 걸 떠나서 이거 너무 이상하지 않느냐!

    ‘뭐가?’

    -본왕이 다 잡고, 본왕이 다 살렸는데, 왜 보상은 네놈이 다 처먹냐고!

    녀석은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냐며 둥그스름한 어깨를 떨었다.

    ‘이건 내 생각인데….’

    라온이 손가락을 들어서 본인의 몸을 가리켰다.

    ‘내 격을 바쳐서 내 영혼과 육체 사이에 널 강림시켰잖아.’

    -그, 그런데?

    ‘네가 적들을 죽이고, 광풍대를 살리기는 했지만, 결국 그걸 이룬 건 내 손과 발이었으니까 나한테 온 거 아닐까?’

    생각이라고 말했지만, 무조건이다. 그게 아니고선 이 정도 보상이 오는 게 말이 되질 않는다.

    -끄으으윽….

    라스는 사실을 듣자마자, 홍당무처럼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결정했느니라!

    ‘뭘?’

    -본왕이 마계로 가자마자, 그 망할 시스템을 때려 부술 것이니라! 다시는 이딴 짓을 할 수 없게 아예 박살을 내놓을 것이니라!

    ‘그러던가.’

    -진짜 할 것이니라! 네놈에게 간 본왕의 능력치도 모조리 빼앗아 올 것이니라!

    ‘네. 그러세요.’

    라온이 손을 휘휘 저었다. 라스가 마계로 돌아갈 일 자체가 없어 보였기 때문에 신경 쓸 필요 없었다.

    ‘큰 보상을 얻은 건 좋은데….’

    영혼의 격이 오르지는 않는군.

    시스템은 라스가 죽인 오르고스를 내가 죽인 것으로 받아들였지만, 영혼의 격은 상승하지 않았다. 자신의 손과 능력으로 죽여야 인정이 되는 것 같았다.

    -거기서 영혼의 격까지 따져? 이 양심 없는 놈이!

    ‘그냥 생각만 해본 거야.’

    -끄윽! 분해! 너무 분하다 보니 배에서 천둥소리가 나느니라!

    ‘그건 배가 고파서 그러는 거고….’

    -그럼 배라도 채워주던가!

    ‘음….’

    라온은 발버둥 치는 라스를 보며 아공간 주머니를 꺼냈다.

    “아!”

    주머니에 확인한 후 미소를 지었다.

    ‘먹을 게 하나 있기는 한데….’

    -정말이냐? 육포라고 하면 죽일 것이니라!

    ‘육포는 아니야.’

    라온이 어색하게 웃으며 조금 태운 듯한 갈색 빵을 꺼냈다.

    ‘나딘빵이 있….’

    -죽어!

    *     *      *

    “후….”

    버렌이 흔들의자에 누워 있는 리메르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저희 언제까지 여기에 있어야 합니까?”

    “다 회복할 때까지.”

    리메르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은 채 손가락만 까딱였다.

    “우리 다 회복했는데요?”

    마르타는 리메르가 앉아 있는 의자를 뒤로 홱 젖히며 인상을 찌푸렸다.

    “아직 아니야.”

    리메르가 가늘게 턱을 저었다.

    “육체의 상처는 거의 다 나았지만, 정신적으로 충격이 컸잖아. 죽음까지 각오했으니, 이럴 때는 푹 쉬어야 해.”

    그는 대답해주고 나서 다시 의자에 축 늘어졌다. 콩벌레 같은 모양새였다.

    “게으름뱅이.”

    루난이 그런 리메르를 보며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는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자격 없어.”

    “내가 대주님보다는 훨씬 나아.”

    그녀는 작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홱 돌렸다.

    “너무 조급해하지 마. 솔직히 말해서 지금 너희들한테 무슨 상황이 일어났는지도 모르잖아.”

    리메르가 짧게 탄식을 흘리고서 시선을 들었다.

    “정말 멀린이 고쳤는지, 지나가던 이름 없는 성자가 치료했는지 알 수가 없으니까. 지금은 조심할 때라고.”

    그가 손가락을 들어서 버렌의 눈을 가리켰다.

    “너 눈은 괜찮아? 막 귀신 같은 거 안 보이냐?”

    “음….”

    버렌은 평온한 표정으로 파란색으로 재생된 안구를 매만졌다.

    “원래 눈보다 더 잘 보입니다. 조금 피곤한 것 같기는 한데….”

    “아무리 신성력이라고 해도 터진 눈이 재생되는 건 말이 안 돼. 그것도 다른 색으로. 지금 너희들은 쉬면서 몸 상태를 확인할 때야.”

    리메르는 지금은 무언가를 할 때가 아니라며 손을 저었다.

    “그건 그런데….”

    버렌이 입맛을 쩝 다셨다.

    “라온이 어떻게 됐는지 모르니까. 답답해서….”

    “대체 그 녀석 어디서 뭘 하는 거죠? 정말 살아 있긴 한 거예요?”

    마르타도 라온에 대해 걱정이 되는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라온한테 자랑해야 하는데….”

    루난이 짧게 한숨을 내쉬며 무릎을 감싸 쥐었다.

    “괜찮아.”

    리메르가 광풍대의 조장들을 보며 옅게 웃었다.

    “그 녀석이라면 너희보다 멀쩡해진 모습으로 돌아올 테니까.”

    “확실해요?”

    마르타가 눈매를 매섭게 좁혔다.

    “그, 그래.”

    리메르는 조금 자신 없는 음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음.”

    루난이 리메르의 확답을 듣고, 벌떡 일어났다.

    “어디 가려고?”

    “라온이 돌아왔을 때 자랑하려면 이러고 있을 틈이 없어.”

    그녀는 수련을 하겠다고 말하며 거침없이 문으로 향했다.

    “하긴.”

    버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녀석이라면 오자마자, 마스터가 된 건 신경도 안 쓰고, 수련 안 했냐면서 타박을 할 거야.”

    그도 피식 웃으며 루난의 뒤를 따라갔다.

    “거짓말이면 가만 안 있을 거예요.”

    “그래. 그래.”

    “후….”

    마르타는 짧게 한숨을 내쉬고서 문 쪽으로 향했다.

    달칵!

    루난이 문을 열자마자, 벽에 등을 기대고 선 광풍대 검사들이 보였다.

    “저희도 가겠습니다.”

    도리안과 검사들은 함께 수련하겠다며 조장들이 지나갈 수 있도록 길을 열었다.

    광풍대는 누구 하나 머뭇거리지 않고, 치료소에 딸린 재활 훈련장으로 향했다.

    “후우….”

    리메르는 한숨을 내쉬며 흔들의자에 등을 푹 기댔다. 삐걱거리는 의자 소리가 왠지 불안하게 울렸다.

    “그 왈가닥이 데리고 갔는데….”

    정말 괜찮으려나?

    *     *      *

    라온이 갑판의 중심에 서서 고개를 들어 올렸다.

    아리스가 누워 있는 그물침대가 바람에 잘게 흔들렸다.

    “아리스 님.”

    “왜?”

    그물침대 위에서 자다가 일어난 듯한 아리스의 노곤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저 정말 이러고 있어도 되는 겁니까? 작은 거라도 돕고 싶은데….”

    라바윈과 쿠베러드를 비롯한 모든 선원들이 전쟁 준비를 하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데, 혼자 명상 수련만 하려니 조금 눈치가 보였다.

    “저들은 저들의 할 일이 있고, 너는 네 할 일이 있잖아. 심상에서 넓어지는 구멍이나 확실하게 막아.”

    아리스는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싸울 준비나 잘하라며 손을 휘휘 저었다.

    “그건 막았습니다.”

    라온이 그물침대를 올려다보며 담담하게 대답했다.

    “엥?”

    아리스가 즉시 상체를 들어 올려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잠시 라온의 머리를 보다가 입을 동그랗게 벌렸다.

    “진짜네? 언제부터 멈춘 건데?”

    “어제저녁입니다.”

    꾸준한 명상과 불의 고리의 운용 덕분에 구멍이 넓어지는 현상은 완전히 멈췄다.

    이제 저 시꺼먼 구멍을 메우기만 하면 본래의 무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너도 참 신기한 놈이다.”

    아리스는 이해할 수가 없다는 듯 헛바람을 흘렸다.

    “아버지가 널 왜 그렇게 찾는지 이해가 돼.”

    “예?”

    “아니, 됐다. 그럼 그냥 쉬고 있어.”

    그녀는 말을 끊어내고서 다시 침대에 누웠다.

    “아니, 쉬는 게 불편하다고 말씀 드리는 건데….”

    “얻어맞고 쉬는 거보다는 낫지 않을까?”

    아리스가 누운 채로 주먹을 들어 올렸다. 손아귀에서 뿌득 소리가 울렸다.

    “후우….”

    라온이 한숨을 내쉬고서 갑판의 끝으로 걸어갔다.

    ‘정말 특이한 분이야.’

    -쩝….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을 때 라스가 입맛을 크게 다셨다.

    -식량이 저리 많은데, 손조차 대지 못하다니 열이 뻗치느니라.

    녀석은 제발 낚시라도 해서 음식을 달라며 두 손을 모았다.

    -이제 정말 미칠 지경이니라!

    ‘곧 도시에 도착한다니까 좀 참아.’

    -정말이냐?

    ‘그래. 정오쯤 도착한다고 했어.’

    라온이 하늘을 올려보았다. 태양의 위치를 볼 때 두 시간 정도만 달리며 도시에 도착할 것 같았다.

    ‘도시에 가는 대로 네가 먹고 싶은 거 다 먹어줄게.’

    -이번에는 네놈을 믿고 싶다만, 매번 방해가 들어오니….

    ‘이번에는 그럴 일이 없지. 해안 도시 아이카르는 꽤 큰 곳이야. 해산물 전문 식당이 널려 있다고.’

    -음, 그렇다면야….

    라스는 먹고 싶은 해산물을 떠올리는지 눈을 감은 채 히죽거렸다.

    라온은 그런 라스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그렇게 마왕을 위로하며 두 시간 넘게 항해를 계속하고 있을 때였다.

    -끄으으윽!

    라스가 먼 곳을 바라보며 빽 비명을 질렀다.

    -이럴 줄 알았느니라! 역시 되는 일이 없어!

    ‘뭐?’

    울분이 담긴 라스의 외침에 고개를 갸웃거릴 때 아리스가 그물침대 위에서 뛰어내렸다.

    그녀의 눈빛은 카이바르를 입에 담을 때처럼 서늘했다.

    “라바윈, 라온.”

    아리스의 부름에 그녀의 앞으로 달려갔다.

    “무슨 일이십니까.”

    선장실에 있던 라바윈도 어느새 튀어나와서 아리스 옆에 붙어 있었다.

    “아이카르가 습격당하고 있다.”

    아르스가 동쪽 해안을 바라보며 입술을 씹었다.

    -맞느니라! 저 멀리 있는 도시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느니라!

    라스 역시 아리스의 말이 맞다며 눈매를 찌푸렸다.

    20분 정도 더 나아가자, 회색 안개에 둘러싸인 거대한 도시가 보였다. 항

    구를 지키는 벽은 반파되어 있었고, 그 안쪽으로 해양 몬스터들이 끝없이 들어가고 있었다.

    내부를 살펴보고 싶었지만, 안개 때문에 제대로 보이는 게 없었다.

    다만 허공으로 안개만이 아니라, 검은 연기까지 타오르는 것을 보면 꽤 심각한 상태 같았다.

    “마법으로 벽과 방어체계를 부수고, 해무족과 몬스터들을 보내는 더러운 방식. 카이바르야.”

    아리스가 이를 바득 갈며 범선의 끝에 섰다.

    “라바윈은 전속력으로 배를 몰고 오고, 라온은 날 따라와라.”

    그녀는 그 말을 하자마자, 갑판을 박차고 허공으로 올라섰다.

    “예!”

    라바윈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상갑판으로 올라갔다.

    “가자.”

    아리스는 바다를 디디지 않고, 허공을 땅처럼 밟으며 연기와 안개가 타오르는 도시로 내달렸다.

    터어엉!

    라온은 아리스를 따라 배에서 뛰어내렸다. 바다는 강물을 밟았을 때보다 크게 출렁였지만, 균형을 잡기 어렵지는 않았다.

    가장 빠른 태화이보를 운용했음에도 아리스를 따라잡기는 쉽지 않았다. 그녀가 한참 먼저 반파된 벽을 넘어서 도시로 들어갔다.

    “음….”

    라온은 뒤늦게 안개를 헤치고 들어가자마자, 신음을 흘렸다.

    마법으로 벽만 뭉갠 게 아닌지 도시의 방어체계가 완전히 박살이 나 있었다. 이곳저곳에 강자로 보이는 무인과 마법사의 시체가 가득했다.

    살아남은 이들 역시 수많은 몬스터들을 상대하느라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고, 민간인들은 보호받지 못한 채 죽어가고 있었다.

    “뭘 해야 할지는 알지?”

    아리스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알아서 움직여!”

    그녀는 지시 아닌 지시를 내리고서 도시의 중심으로 나아갔다.

    ‘난 가까운 곳부터.’

    라온은 아리스를 바라보지 않고 비명이 들려온 우측으로 이동했다.

    뭉개진 건물 뒤. 상어의 머리통에 두더지의 손톱을 가진 수속성 몬스터 샤크몰이 노부부를 향해 이빨을 들이밀고 있었다.

    “이, 이놈!

    노인이 나무 지팡이를 휘둘렀지만, 샤크몰은 비웃음을 흘리며 노인을 향해 손톱을 내뻗었다.

    터엉!

    라온이 거세게 바닥을 밀어냈다.

    ‘멀어!’

    도착이 너무 늦었고, 큰 기운을 운용하면 건물 자체가 넘어갈 가능성도 있었다. 이대로라면 막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면….’

    이전이라면 죽게 놔둘 수밖에 없지만, 지금은 구할 방법이 있었다. 설화 흡결. 라스에게 얻었던 새로운 능력을 운용했다.

    고오오오오!

    상단전이 자극된 듯 뜨겁게 달아오른다. 글래시아의 냉기와 함께 돋아난 무색의 기파가 샤크몰을 이쪽으로 끌어당겼다. 바람 같은 게 아닌, 상단전과 오러의 기묘한 조화였다.

    크르륵?

    샤크몰이 당황한 듯 신음을 흘렸지만 놈은 흡결을 막아낼 수단이 없었다.

    촤아아악!

    라온은 단숨에 건물 사이로 파고들어 샤크몰의 목을 갈랐다.

    “크륵….”

    샤크몰은 본인이 무엇을 당했는지도 모른 채 뒤로 넘어갔다. 육중한 체구가 쓰러지고, 바닥에서 회색 연기가 치솟았다.

    -아니….

    라스가 목이 날아간 샤크몰을 보며 입을 떡 벌렸다.

    -시, 실전에서 바로 쓴다고?

    녀석은 흡결의 능력을 바로 쓴 게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멍하니 깜박였다.

    ‘네가 한 걸 봤잖아.’

    라스가 초월자들을 상대로 흡결과 척창을 사용한 모습을 보았으니, 이 정도야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

    -이 망할….

    라스는 분하다는 듯 이를 갈았다.

    “가, 감사합니다.”

    “으, 고마워요….”

    노부부는 주저앉은 채 감사의 인사를 전해왔다.

    “항구 쪽으로 가세요. 곧 배가 올 겁니다.”

    라온은 노부부에게 생로를 알려주고서 다시 비명이 울리는 장소로 달렸다.

    쿠구구구구!

    원형 대피소에 거대 가오리형 몬스터 만타쿤이 날아들고 있었다. 두꺼운 머리로 건물을 들이받는데, 대지에 진동이 일어날 정도였다.

    뿌드드득!

    결국 만타쿤의 돌진을 이기지 못한 대피소에 구멍이 뚫렸다. 놈의 등에 타고 있던 해양 몬스터들이 안으로 몸을 던질 준비를 했다.

    우우우웅!

    라온이 대지를 박차며 척창을 운용했다. 상단전이 파도처럼 출렁이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손을 뻗었다. 손아귀에서 솟구친 무색의 기운에 대피소로 파고들려던 몬스터들이 밀려 나가 아무것도 없는 땅으로 추락했다.

    우우우웅!

    태화보를 운용하며 적섬을 일으켰다. 제천검의 칼날 위로 타오른 시뻘건 열선이 건물보다도 두터운 만타쿤의 몸체를 반으로 갈랐다.

    쩌어어억!

    예리한 불꽃의 칼날은 만타쿤을 베고도 피가 모자란 듯 바닥에 떨어진 해양 몬스터마저 찢어버렸다.

    “아아….”

    “사, 살았어….”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대피소에 있던 사람들은 뻥 뚫린 구멍을 올려보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조금만 기다리시면 구조대가 올 겁니다.”

    라온은 대피소의 구멍을 글래시아의 냉기로 막은 뒤 북쪽으로 움직였다. 지금 그곳에서 가장 큰 기운이 움직이고 있었다.

    건물들을 가로질러서 올라가니, 피부가 잿가루처럼 회색을 띠고, 하늘색 로브를 입은 남자가 있었다.

    ‘카이바르가 부린다던 해무족인가.’

    잿빛 피부와 정강이와 팔뚝, 등에 돋아난 지느러미, 그리고 안개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모습을 보니 해무족이 분명했다.

    우우우웅!

    해무족은 회색 안개를 자유자재로 조종하며 무인들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여섯 명의 무인들이 합공을 했지만, 해무족은 안개로 육신을 보호하는 동시에 무인들의 급소를 찔렀다.

    ‘저놈들이 이 도시를 가두는 안개를 만들었군.’

    라온이 호흡을 가라앉히며 안개를 파고들었다. 뒤로 젖혀둔 제천검을 내지르려 할 때 해무족의 시선이 이쪽을 향했다.

    “…….”

    놈은 당황하지 않고, 안개를 응집시켜 방패를 만들고, 우측 수도로 공격을 해올 채비를 마쳤다.

    치이이잉!

    라온이 안개를 파고 들어가 광아검을 내쳤다. 맹수의 손톱이 대해처럼 물결치던 안개의 틈을 비집어 열었다.

    “큭!”

    해무족이 당황하며 물러났지만 소용없는 일이다. 미친 야수의 이빨은 한 번 물으면 놓치질 않으니까.

    쩌어어억!

    광아검의 삼식이 연달아 이어지며, 해무족이 놀란 눈빛 그대로 목이 떨어졌다.

    “후….”

    라온은 검을 내리고, 짧게 숨을 내쉬었다.

    “어어….”

    “해, 해무족을 이렇게 쉽게?”

    “고작 네 합 만에….”

    “대체 누구….”

    해무족을 상대하던 무인들은 놀람을 감추지 못한 채 입술을 떨었다.

    “곧 해적왕이 올 겁니다. 물러나 계세요.”

    라온은 무인들에게 항구로 움직이라고 말한 후 몬스터와 해무족의 기척이 강하게 느껴지는 방향으로 달렸다.

    전력으로 나아갈 때 갈매기 한 마리가 옆으로 날아들었다. 해안 도시이니 갈매기가 있는 건 당연하지만, 이런 난리통에 인간에게 붙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설마….”

    마른침을 삼키며 눈매를 좁힐 때 갈매기의 부리가 달싹였다.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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