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517화 (516/653)

제517화

“그 아리스 지그하르트?”

아리스 지그하르트가 라온을 보며 사납게 턱짓했다.

“나에 대해 무슨 말을 들었길래 그 아리스 지그하르트라는 말이 나오는 거지?”

그녀가 미간을 찡그리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뒷골목 양아치가 코 묻은 아이의 돈을 뺏을 때나 지을 법한 표정이었다.

“음….”

라온은 그런 아리스의 얼굴을 보며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어머니의 언니가 맞긴 하네.’

이목구비의 조화가 비슷해.

아리스의 이목구비가 실비아보다 더 크고 시원시원했지만, 얼굴 자체의 분위기는 비슷했다.

나이대도 서른 전후로 보였기에 피부가 그을리지만 않았다며 훨씬 더 닮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이, 대답해 보시지.”

아리스가 코앞까지 다가와 손가락을 까딱였다. 상스러운 어투만 보면 협박을 하는 듯했다.

“그 망할 가문에서 나에 대해 무슨 소리를 들은 건데.”

“제가 태어난 이후로 한 번도 뵙질 못해서 실제 존재하는 사람인가 싶었을 뿐입니다.”

“정말이야? 다른 놈들이 한 말은 없고?”

“정말입니다. 가끔 대단한 분이셨다는 소리만 들었습니다.”

라온은 잔잔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제 놈들이 뒤지고 싶지 않으면 나에 대해 입을 놀렸을 리가 없지.”

아리스 지그하르트가 경쾌해 보이는 웃음을 흘리고서 손을 탁탁 털었다.

‘자유분방하군.’

시원시원한 건 얼굴만이 아니었는지, 지그하르트 소속인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쾌활한 성격이었다.

-어엉?

라스가 아리스를 보며 턱을 긁적였다.

-얘가 엄마의 언니라고?

‘너희 엄마 아니라고.’

-확실히 기질 자체가 비슷하구나.

녀석은 반박을 무시하고, 아리스의 얼굴을 요리조리 살폈다.

-근데 얘는 왜 여기에 있는 것이냐?

‘나도 모르지.’

라온은 고개를 가늘게 젓고서 다시 아리스의 얼굴을 보았다.

“아리스 님.”

“왜?”

“제가 왜 여기에 있는 겁니까?”

“말했잖아. 내가 납치했다고.”

아리스는 왜 같은 질문을 하냐는 듯 뚱한 표정으로 손을 저었다.

“그게 진심이었습니까?”

“그래. 뒷골목에서 죽어가길래. 일단 납치해왔어.”

“아….”

라온이 낮은 신음을 흘렸다.

‘납치가 아니라, 구해주신 거였군.’

이제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알았다. 라스 녀석 때문에 뒷골목에서 기절해 있는 날 발견하고 치료를 해주었던 것 같았다.

일단 아리스에게 고맙다고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다만 아직 몇 가지 의문이 남아 있었다.

“왜 그 시간에 뒷골목에 계셨는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그건 나 때문이다.”

이번에는 아리스가 아니라, 쿠베러드가 앞으로 나왔다.

“내 예전 작업실에 들려서 장비를 챙기다가 시간이 늦어졌는데, 저 녀석이 이상한 기운을 느꼈다면서 제멋대로 날 끌고 갔다.”

쿠베러드는 그곳에 네가 있을 줄은 몰랐다며 헛웃음을 흘렸다.

“그랬군요.”

그 말을 듣자,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이해가 갔다. 라스가 사라지며 크게 마나가 출렁였는데, 그것을 느꼈던 것 같다.

‘이상한 일은 아니지.’

아리스는 초월에 도달한 무인이다. 먼 거리에서도 그 정도 마나는 충분히 느꼈을 게 분명했다.

“근데 제가 왜 여기에 있습니까?”

“그 질문 세 번째야. 납치했다고!”

“아니, 그니까 왜….”

세 번째 질문이라지만, 물어볼 수밖에 없다. 부상이라면 왕국 치료소에 맡기기만 했어도 됐을 텐데, 배까지 태운 이유를 모르겠다.

“심심해서.”

아리스는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비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어….”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바람이 흘러나왔다.

“심심해서요?”

“그래. 심심해서.”

아리스의 볼에 깊은 우물이 파였다. 이 상황을 재밌어 하는 것 같았다.

“아니….”

“나이를 먹을수록 철이 없어지는 녀석은 처음이로군.”

쿠베러드가 한숨을 내쉬며 손에 들고 있던 두 자루의 검을 라온에게 던졌다.

“아!”

라온이 두 검을 받아들고 연한 미소를 지었다. 제천검과 진혼검이었다. 정비해주었는지 검집부터 반질거렸다.

“감사합니다.”

“신경 쓰지 마라.”

쿠베러드의 성격은 여전했다. 그는 정말 별거 아니라는 듯 손을 젓고서 선실 문에 등을 기댔다.

“저 녀석이 널 데리고 온 이유도 특별한 게 아니다. 네 머리에 부상이 있어서 빨리 치료를 해줘야 한다고 했었다.”

그 말을 듣자, 심상의 세계에 생겼던 구멍이 떠올랐다. 구멍이 더 번지지 않게 막아주었던 푸른 마나는 눈앞에 있는 아리스의 기파와 비슷했다.

-그게 맞느니라.

라스가 아리스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 여자가 네놈의 심상에 뚫렸던 구멍이 더 늘어나지 않게 해주었느니라.

‘그래. 나도 느꼈어.’

라온이 낮게 숨을 내쉬며 아리스에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아리스 님.”

“넌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게 취미야?”

아리스는 감사하다는 말도 몇 번을 해야 속이 시원하냐며 눈매를 찡그렸다.

“그리고 나도 받을 건 받았어.”

“예?”

“네가 기절한 곳에 있던 음식 내가 먹었거든. 하나같이 맛있더라고.”

그녀는 맛난 것만 잘도 샀다며 웃었다.

-이러어어어언!

라스가 펄떡 뛰며 아리스에게 달려들었다.

-망할 것아!

녀석의 푸른 눈동자가 훼까닥 돌아갔다. 안구 전체가 광기로 물들었다.

-본왕의 음식을 모조리 뺏어먹다니,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니라!

라스는 만년이 지나도 잊지 않을 거라며 이를 바득 갈았다.

“그대로 놔뒀다면 버려졌을 텐데, 드셨다니 그나마 다행이네요.”

라온은 뻘게진 라스를 무시하고 옅게 웃었다.

-다행? 다해해해앵? 본왕이 안 다행인데, 왜 네놈이 괜찮다는 것이냐!

라스는 개소리 말라며 눈썹을 깊게 내렸다.

“아, 딱 하나는 별로였다. 그 녹색 배경에 초콜릿 칩이 박힌 괴상한 아이스크림. 그건 영 별로더라고.”

아리스는 민트초코가 거지 같았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죠. 그건 별로죠.”

라온이 맛을 잘 아신다고 말하며 웃었다.

-공짜로 처먹고 본왕의 취향을 비난까지 해? 진짜 미쳤구나! 겁을 상실했느니라! 지금 당장 본왕을 강림시키거라! 맛알못에게 민트초코의 참맛을….

라스가 버둥거리며 짙은 분노의 감정을 일으켰다.

‘음….’

라온이 신음을 삼키며 손끝을 떨었다.

‘이것도 달라졌군.’

라스의 분노를 대량으로 받았기 때문인지 녀석이 난동을 부리자, 심장이 아릿하게 울렸다.

라스와 경쟁을 하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고오오오오!

불의 고리를 운용하고 나서야 가슴의 울렁임이 가라앉았다.

‘가만히 좀 있어봐.’

분통을 터트리는 라스를 밀어내고 아리스를 보았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말해.”

“혹시….”

라온은 아리스와 갑판에서 본인들의 할 일을 하는 선원들 그리고 펄럭이는 돛을 보며 말을 이었다.

“아리스 님이 해적왕이셨습니까?”

초월에 이른 무력과 돛에 그려진 살짝 귀여운 해골 문양, 그리고 선원들의 외모를 보니, 딱 한 사람이 떠올랐다.

신주오령의 해적왕. 그자가 아니고선 이런 세력을 가질 수 없다. 의문처럼 말했지만, 확신했다.

“아니.”

다만 아리스는 너무도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손가락을 들어 올려서 우측을 가리켰다.

“해적왕은 쟤야.”

실비아의 그것처럼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을 따라 우측으로 시선을 돌렸다.

훤히 벗겨진 머리, 왼쪽 눈에 안대, 목까지 자란 턱수염 그리고 큼지막한 검까지. 누가 보아도 나 해적이요 하는 중년인이 움찔 어깨를 떨었다.

“예?”

라온이 입을 떡 벌렸다.

‘저 사람이 해적왕이라고?’

일단 외모는 해적왕 자체긴 하고, 무력도 그랜드 마스터 초입으로 보였다.

대단한 경지지만, 저 정도 무력으로 신주오령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쟤가 해적왕이라고. 얘기해봐.”

아리스 지그하르트는 잘해보라는 듯 주머니에서 사탕 하나를 던져주고서 돛대와 돛대 사이에 걸린 그물침대에 올라갔다.

“음, 저기….”

라온이 사탕을 매만지며 시선을 돌렸다.

“일단 제가 해적왕이긴 합니다. 억지로 맡게 된 이름이긴 하지만….”

타칭 해적왕이 된 남자가 조심스럽게 본인을 소개했다.

“라바윈이라고 합니다.”

“혹시 지그하르트에 계셨습니까?”

그의 어투는 남 같지 않았다. 아리스처럼 지그하르트에서 나온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습니다. 성무전 소속 파랑대의 대주였습니다.”

성무전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 전으로 아리스가 전주로 있던 곳이었다.

“그럼 말씀을 놓으세요. 제가 후배이니….”

“아리스 님의 조카분이시지 않습니까. 전 이게 편합니다.”

라바윈은 정중하게 말을 높이면서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아리스를 지극하게 존경하여 자신에게도 존댓말을 하는 듯했다. 해적왕이라는 칭호와 어울리지 않는 선량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왜 라바윈 님이 해적왕이 되신 겁니까?”

“주변 지역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주변 지역이라면….”

“저희가 바다를 돌며 진짜 해적들과 남북맹을 처리했는데도, 해안 도시와 마을에 시비를 거는 잔챙이 놈들이 계속 나오더군요. 해적왕이라는 이름으로 그 지역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아….”

라온이 라바윈과 아리스를 번갈아 보고서 입맛을 다셨다.

‘이제야 이해가 되네.’

처음 해적왕에 대해 들은 건 주디엘의 정보였다.

자신을 해적왕이라 칭하는 남자가 있다고 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바로 이 라바윈이었다. 그는 해안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서 해적왕이라는 이름을 퍼뜨린 것이다.

‘그리고 희극제는 해적왕을 남자라 말하지 않았어.’

희극제는 해적왕을 말할 때 그 자라고 하거나, 해적왕이라고만 말했지, 그나, 그녀로 표현하지 않았다.

그녀는 진짜 해적왕이 라바윈이 아니라, 아리스라는 것을 알고 있던 게 분명했다.

‘이게 이렇게 돌아간 거였군.’

라바윈과의 대화를 통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깨달았다.

아리스는 그저 해적과 남북맹을 몰아낸 것에서 끝을 내지 않고 주변 지역까지 보호하기로 마음먹은 것 같았다.

“이제 이해가 되네요. 그런데 왜 아리스 님이 해적왕을 안 하시고….”

“귀찮다고 하시더군요.”

“그, 그렇군요.”

라온이 살짝 흔들리는 그물침대를 보며 옅게 웃었다. 이제 아리스가 어떤 사람인지 좀 알 것 같았다.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알아주시니 감사합니다. 사실….”

라바윈이 한숨을 내쉬며 안대를 들어 올렸다. 그의 왼쪽 눈은 멀끔하게 제 자리에 있었다.

“이것도 컨셉입니다. 해적왕이면 애꾸여야 한다고 억지로 씌우더군요.”

“허….”

라온이 헛바람을 흘리며 살짝 흔들리는 그물 침대를 보았다.

조금 전에 했던 생각을 취소해야 할 것 같았다. 아리스가 어떤 사람인지 아직은 모르겠다.

“혹시 머리카락도….”

“아, 그건….”

라바윈은 대답하지 않았다.

* * *

실비아가 마른침을 삼키고 시선을 들어 올렸다. 목이 아플 정도로 높은 알현실의 철문. 볼 때마다 가슴을 뛰게 만드는 공포스러운 문을 보며 숨을 골랐다.

두드리고 싶지 않은 문이지만, 지금은 그딴 것을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똑똑!

크게 노크를 하고 대기하자, 묵직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로엔이 밖으로 나왔다.

“실비아 님이시군요.”

그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가주님을 뵙고 싶어요.”

실비아는 로엔에게 마주 인사를 한 후 알현을 청했다.

“알겠습니다.”

로엔은 이미 글렌의 허락을 받았는지 바로 문을 열어주었다.

실비아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뜬 후 발을 내디뎠다.

정오를 알리는 듯한 햇볕이 창가에서 이지러지며 황금빛 조명이 알현실을 채웠다. 웅장함이라는 단어 자체를 두른 듯한 공간을 걸어가 무릎을 꿇었다.

“가주님을 뵙습니다.”

“일어나라.”

글렌은 실비아가 무릎을 꿇기 무섭게 일어나라 지시했다.

“예.”

실비아가 허리를 펴고 시선을 들어 올렸다. 떨리지만, 당당한 눈으로 옥좌의 글렌을 보았다.

그는 평소와 같은 눈동자를. 아니, 오늘은 좀 달랐다. 허무함이 차오른 눈동자가 잘게 흔들리고 있었다.

‘왜 저러시지?’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글렌의 입술이 달싹였다.

“무슨 일이냐.”

“아….”

실비아가 주먹을 꼭 말아쥐며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라온 때문입니다. 그 아이가 어디에 있는지. 왜 돌아오지 않는지를 알고 싶습니다.”

“말했지 않느냐. 다른 광풍대 아이들과 오웬 왕국에서 치료받고 있다고.”

“가문에 가만히 있다고 제가 바보는 아닙니다. 라온이 그곳에 없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실비아의 음성을 그리 크지 않았지만, 기묘한 힘이 실려 있었다.

“음….”

글렌이 눈매를 찡그리며 옥좌의 팔걸이를 무겁게 두드렸다.

“전 그 아이의 어미입니다. 지금 라온은 어떤 상태이고 어디에 있는지 알려라도 주십시오!”

“다친 건 사실이지만, 지금은 괜찮다. 그리고 곧 돌아올 것이다.”

“그 말은 전에도 하시지 않았습니까! 제가 원하는 건 정확한….”

“아리스.”

아리스라는 이름에 실비아의 움직임이 멎었다.

“그 아이가 라온을 데리고 갔다.”

“예? 그게 무슨….”

“만난 건 우연이지만, 그 녀석이 라온의 부상을 치료했다고 하더군. 오늘 일어났다고 연락이 왔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돌아올 것이다.”

“아….”

실비아가 손끝을 매만졌다.

‘아리스 언니가?’

아리스와는 나이 차이가 크게 났고, 그녀나 자신이나 임무로 밖을 돌아다닐 때가 많아서 만난 적도 그리 많지 않았다. 무시하지도, 친하지도 않은 애매한 관계였다.

다만 그녀는 가끔 마주치면 머리를 한번 툭 치고서 쿠키나, 사탕 같은 달콤한 간식을 주곤 했다. 그런 언니가 라온을 구했다고 하니 이상한 기분이었다.

“치료를 끝낸 후에 돌려보낸다고 했으니, 걱정하지 마라. 그래. 괜찮을 것이다.”

글렌의 말은 실비아에게 하는 게 아니라, 본인을 설득하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그 역시 라온이 걱정되는 것 같았다.

“음….”

실비아는 그런 글렌을 보며 낮은 숨을 내쉬었다.

‘정말 괜찮은 거 맞나?’

* * *

라온은 쿠베러드를 따라 그의 작업실에 들어갔다.

카멜룬 공방 거리 뒷골목에 있던 그의 대장간과 달리 손때가 묻은 장비들이 꽉 차 있었다

“검을 정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온은 쿠베러드에게 받은 제천검과 진혼검의 검집을 두드리며 고개를 숙였다.

“너는 예의가 과해. 별것도 아니거늘.”

쿠베러드는 그저 피를 닦아주었을 뿐이라면 손사래를 쳤지만, 검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두 검을 두드려서 정비까지 해주었다. 이 정도 인사는 절대 과하지 않았다.

“그런데 쿠베러드 님은 왜 이 배에 타고 계신 겁니까?”

평범한 배도 아니고, 일단은 해적선인데, 왜 은퇴한 대륙 장인이 이곳에 있는 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잠시 그 녀석의 일을 도와주기 위함이다.”

“그 녀석이라면 아리스 님입니까?”

“그래. 하도 보채서 어쩔 수 없이 오게 되었지.

쿠베러드가 한숨을 내쉬며 낡은 의자에 털썩 앉았다.

라온이 작업실 이곳저곳에 세워진 철제 무기들을 보며 눈매를 좁혔다.

‘어쩔 수 없다라….’

그 말과 다르게 쿠베러드의 작업실에 있는 무기들은 하나 같이 명품이었다.

다만 무기들은 인간이 사용할 크기가 아니었다. 대형 몬스터에게나 던질 법한 거대한 작살이나, 갈고리 같은 것이 줄지어서 놓여 있었다.

‘몬스터라도 잡으시는 건가.’

쿠베러드 같은 성격의 장인이 아무 의미 없이 이곳에 끌려왔을 리가 없다. 특별한 사정이 있을 것 같았다.

“몸은 좀 어떠냐.”

사정을 물으려고 할 때 쿠베러드가 먼저 물음을 던져왔다.

“신경 써 주신 덕분에 괜찮습니다.”

“내가 아니다.”

쿠베러드가 손을 저었다.

“아리스 녀석이 매번 네 머리를 만지작거리더군. 그 왈가닥 치고는 꽤 신경을 써준 셈이야.”

그는 아무리 혈육이라고 해도 신기한 일이라며 미간을 좁혔다.

“알고 있습니다.”

라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분께도 제대로 감사 인사를 드려야죠.”

아리스 덕분에 심상의 세계에 뚫려야 할 구멍의 범위가 좁아졌다. 평생 갚아야 할 은혜였기에 꼭 보답할 생각이었다.

“그래?”

어떤 식으로 보답을 해야 할지 생각할 때 작업실 밖에서 걸걸한 음성이 들려왔다.

콰아아앙!

작업실 문이 부러질 것처럼 거세게 열리고, 허리춤에 손을 올린 아리스가 들어왔다.

“그 말 정말이지?”

“예?”

라온이 아리스를 보며 눈을 꿈벅였다.

“제대로 감사 인사를 드린다며? 그럼 내 일 좀 도와.”

아리스는 거절은 없다면서 손가락을 까딱였다.

“제가 해적 생활에는 취미가 없기도 하고, 지금은 해야 할 일도 있어서….”

라온이 완곡하게 거절의 말을 내밀었다.

‘뭐든 돕고 싶지만, 먼저 처리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광풍대가 어떻게 되었는지, 글렌의 싸움은 잘 끝났는지를 알아야 했고, 시체를 이용해서 암살자를 키우는 데루스의 공장도 부숴야 했다.

“광풍대 애들? 걔들 다 무사해. 네가 일어났다는 것도 가문에 보고했고.”

아리스는 이쪽의 생각을 다 알고 있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거기다 이번 일은 네게도 도움이 될걸?”

아리스가 본인이 관자놀이 부근을 톡톡 두드렸다.

“네 어긋난 상단전의 치료가 빨라질 수도 있거든.”

“음, 어떤 일인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아리스가 옅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마뱀을 잡을 거야. 미쳐 날뛰고 있는 광룡 새끼를.”

그녀의 눈동자가 섬뜩한 빛으로 일렁였다. 동시에 라스가 펄쩍 뛰었다.

-드래곤 통구이?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 517화

지 은 이 글개미

발 행 처 다온크리에이티브

기획 / 편집 / 제작 김태현

표 지 알터

ISBN 979-11-6730-123-9 (05810)

ⓒ2021, 글개미

※ 이 전자책은 대한민국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저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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