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4화
라온은 수화객을 조종하는 암살자의 얇고 가는 기척을 놓치지 않았다. 땅을 헤집는 폭발 속에 몸을 숨긴 채 아주 천천히 그의 움직임을 살폈다.
‘빠르지는 않지만, 시체보다도 기척이 작아.’
데루스가 새로운 보법을 만들었는지, 암살자 놈은 흑영보보다 더 존재감이 적은 보법을 밟고 있었다.
멀린이 아니었다면 설화의 감각을 운용하고 나서야 발견했을 것이다.
‘무조건 따라붙어서는 안 되겠군.’
내가 죽지 않았다는 것도 알아차린 것을 보면 경험 많은 놈이야.
암살자 놈은 멀린의 마법 때문에 죽을 위기에 처했음에도 무작정 물러서지 않았다.
수화객을 조종하여 피해를 줄이면서도 이쪽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는 침착함을 볼 때 많은 살행을 완수한 그림자의 간부가 분명했다.
조급하게 다가갔다간 수화객의 자폭에 휩쓸려 저승 문을 두드리게 될 것이다.
‘지금 상태는 최악이니까.’
암살자 놈의 무력 수위가 마스터 정도라고 해도 지금 몸 상태로 정면 대결을 하는 건 미친 짓이다.
처음 계획했던 대로 암살자의 싸움을 이어가야 했다.
‘인내력 싸움은 자신 있지.’
라온은 폭발을 견디며 암살자 놈과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폭발의 여파가 몸에 닿고 있었지만, 흑룡포의 방호를 믿으며 숨을 죽였다.
쿠구구구.
멀린이 내리친 마법 폭격이 잦아들며 회색 먼지로 가득 찼던 전경이 조금씩 드러난다.
땅이 모두 헤집어졌고, 수화객 여섯의 몸이 터져 있었다.
하지만 암살자 놈은 보법을 멈추지 않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대처할 수 있게 은신술을 풀지 않은 채 주변을 끊임없이 맴돌았다.
라온이 입술을 꾹 씹었다.
‘단전이 아려 오는군.’
백영보는 자연 속에 자신을 숨기는 보법이다 보니, 흑영보보다 오러의 소모가 심했다.
내상을 입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오러를 운용했기 때문에 속이 끓는 듯 지끈거렸다.
스으으으.
암살자 놈이 결국 보법을 멈추고, 기둥이 터져나간 아름드리나무 뒤편에 몸을 숨겼다.
‘이제야 자리를 잡았군.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야.
암살자 놈의 경계는 아직 풀리지 않았다. 여전히 날카로운 감각으로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래도 파고들 방법은 있어.’
암살자 놈의 감각은 당연하게도 뒤편을 중심으로 퍼져 있고, 수화객도 본인을 보호하기 위해 옆과 뒤로 배치해 놓았다. 어떻게 놈에게 접근해야 할지 감이 왔다.
라온이 아직 타오르는 먼지와 밤의 어둠을 전신에 휘감고 나아갔다.
좌측도, 우측도 아니다. 암살자 놈이 숨어 있는 나무 밑동을 향해 정면으로 걸었다.
‘거북이보다도 더 느리게.’
오러가 줄어든다고 조급해졌다간 수화객이 달려들어 자폭할 것이다. 이런 때일수록 침착해야 한다.
‘이 이상 도움을 기대할 수도 없으니까.’
멀린은 10사도와 싸우고 있는 와중에 이곳으로 마법 폭격을 쏟아부어 주었다.
남은 상황을 혼자서 끝내지 못한다면 여기서 살아나갈 자격이 없었다.
아기가 걸음마를 떼듯이 나무 밑동을 향해 한 발씩 나아갔다.
놈은 암살자답게 여전히 뒤편에 기척을 집중하고 있었다. 훤히 보이기 시작한 정면에는 관심 없는 것이다.
라온은 고요해진 먼지와 눅진한 그림자를 발판 삼아 암살자 놈이 숨어 있는 나무 밑동 앞까지 다가가서 몸을 숙였다.
‘지금부터가 중요해.’
아무리 뒤편에 기감이 몰려 있다고 해도 지금 찌른다면 반격을 당할 가능성이 있다. 놈이 방심하는 순간을 노려야 했다.
라온이 역수로 쥐고 있던 진혼검을 바로 잡으며 숨을 멈췄다.
‘분명 그게 올 거야.’
* * *
시리스는 기척을 죽인 채 볼 안쪽 살을 씹었다.
‘빌어먹을.’
놈을 죽이기 직전이었는데,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언덕 위에서 파악했던 대로 라온 지그하르트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수화객들을 이용한 자폭에서 빠져나온 건 의외였지만, 놈에게 남은 오러는 극히 미량이었다.
남아 있는 수화객들을 퍼뜨려서 놈을 찾기만 하면 다 끝나는 일이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마법 폭격이 떨어져서 모든 상황을 망쳐버렸다.
‘여섯이나 죽었어.’
마법 때문에 수화객 여섯이 폭발했다. 넷은 자폭시켰고, 둘은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망가졌기 때문에 남은 건 열두 마리뿐이었다.
‘아니, 이 정도면 충분해.’
조금 전 마법을 사용한 건 멀린 일 것이다.
본인이 라온을 노리고 있으니, 죽이지 말라는 의미였을 테지만, 지금 그녀는 10사도와 싸우는 중이다. 이 정도 규모의 폭격을 다시 사용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최대한 빠르게 죽여야 해.’
이전과 상황이 바뀌었다. 멀린이 다시 마법을 쓰기 전에 혹은 다른 누군가가 도와주러 오기 전에 최대한 빨리 라온을 처리해야 했다.
시리스가 수화객 열둘을 주변으로 퍼뜨렸다. 라온이 숨을 만한 곳에 배치한 후 왼쪽 귀에 꽂은 아티팩트를 매만졌다.
입안에서 웅얼거리는 소리를 원하는 곳에서 퍼뜨리는 아티팩트였다.
[살아 있는 거 알아. 그 거머리 같은 생존 본능이라면 기어서라도….]
마법 폭격이 떨어지기 전처럼 라온을 도발하려 했지만, 시리스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어느새 그의 아랫배에 붉은색 단검이 닿아 있었으니까.
피아아아악!
시리스의 복부를 파고든 단검의 칼날 위로 샛노란 요기가 번뜩였다.
“커헉!”
시리스는 요기의 폭발에 움직임이 굳어졌고, 그 틈을 놓치지 않은 붉은 단검이 그의 단전을 헤집었다.
찌지지직!
단전이 쪼개지는 듯한 소리가 터지고, 시리스가 뒤로 넘어간 채 전신을 바들바들 떨었다. 고통이 심한지 그의 눈동자가 위로 들려 있었다.
“끄흐흡!”
붉은 단검의 주인 라온은 신음을 흘리는 시리스를 굽어보며 입매를 말아 올렸다.
“이제야 공평해졌군.”
* * *
라온이 석고상처럼 굳어버린 수화객들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슬아슬했어.’
수화객에게 어떤 방식으로 지시를 내리는지는 모르지만, 오러를 이용하는 건 분명했다.
암살자 놈에게 들어야 할 정보가 있기에 심장이나, 목이 아니라 단전을 노린 건데 다행히 제대로 먹혀들었다.
“크으으윽….”
암살자의 신음이 줄기처럼 이어진다. 고통 내성 훈련을 받는 그림자가 저런 신음을 흘릴 정도면 단전이 아예 박살 난 게 분명했다.
라온이 암살자의 복면을 벗겼다. 청색 머리칼에 어디서나 볼 법한 선한 인상의 청년이었다.
‘시리스?’
전생에 그림자의 수장으로 있을 때 5조 부조장이었던 놈이다. 그때보다 나이가 좀 들어 보이지만, 직접 교육을 했기 때문에 몰라볼 수가 없었다.
‘수화객을 부릴 정도로 올라간 건가?’
하긴 실력 하나는 확실했으니까.
이번 전투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시리스는 상황 파악, 은신술, 대처 능력이 모두 탁월한 놈이다.
지금까지 살아남아서 승진한 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다만 필요 이상으로 사람을 잔인하게 죽이거나 학살을 했었는데, 수화객을 부리는 걸 보면 그 성격도 여전한 것 같았다.
“크으윽….”
단전이 깨지면서 터져 나온 오러의 파동이 잦아들자, 시리스가 천천히 몸을 들어 올렸다. 고통 때문인지 그의 이마가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다.
‘암살자치고 통증에 약한 것도 여전한 건가?’
정보를 빼낼 가능성이 높아졌군.
“네, 네놈….”
시리스가 핏줄이 선 손을 들어 올렸다.
“저것들은 뭐지?”
라온은 시리스의 손을 쳐내고서 아무것도 모르는 척 뒤에서 멈춰선 수화객을 가리켰다.
“내, 내게 들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런가.”
입을 꾹 다문 시리스의 왼쪽 가슴에 손을 얹었다.
“빨리 죽여라. 고문 따위는 시간 낭비….”
라온은 주절거리는 시리스의 입을 막고, 이젠 익숙해진 레이지 웜 기절법을 사용하여 그의 가슴을 후려쳤다.
뻐어어억!
시리스의 몸이 탄성에 의해 튕겨 허공으로 붕 떴다가 떨어졌다.
“크윽, 이딴 고통쯤은 아무것도….”
“알아. 아무것도 아니지.”
라온이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시작해주마.”
단전에 차오른 오러를 모조리 끌어 올려서 시리스의 몸에 밀어 넣었다. 클라우드에게 행했던 고문법을 3배 이상 강하게 발동시켰다.
“고, 고문 따위는 의미가 없… 끄아아아악!”
시리스는 10초도 견디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며 전신을 부들부들 떨었다.
암살자로 키워질 때 얻었던 고통 내성조차 아무런 효과를 내지 못하는 듯 그의 목 위로 핏줄이 돋아 올랐다.
‘당연히 견딜 수 없지.’
지금 사용하는 고문 방법은 고통과 가려움, 열기, 냉기를 동시에 느끼게 만든다.
그 넷이 서로를 자극하여 점점 더 강도가 세지기 때문에 고통 내성이 있다고 해도 인간인 이상 견디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시리스의 침묵도, 그의 수명도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다.
“크흐흐흡!….”
라온은 파닥거리는 시리스를 놔두고, 만화공과 글래시아를 운용하여 빠르게 오러를 회복시켰다.
‘조금 더 놔두면 알아서 불겠지.’
시리스도 본인이 죽는다는 건 알고 있지만, 더 빠르고 편하게 죽기 위해서 입을 열게 분명했다.
“제, 제발 그만! 다 말할게!”
10분이 지나기 전에 시리스가 바짓가랑이를 잡으며 악을 질렀다. 예상은 15분이었는데 역시나 참을성이 부족한 놈다웠다.
“저것들은 뭐지?”
라온이 서늘한 시선을 내리며 수화객들을 가리켰다.
“수, 수화객이라는 물건들이다.”
“수화객?”
아무것도 모른 척 되물었다.
“무인의 시체를 이용해서 만들어낸 암살자 좀비다.”
“시체를 이용한다고? 사령술사가 만든 건가?”
“그, 그렇다. 사령술사와 시체술사의 연구를 통해서 개발했지.”
“그래서 그렇게 움직임이 자연스러웠군. 피에는 독이 있고, 폭발하는 이유도 알겠어.”
사령술사가 죽은 자를 산 사람처럼 움직이게 한다면, 시체술사는 어눌하게 움직이는 시체에 독과 폭발을 담는다.
그 둘이 함께 만들었기에 지금의 수화객 같은 괴물이 탄생한 것이다.
뿌드득.
라온은 지시를 받지 못해 멍하니 서 있는 수화객을 보며 피나도록 주먹을 말아 쥐었다.
‘데루스 로베르트….’
이 악귀 같은 새끼.
산 사람의 목에 목줄을 거는 것으로 모자라서 죽은 사람마저 조롱하는 그 악마에 대한 분노에 가슴이 터질 듯 달아올랐다.
데루스는 이미 인간의 탈을 벗었다. 오마이상으로 사악한 놈이었다.
“후우….”
라온이 속에서 부글거리는 분노를 억지로 내리누르며 시리스를 노려보았다.
“수화객은 어디에서 만들어지지?”
“으음….”
시리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심장에 숨어 있는 레이지 웜이 깨어나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귀찮게 하는군.”
라온이 눈매를 찡그리며 중지시켰던 고문을 재개했다.
“아아아아악!”
시리스는 얼마 버티지도 못하고, 떨리는 턱을 마구 저었다.
“마, 말하겠다! 캐폴리 마을이다! 그, 그곳에 공장이… 커헉!”
그는 공장이라는 말을 하다가 숨이 끊어졌다. 단전이 깨진 충격 위로 고문이 얹어졌기 때문인 것 같았다.
투드드드득!
주인이 죽었기 때문인지 뒤에 서 있던 수화객들이 끈 떨어진 인형처럼 쓰러졌다.
‘다행히 마지막 정보는 뽑았군.’
수화객이 만들어지는 곳에 관한 정보를 얻어서 다행이었다.
다만 놈이 말한 마을의 이름이 이상하게 익숙했다.
‘캐폴리?’
가보지 않은 곳인데 왜 친숙한 기분이 들지?
라온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입맛을 다실 때 시리스의 발밑이 흔들리더니, 멀린이 빙의했던 두더지가 얼굴을 내밀었다.
“역시 해낼 줄 알았어.”
멀린이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다. 덕분에 살았어.”
“내 건 내가 지켜야지.”
그녀는 감사 인사는 할 필요 없다며 눈을 내리감았다.
“그런 말은 제발….”
“윽!”
헤죽거리던 멀린이 갑자기 가슴을 움켜쥐며 신음을 흘렸다.
“멀린?”
“별거 아냐. 창에 맞았거든.”
멀린은 괜찮다며 손을 휘휘 저었다.
“창? 10사도의?”
“그래. 이걸로 두 번째야. 심장은 아니니까 걱정 마.”
“허….”
왜 두 번째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아까 마법 폭격은 멀린의 본체가 있는 곳에서 날아왔다. 그때 창을 맞은 게 분명했다.
“괜찮아? 버틸 수는 있어?”
“뭐야. 내 걱정해주는 거야?”
멀린은 홍조를 띤 뺨을 매만지며 꼬리를 허리를 살랑거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몇 군데 더 맞을 걸 그랬네.”
그녀는 행복하다고 중얼거리며 고개를 까딱였다. 상황이 좋지는 않은지 말이 뚝뚝 끊어졌다.
“아무래도 좀 집중해야겠어. 난 걱정하지 말고, 이곳을 빠져나가.”
멀린의 미소와 함께 그녀의 존재감이 사라졌다. 두더지가 깜짝 놀라더니 나왔던 굴로 도로 들어갔다.
‘창에 맞았다라….’
일반 병사라면 모를까. 그랜드 마스터인 10사도의 창이면 분명 심각한 부상일 것이다. 그녀의 상태가 어떨지 걱정이 되었다.
‘점점 빚만 늘어나는군.’
쌓인 빚을 갚아주기는커녕 계속 도움만 받으니, 부채의 산이 쌓이는 기분이다.
특히 그녀가 아무것도 원하지 않을 것 같아서 더욱 속이 쓰렸다.
“후우….”
라온이 만화공으로 시리스의 시체를 태우며 몸을 일으켰다.
‘저들도 보내줘야 하는데.’
죽어서도 데루스에게 농락당한 사람들을 편히 보내주고 싶었지만, 저들은 육체는 시리스보다 단단하기에 많은 오러가 필요했다.
‘여기서 회복할 시간은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할 때 얼음꽃 팔찌에서 라스의 기운이 흘러들어왔다.
“이건….”
-죽은 자를 건드리는 건 더러운 짓이니라.
라스가 팔찌 위로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본왕은 저런 추잡한 짓거리를 하는 놈들을 보면 무조건 대가리를 깨부쉈지.
녀석은 다시 팔찌로 들어가며 꼬리를 살랑거렸다.
-귀찮으니, 빨리 처리해라.
“하여튼 마음이 여리다니까.”
라온이 피식 웃으며 팔찌를 툭 쳤다.
-누가! 누가 여리다는 것이냐! 본왕은 마계에서 가장 잔인한….
‘누구긴 누구야. 어딘가의 마왕님이지.’
무사히 카멜룬에 도착하면 아이스크림 하나는 사줘야겠다.
* * *
“나를 앞에 두고 집중력을 잃다니, 제정신이 아니로군.”
10사도가 어깨와 가슴에 구멍이 뚫린 멀린을 보며 눈매를 찡그렸다.
“왜 저곳에 마법을 썼지?”
그는 창을 들어 라온과 시리스가 있는 숲을 가리켰다.
“지저분한 벌레가 있길래.”
멀린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여유롭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녀의 손이 상처를 스치자, 구멍 뚫린 로브가 차오르며 핏물이 지워졌다.
“미친 건 여전하군.”
10사도의 창대 위로 피어난 강환이 섬뜩한 빛을 휘감았다.
“빨리 끝내도록 하지. 네년을 죽이고, 교주께 그놈을 바쳐야 하니까.”
“그건 불가능해.”
멀린이 손가락을 까딱이자, 그녀의 뒤편으로 수를 헤아리기 어려운 마법진이 떠올랐다. 날개처럼 펼쳐진 마법진 위로 일곱 가지 빛이 타올랐다.
“내 건 누구에게도 넘기지 않을 거니까.”
“그 꼴로는 날 이길 수 없다.”
10사도가 지옥에서 끌어 올린 듯 음울한 음성을 흘리며 창을 내질렀다. 창극에서 솟구친 강환의 폭풍이 공간을 찢어발기며 쇄도해왔다.
“미안한데….”
멀린이 악기를 지휘하듯 두 손을 그어 내리자, 마법진 위로 번지던 찬란한 빛무리가 핏빛 광휘가 되어 번쩍였다.
“지금이 내 전성기야.”
가면 위로 비치는 그녀의 미소와 함께 하나 된 마법진에서 우악스러운 섬광이 뻗어나갔다.
쿠와아아아앙!
* * *
화르르르륵!
라온은 시리스와 수화객들의 시체를 모두 태운 후 고개를 돌렸다.
‘지금 들린 소리는….’
멀리서 어마어마한 힘이 충돌했다. 여기까지 흘러온 마나의 흐름으로 볼 때 멀린과 10사도 같았다.
‘가봐야 하나?’
아니. 오히려 방해만 되겠지.
라스가 넘겨준 기운과 조금 회복한 오러 덕분에 아까보다는 훨씬 나아졌지만, 비슷한 수준의 강자와 싸울 정도는 아니었다.
지금은 누구를 도와줄 게 아니라, 광풍대와 합류하여 최대한 빨리 이곳을 벗어나는 게 옳았다.
‘바로 넘어가야겠군.’
라온이 카멜룬이 있는 곳으로 방향을 잡고, 땅을 박찼다. 혹시나 다른 적이 있을 수도 있기에 기척을 최대한 줄이면서 움직였다.
-겁쟁이 놈. 본왕은 기운이 없을 때도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다녔느니라!
나무와 나무 사이를 넘어갈 때 라스가 조잘거렸다.
‘난 착한 마왕님이 아니라서.’
-끄응! 네놈은 그런 배짱이 부족 하느니라! 뭐가 와도 이겨버리겠다는 배포! 무슨 일이 벌어져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녀석이 계속 주절거릴 때 눈앞으로 메시지가 떠올랐다.
[불가능한 위업을 이뤄내셨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특성….]
클라우드와 시리스의 전투를 이겨냈던 보상들이 한 번에 찾아온 것 같았다.
-으어어억….
라온이 턱을 부르르 떠는 라스의 눈꺼풀을 가리키며 미소를 지었다.
‘눈 깜빡했는데?’
-닥쳐!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 천재 504화
지 은 이 글개미
발 행 처 다온크리에이티브
기획 / 편집 / 제작 김태현
표 지 알터
ISBN 979-11-6730-123-9 (05810)
ⓒ2021, 글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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